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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의 신 기타노 다케시가 만든 <자토이치>

"<자토이치>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갖추게 된 것도 자신의 기획이 아닌 외부의 기획이라고 하는 '거리감'이 기타노 자신과 상승작용을 낳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토이치>에서는 배우로서의 비트 다케시를 포함해, 기타노 다케시에게서 일종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여유가 <자토이치>를 훌륭한 오락영화로 만들어 낸 힘이었다고 생각된다."

비트 다케시의 이치는 피차별자가 아닌, 자유인에 가깝다. 이는 가쓰 신타로와 기타노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면서, 본질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타노 다케시판 <자토이치>와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시리즈의 차이점이 생기며, 동시에 기타노의 <자토이치>와 <요짐보> 사이의 공통점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산주로도, 자토이치도 방랑하는 자유인인 것이다.

가네자와 마코토

 



영화광이 아닌, 평범한 일본인이 알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는 ‘코미디언’이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정상을 지키고 있는, 아니 정상이라는 말조차 이젠 의미가 없는 ‘엔터테인먼트의 신’. 한때는 일주일에 10개가 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사회를 봤고, 지금도 거의 매일 하나 정도에는 나오고 있다. 2년 전 일본에 가서 인터뷰를 한 뒤, 가타노 다케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잠깐 방청했다. 기타노 다케시는 능청스럽게, 아까 한국의 기자들을 만났는데 그때는 진지하고 어려운 이야기만 했다, 지금은 이렇게 바보짓만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등의 농담을 늘어놓았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타고,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아도 기타노 다케시가 최고의 코미디언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일본인이 알고 있는 다케시는 여전히 코미디언이다.


자신의 위상에 ‘복수’하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인생은 그런 선입견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했다. 1983년 오시마 나기사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 출연한 다케시는, 개봉한 뒤 혼자 극장으로 갔다. 아무도 알지 못하게 불이 꺼진 뒤 들어간 기타노는 자리에 앉아 관객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화면에 기타노가 나올 때마다 관객은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심각한 영화였고, 진지한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기타노는 일본인이 알고 있는 가장 재미있는 코미디언이었을 뿐이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얼굴이 벌개진 기타노는 ‘복수’를 다짐했다. 감독 데뷔작인 <그 남자, 흉포하다>는 원래 후카사쿠 긴지가 연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 기타노 다케시가 대신 감독을 맡게 되었다. 어떻게 영화를 찍는지 몰랐던 기타노는 스탭의 도움으로 촬영을 시작했지만, 다툼의 연속이었다. 촬영감독이 이렇게 찍어야 한다고 말하면, 기타노는 완강하게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기타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찍었고, 그것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기타노는 초기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기존의 일본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없다고 말해왔고, 지금도 자신은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라고 자처한다.

기타노 다케시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거의 웃지 않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잔혹하고 비정한 세계를 그리는 것은 자신의 ‘위상’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스크린 속의 자신을 보고 웃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복수’. 영화감독으로서 기타노는 자신만의 길을 걸었고, 결국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다. 여전히 일본의 대중은 기타노를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지만, 해외에서는 위대한 거장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모든 것을 얻었다. 직업으로서 코미디언이 돈과 사회적 명성을 가져다주었다면, 영화감독을 통해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명예를 얻은 것이다. 이제는 복수나 목표가 더이상 필요없는 시점이다. 그렇다고 기타노가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막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비> 이후의 기타노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기타노 다케시가 <하나비>로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이 벌써 7년 전이다. 그뒤 <브라더> <기쿠지로의 여름> <돌스> 그리고 <자토이치>를 만들었다. <브라더>는 기타노 스타일의 영화에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섞어놓은 듯한 작품이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담은 소품이다. 이후 기타노는 아버지 이름인 기쿠지로를 제목으로 한 드라마 <기쿠지로>를 만들기도 했다. <돌스>는 형식주의에 빠진,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인형극의 장면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보겠다는 발상은 독특하지만 거기에는 기타노 다케시의 서명이 없다. <소나티네>와 <하나비>의 실존적인 방황과는 달리 <돌스>의 방황은 이유없는 도피이고 방황이다. 그리고 <자토이치>. 일본의 한 영화평론가는 <자토이치>를 ‘웰 메이드 오락영화’라고 말했다. TV에서는 오락을, 영화에서는 예술을 지향했던 기타노가 변한 것일까. 그러나 잘 살펴보면 <하나비> 이후 기타노의 영화는 점점 다양해지고 느슨해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 추억, 형식주의, 엔터테인먼트 등 기타노는 자신의 영화에 여러 가지를 접목시키고 있다. 그건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일까? 영화감독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사라지고, 그저 만들고 싶어지는 것들에 자연스럽게 손을 대는 것은 아닐까?



기타노 다케시+비트 다케시=<자토이치>
<자토이치>는 기타노 다케시가 처음으로 각색을 한 영화다. 기존의 작품들은 모두 기타노가 직접 스토리를 쓰고, 인물을 만들었다. 멜로영화인 <돌스>까지도 기타노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그 덕에 가부키의 ‘사랑의 도피’를 잘못 이해했다는 비판까지 들었다. ‘자토이치’는 전후 일본에서 만들어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의 하나다. 원작소설에 만화, 가쓰 신타로라는 배우가 출연한 수십편의 영화가 일본인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대중의 영웅을 다시 스크린으로 끌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오래전 구로사와 아키라에게서 ‘자토이치 역이 어울릴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아사쿠사에 사는 절친한 친구가 부탁을 하여 만들어진 기타노의 <자토이치>는 과거의 캐릭터와 상당히 다르다. “<자토이치>는 지금까지 몇편이나 만들어졌기 때문에, 얼추 그 형태가 정해져 있다. 그것에 따라간다면 편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할 수야 있나. 이미 있는 테두리 안에 ‘웃음’을 넣고, 조금 강렬한 결투신을 보여주고, 막판에는 다른 시대극들이 그런 것처럼 군무(群舞)신을 보여주자, 고 대략의 윤곽을 생각했다. 꽤 만만치 않은 작업으로 보였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어떻게 다른 느낌으로 보여줄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재밌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반이었다.”

<자토이치>에서 두드러진 것 하나는 웃음이다. <자토이치>는 사무라이영화이지만, 그 안에는 갖가지 코미디 쇼의 형식들이 담겨 있다. 기타노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아사쿠사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쇼부터 대중을 휘어잡았던 TV의 버라이어티 쇼까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비트 다케시로서 경험해온 모든 쇼의 패턴을 짜넣’은 것이다. 과거의 영화에서는 의식적으로 코미디 요소를 탈색시켰던 기타노 다케시는, <자토이치>에서 ‘비트 다케시’를 자유롭게 춤추게 한다. <자토이치>의 코미디 부분은 TV에서 함께 공연했던 과달카날 다카가 주로 연기하지만, 눈꺼풀에 눈을 그려넣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등 기타노 자신도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웃음에 싸늘한 칼싸움 장면과 농부와 목수가 일하는 풍경을 익살스럽게 엮어넣은 <자토이치>의 편집은 절묘한 리듬감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자토이치>는 기타노 다케시의 ‘예술영화’가 대중에게 손을 건네고 말을 거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오락’영화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렇게 평하고 있다. <자토이치>에서 <소나티네>와 <하나비>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깨에서 힘을 풀고, 한판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토이치>는 가볍고 경쾌하다. “<자토이치>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갖추게 된 것도 자신의 기획이 아닌, 외부의 기획이라고 하는 ‘거리감’이 기타노 자신과 상승작용을 낳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토이치>에서는 배우로서의 비트 다케시를 포함해, 기타노 다케시에게서 일종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여유가 <자토이치>를 훌륭한 오락영화로 만들어낸 힘이었다고 생각된다”는 현지의 평은 설득력이 있다. 그 여유는 <자토이치>라는 소재 자체에서 오는 것과 동시에, 기타노의 영화에 대한 마음가짐에서도 온다. 기타노는 늘 영화가 자신의 ‘장난감’이라고 말해왔고, 늘 뭔가 새로운 것으로 장난쳐본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97년 이후,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역사적 캐릭터를 해체하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를 리메이크하면서, 기타노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에 도전한다고나 할까. 시대극의 ‘시간’을 지워버리고, 머리까지 금발로 바꿔버린다. 아니 가장 중요한 신체적 특징까지 초월해버리고, 자토이치의 사회적 존재까지도 틀어버린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는 차별받는 약자의 편이었고, 그런 부류에 근접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런 차별과 차별받는 자의 위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그런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늘 허리가 굽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유랑하는 자유인이다. 동류의식으로, 억압자에 대해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승부를 위하여 싸운다. 근원을 따진다면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보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쓰바키 산주로와 닮았다. “나는 이 영화에 나오는 녀석들 중에 제일 나쁜 건, 자토이치라고 생각한다. 이 녀석만 그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결과적으로 마을 사람들과 백성들이 기뻐했기 때문에, 그나마 통할 수 있었을 뿐이다. 결국, 이곳에서 자토이치는 최후까지 외부자인 것이다.” 그렇게 기타노 다케시는 잔혹하다. 그들을 ‘위해서’라고, 기타노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다른 목적이었지만, 우연히 합치된 것뿐이라고 냉철하게 부연한다. 하지만 그런 잔혹함은 또한, 시골 아낙네에게 안마를 해주고, 위험에 처한 남매를 구해주는 상냥함과 등을 맞대고 있다. <소나티네>에서 해변으로 간 흉포한 야쿠자들이 천진하게 놀이를 하는 모습은, 기타노가 만들어낸 캐릭터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자토이치는 ‘잔혹한 상냥함’으로 마을 사람들을 긴조 일당에게서 구해내지만, 거기에는 어떤 대의명분이나 울분과 분노 같은 것이 없다.

새롭게 만들어진 <자토이치>는 다케시만의 스타일로 변주되어 있다. 우리에겐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사무라이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자토이치의 검술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쓰 신타로가 칼을 휘두르는 방식을 보면 위부터 휘둘러 떨어뜨리는 느낌이지 않는가. 검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전진하면 상대역은 쓰러진다. 당시에는 이 정도로도 괜찮았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전혀 ‘베인다’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과도한 접근전으로 설정해 칼을 빼는 순간 삭 베어지는 느낌을 냈다.” 기타노 영화의 액션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한순간 폭발하는 것이었다. 불꽃놀이처럼, 타오르다가 순간 터져버린다. 일상적이지만, 너무나 잔혹하여 보는 순간 흠칫 놀라게 되는 듯한 폭력. 그것은 갑작스럽고, 당돌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진다. <하나비>에서 젓가락을 상대의 눈에 그대로 꽂아버리는 장면처럼. 그 풍경은 <자토이치>의 도박장 장면으로 연결된다. 속임수를 쓴 상대의 손을, 말 한마디에 이어 바로 잘라버린다. 너무 돌발적이어서 놀랄 시간조차 없다. 기타노 다케시는 과거의 시대극을 보면서 ‘속도’에 불만을 느꼈고, <자토이치>에서 속도를 한껏 올린다. 모든 승부는 돌발적이고, 순간을 잡아채는 것이다. 떠돌이 무사인 하토리와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첫수에 상대를 어떻게 가를 것인지, 어떻게 막고 역공을 가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영화 속에서 보여줄 검술의 합을 생각해왔다는 다케시의 말처럼, <자토이치>의 칼싸움 장면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세상을 융화시키는 축제

코미디언은 일상의 작은 일들을, 자기만의 형식으로 변형시킨다. 비웃음을 사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던, 그저 어이없어 웃던, 그것 모두가 우리 현실의 뒤틀린 반영이다. 또 하나의 판타지다. <자토이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탭댄스는 유쾌한 축제의 장으로, 모든 것을 융화시킨다. “옛날 시대극을 보면 라스트신에는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노래와 마을축제의 춤장면이 나온다. 이번에 ‘시대극에 들어가는 필수요소들’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전부 넣어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은 꼭 마쯔리로 하고 싶었다. 그때, 탭댄스의 이미지가 떠오른 것뿐이다. 그냥 갑자기 탭댄스가 나오면 된다는 느낌이 있으니까, 전주로서 종소리나 목수들의 목재를 두드리는 소리, 빗소리 등을 퍼커션 삼아 전체적인 리듬을 만들었다. 엔딩부터 리듬을 거꾸로 세어 전체를 만들어나갔다는 느낌이다.” 탭댄스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있다. 논 버벌 댄스는 심장의 움직임처럼, 격렬하게 관객을 동요시킨다. 그 안에는 원초적인 카오스가 존재한다. <자토이치>의 마지막을 보고 있으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로 수렴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남매의 복수도, 떠돌이 무사의 욕망도, 자토이치의 무심한 칼도 활기찬 탭댄스 안에서 하나가 된다. 사랑도, 증오도, 분노도, 결국은 하나로 돌아가버린다. 기타노는 우리 인생의 비의(秘意)를 알고 있는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한없이 자유롭다. 이제는 정말, 자신이 놀고 싶은 대로 논다는 생각이 든다. 더이상 누군가에게 ‘감독’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생각도 없고, 더이상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을 욕망하지 않게 된 상태에서의 오락. 또한 기타노는 <자토이치>에서 사무라이영화, 혹은 <킬 빌>이 오마주를 바친 참바라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준다. CG와 홍콩 액션이 양분한 액션영화의 흐름에서, <자토이치>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자토이치>는 즐겁고, 흥겹다. 마지막의 탭댄스 군무는, 미리 예견된 것이다. 논에서의 장난과 목검으로 치고받는 장면들은 모두 리드미컬하게 영화의 흐름을 잡아챈다. 그 잔혹한 살육이 벌어지는 한편에서, 그렇게 흥겨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축제란, 그렇게 잔혹한 현실을 승화시키는 해방구 아니던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이제 그 피안의 땅으로 달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봉석 lotusid@hani.co.kr






구로사와가 말했다.
“다케시, 난 자네 영화의 무례함이 좋아,
계속 그렇게 만들어!”

<자토이치>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 서면 인터뷰



<자토이치>는 원작, 그것도 대단히 유명한 원작이 있는 영화다. 왜 <자토이치>를 영화화하게 되었는가.

이 프로젝트는 기대하지도 않게 사이토 치에코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분은 20년도 더 전에 내가 아직 코미디언으로 초창기였을 무렵, 아사쿠사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나의 조언자였다. 그녀는 또한 <자토이치>의 가쓰 신타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몇년 전, 그녀는 나에게 <자토이치> 후속편을 만들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 제안은 꽤 흥미롭게 들렸는데, 그 이유는 내가 항상 원했지만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시대극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내가 직접 주연을 맡기 원하는지를 물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내가 가쓰 신타로를 대신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사이토 치에코는 거절의 응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들어 수락했다. 내가 영화를 만들되, 검술에 달인이고 주사위 노름의 천재인 맹인 안마사 자토이치라는 주요 캐릭터만 남기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겠다고…. 모든 다른 것들은 온전히 나 자신의 창조력에 맡겨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한국인에게 자토이치는 낯선 인물이다. 원래의 자토이치와 당신이 만들어낸 자토이치가 어떤 인물인지, 어떻게 다른지 말해달라.

자토이치는 일본 시대극의 영웅들 중에서 진정으로 가장 대중적이다. 나는 일본에서 서른을 넘긴 모든 사람들이 자토이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자토이치는 만들어진 지 10년이 넘은 마지막 영화 속의 그다. 그리고 현재 일본 젊은이들은 자토이치란 인물과 더이상 친숙하지 않다. 내가 이미 말했듯이, 나는 이 영화를 전적으로 내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나의 시나리오는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영화들의 스토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배우로서, 나는 가쓰신(가쓰 신타로) 버전의 자토이치를 흉내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버전을 창조하고자 한 것이다. 가쓰신의 자토이치는 검은 머리에 단색의 기모노를 입고 갈색 지팡이검을 든 사람이다. 그의 시대에 이러한 설정이 잘 먹혔다 하더라도, 나는 시각적으로 도드라지게 다른 나만의 자토이치를 만들고자 했다. 나의 자토이치는 실제로 매우 별난 사람이다. 그는 금발머리에 부드러운 다크블루 기모노에 핏빛처럼 붉은 지팡이검을 지녔다. 또한 정신적인 면에서도, 나의 자토이치는 다른 어떤 캐릭터들보다 감정적으로 훨씬 분리되어 있다. 가쓰신의 자토이치는 대개 선하고 순수한 마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나의 자토이치는 완전히 착한 사람들과 섞이지 않는다. 단지 그는 나쁜 놈들을 처단할 뿐이다.


전작인 <돌스>는 형식의 틀을 파고들었다는 느낌이다. 반면 <자토이치>는 완전히 통상의 형식을 벗어나버렸다. 단적으로 자토이치의 금발처럼. <자토이치>는 전작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누구는 기타노 최고의 오락영화라고도 하던데.

명백히, 이번 작품은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내 전작들과 완벽하게 다른 영역 안에 있다. 사람들은 시대극은 현대물보다 의상이나 로케이션 등에서 그 시대적 사실성에 충실하기 위해 훨씬 더 엄격함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부여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시대극에서 훨씬 더 창조적인 자유를 느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시대극에서는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모든 세부적인 것들은 실제 이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로는 현대물보다 더 허구적이다. 예를 들면,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옛날 옛적이라는 것을 암시해줄 수 있는 그 시대 스타일을 복제해 만든 가발을 써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자토이치의 기본 전제- 맹인 안마사인 자토이치는 동시에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비밀스런 지팡이검을 뽑을 수 있는 검술의 달인이다- 를 그것 자체로 충분히 완전한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뽑아낼 수 있을 만한, 앞뒤가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얘기로 만들었던 것이다.


과거 당신 영화의 주인공들은, 일상에 지쳐 마침내 폭발해버리는 타입이었다. 그런 점에서 <자토이치>는 전혀 다르다. <자토이치>에서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은.

자토이치는 실제 무적의 사나이다. 어느 누구든 대적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그는 맹인이다. 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강한 캐릭터가 되어선 안 된다. 나는 결국 자토이치가 가진 ‘무적’, ‘강함’의 비밀을 “이건 영화다, 뭐!”에 두기로 결심했다. 나는 심지어 영화의 결말에 가서는 “자토이치가 결국 장님이 아닐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 자토이치가 당신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그것이 그의 역할이다.



검으로 싸우는 장면의 안무를 직접 했다고 들었다. 다른 사무라이영화의 검술 장면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검술장면을 위한 안무가가 있었지만, 나는 거의 모든 검술 대결신의 안무를 내 자신이 구상했다. 오기야 집에서 두 게이샤와 긴조 하수인들과의 대결신을 제외하고는. 나는 검술 대결장면들이 이전의 영화들에서 사용된 동작들의 조합들처럼 비슷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전문가들에 의해 잘 짜여진 결투장면들과는 무언가 다르게 하고 싶었다. 나는 검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결투를 싫어한다. 결국 이러한 결투장면에는 쨍그랑, 댕그랑거리는 쇳소리만 남는다. 운 좋게도, 자토이치는 보통 단칼에 일격을 가한다. 그래서 나는 정형화된 타입의 검술 대결장면을 피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하토리 역의 아사노 다다노부에게는 수년간 내가 축적해왔던 풍부한 기교를 부릴 수 있게 허락했다. 아사쿠사의 코미디 장면에서, 나는 검술신들을 많이 연습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마음속에 솜씨 좋은(기략이 풍부한) 검술 대결 안무- 항상 내가 훗날에 시대극을 만들 때가 온다면 사용하고자 한- 에 대한 몇몇 생각들을 묻어두었다.

동작과 액션에 관해서 나는 CG와 시각효과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능하면 나 자신만의 검술장면 묘기를 직접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너무 좋아하니까. 원작과 영화에서, 자토이치는 그의 지팡이검을 뽑을 때, 백핸드로 잡는다. 이것은 내가 검을 사용할 때 상당한 제약을 주었다. 나는 액션에서 몇 가지의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잘 구성된 장면으로 검술신을 잡아내기 위해서, 나는 이 장면들을 신체적으로 부자연스런 자세로 해내야 했다. 내 손목, 팔꿈치, 어깨가 비틀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또한 연습도 많이 해야 했다.  


빗속에서 싸우는 장면이 구로사와 아키라의〈7인의 사무라이〉의 오마주라고 들었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영향받은 감독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장면을 오마주한 이유는.

말하기 좀 곤란한데, 그 장면이〈7인의 사무라이〉에 대한 오마주라고 처음 밝혔을 때 난 그저 농담으로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구로사와의 딸인 ‘구로사와 가즈코’가 이 영화에서 의상을 담당했고, 세트 촬영을 하는 동안 나에 대한 이런 농담이 퍼졌다. 리허설을 하고 촬영을 하는 동안 가즈코는 의상을 모니터하느라 내 옆에 서 있곤 했다. 그 빗속의 검투신을 촬영할 때 난 그녀가 바로 내 옆에 있는 것을 알아챘다. 난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그녀를 향해 돌아서서 “어때? 이게 나의 당신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표시지.〈7인의 사무라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말도 안 돼요! 농담이시죠?”라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난 농부 소년이 사무라이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소리지르며 주위를 뛰어다니는 ‘오우메’의 집신을 촬영할 때에도 이런 농담을 했다. 난 가즈코에게 “이것은 구로사와 감독에 대한 내 두 번째 존경의 표시오. <도데스카덴>!”이라 했고 그녀는 또 웃었다.

진지하게 말해, 구로사와 감독은 주로 잘 짜여진 검투신을 찍었고 이것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구로사와 감독의 방식은 엄청난 스태미나를 필요로 했고 난 그 점에서 그를 존경했다. 그를 우연히 몇번 만났었지만 그는 내게 늘 친절했고 만날 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는 내게 “다케시, 난 자네 영화의 무례함이 좋아. 계속 그렇게 만들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는 내가 우러러보는 몇명의 감독 중 한명이다.




마지막 장면의 탭댄스는 정말 유쾌하고, 흥겨웠다. 당신이 이 장면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초기에서부터 기획된 것이었다. 스탠드업코미디로서, 난 종종 시대극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느낀 건 항상 결말이 똑같이 웃기게 끝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영웅이 마을을 떠나 논가를 걸을 때에는, 쟁기질을 하던 농부들이 갑자기 춤과 노래를 시작했다. 내가 첫 번째 시대극을 만들게 되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시대극을 만드는 데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나만의 방식으로 연출하는데 안 될 게 뭐가 있겠나?” 하는 것이었다. 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재미있지도 않은, 아마추어 여럿이 일본 전통춤을 추는 것을 또다시 만든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탭댄스를 추면 어떨까?!” 생각이 머릴 스쳤다.

몇년 전만 해도 난 진 켈리 타입의 탭댄스를 췄다. 하지만 음악 없는 그레고리 하인즈의 공연을 보았을 때, 난 너무나 놀랐다. 몇년 전, 난 ‘The Stripes’라는 일본 탭댄스 팀을 알게 되었다. 난 그들의 쇼를 보았고 그 춤에 완전히 매료되어버렸다. 난 내가 배운 전통 스타일과 그들의 스타일이 얼마나 다른가를 알고 위압감을 느꼈다. 그것이 내가 자토이치에 ‘The Stripes’를 출연시키게 된 동기이다.

그래서 난 시대극에서 전통 축제춤을 현대화하여 표현했다. 난 일본 최고의 탭댄서들에게 전통의상을 입히고 나무굽이 달린 게다를 신겨 농부와 목수의 모습으로 힙합리듬에 맞춰 최신식 탭댄스를 추게 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하나비>로 그랑프리를 탄 뒤, 당신의 영화는 더욱 자유로워진 것 같다. 누구는 당신 영화가 변했다고도 한다. 당신은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가, 혹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자토이치는 지난해에 일본에서 개봉했고, 엄청난 흥행에도 성공했다. 나에게 가장 손쉬우면서도 분명했던 선택은 바로 자토이치 후속편을 만드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차기작이었다기보다, 내 경력을 안전하게 구하는 생명보험에 드는 것과 같은 것이었는데, 이러한 일을 나는 완전히 내 아이디어와 창조성이 고갈되지 않는 한 굳이 원하지 않는다.

엔터테이너로서나 예술가 아니면 나를 규정하는 다른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나의 모토는 “종잡을 수 없는”이고, 대중들이 항상 나를 규정짓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다음 영화에서는 자토이치의 완전 반대 극지점에 있는 무언가를 했으면 한다.

김봉석 lotusid@hani.co.kr






나무랄 데 없는 즐거운 오락, <자토이치>  




Key 눈감고도 피를 부르는 맹인 검객, 부모의 원수를 찾아 칼을 품은 게이샤 자매, 관직에서 쫓겨나고 아내까지 잃은 사무라이, 야수처럼 잔인한 악당들. 이런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매우 웃기는 영화.
<자토이치>는 1962년부터 26편의 시리즈영화로 만들어졌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1997년 사망한 배우 가쓰 신타로가 그 시리즈의 주연이었고, 27년 동안 자토이치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쓰만의 캐릭터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기타노 다케시는 그 완고한 영토를 허물어뜨렸다. 맹인이고, 도박의 명수고, 검술의 달인이라는, 단 세 가지 특징만 물려받은 기타노 다케시는 코믹하고도 단호한, 특유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금발의 검객 자토이치를 창조했다. 자토이치는 단 몇번의 움직임만으로 액션을 끝내버리지만, 눈감은 그의 지팡이는 그저 피를 뿌리는 검이 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지팡이로 톡톡 두들기고 공기를 가르고 사건을 만들면서, 자토이치는 어느 곳에도 없는 재미있고 잔인한 세상을 여행한다.

자토이치(기타노 다케시)는 발검과 동시에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맹인 검객이다. 그가 잠시 머무르고 있던 마을에 관직을 박탈당한 사무라이 하토리(아사노 다다노부)와 떠돌이 게이샤 자매가 찾아든다. 자매는 오래전 부모를 살해한 검객 일당을 찾고 있고, 하토리는 병든 아내의 약값을 벌기 위해 그 일당의 하수인이 되었다. 자토이치가 하토리와 마주치고, 우연히 게이샤 자매를 돕게 되면서, 조그만 시골 마을은 그들의 대결과 복수로 피에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도쿄 아사쿠사에서 코미디쇼를 하던 젊은 시절부터 스승이었던 사이토 치에코의 부탁으로 <자토이치>를 받아들였다. 원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참고 참았던 뜨거운 기운이 어느 한순간을 감싸안았던 전작들과도 다르지만, <자토이치>는 기타노의 무심한 웃음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영화다. 밭을 가는 농부들이 한번 삽질을 할 때마다 그 소리는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을 따라 사무라이 행렬과 맹인 검객의 더듬거리는 발걸음이 나아간다. 혹은 마을 사람들은 악당이 사라진 걸 축하하는 축제에 모여 나막신을 딸그락거리며 대규모 탭댄스를 춘다. 기타노는 고아가 되어 몸을 팔며 살아온 자매, 사실은 남매의 복수담이나, 지키려 했던 걸 모두 잃어버린 하토리의 처절한 심정에는 잠깐 눈길을 주는 데 그친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검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몸짓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가벼우면서 자유로운 <자토이치>는 대가의 영화는 아니겠지만, 나무랄 데 없는 즐거운 오락이다.

김현정 parady@hani.co.kr






일본적 슈퍼히어로의 변주, <자토이치>
1962년과 2003년의 '자토이치'들과 기타노 다케시
장님에 머리를 깎은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이야기>와 노랑머리에 장님 흉내를 내는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1962년 처음 <자토이치 이야기>로 시작된 뒤, 영화, 텔레비전 등 많은 다양한 시리즈를 거쳐 2003년 다시 탄생한 <자토이치>. 2003년 기타노 다케시는 왜 새로운 <자토이치>를 만들었을까? 진정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새로운 자토이치일까? 2003년의 <자토이치>는 1962년의 <자토이치 이야기>와 어떤 연결점을 갖는가? 영화를 보면서 계속 머리 속을 맴도는 이와 같은 의문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통해 이런 의문점들을 하나씩 풀어갈까 한다.


장님과 장님 행세, 이중의 무장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1960년대 일본사회를 돌아보자. 1959년의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격렬한 데모에도 불구하고 1961년 신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1960년대 본격적인 신안보체제 확립에 돌입한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인정하는 신안보체제란 일본이 미국을 완전히 일본 밖으로 밀어내지 못한 불완전한 형태의 국가체제를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1962년은 이와 같은 불완전한 일본을 새로운 ‘일본’으로 정당화해야 하는 임무가 시작된 해이며, 안보투쟁에서의 좌절을 상대적인 일본사회의 안정의 무드로 무마시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해이다.

같은 해 일본의 영화계에서는 이와 같은 안보투쟁의 좌절을 넘어서 이미 확립된 신안보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련의 일본식 슈퍼맨적 영웅을 내세운 시대극이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시기 슈퍼맨적 일본의 영웅은 건강하고 완전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외팔이에 외눈박이인 단게사젠이나, 장님인 자토이치처럼 신체에 결함을 가진 인물로 설정된다. 이들은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일본이 오히려 더욱 강한 일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영웅상이었다.

그러므로 장님인 자토이치는 두눈을 가진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볼 수 있는 슈퍼맨이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장님이라고 하는 것이 역으로 말하면 모든 퍼스펙티브(시점)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장님이란 0의 시점이 아니라 마이너스의 시점이며, 바로 마이너스의 시점이라는 것 때문에 오히려 플러스의 시점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토이치의 무기는 칼만이 아니라 그가 장님이라는 사실까지를 포함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는 두개의 무기를 가진 셈이다. 불완전해 보이는 일본은 오히려 이중의 무장을 한 셈이다.

이런 일본의 이중적 무장이 현실화된다. 2003년의 일본은 유사법을 통과시키고, 자위대의 위상을 바꾸어 이라크에 파병하기로 결정한다. 지금은 테러리즘과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대비책이라는 핑계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우려가 가장 극대화되고 있는 시기이다. 일본이 자신의 완전한 군대를 갖는 날, 일본은 완전한 국가로 탄생할 것이다. 이제 자토이치는 완전한 장님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장님인 것처럼 행동한다. 완전히 눈을 뜰 날을 기대하며….

그리고 1962년의 일본의 슈퍼맨 장님 검객 자토이치가 2003년에 새롭게 장님 행세를 하는 자토이치로 부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통 시대극의 모자이크


기타노 다케시는 <자토이치>를 만들면서 비오는 날의 칼싸움 장면을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에서 빌려왔다고 말했다. 사실 그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구로사와 아키라에서 빌려온 모티브는 영화 안에서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 농민의 등장이 그렇고, 마지막 화합의 춤이 그렇다. 그러나 <자토이치> 안에는 이와 같은 단순한 모티브 이상으로 더욱 다양한 일본의 시대극이 계승되어 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기타노 다케시는 이를 영화 첫 부분에 모두 고백하고 있다.

영화는 길가에서 쉬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로부터 시작한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론가 떠나는 방랑의 중간단계인 쉼으로 시작되는 이 첫 장면은 가쓰 신타로의 방랑자객 자토이치의 계승임과 동시에 일본 마타다비 시대극의 계승이다. 마타다비영화로 불리는 일련의 시대극의 역사는 길다. 어디로 나갈 곳 없이 사방이 바다로 막혀, 완전히 폐쇄되어 있는 섬나라 일본에서 실제로 떠난다는 것이 얼마만큼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떠나고 싶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마타다비영화를 탄생시켰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의 처음을 마타다비의 계승으로 연다. 그 다음 신은 바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남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복수는 일본 시대극의 가장 전형적인 소재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국을 누비는 소가 형제의 이야기는 부모의 원수 갚기의 한 예이며, 나아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어서는 47명의 사무라이의 이야기인 <츄신구라>는 일본 복수시대극의 전형이다. 다음은 자릿세를 받으러온 야쿠자가 등장한다. 악한 야쿠자와 사무라이, 혹은 착한 야쿠자가 대결을 벌이는 것 역시 일본 시대극영화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그 다음 신은 바로 칼잡이인 아사노 타다노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칼잡이의 등장이 일본 사무라이 시대극영화의 전형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토이치>에서 칼잡이 아사노 타다노부는 단지 그가 칼잡이 사무라이라는 것 이외에도 두 가지 면에서 또 다른 일본 시대극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아사노 타다노부의 첫 등장 장면을 보면 칼싸움을 하는 그의 등 뒤로 폐병에 걸린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칼잡이가 되어야 하거나, 병에 걸린 아내 때문에 고뇌하는 사무라이의 이야기는 요쓰야괴담을 상기시킨다. 또한 아사노 타다노부와 기타노 다케시가 벌이는 해변에서의 마지막 결투장면은 <미야모토 무사시>의 마지막 장면인 사사키 고지로와 무사시와의 결투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이처럼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의 첫 부분을 일본 전통 시대극의 대표적인 4가지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그의 <자토이치>가 <자토이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본의 전통적인 시대극의 틀마저 모두 벗어던질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아니 아무리 그가 노랑머리의 자토이치를 등장시키고, 마지막에 장대한 탭댄스로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해도 근본적으로 일본 전통 시대극을 버리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이 영화의 첫머리를 전형적인 일본 시대극영화들로 열고 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토이치>에 등장하는 이와 같은 일본 전통 시대극의 요소들이 이미 기타노 다케시의 다른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키나와와 LA로 상징되는 일본 밖으로의 열망, 늘 어딘가로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기타노 다케시 영화 속의 비트 다케시, 해변과 야쿠자, 병든 부인…. 그러므로 아론 제로가 말하듯이 기타노 다케시는 <하나비>를 통해 비로소 일본적인 것으로 귀환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장 일본적인 것을 영화 속에 담고자 했던 그의 마음이 <하나비>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어 보여진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가 일본 시대극 <자토이치>를 만들기 전에, <돌스>를 통해 전통 분라쿠의 형식을 실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웃기 시작하는 다케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이야기>와 다른 지점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다른 지점이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를 더욱 일본적인 영화로 만든다.

우선 자유인 자토이치에 대한 접근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토이치는 방랑자, 자유를 좇는 자이다. <자토이치 이야기>는 여인이 기다리는 큰 거리를 뒤로하고 그만이 알고 있는 뒷길을 따라 유유히 걸어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는 자신의 임무를 모두 수행한 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으로,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길을 따라 떠난다. 그러나 <자토이치>는 길을 떠나려던 기타노 다케시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정지화면으로 끝을 맺는다. <키즈 리턴>의 두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계속 운동장을 돌던 것처럼 결국 기타노 다케시는 먼길을 떠날 것 같아도 떠나지 못하고 돌아온다. 일본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코 그는 일본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는 여성이 배제된다. 등장한다 하더라도 죽거나 아프거나 그렇다. 아사노 타다노부의 아내는 남편이 죽자 바로 할복자살로 영화 속에서 사라진다. 부모님의 복수를 갚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남매 중에서 영화 속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여장을 한 남동생이다(<자토이치 이야기>의 마지막 칼싸움 장면에서 자토이치의 칼에 맞은 칼잡이 히라데가 자토이치의 등에 업히는 장면 등을 남성간의 동성적 코드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자토이치 이야기>에서는 여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는 위험에 빠진 여성을 구해줌으로서 여성을 영화 속에 남겨놓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영화 속의 여성 배제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무라이 정신이 가득한 일본영화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영화 속에서 웃음을 감추어왔던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 속에서 웃기 시작한다.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 속에서 자신이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숨겨왔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그는 차갑고 냉정한 얼굴로 일본의 관객이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에 동화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자토이치>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웃기 시작한다. 그가 TV에서 늘 보여주는 기타노 군단적 코미디 요소를 도입할 뿐 아니라, 자신이 웃기 시작한다. 사실 웃음이란 가장 국가적, 문화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일본의 대중들이 아는 웃음, 함께했던 웃음이 <자토이치> 안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가 노랑머리의 자토이치를 등장시키고 탭댄스로 변화를 주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일본인이 함께 춤추는 진정한 화합의 일본적 <자토이치>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수완/ 일본영화사 연구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야만적 하드보일드, <자토이치>의 아사노 다다노부  
아사노 다다노부는 카메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처럼 초연하고 강인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배우들에겐 분한 일이겠지만, 그 자신도, 그와 함께했던 감독들도, 모두 그렇게 말한다. 가장 치명타는 미이케 다카시의 발언일 것이다. <이치 더 킬러>에서 아사노 다다노부를 탈색한 머리의 킬러로 만들었던 그는 “아사노 다다노부와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가능한 한 하드하게 연기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노력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를 능가하지 못할 테니까”라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아사노 다다노부가 가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면서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이 더욱 마음에 든다고 무심하게 말하는데, 한번 보면 잊기 힘들어서 많은 감독들이 스크린에 비추고 싶어하는 그만의 서늘한 기운은 어느 곳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일까.
<타임> 아시아판은 “아사노 다다노부는 배우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성에 무관심할 수 있다”고, 주류와 인디를 망라하는 그의 다양한 경력을 분석했다. 1/4은 미국 혈통인 아사노 다다노부는 눈에 띄는 혼혈아의 외모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음악에 몰두해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밥 말리나 시드 비셔스처럼 될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히피처럼 살았던 부모 탓에, 잘생기고 조숙한 아들은 십대 시절부터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때도, 아사노 다다노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함께 오디션을 받으러 온 아이들이 왜 보통 소년들처럼 행동하지 않는지 이상했다. 그들처럼 바보 같아 보이긴 싫었다. 그래서 평소에 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결정했다.” 내밀한 외로움, 두고 와야 했던 음악, 술도 담배도 약도 하지 않고 두 자식만 아끼는 고집센 순수함. 한 사람이 모두 가지기 힘든 이런 성질들이 기이하게도 아사노 다다노부라는 남자의 눈빛과 태도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이와이 순지의 <프라이드 드래곤 피시> <피크닉>,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 이시이 소고의 종잡을 수 없는 영화 <고조> 등이 이 말없는 남자를 포획했다.

그는 떠들썩한, 뮤지컬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신작 <자토이치>에서도 여전히 말을 아낀다. 그러나 그 과묵함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자토이치> 이후 가진 일본잡지 <컷>과의 인터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마저 의식하지 않은 채 서 있다면, 그것대로 신기한 매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파리>를 찍은 다음부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서. 병든 아내의 약값을 벌어야 하지만, 분신과도 같은 칼을 놓을 수는 없는 무사 하토리는, 그저 서 있기만 해도 괜찮았을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의 성장과 고민의 열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피크닉>의 파트너이자 가수인 차라와 결혼해 “매우 상식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타고난 상식적이지 않은 매력 외에 또 무언가를 더해가게 될 듯하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 이상한 남자를 꼭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다고 말했다. “그가 지성을 보여줄지, 야만적인 힘을 보여줄지, 절대 모르겠다”고.

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제공 SYGMA





일상의 소리로 뽑아낸 생활리듬, <자토이치> OST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신작 <자토이치>는 칼과 도박의 달인인 유명한 맹인검객 자토이치 이야기이다. 일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만화 작품이자 TV시리즈물을 리메이크한 작품. 기타노는 너무나 유명하여 오히려 창조적 재현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이런 작품을 웬만큼 훌륭하게 자기 식대로 주물러내고 있다. 스스로 맹인검객 역할을 맡아 촌철살인의 ‘내공 연기’를 펼치기도 한 그는 살이 후두두 잘려나가고 피가 솟구치는 장면에서도 정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하나비> 같은 영화에서의 총격장면도 그랬다. 또 특유의 스타일 혼합을 통해 사무라이영화의 장르적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도 하고 있는데, 이 혼합에서는 기타노 특유의 코미디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정적인 긴장감과 특유의 기지, 그 둘 사이의 오감과 둘의 적절한 배치가 언제나 기타노 영화에 개성을 부여해온 요소였다면 이번 영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스타일 혼합의 주된 재료는 뮤지컬적 요소. 이 대목은 몇년 전 비욕이 주연을 맡아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가 모델이 된 듯싶다. 이 영화에서 주로 그랬듯, 일상적인 사운드가 어느새 리듬이 되고, 그 리듬을 배경으로 하는 배우들의 동작은 어느새 춤이 되는 방식을 <자토이치> 역시 많이 따르고 있다. 물론 <어둠 속의 댄서>처럼 배우들이 노래하고 전형적인 안무에 의해 움직이지는 않지만 기본 구도는 <어둠 속의 댄서>를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이같은 방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음악’이다. 현대적인 디지털 샘플링 기술은 구체음악의 연장선상에서 일상생활에서의 소리들을 자유자재로 표본추출하여 그것을 리듬으로 삼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음악감독 스즈키 게이치 역시 그런 방식으로 농부들의 쟁기질, 목수들의 망치질이 자연스럽게 음악적 리듬이 되게 하고 있다. 스즈키 게이치는 전설적인 일본 록 밴드 ‘문라이더즈’의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 키보디스트이다. 1977년에 결성되어 91년에 멤버교체 없이 결성 25주년을 맞은 이 밴드를 이끌어가는 스즈키는 일본 록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 영화에서 미디를 기초로 한 전자음악과 일본 특유의 소박한 타악기들을 결합시킨다. 이 방식은 전형적인 일본 영화음악 생산방식의 하나이다.

스즈키가 생활에서 추출하여 디지털적으로 반복시킨 ‘생활리듬’은 급기야 영화 끝장면에서 초유의 ‘게다 탭댄스’신에 이른다. 생활리듬이 자연스럽게 흥겹기 그지없는 ‘축제’의 기본 장단이 되게 하는 걸 보면 기타노 특유의 밑바닥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기타노의 그 대목은 늘 찡하게 다가온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일본의 감독 겸 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시리즈물 <자토이치 座頭市>를 리메이크한다. <자토이치>는 시력 장애를 지닌 검의 고수를 주인공으로 한 시대극이다. 주연 배우 카츠 신타로를 일약 스타로 만든 <자토이치>는 1962년 첫 작품 <자토이치 이야기>가 만들어 진 후 1989년 까지 26편의 에피소드를 배출한 장수 시리즈물이다. 시모자와 칸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판 <자토이치>에서 기타노는 감독 뿐 아니라 주연도 맡을 예정이다.

<자토이치> 기타노 버전은 카츠의 카리스마가 빛났던 원작을 기초로 하되 기타노 특유의 색깔을 가미한 영화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쇼치쿠와 기타노 다케시의 '오피스 기타노'가 공동제작을 맡은 <자토이치>는 올 봄부터 촬영을 시작해 가을께 개봉할 예정이다.


2003.01.25 / 장병원 기자  - 필름2.0




기타노 다케시가 리메이크한 <자토이치>는 원래 1962년에 시작돼 70년대까지 꾸준히 만들어진 유명한 활극 시리즈였다. 가츠 신타로라는 전설적인 배우가 연기했던 자토이치는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장님 도박사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빨리 칼을 뽑아 상대를 베는 검술의 명인이다. 서부 시대의 유명한 총잡이처럼 칼 빼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캐릭터의 특징 외에도 <자토이치> 시리즈의 대다수 이야기 구조는 서부 영화와 유사하다. 자토이치가 한 마을에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시리즈 영화는 대개 마을의 사악한 깡패 조직을 무너뜨리고 홀로 다시 여정에 오르는 자토이치의 모습으로 끝난다. 앨런 래드가 연기한 <셰인>의 주인공이 그랬듯이 자토이치는 마을의 평화를 회복시켜 주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고독한 영웅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 구도로 된 영웅 활극에는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가츠 신타로가 나오는 오리지널 <자토이치> 시리즈의 수준은 여러 감독이 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어떤 것은 도입부 장면의 액션이 뛰어나고 어떤 것은 절정부의 액션이 볼 만하며 어떤 것은 자토이치가 상대하는 악역이 멋있다는 따위의 여운만 남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가츠 신타로가 연기한 자토이치의 매력이다. 미남도 아니고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는 몸도 그리 멋있지 않았던 가츠 신타로는 겉으로는 겸손하나 속으로는 상대를 압도하는 기운을 품은 자토이치의 매력을 멋지게 연기했다. 1960년대 초에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요짐보>와 <츠바키 산주로>가 사무라이 활극 유행을 불러일으킨 시기에 세상에 나온 <자토이치> 시리즈는 자토이치의 칼에 베인 적들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피가 솟구치는 따위의 잔혹한 폭력 묘사 면에서 아키라 영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본 바깥에서 소구하는 대상은 달랐다. <요짐보>의 떠돌이 무사 산주로를 연기한 미후네 도시로가 어깨를 당당히 펴고 늠름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미남 호걸형이었다면 늘 꾸부정하게 걷고 상대를 위로 쳐다보는 자토이치의 볼품없는 행색은 억눌린 자를 위한 영웅으로 제격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세련된 영화가 서구에서 인기를 끌었던 반면, <자토이치> 시리즈가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등의 제3세계에서 인기를 끈 까닭도 거기 있을 것이라고 저명한 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저서 <일본 영화사>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럼 기타노 다케시가 연기하는 리메이크판 자토이치는 어떤가. 다케시는 자토이치의 카리스마를 다른 것으로 바꿔 놓는다. 그는 초현실에서 속세로 떨어진 영웅 같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매사에 심드렁한 그는 도박 말고는 딱히 즐기는 게 없어 보이지만 해선 안 되는 것도 또 없으며 원작과 마찬가지로 칼 싸움에 능하다. 인간적 온기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대신 훨씬 친근하며 자신을 구경거리 대상으로 기꺼이 내놓고 자신조차도 그걸 즐기는 듯이 보인다. 영화 중반의 한 장면에서 자토이치의 동료 도박사는 마을을 탈출하기 위해 자토이치의 감긴 눈에 가짜 눈을 그려준다. 멍청하게 가짜 눈이 그려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자토이치 역의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로 관객에게 다가서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이 영화는 자토이치가 진짜 맹인인지 아니면 맹인 행세를 하는 것인지도 은근히 헷갈리게 해놓았다.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원작 캐릭터의 근엄한 부분을 최대한 덜어내고 잔혹한 세상에 무심하게 던져진 강한 남자, 그렇지만 좀 웃기는 구석도 있는 남자로 태어난다.

다케시가 연출을 겸한 영화 전체의 분위기도 좀 색다르게 흘러간다. 감독 다케시는 틈만 나면 원작의 이야기 공식을 벗어나기 위해 장난을 친다. 주위에 벌어지는 상황에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정서도 종잡을 수 없이 펼쳐진다. 잔인한 칼 싸움 뒤에 난센스 코미디영화를 보는 것 같은 황당한 화면이 이어진다. 이야기의 막간마다 텔레비전의 쇼 프로그램 한 꼭지를 옮겨온 듯한 해프닝을 연출하고 잠시 관객을 낄낄거리게 만든 다음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원래 이야기 줄기로 돌아간다. 이야기의 전개 속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회상을 굳이 집어넣고 그들의 사연을 세세히 묘사한다. 아사노 타다노부가 연기하는 사무라이는 불행한 사연을 안고 있다는 것이 관객에게 알려지는데 결말에선 자토이치의 칼에 허망하게 죽는다. 질질 늘어지는 듯한 리듬으로 일관하다가 느닷없이 짧게 끝내며 강세를 주는 것은 기타노 다케시의 연출 특기지만 거기서 이상하게도 흔치 않은 감상적 슬픔이 배어나온다. 또, 모든 것이 다 해결된 이 영화의 에필로그에는 할리우드 뮤지컬영화를 옮겨온 듯한 화려한 군무 장면이 영화의 전체 분위기가 언제 비장했었느냐는 듯이 흥겹게 꽤 오랫동안 펼쳐진다.

<자토이치>는 천의무봉한 스타일로 관객과 함께 놀자고 작정한 태도로 만들어져 있다. 가장 정형화된 이야기와 양식을 갖고 있는 시리즈 활극을 소재로 취하면서도 다케시는 파격으로 보일 만한 요소를 곧잘 시도함으로써 장난기를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그 수준이 참으로 뛰어나서 놀랍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가능할 수도 있고 심지어 그렇게 만드는데도 그럭저럭 영화가 재미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그 결과, 다케시의 영화는 별로 어깨에 힘을 주지 않고도 웃음과 슬픔, 고요와 폭발, 희망과 절망을 오간다. 양립하기 힘든 것들이 종종 양립하는 것이 다케시 영화의 힘이다. 그것이 일본영화, 나아가 어떤 기존 영화에도 별로 의지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다케시의 영화가 색다르게 보이는 까닭이다. 개인적으로 다케시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도 그런 종류의 아이러니였다.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다케시는 열 명이 넘는 수행원을 거느리고 한 호텔의 인터뷰룸 중앙에 앉아 있었다.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가부장적 질서가 야쿠자 무리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머쓱했으나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방 안은 텔레비전 코미디 쇼를 구경하는 방청석처럼 변했다. 다케시를 수행하는 코미디언 후배들이나 스탭 관계자들은 다케시의 말이라서 웃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즐거워하며 낄낄대고 웃었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엔터테인먼트의 신은 그런 자리에서도 자신을 조롱하며 대중을 웃기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다케시를 만나 인터뷰할 때마다 뇌리에 남는 것은 모두, 그의 영화처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양립하는 데서 오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말들이었다. 도쿄 근교의 천민 부락에서 태어나 자란 다케시는 허구한 날 되풀이되는 아버지의 폭력에 신물이 나 언젠가 형제들과 공모해 아버지를 죽이려다 실패한 일화가 있을 만큼 비참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 일화를 다케시는 농담처럼 말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폭력적인 다케시의 아버지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자녀들이 한 가구도 없는 그 마을에서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다케시를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다. 다케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으나 동시에 학교에 갈 수 있어서 행복했으며 여하튼 인생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쁘지만 조금은 좋은 구석도 있었던 아버지의 존재처럼 다케시는 인생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닌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공부가 싫어 도시락을 대주는 학생 운동 데모 행렬에 가담했던 그는 운 나쁘게 경찰에 잡혀 퇴학당하고 생활을 위해 시부야의 유흥 업소에 취직했다가 다른 사람을 웃긴다는 이유로 발탁돼 무대에 섰다. 스탠드업 개그맨으로 좀 인기를 끄니까 텔레비전에서 불러줘 코미디언이 됐고 방송으로 인기를 끄니까 영화에서 불러줘 영화배우도 됐다. <그 남자 흉포하다>를 찍을 때 원래 예정된 감독이 연출을 고사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영화감독도 됐다. 장편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는 그는 스탭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기식대로 영화를 찍다가 장편영화 분량에 모자란 이야기를 찍어내는 바람에 상영 시간을 벌충하려고 주인공이 거리를 걷는 장면을 툭하면 끼워 넣었다. 그런 것들이 일본 바깥에서는 영화감독 다케시의 예술적 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인생은 의지가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라는 다케시의 말은 물론 천재의 고단수 자기 홍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케시의 진정한 천재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것은 세상이 그리 원래부터 좋은 것은 아니었으며 그걸 운 좋게 견뎌 나가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그의 태도에서 나온다. 그 태도로 기타노 다케시는 허허실실 영화와 코미디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증명해 보인다.


-필름2.0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