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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 1955)

사/ㅏ 2007. 2. 3. 01:19 Posted by 로드365



이 영화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국내에 제목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법한 영화였는데, 박찬욱 감독이 하도 여기저기서 자신의 베스트 무비라고 자주 소개를 하는 바람에 이제는 젊은 영화광들의 필견목록으로 분류가 될 정도로 엄청 유명해졌습니다. 물론 이 영화를 박찬욱 감독이 개인적으로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흥행에 크게 실패했고 찰스 로튼을 빛더미로 몰아가기는 했었지만, 당시에도 까이에 뒤 시네마 등의 평론가들은 이미 걸작으로 평가를 내리고 옹호를 했었죠. 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들' 명단에도 실려 있습니다. 사실 박찬욱이나 김지운 같은 감독들이 자신의 컬트라고 소개하는 영화들은 의외로 외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영화인 경우가 많아요.

박찬욱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한마디로 '헨젤과 그레텔의 악몽버젼'입니다. 스무명이 넘는 여자를 살해한 전과를 가지고 있는 사이비 목사가 거액의 돈이 숨겨진 장소를 알고 있는 순진한 어린 오누이를 지구 끝까지 쫒아다닌다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를 덜덜덜 거리면서 보신 분들도 많다던데, 저는 그다지 크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섬뜩하게 연출된 장면들은 오히려 너무 아름답게 찍혀서 공포보다 감탄을 먼저 일으키더라구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잠자는 방에 창문 사이로 파웰 목사의 그림자가 뜩 하고 비추는 장면은 영화 상으로는 엄청 무서운 장면이지만, 저는 저렇게 그림자 하나로 근사한 장면을 만들 수 있구나라는 어떤 미학적인 감동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로버트 미첨이 연기하는 파웰 목사는 정말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그는 (문신인지 볼펜으로 쓴건지 모르지만) 양손가락에 문구를 새기고 다니는데 왼손에는 'H.A.T.E' 이라고 써 있고, 오른손에는 'L.O.V.E' 라고 쓰여 있습니다. 자기 두 손을 깍지를 끼면서 선과 악이 부둥켜 안고 싸우는 장면을 상징적인 동작으로 보여주며 설교를 하는데, 이 영화 자체가 뚜렷하게 분리되는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헨젤과 그레텔'같은 동화나 '나홀로 집에'같은 요즘 영화들처럼, 용기있는 아이들이 나쁜 어른을 혼쭐내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은 악당과 대결하기 보다는 멀리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나쁜 어른으로부터 결국 아이들을 구해내는 사람은 용기있고 정의감 넘치는 또 다른 어른입니다.



(스포일러 경고) 영화의 마지막에 인상깊은 장면이 있습니다. 결국 총에 맞고 쓰러진 파웰 목사가 경찰들에게 잡혀서 수갑이 채워지며 체포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만세를 부르고 좋아해야 할 아이가 오히려 경찰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울부짖으면서 말리고 있습니다. 죽은 아버지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순간 떠올린 것이죠.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그 돈다발도 사실은 사형수인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러서 모아온 돈이며, 자신이 증오했던 악당과 그리워했던 아버지가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하는 것입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죠. 똑같은 사형수인데, 오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쉽게 면죄부를 주지만, 파웰 목사에 대해서는 절대 동정하지 않습니다. 차이는 간단해요. 우리는 오누이의 아버지가 범죄를 저지른 동기는 잘 알고 있지만, 파웰 목사의 범죄 동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죠.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은 남자가 판결을 내렸던 재판관에게 석궁을 쏘아서 복수를 한 사건이 있었다면, 그 사람의 동기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명백한 살인미수 입니다. 석궁을 쏜 남자가 억울해 하는 사연에 타당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건 마치 이찬이 임신한 이민영을 구타한 행위가 혼수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고 해서 정당화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냉정하게 분리해서 생각하지를 않아요. 일단 사연을 들어보고 동정심이 간다 싶으면 그 쪽의 편에 서서 그것이 정의인양 옹호를 하게 됩니다. 영화 마지막에 휏불을 들고 용의자를 직접 처단하기 위해 거리를 미친듯이 몰려다니는 시민들의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닙니까?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어른들은 꼭 흉악한 범죄자들 뿐만은 아닙니다.

ps1. 아이들을 보호하는 여인 역할로 '릴리안 기쉬'라는 배우가 나오는데, 그리피스 영화에 나오는 그 유명한 배우가 맞다는군요. 미리 알았으면 유심히 볼 걸 그랬네요.

ps2. 영화에 출연한 아역배우가 너무 귀여워요.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출처 : http://leegy.egloos.com/3050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