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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10년 후가 궁금한 이 사람.

가/ㅣ 2005. 3. 5. 18:56 Posted by 로드365



 2011.4.13

한겨레 인터뷰특강 '김어준'이 이야기하는 청춘  생각 - 여기 청춘수다 있수다

김어준_ 나를 만든 첫 경험들

이 아저씨 참 재미있다.

어제 서강대에서 열린 한겨레 인터뷰특강 '김어준'편을 듣고 느낀점이다. 재미있다는 느낌은 그사람이 가진 말투, 생각, 표정, 느낌 등 많은걸 담고있는데 난 특히 이 아저씨의 생각이 재미있다. 자신있게 자신이 생각하는 걸 이야기하고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는게 우선 멋져보였다. 

사회자는 시사평론가 김용민씨, 주제는 "청춘" 그리고 제목은 "나를 만든 첫 경험들" 이었기에 왠지 더 기대가 되었다. 강연에 들어가면서 김어준씨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뻔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청춘을 떠올리고 부러워하는 건 청춘이 '신화화'되었고 자신의 정신이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현 찌질한 상황을 합리화하고 자신들이 우위에 서도록 청춘이란걸 재구성해 만든다는 이야기도 하였는데 이건 나이가 들어가는 것 과 많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름 자신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는 40대, 50대에게 그들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젊은날은 삶을 멋지게 포장할 수 있는 청춘 일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들이 말하는 청춘을 들여다보고있으면 그 안은 뻥 뚫려있을 수 있다는게 중요한거다.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생각없이 그저 남들에게 쫓기면서 살아온 것을 청춘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이면 20대에서도 한풀 꺾이는 나이가 되는데 요즘의 나는 이미 40,50대보다 더 내 몸 챙기기 바쁘고 당장 무언가를 이루어야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이런 사기같은 청춘이 아닌 진짜 젊음을 느끼고 싶다는 느낌을 강연중에 많이 받았다. 어떻게 청춘일 수 있는가? 그는 4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이 방법은 김어준의 책 '건투를 빈다'에도 많은 부분이 있기때문에 책을 읽는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첫번째로 자기대면의 시도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요구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진짜 내가 요구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발견한 나의 모습은 '나'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만족감을 줄꺼라고 이야기하면서 자기대면을 통해 알게된 나의 모습을 점차 긍정하고 받아들이는것 그리고 나의 욕망에 대해 긍정할 줄 알게되는 것이 이 방법이 가진 좋은 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불교수업에서도 이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때문에 더 공감이 갔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것으로 채워져있는지 20년이 넘도록 몰랐는데 이런 기회가 아니면 30-40년이 지나도 그냥 모르는대로 살아갈 것 같다. 인생을 사는데 제일 중요한 문제이지만 주변에 치여서 뒷전으로 밀어두고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해봤다. 너무 막막하고 답이없으면 '나'에 대한 인문학적,사회학적,성적,과학적,정치적,경제적 사고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두번째로 연애가 필요하다. 연애를 하면 자신의 윤곽이 드러나고 최고,최저점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며 또 자신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는 방법이니 참 좋다! 지금 난 연애중이라 그런지 두번째 이야기를 할때가 제일 재미있었고 공감도 많이 갔다. 

세번째로 그냥 하는것이다. 계획하려들지말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마음내키면 우선 그냥 시도해보라는 말이다. 이유를 찾고 의미부여를 하고싶은 건 주변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싶어서 아닐까? 사실 자기가 마음만 내키면 뭐든지 할 수 있는데 주변 생각하기에만 바쁜 것 같다. 나중에 행복해 질 수 없다. 그때 행복은 그때 고유할 뿐이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는 건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네번째로 이 모든것을 하되 자신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내 색깔을 가지는게 중요하다는것을 이야기하면서 숙제하는 인생이 되지 말자! 내 욕망의 주인이 되자! 그리고 행복을 느끼자!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나온 방법은 김어준씨 인생에 녹아있는 자신의 철학이다. 그사람의 이야기라는 단정을 하고 강연을 들으니 나도 욕심이 생겼다. 나의 인생에서 나의 욕망을 찾아내고 원하는대로 유유자적하며 살고싶어졌다. 이렇게 사는게 폼나보일 수 있는 건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주관이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김어준씨가 말한 방법이 아니여도 그가 이야기하는 주된 메세지를 읽었기 때문에 나만의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같다. 

총평

생각해보면 내 자신도 20살,21살때는 조금은 마음내키는대로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의무에 치여사는 것 같다. 딱히 누가 감시하는것도 아닌데 하고싶은 일은 미뤄두고 우선 해야할 일들에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아 괜히 좀 아쉽고 허탈하다. 그나마 행복한 시간은 책을 읽는 시간이다. 등하교길에 전철에서 책 읽을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요즘은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를 다시 재미있게 읽고 있다. 시험만 끝나면 서울아트시네마가서 B영화 특별전도 가고싶고 개봉영화들도 맘편히 보고 그 영화평론한것도 읽고 나도 내 생각을 써보고싶다. 올해 프랑스에 가면 씨네마테크에서 리스트에 써둔 고전영화도 맘껏보고 글도 열심히 써보고싶다. 교환학생에 가고싶은것도 학교공부하기가 싫어서 인 것 같다. 학교가 원하는 공부에 눌려서 내가 원하는 일을 못했으니 프랑스가면 맘껏 하고싶은데 또 이건 미래의 일이니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지금도 시험 일주일 전인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 딴생각만 하고있으니.. 확실히 지금은 공부가 싫은 것 같다. 책이나 읽어야겠다.

+ 내 생각노트 껍데기에 받은 김어준씨의 싸인은 앞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

- 출처 : http://blog.naver.com/jooricomhaha/50109242777


 
 

 2009.5.9 

[김어준인터뷰] 불친절한 듯, 친절한 어준씨

<그까이꺼 아나토미>의 야매상담가, 김어준을 만나다

한 신문의 상담코너에 도착한 30대 여성의 고민. “오래 만나온 남자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합니다. 마침 선 본 상대가 제게 호감을 표시하는데 ‘조건’ 보고 결혼해도 되는 걸까요?”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김어준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이 질문, 남한테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니 맘대로 하시라.”   

 절박한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에게 “니 맘대로 하라”니, 거 상담 되게 불친절하다. 그러나 「한겨레」의 고민상담 칼럼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에서 이 정도는 약과다. “한마디로 쉣인 거지”, “요강 두 팔로 떠받치며 팔에 쥐난다 징징거리는 그대 주둥이에 호치키스 10호 철침 세 방, 마땅하겠다”, “나도 미안타, 씨바.” 이렇듯 재치 넘치는 말솜씨로 각종 비속어들을 여음구 삼아 뜨끔한 직언을 날리는 ‘불친절한’ 상담가, 김어준을 만나보았다. 

약속장소인 삼청동 카페의 테라스로 들어서는 기자들에게 김어준이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다. “안녕?” 형식적인 말 놓기 절차를 가볍게 생략하는 ‘격식 없음’이 칼럼에서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였다. 인터뷰를 시작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가 웃으며 말한다. “자자, 해보자. 원하는 게 뭐야?”

 그의 소개를 부탁한 첫 질문부터 맘대로 하란 익숙한 답이 돌아온다. 

 “「딴지일보」도 하고 있고 칼럼도 쓰고 라디오 진행도 했었고 사업도 한 적 있지만, 다 그냥 재미있을 거 같은 걸 해본 것 뿐이야. 한 번도 내 직업이 뭐라고 생각해보진 않았어. 나를 다른 단어로 정의해본 적 없어. 그냥 ‘김어준 되기’인 거지.”

불친절하다고? 그 사람의 타고난 문제해결 능력을 믿는 것

 김어준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 그는 자신의 불친절한 어투에 상대가 상처받거나 내용을 잘못 받아들일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지 않았으면 하고 조심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럴 수 있겠지. 근데 난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타고난 문제 해결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상담을 받는 사람도 살다가 특정 부분에 고민이 있을 뿐이지 그 고민 전체로 이뤄진 사람은 아니잖아. 그런데도 상담하는 사람은 받는 사람보다 심리적 우위에 서려 하지. 다독이거나 상처받을까봐 에둘러 말하거나. 난 그게 오히려 상대방을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는 덧붙인다. 자신의 상담은 ‘그 문제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들려주는 참고사항 같은 거라고. “그 사람이 그걸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는 모르는 거지.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순 없거든.”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상담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바뀔 수 있는 방향과 범위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예를 들어서, 조갑제 아저씨를 좌파로 설득할 수 있을까. 인간은 가능성은 무한하다? 아니지. 타고난 용량과 기질이 있는 거야.”

김어준의 키워드―진화론, 자기객관화, 자존감

 

 김어준은 진화론자다. 그의 상담은 대체로 진화론적인 가설에 입각해 있다. 이를테면 좌파, 우파의 발생을 설명할 때도 진화론을 가져오는 식이다. 그는 좌파와 우파가 원시시대의 거친 자연 속에 내던져진 인간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물음에 대한 각자 다른 답으로 갈렸다고 본다. 한쪽은 약육강식의 경쟁 논리를, 한쪽은 연대를 통한 리스크 분산을 택했다는 것. 그에게 진화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물었다. 

 “내가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객관화’인데, 자기만 중요하단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는 거야. 내가 다른 사람과 얼마나 다르고 각별한가. 별로 그렇지 않다 이거지. 진화론은 이걸 생물, 자연 전체로 확장한 거야. 인간 역시 다른 생물에 비해 각별하지 않단 거야. 이렇게 자기객관화의 범주가 확장되다 보니 동물의 한 종으로서의 나를 보게 된 거지.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가 있기 전에 나를 만든 존재들은 누구인가. 이런 관심이 자연히 생기더라고.”

 김어준의 또 다른 키워드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자아도취와는 다르다. “자아도취는 자기랑 연애하는 거지. 더 좋은 남자를 봐도 ‘아냐, 내 남자가 더 좋을 거야’하듯이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거지.” 반면, 자존감은 자신의 객관적으로 못나고 결핍된 부분까지 모두 인정한 뒤에도 스스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신뢰감이다. “잘생긴 놈이 있으면 잘생겼네, 좋겠다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다는 거야. 그것 때문에 나를 주저앉히거나 열등감을 느끼는 단계로 연결하지 않는 거지.”

 그렇다면 그는 자존감이 흔들린 적이 없었을까. 김어준의 약한 모습을 파헤치고 싶은 마음에, 대학입시에서 세 번이나 고배를 마셨던 과거를 슬쩍 꺼냈다. 그때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냐고.

 “열등감은 없었어. 성격상, 뭘 못하면 ‘아, 난 이건 못 하는구나’ 그러고 말거든. 잘하는 애들을 부러워하긴 했지만 ‘쟤는 잘하는데 왜 나는 못하지’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 대학을 떨어졌을 때는 그냥 억울했지.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내가 잘하는 만큼 입증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니까. 뭐, 그땐 그만한 크기의 아이였던 거지. 남에게 자신을 입증해보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게 자존감이라고 하면 그땐 그런 개념이 없었어.”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느긋한 성격은 그가 좋아하는 말처럼 ‘타고난’ 것 같았다. 

   

이상형은 없지만 싫어하는 인간형은 이명박

 이야기가 연애로 흘러가자, 이번엔 김어준이 기자들에게 물었다. “둘 다 연애는 하고 있나? 연애가 최고야. 그냥 보고만 있지 말라고. 말을 걸어보고 만져보고, 하다못해 얼쩡거리기라도 해야지.”

 연애 얘기가 나온 김에 이상형을 물어보았다. “이상형? 그거 난 웃긴 말이라고 생각해. 유아적인 판타지지. 실제로 사람을 만나서 데이터베이스(아래 DB)를 쌓고 그 DB에서 자기를 가장 즐겁게 해줬던 걸 꼽아서 이상형을 만든 게 아니잖아. 혼자 막연히 생각하는 거 아냐, 난 이런 사람이 좋을 것 같다고. 실제로 그런 사람을 갖다놓으면 좋을 거 같냐고. 사람은 만나봐야 아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을 정형화 시킬 수 없다면, 싫어하는 사람은 어떨까. 어떤 류의 사람을 싫어하냐는 물음에 “이명박 같은 사람”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장난처럼 시작한 말에 주석이 붙기 시작하더니, 현정권의 철학적 백지상태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갔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싫어하지 않았을 거야. 그 사람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어릴 때부터 소명의식이 있었다거나 정치적으로 이 나라를 개혁해봐야겠다는 포부가 있었다거나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거나, 그런 거 아니거든. 이것도 해봤고 저것도 해봤으니 이제 권력을 좀 가져봐야겠다, 대기업 회장까지 해봤으니 이제 남은 건 대통령밖에 없다, 이거 아니야.  그건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무례한 거지.”

 우리나라의 우편향적 정치토양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난 좌파가 옳고 우파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난 자유주의잔데, 그건 기본적으로 우파지. 근데 우리 사회가 워낙 우편향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들이 좌파로 보이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우파라하는 사람들은 우파가 아니라 극우야. 극우,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도 10% 정도는 되거든. 인구통계학적으로 그 정도 수치는 당연한 거야. 근데 우리나라는 30~40% 넘어가잖아. 그리고 자기들이 스스로 이 사회의 주류라고 믿잖아. 그러니까, 조선일보의 존재가 문제인 게 아니라 그 신문이 1등하는 우리 사회가 문제라는 거지.”

 불친절한 듯, 친절한 어준씨

 마지막으로 아카라카를 앞둔 시점에서 연고대의 경쟁 심리에 대한 분석을 부탁했다.

 “귀엽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누구나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거든. 각자 명문이라고 하는 자존심과 그 정도 경쟁심리는, 귀엽잖아. 유치하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유치하면 어때, 재밌는데. 과도하게 공격할 필요도 없고 대단하게 치켜세울 필요도 없고, 그 정도 집단의식은 귀엽게 봐줄 수 있다고 생각해.” 날카로운 비판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답변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김어준의 상담은 정말 불친절한 걸까. 실제로 만나본 김어준은 툭툭 내던지듯 말하지만, 자기 말에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심히 던진 것 같은 “니맘대로” 하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선택을 하든 최종결정을 하는 건 피할 수 없이 자기 몫이란 뜻이었다.  김어준은 그의 상담집 『건투를 빈다』의 서문에서 스스로 고백했듯이 “워낙 곰살궂게 생겨먹질” 못해 “다만 글이 불친절”할 뿐, 인간에 대한 예의와 진심을 다하는 ‘친절한’ 상담가였다.

김연, 정지민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사진제공 김어준





 2008.12.17

‘야매’ 상담가 김어준, ‘정통’ 정혜신 박사 만나다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인터뷰
   


» 어른이 되자! 내가 누군지 알고 살자!
어른이 되자! 내가 누군지 알고 살자!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연재하는 김어준씨는 자칭 ‘야매’ 상담가다.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 학위가 없는데다 상담 관련 서적을 탐독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삶의 방식을 기준 삼을 뿐. 그래서 그는 문득문득 궁금하다고 한다. ‘정통’은 뭐라고 할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야매’ 상담가 김씨는 ‘정통’ 상담가를 찾기로 했다. 김씨가 찾아간 상담실의 주인은 남성 심리 분석 등의 칼럼으로도 널리 알려진 저명한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다. 둘은 이미 서로를 잘 아는 사이. ‘레이지보이’라고도 하는 편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상담을 시작했다.

김어준(이하 김) : 사실 상담하면서 어려웠던 적은 없다. 그냥 내가 생겨먹은 대로 말하니까.(웃음)
정혜신(이하 정) : 그게 문제네.(웃음)

김 : ‘그까이꺼…’를 보고 정통 상담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사실 ‘그까이꺼…’는 형식은 일대일 상담이지만 실제로는 그 독자가 보낸 사연으로부터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공통분모를 추출해내는 거니까,상담+칼럼이라고 봐야 한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 칭찬 위주로 말해 달라.(웃음)

정 : 답은 맞다. 다시 말해 궁극적 지향점은 내가 하는 상담이나 ‘그까이꺼 아나토미’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실제 상담에서는 문제의 답을 알려 준다고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상담의 핵심은 그 답까지 가는 과정이다. ‘그까이꺼…’는 지면의 한계상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같은 결론이지만 본질적인 부분이 빠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김 : 정식 상담에서는 공감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건가?

상담은 공감의 과정이 핵심

정 : 그러면서 문제를 느끼는 피상담자의 입에서 결론이나 답이 최종적으로 나오게 되는 거다. 그래야 치유적 힘이 생긴다. 상담 칼럼은 ‘외부 수혈’인 셈인데 가끔 오프라인 상담에서도 그런 식으로 카리스마 있게 쭉 끌고가는 상담자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피상담자는 결국 비슷한 문제에 다시 봉착했을 때 또 상담을 하러 온다. 상담자와 피상담자 사이에 바람직하지 못한 심리적 의존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다.

김 : 지면과 대면, 그리고 공개와 비공개 상담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 :맞다. 김어준씨가 하더라도 만약 온라인상에서 쌍방 간으로 진행하게 된다면 훨씬 다이내믹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까이꺼…’를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고 그걸 가지고 친구나 선배와 상담을 하면서 스스로의 문제를 소화해내기도 할 거다. 그런 과정도 큰 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칼럼은 과정의 시작점을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김 :지면 한계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거 빼먹지 말고 넣어 달라.(웃음)
정 : 방어적인데? 책 팔려고 그러나? 김어준씨 이렇게 찌질한 모습은 처음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지.(웃음)

김 : 장사를 위해선 무너져도 된다.(웃음) <한겨레>뿐 아니라 다른 잡지에서도 오랫동안 상담을 하다 보니 사연들의 공통분모랄까 최소공배수가 도출되더라. 첫째로 질문이 틀렸다. 예를 들어 ‘돈이나 사랑이냐’의 변주 질문이 무수히 들어오는데, 돈이냐 사랑이냐는 둘 다 답이기도 오답이기도 하다. 사랑 부족해도 밍크로 보상되는 사람도 있고 밍크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질문은 내가 언제 더 행복한가, 무엇을 견딜 수 있고 없나여야 하는 건데 엉뚱한 질문을 하는 거다. 둘째로 질문 대상이 틀렸다. 그걸 누가 답해 주나? 자기한테 물어봐야 하는 걸 친구한테, 완전히 허상에 가까운 연속극 보면서 답을 찾는다. 이건 사람들이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몰라서 그러는 거다.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도 모른다는 게 나한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남 이야기만 듣고 설득된 적 있수?
정 : 쉬운 거 같아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지.

김 : 하나 덧붙이자면, 자신이 너무나 중요하다. 물론 자기애라는 건 당연히 필요한 거다. 하지만 엄청난 일을 겪고 있다면서 A4지 열 장 넘게 보낸 사연 다 읽고 나면 이 정도 고민은 다 있잖아?(웃음) 허탈해진다. 소설 한 권이라고 풀어놓는 이야기가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인 거지.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이런 비판 하지만 내 보기에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자기 객관화를 못 하는 거다. 예를 들어 내가 교통사고 난다면 괴로울 거다. 하지만 왜 하필 내게만! 이런 소린 안 한다. 안 났더라면 좋았을걸이라고 말하겠지.

정 : 나도 애들에게 가끔 말하는 게 엄마가 죽으면 슬프겠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고 에이, 엄마가 안 죽었으면 좋았을걸 이 정도로 생각하라는 거다.

김 :그런데 사연들 보면 온 우주가 무너진다. 자기가 곧 우주인 거다. 또한 불확실성이란 삶의 본질적 조건인데 거기 자기 힘으로 대처해 본 적이 없다. 스스로가 아니라 부모가, 늘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 주는 데 익숙하니까 불확실성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 불확실성과 대면할 때 어른이 되는 건데, 늘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다. 나이 먹고 늙어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거다. ‘정통’이 볼 때는 왜 그런다고 보나?(웃음)

정 :당연한 거 아닐까? 나는 인간의 정신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는 이전 세대가 이뤄놓은 게 후세의 생활에 편입되고 또 다음 단계에 올라가는 식으로 축적, 진화되지만 정신은 아니다. 부모의 학식이 자식에게 편입되는 게 아닌 것처럼. 모든 인간이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이해도 안 되고 설득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거나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과정이 철저히 봉쇄된다. 겪은 만큼 성장하고 시행착오나 실수도 해보면서 이걸 해석하고 자기 확신으로 연결되는 순환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곳곳이 막혀 있다. 사회적, 문화적, 가정적으로 모두 말이다.

김 : 결국 공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 교육은 상위 1프로를 뺀 나머지를 낙오자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패배의식을 체계적으로 내면화한다. 명품 유행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낙오자가 된 99프로가 비싼 가방 메고 잠시라도 일류라는 착각과 위로를 받는 거지. 그래서 명품은 우리나라에서 과소비가 아니라 정신적 위로다.

정 : 불안이 없으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를 느껴 볼 수 있어야 자기 확신도 생긴다. 연애 등의 인간관계나 여행, 예술적 체험 같은 게 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경험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맨 뒤로 밀어놓는다. 인간관계만 해도 살아가는 데 그보다 중요한 재산이 없는데 학원 가고 칠판 보느라 관계맺기의 훈련도 당연히 밀린다. 흔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면적으로는 불행한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는 관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건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각성된 개인, 즉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결혼의 갈등도 같은 거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른’이 아니면 사랑을 유지해나갈 수가 없다.

김 : 멋진 말이다. 이거 내 말로 써 달라.(웃음)

정 : 그래서 심리 상담을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내게 물어봐야 할 나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엉뚱한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도록 돕는 과정인 거다.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는 스몰 쇼크를 느낀다. 심리 관련 책을 읽으며 자기를 대입시켜 보면서 경험하는 지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유의 충격이다. 감성적 깨달음은 언제나 충격을 동반한다. 기업가들 상담을 할 때 ‘그때 당신은 뭘 느꼈나’ 물어보면 갑자기 사람이 멍해진다. 그러고는 느낌이 아닌 생각을 말한다. 그럼 재차, 생각 말고 당신의 느낌을 말해 달라고 하면 다시 블랙아웃이 된다. 그렇게 정지된 순간을 직접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다. 내가 이런 존재구나, 내가 느낌 하나 없이 살아왔구나 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차이

김 : 그 말은 내 식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영화 <데어 데블>을 보면 주인공이 장님인데 소리가 공간에서 부딪혀 돌아오는 걸 감지해 그 윤곽으로 상황을 파악한다. 그처럼 자기가 했던 행동이나 결정 등이 반향을 일으켜서 내게 되돌아와 만드는 윤곽선이 바로 자신이다. 그중에는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잘 보이려고 과도하게 하는 노력이 사라지며 만들어지는 게 자존감이고.

정 : 관심이 없어진다기보다 자기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 매달리지 않게 되는 거지.

김 : 같은 말이다.(웃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헷갈린다. 20대의 나를 생각하면 자신감은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한 신뢰. 하지만 그걸 남한테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대를 넘어가면서 나를 입증해 보이겠다는 강박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정 : 어떤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도 마음의 변화 같은?

김 :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어느 날 문득 보니 내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의 승인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생겨먹은 대로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20대엔 내가 이 정도입니다, 봐 주세요 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 자체를 깡그리 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로부터 즐거움을 누리는 데 집중하고 있더라.

정 : 그런 확신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외부에 연연하지 않는 거다. 돈이냐 사랑이냐의 문제도 고명한 선생님한테 물어봐서 답을 얻는 게 아니라 총수처럼 ‘제대로, 또박또박’ 살다 보면 자명해지는 거다. 절대적으로 내가 나를 느껴서 얻는 게 자존감이라면, 자신감은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김 :자신감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패배의식을 동반한다. 외부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제시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예를 들어 공부 잘해 남에게 인정받아 만들어진 자신감은 나보다 공부 잘하는 놈 앞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 구축한 자존감은 남의 승인이 필요 없다. 물론 남이 날 좋게 봐 줬으면 하는 거야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니어도 자존감이 튼튼하면 나는 그대로다.

정 : 그렇게 자존감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땐 내부 시그널도 금방 온다. 스스로를 견제하는 자아가 빠르게 작동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면 불행하게 살 가능성도 낮아진다. 외적 상황이 자신을 몰아가도 스스로 그렇게 안 살도록 결정하게 되니까. 많은 부부들이 관계가 안 좋아도 애가 결혼할 때까지만 참고 산다고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애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은 무척 낮다. 부모의 행복하지 않은 삶을 공기처럼 마주하며 자란 아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삶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불행해져도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불행을 쉽게 수용한다. 행복을 느끼고 사는 부모와 산 아이는 자기 삶이 그런 조건에서 벗어나면 자기 안의 경계경보가 빠르게 작동한다. ‘내 삶이 왜 이래? 이건 아니잖아’ 한다.

김 : 사연을 보다 보면 사회적 위치나 여러 외적 조건이 좋은데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정 :레지던트 1년차 때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왜 모든 사람의 문제는 열등감이죠?” 상담을 하다 보면 모든 문제가 다 그리로 귀착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을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김 :나는 그런데. 이건 정신병일까?(웃음)

정 : 좀 정신병일 수도 있다.(웃음)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 중에 의외로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많다.

김 : 전문가로서 자존감을 어떻게 키워야 한다고 보나?

정 : 자연을 느끼거나 사람 관계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느끼거나 그런 다양한 접촉 경로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느껴 봐야 한다. 인간관계만 해도 어떤 상대방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계가 형성된다. 소심한 남자와 만나던 여자도 마초를 만나면 기대고 의지하는, 약한 남자와 있을 때는 묻혀 있던 수동적인 면이 발현될 수 있고.

김 :그래서, 연애를 많이 해야 된다고 난 항상 주장한다.

정 :그렇지. 특히 연애는 굉장히 밀착된 관계니까 자기 욕망의 치졸함 등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자신의 감정의 바닥을 바라다볼 수 있는 경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감정의 바닥을 본 사람은 그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식 위해 살다가 자식 불행하게 만든다

김 : 그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기 객관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대체로 자기 인생 가지고 소설 쓰게 된다.

정 :신파를 만드는 거지. 자기 객관화는 망원경으로 멀리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건데, 정신분석 과정을 보면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쓴다고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자기를 멀리서 내려다봐야 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아주 가깝게 줌인 해서 나를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다. 망원경만 쓰다 보면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다 그런 거 아닌가요? 다른 집 여자들도 그 나이 되면 다 그렇다던데…” 이런 식으로 과도한 일반화나 합리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인간의 개별성과 일반성을 렌즈를 당겼다 밀었다 하면서 적절히 봐야 한다.


» 김어준의 그까이꺼 인터뷰
김 : 연애나 부부 관계뿐 아니라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자기 객관화는 중요하다. 한국 사회가 특히 안 되는 부분이 이건데 우리는 부모가 보장자산이다.(웃음)

정 :부모 자식 간이건 연애건 자아 찾기 문제다. 일생을 투쟁해서 얻는 게 자아다. 부모 자식처럼 유난히 구속하는 관계일수록 자아 찾기 투쟁이 극대화된다.

김 :맞다. 가장 중요한 게 자기 공부다. 그래서 <건투를 빈다> 책을 참고서로 자기 공부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웃음)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2008.5.14

난, 나에게 만족하는 사람이다

 

김어준 총수는 여행광이다. 지금까지 대략 80여 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는 여행에서 얻은 경험이 중요한 삶의 밑천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는 한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너무 편해 그냥 쭉 있고 싶을 것 같다”는 이유로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차린 여행사를 IMF사태 때 가볍게 말아먹고 붕어빵 체인점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시간이 남아 별생각없이 만든 ‘딴지일보’가 대박을 쳤다. 시사저널이 매해 조사하는 언론매체 영향력 순위에서 17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조회 수도 4000만번을 가뿐히 넘어섰다.

딴지일보의 성공(?)으로 총수는 유명인사 반열에 올랐다. 마음만 먹었으면 네이버의 김범수나 다음의 이재웅처럼 IT산업의 성공스토리에 김어준의 이름을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식적인 성공 모델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그렇게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총수는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며 자신의 스타일대로, 생겨먹은 대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어준 딴지그룹 총수를 만나봤다.

인터뷰는 2008년 5월 1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MB 대통령 자격 없다고 본다”

 

총수: 소고기 얘기, 듣고 싶다고 했죠. 난 이명박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궁금해요. FTA 때문이다. 소고기 안 풀어주면 FTA 체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부시가 있을 때 얼른하자. 뭐 이런 정황은 이해가 됩니다. 근데 부시가 도장 찍어주면 FTA 체결되나요? 부시 지금 말년 병장인데다 FTA 체결할 권한도 없죠. 그건 미국 국회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소고기 수입 결정은 완전히 ‘캠프데이비드 숙박료다’ 난 이렇게 봐요. 결론적으로 이 사람 머릿속에는 검역 조건, 국민 건강 이런 거에 대한 가치관이 ‘졸라’ 낮은 거지. 먹지 않으면 된다. 이건 완전히 시장주의자의 발상 아닌가요. 모든 걸 시장에 맡겨라. 공공의 안전도 시장에...

도로에서 엔진 큰 차가 빨리 도착하는 것 당연합니다. 엔진 큰 놈이 빨리 가야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우파입니다. 엔진 크기도 제한하고 규정 속도도 만들어 준수하게 하자. 이건 좌파죠. 근데 차선을 다 없애고 ‘조심하면 되잖아’ 이러는 건 좌우파 같은 이념문제가 아니라 철학이 아예 없는 거죠. 좃또 씨발!

언론이 지금 자기검열하고 있어요. 공공기관장한테 대놓고 나가라 하는 정도니깐 언론에도 존나게 전화해서 압박하고 그러고 있을 거예요. 촌스럽죠. 기자들은 소고기 사태가 터졌을 때 이명박이 서명 왜했나부터 따졌어야 했어요. 근데 그러질 못했죠. 왜냐? 전화 막하고 겁 주니깐. 노무현 때하고 다르거든 지금은.

최: 그래서 탄핵해야 한다?

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봐요. 난.

약속시간에 얼추 맞게 총수가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다. 헬멧을 벗어 제치고 들어오자마자 통성명은 하는 둥 마는 둥, 소고기 얘기부터 쏟아냈다. 전날까지 소고기 얘기는 딴지일보에 올려났다며 따로 얘기하지 말자고 그래놓고 변덕은...

하여간 첫 질문을 하기까지 한참동안 총수의 소고기 얘기를 입닥치고 들어야 했다.

최: 탁월한 ‘인터뷰어(interviewer)’면서 ‘인터뷰이(interviewee)’라고 소문난 총수가 인터넷의 한 매체에서 “사람을 만나야지 그 사람의 이미지만 만나고 오는 인터뷰는 별로더라”라며 나름의 인터뷰론을 밝혔습니다. 총수의 글을 읽고 보니 딴지일보의 ‘뽕빨 인터뷰’가 생각나더라고요. 인터뷰 중간에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넣고 그러잖아요. 그런 형식의 파괴가 그 사람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다 가깝게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나요?

총수: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보여주겠다. 이거죠. 중간에 코멘트도 넣고 내 생각도 집어넣고. 인터뷰 기사보면 무슨 인토네이션이 있는 것도, 표정이 전달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답답하죠. 그래서 인터뷰를 하던 상황까지 가능하면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이런 멘트를 인터뷰 기사 중간 중간에 넣고 그랬죠. 그게 공평한 거잖아.

최: 일반적으로 인터뷰하는 사람의 사견은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뭐 이런 원칙이 있다면 있는데 총수는 이걸 완전히 무시하더라고요. 그래서 재밌지만.

총수: 그냥 말만 쭉 나열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현장 분위기는 잘 모른 채 자기 맘대로 이해하는 거죠. 그래서 그 상황을 보다 잘 전달하려고 해요. 물론 내 시각이 들어가 있죠. 근데 내 사견이라는 거 다 감안하고 읽잖아요. 가끔 그거 다 네 생각 아니냐고 화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때 황당하지. 누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라 그랬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읽는 사람까지 나와 똑같이 생각하게 할 순 없잖아.

최: 뽕빨 인터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어떤 인터뷰는 약간 작위적이니 느낌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이를테면 유시민 의원과 치킨에 생맥주시켜 놓고 인터뷰하는 장면은 유 의원이 딴지일보를 보는 젊은 독자의 표를 의식해서 연출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총수: 작위적이라고 그러기는 좀 그렇고. 그냥 그날 기분이 ‘업’된 거죠. 국회의원 나간 걸로 신이 났더라고. 근데 유시민 의원을 좋아해요. 어떤 사람들은 지적이고 토론에서 말을 잘해 좋다고 하던데 난 그래서 좋아하는 건 아니고. 왜냐? 나도 그 정도는 해. 히히히

최: 하하하. 그럼 왜?

총수: 돌쇠 같아서 좋아요. 근본적으로 의리가 있죠. 노무현과 관련해 상황이 유리한지 불리한지 따지지 않고 막 대변하고 그러잖아요. 아쌀하잖아. 경상도니까. 그 사람 정치적이지 않아. 물론 그런 면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논리가 작동하기 전에 먼저 행동하는 거예요. 의리가 있다. 경상도 남자다. 경상도 남자가 잘풀렸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렇게 생각하죠. 난 그래서 유 의원을 ‘지적인 장세동’이라고 부릅니다.

일동: 하하하

총수: 근데 개인적으로는 재미없는 사람이예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줄 모르겠어.

 

유시민은 ‘지적인 장세동’이다

 

최: 전 총수하고 소설가 김훈을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으로 꼽습니다. 총수도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 한 5명만 뽑는다면?

총수: 음(3초 정도 생각한 후)...김혜수?

최: 여자를 볼 때 가슴을 주로 보시는군요.

총수: 안볼 수 없잖아.

최: 어딘가에서 강준만 전북대 교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총수: 관심있었죠. 강준만. 근데 관심 없어졌어요. 좋아하기는 하는데. 사실 (강 교수에게) 빚진 게 많죠. 강 교수는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의 지적 지형에 많은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딴지일보가 그렇듯이 시대가 지나고나니 지금은 그분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하지만 관심은 떨어졌습니다.

최: 시대가 변했다는 말인가요?

총수: 당시는 척박한 상황이었죠. 조선일보를 조선일보라 하지 못하던 시기였잖아. 그냥 모언론 이렇게 표현하는 게 다였어요. 그런데 ‘딴지’가 대통령 얼굴 패러디하고 조선일보도 대놓고 욕하고 그랬더니 관심을 받은 거지. 지금은 뭐 그런 것 다하니깐 딴지나 강준만 교수의 역할 같은 게 축소되는 거죠. 이제는 조선일보 깐다고 이슈되고 그렇지 않잖아요.

최: 심지어 김규항은 강준만이, 조갑제보다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총수: 그건 무슨 소리지?

최: 김규항의 우려는 이런 것 같습니다. 대중은 이제 조갑제를 이론가로 받아들이지 않고 황당한 얘기나 하는 꼰대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그 사람이 이제 누구를 빨갱이라고 몰아 붙여도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병이 또 도졌네’하며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강준만 교수는 여전히 대중에게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입니다. 특히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한테는. 이런 그가 진보진영의 발전을 위해 애정 어린 비판을 할 경우에도 대중은 이를 진보진영의 본질적인 문제로 실상보다 과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걱정 같습니다. 강 교수가 비판하는 것 보니 진보진영도 보수진영하고 다를 게 없구나. 뭐 이런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거죠.

총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조갑제가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건 잘못된 지적이야. 아직도 그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두 버리고 가야할 사람들이지만. 하하하 단지 본인을 정통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최근 강준만이 개량주의자가 된 것 아닌가하고 걱정할 수는 있다고 봐요. 근데 본인이 걱정할 바는 아닌데. 그런 걸 왜 걱정하지?

최: 좌우파가 나와서하는 말인데. 김어준은 좌파인가요?

총수: 아닌 것 같아요. 서구에서 19~20세기 정립된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보면 엄밀하게 말해 난 우파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파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난 자유주의자니까. 유럽 시각에서 보면 ‘그냥 냅둬라’ 하는 주의에요. 난 사람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월드컵 4강하고 나서 우리 모두 붕붕 떴잖아요.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안가 선수들이 일군 4강에 우리가 호응해야 한다. 그러니깐 K리그 열심히 봐라. 서포터스해라. 응원해라 뭐 이런 캠페인 막 일더라고요. 그거 보면서 이거 실패하겠다하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 왜냐 ‘죄책감 마케팅’이니까. 태극전사들이 이런 성과를 냈는데 호응안하면 넌 나쁜 놈이야. 이런 죄책감에 호소하는 마케팅, 이건 안됩니다. 월드컵 때 아줌마나 여자들도 축구 좋아했던 이유는 근육질의 남자들이 막 나자빠지고 그 굵은 허벅지가 흔들흔들하는 게 슬로우비디오로 잡히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들 여자 가슴 흔들흔들하는 거 보면서 흥분하는 거 하고 같은 거죠. 솔직히 최진철이 잘생긴 것 아니잖아. 근데 최진철의 장딴지 근육이 막 흔들흔들하니깐. 이건 그냥...

그런데 월드컵 끝나고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죄책감 마케팅이 고개를 들더라고. 난 그건 아니라고 봐요. 죄책감 마케팅에 기대서 그런 식으로 하지 말고 차라리 중계카메라 대수나 늘리겠어. K리그 보다보면 이건 감정이입이 도대체 안돼. 축구 수준이 문제가 아니야. 중계 스킬이 너무 떨어져. 하여간 사람의 욕망을 억누르고 윤리나 제도로 컨트롤하려 하지마 제발. 하여간 난 그런 ‘주의’라는 거예요. 자유주의. 좌파가 아닙니다. 가끔 좌파들 보면 안타깝고 애절하죠. 촌스럽고 미련스러워 보여요. 구조화되고 제도화된 좌파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김승수 대공협 부회장: 우리나라 좌파는 욕망을 너무 제한하려 해요.

김어준: 종교단체에 가까운 정서야.

 

종교단체 같은 좌파, 미련스러워 보인다

 

최: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가 유명인들의 심리나 정체성에 대해 분석한 책이 있는데요. 그 책 보면서 참 대단하다. 한번도 안 만나고 이렇게 한 사람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물론 오류가능성도 있지만... 총수에 대해서도 썼던데 혹시 읽어봤나요?

총수: 내 본래 모습과 비슷해서 놀랐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그때까지.

최: 정혜신 박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돈 대줄테니깐, 출마해라 이렇게 말할 정도로 헌신적인 아버지를 둔 ‘파파보이’였는데 김어준은 그 반대의 환경에서 큰 것 같다.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총수: 아들이 결혼한다 그러면 전세라도 얻어줘야지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보통. 근데 우리 아버지는 결혼식장에 와서 부조금 50만원 내고 갔어요. 마치 친척인양... 어머니는 저 결혼합니다. 그러니깐 보통은 ‘누구하고?’ 이렇게 묻잖아요. 근데 ‘언제?’ 이렇게만 물으시고 알았다. 그러는 거야.

최: 아주 독특한 부모님을 두셨네요. 보통은 가족끼리 서로 얽히고 끈적끈적하고 그러잖아요.

총수: 그래서 난 부모님이 고마워요. 우리는 서로 부채의식 같은 게 거의 없어요. 난 명절날 몇 시간씩 막히는 길 뚫고 가서 부모 얼굴 잠깐보고 그 지옥같은 귀성길 올라오는 사람들 일종의 죄책감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것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봐요. 부모에게 죄책감 가지고 있다가 귀향, 귀성길 겪은 생고생으로 그 죄책감을 터는 거죠. 안좋아 그런 방식.

하지만 거기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물을 게 아니라 역사에 물어야 합니다. 100년의 역사에서 국가가 개인을 지켜주지 못했거든요. 전쟁도 나고 복지시스템도 날 안 지켜주고. 그러다보니 믿을 게 자기 가족 뿐이 없는 거야. 자기를 지킬 최소 공동체가 가족인 거지. 자기들끼리 뭉쳐서 사회안정망 만들어야 했던 거지. 그러다보니 서로 얽히고...

최: 난 딴지일보의 이름이 표리부동,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딴지일보는 ‘딴지’라는 이름과는 달리, 진정한 정론직필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언론은 기사 형식에서는 무척 엄격함을 보이죠. 그런데 엄격한 형식 뒤에서 실상은 공정성을 잃고 특정 정파를 밀어주거나 자사 이기주의로 흐르는 등 정론직필과는 먼 행동을 보이죠. 그러면서 어찌나 자기들은 정론직필이라 하는지. 근데 딴지일보는 그 반대예요. 우린 편파적이야. 하지만 그 편파성을 우린 합리적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난 그게 정론직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딴지일보 기사는 엄격한 기사형식의 틀에서 많이 자유로워 보여요. 그래서 좋았죠. 난 기사를 보며 총수가 굉장히 진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혹자는 딴지일보를 엽기사이트라 하는데 겉으로 들어난 몇 가지 것들로 뭔가 비정상적인 ‘엽기’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총수: 그래서 질문의 야마(요지)가 뭐야?

최: 야마요? 그러니깐 딴지일보를 정론일보, 직필일보 이렇게 바꿀 생각이 있는지...

총수: 그런 무의미한 질문은 왜 하는 거지?

최: 요즘 딴지일보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전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가 모든 언론들의 딴지일보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기 때문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총수: 그런 면이 있죠. 예전에 비해 이제 패러디나 딴지 걸기 등이 일반화 됐죠. 뭐 개인적으로 딴지일보가 거대 매체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고유한 역할이 끝나면 없어질 수도 있는 거죠. 점점 사회가 상식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딴지가 필요 없어지는 시기가 오면 그럴 수 있다는 말이죠. 근데 내가 죽기 전까지는 그런 날이 올 것 같지 않아 하하하. 너무 비관적인가.

개인적으로 게으른 탓도 있어요. 그리고 힘이 개별매체에서 이제는 포털로 확실히 넘어갔어요. 포털은 주장할 게 하나도 없는 곳 인데 모든 것을 전달할 힘이 있는 거죠. 난 포털사이트들이 사회적인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한 거대 포털은 어떤 뉴스를 사이트에 올릴까하는 결정을 과장급 정도에서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각 언론들은 존나게 고민해서 넘긴 기사일텐데 과장급이 별다른 프로세스없이 그냥 자기가 판단해서 이건 올리고 저건 내리고 그러는 거죠.

최: 그래서 포털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들이 추진되는 것 갔던데요.

총수: 그건 이 정권이 포털을 통제하고 싶은니깐.

최: 딴지일보는 포털에 기사 제공할 생각 안했나요?

총수: 포털에 너도나도 막 들어가고 그럴 때 난 왜 그럴까 이렇게 생각했죠. 이건 신문들이 간판대에 힘을 몰아주는 격이야. 그래서 난 안들어갔죠. 근데 다른 언론들이 다 들어간 거야. 그러니 포털에 힘이 더 몰렸죠. 결과적으로 힘이 포털로 이동해버렸어요. 우린 영향력은 더 줄었죠. 필진들도 예전보다 줄어들고... 경영자로서 내가 잘못 판단한 거지. 근데 모두 내말을 듣고 포털로 안갔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예요. 우린 사이트에 광고를 안올려요. 사이트에 광고가 없으니 아무런 수익구조가 없죠. 3~4년 전에는 직원들 월급도 못준 적도 있어요. 지금은 안정을 찾았지만.

최: 개인적으로 예전에 이우일이 그린 만화 ‘존나깨군’ 재밌게 봤는데. 이 화백이 동아일보로 가더니 만화가 재미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 멍석이 중요하구나하고 생각했죠. 매체가 어떤 멍석을 깔아주느냐에 창작들의 능력이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니깐. 너 멍석 위에서 맘대로 해 이러면 막 창작력이 솟는 거죠.

총수: 이우일이 만화 그리면서 내세운 조건은 하나였어요. 참견하지 말라. 우리도 그랬어. 참견 안할거다. 그런데 원고료는 없다. 하하하

최: 그런 그 만화가 공짜로 그린...

총수: 그랬죠.

최: 딴지일보 운영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끌고 나갈 생각이세요?

총수: 난 기본적으로 우리 라이프스타일을 지킬 수 있을 정도만 벌면 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물질적인 토대로 살자. 그 대신 자기가 살고 싶은 데로. 생겨 먹은 대로 사는 거지.

최: 딴지일보 직원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일하나요? 하다가 하기 싫으면 하던 일 미루기도 하고?

총수: 딴지일보사는 돈 많이 벌어서 저축하고 뭐 그런 것들 이룰 수 있는 직장은 아니에요. 만일 그렇게 살고 싶다면 자기가 먹고 살 것 따로 해결해야 돼.

최: 몇 해 전 어느 기업이 딴지일보를 800억원에 인수하겠다 이런 제안을 했다고 그러던데 사실인가요?

총수: 그 비슷한 일이 있었죠. 근데 거절했어요. 난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고 잘 살겠다 이런 생각이 없어요. 그냥 우리가 살고 싶은 데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물적 토대면 된다. 돈 좀 덜 벌어도 이게 재밌다하면 그거 하는 거지.

최: 800억원의 인수제의에 솔직히 좀 흔들리지는 않았나요? 다음의 이재웅처럼 인터넷 시대의 신지식인 뭐 이런 이미지도 얻을 수 있고 정치인의 길도 나가 출세할 수도 있고.

총수: 우리 790년, 7900년 사는 것 아니잖아. 난 인간한테 내세가 있거나 그렇다고 생각 안해요. 살아있는 동안 뽑아 먹을 거 다 뽑아먹자. 그러고 죽어야겠다. 뭐 그런 주의자죠.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생긴대로 살자.

최: 성공이니 출세니 이런 거에 집착하지 말고 자유롭게?

총수: 그렇지. 그리고 내가 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자존감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자존감은 중요해요. 이율배반적일 수 있지만 자존감이 충분하면 정작 자신감은 필요치 않아요. 자존감은 자신감과는 다른 겁니다. 자신감은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죠. 자존감 높은 사람은 그거 할 수 있어 그러고는 정작 안해. 왜? 굳이 사람들한테 그걸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깐. 자신을 입증해 보이려고, 인정받으려고 할 필요가 전 없다고 생각해요. 낭비예요. 난 그걸 ‘인정투쟁’이라고 부르는데 굳이 인정투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물론 모든 인정투쟁에서 100% 자유로울 수는 없죠. 하지만 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요.

최: 독자로서 그 결정을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800억원에 팔아먹지 않은 거.

총수: 그 말은 힘들더라도 넌 정도를 가라. 난 잘 먹고 잘살테지만 너만은 정도를 가야한다.

최: 흐흐흐(약간 미안한 웃음)

 

성공이나 출세 관심없다. 생겨먹은 대로 살뿐

 

최: 딴지일보에서 새로 나온 영화나 음반 리뷰같은 것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근데 요즘은 그런 코너가 많이 없어져서 아쉽습니다. 가슴네트워크라는 단체는 최근 경향신문과 한국 100대 명반을 선발해 발표했는데 원래 이런 것 딴지가 먼저 했고 계속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총수: 딴지일보가 생겼을 당시 우리나라에 불합리한 것들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불합리한 것은 잘 참고 불평등한 것은 못 참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겪으며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체화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멀쩡한 사람을 한밤 중에 수사기관 같은 데서 막 끌고 가고 그런 세상이었지 않습니까. 그런 불합리한 일들을 받아들인 거죠. 이회창이 왜 두 번이나 떨어졌나요. 우리 국민의 불평등한 것을 못참는 정서를 건드린 거잖아요. 남들 다가는 군대 왜 제만 안가. 뭐 이런 정서요. 딴지는 초창기에 불평등한 것 말고도 불합리한 것도 참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떠들어 댔죠. 이제는 딴지일보에서 말하는 정도는 다른 데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죠. 음악이나 영화 리뷰같은 건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어요. 내부에 그럴만한 사람도 없고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그러고 있어요.

최: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변했다는 말을 많이 하시네요.

총수: 요즘 중고생 나와서 데모(촛불집회) 하자나요. 그걸 보면서 와 386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대가 나왔다. 이렇게 생각해요. 참 심플하다. 대통령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 이 정도는 막아줘야 하잖아 열받는다 이러면서 튀어나오고 있는 거죠. 복잡하게 고민하고 제고 이런 기전이 없이 그냥 심플하게 반응해요. 조국과 민족을 구해야 한다. 머 이런 부채의식도 없고. 거대담론에 치우치다보면 일상을 못 따라 가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운동하면서 여자들한테는 보수적으로 굴고 뭐 이런 운동권들 있었잖아요. 전형적으로 자기의 주장과 일상에서 그 주장을 실현하는 것과 일치시키지 못한 거죠. 그런데 얘네들은 달라요. 일상에서 불합리하다하고 생각하면 그냥 들고 일어서는 거예요. 합리적인 힘이 될 자질을 갖췄다고 봐요. 거대담론이나 이데올로기하고 상관없이 사안에 따라 대통령 탄핵을 이끌 만큼 정치적이야. 정치적인 개인이라고 할까요.

최: 거대담론이 없는 게 단점이 될 수도 있지 않나요. 정치적인 입장도 너무 개인적이다 보니 나 말고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들 이런 거에 무관심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어 보이는데.

총수: 나도 그네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치적으로 이해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요. 자칫 합리적이지만 이기적인 시민으로 밖에 성장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해요.

최: 딴지일보를 통해 총수가 말하고 싶은 것은 뭐죠?, 이상적인 사회나 정치시스템 뭐 이런 것이 있나요?

총수: 이상이랄 것까지. 너무 거창하다. 부담스럽고. 난 그저 상식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서로 충돌할 때 상식과 예의를 지키자 이 말이죠. 좀 이상적이죠. 제가 배낭여행으로 40~50개국 여행을 했는데요. 처음 10개의 나라를 가면 그 나라의 다른 점들이 보여요. 예를 들면 버스를 타잖아요. 어떤 나라는 토큰을 내요, 어떤 나라는 현금으로 내요, 어떤 나라는 카드로 내고, 처음에 다른 나라를 가면 모두 다르게 보여요. 그래서 나라별로 토큰 모으고 그랬죠. 조그만 차이도. 그런데 점점 나라 수가 늘어나면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게 보여요. 나라 수가 20개가 넘어가고, 30개가 넘어가면 같은 게 보이기 시작해요. 무슨 얘기냐 하면 '버스 탈 때 돈 낸다' 이건 다 똑같아. 어딜 가나, 그러니까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보게 되는 거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으레 통하기 마련인 본질이 있어요. 이것이 상식이죠. '버스타면 돈 내야한다'는 상식과 예절. 그런 것에 대충 맞춰서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윤리는 사람을 질식하게 해요. 사람을 질식하게 만드는 것은 비윤리적이죠. 내가 요만큼 욕심내면 제도 이만큼 욕심내겠지 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그치자는 거 그게 상식이죠. 물론 그게 가능하려면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돼야 한다.

최: 총수가 자신을 객관화해 본다면...

총수: 난 스스로를 ‘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만족합니다. 남을 상담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고민하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걸, 즉 나와 다른 점을 발견합니다. 그 다른 점이 무엇인지 깨달았죠. 저는 저한테 만족한다는 사실입니다. 남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내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죠. 보통 사람들의 만족은 비교우위를 통해 확인됩니다. 근데 전 천성적으로 남과의 비교우위 통해 자신감을 얻거나 하지 않습니다. 잘 생긴 사람보면 “존나 잘 생겼네”라고 생각하지만 난 “왜 안 그렇지”하는 생각 안합니다.

난 이승에서 즐겁게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내세 그런 거 안믿어요. 종교는 사람이 사는데 한 방편이 돼야지 목표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절에 가는데 스님들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요. 이승에서 즐겁게 살면 안되나.

최: 총수는 현세가 중요하다. 현재의 쾌락이 중요하다?

총수: 배낭여행할 때 정말 거지처럼 하고 다녔었죠. 당시는 돈도 없었고 배낭여행은 으레 그렇게 하고 다니는 줄 알았죠. 그런데 어느 날 프랑스의 멋있는 거리를 배낭매고 걸어가다양복점에 걸린 ‘휴고 보스’ 양복을 보고 꽂힌 거야. 지금이야 그게 명품이구나 그러지 그때 는 그게 명품인지 뭔지도 몰랐어요. 하여간 배낭지고 들어가서 한번 입어봤는데 이거 정말 죽이게 멋있는 거야. 130만원이라는데 두 달치 비용이 순간적으로 날아가는 상황이었죠. 순간 아주 잠깐 고민했어요. 난 돈없다. 지금 이걸 사면 앞으로의 여행에서 불확실성이 엄청나게 증대된다. 지금 꾹 참고 그냥 나가면 130만원 질려서 안게 될 여행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안전함을 찾으며 얻게 될 행복이 분명히 있어 보였다. 하지만 루이 보스 질러서 얻게 될 이 폭발적인 행복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불확실성을 줄이고 얻게 될 행복과 루이 보스 질러서 얻게 될 폭발적인 행복감 중 뭐가 더 클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이번 여행 마치고 돌아가면 이 즐거움을 되찾을 방법이 있을까. 몇 분 고민하다. 그냥 질러버렸어요. 속에는 면티에 운동화신고 루이 보스 사서 입은 거죠. 결국 돈이 없어서 공원 벤치에서 그냥 잤는데 그때도 루이 보스 입고 잤죠. 지금도 집에 있어요. 그 루이 보스.

최: 글을 쓰고 싶어도 한두 시간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라는 기사를 봤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발독재시대의 모토 같습니다. 딴지 정신과 좀 위배되지는 않나. 총수도 뒹굴거릴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총수: 방송할 때 그랬다는 얘기죠. 근데 얼마 전에 잘렸습니다. 왜 잘렸는지는 모릅니다. 청취율도 높았는데... 근거가 없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위에서 자르라하지 않았을까.

최: 위라함은?

총수: 저기 위.

최: 아 그분! 총수가 그분을 싫어하시니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일인데요.

총수: 난 예상을 못했어요. 청취율이 높아서. 한마디로 장사가 됐는데, SBS는 장사되면 그냥 쭉 가거든. 근데 자르더라고. 그래서 요즘 한가해요.

최: 그럼 책 쓰실 생각이신가요?

총수: 한겨레신문에 고민 상담하는 코너 ‘그 까짓 껏 아나토미’를 연재했는데 책으로 내려 고요. 여행안내서도 써볼까 해요. 내 여행 철학은 여행가면 현지인이 되라 이거죠. 그러자면 필요한 마음가짐이 있어요. 오리엔탈리즘도 없어야 하고 무시하지 말고 그렇다고 기죽지도 말고. 권할만한 여행지들도 있고. 책의 앞에는 여행에 대한 애티튜드를 주로 쓰고 뒤에는 꼭 필요한데 일반적인 여행 책에는 없는 것 쓸려고요.

최: 그런 게 있나요.

총수: 있죠. 예를 들어 폴란드 사람 친구 만들고 싶으면 요한 바오르 교황이나 퀴리부인만 알면 대화가 확 트입니다. 그런 거에 대해서도 좀 쓰려고 근데 게을러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근데 이거 너무 길게 하는 것 아니야.

최: 몇 개만 더 물어볼게요. 대한민국에서 존재감 느껴지는 인간이 누구냐하면 전 김훈, 김어준을 꼽습니다. 두 분 다 운전면허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총수: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어요. 김훈이 쓴 칼 머더라

최: 칼의 노래?

총수: 그거 읽다 말았어요. 반쯤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작가가 참 애처롭다 이런 것이었죠. 왜소한 수컷이 도달할 수 없는 남성성을 향한 열망. 콤플렉스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난 김훈이 그다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자기한테 만족을 못하나? 문장도 너무 비장하고...오버스러워 너무. 그 사람은 정말 마초일 것 같아요.

 

선거는 쇼핑하고 같다. 매뉴얼보고 사나 이미지보고 사지...

 

최: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이 느꼈던 좌절이나 고통의 기억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은 자신만만하고 늘 승승장구했을 것 같은 총수도 그런 기억들이 있나요? 총수도 서울대 떨어지고 상처받았나요?

총수: 기본적으로 상처 안받는 종자데 그땐 정말 상처 받았죠. 서울대를 떨어지니깐 그때 입증 부담이 확 생기더라구.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가면 굳이 날 입증하지 않아도 되자나. 나 서울대 나온 사람이야. 그럼 그걸로 다 돼. 근데 떨어지고 나니깐 내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는 걸 늘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죠. 그런데 지금은 서울대 떨어진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서울대 간 사람 보면 불쌍해 보여 요즘은. 사회적으로는 누릴 것 다 누리고 그러니깐 뭐 불쌍할 것도 없지만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 서울대 가는 순간 자신이 가야할 길이 딱 보이잖아 그길 벗어나는 것도 부담스럽고 자신의 생각보다는 정해진 길로 가야하는 거지.

최: 서울대를 떨어지고 나서 한 자기합리화 아닌가요?

총수: 난 내가 그때 서울대 들어갔으면 그냥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뭐 뻔한 길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냥 그 정도에 머무는 거죠. 진짜로... 그래서 나한테 부과됐을 그 제약 생각하면 다행이야. 정말.

최: 서울대나 학벌주의의 위력이 우리 사회에서 대단하기는 해요. 우리 국민 머릿속에 아주 뿌리깊이 박혀있어요. 예를 들어 네이버에서 총수를 검색하면 꼭 서울대를 떨어지고 이런 말이 나와요. 이건 총수처럼 난 양반이 서울대를 안나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나온 방어기전이라고 생각해요. 총수는 원래 설대 갈 실력이었는데 이런저런 불운으로 떨어지고... 뭐 이런 거죠. 손석희 한테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어요. 한때 손석희가 국민대 전체 수석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이런 소문이 있었죠. 확인은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대중들이 손석희처럼 똑똑한 사람이 서울대 안나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깐 자꾸 외전을 만들어내는 거죠. 뭐 가난해서 서울대 갈 실력이었는데 그냥 국민대 수석 먹었다. 난 이런 게 정말 무서운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통념이죠. 현실이 그렇지 않으면 끼워 맞춰서라도 갈려고 하는 이 강박적인 통념.

최: 총선 얘기도 좀 하죠. 이번 총선에서는 대중의 이익과는 관련없는 사람들이 많이 당선됐습니다. 그중 홍정욱이나 나경원을 향한 대중들 뜨거운 반응. 이거 왜 그런 거라 생각하나요. 개인적으로 이해가 잘 안갑니다. 영국 대중들이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왕실에 일방적인 사랑을 보내는 것과 같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라고 봐야할까요? 나도 혹은 내 자식도 그들처럼 만들고 싶다 뭐 이런 욕망의 투영인가요?

총수: 선거는 쇼핑하는 것과 같다고 봐요. 소비자들이 물건 살 때 제품 설명서를 다 읽고 사나요. 다 읽고 산다고 좌파들은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게 좌파의 실패한 전략이죠. 좌파들 존나게 매뉴얼 만들어서 이렇게 쌓아가지고 가져와요. 그럼 뭐해. 사람들 뚜껑도 안열어 보는데. 선거는 그런 거예요. 일반 상품 구매하는 것하고 같죠. 좌파 선거전략은 매뉴얼에 집착하는 전략이예요. 패배의 원인이다. 매뉴얼 잔뜩 싸 짊어지고 와서 왜 대중은 읽어보지도 않고 아무거나 사는 거야 이러는 거지. 선거는 일종의 이미지, 상징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일정한 게임룰 안에서 상징게임이 되는 거예요. 싫든 좋든. 민주노동당 사람들 만나면 저 사람들 그러니깐 안되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을 정치집단, 정당이라고 느껴야 하는데 빈민구호집단처럼 느끼죠. 저 집단한테 의탁하면 이런저런 정치적 입장이 실현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질 않는 거죠.

총수는 흥미가 없거나 조금이라도 진부한 질문을 할라치면 곧바로 태클을 걸어왔다. “도대체 무슨 질문이 그래”, “야마가 뭐야”, “그건 관심 없는데”.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는 예의가 아주 없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런 그와의 인터뷰는 정말 유쾌했다. 면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즐거워지는 이 마조히즘적인 쾌락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시큰둥하고 막 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절제된 총수의 절묘한 균형감과 스탠스를 보는 재미가 솔솔했기 때문일 거다.

총수는 인터뷰 전 남자들끼리 떼로 접선하는 것이 얼마나 반인륜적인가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했다. 하루빨리 인류애가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총수와 술이나 한잔...

[출처] 김어준 인터뷰|작성자 chesw21






  
2005.3.5
 
"패러디 원조 김어준, 정통 시사프로그램 진행"  
[노컷인터뷰]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맡아  

인터넷언론이 지금처럼 활발해 지기 전이었던 1998년, 혜성처럼 나타나 수많은 사람(citizen)을 네티즌(netizen)으로 쭉 끌어당긴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그는 기발하고 때로는 발칙한 발상과 시각으로 인터넷 열풍의 거센 불길에 기름을 부은 장본인이다.

생뚱맞게 시사프로그램을(?)

인터넷상에서 그의 활동이 과거에 비하면 뜸해졌지만(?) 요즘 그를 만나려면 공중파 방송인 CBS라디오(FM 98.1)를 틀면 된다.

"딴지일보총수" "패러디계의 황태자" "비꼬기의 달인"으로 유명한 그가 '김어준의 저공비행(PD 정혜윤)'이라는 프로그램을 1년째 맡아 진행해왔다.

공중파 방송에서 과연 수위를 잘 조절하고 있을까 걱정도 되는데 아닌게 아니라 방송위원회로부터 방송진행중 위험수위를 넘는 발언으로 두 차례나 지적을 받았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열린우리당 유인태의원을 초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보통 어떤 사연이 있을 때 기자들한테 욕을 하셨나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XX끼'라는 표현을 하였으며, 진행자가 "특정신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신다는데"라는 질문을 하자 'X같은 신문하고, X같은 신문'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밖에서 연출하던 PD와 진행자인 김어준씨도 멈칫했을 뿐더러 발언 당사자인 유인태의원도 순간 당황한 빛이 역력했고 결국 방송위로부터 청취자에 대한 사과명령을 받았다.

김어준, CBS 정통 시사프로그램 전격 발탁

물론 본인의 실수보다는 초대받은 게스트가 위험수위를 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빚어진 일이지만 점잖은 손님들로 하여금 얘기를 이끌어내는 그의 솜씨는 CNN의 래리킹에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정범구 박사가 진행해온 CBS의 대표적인 정통 시사 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FM 98.1MHz, 월-토 19:00-21:00)을 덜컥 맡게 됐다.

그가 진행할 정통시사프로그램은 어떨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의 근황과 인간 김어준에 대해 노컷뉴스가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어준씨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심플한 삶을 살고 싶다"면서 "스스로 열등감과 컴플렉스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왕자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을 시큰둥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화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다"

◇기자: 정통시사프로그램을 딴지일보 총수에게 맡긴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김어준: 그간 시사 방송이 심심했나... 변화가 필요해서 나에게 맡긴 것이 아닐까. 매너리즘을 경계하는 하나의 새로운 시도라 생각한다.

◇기자: 진행 중인 김어준의 저공비행을 통해 청취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 있었나?

◈김어준: 이 방송을 통해 문화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문화는 한쪽이 더 우월하거나 품위있어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마이너문화에 조명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인 문화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내말은 서민들의 예술이 만족시키는 정서가 따로 있다는 것! 고급문화에 기 죽을 필요는 없다

◇기자: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

◈김어준: 대부분 후지다. 기대치에 딱 맞는 사람이 기억에 남고, 기대치와 전혀 다른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이인제씨와 김근태장관이 기억에 남는다. 다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인터뷰였다.

◇기자: 방송은 재미있나?

◈김어준: 처음에는 아주 재미있었다.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치인을 다루는 부분에서 명예훼손이나 인신공격의 여지가 드러나 자기검열이 생겼다. 영역이 줄어들수록 재미가 없어졌다. 정치인의 본질을 바라보려면, 경계에 서있는 질문을 해야 윤곽이 드러나는데 대부분 금기이거나 익숙치 않아서 불편해 하는 점이 안타깝다.

◇기자: 딴지일보에 대해서 '너무 드러내놓아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시각이 있다. 본인의 생각은?

◈김어준: 딴지일보는 경박하다. 너무 내놓고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나름의 역할이 있다. 처음부터 그런의도로 시작한 것이다. 즉 비판을 하려면 수준에 맞게 비판해야 한다. '왜 너네는 재미가 없어? 왜 짧은 시간내에 그 문제의 본질을 재미있게 전달하지 못했어?'라고 비판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나 많이 그렇게 하고, 우리도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 아젠다도 희미해지고 형식도 구태의연해지고 있다. 어느 순간, 우리의 역할이 사라지면, 없어져야지.

◇기자: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어준: 아니, 동물적이라 생각한다. 한국적 사상 스펙트럼으로 보면 진보적인 편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파다.

배낭여행 1세대, 여행 학창시절 5년간 80개국 여행다녀

◇기자: 여행을 많이 했다던데?

◈김어준: 여행을 많이 다녔다. 여행자율화가 이루어진지 얼마 안되서 배낭여행을 시작해 실은 나는 배냥여행 1세대이다. 일년에 반은 여행을 다녔고 80개국을 가봤다. 여행 경비는 그때마다 각종 아르바이트(지하철에서 신문판매, 배낭여행 설명회, 암달러상)를 해가며 마련했다.

◇기자: 여행하면서 느낀 점?

◈김어준: 음. 예를 들면 대치동의 레스토랑보다 시골의 음식점이 더 좋은 경우가 있다. 동물밑에서 자란 사람이 언어능력을 습득하지 못하면 말을 못배우는 것처럼, 미적 감각이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는데, 어느 시간내에 깨닫지 못하면 발휘를 못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이러한 깨달음에 방해가 되고 있다.

◇기자: 추천 여행지?

◈김어준: 특이한 경치 보고 싶은 곳. 가장 지구같지 않는 곳은 터키에 가면 중동부 카파도시야라는 곳. 가장예쁜 여행지는 스위스다. 라운튼 블루, 사막, 수에즈 운하가 무척 인상 깊었다. 또 노르웨이 피오르드 계곡은 아주 원시적이다.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인 파리를 여러 번 가요.

김어준이 말하는 사랑 "이세상에 남녀만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아"

◇기자: 이성관은?

◈김어준: 여행을 하다보니까. 각국이 다른 부분이 많아보여도 결국은 다 같은게 보인다. 본질만 남는 것이다. 결국 남녀의 차이만큼 큰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연애를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닥치는 대로 연애해라! 연애는 평생하는 것이다.

◇기자: 일부일처제에 대한 생각은?

◈김어준: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자연스럽지도 않다. 일부일처제가 이루어진 것은 그 제도가 없을 경우 치뤄야 할 값이 너무 커서다.

◇기자: 그렇다면 결혼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가?

◈김어준: 물론 결혼제도가 가진 순기능은 많다. 보통 사람들은 예측가능하고 자신의 권력유지가 되는 사회이길 바란다. 그렇지만, 한 사람만 영원히 사랑하는 것만 아름다운가? 여러사람을 한평생 사랑하면 아름답지 않은가?

◇기자: 첫사랑은?

◈김어준: 첫사랑? 생각나지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 그걸로 족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 있다 해도 관심없다.

김어준이 말하는 나, "그냥 죽으면 안되나?"

◇기자: 존경하는 사람?

◈김어준: 어렸을 때는 극지방을 탐험한 아문젠을 존경했다. 그의 전기를 읽고 그의 어린시절과 같이 창문을 열어 놓고 자기도 했다. 현재 존경하는 사람은 없다. 뭘 존경씩이나 하나. 같은 사람끼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사람이 가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그들은 존경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줄도 모른 채 말이다. 같은 사람끼리 존경까지 할 필요가 있나.

◇기자: 자녀 교육이 남다를 것 같은데?

◈김어준: 가르치고 싶은 것 없지만 굳이 키워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문제 해결 능력이다. 본질을 보는 안목을 가르치고 싶다. 빨간불, 파란불을 구분해 건너라고 말하진 않겠다. "그냥 사람들 건널 때 건너라"라 말하겠다. 원칙만을 가르치고 싶진 않다.

◇기자: 왜 하필 문제해결 능력인가?

◈김어준: 배낭여행 가이드를 할 때 함께 온 커플들이 열에 아홉은 헤어져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여행을 같이하면 사이가 더 좋아질거라 생각했는데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커플의 예를 들면 그들이 파리에서 3일 있다 비엔나로 가기로 했다치자. 여행 중에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보통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남자가 훨씬 비겁해진다. 그래서 80%가 여자 탓을 한다. 남녀의 대처 방법이 다르고 그런 문제에 닥치면 그 사람 자체가 가지는 타고난 문제 해결능력이 드러난다.

◇기자: 기억에 남는 책?

◈김어준: 계몽사에서 나온 "부처의 일생"이 기억에 남는다. 왜 이렇게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회하여 구원받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 그냥 죽으면 안되나라는 의문이 생겼다.

◇기자: 그럼 종교가 없는 건가?

◈김어준: 우주를 운행하는 질서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종교라는 이름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왜 득도해야 하는가? 그냥 동물처럼 살면 안돼는 건가. 나는 본질에 바로 다가간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꼬아서 보는 것 아니라 솔직하게 답하는 것뿐.

◇기자: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면?

◈김어준: 대학에 떨어진 것이 전환점이었다. 그 후로 기대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두렵지 않고, 다른사람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무섭지 않다. 나는 내가 해방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기자: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김어준: 특별한 욕망이 없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 보다 동물에 가깝다. 다르게 진화했다는 점밖에 없다. 사람이 누구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가는 것. 극점을 가보고 싶다. 어려서부터 꿈인데 은행을 털어보고 싶다. 사람들이 가장 뺏기기 싫어하는 물건이니까. 물론, 성공하면 바로 돈을 돌려줘야지. 그리고 60대에는 식당의 주인이 되고 싶다. 예약제로 이루어지고 음식은 내 마음대로 정하는 식당에서 손님으로 온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해보고 싶다.

노컷뉴스 윤지현/이정윤 인턴기자

 
 



 2004.6.14
 


딴지총수 김어준 인터뷰(1)

“나는 내 자신에게도 시큰둥하지만, 책임감 있고 균형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6월 2일 저녁 9시 딴지 김어준 총수를 어렵게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총수의 바쁜 스케쥴 탓에 몇 달 전부터 약속을 했다가 연기되고, 취소되고를 반복하다가 겨우 만날 수 있었는데, 총수는 '무슨 인터뷰야. 오랜만에 만났으니 얘기나 좀 하지'라고 했지만, '지난번 바람을 맞혔으니 1시간만 하자'고 요청해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막상 시작된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지난 12시에 끝난 거의 뽕빨 인터뷰가 되었는데, 인터뷰가 끝난 후 총수는 '씨바 또 속았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총선 기간 중 한겨레와 공동으로 정치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의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다시 한번 인터뷰어로서도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김어준 총수는 현재 CBS 라디오에서 오후 3∼5시까지 '저공비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방송활동까지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김 총수는 바로 며칠 전에 했던 다음 매거진의 인터뷰가 머릿속에 맴돌았는지 '짧은 시간에 했던 인터뷰라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 후 자신이 말한 것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고, 그 인터뷰를 본 후 처음 든 느낌이 '어, 이거 누구야.. 내가 아니네..' 였다 면서 그 인터뷰에 대한 부연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하여, 이 인터뷰의 컨셉은 '김어준의 재발견'이다. 김어준이란 캐릭터에 대해 꽤 여러 번 만났던 나 역시 상당부분 피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김어준은 진지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전에 그 반대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론에 대해서도 길게 얘기했고, 이제 평시가 되었으니 좀 핏대 올리지 말고 정치를 얘기하는 게 어떠냐는 대화도 나눴고, 요즘 김어준 총수가 가장 재미있게 하는 인물 30자평(?)까지 3시간 가까운 동안 내내 즐거웠던 인터뷰였다.


지승호(이하 지) - 방송 하신지 한달쯤 되셨죠? 방송해보니까 어떠세요? 

김어준(이하 김) - 방송에 관련해서 얘기를 해보자면, 다음 인터뷰에 '제가 생각보다 방송을 좋아해요'라고 나갔나, 뭐라고 나갔더라...


지 - 방송체질이라고 나왔죠.(웃음)

김 - 그게 앞뒤 자르고 나간 건데, 그냥 "내가 방송체질이라서요. 하하.." 했다면 그건 참 바보 같은 소리죠.. 제 말의 의도는 제가 생각보다 라이브, 생방송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좋아한다는 말인데.. 제가 처음으로 생방송을 해봤는데.. 녹음은 재미없어요. 덮어쓰기가 가능하잖아요.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생방송이면 방송중이라는 빨간불이 들어오는데 그때부터는 긴장이 되잖아요. 긴장이 되면 머리가 맑아져요. 그러니까 긴장이 되고, 머리가 맑아지는 그 상태를 좋아하더라는 거죠. 그 순간의 긴장감, 날이 서고, 실수하면 안 되고, 시간도 체크해야 되고, 나온 사람들과 이야기도 조율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야 하고.. 라이브로 그 시간을 아주 날이 서서 진행하는 것 자체를 아주 즐기고 있더라 이거죠. "내 목소리가 방송을 타는구나.. 야.. 신난다.. 헤헤 난 방송체질이에요.." 한 것이 아니라.. 방송 자체는 신기한 건 그다지 아니구요. 딴지일보를 통해서거나 다른 형태로 대중 앞에 서 본 경험은 있다보니.. 그런데 라이브로 해본 적은 없거든요. 근데 이건 쌩인거야. 그 날것인 상태로 직접 청취자를 만나거나 접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저한테는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라고 얘기를 한거에요 그게.


지 - 비슷한 맥락이긴 하지만, 툭 떼 갖고 '방송체질'이라고 나간 건 좀 그랬단 건가요?(웃음) '흔히 딴지 총수는 이럴거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끔 비교를 당하게 되면 기분이 나쁠 때도 있는데, 사람들한테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김어준은 항상 놀면서도 1등 하고, 난 졸라게 노력하고 고민하는데 2등만 하는 아이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김 총수는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시잖아요. 오히려 제가 노력이 부족한 것 같더라구요.

김 - 그러게요. 전 굉장히 일을 열심히, 재미있게 하는데...(웃음) 이러면 이거 계속 그 인터뷰 얘기를 계속 하게 되는데.. 그 인터뷰를 읽자마자 첫 대목부터 깜짝 놀란 게 있는데, 첫 줄의 '방송을 좋아한다. 방송 체질이예요' 한 부분. 첫대목부터 놀라서 끝까지 '이게 누구야.. 내가 아닌데..' 하면서 읽었는데.. 예를 들어 첫대목의 방송체질이라고 했다는 부분은 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전 청취자의 반응조차 궁금하지 않아요. 방송을 시작하니까 그런 질문을 많이 해요. '청취자에게 바라는 게 뭐냐?' 전 청취자에게 바라는 거 없어요. 청취자가 날 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 방송을 시작한 게 아니거든요. 처음 방송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무슨 방송을 해'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문화라는 게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각잡고, 폼잡고, 어깨에 힘주는 것을 문화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문화가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는 것을 내가 말할 수 있다면, 라디오를 통해 할 수 있다면.. 그런 조건이 전제된다면 할 만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CBS 담당 피디와 코너들을 같이 얘기하고 기획하면서 방송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OK를 하게 된 거죠. 일단 OK를 해놓고 코너를 기획한 게 아니라, 방송의 지향과 내용을 이야기하며 '이런 것도 가능하다면,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 이란 전제가 먼저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나로서는 독자 반응 같은 게 궁금하지 않은 게, 만약 내가 전문방송인이라면, 그게 직업이라면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서 자기의 부족한 점을 소비자가 좋아하도록 고쳐나가야 되고 그러자면 끊임없이 그들의 요구가 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그게 올바른 직업윤리죠. 그런데 저는 방송인이 아니거든요. 일시적으로 이 매체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매체를 그런 메시지의 소통 경로로 생각한단 말이에요. 근데 내가 이 통로를 사용해서 발언을 했는데, 그게 안 먹혀, 청취자들이 안 좋아해, 그럼 관둬야 되는 거죠. 나를 청취자들이 좋아하도록 바꾸거나 내 메시지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저로서는 바라는 바가 없는 겁니다. 내 방송을 좋아해달라느니, 그런 기대가 없어요. 내 의도가 전달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내 메시지가 대중성이 없거나 아예 메시지 자체가 잘못 됐거나 뭐 그런 거죠. 그럼 관둬야죠. 간단하죠. 그런데, 이게 앞뒤가 뚝뚝 짤려서 '방송이 체질이예요. 하하하' 하고 나갔는데, 아마 내가 한 말 중에 그런 의미로 오해될 만한 문구가 있었나 본데, 그건 제 뜻과는 정말이지 아무 상관없거든요. 그러니 깜짝 놀랐죠.


지 - 실제로 인터뷰를 많이 하시고, 당하시기도 하시는데요. 인터뷰를 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 제가 인터뷰를 바로 한 직후라서 인터뷰를 한 그 양반을 욕하는 꼴이 될 것 같은데, 안전장치를 두자면 제가 약속에 늦기도 한데다 제 잘못으로 시간이 부족해 다시 만났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짧고 제한된 시간에 이뤄진 인터뷰에요. 또 그 분이 충분히 공부가 되어 있지 않더라구요. 딴지일보와 딴지총수에 대한 스테레오타입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더라구요. 제한된 시간에 질문도 제한되니 애초부터 깊이 있는 인터뷰가 될 수 없었죠. 그런데 그 양반 개인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말하자면, 인터뷰를 제가 직접 하기도 하고, 거꾸로 당하기도 한 경험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은데... 보통은 인터뷰를 하거나, 당하기만 하는데, 저는 양쪽을 왔다갔다 많이 해 봤어요.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인터뷰어가 지켜야할 몇 가지 코드가 있는데, 첫째가 뭐냐면 가장 중요한 게 그 사람을 만나야지,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나면 안되거든요. 인터뷰가 겉돌거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가는 경우, 십중팔구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 대해 가진 선입견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아 그 사람의 실체를 만난 게 아니라 그 이미지만 만났을 경우죠. 각종 매체들을 통해 받아들인 인터뷰이에 관한 이미지 편린들의 총합이 있겠죠. 그건 산술적 합입니다. 화학적 합이 아니라. 인터뷰어 자신이 이미 받아들인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들의 산술적 합이 있어요. 보통 그 산술적 합을 가지고 인터뷰를 해요. 그러다보니까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던 산술적 합으로서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얘기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거죠. 나머지는 버려요. 그러다보니,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이미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재확인하거나 그 이미지에 부합되는 그림만 그리다 오는 거죠. 그런데 인터뷰를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런 이미지를 거둬내고 실체를 만나기 위함인데, 사실 여부를 캐서 본질인 실체를 만나려고 인터뷰를 하는 건데, 그런데 그런 미리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스스로 매몰되어 결국은 기존 이미지를 강화하거나, 여러 가지 분절된 팩트들을 모아서 그 이미지에 부합되도록 재구성해서 실체와 상관없는 이미지 하나를 또 내미는 거죠. 이거 졸라게 쓸데 없는 짓이죠. 연예인 인터뷰가 이런 경우가 많아요. 소위 빨아주기. 다른건 다 필요없고, 그 이미지에 부합되도록 재구성해서 인물 하나를 창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터뷰의 첫 번째 규칙이, 그 사람을 만나야지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근데 참 어려운 일이예요. 단 시간 내에 그 사람의 실체를 만난다는 게, 그러려면 인터뷰를 하는 인터뷰어가 인터뷰 당할 인터뷰이의 실체와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그러자면 기본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공부가 미리 되어 있어야 되고, 자기 스스로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해요.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내 식으로 이해해서 그리고 그걸 되돌려서 그 사람의 의도라고 지레 단정해 버리면 안 되거든요. 근데 이 사람이 한 말과 내가 가졌던 그 사람의 이미지가 합쳐져서 '저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려면 인터뷰어가 굉장히 객관적이고 오픈된 상태로 있어줘야 되거든요. 그 사람의 말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면. 근데 보통은 얘기하다가 그 사람의 앞뒤 문맥과 그 사람의 의도를 간파해 그 말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귀에 쏙 들어오는 말로, 그리고 인터뷰를 구성할 섹시한 문구로 그 말을 받아들이죠. 그건 사실은 그 사람을 인터뷰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문장을 뽑는 거죠. 그런 경우가 많아요. 또 오픈되고 객관된 상태가 못되는 게 준비가 안 되어 있어 그런 경우도 많죠. 인터뷰어가 미리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결국 자신이 가진 이미지하고 만나는 거에요. 실체가 아니라. 또 있어요. 이 두 개 못지않게 중요한 게 뭐냐면 인터뷰는 그 사람이 하는 말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화가 이어져야 되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인터뷰어는 말은 시켜놓고, 상대방의 말은 안 들어요. 왜 안 듣느냐 하면 다음 질문을 해야 되거든, 졸라게 다음 질문을 생각해, 그러면 사실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질문 하나 던져서 스피커 틀어놓고, 자기는 졸라게 딴 일을 하는 거지, 말은 하는데 실제 커뮤니케이션은 안 되는 겁니다. 소통이 안 되는거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소통이 안 되는 인터뷰,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발췌하는 인터뷰가 대부분이죠. 물론 시간의 제약이라던가 여러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런 인터뷰는 사실 그 사람을 만난 적도 없는 거예요. 자기가 미리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그에 부합되도록 뽑아낸 문구와 섹시하게 만들어지는 구색으로 새로운 인물을 하나 창조하는 거죠. 그 사람을 만난 게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터뷰가 갖는 아주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죠. 아예 풀로 다 풀어버리는 인터뷰로 가거나 아니면 인터뷰이 멘트 거의 없이 완전히 자신이 이해한대로 재창조하거나 해야하는데... 재창조하려면 그 사람을 입체적으로 해체하여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키포인트만 가지고 재구성해야 되는데, 총선 때 한겨레 기사가 후자라면, 딴지식은 오해 없이 완전히 다 풀어버리는 전자의 방식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흔히 하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하자면 그런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한 몇 마디를 앞뒤 자르고 쭉쭉 나열해버리면 전혀 딴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죠. 그건 게으른 인터뷰고, 무책임한 인터뷰입니다. 그런데 실제 대부분의 인터뷰가 그렇죠.


지 - 자기가 해보지 않으면 인터뷰라는 게 그냥 얘기 듣고 와서 녹음기 듣고 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막상 해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는데요.

김 - 그렇죠. 어렵죠.


지 - 당하기도 많이 하셨고, 하시기도 많이 하셨는데요. 본인의 인터뷰가 다른 인터뷰와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 - 아무래도 풀로 풀어주니까. 무슨 얘기를 했던 간에 풀로 풀어주니까 인터뷰를 한 사람이 일단은 불만을 가질 수가 없어요. '앞뒤 문맥이 안 맞어, 왜 짤랐어, 왜 그렇게 했어' 그럴 수가 없어요. 날 것 그대로 왕창 다 풀어버리니까.


지 - 농담한 것까지 다 실으니까 부담스러웠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고, '좀 다듬지 그랬냐'고 하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김 -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완벽한 인터뷰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당사자가 자기에 대해서 자문자답하는 인터뷰를 해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한 사람의 전체 모양을 보여준다는 게 쉬울 수가 없죠. 그러니까 형식마다 장단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지금 딴지가 하는 게 제일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전부 다 풀어버리는 거. 근데, 인터뷰한 후에 인터뷰이가 그 얘기만은 정말 꼭 빼달라고 하는 부분은 빼줘요. '절대 안 되겠다. 그 사람에 대한 멘트는 정말 빼달라'고 할 때 그 얘기가 인터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으면 그런 부분은 아무리 섹시해도 통째로 들어내죠. 그 사람이 우리 매체와 인터뷰하는 것은 우리 매체를 이용해 독자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지 우리 매체가 섹시한 문구로 장사해 먹으라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보통 상업매체는 인터뷰이를 고려해주지 않죠. 지들 장사만 생각하지. 그렇지만 그 사람이 안한 말을 집어넣거나, 우리가 임의로 빼거나 그런 건 없어요. 우선 날 것 그대로를 다 풀고, 그 날 재료를 보여준 다음에 '우리는 이 날 재료를 이렇게 이해하고, 이렇게 해석했다'고 토를 달아주는 건데.. 그런데 코멘트를 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을 강요한다?'... 이건 바보 같은 말이죠.(웃음) 재료를 다 보여주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우리 입장을 밝히는 건데.. 조선일보처럼 재료도 안 보여주면서 자기들 생각을 주입시키려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양반들은 조선일보 방식에는 보통 가만히 있죠...


지 -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니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일 수도 있고, 인터넷은 리플도 가능하고, 얼마든지 이견 제시가 가능하거든요. 생각이 틀리면 이견 제시를 하면 되는데...

김 - ‘이렇게 반드시 생각해야 해, 아니면 큰일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거든. 날재료를 이렇게 이렇게 요리했어’라고 다 공개하는건데...


지 - 그게 틀리면 지적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 지적이 맞으면 '어 내가 잘못 해석했네. 니 해석이 맞아' 할 수도 있는 거구요. 그냥 날것만 올려놓으면 녹음기라고 그러고...(웃음)

김 - 조선일보처럼 날 재료를 생략하고, 자기 해석만 권위 있다고 내놓으면 그거야말로 '앞뒤 문맥 다 빼고 뭐 하는 거야' 라고 해야 되는데, 거기는 조용히 있고, 날것을 다 보여준 다음에 '우리는 이 재료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거든' 이라고 토를 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강요하는 거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요. 아니 이렇게 생각하라는게 아니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구.. 그러니까 니네는 니네 맘대로 생각해. 씨바.(웃음)


지 - 술 먹다가 나온 얘긴데, '요즘 너무 대중이 오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월드컵의 경험도 있고, 대통령을 만든 경험도 있고, 탄핵을 막아낸 경험도 있거든요.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이야. 누군가가 우리를 가르칠려고 하는 건 견딜 수 없어' 그러는데, 사실 실체가 없는 애매한거거든요. 글을 쓰거나 나서서 얘기를 하는 사람도 그게 하나의 역할일 뿐이지, 일종의 대중인거고, 때로는 소시민인거고, 그냥 자기 역할을 하는거거든요. 생각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오히려 일반 네티즌들이 애매한 대중이라는 단어 안에 숨어서 훨씬 단호한 방식으로 가르킬려고 든다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을 제거하려고 하는 태도에서는 때로 파시즘이 보일때도 있구요.

김 - 그런 부분이 있죠. 그러면서 오히려 더 교묘하고 단호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건 잘 몰라요. 조선일보가 얼마나 남들을 단호한 방식으로 가르칩니까? 그런데 그 포맷에 대해서는 익숙해서 그냥 넘어 가는 거죠. 그런데 저는 대중이 오만해지는 건 사실은 좋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지 - 저 역시 그 부분은 동의합니다. 하지만.(웃음)

김 - 대중이 오만해지는 건 좋은데... 뭐라고 할까요? 자신감을 가져서 오만해지는 건 좋은데, 가끔은 피해의식의 발현일 때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니가 날 가르칠려고 들어? 니가 뭔데’ 그런 식은 전 아니라고 봐요.


지 - ‘니가 날 가르칠 수 있으면, 나도 널 가르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인터넷은 가능하잖아요.

김 - 그렇죠. 


지 - 옛날에 정치인을 훈계하던 사이비 지식인들이 애매한 국민들을 들먹이던 것하고 아주 다른 맥락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그 안에 숨어버린다는 측면에서는... 그 사람들도 자기 얘길 하면 되는거거든요. 그런데 '니들이 건방지게 대중을 가르칠려고 들어'라고 반발하는데, 가르칠려고 드는거 아니잖아요. 그냥 자기 얘기를 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거죠. 그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거구요.

김 -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하게 되네요.(웃음)


지 - 총수의 인터뷰는 기존의 인터뷰와 굉장히 다른데요. 본인 인터뷰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인터뷰어로서의 자질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은데요. 좋은 인터뷰어가 되려면 어떤 면을 갖춰야한다고 보십니까? 제가 가끔 '회화를 한다고 가정할 때 김어준 총수는 기본적으로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인터뷰어로서 탁월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전 준비가 되지 않으면 대화를 잘 못하는 스타일이라 일단 결격 사유가 있는거구요.

김 - 저도 준비는 해요.(웃음)


지 - 당연히 하시겠죠?(웃음)

김 - 사실 스스로 느끼지 못한 부분인데, 듣고 보니 맞는 지적인 것 같아요. 제가 인터뷰할 때 사람을 무시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그 사람을 무시해본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간에. 그렇다고 그 사람을 어마어마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한 번도 없어요. 거꾸로 제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구요. '지나 나나'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죠. 그 사람도 대단하지 않고, 나도 대단하지 않고, 벗겨놓으면 똑같다는 생각을 해요.(웃음) '역할이 다른 거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니까 거기서 오는 미리 쳐둔 바운더리 같은 게 없어요. 맞는 얘기 같습니다. 나쁜 인터뷰에서 뒤집어보면 되는 거죠. 좋은 인터뷰는 자기가 먼저 오픈마인드여야 해요. 제가 인터뷰하면서 제가 미리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실체가 완전히 똑같은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야, '어떻게 그 짧은 정보의 편린들의 산술적 합으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겠나'를 생각해보면요. 그 이야기의 전후도 모르고, 그 사람을 연구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이웃도 가족도 아니고, 그냥 그야말로 무심코 입력된 여러 가지 정보의 총합으로서 그 사람을 파악해 왔는데, 그 이미지와 그 사람의 실체가 맞는다면 그게 이상한거죠. 우리나라 언론이 모두 합작하여 그 사람을 다면적으로 분석해서 대중에게 정확하게 종합적으로 딜러버리 해왔다면 그게 가능하겠지만, 그럴 리는 없을 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우선 버려야 해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다' 하는 것부터 버려야 되는데, 그게 쉽게 안되고 그런 의식 자체가 없는 수가 많고, 근데 인터뷰를 할 때는 일단 그 이미지부터 버려야 돼,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해야 되거든요. 이 사람은 위대한 사상가일수도 있고, 졸라 양아치일수도 있다는 정도의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내가 오픈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상대를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양아치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그 사람의 본 의도대로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가 오픈되어 있어야 해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내가 어떤 꼭다리에 써먹어야지'하고 그 말을 들으면 뭐든지 왜곡되게 되어 있어요. 날 것으로 그 사람을 만나려면 오픈 되어 있어야 해요. 그게 핵심이죠. 쉽게 말하면 허심탄회인데, 허심탄회도 인터뷰이가 솔직하기만 하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요. 고스란히 날 것대로 그 사람이 의도한데로 전달되어야 되는데, 그런데 그걸 대중에 전달하기 전에 인터뷰어가 요리를 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인터뷰에선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당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에서는 비슷하게 대답하는 거예요. 그걸 받아들여서 풀어내는 사람이 그 사람의 본의를 정확하게 캐치해내야 하는 거죠. 인터뷰이를 탓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많은 경우에 인터뷰를 많이 한 인터뷰이는 어떤 인터뷰어를 만나도 유사한 답변을 할 공산이 커요. 일단 그 사람이 애초 의도한 본의대로 파악하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려면 인터뷰어가 스스로 열려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는 인터뷰이가 한 말을 통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야 해요. 언제나. 그런데 상대의 답변에서 질문을 찾는 게 아니라 그냥 미리 준비한 질문만 뚝뚝 잘라서 던져 놓고는 그에 대한 답변을 또 뚝뚝 잘라서 나열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질문을 준비해 갔으니까.(웃음) 그건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내 질문을 나열하는 거죠. 이것도 나쁜 인터뷰죠. 인터뷰어가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는 기자이고 그래서 임무를 수행하러 왔으니 인터뷰 당하는 사람을 자신 인터뷰의 소재로 이해해요. 그런데, 그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은 그걸 통해서 누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거거든요. 그 사람은 그 통로로 그 매체를 선택한 거거든, 물론 그 통로를 통과할 때 기자의 눈으로 걸려져 통과되죠. 그런데 대부분의 기자들은 기사를 올리면 끝난다고 생각한다구요. 인터뷰하고, 기사를 실으면 자기 임무는 끝나는 거야, 그 사람은 그냥 자기 기사 소재야. 애초에 인터뷰이는 그 기자를 통해 누군가와 만나려는 통로로 선택을 한건데, 자기는 거기서 쫑내는 거죠. 그러니 인터뷰 소재가 될 말들만 귀에 쏙쏙 들어오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되죠.


지 - 외국의 경우 브루디외 같이 지식인이 인터뷰를 해서 책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는 비교적 드문 편이지 않습니까?

김 - 지승호씨 많이 냈잖아요.(웃음)


지 - 안팔려요. 이제 못낼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전 지식인도 아니고. 아무튼 칼럼에 비해 인터뷰를 낮게 보는 인식도 있는 것 같은데요.

김 - 저는 인터뷰야말로 진짜 어려운거라고 생각해요. 칼럼이나 기타 등등은 지 생각대로 쓰면 끝나는 거잖아. 이건 살아 있는 생명체를 글로서 그려내야 하는데, 똑같은 그림을 그려도 기술에 따라서 꽃의 느낌이 전달되기도 하고, 색깔만 덜렁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나는 인터뷰야말로 '기사문학의 꽃이다'라고 생각해요. 기사로 만들어낸 문학, 기사문학 이게 말이 되나?(웃음) 인터뷰야말로 기사문학에 있어서의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생각도 있어야 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어야 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를 신뢰하게 만들기도 해야 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제3자에게 가장 온전하게 전달할 능력도 있어야 되고... 아님 말구요. 근데 오늘은 어째 내내 인터뷰론만 나오네요.(웃음)


지 -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어떤 분인가요?

김 - 저는 개인적으로 한화갑씨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가장 달랐던 사람이예요. 실체와 이미지의 거리를 따지자면 이 사람이 가장 멀었어요. 저도 당연히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여러 정치인들에 대해서 가졌는데, 한화갑씨는 제가 만나기 전에는 '그 사람은 DJ 가방모찌 아냐, 자기가 한 게 뭐 있나, 어부지리, DJ 꽁무니 따라다니다가 국회의원 된 사람이잖아, 내용 없는 거 아냐' 이거였어요. 그런 이미지는 여러 가지 정보의 편린들을 통해 받은 이미지죠. 그런데 실제 이 사람을 만났어. 그랬더니 이 사람은 그 나이에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진보적이고, 진정성이 느껴지고, 정치에 대한 신념과 의식이 뚜렷하고, 우선 솔직하고, 워낙 오랜 세월 DJ라고 하는 정치적 거목 아래 눌려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거의 종교적으로 부를만한 그런 정신적 수련이 되어 있어요. 공명심, 또는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여러 가지 종류의 욕구들을 다스리는데 있어 정말 종교적이라 부를만한 성찰이 있더라고. DJ라는 무게를 돌파하기에는 힘겨운 일이다보니 그 안에서 스스로 자기를 수련하고, 닦아내서 만들어진 결정체로서의 품성이 있었어요. 저는 나름대로 반했습니다. 물론 여러 한계도 있는데, 이 사람의 가장 큰 약점은 DJ라는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달 역할을 너무 오래 하다보니까 자신의 품성이나 지적 능력으로도 나름의 정치세력을 이루고, 나름대로의 정치적 주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은 나이에 홀로서기 시작하니까 훈련이 안되어 있는 거예요. 사실 저는 아깝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런 정도의 사람이 오히려 DJ 밑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자기 나름의 일가를 이룰 수도 있었을 거라고. 인간적으로 상당히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지와 가장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죠.


지 - 그런 지적도 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을 보는 태도가 낭만적이라거나,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이더라는 거냐, 솔직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사람이냐, 이런 지적들도 많았는데요.

김 - 맞아요.


지 - 공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에 있어서는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나쁜 사람이라도 오히려 좋은 제도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해줘야 할 것 같거든요. 물론 둘 다 갖추면 좋겠지만. 총수께서는 자질 그 자체를 너무 평가하는 부분이 강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 현실정치인은 배우나 운동선수와 비슷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가령 야구에 비유를 하자면 굉장히 자질이 뛰어나더라도 맨날 벤치에 앉아 '야구가 뭐야'하고 고민만 하는 건 필요없거든요. 아니 필요 없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등판을 해서 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자기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령 불펜에서 160km의 강속구를 던지다가 등판만 하면 '저거 머리에 맞는 거 아냐?' 이런 등등의 고민을 하는 건 좋은 사람일 수는 있지만, 좋은 야구선수는 아니거든요. 

김 - 맞아요. 그 말은 맞은 말씀인데, 저는 거꾸로라고 생각해요. 전두환도 손자에게는 좋은 할아버지죠.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나 사적인 품성을 가지고, 정치인을 평해버리면 잘못된 거다, 말씀하신대로 낭만적인 거죠. 사적인 개인이 아무리 훌륭한들 정치인으로서 제 위치에 펑션을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 아니냐는 얘기 맞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거꾸로였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심하게.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김영삼 같은 사람을 뽑지 말았어야죠.(웃음) 저는 오히려 정치인들이 어떤 인간인지 우선 파악하고 이해하는 작업들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공학적으로 항상 힘의 역학구도 하에서 한 축으로만 이해하고, 끊임없이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서 '너의 음모가 뭐냐? 너의 의도가 뭐냐?'라고만 접근하는 게 대부분의 정치부 기자들의 접근이라구요. 저는 그 사람을 모르면, 그 사람의 행동도 제대로 해석될 리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왕자병에 불과한 김영삼의 행동들을 무슨 대단한 정치적 지향과 이념이 있는 것으로 봤던 건 김영삼이 누군지 몰라서 그랬던 거죠.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지지하는 건 아니거든요. 적어도 언론의 단위에서는 그런 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져서 적어도 저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져야죠.


지 -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저도 그런 작업을 많이 하고 싶은데요. 총수가 하는 인터뷰들을 감탄하면서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 작업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이를테면 김근태와 노무현을 놓고 볼 때 많은 지식인들이 김근태의 자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전 편집장 최내현씨도 그렇고, 김근태 의원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태도에 관한 이야기죠.

김 - 그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근태라는 정치인 개인을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게 무슨 문제냐. 제가 지금 당장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지지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순간에 정치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면,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냐'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새롭고 다른 게임이죠. 딴지가 김근태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경선에서 떨어진 직후라구요. 가장 낮은 곳에 갔을 때 김근태를 주목했거든요. 아무도 안 찾을 때. 대선후보로 몇 명이 나섰다가 제일 처음 가장 낮은 득표율로 탈락하고, 그리고 같은 민주당 내에서도 내부고발자라고 욕먹고, 상대방도 비웃고, 국민들도 순진하다고 할 때 바로 그때 김근태를 만났거든요. 김근태가 가진 자질과 품성이 우리나라 정치인 일반이 가진 자질과 품성의 평균을 훨씬 상회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된 거예요. 이 사람이 그럼 대통령이 되어야 하느냐 그건 별개의 문제예요. 전혀 다른 게임이고, 그래서 '지지할 것이냐, 하지 않을 것이냐'는 것은 전혀 포함되지 않은 얘기죠. 그렇다고 안 하겠다는 얘기도 아니고, 하겠다는 얘기도 아닌, 그건 다른 게임이란 거죠. 아니 난 사람도 못 좋아하나.(웃음)


지 - 아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그런데 딴지 총수의 영향력이나 이런 걸 볼 때.

김 - 영향력? 전 그건 뽕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지 - 정치인들이 곤란한 질문 당하면서도 딴지 총수랑 인터뷰하려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게 홍보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거든요.

김 - 물론 당연히 그럴 수 있죠. 그 속에 계산이 제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산이 제로인 경우는 없어요. 부모 자식간에도. 계산이 몇%냐 그런 걸 따지는 건 웃기는 일이고, 만약에 우리가 대선후보를 공평하게 누군가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그건 새로운 게임이죠. 지금은 루즈타임이잖아, 경기도 시작 안됐고, 하프타임이고, 루즈타임이니까, 앞으로도 이유가 있고 기회가 되면 김근태 의원을 몇 번이라도 만날 거예요. 왜냐하면 콘텐츠가 나오니까. 그나마 근접한 콘텐츠가 나오니까, 안나오는 사람 백번 만나면 뭐해요.


지 - 저도 얼마전에 진중권 인터뷰를 했다가 욕을 태바가지로 먹었는데, 저한테 욕을 했다는게 문제가 아니라 일부 노무현 지지자 소위 '노빠'들의 태도가 우려되기도 하더라구요. 말 그대로 이제 좀 여유 있고, 길게 보고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길이 될 것 같은데, 말씀하신데로 이제 평시라고 봐도되잖아요. 

김 - 모든 걸 너무 정치적인 잣대로 보는 것 같아요.


지 - 저도 '노빠'로 분류되는 사람이지만, 욕을 먹으니 성질 나더라구요. 그래서 '에이 씨바 노빠들 문제야'라는 말이 나오더라구요.(웃음)

김 - 맞아, 노빠들이 문제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적이야. 노무현은 노빠들을 적이라고 생각해야 돼.(웃음) 


지 - 그게 굉장히 일부인데도 그 분위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건 위험한 거거든요.

김 -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니까.(웃음) 



지 - 선량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세상은 나빠질 수 있다는 말도 있잖아요.

김 -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죠.(웃음) 일부 노빠들은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이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노무현을 상대로 하여 일반인들에게 미치고 있다니까. 근데 지하철에서 열의를 가지고 전도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당신이 잘못했다'고 말하면 이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잖아.


지 - 자기들은 종교적인 사명감으로 하는거니까.

김 - 그런데 자기가 지하철에서 십자가를 들고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볼 때 느낀다는 걸 자각해야죠. 노무현을 좋아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과도한 애정 표현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웃음)


지 - 이제 전쟁도 끝났고, 승리했으니까 승자의 여유를 좀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노무현의 개혁을 지지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거든요. 이거 올리면 진짜 쫓겨나겠는데...(웃음) '이 자식이 이제 드디어 반노로 돌아섰어' 하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나올 것 같네요. 일부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마음 속에 담아둬야할 것을 너무 과도하게 표현하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수는 요즘 들어서 상대적으로 한나라당 쪽 인터뷰의 비중이 높아졌던 것 같은데요.

김 - 전 이제 열린우리당 별로 재미없어요.(웃음)


지 - 그동안 그쪽 자료들이 없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에 대한 심층 분석자료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볼 때 총수는 별로 정치적인 성향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한나라당 사람 많이 만나면 '저거 왜 한나라당을 만나' 그러기도 하고, '동의는 못하지만 이해는 된다'고 하면 '씨바 세상에 이해 안 되는 놈이 어디 있냐?'는 리플이 달리기도 하던데요. 그리고 열린우리당 의원 만나면 '노빠 아니냐?'고 얘기하잖아요. 너무 얄팍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김 - 신경 안 써요. 그런가보다 하는 거죠. '이 놈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해요.(웃음)


지 - 욕설 리플들 보면 스트레스 안받아요? 장난 아니던데...

김 -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걸 잘 안보는 스타일이고, 저는 저에 대한 평가나 그런 게 궁금하지가 않아요. 보통 우리 기자들도 보면 자기 글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 하던데, 저는 오래 훈련이 되어서 그런지 신경 안 쓰여요. 완전 제로라면 그건 또 거짓말이겠지만, 스트레스 받고 그런 경우는 없어요. 살벌하기로 딴지만한 데가 어디 있어요. 딴지 초창기부터 줄기차게 매일매일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둔감해요. 리플이 전체 여론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신경 쓰지 않는 편이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대로 구현되어 있느냐 하는 게 가장 궁금하지, 그에 대한 반응은 제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했는데 그걸 안 좋아하면 어쩌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구현하지 못했을 때, 그땐 짜증나죠. 날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했느냐 안했느냐가 중요하고, 만약 정확하게 표현했으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걸 싫어하는 건 어쩌겠어 씨바. 그걸 싫어한다고 내가 내가 아닌 사람으로 바뀔 수는 없쟎아.

 


딴지총수 김어준 인터뷰 (2)

“정치인들은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아 재미있다”


(1부에서 계속)


지 - 그 기자 다른 인터뷰 보니까 잘하는 것 같던데…

김 - 워낙 시간이 짧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 처음부터 늦게 가 가지고 시간도 없었고, 그래서 두 번째 다시 만나서 짧게 했는데, 그 분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고. 인터뷰를 읽고 ‘이건 내가 아니네’ 한 것은 그 내용이 호의적이었다, 악의적이었다가 아니라, 내가 아니라는 거예요. 잘못 축약되거나, 잘못 전달된 거죠.


지 - 그 인터뷰에서 안티조선에 관련된 부분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요. “애초에 우리가 패러디로 출발하긴 했지만 우리는 안티 조선 사이트는 아닙니다. 저로서는 조선일보가 옳든 그르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기업으로서 하나의 언론사로서 조선일보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상업적인 측면, 영향력 측면에서 말이죠”라고 하셨는데요.

김 - 그 부분도 워딩이 정교하지 못했어요. 조선일보 걔네들이 잘하는 부분도 있다.


지 - 그러나. (웃음)

김 - '그러나' 뒷부분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조선일보가 기업으로서의 영업이라든가 미디어로서의 편집이라든가 이런 부분은 잘한다, 호오를 떠나서 그런 부분은 프로페셔날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서 그 다음 얘기를 쭉 했는데, 그걸 '조선일보가 별 문제 없다. 잘하고 있다. 그거 하나만 문제다' 하는 식으로 잘못 정리한 거죠. 제가 말한 맥락을 그렇게 이해했나 보죠. 전 그 분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인터뷰로서 서로 나쁜 케이스에 걸린 건데, 그 인터뷰를 하고 나서 인터뷰에 관한 글을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어정쩡하고 잘못 이해된 부분이 많은 인터뷰였죠. 그런데, 인터뷰어가 피해야할 것들, 인터뷰의 기본 코드, 좋은 인터뷰와 나쁜 인터뷰란 어떻게 갈리는가, 물어볼 때 뭘 주의해야하는가, 이런 걸 쓸라니까 발표할 데가 없어. (웃음) 딴지일보에 실을 수도 없고, 기자들하고는 할 수 있는 얘기겠지만, 일반인들하고는 상관없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조금 쓰다가 말았어요.


지 - 저한테 불러주세요. 제가 정리를 해줄께요. (웃음) 안티조선 사이트가 아니란 말씀도 하셨는데, 초기에 안티조선 운동에 힘을 실어줬던 사이트인 것은 맞지 않습니까? 지금은 별로 필요 없다고 보시는 겁니까?

김 - 굉장히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만하게 풀어놨던데, 다시 정확히 하자면 딴지가 안티조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이트는 아니라는 겁니다. 제 말은. 그걸 ‘우리는 안티조선 사이트’가 아니라고 정리해 놨더라구요. 우리는 안티조선만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이트는 아니라는 거죠.


지 - 비슷한데, 굉장히 다르네요. (웃음)

김 - 우리는 여러 가지 아젠다가 있었는데, 그 중에 안티조선이 하나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질문도 있었어요. '왜 그러면 다른 안티조선 사이트와 강력하게 연대하지 않았냐'고 했는데, 그쪽에서 제안도 없었고, 우리가 연대를 제안한 적도 없고, 서로 역할이 달랐으니까 그렇게 따로 따로 움직인거라고 했죠. 그게 뉘앙스가 묘하게 정리되어 있더라구요.


지 - 연대를 요청하지 않았던 부분은 딴지의 역할이 따로 있고, 딴지는 운동처럼 보이지 않고 따로 떨어져있을 때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요?

김 - 맞아요. 그거예요. 시민단체가 우리한테 뭘 요구할 때 아주 선별적으로만 같이 했어요. 시민단체가 하고자 하는 바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역할이 다르다고 이해했기 때문이죠. 사실은 운동이라는 것이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문제제기를 하고, 주위환기를 하는 역할을 하는 건데, 우리한테 대안 제시를 못한다든지, 깊이가 없다든지 하는 건 잘못된 비판이거든요. ‘니네가 하는 방식으로는 쉽게 주위 환기도 안 되고, 재미도 없어,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이 안 생기는 걸’ 이게 딴지에 대한 잘된 비판이예요. 우린 애초부터 역할을 그렇게 잡았으니까. 시민단체들이 초기에는 욕도 많이 했어요. ‘왜 안 해주냐, 컸다는 거냐’고. 그런데, 각자 다 자신의 역할에 맞는 기능을 해야 그 기능이 제대로 수행이 되지, 우리가 한겨레 21이나 2580이 될 수는 없잖아요. 각자 제 역할이 따로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연대나 이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시너지가 날 경우는 그럴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런 이야긴데, 우리는 안티조선 안하고 연대 안한다고 해버리면 그건 전혀 다른 얘기죠. 또 조선일보가 다른 건 다 문제가 없는데, 속이는 것만 문제라고 정리했던데, 그것 역시 가장 큰 문제가 그거라는 거였죠. (웃음) 아 다르고, 어 다르죠.


지 - 요즘 조갑제씨의 발언과 행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점점 정상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데… (웃음) 탄핵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탄핵 후에도 “헌법재판소는… 여론으로부터도 독립되었음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말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는데요.

김 - 저는 사실은 이제 그 분의 퍼포먼스를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웃음) 열 받고 그럴 단계는 지나지 않았나 싶어요. 90년대 중후반에 한국논단이라고 있었잖아요. 그런 수준으로 이해하고 바라봐야죠. 한국논단에 열 받으면 촌스러운 거거든요.


지 - 이번 총선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십니까?

김 - 개인적으로 가장 큰 것은 3김으로 상징되는 소위 정치 패턴, 정치 지형이 완전히 해체되었다는 겁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가 들어 있어요. 보스로 하는 정치도 있고, 돈으로 하는 정치, 계보로 하는 정치, 지역으로 하는 정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양상이 좀 달라졌으니까) 여러 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그런 구심점들이 완전히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잖아요. 김종필까지도 사라졌잖아요. DJ가 만들어놓은 민주당도 거의 해체됐고, 김영삼의 흔적도 거의 사라지고. 3김으로 상징되는 비정상적인 구도, 한국형 정치, 30년간 지속되어온 3김에 의한 한국형 정치구조가 해체됐다, 그리고 그 진공공간에 노무현과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새로운 룰을 짜야 되는데, 역량이 좀 딸린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새판을 짜는데 있어서. 노무현, 유시민, 김근태, 정동영 등 많은 플레이어들이 새판을 짜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정동영의 실용주의 발언 같은 건 아주 실망스럽거든요. 실용주의를 말해서 실망스러운 게 아니라 실용주의가 무슨 내용이 있어요. 그건 태도에 불과하거든요. 그건 이념이 아니고, 태도라구요. 틀이 아니라 태도거든요. 보수주의자도 실용적일 수 있고, 극우도 실용적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알맹이가 없다는 얘기지. 그러니까 허허한 정치판이라고 생각해요. 혼돈스럽고. 지금 엄청난 진공상태잖아요. 그렇다고 노무현도 그 판에서의 자기의 역할, 소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끊임없는 자기 고민이 있겠죠. '내 역할은 뭔가' 하는. 그런데 자기 역할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말로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판을 짜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건지. 기본적으로 권력을 분리해내고, 금권정치가 사라지게 하는 것들은 지엽적이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끝단에 존재하는 거쟎아요. 본질을 어떻게 바꿀건지, 어떻게 기본 작동원리를 뒤집을 것이라고 하는 플랜이나 지향을 본 적이 사실은 아직 없거든요. '우리가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큰 방향성을 본 적이 없어요. 검찰개혁이니 하는 잘한 일 리스트가 있잖아요. 그 잘한 리스트에 동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잘한 리스트만으로는 비정상이었던 것을 정상으로 바꾸는 정도에 불과하죠. 제가 그것을 낮게 평가하거나 폄하 하려는 게 아니라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바퀴를 어디로 굴리려고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한나라당은 혹은 조선일보는 경쟁력, 수익, 경제적 가치를 좇나게 부르짖고 있잖아요. 한편 맞는 얘기기도 한데, 어쨌든 나한테 와 닿는, 명료하게 정리된 방향성, 이런 말하면 내가 몰라서 그렇다는 말도 하겠지만, 손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싶은데, 손끝밖에 안보인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예요.


지 - 아까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 아닙니까?

김 - 어려운 일이죠. 어려운 일 맞아요.


지 - 요즘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ㅊ효자동 이발사」 같은 영화 보면 완전히 옛날에 나온 「파업전야」 이런 영화와 똑같잖아요. (웃음) 그것이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는데, 노무현 정부가 상당히 기여했다고 보는데요. 그런 부분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김 - 저는 노무현의 가치나 지금의 어떤 역할을 폄하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 노무현이 비정상적이었던 많은 왜곡된 구조를 가능하면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바꿔놓은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스스로 설정하고 이해했다면 분명하게 그런 선언을 해줬으면 해요. 저는 현 정부가 어디를 지향해서 움직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좌나 우냐 이런 말이 아니고, 5년이면 긴 시간이거든요. DJ가 있을 때의 5년을 생각해보자면 그때는 안 보였지만, 우리가 지금 소위 밖에 내놓고 그나마 대가리 쳐드는 많은 분야가 사실 그때 싹튼 거라구요. 게임도 그렇고, IT도 그렇고.


지 - 딴지일보도 그렇고. (웃음)

김 - 딴지일보도 그렇고. (웃음) 소위 지금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많은 분야가 (그게 DJ가 혼자 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사회 전반에 그때 씨앗이 많이 뿌려졌거든요. 분명히. 생각해보면 DJ가 시작했을 때 대한민국의 상황이라는 게 절망적인 상황이었거든요. IMF라는 게 나라가 거덜내는 줄 알고, 굉장한 충격이었잖아요. 물론 DJ가 잘못한 일 리스트도 길지만, 전 어쨌든 그땐 DJ의 지향은 봤어요.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지향이라든가, 옳건 그르건 경제적 부분에 있어서의 신자유주의적 지향이라든가.. 그 지향은 봤단 말이죠. ‘이렇게 나가는 구나’ 하는…….


지 - 어떻게 보면 토론공화국 얘기하지만, 지난 1년은 실질적으로 어떤 토론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정치적 선언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동안 방해를 하는 세력들이 있었으니까 그랬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 달라지리라고 보십니까?

김 - 앞으로 기대는 하는데, 지레 걱정하고 지레 김 빼려고 하는게 아니라... 걱정은 되요. 어디로 나가려고 하는가, 좋은 품성과 의지를 가지고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어요.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건 물론 아니고, 적어도 저는 이해는 하고 싶다는 거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저는 노무현에 체화된 시대정신이 있다고 생각해요. 노무현에 담겨진, 체화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시대정신이 있죠. 그 시대정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 저는 그 지향을 보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거죠. 이 시대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단 말이예요. 개인의 기획이나 개인의 능력 가지고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거든요. 이 시대가 만든 사람인데, 그래서 시대정신을 체현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이 그 큰 에너지를 받아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하고 싶죠. 기대도 크고. 노무현 개인이 어떠냐 하는 건 다 지엽적인 얘기고. 노무현 대통령이 '여기로 간다'고 자기가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그걸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이해되도록 해야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해보자구요. 일본 메이지 유신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시대 정신을 받아들인 세력이 있었다구요. 그 시점에 그들이 해야 될 역할이 있었죠. 그렇죠? 그것이 사실은 일본을 향후 100년 이상 바꿔놓은 거거든요. 일본의 20세기를 결정하는 것이었어요. 그때 시대정신을 구현해낸 자들이 한 일이. 수도를 옮기겠습니다, 이런 것을 넘어서는 이 시대에 내가 해야 될 역할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스스로 해 나가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줬으면 하는 거에요. 그런 걸 봤다고 생각된 적은 없다는 거죠.


지 - 앞으로 특별한 계획은 없으세요?

김 - 우하하하. 졸라게 두루뭉실하고 이상한 질문.


지 - 없으세요?

김 - 없어요.


지 - 다 없다고 그러더라구요. (웃음)

김 - 특별한 계획이 있는 사람이 난 신기해요. 어떻게 될 줄 알고 특별한 계획을 잡고 그래. (웃음)


지 -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을 수 있잖아요.

김 - 전 시간이 많이 나면 글을 쓰고 싶어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해요.


지 - 어떤 글?

김 - 아니, 잡다한... 거창한 글이 아니라 아주 소소한 일들에 대한 굉장히 짧은 감상들이나 짧은 제 나름대로의 주장, 일이 있을 때마다 끄적거리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한 두시간은 앉아서 써야 되는데, 한 두 시간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끊임없이 누굴 만나거나, 일을 하거나 해야 되니까...


지 - 특별히 해주실 말씀은 없어요.

김 - 없어요. (웃음) 다음 인터뷰 얘기는 줄여야겠다. 쓸데없이 많이 한 것 같네.


지 - 괜찮아요. 졸라 기니까 사람들이 읽다가 지쳐서 앞에서 나왔던 얘기는 까먹을 거야. (웃음) 긴 시간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인물평하죠. 총수 인터뷰 보니까 그거 재미있던데… 정치인들은 많이 한 것 같으니까 다른 분야로 좀 해보죠. 본인에 대해서 평가해주세요. 김어준.

김 - 전 제가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진짜로.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웃던데, 저는 제가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했던 보편적인 상식, 사람 사는 곳이라면 의례 통하기 마련인 보편적인 상식이라는 맥락에서. 제가 유별나다고 생각하거나 특별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종류의 자의식이 없다 이거예요. 아참 이 이야기도 참 엉뚱하게 정리됐던데, 하여간 왜 연예인들이 가진 자의식이란 게 있잖아요. 연예인은 뭐 스스로 그런 자의식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지 - 일종의 연예인이잖아요. 지적 엔터테이너. (웃음)

김 - 자의식, 그게 너무 강하면 최민수가 되는 거거든. (웃음)


지 - 이거 위험한 발언인데, 최민수씨 쌈 잘하거든요. (웃음)

김 - 그럼 이건 빼죠. (웃음) 어쨌든 전 그런 건 없어요. 내가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모양새의 사람이다.. 그러니 그런 이미지에 맞도록 행동해야 해.. 그런 자의식이 없어요. 난 내 자신에 대해서도 시큰둥해요. 그건 자신감이 없다, 이런 거하고는 전혀 다른 얘기인데 전 자신감은 언제나 충만해요. 개인적으로 뭐든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아니 뭐든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자신에 대해서 시큰둥해요. 세상일 자체가 뭐 그리 대단한 거 있나, 다만 ‘이건 하면 안돼’ 하는 바운더리가 미리 있지 않고 뭐든지 저질러도 돼, 니가 책임질 수만 있다면 정도인데, 그런 정도야 대단한 룰도 아니고.


지 - 본인한테 딴지일보가 어떤 의미입니까? 다음 인터뷰에서는 "딴지가 김어준 총수의 인생을 180도는 아니어도 90도는 바꿔놨을 것 같다"는 얘기에 "별거 아니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오던데요. (웃음)

김 - 이런 맥락에서 얘기한 거예요. 딴지가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그 뒤에 '하지만'이 있죠. 하지만 딴지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그 역할을 더 이상 못한다면, 이런 거 있잖아요. 라디오하고도 똑같은 얘긴데, 청취자 신경 안 쓴다는 거하고, 똑같은 얘긴데요. 전 딴지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딴지는 딴지 스타일과 역할을 가지고 쭉 가야 돼, 근데 그 역할과 그 스타일과 그 문제의식으로 세상을 대했는데, 더 이상 필요 없으면 사라져야 되는 거예요. 변해야 되는게 아니라. 전 그런 식으로 생각해요. 제가 MC가 됐는데, 청취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얘기는 제가 이런 식으로 발언하고,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나와서 이런 태도로 말하는데, 그것이 먹히지 않거나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관둬야 되는 거죠. 저는 그렇게 이해하는 거죠. 저는 매사를 그렇게 이해하거든요.


지 - 그거 치사해지죠. 내가 살아남아야겠다는 전제로만 행동한다면.

김 - 물론 제가 일부러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예요. 그런데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캐릭터이고, 자신의 특성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더 이상 소용이 되지 않는다면 사라지는 게 맞는 거죠.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이야기로 변해서 그것은 무조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다 역할이 있는 거고, 그것이 계속해서 먹히면, 계속해서 그 목소리를 내는 거구요. '절대 변할 수 없어' 이거하고는 다른 얘기예요. 딴지일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역할, 그것이 항상 똑같은 얘기만 하겠다는 건 아니거든요. 일정한 역할과 일정한 문제의식으로 여러 가지 발언을 하는데, 그게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면 없어져야 되는 거죠. 시대가 더 이상 딴지일보의 역할과 문제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거니까, 그럼 사라지는 게 맞는 거죠. 전 매사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딴지일보가 엄청나고, 없어지면 안 되고, 절대로 살아남아야 되고, 유일하고, 이런 생각은 안 해요. 그런데, 그 말을 ‘딴지는 별거 아니다’라고 정리했던데. (웃음)



지 - 강준만.

김 - 개인적으로 최근에 가장 인터뷰해보고 싶은 사람이 사실은 강준만 선생이에요.


지 - 지금 하실 말씀이 굉장히 많으시겠죠.

김 - 전 강준만선생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에너지, 그 역량, 그 문제의식, 치열함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가 아주 많은 부분에서 그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 빚을 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양반을 만나서 인터뷰를 풀로 한번 때려보고 싶어요.


지 - 강준만 교수 말고는 인터뷰해보고 싶은 사람 없어요?

김 - 몇 사람 있죠. 박근혜는 인터뷰를 해봐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별로 궁금하지 않고, 김덕룡 대표도 궁금하지 않고, 최근에 부상한 사람 중에 천정배, 신기남 의원도 저는 크게 궁금하진 않구... 인터뷰를 해봐야 하겠지만 아주 궁금하진 않아요. 아주 궁금한 사람 리스트로 따져본다면 강준만 선생이 지금은 넘버 원이고.


지 - 쾌도난담할 때 만나셨잖아요?

김 - 만났지만, 그때 저는 얘기 안하고 거의 쳐다보고만 있었어요. 그 양반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나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거꾸로 내 세계관이 그 사람을 통해 이해되는 부분도 있더라구요. 저는 별로 얘기를 안했는데, 코드가 맞았어요.


지 -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자유주의자들이 거의 말로 싸우더라구요.

김 - 자유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우파죠.


지 - 제가 볼 때는 홍세화 선생도 자유주의자고, 낭만주의자 같은데.

김 - 그렇죠. 또 인터뷰해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냐 하면... 그 여자 전여옥. 하하하하하. 한번 인터뷰해보고 싶어요.


지 - 저도 한번쯤 해보고 싶은데.

김 - 인터뷰하자고 하니까 싫다고 하더라구요.


지 - 전여옥 여사에 대해 평했던 글이 재미있었는데, ‘배드 애티튜드’라고 한 거.  (웃음)

김 - 아 그거.


지 - 열린우리당에서 다들 피하는 토론의 달인 아닙니까? (웃음)

김 - 아 그래요? (웃음)


지 - 진중권.

김 - 저는 그 양반의 글들 좋아해요.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천재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은 들어요. 스스로 자신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본 적 없는 양반인 것 같다…….


지 - 만나서 얘기해보면 그렇지는 않거든요. 인터넷상에서의 표현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요.

김 - 물론 저도 직접 만나서 보면 그런 생각 드는데, 적어도 인터넷에서의 글 표현만 보자면, 전 그 사람에 대한 오해가 참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누굴 탓하기는 그런 게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인터넷에서 드러내는 표현만으로 그 사람을 이해할텐데, 그 표현들만 보자면 스스로 자신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서 너무 낮게 본다는 거예요. 정치인 중에 자신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가장 낮게 생각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추미애라고 생각해요. 추미애와 진중권은 다른 케이스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면에선 같아요. 인터넷에서 너무 많이 소진되고, 너무 많이 뜯기고, 상처도 많이 입은 것도 같고, 방어기제들이 인터넷 때문에 많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그 양반이 천재라고 생각하는데, 때로는 진공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 - 전 두 분 다 좋아하는데, 인터넷이란 코드를 놓고 볼 때 한쪽은 지나친 열정이 문제가 되고, 한쪽은 지나친 결핍이 시간이 지나서 판단력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거든요. 강준만 교수의 경우 아무리 많은 매체를 접하더라도 요즘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정보가 유통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프린트해준다고 해도 걸러지는 프레임이 있을 거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변화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걸 들어와서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강준만 교수로 하여금 어느 특정한 지점으로 일정부분 몰고 갔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김 - 저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사실 진중권씨가 여러 차례 다른 사람들과 벌였던 논쟁들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거의 없어요. 또 논쟁이 있나보다 하고 말았거든요. 왜냐하면 그 논쟁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부추겨진 면도 많고, 오로지 앉아서 얘기하면 십분만 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것을 텍스트만 가지고, 부딪히다 보니까 서로 자존심도 있는 것이고, 텍스트가 가지는 특징과 한계 때문에 날을 세운 면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둘이 만나서 얘기하면 5분이나 10분 만에 서로를 이해하고 끝났을 수도 있어요. 저는 진중권씨가 강준만씨한테 '지역주의자였다'라고 단정을 내린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민주당을 감싸는 것을 보고, '결국 지역주의자였다'고 단정을 내렸잖아요. 강준만씨가 그동안 해왔던 발언이나 작업들을 통시적으로, 바라보면 강준만씨가 '정서적으로 지역에 대한 이해가 깊고, 거기에 대한 우선 배려나 고려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결국은 지역주의자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억울한 지적이라고 생각해요. 오해 내지는. 진중권이 그걸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딱지를 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강준만 선생이 지나온 히스토리를 보자면 그렇게 딱지를 붙이는 건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말하고자 했던 건 호남의 배신감 내지는 그와 관련한 지역 정서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고, 그 문제를 피부로 느끼니까..


지 - 김규항

김 - 개인적으로 너무 잘 알아서 노 코멘트. 하하하.


지 - 박노자.

김 -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박노자씨가 하는 얘기는 거의 다 맞아요. 정말 거의 다 맞거든요. 그 사람의 문제의식도 날카롭고, 그런데 전 그 사람한테서 강박도 봐요. 그 양반이 굉장히 영민하고, 논리적이고, 날카롭고, 감성도 풍부하고,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고, 그 사람이 하는 말 대부분에 대해서는 '맞다', 한국사회의 진단에 대해서는 '맞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 사람이 애초에 러시아인이었기 때문인지, 아닌지는 전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놓치고 있는 정서들도 있어요. 사안들을 바라볼 때 이 사람은 자신의 이성과 논리로만 해결되지 않는 지점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신 있고 단정적으로 '이렇다'라고 단정지어버리는 부분들이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지성을 자신이 독점한 양 할 때가 있어요. 그 사람이 물론 나쁜 생각에서, 건방져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하간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들이 굉장히 날카롭지만, 마치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의 잣대라는 부분에서 한국인들 스스로는 갖지 못한 객관거리를 확보한 자신감 같은 걸 느낄 때가 있거든요. 그게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애초에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제가 치졸하게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몰라도, 그 사람 글을 읽다보면 신경질 나요.(웃음). 그 글 읽다보면 우리나라는 씨발 좆같애.(웃음) 그래서 신경질난다 이거야. 그래서 나는 박노자 글 잘 안 읽어요.


지 - 홍세화.

김 - 홍세화 선생이야 로맨티스트고, 우리나라에서 파리로 망명했지만, 이제 파리에서 우리나라로 망명 온 분 같아요. 우리나라 안에서의 망명객. (웃음).


지 - 어떤 의미에서?

김 - 우리나라 땅에 발을 딛고 사시는 분 같지 않은 느낌 같은 것이 있어요. 저는 그 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데, 20년의 갭 때문인지 오히려 이젠 한국에 망명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때는 파리로 망명을 갔지만, 지금은 한국으로 망명온 듯한.


지 - 그게 본의도 아니었고, 본인한테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을 거구요. 그런 경험이 우리한테는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김 - 그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 다 동의하는데, 그 분에 대해 단편적으로 정리해보자면 70년대 한국으로부터 2000년대 한국으로 망명 온 사람 같아요.


지 - 어떤 면에서 보면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글을 많이 본 것 같은데, 열린우리당 의원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호기심을 갖는 인물이 적으신 것 같은데요. 대의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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