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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 - 오영환 인터뷰

하/ㅗ 2002. 8. 28. 06:14 Posted by 로드365

우리 화씨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뭔말인지 못알아먹겠다고.




오영환 (연세대 명예교수)
지은知隱 오영환吳榮煥 연세대 명예교수는 충북 수안보에서 출생하였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한 후, 네덜란드 라이덴(Leiden) 국립대학교 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브리티시 카운슬 페로우,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방문교수, 일본 교토(京都)대학교 초빙교수,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한국화이트학회를 창립하여 초대 및 2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오 교수는 성천아카데미 고전강좌에서는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강의해 오고 있다. (대담 김홍근 본지 주간)


○ 선생님 하면 화이트헤드와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없습니다. 평생을 화이트헤드만 연구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균형을 추구한 것으로 그는 과연 어떤 철학자였는지 간략한 생애를 말씀해 주십시오.

화이트헤드는 연대로 보면 1861년∼1947년, 19세기 후반부에서 20세기 전반부까지 87세를 살았습니다. 그는 영국의 도버해협이 바라다 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항구도시 램즈게이트에서 태어났어요.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영국 성공회 성직자여서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났는데, 중학교 시절에 라틴어 희랍어의 공부를 거쳐서 수학에도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즉 그는 수학을 공부하는 반면에 라틴어 희랍어를 통해 고전교육도 받는, 그래서 과학적인 교육과 인문적인 교육이 어우러지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역사도 탐독했고, 특히 낭만주의 자연시인인 워즈워드와 셸리, 키이츠를 즐겨 읽었는데, 특히 워즈워드에 심취하여, 그 시인의 자연관이 화이트헤드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지요.

○ 화이트헤드의 대학생활과 초기 강사시절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1880년 자연과학의 명문 대학인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였는데, 뉴턴과 프란시스 베이컨 그리고 케인즈 등 쟁쟁한 학자들을 배출한 그 대학의 전통 속에서 공부합니다. 그리고 학기를 마친 뒤에는 모교의 강사가 되어 1910년까지 근무하게 됩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전적으로 수학만을 공부했지만, <사도使徒들의 모임(the Apostles)>이라는 특별한 모임에서 전공이 각기 다른 12사람이 모여서 일주일에 1번씩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밤새도록 토론을 했습니다. 문학·과학·정치·역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플라톤식 대화'와 통해서 지적인 훈련과 자극을 많이 받았고 합니다. 그때의 경험이 그의 인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시절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15번이나 읽었다고 합니다.

○ 그 뒤 런던대학으로 옮겨가지 않았습니까?

화이트헤드는 1911년 런던으로 갔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50세의 나이면 정교수가 될 정도인데도 정교수로 임명받지 못했습니다. 여러 얘기가 있지만 정교수가 되려면 독창적인 이론을 세우던지 새로운 공식이나 정리를 발견해야 되는데, 그는 수학의 철학적 기초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어요. 그는 38살인 1898년에 처녀작 『보편대수론』이라는 유명한 책을 냈는데, 이 책은 수학의 철학적 기초를 확립하는 내용입니다. 나중에 영국 학사원 회원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책입니다. 수학 교수로서 수학공식이라든지 새로운 정리를 발견하는 것보다는 철학적 기초의 연구를 했으니 교수로 발탁되기에는 그 당시 케임브리지의 보수적이고 고루한 평가 분위기에 안맞았던 겁니다.

○ 제자인 러셀과 공저共著를 낸 것은 런던대학에서였지요?

그는 런던대학에서 러셀과의 공저로 『수학원리』라는 방대한 책을 냈는데, 처음에 이 책은 『보편대수론』의 제 2권으로 계획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수제자인 러셀이 1903년에 『수학의 원리』라는 책을 썼는데 그쪽에서도 제 2권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준비하던 제 2권이 같은 내용의 책이었지요. 그래서 각자 할 게 아니라 합쳐서 하자고 하여 준비했는데, 1년 정도면 완성될 거라 생각했지만 문제가 굉장히 복잡해져 10년이 걸렸어요. 그동안 두 사람이 고생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원체 방대한 책이고 전문적으로는 수학과 논리학을 통합하여 하나의 공통적인 언어와 기호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책은 수리논리학, 기호논리학의 금자탑을 이루는 전거典據지요. 그는 이 책을 통해 수리논리학자로 대성하게 됩니다. 이어 1911년에 제 3권이 나왔고, 제 4권 째도 출간될 예정되었으나 화이트헤드와 러셀 간에 철학적 견해가 서로 대립되어 중단되었습니다. 즉 철학적 견지에서 보면 러셀은 정통적인 영국의 경험론 철학을 따라가겠다는 거였고, 화이트헤드는 대담하게 그것을 뛰어넘어야겠다는 것이죠. 학문적인 세계가 거기서 각기 갈라지게 됩니다. 러셀은 그 후에 언어철학, 분석철학의 선구자가 됩니다.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스승이 러셀입니다. 러셀이 화이트헤드의 제자이니 비트겐슈타인은 화이트헤드의 손자뻘 되는 거죠.
그 사람들은 언어중심의 철학을 말하면서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배제합니다. 하지만 화이트헤드는 정면에서 형이상학을 끌어들입니다. 그 당시의 영미철학은 정통적인 사변철학을 배척하는 분위기였는데 화이트헤드는 대담하게 그런 분위기에 맞서서 사변철학을 이끌어들입니다. 그런데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사변철학은 전통적인 사변철학과는 용어는 같지만 의미는 전혀 달라요. 그가 말하는 사변철학은 '창조적인 상상력'을 말합니다. 예술가가 창조할 때 사용하는 상상력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그게 필요하다는 거지요.

○ 그 점은 워즈워드의 영향력이 미친 것 같습니다.

워즈워드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은 나중에 화이트헤드가 미국에 건너가서 제1탄으로 쓴 책이 『과학과 근대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인데 그 책 5장의 제목이 '낭만주의적 반동'입니다. 그걸 보면 워드워즈, 셸리, 키이츠, 밀턴, 헤밀턴의 시가 많이 나옵니다. 과학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책에 그렇게 시가 많이 인용된 적은 거의 없을 거예요.
1911년에 런던으로 가서 처음에는 강사로, 1914년부터 24년까지는 임페리얼 칼리지 이공학부의 응용수학 정교수로 임명되어 활동합니다. 1911년부터 1914년에 『수학입문』이라는 명저를 냅니다. 계몽적인 책으로 화이트헤드 철학의 중기 사상에 해당됩니다.
초기 사상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있던 시절로, 수학과 수리논리학,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시기이고, 중기는 런던대학의 10년 동안으로 주로 자연철학, 과학철학의 시대입니다. 『자연의 개념』, 『자연의 제 원리에 관한 연구』, 『상대성 원리』 등의 책이 이 시기의 주요 저작인데, 이런 책을 내면서 대학 학장, 학술평의회 의장, 수학회 회장을 지내면서 한편으론 영국의 유명한 철학회 모임인 <아리스토텔레스 협회>에 나가면서 10년동안 과학철학자로 대성한 시기입니다.

○ 미국에는 어떻게 건너가게 되었습니까?

1924년 그는 63세에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오지 않겠느냐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나이면 은퇴할 때일 뿐만 아니라, 이론물리학 교수인 자신을 철학교수로 초빙했으니 화이트헤드는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철학의 3대 주저가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으로 미국에서 평가받은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5년 계약으로 간 것이 13년을 머물게 되어,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가 되기까지 계속 철학을 강의하게 됩니다. 그곳 하버드에서 후기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즉 유기체철학·과정철학이라고도 부르는 그의 사상이 꽃피게 됩니다.
1924년에 『과학과 근대세계』라는 유명한 책이, 1926년에 『형성 도상에 있는 종교(Religion in the Making)』라는 종교에 관한 책이, 1927년에 『상징작용, 그 의미와 효과(Symbolism Its Meaning and Effect)』라는 인식론을 다룬 책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에서 당대 명성을 떨치는 석학들을 초빙해서 연속 강좌를 여는 시리즈가 있는데, 거기에서 강의한 내용들은 유명한 고전으로 발표됩니다. 바로 화이트헤드가 거기에서 강의한 것이 1929년에 발표된 유명한 대표작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입니다. 같은 해에 『이성의 기능(The Function of Reason)』이라는 조그만 책을, 1933년에 『관념의 모험(Adventures of Ideas)』을, 그리고 1934년에 자신의 사상을 일반독자를 위해 쉽게 풀어쓴 『사고의 양태(The Modes of Thought)』가 있는데, 우리말로는 '열린사고와 철학'으로 나왔습니다. 하버드에서는 이렇게 철학자로서의 그의 사상을 증명했고, 미국의 고전적인 6대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 역시 화이트헤드에게는 만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3대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과 근대세계』, 『과정과 실재』, 『관념의 모험』의 내용을 조금씩 소개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기는 수리철학자로, 중기는 과학철학, 자연철학자로, 후기 하버드에서는 철학자로 변신을 하는데, 쉽게 설명하면 과학철학이 형이상학으로 발전해 가는 겁니다.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은 초기의 수리논리학과 중기의 과학철학을 포괄하는, 스케일이 넓은 의미의 그런 형이상학입니다. 같은 형이상학이라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의미와는 달라요. 그 과정의 1탄이 1925년에 발표한 『과학과 근대세계』입니다.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지요. 왜 유기체철학이라는 세계로 넘어가게 되었느냐의 근거 이유가 이 책에 들어 있습니다. 5장 '낭만주의적 반동'을 보면 워드워즈 같은 자연 시詩가 화이트헤드의 사상에 굉장히 지대한 영향을 주거든요. 워즈워드는 자연을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보고 있습니다. 17-19세기 서양 과학이나 철학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양적으로 환원시키고 질적인 것은 무시해 버리죠. 화이트헤드는 거기에 반기를 듭니다. 워즈워드나 셸리나 키이츠 같은 낭만파 자연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지, 지적인 상상을 많이 배웠다고 할지, 아무튼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적인 자연관을 갖게 되거든요.
1926년에 『형성 도상에 있는 종교』라는 책은 종교에 관한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입니다. 인간이 갖는 종교적 경이라는게 뭐냐, 왜 인간이 종교적 경이를 갖느냐, 그것의 의미는 뭐냐는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화이트헤드가 과학을 통해서 형이상학에 들어간 것이 『과학과 근대세계』고, 종교를 통해 형이상학에 들어간 것이 『형성 도상에 있는 종교』인데, 과학과 종교를 묶어서 하나의 형이상학적 세계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과정과 실재』입니다. 이 책은 자연을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본다는 유기체적인 자연관이 기본 전제가 되지요. 17-19세기 서양 근대과학철학인 기계론적 세계관의 구도를 깨고, 적극적 대안으로 유기체적인 세계관으로 전환시킨다는 생각을 갖는다는 그 체계가 『과정과 실재』로 나타납니다.

○ '과정'이란 말이 매우 독특한 용어 같습니다.

화이트헤드는 근대의 과학과 철학을 비판하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지적합니다. 20세기 과학의 눈으로 보면 근대과학이나 근대철학의 카테고리가 맞지 않는다는 거죠. 칸트만 하더라도 칸트 철학의 배경은 뉴턴 역학입니다. 그 뉴턴 역학은 아시다시피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해서 패러다임이 벌써 바뀌었지 않습니까? 그럼 거기에 따르는 새로운 카테고리 즉 뒷받침하는 철학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화이트헤드는 바로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걸맞는 그런 새로운 카테고리를 출현시키기 위해, 우리는 기존의 근대적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 그런 생각이 과정이란 용어로 나오는 겁니까?

근대 자연관이나 세계관의 기초는 기계론적 자연관인데, 이렇게 전통적인 철학이나 과학은 실체라는 속성의 구도를 깊게 깔고 세계를 봅니다. 실체라고 하는 게 서양의 2천년 철학사의 기본적인 개념이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내려오는 거죠. 그럼 그 실체라는 게 뭐냐하면, 변치않는 본질을 말합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변치 않는 근본적인 본질이 있다는 말이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라는 게 주어 술어의 형식입니다. 우선 대상이 있으면 거기에 대상이 되는 주어가 있어야 되고 주어를 수식하는 술부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사고 구조라는 거지요. 화이트헤드는 이것을 깨겠다는 거예요. 이런 주어 술어의 구도는 결국 물건을 딱 고정시켜서 보는 사고를 가져온다는 겁니다. 이 세계는 현실적으로 고정 불변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그래서 실체 개념보다는 사건(event)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거지요. 사건이 있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고 사물들은 순간적으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지 그렇게 실체처럼 영구불변하여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세계는 고정불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 과정(process)이 바로 'reality'라는 거죠. 이게 아마 모든 것이 변화하고 변천무쌍하다는 주역의 사상이나 불교의 연기설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근대과학철학이 결정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라고 합니다. 이런 오류가 과학과 철학에 깔려 있다는 겁니다. 화이트헤드의 견해는 그런 면에서 아인슈타인도 예외가 아니라는 거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나타난 시간과 공간도 피상적이고 이론적인 시간과 공간이라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아인슈타인을 대담하게 비판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의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는 게 1922년에 나온 『상대성원리』라는 책이죠.

○ 존재하지도 않는 '실체'에 대한 집착이 '잘못 놓여진 구체성이 오류'를 낳은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을 정리해 보면 "from being to becoming"이란 말이 떠오르는데요?

그 말은 프리고진의 말입니다. 프리고진이 노벨상을 받은 책의 제 2장에서 화이트헤드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놓았고, 양자역학의 대가인 데이빗 봄도 화이트헤드의 과정사상을 높이 평가합니다.
과정철학의 과정 개념과 자기가 생각하는 과정의 개염은 기본에 있어 일치한다는 겁니다. 근대 17세기 칸트만 하더라도 대개 철학이 과학을 따라갔는데 지금은 과학 쪽에서 화이트헤드를 보고 있어요. 그런 관계에서 보더라도 현대과학과 철학이 화이트헤드에서 만나고 있다고 봅니다.

○ 그럼 『관념의 모험』은 어떤 내용입니까?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는 그 방대한 체계로, 세계의 4대 난서 중의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어렵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전문적인 이론과 개념을 좀더 풀어서 인간경험세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느냐, 이런 것을 쉽게 풀어서 밝혀 설명하고, 이것을 고대에서 현대까지 역사적인 흐름 문명을 따라 다룬 책이 바로 『관념의 모험』입니다. 1부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2부는 우주론적 관점에서, 3부는 철학적 관점에서, 마지막 4부는 문명론적 관점에서 논의하며, 결론적으로 문명의 5대 요소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리, 아름다움, 예술, 모험, 평화의 요소가 기본이 되어서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대담하게 타파하는 모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즉 관념의 모험이 대담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 책은 그가 73세에 썼지만, 그 자신의 관념의 모험도 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책은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전문적 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 그럼 이 시대에 왜 화이트헤드의 사상이 중요한 것일까요?

화이트헤드는 그의 생각을 초기, 중기, 후기로 발전시켜 가면서 전체적 관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현대는 전문화 시대고 세분화 시대이기에 누구나 좁은 테두리 안에서는 대가를 이루지만, 전체가 나아갈 길이라든지 전체적인 맥락 속의 각각의 위치와 그 의미에 대해서는 매우 어둡습니다. 과학이 첨단적으로 발전해 가지만, 과학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의미 가 있으며, 현대 문명에서 그 위치가 무엇이냐에 대한 근본적 의미는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봅니다. 화이트헤드 철학의 구도는 유기체철학, 혹은 과정형이상학으로 부를 수 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유기체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개념이지만, 그는 이것을 우주론적 개념으로까지 넓혀서 보는데,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한 편만을 따로 고립시켜서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21세기에 닥쳐올 사회는 전체론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단편적인 것에만 만족해서는 사회가 온전히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과정철학, 과정사상은 비단 화이트헤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인식을 넓혀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 난해한 『과정과 실재』가 이제 제 10판이 나온다고 해요. 10년이 넘은 책인데 아직도 이것을 찾는 독자가 꾸준하다는 것은 거기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과정적이고 전체론적인 사고가 동양사상과 일맥 상통하는 점도 있지요. 동양사상이란 것은 아무래도 현대 과학적인 사고와 직접적인 연결이 약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사고는 현재 과학에서 직접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화이트헤드를 통해 서구과학과 동양사상의 접점을 찾아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고 방법을 창출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계기와 자극제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지금은 21세기 초반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중반이나 말쯤에서 화이트헤드가 예견한 철학의 미래 모습이 현실로 드러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늘날 중요시되는 생태학 분야는 화이트헤드 철학의 개념구도와 관계하여 각광을 받고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자연훼손이라든지, 공해문제 같은 것은 어떤 국지적인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지요. 지구 전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태학적인 문제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세계관이나 기계론적인 구조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왜 오늘 이렇게 환경문제가 발생하느냐는 것도 기존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착취대상으로 본다는 견지에서 세워진 것이 전통적인 기계론적 자연관이지만, 앞으로 살아 움직이는 자연 속에서 인간도 우주의 일환이라는 그런 우주론적 세계관으로 사고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화이트헤드적 유기체 철학, 우주론이 갈수록 그 중요성이 증가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

○ 선생님은 한국 화이트헤드학회를 창립하셨지요? 학회는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1997년에 연세대학을 정년퇴임하면서 '한국화이트헤드학회'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50명 정도의 회원으로 출발해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100여명이 활동하고 있습니.
우리 학회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첫째, 화이트헤드의 원전 독해입니다. 그의 원전 자체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학회 차원에서 원전독해에 1차적으로 역점을 두고 있고, 두번째로는 화이트헤드 연구를 우리 한국적 토대 위에서 "제 목소리는 내면서"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연구가 학회 활동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이트헤드연구』라는 학술저널을 현재 3집까지 발간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화이트헤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의 친목을 통한 학술교류활동입니다. 1년에 한 번씩의 학술대회, 두 달에 한 번씩의 학회 차원의 발표, 매달 서울·대구·대전 각 지방별로 개별 독회를 합니다. 저는 초대와 2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미국의 클레어몬트 연구소에 정식 등록을 하여 연차 학술대회도 개최하는 등 국제적 제휴를 맺어 놓았습니다. 이제 회장직은 후배에게 넘겨주고 고문으로 있지요.

○ 회원의 분포는 어떤지요?

서양철학·동양철학 전공자와 불교계 스님, 물리학·생물학·신학을 연구하시는 분들 등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학회가 설립된 이후 화이트헤드 연구에 관한 책이 6권 정도 나왔습니다. 괄목할 만한 성과이지요. 그 중 동양철학권에서 주역과 과정형이상학을 연결지은 책, 우리나라 성리학과 화이트헤드를 비교한 문제를 다룬 책, 그리고 동학사상과 비교한 책도 나왔습니다. 또 최근에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이해』라고 해서 앞으로 저와 함께 성천아카데미에서 강의할 문창옥 박사가 연구서로서는 국내외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책을 펴냈습니다.

○ 선생님처럼 평생을 화이트헤드 연구에 바치신 분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에는 소중한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로 화이트헤드를 연구하시게 되셨는지요

제가 화이트헤드를 알게 된 것은 학부 3학년 때입니다. 그때 미국에 30여년 계시다가 귀국한 김하태 박사라는 분이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어요. 처음에 철학과 3, 4학년을 위해서 원서강독을 했는데, 거기에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어려운지 몇 장을 하지도 못했어요. 제대로 이해는 못해도 '상당히 깊이 있는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도서관에 가보니까 책이 별로 없더군요.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화이트헤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화이트헤드에 관한 책은 한국전쟁 때 만난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한국학과 일본학 대학의 교수인 저의 오랜 지기 후리쯔 훠스(F. Vos) 교수가 화이트헤드의 주저뿐 아니라 연구서까지 그 당시까지 나온 것은 다 보내주어서 읽을 수 있었던 거지요. 또 제 은사인 정석태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베르그송을 전공하신 분이에요. 저는 그분으로부터 앙리 베르그송 철학 강의를 들었는데,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일맥 상통한 면이 있습니다. 정 교수님도 저의 화이트헤드 연구에 흥미를 가져주시고, 앞서 말씀드린 김하태 교수님도 지도해주셔서 석사논문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유럽에 건너가서 유학할 때도 계속 화이트헤드를 연구하게 되고요.

○ 그 때 석사학위 논문으로 『화이트헤드의 시간관』을 쓰셨는데, 이것이 나중에 한국 최초의 화이트헤드 연구서인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으로 출판되었지요? 그 책 내용이 참 궁금합니다.

화이트헤드 철학을 이해한다면 그 시간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하는 게 제 판단이요, 이해입니다. '화이트헤드가 이해한 시간이 뭘까' 하는 것에 저는 관심을 가졌던 거지요. 1960년에 석사논문을 썼는데, 그 결론 부분에서 저는 화이트헤드의 시간관과 불교의 시간관을 비교하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동양적인 시간을 대두시켜 본 결과, 화이트헤드의 시간개념이 갖는 적극적인 면에 매력을 느낀 것이지요. 시간의 적극적이고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그런 선에서 파악하는 화이트헤드의 시간관에 제가 끌린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이 책에서 기존의 시간 개념과 화이트헤드의 독특한 차이가 뭔가를 베르그송의 시간개념과 대비시키면서 전개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이트헤드의 독특한 시간개념을 드러내는 거지요.
20세기의 철학에서 시간을 중요한 개념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 바로 앙리 베르그송입니다. 화이트헤드도 런던시절에 베르그송의 얘기를 많이 듣고 간접적인 영향도 받았다고 해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반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이트헤드가 베르그송의 영향을 상당한 폭으로 받았다는 거고, 다른 한 견해는 두 사람은 기본적인 관점이 상반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쪽 입장에서 봅니다.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는 앞으로 계속해서 비교 연구할 만한 아주 중요한 주제라고 봐요.

○ 그럼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의 시간관은 어떻게 다른가요?

시간 개념을 철학의 주제로 올려놨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 사람은 일치했지만, 시간이 무어냐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형이상학적 입장이 달라요. 베르그송은 시간을 살아 움직이는 시간과 죽은 시간으로 나눠서 보는 거예요. 수학적 시간이나 물리적인 시간은 추상적인 시간이기 때문에 진정한 시간이 아니고, 진정한 시간이란 것은 살아 움직이는, 내적으로 시시각각으로 변천무상한 창조적인 시간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베르그송은 시간을 갈라놓고 봅니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생명자체를 순수지속으로 보거든요. 거기에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시간이 배제됩니다. 왜 그렇게 보느냐면, 인간의 지성이 그렇게 만든다는 겁니다. 인간이 지성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할 것 같으면, 운동하는 유동체를 분해하고 분석해서 공간상으로 고정을 시켜서 보는 것이 인간의 지성이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거지요. 그러면 벌써 살아움직이는 생물체는 죽고 없다는 거지요. 예를 들면 가령 우리가 개구리를 공부할 때 구조를 알기 위해서 해부를 하지요. 그러면 해부학적인 개구리는 공부되지만 개구리는 이미 죽은 시체가 되어 있다는 거지요. 그것이 베르그송이 말하는 지성을 통해서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베르그송은 살아 움직이는 직관을 통해서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시간적 이해를 중시했어요. 지성이 바로 추상화를 가져오는 장본인이기 때문에 공간화라는 말을 썼고, 그래서 공간화가 오류를 낳는다는 겁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지성이 그 공간화의 오류를 범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반드시 지성이 원인이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봐요. 왜 그러냐면 추상적인 것을 마치 구체적인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구성시켜서 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다른 점입니다.
베르그송은 시간을 추상적, 구체적 시간으로 갈라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화이트헤드는 그것을 완전히 그렇게 분리해서 봐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하나로 놓고 보자는 거지요. 만약에 공간을 배제해 버리면 시간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라고 하지요. 그래서 그 둘을 어떻게 통합해서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 구조적으로 이끌어가는 문제입니다. 즉 시간은 매 순간마다 창조적인 새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찰나적으로 새롭게 나가는, 즉 원자성과 연속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극화에서 보느냐, 통합해서 보느냐 하는 것을 나는 화이트헤드 철학의 분기점으로 봤습니다.

○ 제가 보기에는 화이트헤드가 한 발 더 나아간 것 같네요.

저는 그렇다고 보는 거지요. 베르그송은 과거를 배척하는 방식이지만 화이트헤드는 품안에 안아 끌어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과학과 형이상학이 밀접한 관계가 있고, 제 회갑 논문집의 주제가 『과학과 형이상학』이 됩니다. 이렇게 제 철학적 화두는 과학과 형이상학의 문제가 일관되게 화이트헤드를 통해서 계속 발전해 가는 의식인 것 같습니다.

○ 불교에서도 시간에 대한 개념을 중요시하지 않습니까? 화엄에서는 삼세三世가 일제 一際라고 해서 깨달음의 세계를 시간적으로 표현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화이트헤드의 이론은 깨달음의 경지에 근접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네, 아주 흥미있는 말이군요. 그렇게 화이트헤드의 시간관과 불교의 시간관을 비교해 보는 것도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보통 우리가 시간이라고 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관점에서 보지 않습니까? 베르그송의 경우에는 과거에서 현재로 가까워오면서 누적적으로 과거와 상호작용해 나가는 그런 시간과, 하이데거에서는 과거 지향적으로 보는 시간과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달라지는데, 그런 점에서 미래가 현재를 향해서 다가오는 시간으로 인한 인간의 불안의식이 것이 이야기되지요.

하지만 현재라고 하는 시간은 그 성격상 꽉 고정시켜 보려해도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듯이 사라진다는 겁니다. 시간을 현재라고 고정시키지 못한다 말예요. 화이트헤드는 그것을 새롭다는 의미로 즉 '창조적 정신'이라고 합니다.
지난 번 성천아카데미에서 강의할 때 어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데요. "너무 낙관적인 생각 아니냐." 그러면서 "떼아르 드 샤르댕과 어떠게 다르냐고.물론 거시적 입장에서 보면 그 둘이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지요. 최근에 그 둘을 비교한 논문이 나온 것도 있어요. 하지만 샤르댕은 신부면서 고고학의 대가입니다. 물리학이나 수학이나 과학과는 거리가 있지요. 화이트헤드는 라이프니쯔와 비교될 정도의 수학자입니다.
이렇게 화이트헤드와 같이 통합적으로 전체를 놓고 보는 시야가 앞으로도 중요합니다. 인문적 분야, 과학적 분야도 서로 교류되야 합니다. 두 분야가 접속할 때 새로운 창작력과 상상력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화이트헤드의 가장 큰 업적이고 앞으로 우리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 불교적으로는 그 '창조적 정신'을 '평상심'으로 번역하면 어떨까 싶네요. 그럼 교수님의 네덜란드 유학시절과 박사논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네덜란드는 교육제도가 독일·영국·한국과 달라서 교수-학생의 일대일 관계가 중요해요. 내가 유학할 당시에는 일종의 체계철학적 구도 속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즉 과정을 존재론·형이상학·인식론·문화철학·과학철학·철학사 뭐 이런 단계로 나누어서, 단계 마다 구두시험을 보는데, 한 과목에 4-6개월이 걸리고, 과목에 배당된 원전만 해도 5-10권이었습니다. 그걸 마스터해서 시험을 본 거지요. 아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시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회에 보지 못했던 현상학·분석철학·과학철학 이런 것들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학위 논문은 석사논문의 내용이 기본되어서 발전시키는 선에서 문제를 전개시켜 나갔습니다. 일부는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 이렇게 인류의 대가大家들은 '시간'이라는 문제를 중요시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바로 '존재의 문'이기 때문이지요. 그 사람이 시간을 어떻게 봤는냐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사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어떤 시간관 위에 건설되었느냐에 따라 문명의 성격이 드러나고, 종교까지도 그 본질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현대'문명이란 것 자체가 시간개념 위에 건설된 것이라서, 특히 현대의 사상가를 이해할 때는 시간이란 키포인트를 선택하는 게 지름길이 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죠. 시간을 어떻게 보느냐가 바로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불어원본·영역본·일본어본·우리말본 이렇게 네 종으로 준비해놓고 정년 이후에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외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정독해 보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나지 않네요.
하지만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지요. 이렇게 프루스트를 정독해보고,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의 시간관이 문학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 알아보고 싶고, 제임스 조이스나 토마스 만도 철학적 견지에서 깊이 정독해 보면 기본적으로 시간문제와 관련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엘리어트를 보려고 자료를 수집해 놓았는데, 엘리어트는 미국사람으로 영국으로 귀화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러셀과 친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엘리어트가 화이트헤드의 『과학과 근대세계』에 대해 서평을 쓴 게 있어요. 바로 앞에서 말한 제 5장에서 낭만주의 시를 화이트헤드가 인용한 것에 대해 토를 달았더라고요. 그 내용은 '깊이있는 심오한 철학자를 감히 논평하려는 것은 아니고, 시를 인용했는데 그것이 잘 된 것인지, 아전인수격은 아닌지를 알아보려함이다'는 내용이더군요. 이 엘리어트는 '블레들리의 철학연구'로 하버드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어요.
24살에 논문을 썼는데 논문을 제출하고 영국으로 갔던 겁니다. 그는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통보를 받고서는 '그것에 만족한다'며 하버드로 돌아가지 않고 시인으로 머뭅니다.
그런데 화이트헤드와 블레들리도 관계가 있어요. 블레들리는 절대주의 관념론자이고, 화이트헤드는 철저한 실재론적 관점의 사람이지만 화이트헤드가 블레들리의 형이상학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엘리어트도 그런 과정에서 아마도 화이트헤드에게 관심을 가졌겠지요.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미국에서는 그에 관한 소설도 나와있습니다.

○ 선생님은 평생토록 화이트헤드 연구를 하셨는데, 그럼 한국인으로서 화이트헤드 철학을 어떻게 이 땅에 우리 것으로서 소화하시겠습니까?

21세기는 과정적인 사고, 유기체적인 전체론적 사고의 중요성이 갈수록 확산될 것입니다. 클레어몬트 연구소의 데이비드 그루핀 교수는 화이트헤드를 가르켜 '21세기의 철학자'라고 할 정도로, 21세기는 바로 화이트헤드 철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화이트헤드적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현대의 생태적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동양의 전통사상만으로 이런 현대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서양의 전통사상만에 치중해서도 안되지요. 그 접점을 타개해서 새로운 문제의 지평을 여는데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이 상당히 좋은 자극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적어도 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이트헤드의 원전에 대한 이해가 투철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너무 어렵고, 또 번역도 안 되어 왔습니다. 김용옥 교수가 1970년대 말에 미국에서 돌아와서 『과정과 실재』가 번역 안 되어 있는 것을 알고, 한국의 철학수준이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오지 못할 정도인가 하고 탄식을 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번역한 『과정과 실재』가 1991년에 나왔는데, 그 때 제게 김교수가 전화를 해서 '서평을 써도 될 지'를 물어보더군요. '그러라'고 했는데 그 서평이 조선일보에 실렸어요. 그리고 나서는 시중에 그 책이 동이 났다고 합니다.
지금 화이트헤드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원전에 대한 연구와 이해를 거쳐서 얘기해야 합니다. 원전은 보지 않고 제 3자가 해설해 놓은 것을 토대로 논의한다면 해석이 전혀 빗나가는 거지요.

○ 동서 철학의 접점 가능점을 화이트헤드에서부터 풀어가야겠군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미 화이트헤드와 동양사상을 비교 연구한 책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계명대의 이동호 교수는 『한국의 전통적인 사유-한국의 성리학의 전통과 화이트헤드』를 냈고, 고목 스님이란 분은 토굴에서 4년 반을 공부하면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과 불교』를 냈어요. 그 분은 현재 우리학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주역의 생성논리와 과정철학』(박재주)이란 책과 화엄불교과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연결지어 연구한 『과정형이상학과 화엄불교』(스티브 오린 지음/ 안형관 옮김)라는 번역서도 나왔어요. 이런 시도들이 더욱 많이 이루어지겠지요.

○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현대철학의 과제는 무엇입니까?

현대철학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형이상학·분석철학·언어철학 등 많은 사조들 다양하게 넘쳐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남의 나라 전통을 연구하는 게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이 현실이 기반이 되어서 사고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서양이다, 동양이다' 이런 것을 따지는 게 아닌, 철학 그 자체를 해야 하는 겁니다. 철학은 자기의 입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양 것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우리 것으로 소화해서 재창조하는 기틀로 잡아서, 궁극적으로는 우리 나름대로의 '제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사람들과 구별되는 독자성과 창조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 철학의 좋은 점은 자기 철학을 이해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고, 자기의 생각을 딛고 넘어서는 '관념의 모험'의 철학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철학입니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하더라고 그것을 딛고 넘어서는 철학이 바로 제가 요구하는 철학입니다. 한국에서도 참신하고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우리 목소리의 철학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 성천아카데미의 회원과 같이 '고전공부 통해서 인성을 함양하고자' 하는 일반인들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요?

화이트헤드의 책 가운데는 『관념의 모험』, 『사고의 양태』, 이런 책이 그의 철학에 들어가는데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관념의 모험』은 사회학·철학·우주·문명적 관점에서 그의 철학이 전개되지 때문에 읽는 독자들은 그 속에서 시사점과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 나름의 사고를 전개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의 틀이라는게 전통적 사고를 재대로 이해하면서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참신한 다른 문화권의 철학을 이끌어 들임으로써 역동적인 재창조 과정이 일어나는 거입니다. 배타적으로 서양만을, 동양만을 찾는 그런 자세는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21세기의 철학은 고정불변하여 정해진 것이 아니고 재창조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바로 화이트헤드는 이 과정에서 자극제가 되어 스스로에게 문제를 던져주는 것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지금은 영미철학에서 정규과목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21세기 철학을 위해서는 그 필요성이 더욱 인식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81년 독일 본에서 제 1차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는 논문 27편이 발표되었지만, 98년 미국 클레어몬트에서 열린 제 3차 대회에서는 40개 분과에서 화이트헤드 관련 논문이 260여 편이나 발표되었습니다. 세계적 관심과 연구가 상당히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철학자는 여러 가지 유형있는데, 오래 살아남는 철학자는 다른 분야에 얼마만큼 영향을 주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러셀의 경우는 분석철학·언어철학 분야에서는 그 영향력이 대단하지만 인접분야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반면에 화이트헤드는 철학 분야에서 뿐 아니라 신학·교육학·생물학·물리학·사회학 분야 그리고 동양철학, 특히 불교에서까지 비교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 오랜 시간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출처: 「진리와 벗이되어」 2001년 9/10월호·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