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화의 공통점은'공간'과'포획'이다.[섬]의 새장 여인숙이나 [악어]의 한강 같은 공간(area)에 제도권을 납치하는 것이다.[악어]에서는 여자를,[섬]에서는 남자를 사로잡아 온다. 그 수단은 폭력과 아름다움이다.
(편집자 주) 1996년 [악어]로 데뷔한 김기덕 감독(1960년 생)은 벌써 6번째 작품 [수취인 불명]을 준비 중이다. 시장에서 거듭 외면을 받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저돌적으로 필모그래피를 구축한 감독은 우리 사회에 희귀한 편이다. 또한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충격과 논란을 일으켜 왔으니 그는 표현과 감상과 논쟁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 소수 감독에 속한다. 지난 달 말 2001 선댄스 영화제를 방문, [섬]에 쏟아진 이국 영화팬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되었다는 김기덕 감독을 2월 4일 서울 압구정동 [수취인 불명] 제작사 LJ필름 사무실에서 만났다.
영화 비평 세력, 신뢰하지 않는다.
김소희 : 선댄스 영화제에서 [섬]이 이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내용이 최근에 많이 보도되던데.
김기덕 : 그런가.
김소희 : 당신의 영화는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제 등 국내영화제에서는 후보로조차 오른 적이 없고 흥행도 저조한 반면, 국제적으로는 근년 들어 가장 많은 영화제에 초대되고 가장 많은 곳에 작품이 팔리는 사람이 되었다.
김기덕 : 적어도 내 영화에 관한 한 나는 우리나라에서 비평 담론을 주도하는 세력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베니스에 갈 때 온갖 언론들이 야단법석이었다. 반면 [파란 대문]이 베니스 스페셜 파노라마에 갈 때는 아주 냉소적이었다. 무슨 신문사 특파원 한 명 오고 기자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볼 수가 없었다. 작년에 [섬]이 베니스 경쟁에 출품됐을 때도 기자 시사회 중간에 누가 졸도했다고 하니깐 한국 언론들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란 대문] [섬]의 출품 사실을 알면서도 김기덕이니까 보도하지 않는다. 기자나 평론가들은 감독을 제도권 비제도권으로 나누고, 나에게는 "사이코"니 "한국영화계의 백해무익한 감독"이니 하는 직격탄까지 날린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내가 묘사하는 삶들을 진짜 본 적이 있느냐, 내 영화에 들어 있는 간절한 메시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김소희 : 해외에서는 당신이 이해 받고 있다고 느끼는가.
김기덕 : 베니스에서도 비트는 기자는 있었지만 대체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이 많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기사는 "시적인 표현이 뛰어난 감독이다", "[섬]은 엽기가 아니라 한 편의 시"라는 기사였다. 또한 [르몽드]는 "급부상하는 한국영화계의 재능 있는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현지에서 발행되는 공식 데일리지는 나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을 황금사자상 수상 후보 1위로 지목했다. 이는 20개 신문사가 공동으로 투표해 발표한 것인데 [일 마르티노]란 신문은 내가 수상하지 못한 데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나는 기자가 싫다. 감독 김기덕 올림"
김소희 : 97년인가? 당신이 일간지 문화부에 보낸 팩스 사건은 꽤나 인구에 회자되었다. 자신의 영화세계에 대해 특징과 단점을 스스로 적은 뒤 "기자들이 보는 영화의 방법론과 이론이 이미 상식화된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기자는 먼저 관객이 볼 수 있도록 관객의 발을 묶지는 말아야 한다. … 나는 기자가 싫다. 감독 김기덕 올림"이라고 썼다. 이제 국내 비평계와 화해하고 싶지 않나.
김기덕 : 한때 그런 무언가를 그리워했던 시기가 있었다. 중심이 되고 싶고 베스트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후퇴하는 미덕을 알게 됐다고 할까? 더불어 1류에 대한 저항감, 미완도 완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리고 나와 같이 거론되던 홍상수, 이창동 같은 감독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씨네21] [키노] 등에서 별 5개 주는 감독들에 대한 평가가 조작된 게 아닐까. 반면 양아치 같은 사람들에게서 뭔가 알 수 없는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충무로의 다른 감독들보다 아무리 잘 하고 노력해도 난 평생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의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더 포기하게 됐고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김소희씨도 나에 관해서는 한번도 글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웃음).
김소희 : 기자를 그만둔 후 3~4년 동안 일체 글을 쓰지 않았고 복귀한 후에도 소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당신의 개별 작품들에 대한 리뷰보다는 김기덕이라는 감독 자체를 국내외적으로 브랜드화 시키는 일을 해보고 싶다.
김기덕 : 그건 비평가로서 위험한 일이다. 어쩌면 영영 글을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김소희 : 사실 나는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홍상수 감독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연달아 쓴 후, 부산영화제에 갔을 때 홍 감독이 멀리 보이자 구석에 숨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얼마 전에 타계하신 이영일 선생님께서 평소에 "두려워하지 말고 소신대로 쓰라"고 하셨던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려고 노력한다.
김기덕 :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나쁜 건 아니다.
김소희 : 물론이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당신보다 이창동, 홍상수 감독에게 훨씬 친밀감을 느낀다. [박하사탕]의 세계 속에서 성장했고 [오! 수정]의 미학주의를 달콤하게 여긴다. 그러나 두 작품에 대한 국내의 열광적인 비평이 균형을 잃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임권택, 장선우, 박광수, 이창동, 홍상수, 이명세 감독이 제각각의 세계를 갖고 인정받는 것만큼 당신의 자리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기덕 : ….
(편집자 주) 김 감독은 홍상수 이창동 등 '지식인 취향'의 감독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는다. 또한 제도권 비제도권을 구별한다. 이념이나 미학의 차별성을 천명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자신의 성장 과정에 대한 간접적 술회이기도 할 것이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를 졸업 후 농업전수학교에서 농업 기술 교육을 받았고 17세부터 공장에 다녔던 이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1990년 비행기 삯만을 마련해 프랑스로 떠나 2년간 그림을 그려 팔면서 '유학'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른바 '정상적인' 교육 제도의 수혜자가 아니다. 제도권의 감성과 논법 등은 주변 혹은 외부로 떠돌았던 이에게는 불편할 게 분명하다.
나는 어설프다. 덕분에 세상은 안도할 것이다.
김소희 : [키노]가 당신의 작품 세계를 "나쁜 작가주의"라고 명명했다. 당신에게 가장 우호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는데.
김기덕 : 분류 자체가 제도권 출신 감독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나를 100% 해석해서 배치하지 않았다. 나머지 감독들은 최고의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비제도권 감독인 나는 어디에도 맞지 않는다. 나를 어디에 넣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카테고리에 넣었겠지.
김소희 : 당신은 우리들에게 미확인 비행물체(UFO)다.
김기덕 : 제도권이 비제도권에 대해서 갖는 불안도 있다. 그들로서는 김기덕이 아직 어설픈 것이 너무나 다행일 것이다.
김소희 : 나는 당신의 정체, 그리고 "제도권의 불안"을 언어화해보고 싶다.
김기덕 : 나는 나를 알고 있다.
김소희 : 게임 하는 기분인데…. 우리 어렵게 가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나의 전략 ? 납치와 폭력 그리고 화해의 강제
김기덕 : 내 영화의 공통점은 '공간'과 '포획'이다. [섬]의 새장 여인숙이나 [악어]의 한강 같은 공간(area)에 제도권을 납치하는 것이다. [악어]에서는 여자를, [섬]에서는 남자를 사로잡아 온다. 그 수단은 폭력과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나서 서서히 나의 세계를 제시(present)하고 뒤섞고 내 편으로 동화시킨다. 나도 인간임을 소개하고 위악적인 상황을 용서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바벨탑 위에 선 사람들로 하여금 정상에서 내려와 나에게 악수를 청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세상에 취하는 제스처다. 나로서는 내가 오해해온 세상을, 그건 내 삶에서 형성된 습관들일 것이다, 이해로 만드는 과정이 곧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은근히 내미는 악수라고나 할까.
김소희 : 당신은 매우 지적인 영화감독이다. 당신이 방금 구상적으로 설명한 것을 언어로서 형태화 시켜보려 하는데, '하위문화' '잔혹성의 미학' '원상(原象)' '타자' 같은 개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김기덕 : 잔혹이란 말은 한 영화사가 내 영화를 마케팅하면서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한 말인데 지나치게 단순하다. 예를 들어보자. [섬]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자신의 자궁 안에 낚시바늘을 넣는 행위를 보고 단순히 엽기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아주 무식한 표현이다. 이는 숱한 남자들과 관계를 가졌던 그녀 자신을 스스로 거세하는 아주 슬픈 장면이다. 아! 인간이 저럴 수 있구나! 그녀의 삶이 저랬구나! 심리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가. 하위문화라는 표현도 그다지 적절한지 의심스럽다.
김소희 : 당신의 영화는 어쨌든 제도권의 엘리트주의 담론이 예술 혹은 문화라고 승인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당신 같은 사람에 의해 응집되고 형상화되기 시작하는 '하위문화'는 주류의 틈새를 비집고 올라와 결국은 판 전체의 구조를 일정 부분 재편하게 될 것이다. 서태지 음악도 그런 예라고 생각한다.
김기덕 : 기대가 된다.
김소희 : 내가 당신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여기 컬티즌에 기고한 이영일 선생님 추도사에도 썼지만, 오래도록 우리들로부터 버림받았던 한국영화사와 한국영화사가에 대해서 지니고 있던 연민의 마음이 최근에는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에 여러 거장들과 함께 예술적, 인간적 삶을 깊이 공유했던 선생님이야말로 행복한 비평가였을 것이다. 요즘 나 자신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들이 든다. 만약 당신을 한국영화사의 전통 안에서 자리매김 시킬 수 있다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김기덕 : 그런 의미에서 김기영 감독님과 비교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김소희 : 당신 입으로 직접 그렇게 떠들었다간 비평가와 김기영 매니아들로부터 돌팔매가 날아올지도 모른다(웃음). 지금 마무리짓고 있는 신작 [수취인 불명(Address Unknown)]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제목이 독특한데.
(편집자 주) 김기덕 감독의 신작 [수취인 불명]은 1980년대 미군 부대 주변 마을이 배경이다. 흑인 혼혈아 창국(양동근)을 낳아 기르는 여인(방은진), 전과를 세웠으되 보상받지 못한 한국전 용사(명계남), 실명한 여고생 은옥(반민정), 왕따 당하는 소년 지흠(김영민), 비열한 개장수 개눈(조재현), 은옥을 속여 성욕을 채우는 미군 제임스(미치 말럼) 등 한국 전쟁 세대와 그 2세대가 주요 캐릭터이다.
신작 [수취인 불명], 이번에는 관객들로부터 답장을 받고 싶다.
김기덕 :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 길거리에는 주인 잃은 수취인 불명 편지들이 많았었다. 그 편지들은 대문에 하염없이 꽂혀 있다가 바람에 이리 저리 날려 다니다 논바닥, 시궁창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나는 그 편지들을 볼 때마다 왠지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간혹 열어본 적도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애절한 사연이 많았다. 나는 [수취인 불명]의 주인공 은옥, 지흠, 창국이가 주인 없이 나뒹굴다가 버려진 편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시대 자체로 수신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버려진 편지 마냥 황량한 들판에서 창국은 완전히 짓밟혔고 은옥은 반쯤 짓밟혔고 지흠은 거친 잡초처럼 자라날 것이다.
김소희 : 편집만 되고 사운드가 입혀지지 않은 상태의 작품을 보았는데도 재미있었다. 주변에서는 이러다가 김기덕도 흥행감독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하던데.
김기덕 : 이번에는 관객들로부터 답장을 받고 싶다.
김소희 : 개인적으로 창국과 창국 어머니의 관계가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김기덕 : 그런 캐릭터는 미군 기지 주변에 수없이 많다. 이 영화의 배경인 평택은 물론, 동두천이나 그 밖의 미군기지 주변에서 숨소리조차 저대로 못 내고 살아가고 있다. 6.25가 끝나고 많은 혼혈인들이 미국으로 입양 됐다. 그러나 남아있는 혼혈인들은 미군 기지 주변에서 그들의 엄마와 함께 숨을 죽이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다니던 일산초등학교 옆에는 홀트 아동복지재단 본부가 있었다. 때문에 우리 반에는 서너 명의 혼혈인이 있었다. 당시 나는 그 애들이 무서웠고 실제로 그들은 난폭했다. 그들 중에는 빨간 버스 안에 살아가는 창국, 창국모 마냥 조그만 판자를 짓고 살았는데, 창국이처럼 엄마를 무척 난폭하게 구타했다. 당시 국민학교 4, 5학년이었던 나에게 아주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그 친구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갔던 그들의 삶이 오늘날에도 거의 변한 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수취인 불명]에서 해보 고 싶었다.
김소희 : 미군 병사를 묘사하는 방식도 인상적인데.
김기덕 : 미군은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불편한 존재다. 그들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고 있고, 특히 성폭행 문제는 하루빨리 근절돼야 할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있는 뿌리깊은 군사문화, 제국주의적인 성향은 일개 병사들의 문제는 아니다. 시나리오 쓸 당시 나는 미군병사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영화 헌팅을 위해 수많은 미군부대 주변의 남루하고 꾀죄죄한 클럽을 보면서 어떤 비애감을 느꼈다. 서울의 괜찮은 술집도 아니고 필리핀, 러시아 아가씨들이 나오는 3류 클럽에서 몇 달러 주고 아가씨들을 옆에 앉혀 몇 마디 나누다가 연애도 제대로 못해보고 군기지로 돌아가는 병사들의 초라한 모습에서 고립감, 외로움, 쓸쓸함을 느꼈다. 나는 그때 내가 정말 제대로 그들을 이해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존재란 마치 중동에 파견된 한국군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다. 나는 그 지점에서 미군들의 성폭행 문제의 또 다른 이면을 보게 된다. 미군기지 주변의 치외법권지역에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한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나. 그들은 이국 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는 쓸쓸한 이들일 뿐이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그래서 [수취인 불명]이 미국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태도는 "친미와 반미의 경계"라고 말하겠다.
김소희 : 전작들에 비해 정치와 역사가 전면화 되는 것 같다.
김기덕 : 정치적 메시지가 느껴지는 건 싫다. 은옥이는 미군들이 주는 아이스크림에 좋아라 반응했던 60년대 우리 시대를 표상하는 인물이며, 창국이는 그런 미군과 한국연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으로 70년대를 상징하며, 지흠이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8, 90년대의 우리들의 모습이다. 나는 몽따쥬적 시간대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해보고 싶었다. 어떤 문제를 정치적으로 제기하기 보다 서정적인 정서로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늘 그 래왔다고 생각한다. [악어]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를, [파란 대문]에서는 계급의 경계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 우리 모두는 사실 저열하다
김소희 : 개를 패고 잡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고 해서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김기덕 : 직접적인 노출은 자제했고 실제로 개를 다치지도 않았다. 이런 걸 넣은 의도는 저열함에 대한 일종의 고백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모습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김소희 : 언제 개봉하는가.
김기덕 : 4월에 극장에 걸릴 수 있을 것 같고, 그에 앞서 깐느 영화제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베를린, 베니스, 깐느를 3년만에 모두 나가는 감독이라는 선전꺼리가 생길 것이다.
김소희 : 당신이 그렇게 여우인 줄 몰랐다(웃음).
김기덕 : 신문사에 팩스 보내던 때의 심정을 말하자면 이렇다. [악어]가 명보극장 마당에서 허연 배를 뒤집은 채 죽어간 바로 다음 해 같은 시기에 [야생동물 보호구역] 역시 휴일에도 2, 3백명 밖에 보지 않은 채 떼지어 질식사하고 있었다. 너무 불쌍해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창작자라는 가면 속에 갇혀 있기가 힘들어서 스스로 꼬랑지를 내리고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김소희 : 요즘은 당신이 한결 여유가 생겼고 더 이상 초조해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즐거운 대화였다.
-컬티즌, 김소희 cwg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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