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9.1
무라카미 하루키 오슬로 인터뷰 : 고립된 사고의 위험성
Foto: Lars Eivind Bones / Dagbladet
무라카미 하루키가 올 여름은 노르웨이에서 지내고 있네요. 오슬로 '문학의 집' 초청 행사인 '무라카미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7월말 부터 오슬로 왕궁 근처 숙소에서 요코 부인과 매일 아침 조깅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8월 23일 마지막날에는 강연 겸 단편 소설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네요. 티켓은 최초 250석이 1초만에 매진되었고, 추가로 500여석을 확보하여 동영상 중계까지 해야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고 합니다. 오슬로 현지 언론 기사에 따르면, 롤링스톤즈나 메탈리카의 티켓 파워와 맘 먹는 정도라며 크게 보도 하고 있네요. 무라카미상 이번에도 한국 독자에 대해 언급했던데, 이젠 한국에도 좀 오기 바랍니다. ^^
다음은 노르웨이 Dagbladet의 인터넷판에 실린 하루키의 인터뷰 입니다. *구글 번역 후 흐름에 맞게 수정
올 여름, 무라카미씨와 그의 아내가 오슬로에서 4주 휴가를 보냈습니다. 노르웨이 오슬로 왕궁 주변의 좋은 숙소에서 지내며, 무라카미 부부는 그곳에서 여행도 하며, 노르웨이 산지와 서부 해안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의 열성적인 팬들을 위한 엄청난 자리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하루키에 대한 노르웨이 사람들의 관심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실로 엄청납니다. 하루키는 좋은 경험담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씨는 회색 후드티 스웨터에 데님 청반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습니다.
Dagbladet: 무라카미씨. 오슬로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습니까?
하루키: 음, 얼마전 장편소설 IQ84를 마무리 했어요. 그것은 모두 3권으로, 전체 약 1,000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슬로 문학 행사에 초대를 받고, 나는 이것이 좋은 강연회라고 생각을 했고, 곧이어 산속에있는 아름다운 나라, 멋진 풍경. 그리고 다소 외로울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훌륭한 호텔, 그것도 강가 바로 옆에, 그리고 멋진 레스토랑이 있는 이곳은 정말 훌륭합니다.
Dagbladet: 무라카미씨는 미국, 이탈리아, 그리스 등 많은 장소에서 지내왔습니다. 생활은 본래 집이 아니어도 상관 없는 것인가요?
하루키: 아무 데나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나 제가 요구하는 만큼의 좋은 책상과 컴퓨터가 있으면, 그걸로 만족이에요. 그리곤 좋은 음악을 듣습니다. 난 평온하고 안정적인 곳이면 됩니다. 하와이는 좋은 장소로,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Dagbladet: 어떻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되셨습니까?
하루키: 저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오래된 소설을 좋아합니다. 오래될 수록 더 좋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 4번,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를 3번 읽었습니다. 처음 읽은 책은 스탕달의 '적과 흙'으로, 12살때 읽었네요. 전 스스로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29살이 되었을 때, 난 갑자기 그것이 가능하겠다란 것을 확신했습니다. 전 이미 인생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면 인생의 경험이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소설의 깊이는 실제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우울, 행복, 가슴아픈 사랑이 있어야합니다.
Dagbladet: 1979년 야구 경기를 보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셨지요?
하루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4월의 날이었습니다. 행복한 느낌으로 가득 채워졌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느낌이었죠. 저는 스스로 문장을 쓰기 위해 필요한 특별한 자질을 가졌다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너무나 쓰고 싶었고,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가들이 소위 거치는 그 어떤 과정도 없었습니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는, 예상치 못한 그 관심에 자극을 받아 제가 원하는 글을 쓰기시작합니다. 그것은 순수한 기쁨이라고 할 수 있죠.
Dagbladet: 무라카미씨의 작품은 대부분 낯선 설정에서 일종의 탐정 소설이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에의 관심과 영향을 받은 것입니까?
하루키: 나의 초기 주인공의 대부분은 챈들러의 필립 말로와 같은 탐정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수동 방식으로 관찰하며, 관련된 이상한 사건에 노출 있었던 사람들 입니다. 제 작품 "태엽감는 새"(1994)에는 이 패턴이 변경되었습니다. 제 캐릭터는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공격적입니다. 그들은 행동에 더 많은 부분을, 이야기 진행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의 새로운 소설, "1Q84" 역시 그런식으로 만들어집니다.
Dagbladet: 새 소설 1Q84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겠습니까?
하루키: 1Q84는 조지 오웰의 "1984"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의 관점에서 썼습니다. 나는 1984을 고려하고 무슨 일어날 수 있을까에 대해 썼습니다.
Dagbladet: 많은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항상 영원한 듯한 탐험을 하게 됩니다.
하루키: 언제든 그렇지요. 미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고 시도합니다. 외부에서 자신을 볼 수 있게 될때 얻을 수 있는 결실입니다. 작가로서, 나는 아직도 그 어떤 이야기든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이나 여성의 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Dagbladet: 무라카미씨의 작품은 서양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본 문학계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하루키: 작가 생활을 한 30여년 동안 난 그들을 증오하고 그들은 마찬가지로 날 싫었했죠. 나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그들은 내가 쓴 글은 참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전 수업 시간에 조용한 편이었지만 당시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장난꾸러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전통 문화의 문과 같은 존재이죠. 미시마 유키오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같은 클래식한 것은 심심합니다. 저는 완전히 다른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문화 교류에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일본은 매우 고립되어 있어, 그곳에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외국 문화에 심취하며 개성을 유지했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나, 반대로 그것은 모든 것을 훨씬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Dagbladet: 간혹, 섹스와 죽음의 관계에 대한 문제 의식을 보여주시는데요.
하루키: 인간의 잠재 의식에는 많은 문들이 있습니다. 음악, 폭력, 섹스 등이 그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섹스에 대해 쓸 수 있지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당황 스럽기도합니다. 이것은 폭력 묘사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또한 이 모든것은 인간 무의식에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잔인하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Dagbladet: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십니다. 집필 활동과 음악은 연관이 많습니까?
하루키: 물론입니다. 언제나 좋은 리듬이 있어야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지 모르지만 작품으로 이야기가 진화하면, 나는 독자를 지속적으로 자극해야합니다. 그 이야기는 독자에게 자발적인 충격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는 비디오 게임과 유사지만, 그것은 더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소설은 좋은 이야기의 파워를 가지고 텔레비전, 인터넷, 컴퓨터 게임을 앞질러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Foto: Lars Eivind Bones / Dagbladet
구글 번역을 이용하였는데, 하루키의 기존 인터뷰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했던 과격함이 드러난 것 같아 좀 낯설기도 합니다. 번역에는 많은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61세의 할아버지의 자유분방한 패션에 감탄하며 인터뷰 정리를 마칩니다. ^^
오슬로 '문학의 집' 무라카미 하루키 페스티벌 진행 모습
2009.6.12
인터뷰 - '1Q84'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이야기의 '선한 힘'을 믿는다!"
지난 5월 일본에서 출간된 장편 소설 [1Q84]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모두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작가가 최근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1980년대 일본을 무대로 '개인과 시스템의 대립'을 중층적으로 그린 [1Q84]는 일본에서 현재 2권 모두 18쇄에 들어갔으며 'BOOK1'이 123만 부, 'BOOK2'가 100만 부로 나란히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여러 연구서가 잇따라 발간될 정도. 현재 제3부를 집필 중이라고 밝힌 무라카미 작가와 마이니치와의 인터뷰를 정리해 옮겨본다.
1. 처음 책 제목은 [1985]
한국에서도 10억 엔이라는 엄청난 인세를 지불했음에도 일찌감치 10만 부를 돌파해 침체된 출판 시장을 놀라게 했다. 그야말로 한·일 양 국에 있어서 경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내가 생각하기에 내 고정 독자는 장편의 경우 15~20만 명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라면 내가 전하는 이야기가 그런대로 받아들여지리라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50만이나 100만이 되면 어떤 사람이 내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갖게 될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유래된 비밀스러운 제목이 무척 매력적인데 여기에 비화가 있단다. "처음에는 [1985]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필 중에 오웰 작품을 영화화했던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과 얘기를 나누던 중 영국 작가 앤소니 버기스(Anthony Burgess)가 이미 [1985]라는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1Q84]로 정하고 작품을 완성한 후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이번에는 철학자 아사다 아키라(?田彰) 씨가 같은 제목으로 음악 카세트가 붙은 책을 발간했더라. 벌써 교정에 들어간 상태라 아사다 씨에게 알리고 허락을 받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책이 발간된 후 비평을 읽을까? "안 읽는다. 늘 읽지 않았지만 특히 지금은 'BOOK3'를 쓰고 있는 중이라 깨끗한 상태에서 집필에 집중해야 하니까. 1,2권을 완성했을 때에는 다 끝냈다고 생각했다. 바흐(Bach)의 '평균율 크라비아곡집(Das Wohltemperirte Clavier)'을 포맷으로 한 것은 원래부터 2권으로 완결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아무래도 3권을 써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앞으로 어떻게 얘기가 진행될까 궁금해서. 시기적으로는 될수록 빨리 내고 싶은데 지금은 내년 초여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서른 살의 독신인 '아오마메(靑豆)'라는 여성과 '덴고(天吾)'라는 남성 두 명이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가 밝혀지는데 평소에는 스포츠클럽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저쪽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 아오마메라는 캐릭터는 기존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캐릭터다. "예전에는 여성을 잘 그리지 못했는데 점점 자유롭게 그릴 수 있게 됐다. 아오마메도 그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현대에는 여성이 더 샤프하고 대담하며 자신의 감각에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기 쉽다. 남자는 어찌 된 일인지 요즘 도통 기운이 없어서(웃음) 강한 남자를 그리는 게 어렵다. 어쨌든 조금씩이라도 그리는 사람의 폭을 넓혀 이야기에 자극을 주고 싶었다."
2. 개인을 압살하는 시스템, 80년대를 주목하다!
무대가 된 80년대는 대학 분규로 소용돌이쳤던 60~70년대와 냉전이 사라진 90년대에 비해 평온해 보인다. 전공투(全共鬪)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의 계절'을 거친 작가가 왜 이 시기에 주목했을까? "우리들 세대의 정신사가 작품의 전제로 깔려 있다. 카운터 컬쳐(대안문화)와 혁명, 마르크스주의가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 번성했지만 붕괴되고 찢겨졌다. 연합적군(連合赤軍)처럼 보다 첨예하고 폭력적인 방향과 코뮨적인 지향으로. 그리고 연합적군사건으로 혁명운동이 사라진 후에는 환경과 뉴에이지운동으로 이동했다. 연합적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대로 옴진리교(オウム)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옴진리교 자체를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금 세계 속에 '상자 속의 상자'처럼 또 하나의 다른 현실을 담은 옴진리교의 세계를 소설 속에서 그리고 싶었다."
[1Q84]에서는 사람들이 어느새 '1Q84년'의 세계로 온다. 그리고 거기에는 연합적군을 연상시키는 '여명(あけぼの)'과 옴진리교를 연상시키는 '선구(さきがけ)'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우연한 일치지만 옴진리교가 첫 도장을 연 해가 1984년이다. 60년대 후반의 이상주의가 붕괴된 후인 80년대는 경제적으로는 오일쇼크와 거품경제 붕괴기 사이에 낀 시대였고, 정치적으로는 연합적군사건과 옴진리교 사이에 끼인 시대였다. 무척 상징적인 것 같다. 그것에는 60년대 후반에 있던 힘이 마그마처럼 지하에 잠재되어 있다가 마침내 거품이 되어 나온다. 거품은 순식간에 터져나와 결과적으로 전후 체제를 붕괴시켰다. 그런 파탄으로 향하는 주춧돌이 착실히 깔렸던 시기가 80년대이다. 이상주의가 사라진 후에 무엇으로 정신적인 지지대 역할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의 혼돈도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1995년 지하철사린가스사건의 피해자들을 취재해 [언더그라운드(アンダ-グラウンド)] 등의 논픽션도 썼다. 올 해 2월의 예루살렘상 시상식 강연에서는 개인의 혼과 대립하는 '시스템'에 대해 언급했다. "개인과 시스템의 대립과 대치는 내게는 늘 가장 중요한 테마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없어선 안 되는 존재이지만 인간을 많은 면에서 비인간화시킨다. 사린사건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도 옴진리교라는 시스템에 의해 개인이 상처를 받은 케이스다. 동시에 실행범들 역시 옴진리교라는 시스템에 의해 압살당하고 있다. 그러한 이중적인 압살 구조가 가장 무섭다.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는 늘 생각해야만 하는 과제다."
3. 원리주의와 지역주의에 대항할 이야기의 선한 힘!
종교나 혁명사상 모두 '시스템의 악'을 발현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말이다. "지금 사회에서는 비관용성, 예컨대 종교적인 원리주의나 구(舊)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지역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나 식민주의 대 반식민주의처럼 큰 틀에서의 대립이 주를 이뤘는데 점점 지엽적인 문제나 분파적인 것이 문제가 되어 전체를 관통해 보는 것을 어렵게 해 혼돈을 낳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1Q84]에서도 파괴적인 힘을 지닌 '리틀 피플'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가 등장한다. "리틀 피플이 어떤 존재인가, 선인가 악인가는 분명치 않다. 어떤 경우에는 나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깊은 숲속에 사는 리틀 피플은 선악을 초월한 존재지만 그들이 숲에서 나와 인간과 얽히면 경우에 따라 엄청난 마이너스 파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이나 가치관의 대립이 너무 단순하게 상대화된되는 게 아닐까? "내가 정말로 그리고 싶은 것은 이야기가 지닌 선한 힘이다. 옴진리교처럼 폐쇄된 좁은 서클 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얽매는 것은 이야기의 나쁜 힘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한다. 소설가가 하려 하는 일은 좀 더 넓은 의미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제공해 그 안에서 정신적인 흔들림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틀렸냐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의 선한 힘을 믿는다. 내가 긴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것은 이야기의 틀을 키워서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작용을 주고 싶은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원리주의나 지역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리틀 피플'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내가 하는 작업이다."
나의 문학을 이야기 한다.
ㅡ우화성이라는 게 일본 문학 풍토에는 적어요. 그리고 그러한 우화성이 짙은 작품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됩니다. 현재의 것을 모두 재구축하여, 하나의 우화의 세계까지 가져가는 데도 십여 년, 또는 수십 년이 걸릴 겁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역시 아직은 그 영역에 도달하지 않은 '발전 도상의 소설'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ㅡ나는 소설이란 너무 감성에 의지하면 출구가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시 소설이하는 건 입구가 있고 출구가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입구로 들어가면 원가 안티테제
ㅡ내가 미국 소설을 읽고 느끼는 것은, 미국에는 단락이나 기회가 있다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세계 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드러그 컬처가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소설을 쓰기 쉬운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히려 평화로운 것이 제일 그려 내기 어렵습니다.
ㅡ챈들러의 방법론으로서, 'Seek and Find' 라는 테마를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찾아냈을 때는 찾아내려 했던 것이 이미 변질된 상태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미스터리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며, 이 테마는 나의 작품 세계와 기본적으로 일치하고 ,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챈들러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ㅡ챈들러의 소설을 무대로 하여, 도시론이 전개되었고, 그와 나의 도시 소설의 기법은 결국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상(人間像)이란,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양을 쫓는 모험>>은 챈들러의 <<긴 이별>>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ㅡ나의 취미 중 하나는 달리기인데, 그 중에서도 '장거리형(型)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장편과 단편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장편 소설을 써나가고 있을 동안엔 조금씩 내 자신이 변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단편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작했을 때의 자신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단편 소설을 쓸 때에는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제시한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고, 세계를 '잘라 낸다'는 느낌이 들지요.
하지만 아무리 능숙하게 잘라 내도, 결국은 거짓말입니다. 다만 장편 소설에는 꾸임 없고 자연스러운 부분이 많이 생겨나며, 그러한 점이 어색한 것을 메워 준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의 경우는 굉장히 생경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어색한 걸 메워 주지 않아요. 그래서 단편집을 나중에 다시 읽어 보는 건 몹시 괴로운 일입니다.
<젊은이들의 신(神)>
ㅡ나는 앞으로 소설을 쓰는 젊은이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도 필요 없고, 누구와 의논을 하거나 통근할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소설가란 이상적인 직업이므로, 소설가를 지망하는 젊은이가 늘어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혀 새로운 타입의 소설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지금의 뙽봉見?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반대로, 그들이야말로 앞으로 좋은 작품을 남길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위한 모험>
ㅡ나는 일본의 순수 문학은 별로 읽지 않고, 미국의 페이퍼백을 읽으며 문장 수업을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학과와는 달리 고등 학교 때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영어로 된 소설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뭔가 다른 페이스로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그 때문에 언어데 대한 감각이 다른 사람과 약간 달라진 듯합니다.
ㅡ나의 작품에는 '가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내 자신이 가족에 대해 별로 중점을 두지 않으며, 가족뿐만 아니라 단체나 그룹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ㅡ나는 인간 내부에는 이미 청춘이나 폭력 등이 포함되어 있고, 그것은 '공통된 것' 이므로, 굳이 직접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나는 나 나름의 조용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상쾌함'은 그런 데서 기인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것을 가장 단적으로 배웠던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서였을 것입니다.
ㅡ<<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영,미 번역 소설의 문체이며, 보네거트의 문체와 흡사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처음에는 종전의 문체로 써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우선 영어로 조금 써본 후, 그것을 번역했더니 훨씬 마음에 들어, 쉽고 수월하게 써나갈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보네거트뿐만 아니라 브로우티건도 좋아했으며, 나 자신이 그들의 영향을 확실히 받았음을 인정합니다. 내가 챈들러의 소설을 읽고 감탄한 것은, 그 작품이 호소해 오는 리얼리티였습니다. 그는 작가에게 살아가는 데 대한 확고한 자세가 있고, 사물을 파악하는 확실한 시점이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허구를 묘사해도 리얼리티는 반드시 스며 나오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문체'를 모방하기는 쉽지만, '시점'을 모방하기한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ㅡ<<1973년의 핀볼>>을 쓴 후에, 나는 작가로서 하나의 방향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는 언어적인 스타일의 추구였고, 또 하나는 스토리 텔링-'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식으로 나가는' 기술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스토리 텔링 기법을 선택하였는데, 그 결과 <<양을 쫓는 모험>>이 완성되었습니다.
ㅡ<<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나와 쥐가 그들의 70년대를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주제이지만,<<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나만으로 'seek-and-find-story'를 추구하고, 쥐에 대해서는 부재로서 병렬시켰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나와 쥐의 존재와 부재가 표리 관계를 이루며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작품 속의 양(羊)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자신도 알지 못하며, 그것이 이 작품이 성곡한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도 그 개념을 알지 못한 채 써나갔지만, 양의 존재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나는 소토리 텔링의 재미를 이 작품에서 가장 강하게 느꼈습니다.
ㅡ나는 쓰고 싶은 게 없기 때문에 반대로 긴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고 싶은 게 없으므로, 그만큼 구조가 간단해지니까요.
ㅡ나의 경우, 처름부터 테마를 정해 놓고 쓰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테마 비슷한 게 생겨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쓰는 소설에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ㅡ나의 작품에는 '죽음'이 곧잘 묘사되고 있는데, 나 자신의 의식은 원칙적으로는 '리얼 타임'입니다. 그러나 상실된 것에 대한 공감은 매우 강합니다. 또한 나의 내면에는 사룸을 현재 존재하는 것과 이전에 존재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 두 개의 세계로 나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패럴렐 월드 같은 것입니다. 즉 이 현실의 정황은, 나에게 있어서는 가정된 것입니다. 절대적인 정황은 아닙니다. 약간 위상이 다른 곳에, 지금의 정황과 같거나 다른 관계로서, 반대의 정황이 존재하고 있었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나의 경우, 상실된 것에 대한 동경은 결코 회고적인 게 아닙니다. 리얼 타임이에요. 부재의 존재감이나 존재의 부재감 같은 감각이죠.
이 패럴렐 월드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분명히 이 기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1973년의 핀볼>>이나 <<양을 쫓는 모험>>의 경우처럼, 이 소설에서도 존재의 이야기와 부재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ㅡ<<양을 쫓는 모험>> 같은 이야기를 쓸 때에, 존 어빙의 존재가 힘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현재에 있어서도 쓸 수 있다는 테제
ㅡ어빙의 경우는, 강간과 같은 생생한 현실이 묘사되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기호나 신호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별로 생생한 소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느 것이지요. 작가에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까, 기호 같은 게 있으면, 그의 경우.....폭력이나 죽음 자체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롱 인터뷰>
ㅡ나의 소설의 어떤 등장 인물에는 이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리얼리티가 있다고 하는 데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어떤 특징을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다.우선 그 특징부터 시작합니다. 손가락이 없다든지, 쌍둥이라든지,핑크빛 원피스를 입고 있다든지.......그런데 그 특징은, 써내려가고 있는 동안에 저절로 형성되어 가죠.
그 특징 자체가 본질이 되고, 인간이 속성처럼 되어 버리는데, 오늘날의 인간도 이와 유사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ㅡ<<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카포티의 <<마지막 문을 닫아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리라. 바람에게만 마음을 돌리겠다는 대목에서 생각해 낸 것인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나는 언젠가 전국 청소년들의 눈물을 자아낼 만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이 인터뷰는 양을 쫓는 모험 발표 후 크게 호평을 받았을 때의 인텁뷰인데, '청소년들의 눈물을 자아낼 작품이란 바로 상실의 시대를 예고한 것이었다.
ㅡ작가가 번역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소설적인 시야기 넓어지는 동시에, 자가 중독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ㅡ<<상실의 시대>>에는 아무래도 성 묘사가 필요했습니다.그것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방식의 신선한 성 묘사가 필요했던 것이죠. 리얼하고 또 청결한 섹스 묘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ㅡ소설의 경우는 내 방식으 이렇다, 이것이 옳고, 이것이 틀린 것이다, 라는 식으로 밀고 나갈 수 있어요. 무엇을 쓰든 결국은 픽션이니까요. 에세이라는 것은 그 반대여서,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부끄러우니까 말이죠. 소설의 경우는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죠......그래서 소설에 있어서는 주인공의 아이덴티티라고 할까. 그러한 것을 나름대로 굳혀 갑니다. 이를테면 주인공이 지하로 잠입하면 같은 시점에서 어둠을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나타날까, 어떻게 전개될까,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쓰는 겁니다.
ㅡ픽션의 경우, 잇따라 여러 인물이 나오잖아요? 소설을 쓰고 있으면서도 재미있어요. 이러한 사람이 있는가,하고 스스로도 감탄하곤 해요. 소설가들 중에는 처음부터프로그램을 가지고 쓰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내 경우는 프로그램이란 게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폰터니어티가 생겨나지 않아요. 이를테면 단편 소설 코끼리의 소멸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코끼리가 사라진 코끼리 우리는 어떤 상태일까 하고 생각하는 데서, 즉 일종의 풍경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속에 있던 코끼리를 생각하면 뭔가 쓸 수 있게 되죠.
ㅡ지금이 소설을 쓰기에는 좋은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확고한 체제나 스타일, 문체 등이 없기 때문에, 즉 전국시대와도 같아서 힘이 있는 작품을 쓰면,그것이 내일의 주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존 어빙이 <<곰을 놓아 주다>>는 청춘 소설의 걸작이다>
ㅡ내가 번역한 어빙의 <<곰을 놓아 주다>>와 같은 긴 소설을 번역하고 있으면, 텍스트 속에 잠겨 있는일종의 리듬감 같은 것이 전달되어 옵니다. 따라서 이러한 번역 작업에 의해서, 나의 소설에도 변화가생기는 건 당녀한 일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던 중에 쓴 <<세계의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상당히 긴 장편 소설이 된 것도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변화는 당연한 일이고,또 그 때문에 나는 즐겨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 인터뷰 무라카미 하루키-내가 번역하기 시작하는장소>
ㅡ내가 스스로 발견한 좋은 작품이 아니면 나는 번역을 할 수 없습니다. 남이가져온 것을 번역하기란 매우 어려운데, 그 이류는 텍스트에는 흐름이 있으므로 문장의 호흡을 파악하여 리듬을 타지 않으며느 작업이 잘 진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나 자신과 문장의 흐름이 합치되지 않을 경우, 번역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머릿속이 영어로 되어 있는 사람-에 대해, 번역은 '영어적인 생각과 글의 구조를 일본어적인 느낌이나 일본어적인 그의 구조로 옮기는 일' 이므로, 사실상 '머리가 일본어적 구조로 되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즉, 나의 '머리 구조가 선천적으로 일본어적'이므로 번역이 가능하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김난주 인터뷰 : 하루키 자유로운 삶과 모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국내에 줄곧 소개해온 번역문학가 김난주씨가 하루키를 9월 4일 도쿄 아오야마 자택에서 만났다.
88년부터 8여 년간 유럽. 미국등지를 떠돌다 막 돌아온
하루키는 아직 짐도 안 푼 상태였다.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된 이날 대담에서 하루키는 자신의
문학관과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 유럽에서 3년 동안 생활한 데 이어 미국에서 5년이나 생활하셨는데
아주 귀국하신건가요?
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가 있었어요.
비자의 유효 기간이 다 끝나 일단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한동안은 일본에 있을 테지만, 또 언제 외국으로 나갈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김: 해외에서 작품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글을 통해 대충 알고 있읍니다만,
특별한이유가 있다면 말씀을 듣고 싶군요.
하: 집중적으로 일을 하기에는 외국에 있는 것이 편합니다.
김: 일본에 있으면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다는 것으로 들리는데요.
하: 역시, 인간관계가 주요인입니다.
일본에 있으면 출판관계자들이라든가,
문학관계자들이라든가, 어느정도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난,
별로 사람들과 만나지 않는 타입이라,그 점이 가장 힘듭니다.
김: <먼 북소리>를 바로 얼마 전에 번역했는데,
그 여행기를 번역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이전에 미국에서는 작품을
두 편 쓰셨더군요?
하: 그렇습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태엽감은 새 연대기>를 거의 4년 반에서
5년에 걸쳐 썼습니다.
김: 유럽에 계실 때는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쓰셨는데요.
외국에서 일본어로 작품을 쓰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일본에 와서 잡지를 들춰보다가,
하루키 씨가 고향인 아시야에서 자작 낭독회를 갖는다는 기사를
보고는 미국 생활에서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컨대
지금까지 하루키 씨가 견지해 온 태도로서는
좀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과도 연관시켜서요. 자작 낭독회란
많은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일이니까요.
하: 일본에 있으면 자기 혼자, 즉 개인이 되기가 힘들어요.
사회의 힘이 막강하니까요.
미국에서 생활을 해보니, 사람이 개인이라는 점이 전제 조건이라고 할까,
당연한 일이라는 관념이 있더군요.
개인이라는 점에서 출발하여 그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시점이었습니다.
몇 년이나 생활하면서 그런 사고 방식이 옳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본에 있으면, 어떤 환경이라도 자신은 개인으로 있고 싶다는 생각
을 많이 하게 되는데,
미국에서는 반대 방향의 발상을 할 수 있었어요.
개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밖을 향하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듯 합니다.
김: 고베 지진 당시, 하루키 씨는 지금쯤 어떤 기분으로
있을까 하고 걱정스러웠는데요, 아시야가 고향이죠?
하: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어요.
다만 난 그때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어서 돌아올 수도 없었고,
아버님과 어머님도 아시야에 계시고, 하지만 부모님은 다행히
무사하셨고, 집은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요.
그래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고 줄곧 생각했습니다.
거창한 일은 할 수 없겠지만, 나는 소설가이므로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하고요.
김: 바로 그 점이 궁금한 부분인데요, 매스컴이나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하루키씨가 자작 낭독회라는 이례적인 행사를 갖는다는 데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잇지 않았나 하고요.
하: 나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뭐랄까, 자신을 좀 더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 어디까지 할 수 있을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사회와 관련을 맺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김: 그것은 미국 체험에서 받은 영향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 물론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미국이란 사회의 존재 양식이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다는. 그러나 연령적인 이유도 있어요.
이미 마흔 여섯 살이니 그리 젊지는 않죠. 젊었을 때와는
다른 삶의 양식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느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나는 68년, 69년의 학생 분쟁 시대에
18,9세란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학생 분쟁이 중심적인 논제였어요.
하지만 그 당시의 좌절감이나, 그 운동이 실패하고 만데 대한,
혹은 정치에 대한 불신감 같은 것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로부터 25년 세월이 흘렀는데, 우리들이 그때 체험하고 느낀 것을,
지금 이 나이에 다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지 않을까,,
살릴 수 잇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김: 그 점 우리 한국의 학생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인데요.
한국은 80년대란 정치의 계절, 소용돌이를 지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정치상황이 급변하여 일반적으로 그 시대에 대한 관심의 밀도가 엷어졌습니다.
그래도 학생층에서는 한 쟁점을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앞 시대에 학생 운동을 경험한 하루키 씨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였는가 알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하: 결국 우리들이 한 일은, 전후의 이상주의라는 것이 있었어요.
평화 헌법이 제정되어, 전쟁을 포기하고,
하지만 그 정신이 점점 무너졌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지켜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안보, 반전,
즉 베트남 전쟁 반대라는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믿었고, 우리가 운동을 하면 세상이 화평해지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죠.
국가라는 막강한 권력에 의하여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김: 그러나 작품에 한해서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은 상당히 냉소적이며
관망하는 입장에서 학생 운동을 얘기하고 있는 듯한데요.
예를 들면 와타나베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의 하루키 씨는 어땠을까 하고.
하: 소설은 픽션이니까 나 자신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소설은 주인공의 입장을 알기 쉽게 써야 할 필요가 있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않아요.
나 자신의 감정은 학생 운동과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개인주의자라서 누군가와 함께 손을 맞잡고
하는 집단적인 행위는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혼자 무언가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할수 있는 일이란 그리 흔치 않지요.
그런 자신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물론 나 자신 데모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경찰과 사투를 벌인 적도 있고 최루탄 가스를 마신 일도 있지만,
그런 일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 지금 한국 문단은 80년대에 학생 운동을 경험한 젊은 작가들이
거의 장악 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하루키 씨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듯 합니다.
90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정치 상황은 8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직도 혼란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요.
그런 때에 하루키 씨가 한국에 소개되었고, 영향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하: 보스턴에서 하버드 대학에 있는 한국의 문학평론가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젊은 작가와 그 윗세대의 작가들 사이가 단층이 크고,
나의 작품이 젊은 작가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하더군요.
김: 현실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윗세대 작가들은 지금의 젊은 작가들을,
한국의 전통적인 소설 양식을 파괴한 주범이라 여기고,
그런 새로운 시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의미에서건 일반 독자들을 비롯하여 젊은 세대 작가들까지
하루키 씨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 일본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예요. 나의 소설에 대한 비판 역시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학생 운동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그다지 얘기하지
않는 것은 환멸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에 대해서 정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죠.
자신들이 정말 옳았던가 하는 의문과 환멸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겠죠.
김: 그 환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것이었나요?
학생 운동 자체인지 아니면 그것을 포함하여
삶이나 인간 전체에 대해서 인지.
하: 우리들이 이상으로 생각했던 것은 옳았다고 생각 합니다.
단 내가 가장 환멸을 느낀 것은 역시 조직입니다.
김: 그렇다면 개인과 조직이란 서로 상반되는 개념과,
조직으로 비롯되는 억압에 대한 환멸이란 뜻인가요?
하: 우치 게바란 것이 있죠. 당파간에 서로 주도권을 쟁탈하려
파벌 싸움을 벌이는,그 싸움이 치열해져 연합 적군이 되었는데,
그런 종류의 환멸, 그리고 한 그룹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히에라르키 (계급. 계층을 이르는 독일어)가 출현합니다.
난 그런 것을 원하지는 않았어요.
말솜씨가 좋은 특정 인물이 조직 안에서힘을 키워가는,
그런 것을 난 좋아하지 않았어요.
김: 한국의 학생 운동이 변질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하: 한국은 68년과 69년 당시 어땠나요?
김: 한국 학생 운동의 전성기가면 역시 80년대라고 할 수 있죠.
60년대는 반일적인 성격이 강했고, 70년대에는 반독재,
그리고 80년대로 넘어갑니다.
하: 광주 사건은 언제였습니까?
김: 80년이죠.
하: 한 10년 정도 차이가 있군요.
김: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정치적인 흐름과 거의 병행하여
문학의 흐름도 형성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80년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성기로 90년대 ?나타난 작품들은
작품으로서 설립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이념이나 고발적인 요소를 품고 있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었죠.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80년대의 문학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고,
대중은 좀 더 신선한 것, 자극적인 새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김: 하루키 씨의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시대적 배경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87년 <노르웨이의 숲>이 발표된 지 얼마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도번역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 당시의 번역본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80년대 말을 경계로 하여 표층적으로는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의 작가들이 새로운 흐름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일반 대중들의 관심은 좀더 다양하고 신선하고 첨단적인
방향으로 재빨리 방향을 틀었죠.
마침 그런 때에 하루키 씨의 문학이 국내에 들어와 자리잡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 결국 일본의 경우, 패전 후에는 마르크시즘과 반마르크시즘이라는
이념적인 두 기둥으로 성립되어 있었어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마르크시즘 쪽이었죠. 오에 겐자부로 씨를
비롯하여. 그러나 7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며,
특히 소련의 붕괴를 기점으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일본의 지식인들은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모두들 무엇에 기대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죠.
김: 지금의 한국도 거의 비슷한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식인들을 비롯하여 윗 세대들은
아직 기존의 관념들에 사로잡혀 있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들은 빠른 속도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중들의 속도를 뒤따라가는 형편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루키 씨의 작품들은 하나의
모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최근에 한 여학생이 인생을 비관하여 자살을 하였는데,
그녀는 하루키 씨의 소설에 심취해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 안타까운 일이군요. 하지만 이 점만은 알아 주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죽어 갔어요.
우리들 세대는 70년대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고,
그래서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나는 자살을 장려할 마음도 없고, 미화시킬 마음은 더더욱 없지만,
있었던 사실과,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서
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 그 얘기와 관련하여, 지금 한국에서는 <노르웨이의 숲>이
대중적으로는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데, 여자주인공들의 죽음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그 소설에 대해서 여성 취향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작품 속에서 지향하는 여성상이 혹시 있습니까?
그리고 질문과는 상관없이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한국에 하루키 씨의 작품이 어느 정도 번역되어 있는지 알고 있나요?
87년 이후 작품에 한해서는 저작권법 계약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알고
계실 테지만, 그 이전의 작품까지도 거의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 저작권법에 가입한 것이 87년이어서 그 이전 작품에 대해서는
저작권 계약 없이도 출판 할 수 있거든요.
하: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나의 작품을 읽었다는 한국인 학생들을
몇몇 만났어요.
하지만 지금은 절차를 밟아 저작권 계약을 하고 있고, 이전 작품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내 소설의 본류와는
좀 다른 위치에 있는 작품입니다. <국경의남쪽, 태양의 서쪽>과 더불어
나는 이 두 작품을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비리얼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르웨이의 숲>을 나의 대표작인 듯 얘기하는 것은 좀 뭣하군요.
여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단 어차피 쓰는 거라면 아름답게 쓰고 싶어요.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수긍할 수 있고, 호감을 느낄 수 있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여성을 그리고 싶다는 정도입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까 한 얘기에 이어,
나는 70년을 지나고 부터는 정신적인 기둥없이 살아왔습니다.
마르크시즘이나 학생 운동에 대한 환멸로 인하여 그 기둥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같은 시대를 나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셈입니다.
그런 부분이 내 소설을 결정짓는 큰 요소일 것입니다.
최근에는, 앞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태엽감는 새 연대기>에서는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나의 아버지는 제2차세
계대전 당시 중국에서 전쟁을 치른 세대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 시대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만주 얘기라든가 시베리아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요즘에는 단적으로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그렇다면 역사를 얘기하는 앙가주망, 예를 들어 오에 겐자부로 씨
같은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 나는 60년대에는 오에 씨의 작품을 좋아하였고 많이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전혀 읽지 않고 있어요.
그 이유는 나는 오에 씨를 훌륭한 작가로 존경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것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데요.
하: 소설을 쓰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모노가타리(이야기성:스토리텔링에 해당하는 일본말)입니다.
모노가타리를 씀으로 하여 자신속의 무엇을 발견 할 수 있는가,
오에씨가 쓰는 모노가타리에 대해서 나는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오에씨를 평가 하느냐 아니냐 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에 씨가 쓰는 모노가타리는 내가 쓰고자 하는 모노가타리와 다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쓰고자 하는 모노가타리는 나자신이 납득할 수 있고,
나 자신을 쓰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한 세대에는 그 세대를 위한 모노가타리와 모노가타리를 쓴 작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오에 씨는 나보다 윗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김: 한국에서는 하루키 씨의 작품에 대해서 국적이 없다든가
아이덴티티가 모호하다는 등의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 글쎄요. 국적이 없다기보다는, 나는 추상성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추상적인 것을 그리려는데, 현실에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상성이 개입되면,
추상성이 상실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능한 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소설의 세계를 구성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점을 꼬집어 무국적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무국적적인것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죠.
다만 나는 일종의 추상성을 획득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김: 그 추상성이란 가공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까?
하: 그렇게 말해도 무방합니다. 요컨대 여기에 한 상황이 있다고 하죠.
거기에 한 사람이 들어가 그 상황과 관계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일본인인 나라도 상관없고, 한국인 김씨라도
상관없고, 미국인이라도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이 상황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며 그런 관계속에서 상황이나
인간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쓰고 싶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며 상황과의 관련에 의한 변화였습니다.
미국인 독자로부터 편지가 오곤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그 작품이 일본인이 쓴 일본 소설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자기들 이야기를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썼더군요.
김: 그러나 추상성을 지향하는 경향 역시 그 나름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요.
특히 최근에 발표된 <태엽감는 새 연대기>가 처음 잡지에 연재되었을 때
일인데요, 역사라든가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 놀랐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테마가 오래도록
하루키 씨 효【?때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는데요
.
하: 그렇습니다.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옛날 작품에는 로큰롤이라든가
고유 명사가 빈번하게 등장했는데, 그런 요소도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고,
특히 외국 생활을 하게 되고부터는,일본이란 무엇인가,
일본인이란 무엇이냐 하는 방향으로 관심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앞으로도 바뀌어 갈 것이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의 문화가 굉장한 속도로 상호교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가조에 시게라는 일본 작가는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 나라의 문학을 해야 한다는 문학적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넘나드는 문학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런 문화적 상황 속에서 각자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한 가지는 지역성 안에서
구멍을 파내려가듯 문제를 천착해 나가는 것이고,
또 한 가지 길은 바깥을 향하여 자신을 풀어놓는 것이죠.
어느 쪽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처음에 나는,
바깥을 향하여 열린 문화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김: 일본 작가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고들 흔히 알고 있는데,
아까 오에 씨의 소설을 고등학교 시절에 꽤 읽었다는 말씀을 하여
뜻밖이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소설 양식인 사소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 오에 씨의 소설은 비교적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외에는 별로 읽은 게 없군요. 작가로서는 아베 고보를 좋아합니다.
사소설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큼 싫어합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분야의 소설이에요.
김: 그런 데 반해 외국 문학은 탐닉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번역 작업도 많이 하였고,
스콧 피츠제럴드나 레이몬드 카버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은 것으로
하루키 씨 자신도 얘기하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하: 누구든 한 사람쯤 히어로를 갖고 있지요.가령 에릭 클랩턴처럼
기타를 잘 치고 싶다든가, 누구누구처럼 소설을 쓰고 싶다든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목표로 하여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어로 된 문장을 읽고 번역하면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일본인 중에는 나의 문학적 스승이 없습니다.
번역이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당신도 번역을 하고 있으니
잘 알겠지만 번역을 하다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의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65편을 10년에 걸쳐 전부 번역했는데,
참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김: 잠시 여담인데요. 히루키 씨의 작품을 읽은 한국의 여성 독자들은
하루키 씨가 연애쟁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한데,
어떻습니까?
하: 무슨 그런 말씀을, 전혀 그렇지 않아요. 먼 옛날 일입니다.
연애를 해 본 것이. 결혼한지 벌서 25년이에요.
잊은 지 오랩니다. 요즘은 녹이 슬어서 틀렸어요.
나는 여자 앞에 서면 긴장을 해서 말도 제대로 못합니다.
김: 그리고 또 한 가지 실례된 질문입니다만, 아이가 없지요?
문예중앙 편집자가, 하루키 씨에게 아이가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없다고 했더니 행복하겠다고 하면서 그러니까
마음대로 여행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하: 맞는 말입니다. 원래 나나 내 아내는 좀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고,또 하나, 70년대의 환멸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걱합한 장소인가하는 데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나도 그렇고 내 아내 역시 부모님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런 경우 지신의 아이를 낳는 일에 자신감을 갖기가 힘들죠.
뭐 그런 저런 이유들로 아이를 낳지 않고 있습니다.
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 아닌다른 세계에
대한 정신적인 욕구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 세계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는 생가과
관련시켜 가령 적합한 장소가 있을 수 있을까요?
하: 있을 수 있을까요? 나도 알고 싶군요.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있다고 말입니다. 이상주의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많이 현실적이 되었습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적, 그러니까 50년대, 일본은 상당히 가난하였지만,
어떤 유의 이상주의가 있었습니다.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롭게 살튼÷渼?
나는 그런 공기를 마시며 자랐어요.
역시 그 시절이 바람직한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60년대에 들어서는 고도성장으로 매우 풍요로운 사회로
변모하였지만, 그 반면 그 이상주의는 점점 희박해졌습니다.
그건
내게는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어요.
김: 그렇다면 그 어린 시절을 이상향으로 그리워한다는 뜻인가요?
하: 그리워 한다기보다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김: 그 점과 관련하여 한국에서는 하루키 씨의 작품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는시각이 있는데.
하: 음, 내가 내 소설 안에서 가장 쓰고 싶은 것은 모럴입니다.
모럴을 유지하기가 몹시 곤란한 세계입니다.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모럴을 지니고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사실은 내가 가장 쓰고 싶은 테마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그때 나는 무슨 일을 해야만 했던가,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되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알고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일을 계속 쓰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점차 조금씩 이런 게 아니었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달라질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되고
인간은 모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상당히 성실한 인간 같아 보이는데(하하하),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전혀 다른 모노가타리로 그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노르웨이의 숲>만 해도 그 소설을 어떤 의미에서는 모럴한
소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데......,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섹슈얼한 장면이 부도덕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중의 인물들이 모럴리스틱하게 살려고 했기에 그런 식으로밖에 살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김: 작중의 등장 인물들이 고도 자본주의 사회를 대변하는 듯한 사람의
양식을 취하고 있고,
서구 사회의 전문가적인 태도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인물들이 현대와 같은 사회를 극복하기에
적합한 인간형이라고 봅니까?
하: 결국 나는 학생 운동이라는 집단 행위에 대한 불신감이 컸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내내 회사에는 취직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 일을 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 삶을 견지한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보통 대학을 졸업하면 회사에 취직하여 샐러리 맨으로
그 시스템에 속해 살아갑니다.
나는 그렇지 않았고, 혼자 힘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
래서 몇 년이나 가게를 하다가, 그 다음은 소설가가 되어 개인으로 자립해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고독한 생활을 하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고독하게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서로 도움을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강렬합니다.
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은 것을 거부하며 자칫 고립되어 전혀
인간적인 교류가 없는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이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론 고독하고 자립한 개인이지만, 그런 가운데서 어떤 유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인 관계를 끊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없는 고립된 상태에서 상대방과의 연관을 찾아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경우입니다
하: 김난주 씨는 신문사에 속해 있습니까?
김: 아니오, 저는 아무데도 속해 있지 않고, 번역가로서 혼자 일하고 있습니다.
하: 한국에서는 프리랜서라면 어떻습니까?
일본은 회사에 속해 있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은데......,
김: 물론 남자들 사회에서는 일본과 거의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자라서,어느 정도는 그런 결속에서 벗어나 일할 수 있어요.
사람이면 누구나가 자기가 아닌 타인과의 대화를 원하죠.
그런 반면 그런 바람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상처를 입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는데, 하루키 씨의 주인공들이 그런 인간의 면모를 절묘하게
대변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는 면도 없지 않은 것 같은데요.
하: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일종의 팬터지입니다.
한 인간이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혼자살아가면서, 동시에 모럴을 지니고
타인과의 대화를 원하는 그 자체가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으로 줄곧 살아왔어요.
그리고 나는 그런 팬터지나 모노가타리가 결국은 현실을 움직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팬터지나 모노가타리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일종의 샘플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고 할 때 샘플이 없으면,
아무런 이미지도 품을 수기 없지요.
그러나 가령 팬터지든 무엇이든 형태를 이루고 여기에 존재할 때,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피부로 느끼며 확인할 수가 있지요.
그런 것을 제공하는 것이 모노가타리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나의 소설은,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도회지에서 생활하는 고독한 사람들, 개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샘플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 개인적으로 친구 중에 하루키 씨의 팬이 있는데, 작품을 읽고 나면 술을
마시고 싶어지거나 섹스를 하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그건 왜일까요?
하: 내가 그런 식으로 쓰고 있으니까요.
나는 피지컬하게 읽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육체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것이 소설이 지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섹슈얼한 장면이 전개될 때는 읽는이들이 섹스해 주기를 바라고요.
역시 맥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맥주가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쓰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들의 축척으로 커다란 일이 가능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 일화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일본의 한 여성 독자한테서 편지가
온 일이 있습니다.
18,9세의 젊은 여성인데,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어요.
그는 학교의 기숙사에 있고,그녀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더군요.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을 다 읽고 나니 새벽 3시쯤인데,
그를 무척 만나고 싶더랍니다. 만나서 섹스를 하고 싶어진 거죠.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기숙사의 담을 넘어 2층에 있는 그의 방에 기어올라가서는
섹스를 하였다는 편지였어요. 나는 그 편지를 읽고 상당히 기뻤습니다.
내가 쓴 글이 그 정도로까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죠.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좀 더 깊은,
좀더 다른 부분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도 생각할
수가 있죠.
김: 그렇다면 읽는 사람들의 기분이라든가 감상까지도 염두에 두면서
소설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어떤 독자들을 상정하고 소설을 씁니까?
하: 나는 밖을 나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타입이 아니라서,
어떤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막연히 독자들을 상상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미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확하게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살아 있는 보통 사람들, 한 달 한 달 일하여 월급을 받고,
그리 핸섬하지도 않고, 그리 미인도 아닌, 부자도 아니고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읽어 주었으면 합니다.
김: 대개의 소설들이 겨울에 쓰기 시작하여 봄에 탈고하였는데,
그런 데서 어떤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창작 활동을 신체적으로 춤을 추는 듯한 리듬감으로 즐기며 하는지요?
하: 무언가를 쓴다는 것 자체는 상당히 힘들고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 다음은 즐거워집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여 매일 뛰고 있는데, 일년에 몇 번은
풀 마라톤을 뛰기도 합니다. 장거리 수영도 좋아하는데,
그런 장거리 마라톤이나 수영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분이 고조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가 있어요.
나는 춤은 잘 모르니까, 춤보다는 운동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편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성격적으로 장편이 맞아요.
장편 소설을 쓰는 데는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거든요.
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하루키 씨의 <내 작품을 말한다>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 작가들이 소설을 쓰기 위해 운동을 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작가들이 있겠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 몸을
단련한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어요.
하: 놀랍군요. 하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굉장한 재능이 있다거나 훌륭한
문장을 갖고 있다거나 머리가 상당히 좋다든가 하는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나는 어느 면에서나 자신이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어찌되었든 자신의 몸을 단련하여 건강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소설을 쓰는데 집중력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쓰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집중하여 쓰는 집중력을 습득해야 된다고
생각 한 것이죠.
그래서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내년에는 철인 경기에 나가려고 합니다.
김: 요즘도 운동을 계속합니까?
하: 매일 뛰고 있어요. 그리고 한 주에 두세 번 수영을 합니다.
김: 담배는 어떻습니까?
하: 담배는 전혀, 끊었습니다. 술은 조금씩 마시지만 역시 달리기를 하여
체력을 단련하는 작가가 나 외에도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건강하기만 했더라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작가들이 있죠. 얼마 전에 죽은 나카가미 겐지 같은.
나는 나카가미 겐지는 상당히 훌륭하고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역시 말년에는 병을 앓아 작품생활도 할 수 없었고, 결국은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요. 정말 애석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건강은 중요한 요건입니다.
나는 일본작가 중에서는 나카가미 겐지와 무라카미 류 씨를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인 나카가미 씨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한국 소설을 읽은적이 있습니까?
하: 유감스럽게도 없군요. 나는 옛날에는 책을 꽤나 읽었는데, 스스로 소설을
쓰게된 이후로는 별로 읽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책만 많이 읽고 운동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체육시간에는 어디에 숨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지금은 정반대이군요. 미국에 있으면서 대학생들, 특히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재미있는 현상은 젊은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무 살 정도의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들이 나의 책을 읽고 얘기해 주는 감상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동아시아인들 사이의 문화적 교류는 훨씬 활발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한국인 남학생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대를 가야
된다고 고민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강의를 하며 절감한 것은 미국이나 유럽의 독자들과
동남아시아의 독자들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고 방식은 물론이고, 동남 아시아의학생들과는 어떤 단계를 밟아 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글쎄 이런 식으로 간단히 얘기해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특히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의 문학을 번역하면서 감정을
교류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동아시아 시장은 앞으로 더욱 크게 확대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김: 한 때 한국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작품을 모방하여 어떤 신인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여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요.
하: 하지만 작가라는 것은 모두가 모방을 하게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나 역시 영향을 받아 쓴 몇몇 작품을 지금 새삼스레 읽어보면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만의 것이 조금씩 조금씩 나오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모방했다고 그렇게 비난은하지 말아 주세요.
김: 저 역시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는 한국 문학을 했는데, 당연히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흉내내보기도 하고,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를 그려보기도
했어요. 누구나가 그렇죠.
카뮈를 좋아하여 그의 문장으로 문장 연습을 한다든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존경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저 개인적으로는 그 작가의
앞으로의 여정을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는데,
당시 그는 무참하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 안됐군요.
김: 그리고 가장 먼저 하루키 씨의 작품을 읽는 독자가 부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작품에 대한 감상을 얘기해 주기도 하고, 시정을 요구하기도 하는 영향력
있는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하: 제 작품을 가장 먼저, 그리고 꼼꼼하게 읽어주고 솔직하게 평해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내를 존중합니다.
김: 존경스럽군요.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작품이 어느 정도 팔리고
있는지,독자는 어느 정도 있는지 정보가 들어옵니까?
하: 그런 일은 별로 없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읽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
정확한숫자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약을 한 작품에 한해서는 앞으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겠지요.
김: 상당히 많은 독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 단편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작품들이 번역되었을 정도이니까요.
저도 아주 가끔밖에 외출을 하지 않는데, 전철 안에서 읽고 있는 사람을
본 적도 있고, 물론 제가 하루키 씨의 작품을 번역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밖으로 나갔다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서너 번 이상 듣고 돌아옵니다.
하: 그런가요.
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데요. 말씀을 많이 하셔서인지......,
하: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피곤이 덜 풀렸어요.
김: 그밖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이만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긴 시간, 여러 가지 말씀 고마웠습니다.
Laura Miller:
태엽 감는 새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으셨죠 ?
Haruki:
내가 처음 그 작품을 쓰려고 했을 때 가졌던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한 것 이었어요. 어쩌면 그건 아이디어라고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30세의 남자가 주방에서 스파케티를 만들고 있고, 마침 전화벨이 울리고 있는 장면이 처음 시작입니다. 그저 그 뿐이에요. 아주 간단하죠. 그렇지만 나는 거기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았단 말입니다.
Laura Miller:
당신은 소설에서 나오는 갖가지 사건이나 장면에서 당신도 마치 그 소설을 읽고 쫒아가고 있는 듯이 놀라곤 하나요? 아니면 그런 사건이나 장면이 당신이 구상하고 있는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지를 인식하면서 소설을 진행시켜 나갑니까?
Haruki:
나는 사실 글쓰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 잘 모르고 있으며, 궁금해 하기 때문이죠. 독자들이 소설을 읽으며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하는 마음으로 흥미진진하게 읽듯이 나도 그렇게 씁니다. 재미난 일이죠.
Laura Miller:
당신은 이 소설 (태엽감는 새)에서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묘사하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 소설에는 없던 것인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Haruki:
사실 이전에도 전쟁에 관한 것을 쓰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죠. 작가마다 글을 쓰는 나름의 기법이 있는데 말하자면 제 것은 전쟁에 관한 글을 쓰는 데 적당한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나름대로 그런 주제를 다루려고 노력을 했는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내 마음에는 서랍 상자가 무수히 많이 있는데 상자 마다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필요할 때 마다 필요한 기억과 이미지를 꺼내다 쓰곤 합니다. 전쟁도 나에게는 정말 큰 하나의 서랍 상자이지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 서랍 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내 아버지의 얘기이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나의 아버지는 전쟁을 실제로 겪었던 세대이고 나에게 전쟁에 대한 많은 것을 얘기해 주지는 않으셨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되었어요.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아버지의 세대에 말입니다. 그건 일종의 전쟁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면서 유산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내가 쓴 내용은 완전히 소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든 것입니다.
Laura Miller:
이 책을 집필하실 때 취재를 많이 하셨습니까?
Haruki:
조금요, 조금 했습니다. 내가 그 책을 쓸 당시 나는 Princeton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큰 도서관이 있었죠. 그 당시에는 무슨 일을 해도 될만큼 자유로왔으므로 매일 도서관에 가곤 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 주로 역사책이었습니다. 그 도서관은 훌륭해서 만주와 몽고의 경계 지방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한 것도 많이 있었어요. 대개의 사실이 나에게는 새로운 것들이었죠. 나는 실로 극도의 어리석음과 잔혹함과 피비린내남에 대해 매우 놀랐습니다. 내가 소설을 끝내고 만주와 몽고를 방문했습니다. 이건 좀 이상한 얘기죠. 대개는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방문하니까요. 하지만 나는 반대였습니다. 나에게는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나는 먼저 그곳을 방문함으로써 나의 상상력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는 어떻게 쓰여졌는가?
――<해변의 카프카>라는 제목은 어떻게 결정됐습니까?
언제 생각났는지. 잘 기억하지 않는데 쓰기 시작한지 한참 지나서였던 것 같아요. 카프카는 물론 제가 좋아하는 작가이고 그 음감도 좋았어요.<해변의 카프카>란, 뭔가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게 있지요? 무슨 바람에 문득 생각나서, 머리 속에서 한참 그 울림을 굴려 봤다가 "자, 이걸로 하자" 생각했어요. 그 뒤로부터는 다른 제목이라는 게 생각나지 않았지요.
――영어로는 Kafka on the shore 인데, 처음엔 영어로 생각났다는 건 아닌가요?
<아인슈타인 온 더 비치>라는 유명한 연극도 있지만, 그런 것을 특별히 관련시켜서 생각하진 않았네요. 그리고 저의 경우는 on the beach라기보다 on the shore라는 이미지니까, 그건 좀 감각이 다르겠지요. 바다와 육지가 접하는 곳, 이랄까요?
――어떤 페이스로 쓰셨습니까?
집필의 일과라는 것이 저의 경우, 아주 엄밀하게 정해져 있어요. 아침에 쓴다. 밤에는 안 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 아침은 아무리 늦더라도 4시에는 일어나요. 더 일찍 일어나는 날도 종종 있어요. 3시라든가. 자명종을 맞혀 두지 않아도, 몸이 스스로 확 깨지는 거에요.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자 곧 책상을 향해 쓰기 시작해요.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4시간이나 5시간 계속 써요. 완성되는 것은 400자 원고지로 말하면 딱 10장. 그보다 많이 쓰지도 않고 적게 쓰지도 않는다. 그것도 게임의 룰 같은 거에요. 룰이라는 것은 그런대로 중요한 거에요.
그리고는 운동을 하고, 오후엔 대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번역을 하거나 해요. 짧은 낮잠을 자기도 하고. 밤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을 듣거나 비디오를 보고 9시쯤에는 잠들지요. 나이트 라이프 따위 것은 통 없어요.
그런 작업을 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그 반복 리듬 속에 제가 쑥 들어가는 것이 느껴져요. 들어가서 일을 하고, 그리고 나온다.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 대해, 기계적인 반복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반복성에는 확실히 주술적인 것이 있습니다. 정글 안에서 들려 오는 드럼의 울림처럼 말이지요. 거기에 자기를 자연스럽게 동화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갈 수 있고 나오고 싶을 때 나올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 놓는다. 단, 바른 반복을 하기 위해서는 꽤 피지컬한 기조 체력이 필요해요. 깊게 집중하면서, 게다가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거니까요. 보통 사람... 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훈련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물론 세상에는 선천적으로 그런 자재한 능력을 지닌 사람도 있겠지만요.
그런 식으로 하루에 10장 쓰고, 한 달에 300장, 반년에 1800장. 그걸로 완성이에요. 거기서부터 분량을 줄이면서 고쳐 썼다 결국 1600장 정도로 됐습니다.
――쓰기 시작하신 건 언제쯤이었어요?
좀 재미있는 일인데, 막 야구 시즌의 개막과 동시에 쓰기 시작해서, 야쿠르토가 우승을 거드는 무렵에 제1고를 완성시켰어요. 이 점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똑같더라고요. 그 때도 개막 날에 쓰기 시작해서, 우승이 결정되는 무렵에 완성시켰다. 히로오카 감독 아래 첫 우승을 했을 때 말이지요. 무슨 인연 같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반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써 나간다는 것은 저에게는 정신적으로도 힘드는 일이었어요. 계속 숨이 막히게 집중해서 쓰는 거니까요. 저는 20년째 날마다 런닝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런 축적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체력은 중요하지요, 정말. 문장을 쓰기에는 하반신이 중요한 거에요. 메타포 깉은 것이 아니고 그 글자대로 다리와 허리가 단단하지 못하면 좋은 문장을 쓸 수는 없는 법이에요.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천재는 예외이고, 저와 같은 정도의 재주를 가진 인간에 대해서 말하면 말이지만.
――아침 4시부터 9시란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요?
아침을 좋아하거든요. 옛날에 바 같은 걸 경영하고 있어서, 그때는 물론 야행성의 인간이었는데. 새벽에 자고 점심 때쯤에 일어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가게를 그만두었을 때, "이제부터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날이 새기와 동시에 일어나려고. 인생의 리셋 같은 걸로 삼아서요. 그리고 또 하나는, 어둠 속에서 일을 시작하고, 일을 하는 새 점점 날이 밝아진다는 것이 느낌으로서 좋다는 것. 뭔가 제가 쓰고 싶은 작품세계를 바로 상징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있어서요.
가끔씩 일을 시작할 때쯤에 장난삼아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보곤 해요. 아침 4시 쯤에 말이지요. 물론 연락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건데, 그러면 편집자들은 아직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거에요. 참 신기하지요?
――집필중엔 어떤 음악을 들으십니까? 식사는요?
아침은 바로크 음악을 들으면서 일을 하네요. 작은 소리로 바로크 음악을 틀어 놓고 말이지요. 대개는 실내악이나 기악. 하지만 글렌 굴드는 안 돼요. 그것이 들려 오면 그만 그 소리에 빠져 버리거든요. 일을 하면서 듣기에는 좀더 온화하고 중립적인 소리가 좋은 거에요. 뭐, 이번엔 prince나 radiohead도 제법 들었지만요(웃음). 식사는 적당히 센드위치 같은 것을 먹어요. 부엌에 가서 혼자 만들어 먹지요. 일을 하는 중에는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든요.
――써 나가기가 힘들 경우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가시는지요?
쓰기가 어려운 부분이란 건 물론 있어요. 하지만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척척 써가는 거에요. 너무 자세한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고요. 그런 것은 나중에 시간을 들여 고쳐 쓰면 되니까. 그것보다는 이야기의 진행 속도에 늦지 않게, 필사적으로 그것에 매달려 간다. 그게 더 중요해요.
――표지에 그려져 있는 두 가지 오브제에 대해 가르쳐 주세요.
표지에 그려져 있는 고양이 인형과 뱀을 그린 돌. 그것은 둘 다 제 것이에요. 언제나 책상 위에 놓아 있지요. 고양이는 어디서 샀던가? 생각이 나지 않네요. 뱀은 시드니 올림픽을 취재하러 갔을 때 토산물 가게서 샀어요. 둘 다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듯싶어서 표지에서 쓰기로 했어요.
제 책상 위에는 제법 여러가지 물건이 놓여 있어요. 대개는 동물과 관련된 것이에요. 그리고 개구리나 벌이나 쥐, 그런 것도 있어요. 일을 잠깐 쉴 때 그런 것들을 보곤 하는데, 그들이 다 함께 저를 격려해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도 조금은 있겠네요. 동물이란 건 좋더군요.
――이번 소설을 쓰기 위해서, 취재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시코쿠(四國)에는 실제로 갔어요. 저는 원래 소설의 취재라는 걸 별로 안하는 편인데, 사실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곤란하니까 일단 가서 알아 봤지요. 실제로 혼자 야행 고속버스로 가서, 렌타카에서 마츠다 파미리아를 빌려서 그 주편을 돌아 봤어요. 그다지 길지는 않았고요. 2박 3일 정도지요.
그런데, 쓰기 전에 예비 조사를 하러 갔다는 것이 아니라, 다 쓰고 난 다음에 확인하러 간 거에요. 쓸 때는 오로지 상상력을 구사해서 써요. 타카마츠(高松)에는 전에 몇 번인가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는 건 별로 없었으니까, 자기 머리 속에서 소설을 위한 장소를 제멋대로 만들어 가는 거에요. 그러고 나서, 그런 장소가 실제로 있는지를 확인하러 가요.
<태엽감는 새>를 쓸 때도 그랬군요. 거기엔 노몬한이 나오는데, 실제로 노몬한에 간 것은 책을 다 쓴 후였어요. 처음부터 조사를 하러 가면, 저의 경우는 말이지만, 상상력이 잘 작용되지 않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시코쿠를 무대로 삼아서 쓰고는 있어도, 결국 그것은 그 어디도 아닌 곳인 거에요, 저의 경우. 어느때도 아닌 시간 속의, 어디도 아닌 곳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장소가 꼭 타카마츠 시의 어딘가에 있을 거야"하고 생각해서 쓰고 있으면, 꼭 그런 곳이 존재하는 법이에요. "아, 역시 있었구나" 하는 식으로. 그런 게 되게 기쁘지요. 모래사장에 앉아서 "그렇구나, 이런 곳이었구나" 하면서 이상하게 릴렉스하기도 하고요. 노몬한의 경우엔 "야! 바로 내가 쓴 대로의 곳이잖아" 같은 기시감(旣視感)까지 있었지만(웃음).
<양을 쫓는 모험>만은 미리 현지답사(location hunting) 같은 것을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양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으니까(웃음). 실제로 가 봐서 양에 관한 일에는 이상하게 자세히 아는 사람이 됐어요. 그것이 지금까지 유일한 취재 조사지요.
왜 무대가 타카마츠냐는 질문을 받으면 곤란해요. 근거가 전혀 없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소년의 행선지는 시코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꽤 확실히 있었어요. 서쪽으로 향한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그것은 칸사이(關西)도 아니고 큐슈(九州)도 아니고 히로시마(廣島)도 아니다. 그렇다면 역시 시코쿠가 되겠지요. 타카마츠라는 도시를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뭔가 누긋하고, 우동도 맛있고요.
<태엽감는 새>부터 <해변의 카프카>까지
――<해변의 카프카>는 <태엽감는 새> 이래의 긴 소설이군요.
<태엽감는 새>를 다 썼을 때, 아무튼 자신 속에 있었던 소설적인 것을 all out로 다 내버린 느낌이었어요. 4년쯤이나 들여서 계속 긴 이야기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4년은 길었다. 그 동안 계속 미국에 살았거든요.
녹초가 되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후에 몇 개인가 단편 소설은 썼지만 장편 소설을 쓰려는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 <언더 그라운드>를 쓰게 되는데, <언더 그라운드>는 논 픽션이랄까, 요컨대 받아쓰기이니까, 타인의 이야기를 채집하는 작업인 거에요. 척척 들이쉬어 가는 작업 말이지요. 그에 대해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때까지 담아둔 것을 내뺕는 작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는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1년간 들여서 되도록 뒤에 물러서서 자신의 숨을 죽이며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 그것을 자신 속에 쌓아 갔어요.
그러나, 자신 속에 일단 거두어들인 것을 소설의 형태로 잘 변환시키고 밖으로 내놓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역시 시간이 걸리는 거에요. 그렇게 쉽게, 쑥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쌓을 수 있을 만큼 쌓아 놓고는, 새가 알을 지키듯 꽉 품고 있어야 해요. 체험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의미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시간은 길어지지요. 꾹 참아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언더 그라운드>를 쓰고 나서 조금 지나다가, 어떻게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스프트니크의 연인>을 썼어요. 저는 아무래도 소설가라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소설이 쓰고 싶어지는 거에요. 댐에 물이 괴는 듯한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아직 <언더 그라운드>의 작업을 하는 동안에 제가 intake한 것을 제대로 output하기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저 자신도 알고 있었어요. "나는 아직 중간 지점에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래서 저로서는 <스프트니크의 연인>에서는 다음에 쓸 장편 소설을 위한 준비 같은 것을 해 놓으려고 생각 한 거에요. 야구로 말한다면, 샤프한 단타를 노리려고요. 장타를 노리는 것이 아니고 말이지요. 저는 그것을 위해서, 우선 문체의 정비를 해 보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때까지 제가 써 온 문체의 전체적인 복습 같은 것을 여기서 철저하게 해버리자고요. 그런 실험적인 것을 하기에는 그 정도 길이의 소설이 절호의 장소예요. 저는 "중편 소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단편이면 용기로서 너무 짧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편까지는 끌어가지 못한다, 그런 길이지요. 그러니까 그 <스프트니크의 연인>이라는 소설은 이야기라는 차원에서 보기 전에 문체의 쇼케이스 같은 것이 되어 있어요. 문체의 문제를 어디까지나 추구해 간 결과 이런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 같은 소설을 쓰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어려웠어요. 그때까지 제가 써 온 문체를 전부 다 활동시켜서 쓴 것 같은 부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쓰면서 "이런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다음은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스프트니크의 연인>은 위치적으로는 <댄스 댄스 댄스>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어요. <댄스 댄스 댄스>를 쓴 후에 저는 <댄스 댄스 댄스>적인 것은 쓰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그 후 또 조금 지나서, 이번엔 통합적인 단편을 써 보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지요. 거기에서도 제가 가장 의식한 것은 문체의 문제였어요. 이번엔 모두 삼인칭으로, 여러가지 문체로, 한 가지 테마로, 각각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써 보기로 했어요. 그것을 하나로 통합해서 "콘셉트 앨범" 같은 것으로 만들려고요. 저는 그때까지 대개의 소설을 일인칭으로 써 왔기 때문에 삼인칭의 경험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도 아무튼 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여러가지의 보이스가 썪은 장편 소설을 앞으로 쓰려면은 삼인칭을 유효하게 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일인칭만으로도 그런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해요. 그런 것은 순수하게 테크닉의 문제니까. 하지만 소설의 스케일을 한층 더 크게 하기 위해서는 보이스의 다양화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어요.
그런 기분이 된 것은 역시 <언더 그라운드>를 쓴 영향이 컸을 거에요. 그 일을 한 후, 한참 지나서부터도 여러 사람들의 보이스가 제 머리 속에서 계속 울리고 았어서, 존재감 같은 것이 제법 컸거든요. 아주 리얼하고 절박한 것이었어요. 저로서는 그러한 살갗의 감각을 소중히 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제가 자신의 글을 어떤 차원에서는 개조하려고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여러가지 의미에서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언더 그라운드>의 연장선 상에 있어요. <언더 그라운드>에서 주제로 한 지하철 사린 사건은 1995년 3월에 일어난 일이고,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의 테마가 되어 있는 코베(神戶)의 지진은 그 2 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지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 수록된 6 개의 단편 소설은 그 중간 지점인 1995년 2월에 일어난 일들을 그리고 있어요. 물론 그것은 의식적으로 한 거에요. "중간 지점"이라는 것은 제게 있어서 아주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요. 영어로 하면 "limbo"지요. 현세(現世)와 황천(黃泉)의 세계 사이에 있는 중간 지점.
15세의 주인공에 대하여 (1)
――15세의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것은 꽤 이른 단계에서 이미 정해져 있었나요?
네, 정해져 있었지요. 아무튼 15세 소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움직여 보자고.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되어 갈 것 같았어요. 그것은 집필을 시작하기 1년 전에 결정했었고, 그 아이디어를 머리 속에서 계속 담그고 있었어요. 그 소년이 움직이기에 편한 환경을 의식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간 거에요. 그러고 나서 이제 그런 환경이 정비되었다고 느꼈을 무렵부터 쓰기 시작했지요. 저는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누긋한 편이랄까, 잘 기다리는 편이에요. 꼼짝 않고. 타이밍이 거의 다예요.
――<스프트니크의 연인>의 종반 부분에 소년이 나오는데, 그의 인상이 아주 강했어요. 그 당근이라는 소년과 이번 소설에 나오는 소년과는 관련이 있는 건가요?
전혀 깨닫지 못했군요(웃음). 하긴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관련이 있을 지도 몰라요. 사실 그 <스프트니크의 연인>라는 소설에는 원래 당근이라는 소년이 나오지 않았어요. 나온다 해도 기호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런데 소설의 인상이 너무 희미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쳐 쓰는 단계에서 자연스레 그의 존재가 부풀어 올라 왔어요. 스스로 부풀어 올라,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가 전면에 나옴에 따라 소설이 새로운 힘 같은 것을 지니기 시작했지요. 요컨대, 스미레가 차차 혈육을 잃어 가면서 그대신 당근이 점점 혈육을 지니기 시작했다. 그런 다이나미즘의 시프트가 있었던 거에요. 이 <해변의 카프카>에도 거기서 계속되는 부분은 있을 지도 모르네요. 전혀 의식하지는 않았고, 또 당근은 초등학생인데 이번 주인공은 15세이니까 연령적으로도 차이는 있지만요.
제 소설에는 지금까지 20대 후반부터 30대 전반쯤의 주인공이 많았는데, 그것을 이번엔 15세로 함으로써 소설적인 시점을 여러 방향으로 시프트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 자신이 아주 자유로워졌다는 감각이 있었어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라는 자립성 같은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랄까요.
소설을 쓴다는 작업에는 자신 속에 있는 다른 인격을 찾는 여행 같은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나 자신과 가까운 것으로 시점을 설정해 버리게되면 현재의 자신과 찾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다른 자신이 뒤섞여질 우려가 있어요. 거기감 같은 것은 꽤 중요하다. 그런 것일 지도 모르네요.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한테 지적을 받아서 알게 된 것인데, <스프트니크의 연인>는 전반과 후반에서 문체가 달라져 있었다고요. 저는 몰랐는데 그런 말을 듣고 다시 읽고 보니 확실히 달라져 있더라고요. 그것은 요컨대, 전반 부분에 저는 자신의 기성의 문체 같은 것을 주저없이 과인할 정도로 써 가면서, 그것에 지친 것 같은 상태가 되었었겠지요. 그래서 그 시점에서 새로운 문체 같은 것이 쑥 나왔다는 게 아닐까요? 그런 작업이 비교적으로 자연스럽게 잘 되어 갔다는 감촉은 있었어요.
――하루키 씨는 15세 때 어떤 소년이셨습니까?
제가 15세 때는 약간 이상했을까요? 어떤 면에서는 아주 보통 아이여서 산에 오르고나 바다에서 수영하거나 해서 친구들과 활발하게 놀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시에 이상하게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였지요. 외아들이기도 해서 일단 틀어박히면 그만, 고독이라든가 참묵이라는 것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오오츠키(大月) 서점에서 나온 <맑스/엥겔스 전집>을 용돈으로 몇 권이나 사서 읽고 있었어요. <자본론> 같은 것은 당연히 너무 난해한, 그래도 상관 않고 읽다 보면 제법 이해할 수도 있더군요. 문장도 딱 확실하고 그런대로 느껴지는 데가 있어요. 카프카, 도스토에프스키는 물론 거의 다 독파했었지요. 그런 부분은 보통 아이가 아니었는지도 몰라요.
어떻든 책은 많이 읽었어요. 그리고 음악도 많이 듣고 있었지요. 모던 재즈에 빠진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가출은 안 했지만요(웃음). 저의 경우, 강렬히 내성적인 부분과, 그러면서 physical하고 easy한 부분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지금도 그대로나 마찬가지지만요. 인간이란 그렇게 달라지지 않는 거에요.
――소설을 쓸 때에 15세 때 자신의 이미지가 되살아난다는 일은 없었습니까?
그건 없어요. 없는데, 소설가라는 것은 일단 어떤 인물을 그리기 시작하면 그 인물 속에 깊이 빠져드는 거에요. 일단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가 있어요. 그렇다기보다는 그 사람이 되고 마는 거에요. 예를 들면 <스프트니크의 연인>에 스미레라는 여자애가 나오지요. 나이는 스무살 정도이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레즈비안이 되고 만다. 저는 물론 스무살 여자가 아니고 레즈비안도 아니에요. 게다가 레즈비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식으로서는 전혀 몰라요. 그러나 제게는 스미레가 생각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 이해가 돼요. 그녀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할지도 알 수 있어요. 쓰고 있을 때는 뚜렷하게 말이지요.
그러니까, 주인공인 15세 소년은 15세 때의 저와는 전혀 달라요. 조금은 비슷한 데가 있을 지 모르지만 거의 딴 인격이에요. 그러나 저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15세 소년이 될 수 있어요. 그라는 존재 속에 잠입할 수 있는 거에요. 전혀 새로운 선택지로서 저의 존재를 그의 존재 위에 겹쳐 올려 놓을 수가 있어요. 그것은 제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것이고, 동시에 독자에 있어서도 소중한 것이었으면 싶어요. 아주 소중한 것을 통해서 저와 소년과 독자가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요?
15세의 주인공에 대하여 (2)
주인공을 15세 소년으로 설정함으로 당연히 문체도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15세 소년은 그다지 훌륭한 비유를 쓰지는 못해요.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궁지라고도 할 만한 데서 빠듯하게 살고 있으니까, 문체도 따라서 크리스프(crisp)해지지요. 이야기를 유효하게 서바이브(survive)하기 위한 문장으로 되어 가는 거에요. 안 그럴 수가 없어요. 정교한 레토릭도 필요가 없게 되지요. 물론 문장은 꽤 주의 깊게 고쳐 썼는데 고치면 고칠수록 심플(simple)해지더군요. 그런 점이 지금까지의 제 문체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을 지도 몰라요.
제가 특히 신경을 쓴 것은 15세 소년이 나온다고 해서 계몽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어요. 그를 인도해 준다든가, 그런 짓은 하지 않으려고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 자기 머리로 판단하게 하는 것. 작자가 그를 인도해서는 안 돼요. 여러 가지 원형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고 그것을 그가 스스로 이해하고 삼기고 받아들이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작자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실무 언어적인 수준에서 말하면, 그가 쓰는 말들 중에서 되도록 "**적"이라는 표현을 근절해 버리고 싶었어요. 그러한 표현을 없애 버리고 더 솔직하고 더 자연스러운 말투로 하고 싶었던 거에요. 실제로는 유감스럽게도 근절하지는 못했고 아직 조금은 남아 있는데(웃음), 그래도 아주 적어졌어요.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 중에는 "**적"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많다는 거지요. 조심해야 한다 싶었어요.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인 소년이 쓰는 말을 "이건 15세 아이가 쓰는 말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몰라요. 그런 비판은 아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나는 말이에요, 그에게 소위 "15세 아이적인"말투를 바라지는 않았던 게에요. 그에게는, 말하자면 어떤 부분에서 메타피지컬한(metaphysical: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가진 15세의 소년이기를 바랬어요. 책 안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세계에서 제일 터프한 15세 소년"이기를 바란 거에요. 거기에는 예전에 <자본론>과 <악령>을 몰투하게 읽는 15세 소년이었던 저의 생활 자세 같은 것도 겹쳐져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런 말투, 문체의 설정은 어려웠군요. 몇 번인가 전체의 톤(tone)을 변경했어요. 제일 신경을 쓴 것은 그런 부분이었을 지도 몰라요.
저는 지금 마침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새롭게 번역하고 있는데 그 역문의 톤 설정도 신경이 쓰여지는군요. 홀든 고울필드 군은 16세인데, <해변의 카프카>의 소년과는 다른 의미로 아주 어려워요. 어디까지가 소년의 부분이고 어디부터가 어른의 부분인지, 그 구분이 미묘한 거에요. 그만큼 보람도 많은 일이지만요.
――현대의 15세 소년 소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젊은 사람에게 삶의 원형 같은 것을 순수한 형태로 제시해 간다는 작업의 중요성은 현실 세계에서도 픽션의 세계에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일상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부모가 자신들의 원형을 뚜렷한 형태로 아이들에게 보여 준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일상이란 것은 왕왕 여러 가지 때나 얽매임으로 사물의 이미지를 탁하게 만들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15세 쯤이면 마침 반항기에 이르고 있어서, 부모의 존재에 대해 반발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니까 그리 쉽게 받아들여 주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이계와의 접점 같은 것이 중요하게 되리라고 저는 생각해요. 돌연히 의미 불명한 것이 나타난다든가... 이를테면, 브라질에서 "토라 상"(역주: 일본 영화 <男はつらいよ[남자는 괴로워]>에 나오는 주인공 아저씨) 같은 삼촌이 돌연히 찾아와 주변을 마구 휘둘러 댔다가 또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든가(웃음), 그런 것 말이에요. 그러나 그런 일은 실제로는 흔히 일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독서라는 것이 중요한 거지요. 책을 읽고 있으면 제법 많은 이계와의 리얼한 접촉이 있거든요. 저의 경우도 그랬어요.
――나카타 씨라든가 호시노 군이라든가, 그러한 타입의 사람은 지금까지 하루키 씨 인생에는 나타났었나요?
특히는 없었군요. 하지만 일반론을 말하면, 인간 안에서는 "본래 그래야 했던 것"같은 제2의 자신이 숨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것도 원형의 일종이라고 말해도 좋을 건데, 가만히 진지하게 상대를 보고 있으면 그런 이미지가 조금씩조금씩 떠올라요. 그것도 제가 <언더 그라운드>의 취재를 통해서 배운 것이었어요. 상대방의 인격 안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제2의 인격과 같은 것을 찾아낸다는 것.
저는 <언더 그라운드>의 취재를 할 때 몇 가지 룰을 정했는데, "인터뷰하는 상대를 무조건 좋아한다"는 것도 그 룰 중 하나였어요.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진짜로 좋아하게 되는 법이에요. 물론 오래 사귀려면 아마 그렇게 쉽게는 안 될 거에요. 하지만 인터뷰하는 동안의 2시간 내시 3시간 쯤이면 어떤 사람이라도 좋아할 수 있어요. 우선 이쪽이 상대를 좋아하지 않으면 상대도 정직하게 말을 해 주지 않거든요. 그런 거에요. 그리고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 속에 있는 "좋은 원형"을 찾아내는 것이에요.
제가 나카타 상이나 호시노 군을 소설적으로 조금이나마 리얼하게 쓸 수 있었다면, 그것은 제가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을 진지하게 봐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한 것은 요컨대 나카타 상적인 것에 대해 살을 붙여 주고, 호시노 군적인 것에 대해 살을 붙여준 것 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만들어냈다고 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어딘가에서 찾아내서 갖고 왔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에요. 물론 소설적으로 찾아낸다는 것은 즉 만들어낸다 그 말이지만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해변의 카프카>
――이 소설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따로따로 시작되고, 각각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종반이 가까워짐에 따라 끔찍한 전개가 되어가는데, 처음에 설계와 같은 것이 있었나요?
아니요, 그 따위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몇 가지 이야기를 동시적으로 쓰기 시작해서, 그것이 각각 제멋대로 진행되어 가는 것 뿐이에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몇 가지 이야기 어떻게 결부될 것인지, 그 따위 것은 저 자신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이야기적으로 말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도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단, 쓰기 시작할 때, "숲에 대해서는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것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이미지에서 계속되는 것으로서요. 그러니까 숲 속의 세계가 나온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던 것은 그 정도였지요. 나머지 일은 뭐, 되는 대로 되리라고.
원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속편 같은 것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소설의 종반에서 숲에 들어가던 사람들의 그 후의 일이 저 자신도 궁금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쓴 지도 15년 넘게 지났거든요. 그래서 전혀 다른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역시 숲의 이미지만은 그려 보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은 제법 간절했던 것 같아요.
――홀수 장과 짝수 장은 번갈아 쓰셨나요? 아니면 홀수 장은 홀수 장만 어느 정도 계속해서 쓰고... 라는 그런 식으로 쓰셨나요.
홀수와 짝수는 어김없이 번갈아 썼어요. 그러니까 독자가 그 소설을 읽을 때와 똑같은 차례로 저도 그것을 쓴 거에요. 그러지 않으면 소설의 자연스러운 리듬이 생기지 않거든요. 물론 나중에 고쳐 쓰고, 보태어 쓰고, 갈아 넣고, 사실관계를 맞추기는 해요. 그것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작품이 안 되니까. 예를들면, 두 개 있는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의 독립된 장은 나중에 보태어 쓴 거에요. 처음의 원고에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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