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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전기자동차를 대중화한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에 인생을 건 이스라엘 출신 기업인 샤히 애거시(Agassi)를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에서 만났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도이치방크가 "자동차산업의 일대 패러다임 전환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인물이다.


그는 불과 40세의 나이에 유럽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독일 SAP의 2인자(제품 및 기술 부문 회장) 자리에 오른 데 이어 유력한 CEO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지난해 돌연 사표를 낸 뒤 10월에 전기자동차 관련 벤처기업인 '프로젝트 베터 플레이스'를 설립했다. 충전소나 배터리 교환소 등 전기자동차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해 운영하는 기업이다.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도전이었지만, 모험을 업(業)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 행보에 비춰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를 졸업한 뒤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을 여러 차례 설립하고 매각해 큰 돈을 벌었으며, 그 중 하나를 2001년 SAP에 매각하면서 SAP 경영진에 합류했다.


그는 세계 전기자동차시장의 테스트 베드(test bed)로 고국 이스라엘을 선택했다. 이스라엘의 경험을 발판으로 전 세계에 전기자동차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이 추진하는 독특한 사업 모델을 한 마디로 설명해 주었다. "소비자에게 공짜로 전기자동차를 보급하는 대신 이동통신업체처럼 이용료를 받는 것입니다."


▲ 전기자동차 관련 벤처기업인‘프로젝트 베터 플레이스’의 창업자인 샤히 애거시. 그는 고국인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전기자동차를 보급할 예정이다. 텔아비브=최준석 특파원

―왜 전기자동차인가요?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석유의 50%를 자동차가 사용합니다. 결국 세계적 고(高)유가는 가솔린 자동차를 추방하는 게 유일한 해법인 것이죠. 가솔린 자동차를 추방해 석유 사용량 50%를 줄인다면 유가는 배럴당 135달러가 아니라 5달러가 될 것입니다. 아니면 12개 산유국(産油國)의 '석유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원래 소프트웨어 전문가인데, 언제부터 '석유 없는 세상' 생각을 했나요?


"2005년부터입니다. 앨 고어(Gore·전 미국 부통령) 아세요? 그는 대기(大氣)가 없어지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했어요. 대기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데,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기후 변화가 온다고 했어요.


그런데 더욱 발등의 불은 유가 급등입니다. 빌딩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기후 변화라면, 15층 발코니로 떨어지는 게 유가 급등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닥에 떨어져도 죽지만, 15층 발코니에 떨어지면 더 빨리 죽습니다. 석유 문제는 기후 변화보다 더욱 상황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앨 고어가 당신 생각을 바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영향을 줬습니다. 저는 2006년 12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모임에서 석유 없이 사는 법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저는 당시 '유가를 낮출 유일한 방법은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회의엔 운이 좋게도 두 명의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었어요. 미국의 전직 대통령 클린턴(Clinton)과 6개월 뒤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될 시몬 페레스(Peres·전 총리)였지요.


클린턴이 주제 발표를 한 뒤 찾아가 5~10분간 얘기했어요. 클린턴은 그때 제게 '돈이 없는 사람이 새 차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사람들의 90%는 새 차를 살 돈이 없어 10~15년 된 중고 차를 운전하는데, 낡은 차일수록 매연을 많이 뿜어낸다는 것이죠. 결국 그들이 가솔린 차 대신 전기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지요. 클린턴은 '나는 모른다. 당신이 똑똑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감을 주는 코멘트였습니다."


애거시는 같은 얘기를 페레스 전 총리와도 나눴다. "그는 그 자리에서 '훌륭한 아이디어다. 이스라엘에서 해보자'고 하더군요. '석유는 늘 우리를 괴롭히는 최대의 문제'라면서요. 다음주 이스라엘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고, 2주 뒤 올메르트(Olmert) 이스라엘 총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애거시를 만난 올메르트 총리는 애거시의 구상에 동의하면서도 큰 '숙제' 두 가지를 내줬다. 총리는 "정부는 창업투자 회사가 아니다"면서 투자자금을 유치해 올 것과 전기자동차 보급에 동참할 자동차 업체를 찾아오라고 주문했다.


고민하던 애거시는 다시 페레스를 만났다. "페레스 전 총리는 제게 '한번 해보라'고 강하게 권하더군요. 저는 '안된다. 지금 SAP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페레스는 다시 "SAP의 일이 매우 중요하겠지만 귀하가 나라와 세계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일이라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라고 했어요. 그로부터 3일 뒤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때가 2007년 1월이었다. 애거시는 그 뒤 '프로젝트 베터 플레이스'를 창업하고 투자자금 2억달러(약 2000억원)를 모집했으며, 르노-닛산을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어떻게 돈을 모았나요?


"투자자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웃음). 투자한 돈보다 많이 돌려준다고 하면 언제나 파트너를 찾을 수 있죠."


―소비자에게 공짜로 전기자동차를 보급하면서 어떻게 돈을 벌 셈인가요?


"휴대전화와 비슷한 방식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살 때는 대개 공짜, 혹은 아주 싼 값으로 장만합니다. 1년, 3년 사용 약정을 하면 이동통신업체들이 보조금으로 전화기를 그냥 주는 것이죠. 하지만 공짜는 아닙니다. 이동통신업자들은 매월 가입자로부터 '분' 단위로 이용료를 받아 휴대전화업체에 전화기값을 지불하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는 공짜로 주되 '주행 거리(mileage)'를 팔 계획입니다."


―전기를 파는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주행 거리입니다."


―마일리지 카드를 들고 다니며 충전소에서 충전하거나 배터리를 교환하면 되나요?


"마일리지 카드도 필요 없습니다. 차 안에 심(sim) 카드(사용자 정보가 담긴 우표 만한 크기의 칩)가 들어갑니다. 전화기 안에 심 카드가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하면 우리는 특정 회원이 마일리지를 얼마나 썼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다 알 수 있죠. 계약된 마일리지에 여분이 남아있다면 어디서든지 돈 내지 않고 충전할 수도, 배터리를 교환할 수도 있습니다."


―2011년이 되면 이스라엘 소비자에게 공짜로 전기차를 줄 생각인지요?


"그렇습니다. 계약기간과 조건, 그리고 이스라엘의 석유가격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시장에 어떤 차를 내놓을 생각인지?


"물론 좋은 차이죠. 빠르고, 성능 좋고…. 첫해엔 한 두 개 모델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가솔린차에 비해 1회 충전하고 갈 수 있는 주행거리가 짧아 소비자들이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는 한 번 충전으로 160㎞를 갈 수 있는 모델을 이스라엘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서울에서 200㎞ 떨어진 거리를 간다면 장거리 운행인데, 작년에 당신은 이 정도 거리를 얼마나 운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굳이 200㎞를 간다면 중간에 있는 교환소에서 배터리를 바꿔주면 돼요.


가솔린차의 경우도 실제 주행거리는 연료탱크에 기름을 얼마 넣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주유소가 얼마나 많으냐에 달려 있는데, 전기자동차도 마찬가지예요. 또 전기자동차는 회사 주차장에 세워둬도 충전되고, 집에서도 충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가 200㎞도 못 간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심리적 장벽이 되지 않을까요?


"여기 두 사람이 있다고 하죠. 한 사람은 돈 한 푼 안내고 차를 얻고, 한쪽은 적어도 2만 달러(약 2000만원)를 주고 차를 사야 합니다. 또 5년 후 한 사람은 돈 한 푼 안내고 새 차로 바꿀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은 중고차를 팔아야 하고 새 차를 또 큰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


―전기자동차가 가솔린차보다 싸게 먹힐까요?


"1마일당 요금을 보면 현재 전기차가 훨씬 적게 듭니다. 기름값은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하지만 배터리 가격도 계속 올라갈까요? 아닙니다. 전기자동차는 고정된 약정 가격으로 계속 운전할 수 있지만, 석유 자동차는 계속 똑같은 기름값을 지불하자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전기자동차 대중 보급에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요?


"회의주의입니다. 우리가 해결책을 갖고 왔는데, 사람들은 안 되는 이유만 찾으려고 하죠. 하지만 그게 우리로서는 최대의 이점이기도 합니다.(경쟁자가 없다는 의미에서)"


―르노-닛산이 이 프로젝트에 가장 먼저 합류했는데, 르노-닛산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MP3 플레이어시장에서 1위가 애플의 아이팟인데,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릅니다. 그런데 3등 마이크로소프트는 한 자리 수예요. 3년 늦게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에 그렇게 돼버렸죠. 르노-닛산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성공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소비자에게 전기자동차를 파는 주체는 누구인지요? 당신인가요, 아니면 르노-닛산인가요?


"이스라엘의 경우는 우리(프로젝트 베터 플레이스)가 팝니다. 하지만 나라마다 다를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이어 전기자동차를 대량 보급할 후보 국가는?


"곧 발표하길 희망합니다. 지금 25~30개 국가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젊은 벤처기업가가 지구촌에 최초로 전기자동차 대중화시대를 연 인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는 종종 궁금해지곤 했다.

텔아비브= 최준석 특파원 jscho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