사실 맥이 끊길뻔 했던 챈들러식의 부활은 하루키의 공이 크다.
챈들러 팬들이 들으면 화를 내려나.
■ 레이먼드 챈들러와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끼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영역된 뒤 <뉴욕 타임즈 북리뷰> 92년 9월27일자에 실린 미국의 젊은 소설가 제이 매키너니와의 문학 대담에서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60년대 나의 우상이었다. 나는 <오랜 이별, The Long Good-bye>을 12번 읽었다.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들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 크게 감명받았다. 그들은 고독하지만, 근사한 삶을 찾고 있었다.'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하루끼 문학수첩>에서도 하루키가 영향을 받은 11인의 미국 현대작가에서도 챈들러는 제일 먼저 언급 되고 있다.
" .... 특히 그는 소설 기법에 있어서 다분히 챈들러(역주:미국의 추리 소설가, 하드보일드파의 거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루끼: ....내가 챈들러를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말로우-작품 속의 주인공-라는 존재 자체가, 존재감이 있는 가설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챈들러 자신의 자질문제라고도 생각하지만, 그것을 잘 표현해 내지 못하면, 도시라고 하는 것은 그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가설이라는 뿌리를 빼버리면, 굉장히 피상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가와모토: 챈들러는 도시 속에서 황야를 본다고 할까, 도시를 도시로서 보고 있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평소에 살고 있으면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도시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쓰는 것이지요.
- 가와모토 사부로, <도시의 풍경학> 중에서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끼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의 작품구성은 분명히 챈들러적이다. ......차츰차츰 의뢰주가 수상해지고, 의뢰 받은 일 자체도 수상해지면서, 소설의 구성 그 자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스릴 넘치는 변화가 일어나다. 하루끼 자신은 이 변화를 'seek and find'라는 말을 사용하며, 가와모토와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이때 쓰여진 'seek and find'라는 말은, 후에 마치 무라카미 하루끼 문학의 대명사처럼, 연구자나 팬들 사이에서 쓰여지게 되었다).
'find'했을 때는 'seek'했던 것이 이미 변질되어 있다는 것이 테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옳다고 할 수 있다. .... 모든 문학은 발견'find'했을 때에는, 찾고 있던(seek) 것이 당연히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그것에서 또 다른 테마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찾아 내야 할 것이 미리 상실되어 있는, '부재'라고 하는 테마이다. 'seek and find'에서 테마가 찾아야 하는 것의 부재로-상실로-이행할 때, 무라카미 문학은 챈들러와 뚜렷이 결별하고, 일본으로, 자신의 원래의 체험에 입각한 표현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 래이먼드 챈들러 작가 소개
다음에 나오는 내용들은 여러 책에서(주로 <안녕, 내사랑>과 <오랜 이별>의 작가 소개에서) 나온 레이먼드 챈들러에 관한 내용을 대충 종합해본 것이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미국의 대쉴 해미트가 창시한 하드 보일드 추리소설을 추리소설의 새로운 형태로 확고하게 정착시킨 작가이다. 미스터리의 2대 요소가 '범죄'와 '추리'라면 포에서 코난 도일에 이르는 이전의 본격 추리소설은 탐정의 추리가 중심이었다. 추리소설이란 그야말로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었고,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엘러리 퀸 같은 위대한 탐정들은 뛰어난 두뇌로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탐정이었다. 그러나 하드 보일드 소설에서는 탐정이 가만히 앉아서 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나가서 뛰어 돌아다닌다. 논리와 분석이 아니라 주먹과 권총, 그리고 완력과 배짱으로 범인들과 맞서는 것이다. 그러한 탐정의 생활을 묘사하자면 자연히 비정한 폭력이 곳곳에 난무하게 된다.
챈들러는 '간단한 살인 예술(The Simple Art of Murder)이라는 에세이에서 "종래의 추리소설은 사실성이 영점"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엄정한 논리로는 생생한 분위기를 묘사할 수 없고 탐정의 인간적 풍모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전통적 추리소설의 대가들이 살인을 마치 수수께끼 풀이 놀음이나 논리 문제 풀이처럼 다룬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은 사실적인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형태의 '행동의 문학'을 추구하였다.
챈들러는 자아의식과 자부심이 대단하여 남들과 잘 어울리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대쉴 해미트만 유일한 대작가일 뿐 추리소설 황금기의 작가인 크리스티, 밀른, 벤트리에서 반 다인, 엘러리 퀸에 이르기 까지 모조리 형편없는 작가라고 공언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필립 말로우(Philip Marlowe)는 자연히 이전의 탐정들과 사뭇 다르다. 필립 마로우는 원래 로스엔젤리스 검사국 수사관이었으나, 너무 정직하기 때문에 해고되어 탐정 개업을 한 말로우는 하루 25달러 이상의 보수를 받지 않으며, 직정적이고 완고한 반면 때로는 감상적인 일면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뛰어난 두뇌로 논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기 보다는 박력있는 행동으로 악당들과 맞선다.
그러다가 반쯤 죽을 지경이 되기도 하지만 또 다시 일어나 사건에 뛰어든다. 그의 행동이나 말투는 비정하면서도 간결하고 박진감이 있어 통쾌하기 그지 없다. 분석적 천재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이 무엇보다도 사실적으로 마음에 와닿는다.
챈들러는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양육권을 가진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교육받았다. 그 자신은 변호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자연히 문학 쪽으로 기울어진 그는 19살 때부터 신문과 잡지 등에 시나 수필, 비평문 따위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신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자 미국으로 돌아온 챈들러는 여러 곳에서 사무원 생활을 하다가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도로 영국으로 건너가 항공대에 입대했다.
1919년에 제대하여 다시 미국으로 온 챈들러는 은행이나 석유회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1929년의 경제공황이 닥치자 그만두고는 블랙마스크 같은 싸구려 잡지에 중편 <협박자는 쏘지 않는다>를 투고했다. 편집자는 이 작품이 몹시 마음에 들어 1천 8백 달러의 원고료를 지불하여 계속 작품을 쓰도록 권고했고, 이에 힘을 얻은 챈들러는 본격적인 작가 생활에 들어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1939년 출간한 첫 장편소설 <거대한 잠, Big Sleep>이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어서 나온 <안녕 내사랑, Farewell, My Lovely, 1940>, <높은 창, The High Window, 1942>, <호수 속의 여인, The Lady in the Lake, 1943>등도 모두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이는 대부분 영화로도 제작 된 것을 보면 가히 챈들러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아카데미 후보로 지명된 <이중보상, Double Indemnity>와 <푸른 달리아, The Blue Dahlia>등의 각본도 그의 작품이다. 챈들러는 1924년 시시 파스칼과 결혼을 했었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36살 때 18살이나 연상인 팰 세실리 보웬과 결혼했다.
두 번이나 이혼 경력이 있는 그녀는 몹시 아름다웠는데, 결혼 생활은 행복한 편이었고, 그녀가 84살에 세상을 떠나자 64살의 챈들러는 몹시 비통해서 자살을 자주 입에 올렸다. 미국추리자가협회 회장을 지냈던 그는 말년에 극심한 우울증과 쇠약증에 시달리다 1958년 마지막 장편 <플레이 백>을 발표한 이듬해인 1959년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 <챈들러 방식>
꽤 오래 전에 어떤 책에서인가 레이몬드 챈들러의소설을 쓰는 비결에 관한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는 정확하게 내용을 외우고 있었는데, 무척 오래된 일이라서 대부분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우 재미있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들지만 출처가 어디였는
지 영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좋았다는 기억은 있는데 어떻게 좋았는지 잘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헌데 그 문장 중에서 딱 한가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하긴 이것 또한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일 뿐 세세한 부분의 맞고 틀림까지는 자신이 없다. 만약 틀리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 기억 또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것으로서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나는 그것을 챈들러-방식이라 부르고 있다.
우선 책상을 확실하게 정해 놓을 것, 이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자기가 문장을 쓰기에 적당한 책상을 하나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원고용지라던가(미국에는 원고용지가 없지만 아무튼 그와 비슷한 것) 만년필이라던가 자료 같은것을 준비한다. 깨끗이 정돈해 놓을 필요는 없지만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는 태세는 갖추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매일 어느 시간을 -예를들어 두 시간이면 두 시간을- 그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두 시간에 막힘없이 문장이 써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처럼 잘 풀리지는 않는, 전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날도 있는 것이다. 쓰고 싶은데 아무리해도 잘 써지지 않아 짜증나 내팽개쳐 버리는 일도 있고, 처음부터 문장 따윈 전혀 쓰고싶지 않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또는 오늘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은 직감이 들 때도 있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옳은가? 비록 한 줄도 쓸 수 없다고 해도 아무튼 그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것, 이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그저 책상 앞에두 시간 움직이지 말고 앉아있으라고. 그러는 동안 펜을 들고 어떻게든 문장을 써 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건히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 대신 다른 짓을 해서는 안된다. 책을 읽거나 잡지를 들추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고양이하고 논다거나 누구랑 이야기를 나누거나 해서는 안된다. 쓰고 싶어지면 쓴다는 태세로 오직 묵묵히 앉아 있지 않으면 안된다. 비록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쓰고있을 때처럼 집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그 순간엔 한줄도 쓰지 못해도 틀림없이 언젠가는 다시 문장을 쓸 수 있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조바심하면서 쓸데없는 짓을 한들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이다, 라는 것이 챈들러의 방식이었다.
나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비교적 좋아한다. 자세로서 건전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물론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라고 생각되나, 어네스트 헤밍웨이 처럼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해외로 튀어나간다던가 아프리카의 산에 오른다던가 카리브해에서 청다랑어를 낚는다던가 해서 그것을 소설의 소재를 삼는 그런 식은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 것은 TV의 '무슨무슨 스페셜'과 근본적으로 발상이 같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으면 점점 에스컬레이트되여 부자연스럽게 소재를 구하려 들게 될 것이다.
그와 비교하면 '그대로 두 시간 책상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러는 동안에 어떻게든 될 것이니까' 라는 것은 사상으로서 올바르다. 돈도 들지 않고 남에게 폐도 끼치지 않으며 번거롭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외적인 요인에 의지하지 않는다는게 떳떳하고 좋다.
나는 원래가 멍하니 있는걸 좋아해서 소설을 쓸 때는 대개 이 챈들러-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하튼 매일 책상 앞에 앉는다. 쓸 수 있건 없건 그 앞에 두 시간 멍하니 앉아 있다. 멍하니 있는 것은 간단하다고 하면 간단하나, 어렵다고 하면 제법 어렵다. 확실히 어떤 술책이나 요령이 필요하다.
'하품교습'은 아니지만, 나의 멀건히 있는 법을 대충 적어 놓는다. 우선 양손으로 턱을 받친다.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턱 뼈를 누르고 새끼손가락으로 눈 끝을 누른다. 그리고 목의 힘을 뺀 뒤 양쪽 눈의 초점을 미묘하게 떼어놓는다. 내 경우 다행이도 오른 쪽 시력이 0.08 왼쪽 시력이 0.5이므로 노력하지 않고도 목의 힘을 빼고나면 초점은 자연히 떨어져서 시야가 뿌예지고 만다.
때때로 생각난듯 조금씩 자세를 바꾸면서 대충 이런 자세로 시간을 보낸다. 내 책상 앞에는 창이 있고, 창 너머에는 천평 정도의 빈터가 있다. 병원 용지로서 확보되어 있는 것인데 건축허가가 나지않아 그대로 내버려둔 넓은 토지다. 그 곳에서는 억새풀과 키다리들국화가 치열한 경쟁을 벌
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개 멍청한 시선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이라던가 키다리들국화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줄곧 그렇게 하고 있으면 어느덧 머리속이 팬케익의 재료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한 착각이 엄습한다. 골고루 섞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멍글멍글한 덩어리가 있는 팬케익 재료다. 머리를 뒤로 젖히면 주루루 하는 느낌으로 그 멍글멍글이 있는 골이 뒤편으로 이동하고 앞으로 숙이면 같은 식으로 주르르 앞쪽으로 이동한다. 재미나서 그것을 몇번이고 해 본다.
창 밖에서는 키다리들국화와 억새풀이 계속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개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비행기가 날아간다. 지금은 1983년 봄이고 나는 34세이다. 나는 책상 앞에 언제까지나 멍하니 있다. 진정 얼마 안 있어 뭔가를 쓸 수 있게 되려나 생각해 본다. 지금은 아무것도 쓰고싶지 않
은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 <하루키의 여행법> 중 필립 마로우가 등장하는 '구보 우동집 순례기'
이 식당도 제면소가 직접 경영하는 우동집이지만, 다카마츠 시내에 있어서 다른 우동집에 비하면 우선 우동집으로서의 체제는 제대로 갖추고 있다. 밖에서 볼 때도 제대로 갖춘 우동집의 모습이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아침 아홉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는데, 식당 안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우동을 먹는 사람이 많아서 마리가와 현의 우동집은 아침 일찍 문을 연다. 이 집의 우동 국물은 건해삼의 맛이 짙게 배어나 상당히 맛이 있었다. 주인한테 얘기를 들어 보니 건해삼의 우동 국물은 해삼을 꺼내는 타이밍이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여기서는 우동과 간장 우동이 반반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손님들은 모두 대단히 효율적으로 우동을 먹고 있었다. 대개 남자 한 사람이 들어와서 간략하게 주문을 하고, 적당히 고로케나 유부 초밥을 카운터에서 가져다가 익숙한 솜씨로 양념을 쳐서 말없이 후루룩 후루룩 들여 마시고, 다 먹고 나면 돈을 놓고 휙 나가 버린다.
굉장히 거칠다. 필립 마로우도 마리가와 현에서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이런 식으로 우동을 먹었을 것이다. 강하지 않으면 우동을 먹지 못한다. 친절하지 않으면 우동을 먹을 자격이 없다. 운운하면서 말이다.
이 곳은 보통이 120엔, 곱배기가 190엔, 그리고 특대가 260엔이었다.
■ 레이먼드 챈들러 웹사이트
http://www.geocities.com/Athens/Parthenon/3224/
Flypaper's Murakami Haruki Homepage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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