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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삐딱이의 미완성 모자이크

가/ㅣ 2003. 11. 12. 17:22 Posted by 로드365


김규항은 어떤 단체나 조직에도 몸을 부리지 않은 채, 알몸을 드러내며 '아웃사이더'를 자처한다. 그는 균열과 와해를 꿈꾸며 무소불위의 권위와 힘으로 인간을 가두는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에 자그마한 송곳 하나와 쇠망치를 들고 부지런히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data/content/610/020829_mitop.gif영화 [서편제]를 기점으로 너 나 없이 부르짖던 '우리 것' 캠페인에 질려 본래 좋아했던 국악으로부터 멀어진 것 같다는 김규항.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걸핏하면 학교 문이 닫히고 교내에 학생 보다 사복 경찰이 더 많았던 80년대 초, 당시 나는 우리 대중가요의 사랑타령과 운동가요의 선동성이 이루는 양대 산맥 사이에서 압사당하기 싫어 서구의 록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면서 한편 심한 문화적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 누군가는 "이런 미국 쓰레기를 들어?"라며 비난했고 나는 "그냥 음악일 뿐인데, 뭐가 문제지?"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사실 어떤 설명도 소용없을 때였다.

나이를 먹으며 보니 역사는 참 재미있게 반복되고 뒤집어진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후, 미국의 유명 포르노잡지의 누드모델로 성공했다는 일명 '노랑나비'가 내한했을 때, 우리 사회가 보여준 행태란 혀 깨물고 죽고싶을 만치 쪽팔리는 것이었다. 미국 사회의 한 분야에서(그것이 어떤 분야이든!) 배달의 자손이 자취를 남긴다는 것은 바로 애국자가 된다는 걸 의미하였고, 팍스아메리카나의 실현은 우리민족의 사명이 된 듯했으니까.

김규항의 삐딱이 페로몬

그런데 이런 행태에 대해 어느 누구도 10년 전, 내가 당한 만큼의 비난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생한 역사 코미디가 일상화 되어있는 나라. 개인의 문화적 취향에도 그 시대를 관통하는 주류 이데올로기 혹은 당시 유행이데올로기의 공인이 필요한 나라. 어차피 자기 것도 아닌 것을 무슨 '이즘'이니 '주의'니 하는 이름으로 들여오는 것이 '공부하는 학자'의 최대의 치적이 되고, 누가 먼저 들여왔나 순위 매겨가며 정통시비를 걸고, 그것이 마치 불변하는 진리라도 되는 양 허풍을 떨어대며 조금만 다른 말을 해도 가차없이 잘라내는 것이 정의사회 구현인 나라. 이런 징그러운 시절을 살다보면 사람이 좀 삐딱해지는 모양이다. 정신의학에서는 '현 사회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광의의 정신병자로 취급한다고 한다. 콜린 윌슨의 말을 빌리면 '아웃사이더'가 된다.

내가 김규항의 '광팬'이 된 건 순전히 그가 문장 속에서 발사하는 이 삐딱이 페로몬 때문이었다. 공자 왈, 맹자 왈 에서부터 이름도 알지 못하는 세계 석학의 논리에 이르기까지,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위에 의존하여 최대한 '구리게' 말해야만 말발이 서는 곳이 한국사회라면, 이를 모를리 없는 김규항은 어떤 단체나 조직에도 몸을 부리지 않은 채, 알몸을 드러내며 '아웃사이더'를 자처한다. 그는 균열과 와해를 꿈꾸며 무소불위의 권위와 힘으로 인간을 가두는 한국사회의 전근대성에 자그마한 송곳 하나와 쇠망치를 들고 부지런히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관용구가 된 녹슨 언어들을 낱낱이 분해, 해체, 재조립해버린다.

김규항의 꼴통 정신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권위의 한 상징인 교수들을 일러 '가장 근거 없이 안락하기에 가장 방자해진 직업인'으로 구겨버리고 우리 사회 주류인 보수우익을 '오늘의 안락함과 이권을 포기하지 않는' 집단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으며 그들의 사상이란 게 실은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욕망'이라고 재조립하는 것이다.

또 김규항은 애초부터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곳만 골라 다니는 '꼴통'이다. 대통령도 갈아 치운다는 신문들조차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곳, 완벽한 성역(城域) 안의 성체(聖體)로 그 '구림'의 내공이 역사와 함께 날로 깊어만 가는 종교계 역시 그의 송곳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쫀득쫀득한 입심을 걸러 나온 교회는 '헌금 액수에 눈 먼' 다단계판매업 관리자와 다를 바 없는 실체를 드러낸다.

이런 일련의 짧은 글들을 조각조각 붙여가며 '김규항'이라는 제목의 밑그림 없는 모자이크 작업을 하노라면 누구나 짧고 깊은 카타르시스를 선물로 받는다. 이어서 화려한 논리의 잔치가 사실은 박제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슬슬 똬리를 튼다. '알몸으로 작은 송곳하나 달랑 들고 쑤시고 다녀도 괜찮네?' '음음 그리고 별 대안이 없군...'하는 생각이 따라오고,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래서 "나는 B급 좌파다"(씹은 후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A급의 몫이다)라는 그의 퇴로가 나타난다. 치열한 싸움 대신 그는 치고 빠지기를 택한 것이다. 해결은 더 잘난 놈이 하는 거라는 거다.

마초의 꿈과 '그 페미니즘'

얼마 전 '그 페미니즘'이란 [씨네 21]에 실린 그의 글을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들에서 이런 그의 행동양식은 좀 더 뚜렷해졌다. 그 이전에 그는 '한겨레 칼럼 - '마초의 꿈'을 통해, 자신은 '남자의 세계'를 좇는 일이 '여성의 세계'를 억압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늘 긴장한다고 고백했다. 또 진정한 남성다움의 덕목들을 미덕(나보다 강한 자 앞에서는 한 없이 당당하고, 약자 앞에서는 한 없이 부드러운)으로 여긴다는 마초의 꿈을 털어놓았다. 그는 '좋은 마초'가 얼마나 좋은지를 말하기 위해 '악성마초'들의 딱한 비행들을 폭로했는데, 이는 '좋은 보수'와 '나쁜 보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그의 또 다른 글을 가볍게 뒤집어 버렸다. 그 글의 말미에 넣은 그람시의 말(계집애처럼 칭얼거리지 말고)에 거부감을 느끼는 자신이 적이 대견하다고 말하는 그의 자의식이 사랑스럽다. 그 논리는 위험하지만.

그로부터 약 1년 후, '그 페미니즘'에서 그 위험한 논리가 가시화됐다. 계급이 성보다 더 상위에 있는 억압체제인데 우리 사회의 주류 페미니즘은 그걸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쉽게 반박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그는 중산층, 혹은 상류층 여성의 억압과 하층계급 여성의 억압을 비교해보거나 상류계급 여성이 하층계급 남성에게 억압받을 가능성을 살피라는 사용설명서까지 첨부했다. 불에 덴 것과 칼로 베인 것 중 어느 쪽이 더 아플까? 절대평가가 가능하긴 한 건가? 오랜 역사를 거쳐 정교하게 짜여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강요되는 여성의 부덕은 잘 짜인 가정의 틀만큼 완고하기 짝이 없다. 새벽마다 시댁으로 밥상을 차리러 가는 재벌가 며느리 이야기가 아니어도 행세깨나 하는 집안들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부덕이 얼마나 막중한지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 한편 하층계급 여성에게는 여기에 생활고가 가중되는데 이 경우엔 부덕의 무게가 생활고에 밀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여성의 독자적 계층은 우리 사회에 없다. 오로지 그 여성이 속한 가정의 계층만이 존재하고 그 가정 안에서 여성의 위치는 최하층이다.

물론 그는 여기서도 나름의 퇴로(노력하는 마초!)를 마련해 놓았으나 허술하다. 혹시 '여자의 세계'를 좇는 어떤 여성이 인정머리 없게(혹은 싸가지 없게) '여자의 세계'를 억압하지 않으려고 늘 긴장하는 그를 억압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당황스럽고 노여웠던 것은 아닐까? 불패의 신화라는 패스포트를 지녀야만 그가 말하는 '약자 앞에서 한 없이 부드러워지기'가 가능한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지식을 요약하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김규항은 세상의 모든 틀려먹은 것, '구린 것'을 참지 못하고 발끝에 채이는 깡통이든 뭐든 들고 찬다. 그런데 누군가 "그래 넌, 뭘 하는데?"하고 물으면 "음, 난 노력 중이란 말야!"하고 대답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성장하는 아이들처럼 그도 이 시기를 통해 성장할까? 이 모자이크 작업은 아주 긴 시간 진행될 것이다. 나는 이제 그의 글 뒤에 있는 그가 궁금하다.

-컬티즌, 양은주 wayf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