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6월 11일 경상남도 진양군(2011년 현재 진주시에 편입) 이반성면 길성리 평동부락에서 출생했다.[3] 학력은 대한체육과학대학교(現 용인대학교) 격기지도학 중퇴.
유재석과 함께 '유강 체제'라고 불릴 정도로 200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인기 MC였다.
3.1 데뷔와 초기 활동
은퇴 후 이경규와 인연이 닿아 개그맨으로 전향, 1993년 MBC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한다. 이경규의 증언에 따르면 씨름하던 강호동을 연예계로 데려오려고 찾아갔을 때, 강호동은 계속 안 된다고 사양했지만 막상 자기 집에 불러놓으니 자기 집인 듯이 편하게 자고 갔다고...... 하여튼 이경규의 큰 도움으로 강호동은 방송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개그 스타일에서 한국식 만담과 일본식 만자이에 큰 영향을 받은 이경규로선 보케와 츳코미를 동시에 소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강호동이 탐나는 인재였고 "네가 실패하면 나도 방송 접는다."[4]는 말을 하며 강호동에게 개그맨 데뷔를 도왔다.
강호동의 개그맨 데뷔는 씨름선수가 연예계에 데뷔하는 것은 한국방송사상 최초였기에 큰 주목을 받았고 특채선정 시비도 유야무야 지나갔다. 스포츠 선수 출신이라는 점과 당시 방송가를 주름잡고 있던 이경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무명생활 없이 스타덤에 오른 강호동은 이경규가 제안한 역인 "행님아~"로 대표되는 되는 호동이 역으로 방송가에 정착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강호동을 밀어주는 것이 데뷔하고 곧바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정 게스트/서브 MC로 활약하고 고정 코너를 한두 개씩 맡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반병신인 일밤이지만 당시에는 일요일 예능의 최강자였는데, 주역 코너를 단숨에 몇개씩 푹푹 꽂아줬으니 보통 밀어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경규의 전폭적인 지원은 도가 지나친 수준이었다. 신인에 대한 푸쉬가 지나치자 함께 콩트를 하던 이영자는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날 잘라라"라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으나 이경규의 영향력으로 인해 역으로 이영자가 잘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강호동은 이경규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인식이 박히게 되었고, 결국 이경규와 강호동이 결별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방송상 그렇다는 것이고 현재까지도 이경규에 대해서 강호동은 각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자주 술회했다.
3.2 스타일
쌍벽을 이루는 MC인 유재석에 비해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의 진행방식을 가지고 있으나, 전에 이 항목에 쓰여져 있던 것처럼 김구라 급으로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 애초에 그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면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지표인 시청률이 높게 나올 수가 없다.
안티들은 "1박 2일에서 복불복 등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일단 따지고 본다."라고 까지만, 무한도전도 최소한의 대본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1박 2일 역시 대본이 없을 리가 없다. 그리고 애초에 1박 2일에서 강호동이 수행하는 역할이 '억지부리고 심술부리지만 결국은 당하는 악당'의 느낌이 강한 것도 고려해야 한다.[5]
다만, 유재석이나 다른 MC들에 비해 출연자에게 강한 압박을 주는 것은 사실이고 투박한 진행방식 때문에 세련된 진행, 부드러운 진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은 확실히 단점이다. 특히 젊은 층의 선호도는 유재석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편.
국민MC라고 불릴 정도의 위상을 얻게되고 그 자리를 지키면서 사투리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면 독특한 점. 표준어 사용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은 자기지역 사투리의 대한 자부심(...)이라 치고 나쁘지 않게 볼수도 있으나, 발음이 좀 많이 안좋은 편이라...[6]이건 좀 까일만한 부분이다.
출연자와 대화를 나누며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쓰러지고 뒹구는 등의 과한 반응도 거부감을 준다는 평이 있다. 이 부분 역시 무작정 비판할 게 아니라 리액션이 좋다거나 게스트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 칭찬해줄 만한 부분이고, 실제로 기가 약하거나 내세울 게 적은 신인들의 경우에는 강호동의 버프를 받아 주목 받을 수가 있으니 좋은 점이다.
또 강호동은 무작정 출연자의 색깔을 압살하고 지우는 MC가 아니다. 승승장구가 나오기 전까지 1인의 출연자가 주인공이 되는 토크쇼는 무릎팍도사가 유일했다. 무릎팍도사를 보면 확실히 밀어붙일 때에는 밀어붙이지만, 출연자의 기를 살려주는 부분에서는 기를 살려주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솜씨가 굉장히 뛰어난 MC였다.
출연자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해내는 능력은 이영자와 윤여정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영자의 경우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강호동을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겠다며 앞에서 뭐든지 말하게 된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고,[7] 윤여정의 경우 조영남과의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인터뷰에서 "이야기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도 강호동 씨랑 말하다 보면 다 이야기하게 되더라. 그 사람이 머리가 좋다."라고 했다.
하지만 명언집의 명언을 외워서 사용하거나 주변인들의 신상을 기록해뒀다가 풀어내서 강제로 대화에 참가시키는 식의 방식은 확실히 역효과. '오직 이 방식만을 고집한다'라기보다 자신의 색깔로 설정하고 프로그램마다 한 번씩은 꺼내드는데, 반응이 좋지는 않다. 그러고도 계속 써먹는게 조금은 미스터리.
그리고 억지감동의 중심 인물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쿵쿵따 시절이나 무릎팍도사 초기처럼, 막 들이미는 방송 진행도 무리 없이 해낸 바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 등장한 감동 중심의 무릎팍도사나 강심장, 1박 2일의 감동 연출 등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건 프로그램 컨셉이니 무작정 강호동 비판으로 몰아가는 건 무리수.
한편 자주 모에 캐릭터의 기본인 3인칭화를 사용한다. 이경규가 뼈대를 잡아둔 호동이 기믹의 영향인데 "이 강호동이가!", 혹은 "호동이는요~" 등의 말투를 자주 사용하게 된 것은 데뷔 초기에 하던게 굳어서 그냥 일상이 된 것이란 평을 받고 있다.
더불어 얼핏 보면 마구잡이로 내지르는(?) 스타일로 보이지만 자기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다. 1박2일 촬영 중 미션 성공으로 퇴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막상 받아내고나니 사용을 엄청 꺼려하였고 결국 몇시간 후 우야무야 촬영에 재합류했다.정작 1박2일 하차 논란으로 책임감 이미지도 다 까먹어버렸지만
다만 대인관계의 경우, 하하몽쇼에 출연한 이수근의 발언에 의히면 '사석에선 만난적이 전혀 없다'라고 할 정도로 딱히 같이 방송하는 사람들과 사적으로 친하게 지낸다는 듯한 묘사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이수근의 발언은 해당 발언 당시 옆에서 하하가 '호동이형은 무한도전 멤버들과 자주 만난다'는 발언을 해서 발언 전체가 농담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그나마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1박 2일 녹화 중 멤버들끼리 서로간에 있었던 사적인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이수근 - 이승기의 조기축구, 김종민 - 은지원의 게임 등) 유독 강호동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전무한 수준. 그나마 엄태웅이 영입되면서 좀 생기나...싶었지만 그마저도 벼룩의 간 빼먹기. 자기 관련 에피소드를 되도록 통제하는 것일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방송 외의 사적인 인맥은 잘 만들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8].
상기하였듯 유재석과 인연이 많으면서도 유재석과 극과 극으로 갈리는 스타일은 '각종 단맛쓴맛 다 보면서 연예계 생활을 하며 겸손해진' 유재석과는 달리 '실패란 것을 모르고(상기되었듯 데뷔 초부터 이경규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무명 시절 없이 급속한 성장을 이룩해냈다) 연예계 생활을 하며 자신감을 얻고 살아온' 그의 활동 배경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다만 이 때문에 훗날 구설수로 불거지면서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입고 이것이 잠정 은퇴라는 선택으로 이어진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따라오고 있다.
정형돈도 그렇지만 많이 먹으면서도 의외로 음식을 가린다. 1박2일의 단골 복불복 아이템 까나리 액젓에는 특히 쥐약이다. 물론 애시당초 그걸 잘 먹는 사람이 있을리 없지만, 일단 본인이 뭐든 잘 먹게 생긴 이미지인데다가, 그나마 어떻게 참고 먹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전혀 먹지를 못해서 의외성이 더 크다. 물론 정형돈의 경우 정크푸드 위주의 극단적인 편식이지만 강호동의 경우 미식가에 가깝다.
3.3 안티
안티가 많은 연예인 중 한 명. 쌍벽을 이루는 MC 유재석이 안티가 드문 것에 비하면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인지도가 매우 높은 인물이다보니 안티의 수도 그에 비례해서 불어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경실이 말했듯 거칠게 진행하는 그의 스타일 상 일정 부분 껴안고 갈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여기에 더해 유독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들 속에선 억지감동의 패턴이 자주 포착되어서 웃고 떠들어야 한 예능을 울음바다로 만들어댄다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감동 아이템을 원치 않는 시청자들에게서도 상당한 외면을 받는다. 더군다나 이런 케이스가 한두번만 그런다면 모를까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요즘에는 그나마 덜한 편이지만 힘으로 억지로 진행을 한다던가 되지도 않는 걸 우기는 것도[9] 안티양산에 한몫했다. 유재석의 부드럽고 편한 진행을 생각해보면 왜 안티의 수가 이렇게 차이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그 외에도 비호감적인 인상으로 인해 안티들로부터 '강돼지' 등의 비칭으로 불리기도 하고, 밑에서도 언급할 잠정 은퇴를 선언한 즈음에는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강호돈'[10], '돈호동', (2011년 9월 현재 탈세 의혹과 관련하여) '세금 먹는 돼지', '탈세동'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호불호가 갈린다고 말하는 걸 넘어서서 눈쌀 찌푸려지는 안티도 굉장히 많다. 당장 엔하위키의 이 항목만 하더라도 반달리즘에 가까운 수준으로 난자당한 적도 있다. 유시오페아의 경우, 유재석에 대한 애정의 크기가 그대로 강호동에 대한 적대감으로 환원되는가 싶을 정도.
이들은 유재석과 강호동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대며 터무니 없는 경우로 강호동을 까는 경우도 많은데, 몇 가지만 들면
패밀리가 떴다에서 참돔 조작 방송을 하면 제작진 잘못, 1박 2일에서 씨름 경기 편집을 하면 강호동 잘못[11]
유재석이 깐죽거리고 약을 올리면 캐릭터 잡아주기, 강호동이 구박하면 성격이 더러운 것[12]
유재석의 리액션은 관찰력의 결과, 강호동의 리액션은 오버
무한도전은 젊은 사람들이 보는 인기 있는 방송, 1박 2일은 늙은이들 때문에 시청률만 높지 실상 별로 인기 없는 방송.
등등이 있다. 여기에서 예를 든 것은 모두 이 항목에 강호동을 비판한다는 명목 아래 적혀 있었던 사례들이다. 이외에도 유재석이 과거 신인 시절 시상식에서 거만했다고 고백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발언을 하면 "과거가 뭐가 중요해?"라고 말하지만 강호동이 운동선수 시절과 학창시절 놀기 좋아하고 너무 까불었다고 잘못을 뉘우치면 "그럴 줄 알았어."하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티들이 유재석의 적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싫어하는 강호동과 유재석 본인은 오히려 절친한 사이이며, 같은 아파트 주민이다. 같이 CF를 찍으며 웃고 담배 피는 사진이 찍힌 것도 유명하다.
막상 그가 은퇴를 하자 "꼴좋다."는 식의 반응이 반, "여기까지 오다니 악플러들 이제 속 시원하냐?"는 식의 반응이 반이다.
4 잠정 은퇴
2000년대를 지나 2011년까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들을 이끌던 도중인 2011년 8월 10일 갑자기 강호동이 1박 2일을 이번 달까지 촬영을 마지막으로 하차한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11일엔 제작진 측에서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하차의사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와 있을 때 내려오고 싶다는 의사였다고.결국 본인의 의사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좀 많이 내려와서 흠이긴 하지만(……)
결국 1박 2일은 시한부 폐지의 운명을 맞았으며, 강호동이 이를 사실상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면서 구설수에 휘말렸다. 한편으로 종편행을 위해 방송계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기존 하차 선언을 하고 내려온 인물들의 경우 범법행위를 구사했다던가, 예능에 앞서 본업이였던 다른 스케쥴과 겹친다던가, 육체적 내지 심적 고통이 있었다던가 병풍이라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였다던가등의 납득가는 이유도 있었고, 또 이런 인물들은 대부분 프로그램의 중추신경적인 인물까진 아니여서 이들이 하차해도 프로그램 자체엔 큰 타격이 덜하였었고, 설사 저런 이유로 인해 하차를 고려했었다던 연예인들 중엔 결국 의리와 의지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켜준 선례[13]도 많았었는데, 강호동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국민 MC'였던데다가, 신의와 믿음의 이미지로 똘똘 뭉쳐져있던 그에게서 납득가는 이유도 없이 하차 선언이 터져나오면서 그의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타 연예인 하차 소식 대비 더 크게 와닿는 관계로 그에 대한 비난은 걷잡을수 없이 커져만 갔다.
이까지는 개인의 결정에 관해 비판을 하는 문제였으나, 탈세로 알려진 세금 과소납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최초 보도에는 탈세에 수십억 원의 추징금을 받았다고 나왔으나, 사실은 필요경비 과다 계상에 의한 과소납부이고 필요경비에 대해 세무사와 변호사가 인정해달라고 했으나 국세청은 불인정했다. 결론은 과소납부가 되고 수억 원의 추징금을 내게 되었다. 2011년 9월 15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3년 동안 안 낸 이자까지 포함해서 7억 정도이며, 1년/5억이 넘지 않아 국세청에서의 고소/고발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9월 5일, 추징금에 대한 해명을 했는데 필요경비 과다 계상에 의한 과소납부를 한 것임을 밝혔다.#
강호동의 탈세 혐의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로 이의제기 조정 중인 사건을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 형태로 몰고 간 국세청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여론에 민감한 연예인의 특성상 이렇게 되면 정당한 이의제기였다고 해도 초반부터 지고 들어갈 수 밖에 없으며, 국가기관의 개인정보 유출은 심각한 문제라는 시선.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선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이 국세청을 고소했다.#
그리고 9월 9일 강호동은 위의 탈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연예계 잠정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 소식은 공중파는 물론 MBN 같은 케이블 채널 뉴스들까지 긴급자막과 속보로 보도하였고, 이후 정규 뉴스 코너에서 제대로 취급되는 등 그의 영향력이 대단함을 다시금 보여줬다. 참고로 강호동 본인이 추락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지라 안티와 이미지 추락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최근 며칠 동안 계속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은퇴를 말렸으나 본인은 하루라도 빨리 기자회견을 열고 싶어했다고 한다. 특히 유재석은 기자회견 직전까지 전화로 "형, 이건 아닌거같아" 라면서 은퇴를 만류했다고
강호동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현재 진행 중인 프로그램들은 최대한 제작진과 방송국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하차하겠다고 밝혔다. 은퇴 당시 강호동이 진행중인 프로그램은 KBS 1박2일, MBC 무릎팍도사, SBS 강심장, 스타킹 등 인데. 이 프로그램들 모두가 동시간대 시청률 1~2위권의 인기 프로그램이고, 강호동이 보조 출연자도 아닌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중심인 만큼 강호동의 하차는 프로그램의 폐지까지 바라 볼 수 있는 심각한 파장을 불어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이 중에서 무릎팍도사는 폐지, 강심장은 이승기 단독 진행체제로 이어나가기로 결정됐다. 또 1박2일은 남은 멤버로 2월까지 진행. 스타킹은 이특과 붐이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실제로 강호동의 프로그램 하차 후 각 프로그램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1박 2일은 남은 다섯 멤버로도 2012년 2월까지 그럭저럭 잘 꾸려나갔지만 시즌2로 개편된 후에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빼앗기는 등 상당한 타격이 있었다.[14] 스타킹은 방송의 밸런스를 잡아주던 강호동이 빠지니 프로그램이 완전 꼬였다. 후임MC 이특과 붐이 강호동의 빈자리를 잘 커버해주지 못하다보니 스타킹은 결국 동시간대 시청률 꼴찌로 떨어졌다. 결국 박미선을 투입해 3MC체제로 변경. 강심장 역시 이승기와 패널들이 분투하긴 했지만 차츰 승승장구에게 추격당하더니 결국 승승장구에게 동시간대 1위 자리를 내줬다. 이승기까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하차하고 신동엽과 이동욱이 강심장의 새로운 MC로 투입됐지만 전성기 만큼의 인기는 못누리고 있다. 아예 폐지된 무릎팍도사야 말할 것도 없고.
또한 강호동의 잠정 은퇴에 대한 여론은 몇 가지로 나뉜다.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은퇴까지 할 만큼 큰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동정론이 있으며, 강호동다운 선택이었다며 강호동의 은퇴를 받아들이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잠정'이라는 단서를 남겨 적당히 몇 달 쉰 후에 자연스럽게 종편으로 복귀하려는 수작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존재한다. 또한 위에 서술한 동정론을 바라고 '잠정'이 붙은 은퇴를 선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서린 목소리도 있다.
탈세 의혹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인 강원도 평창에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최초 구입은 2009년이긴 하지만, 개최 확정 후인 2011년 추가로 구입한 데다 이때 구입한 액수가 더 커서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는 중이다.
더군다나 구입한 지역이 농장이라도 할 게 아닌 이상 구입 의미가 없는 지역인 대관령인데다 투기가 아니라 투자 라고 해명하면서 여론은 급속히 나빠지는 중이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넓은 의미의 투자로 봐줄 순 있다는 여론이 일부 존재했으나, 구입한 토지가 농지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빼도박도 못하게 투기로 100% 확실시되었다. (농지를 구매하려면 그 사용 용도를 밝혀야 하는데 수천 평을 구매하면서 목적이 감자 농사 라고 써냈다. 이젠 감자 농사 지을 시간은 있겠지만 2년 전에 구입하고, 1주일 내내 예능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며, 땅 매수 시점 등이 올림픽을 노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참고로 이런 것은 높으신 분들이 인사 청문회 때 밝혀진 땅 투기의 전형적 수법이기도 하다.)
#, 사설 참조
잠정 은퇴 이후, 탈세 사건까지 밝혀져 이미지 실추가 많이 된 상황이지만 아직 그의 영향력은 방송계 곳곳에 남아있다. 그가 출연했던 CF들은 여전히 멀쩡히 방영되고 있다.특히 잇몸이 튼튼한 약 1박 2일에서는 잊을만하면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그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곤 한다. 원숭이와는 다르다, 원숭이와는!
거기에 이전부터 있었던 조폭연루설에 연장된 야쿠자 행사에 참석한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2011년 12월 1일 동아일보 소속의 종편방송 채널A의 개국 첫 뉴스로 강호동 야쿠자 연루설’을 방송한 것인데, 보도에 따르면 1988년 11월14일 강호동 나이 19세일때 일본 오사카의 한 일식집에서 열린 일본 야쿠자와 국내 폭력조직 칠성파의 의형제 결연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강호동이 평소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부른 씨름계의 대부 김학용(2007년 별세)씨도 있었다고 채널A는 보도했다. 당시 강호동은 고등학교 3학년 신분이었고, 프로씨름계에 막 데뷔했을 때였다. 강호동 측은 2일 “당시 감독과 코치를 따라가 밥을 먹은 자리였을 뿐”이라며 “고3이 뭐를 알았겠는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몰랐는데 조폭과 연루된 것처럼 악의적으로 보도됐다”고 어이없어 했다.
여기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조폭 가족의 결혼식장에 참석하면 그 사람도 조폭이냐는 입장과, 설마했는데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는 반응.
물론 본인이 어떠한 곳인지 모르고 참석했다고 하고 심지어 20년도 더 된 일이다. 이후 이와 연장된 불법행위 등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이제와 새삼 그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일반인은 조폭, 심지어 야쿠자와 엮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보니 전체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사실에 이미지 손상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상황이다.
일단 결론은 그의 학창시절이 일반학생과 달리 거칠었을지언정[15] 당시 고3학이면서 막 씨름선수 데뷔할 시점에 스스로 판단해 일본 야쿠자 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의견인듯 하다.[16]
최근에 은퇴 뒤에 식당을 하면서 큰 액수의 수익을 얻고 있다는 기사가 뜨자 또다시 반응이 갈리고 있다. 안티들을 비롯한 악플러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탈세한 게 많으면 저렇게 되는 걸까?" 라는 반응이고 팬들의 경우는 "역시 강호동이다. 무얼해도 성공하는구나" 라는 반응이다.
5 트리비아
언제나 똑같은 모양의 스포츠 머리스타일 때문에 옛날에 조폭이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무근이다. 씨름에서 은퇴하곤 석 달간 이경규에게 수업받고 바로 개그맨이 되었기에 공백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깨 출신이라는 루머가 팽배 한 것은 학생시절에 소문난 껄렁패였기 때문이다. 케이블 방송사 취재 프로그램과 급우들의 인터뷰, 바로 옆학교에서 학교를 다닌 골키퍼 김병지의 인터뷰 등을 종합해보자면 학교간의 패싸움에도 참가하는 껄렁패였다. 개중에는 학교에 경찰차가 오면 십중팔구 강호동 때문이었다는 인터뷰도 있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랑 시비가 붙었을 때 "마 우리 호동이 불러온다."하면 알아서 도망갈 정도였다는 것이 있으며 삥뜯겼다는 체험담을 늘어 놓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스포츠 머리를 20년 가까이 유지 중인데, 항상 일정하게 보이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서 조금씩 자른다고 한다. 다만 세월이 흐를수록 머리숱을 예전보다 점점 더 많이 밀어내고 있다. 방송 새내기 당시의 머리숱과 1박 2일 당시의 머리숱을 비교하면 분명 똑같은 스포츠 머리임에도 완전히 다른 헤어스타일의 느낌. 2009년 이전이 잔디밭이였다면 그 이후로는 장기에프(……).
최초의 스포츠맨 출신 개그맨이다 보니, 데뷔 초 여성편력에 대한 소문이 끝없이 따라다녔다. 유명한 것은 당시 김민종과 연인이었던 이승연과의 성적 관계가 있는 소문이다.
이 루머는 강호동과 이승연의 전화통화에서 살짝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 이승연은 오해를 풀어달라는 강호동의 부탁으로 무릎팍도사에 출연을 약속했지만 출연은 하지 않았다.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로 '단시간 내에 가장 많이 악수를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93년 대전세계박람회(엑스포)에서 세운 기록.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쇼타콘으로 불리고 있다. 혹자는 디시의 사진을 보고 양성애자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승기 : 호, 호동이형... 거긴... ANG?
C대에 모 수업에 정기적으로 특강을 오는 강심장의 박상혁 PD에 의하면 강호동은 이승기와의 투톱 체제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강호동이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나는 혼자 하는게 편하다.' 라는 투로 말했다고 한다. 이에 박상혁 PD는 강호동 단독 체제를 준비 중이었지만 이후 첫 녹화가 들어가기 며칠 전에 강호동으로 부터 "승기를 잡아 도!" 라는 연락이 왔고, 박상혁 PD는 서둘러서 이승기 소속사로 출동. 거기서 바로 계약을 하고서는 이승기를 녹화장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이승기는 무슨 프로그램인지도 모른채 그냥 끌려와서 첫 녹화를 마쳤다고..
6 주요 프로그램
1박 2일 (KBS2)
강호동의 천생연분 (MBC)
강호동의 초전박살 (KBS2)
일요일은 즐거워 (KBS2)
캠퍼스 영상가요
MC대격돌 1, 2기
공포의 쿵쿵따
돌격! 앞으로
스타킹 (SBS)
야심만만 (SBS)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 (MBC)
X맨을 찾아라 (SBS)
강심장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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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2] 2011년 잠정 은퇴 선언 이후.
[3] 2002년에 출연했던 KBS 예능 프로그램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명코너였던 'MC 대격돌 - 공포의 쿵쿵따'의 13회분에서 '감귤즙'이라는 단어 설명을 위해 자신이 출생했던 고향 주소를 얼떨결에 직접 언급한 적 있다.
[4] 물론 나중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는 강호동이 실패해도 자기는 은퇴 안했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었지만......
[5] 사실 유재석도 방송 도중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엄청 따지고 보는 스타일이다. 특히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등에서 자주 드러나는데, 유재석이 불리한 결과에 항의하면(주로 유행어(?)인 "에~이~"를 많이 구사한다) 주변 멤버들이 태클을 걸거나 그냥 강제로 억누르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6] 몇몇 음가는 아예 못내는 경우도 있다.
[7] 더불어 왜 루머가 많은지 알겠다는 묘한 발언도 남겼다.
[8]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방송에서 만난 유재석, 신정환, 박수홍, 이휘재등과는 사적으로 매우 친한걸 보면 그냥 또래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9] 이건 쿵쿵따 시절에 보면 많이 보인다.
[10] 참고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공장장, 부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실제 사람 이름이다. 자칫 잘못 사용하면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별명.
[11] 다만 참돔 조작의 주체는 제작진이었고, 씨름 경기 조작의 주체는 강호동이었다.
[12] 유재석은 약한 남자의 대명사였고, 강호동은 강한 남자의 대명사였다. 공포의 쿵쿵따만 봐도 힘으로는 일방적으로 강호동이 유재석을 억눌렀다. 약한 사람이 약 올리는 것과 강한 사람이 약 올리는 것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받아들일 때 느낌이 다를 수 밖에 없다.
[13] 이를테면 박명수. 딸 민서의 출생 이후 좋은 아빠로서의 길과 좋은 연예인으로서의 길 양 쪽 다 신경쓰려다가 결국 무력감과 허탈감, 여기서 온 경미한 실의감에 빠져서 상당한 슬럼프를 겪은 바 있다. 그러나 결국 진행하던 모든 프로그램들속에서 하차한다 말 한마디 없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냈다.
[14] 물론 KBS의 파업 여파와 동시간대 런닝맨의 상승세 같은 외부적 요인도 있다
[15] 반건달에 몇번이나 패싸움에 참전하고 일반학생들의 삥을 뜯는데다 조폭과 호형호제했었다는 루머 등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16]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의견은 강호동이 1박2일을 그만두는 과정에서 생긴 잡음+세금탈루로 물의를 빚은 상황에서 종편으로의 이적이 어려워지자 채널A 측이 강호동에 대한 보복성 기사+노이즈 마케팅을 취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