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가가 고은이라면, 일본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장 유력시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60)다. 하루키는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으레 거쳐 가는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함으로써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에 이은 세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일본인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실제로 2006년 11월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오보가 흘러나와 잠시나마 일본을 들뜨게 한 적도 있다. 노벨상이 가진 정치적 함의를 고려해볼 때, 1994년 오에 겐자부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어 다시금 일본 작가의 수상이 성사될지 불투명하긴 하지만, 하루키가 세계적인 성가를 올리고 있는 작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세계적 작가 반열
우리나라에서 하루키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때는 1990년대 초반이다. 그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이래, 1990년을 전후해 ‘하루키 신드롬’이라 할 만큼 많은 작품이 앞 다퉈 출간됐다. 아마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을 다닌 세대는 대부분 하루키의 소설 한두 권쯤은 읽었을 것이다. 하루키의 인기는 일본과 한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들이 이미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40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장편 ‘해변의 카프카’는 2005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 10선’에 들었다. 2007년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어둠의 저편’ 역시‘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됐다. 개인적으로는 200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박람회에 갔다가 박람회 중앙 부스에 하루키 코너가 별도로 크게 설치된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나딘 고디머, 샐먼 루시디 등과 나란히 설치된 하루키 코너를 보며 그가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음을 새삼 실감했다.
올해 초 하루키는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예루살렘상’을 수상했다. 사회와 인간 문제에 대해 뛰어난 시각을 보여주는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는 2월 이스라엘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모든 인간은 소중한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다. (국가) 시스템이 이 영혼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며 이스라엘의 하마스 폭격을 비난했다. 매스컴의 주목을 꺼리는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독특한 생활방식
소설 못지않게 많이 번역된 그의 에세이들을 보면, 이 작가의 생활방식이 좀 특이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선 그는 아이가 없다. 그런 까닭에 서른 살에 작가가 된 이래 30년 동안 육아나 교육 문제에 치이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작품을 쓰기 위해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가 많다.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썼고, ‘태엽 감는 새’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4년간 미국 보스턴에 살면서 썼다. 요컨대 중요한 작품은 늘 외국에 나가서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한국 못지않게 대인관계 그물이 촘촘하게 얽혀있는 사회이고, 더구나 하루키 정도의 유명세라면 찾는 이도 많을 게 뻔하다. 아마도 작가는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의 고리에서 벗어나 작품에만 집중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처럼 잦은 해외체류 경험 덕에 하루키의 작품에는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인, 그리고 약간은 우울한 그림자가 숙명처럼 드리워져 있다.
해외에 나가면 하루키의 생활은 극도로 단순해진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낮에는 재즈를 들으며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하고,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거나 펍(Pub·술집)에 가고, 밤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철저히 고수한다. 이 때문에 좋아하는 재즈나 클래식 콘서트를 놓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이러한 생활습관 덕분에 한 편의 장편을 탈고하면 장편을 쓸 당시의 해외체류 경험을 담은 에세이집이 부록처럼 출간돼 나온다. 그의 에세이나 여행기들은 하루키 특유의 ‘쿨’한 문체로 소설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해외에 오래 머물면 언어 문제로 힘들지 않을까? 하루키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나라 말을 조금씩 배운다고 한다. 그리스로 떠나기 전 대학 부설 어학원에서 두 달간 그리스어를 배우는 식이다. 또한 영어로 강연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어 어느 나라에 가든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된다. 아무튼 소설 쓰는 것도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고, 해외에서 지내는 것도 즐기는 듯한 하루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복 받은 인생이 또 있을까 싶다.
하루키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쿨’함을 은근히 과시하곤 한다. 언론이나 대중 앞에 드러나기를 썩 즐기지 않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드문드문 들려주는 것은 대부분 그의 에세이집을 통해서다. 글로 표현되는 해외생활은 하나같이 근사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 체재하고 있는 동안은 전혀라고 해도 무방하리만큼 신문을 읽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변으로 나가 일광욕을 하고 시가지를 산책하거나 아니면 베란다에 앉아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감정교육’이나 ‘장미의 이름’ 등 가지고 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신문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일지 않는다. 세계는 세계 제멋대로 돌아가게 내버려두면 되지 싶은 기분에 젖는 것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 중
‘오후 4시쯤에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숙소에 들고 싶다. 샤워를 하고 홀연히 근처에 있는 펍으로 들어선다. 식사 전에 먼저 흑맥주 1파인트를 마실 필요가 있다.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잠시 쉰 다음, 하릴없이 동네를 산책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괜찮은 레스토랑을 물색한다. 슬슬 배도 고파온다.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한때다. 6시 반쯤 되면 그럴듯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받아들고는 자, 그럼 무얼 먹지, 하고 검토에 들어간다.’ -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여행기 ‘위스키 성지여행’ 중
소설가로 데뷔할 때부터 그는 운이 좋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1978년 4월1일 오후 1시 반 전후해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혼자 야구장에서 경기를 구경하고 있다가 갑자기 ‘소설을 써야지’하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당시 하루키는 와세다대 시절(하루키는 이 대학 연극과에 입학했다가 학원사태로 제적, 복학을 거쳐 7년 만에 졸업했다) 만난 요코와 일찍 결혼해 재즈바 ‘피터 캣’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글이라고는 ‘세금신고 서류와 간단한 편지 정도를 쓴 것이 전부’였던 그는 그 길로 원고지 한 뭉치와 만년필을 사들고 와 가을까지 원고지 400매 정도의 중편을 썼다. 그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하루키는 이 작품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무심코, 운명적으로
야구 경기를 구경하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첫 소설로 신인상을 탔다는 그의 회고는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고 학원은 안 다녔어요”하는 명문대 수석합격자들의 소감처럼 어이없게 들린다. 아마도 그는 “나는 노력하거나 분투하지 않고 운명의 힘에 이끌려 소설가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루키의 부모는 일본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그는 성장하면서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미국문학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바쁜 일상을 살았다 해도 “세금신고 서류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건 과장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무의식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의식 표면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아무튼 첫 소설을 쓸 당시만 해도 하루키는 자신이 작가로 살아갈 운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싶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신인상 공모에 투고할 당시 원고지에 만년필로 쓴 소설의 복사본조차 만들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떨어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신만만함, 혹은 무심함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신인상 수상작으로 결정되고, 이듬해 여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두 편의 소설을 더 탈고한 뒤에, 하루키는 7년간 운영하던 ‘피터 캣’을 닫고 전업 작가가 됐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밤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전업 작가가 된 뒤로 1년에 한 권꼴로 성실하게 소설을 써나갔다. 그리고 1987년, 비틀스의 노래에서 제목을 딴 장편 ‘노르웨이의 숲’으로 1년 만에 43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일약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 후 펼쳐진 하루키의 삶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그리스 미코노스, 이탈리아 로마, 영국 런던, 미국 보스턴과 프린스턴 등 이름조차 멋진 해외 도시들에 번갈아 체류하며 작품을 쓴다. 2003년 출간된 장편 ‘해변의 카프카’는 그의 명성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이 소설의 출간을 전후해 하루키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독자 중 몇몇은 “인생 참 근사하구나!”하며 긴 한숨을 내뱉을지 모른다. 그 또래의 남자 대부분의 삶은 여기에 비할 바 없이 고달프고 빡빡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출근 준비를 하고, 만원 전철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직장에 닿으면, 별반 중요하지도 않은 회의와 상사의 얼토당토않은 업무 지시, 부하직원의 어깃장이 기다리고 있다. 조미료로 범벅된 점심식사로 위를 채우고, 오후 업무시간을 버텨내면 내키지 않는 술자리가 이어진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사는 게 왜 이리 고달픈가 하는 한탄이 절로 새어나온다. 이게 보통 중년 남자 대부분이 겪는 일상이다. 그러니 조깅하고 글 쓰고 음악 듣고 외국 여행하는 하루키의 삶은 천국, 아니 천국 그 이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과연 그럴까? 하루키는 아무 어려움 없이, 그저 ‘쿨’하게 인생을 즐기는 것일까? 물론 그럴 리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루키는 다만 ‘쿨’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인생은 새벽에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며 고달픈 출근을 하고 밤늦게까지 술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보통 남자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가는 방식 자체는 다르지만, 고달픔의 강도는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아 보인다.
하루키는 자신의 직업, 즉 글쓰기에 상당히 엄격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 중에는 소설을 쓰며 도저히 소설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에세이를 쓰거나 번역을 한다. 마감을 철저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언제나 마감 이틀 전에 모든 원고를 끝마쳐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하루키가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하루키는 매일 새벽 10km를 달린다. 일본에서나 외국에서나 마찬가지다. 그가 뛰는 이유는 간단하다. 장편소설을 쓸 때 체력이 고갈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장편은 한두 달 이 아니라 1년 이상 꾸준히 글을 써야 하는 작업이고, 그 작업의 강도는 궁극적으로 육체노동에 가깝다. 그가 처음 뛰기 시작한 것은 재즈 바를 접고 전업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서른세 살 때다. 갑자기 소설쓰기에 매달리니 살이 급격하게 찌고, 흡연마저 늘어 운동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본질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이기고 지는 데 크게 연연하지 않는” 그의 성격에 달리기가 적격이었다.
지독한 원칙주의자
하루키는 달리기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나는 머리가 그다지 좋은 인간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몸을 통해서만, 그리고 손에 닿는 재료를 통해야만 사물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달리기 실력에 대해서는 그저 일반적인 러너(runner) 수준이라는 식으로 대수롭잖게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루키는 마라톤 풀코스를 25번 완주했다. 매일 10km씩 뛰면 한 달에 300km는 족히 뛴다는 계산이 나온다. 바쁘다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뛰지 않은 날이 없다.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완고하게 매일 아침 달리기에 나선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100km를 뛰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해 완주한 기록도 있다. 최근에는 수영-사이클-마라톤으로 이어지는 트라이애슬론 경기에 매년 출전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단순히 취미랄 수 없다. 말로는 “뛰는 것이 손쉽기 때문에 뛰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달리기에 대한 그의 열의는 단순한 애정을 뛰어넘은 집념의 수준이다.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한 경험을 들려준다. 1996년 6월23일,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이 경기는 광대한 사로마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이 경기에 참가하기 전까지 하루키는 마라톤 풀코스(42.195km)보다 먼 거리를 달려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그 보다 두 배 이상 긴 코스를 뛰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루키의 나이 마흔일곱 살 때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55km 지점에서 중간휴식한 이후 다리가 마비된 듯 말을 듣지 않았다. “55km 휴식지점에서 75km까지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다. 느슨하게 돌아가는 육류 다지는 기계 속을 통과하는 쇠고기와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은 있지만, 몸 전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의 터널을 지난 셈이다.
그럼에도 기권하지 않았다. 아니, 걷지도 않았다.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라고 자신을 세뇌시키며 기계적으로 뛰었다. “무리해서 계속 달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걷는 쪽이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주자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걷지 않았다. 나는 걷기 위해서 이 레이스에 참가한 게 아니다. 달리기 위해 참가한 것이다. 아무리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뜨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지독한 완고함, 절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진실성. 하루키에게는 그런 고집이 있다. 그리고 그 고집으로 마비된 몸을 움직여 11시간을 뛰었다.
탈고할 때까지 죽을 수 없다
그는 결국 출발한 지 11시간42분 만에 100km를 완주한다. 80k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피로와 고통은 물론이고, 완주해야 한다는 의식마저 사라졌다.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그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느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아마도 하루키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엄격함, 러너로서의 고집은 작가로서의 엄격함 바로 그것일 것이다. 하루키는 소설 쓰는 것이 어렵다거나, 뼈를 깎는 노동이라거나 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 “풀숲 속의 토끼를 쫓듯 나의 본능을 쫓아가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디어가 퐁 튀어나온다. 이것을 놓치지 않고 꽉 움켜쥐는 것이야말로 소설을 쓰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라고 ‘쿨’하게 말한다. 그러나 실상 그의 작업은 결코 ‘쿨’하거나 나이브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견디는 단계를 넘어 궁극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쓰는 것, 그것이 하루키가 결코 자신의 입으로는 말하지 않는 창작의 비결임이 분명하다.
20여 년 전 ‘먼 북소리’를 쓸 당시 그는 그리스 미코노스 섬에 주로 체류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섬사람들은 멀고 먼 동양의 섬나라에서 온 작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그를 붙잡고 자기 집에 가서 우조(그리스산 독한 포도주)를 마시고 가라고 권하는가 하면,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굽기 좋게 손수 다듬어주기도 한다. 하루키는 조깅을 하던 중 큰 개에게 쫓기기도 하고,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집안이 물바다가 되어버리는 등 갖가지 웃지 못할 경험도 한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기기묘묘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외국에 머문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그는 계속 작품을 쓰고 있었다. 사실상 하루키의 생활리듬은 소설을 쓰는 데 맞춰져 있었다. 그는 마음속 본능이 장편을 쓰고 싶다는 충동으로 가득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됐을 때 전투에 나서는 검투사처럼 결연히 소설에 달려들었다. 30대 후반인 하루키의 목소리는 지금보다 한층 더 절박하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이 다 끝나기 전에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비장하게 말한다.
어느 날 밤, 하루키는 새벽 3시50분에 미코노스의 서머 하우스에서 잠이 깬다. 피서철이 지난 미코노스는 썰렁하기 그지없고 서머 하우스는 여름에만 쓰는 집답게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어둠이 내려앉은 이국의 풍경을 내다보면서 ‘라스트 타이쿤’을 쓰다가 쓰러져 죽은 스콧 피츠제럴드를 생각한다.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소멸이다. 아무도 그것을 복원할 수 없다.” 그는 중얼거린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에게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영원한 생이 아니며 불멸의 걸작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현재의 일이다. 이 소설을 다 쓸 때까지만 어떻게든 살아 있게 해달라는, 단지 그것뿐이다.” 이토록 힘들게 써내려간 소설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다. 이 소설은 2002년까지 일본에서 통산 780여만부가 팔리며, 역대 일본 소설 판매량 2위 기록을 세웠다.
‘작가 그리고 러너’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자신을 소개할 때 ‘화가 겸 정원사’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네는 화가로서 인정받은 후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집을 샀고, 이 집에 딸린 정원을 가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모네의 후기 작품 대다수는 지베르니의 정원과 연못을 그린 회화다. 모네가 타계한 지금 지베르니의 집은 모네기념관이 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정원을 보기 위해 이 집을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화가에게 정원 가꾸기와 그림 그리기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길이었던 셈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에 ‘작가 그리고 러너’라고 쓰고 싶다고 말한다. 화가이자 정원사였던 모네처럼, 달리기는 그에게 ‘소설 쓰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50대를 넘어서면서 마라톤 기록이 점차 떨어지자 하루키는 종목을 바꾸어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했다. 그는 60세가 된 현재도 여름에는 트라이애슬론을, 겨울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자신만의 룰을 지켜가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규칙이라기보다 하나의 의식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달리기가) 50대 후반을 맞이한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알 수 없다, 아마도 뭔가를 의미하고 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거기에는 뭔지 모를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뭐가 어찌 됐든, 그저 한결같이 달리고 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마치 작가의 30년 소설 쓰기에 대한 우회적 고백처럼 들린다.
처음 뛰기 시작한 서른세 살에 20~30분도 계속해서 뛸 수 없었던 남자가 15년 뒤 100km를 쉬지 않고 뛰게 된 것처럼, 작가 하루키는 그런 엄격함과 진지함으로 스스로를 단련시켜왔다. “작가가 되기 위해 재능은 당연히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 다음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은 집중력과 지속력이다. 그 집중력과 지속력을 나는 달리기를 통해 배웠다.” 때로는 러닝슈즈를 신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까지 그는 어떤 레이스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그는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마라톤 풀코스를 계속 달릴 것”이라고 다짐한다.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을 쓴 지 15년 만에 다시 ‘해변의 카프카’라는 빅 히트작을 내놓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작가나 예술가에게는 ‘전성기’라는 게 있다. 뛰어난 작품을 샘솟듯 창작해내는 시기가 한번 지나가면, 그 창작의 샘은 고갈되게 마련이다. 더 이상 영감은 솟아오르지 않고, 문장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비극적인 사실은 이 작가의 전성기가 대개 젊은 시절에 온다는 것이다. 젊음의 쇠락과 함께 전성기가 끝나면 ‘강속구 투수의 구속이 점점 떨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작품은 서서히 그 선명도와 광휘를 잃어간다. 그 때문에 적지 않은 작가가 한때 자신의 손에서 탄생한 걸작의 후광에 기대어, 더는 그만한 작품을 쓸 수 없다는 현실을 괴롭게 감내하며 남은 생을 살아간다. 버지니아 울프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괴로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집중력과 지속력의 힘
그러나 하루키는 첫 소설을 출간한 지 23년 만인 2002년, ‘해변의 카프카’로 ‘노르웨이의 숲’을 넘어서는 성공을 거둔다.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에 쫓기는 열다섯 살 소년과 그를 지켜보는 노인의 엇갈린 시선을 다룬 포스트모던한 이 작품에 대해 일본의 평론가들은 “마침내 일본문학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평론가 가토 노리히로)고 감격했으며,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하루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생존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퍼부었다. 이 책을 2005년 ‘올해의 소설 10선’ 중 하나로 선정한 ‘뉴욕타임스’ 역시 “작가의 힘찬 필치가 느껴지는 우아하고도 이지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것이 바로 ‘집중력과 지속력’의 힘 아닐까.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이끌며 달리고, 온몸이 아우성치며 호소하는 고통을 참아내며, 마침내 달려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달린 것처럼, 하루키는 자신의 평범한(그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재능을 끈질긴 집중력과 지속력으로 지탱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견뎌온 것이다. 아니, 다만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발자국씩 능력을 연마해오다 장년을 넘어서서 비로소 자신의 깊숙한 어딘가에 묻혀 있던 참된 재능의 광맥을 만난 것이다. ‘해변의 카프카’는 작가의 완고한 근면함이 이루어낸 빛나는 성과다. ‘해변의 카프카’를 썼을 당시 하루키의 나이는 52세였고 달리기를 시작한 지는 19년째였다.
결국 이 남자의 ‘쿨’함은 진정한 ‘쿨’함이 아니다. 그는 그저 ‘쿨’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 탄탄한 몸과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가진 이 남자는 사실 전심전력으로, 자신의 모든 영혼과 육체를 동원해 소설 쓰기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이 힘들거나 고통스럽다고 엄살 부리지 않는다. 그는 다만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달리는 것이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다시 한 번 ‘쿨’한 척한다.
그의 책을 읽는 독자는 안다. 그에게 삶은 끝없이 계속되는 전력질주만큼 힘들다는 것을. 그가 말하는 마라톤의 의의, 즉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나가는 것,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이 실은 소설을 대하는 하루키의 자세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너는 이 정도로 진지하게, 이 정도로 전력을 다해 살아본 적이 있는가” 하는 괴로운 질문이 읽는 이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다. 전원경│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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