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강유원, 회사원 철학자

가/ㅏ 2012. 8. 18. 18:53 Posted by 로드365


‘인문고전 강의’ 강유원 씨
사람 이야기 문제 제기만으로 충분

강유원 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강의, 글쓰기, 번역 작업을 통해 대중의 교양을 높이고 지식을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강단에 오르는 ‘회사원 철학자’였다. 개인 홈페이지에 철학 관련 자료도 공개한다.

▼ 일반 사람들이 고전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나

먹고사니즘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지면 하는 일이 없다. 인문학을 진정한 소프트웨어 산업이라 하는데, 이는 틀렸다. 단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고 또 사람의 한계가 어딘지, 살고 있는 영역이 과연 전부인지 묻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 주로 도서관에서 강연하는 이유는?

도서관은 무료거나 출석을 압박하는 수준의 돈만 받는다. 도서관 강연은 80명, 120명 대단위 규모다. 주부도 많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다. 무상복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밥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제 구청, 시청 등이 나서야 할 때다.

▼ 동네 양아치부터 인기 드라마까지 고전을 설명하며 드는 예시가 과감하다.

인문학이 무엇인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인문학자는 정작 사람에 관심이 없다. 주부들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아들이 사귀는 여자를 못마땅해할 게 아니라 남자와 안 사귀는 것을 고마워하자”고 말한다. 실제 하는 이야기를 강의에 담는 것이다. 나도 ‘어려움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강연에선 일단 알아듣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발전과 이데올로기 어떤 관계를 맺어왔을까요?

“오늘 여러분이 읽어 오신 그람시의 전통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의 정의, 정당 역할, 문화연합의 개념과 필요성 등에서 문제 제기하실 분 있나요?”

3월 8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서교동 ‘다중지성정원’ 건물.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1891~1937)의 철학을 강의하는 조정환(56, 도서출판 갈무리 대표) 씨는 15㎡ 겨우 넘을 듯한 강의실에 모인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강생들은 이미 1시간 30분가량 그람시의 책 ‘옥중수고 이전’과 ‘옥중수고2’ 일부를 나눠 내용을 요약하고 발표한 상태다. 이날 강의 시간에 다루는 내용만 책 100쪽 분량은 족히 넘는다. 하지만 수강생들은 자기가 맡은 부분을 사전에 요약해보고, 강의 땐 전체 내용을 속독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강의에선 ‘돌민’이라는 예명을 쓰는 한 남학생이 밝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딱딱한 철학, 이데올로기 이론 수업을 받는 강의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미소다.

“행복해서 한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그람시가 지식인을 정의하는 부분이 정말 구절구절 마음에 들어서요. ‘지식인은 사회적 헤게모니와 정치적 통치의 하위 기능을 수행하는 지배집단의 대리인이다’란 구절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어요. 그런데 그람시가 이 점을 근거로 ‘국가기구는 능동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동의하지 않는 집단을 합법적으로 징계하는 강제력을 행사한다’고 뽑아낸 구절을 보고 다시 한 번 무릎을 쳤습니다. 아, 행복해요.”

수강생들이 돌민 님의 ‘돌출’ 의견에 한바탕 웃었다. 조씨도 미소를 지으며 “그람시는 자신이 내린 정의와 이론을 세밀한 부분까지 확장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한 여성 수강자도 “조국 서울대(법학) 교수는 최근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읽는 책 가운데 그람시 저서가 있다고 말했어요”라고 받아쳤다.

그람시는 사회 발전에서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기계론적으로 철학을 적용하는 일을 무척 꺼렸던 이론가로 알려졌다. 다중지성의 정원 그람시 강좌의 방식도 그 연장선에 있다. 수강생들이 그람시의 정서를 자유롭고 다양하게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문필가, 과학자로 대표되는 전통적 지식인이 특수 사회계급의 두뇌이자 조직자인 유기적 지식인으로 이동하는 건 우리 시대에서도 큰 의미가 있어요. 음, 앵커를 하다 정당에 입문하거나 성직자가 직접 정치에 몸담는….”
현실과 어우러져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람시 강좌는 그날 밤 계속됐다. 주 1회 수업, 10강에 10만 원.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2011.3.14




강유원이 대학시절 내내 놀기만 하다가 뒤늦게 "철학 공부를 제대로 하고싶다"고 지도교수에게 말했더니 "요하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50회 정독한 뒤 찾아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상·하 모두 1500쪽에 이르는 '서양철학사'를 하루 18시간씩 50회 정독한 뒤 교수를 찾아갔고 공부를 시작해 박사 학위까지 땄다.

그의 직업은 웹 마스터다. "학회에 열심히 나가고, 학회지에 논문써서 그걸 들고 다니며 대학교수 채용에 응하는 것"을 포기한 탓이고 그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학문이나 글쓰기로 생계를 해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3년 문화일보 인터뷰에서다.

"오늘날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손에 물 묻히기를 싫어하며 힘있는 자에게 지식을 팔고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며 기생한다. 지식인들이 기득권자의 편을 들고 이들의 노예로 전락하는 이유다. 나는 영주에게 아부하며 기생하는 르네상스식 지식인이 아니라, 기도와 학문과 노동을 병행하며 자급자족한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와 같이 건강한 지식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는 날마다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한다고 한다. 회사원이라서 다음날을 생각해서 잠을 자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평생 안경알을 갈면서 철학사에 한획을 그은 스피노자를 보라. 어느 대학 교수는 그런 스피노자가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나는 말로만 스피노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안경사 자격증을 따라고 말해주고 싶다." -출처 : 이정환 닷컴



강유원은 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막판에 멋진 말 쓰는 거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거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냥 끝을 맺자니 허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쓰면 안 된다. 허전하더라도 끝을 맺어라. 앞에서 하지 않은 말을 결론에 써서는 안 된다. 결론은 항상 앞에 나온 말들보다 범위가 작거나 같아야 한다. 이걸 어기면 논리적 비약이고, 일상용어로 말하면 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