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해안선> 김기덕 인터뷰
톱스타 장동건과 저예산 영화의 대가 김기덕 감독의 동거가 약속한 한 달을 다 채웠다. 그들의 동거는 과연 어땠을까? 변산반도 끝자락에 있는 위도 오픈 세트장에서 김기덕 감독을 만났다.
어떻게 장동건을 캐스팅 했나?
4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장동건을 처음 만났다. 그 자리에는 많은 스타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유일하게 인사한 사람이 장동건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모습이 다른 스타들과는 달리 예의 바르게 느껴졌고 배우로서의 느낌도 무척 좋았다. 부산에서 올라가자 마자 장동건을 생각하며 <나쁜 남자>를 썼다. 물론 <나쁜 남자>에서는 인연이 안 됐지만 시간을 두고 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면 <해안선>도 장동건을 염두해 두고 쓴 시나리오인가?
그 누구도 염두한 배우는 없었다. 이제 특정 배우를 두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장동건에게 캐스팅을 제의할 당시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일부러 보내지 않았다. 장동건이 캐스팅 된 뒤에도 그를 위해 개작한 부분이 거의 없다. 스타가 출연한다고 해서 신을 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나도 장동건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가 자문하면서 영화를 찍고 있다.
박쥐부대 세트가 무척 인상적이다.
내 영화는 장소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트가 중요하다. 전국을 3개월 동안 배 타고 다니며 헌팅했지만 결국 내륙에는 찾지 못했다. 아직까지 내륙은 대간첩 지역이고 거기서는 세트는 물론 군부대의 어떠한 협조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결국 섬을 택했다. 섬이란 곳은 간첩이 침투하면 그 섬만 뒤지면 되기 때문에 허가가 난다. 위도는 조감독 중의 한 명이 단편영화를 찍었던 곳이라 추천했는데 이곳에 와보고 마음에 들어서 단번에 결정했다.
태풍도 지나가고 했는데 섬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에 이곳에 세트를 지을 때 섬 주민들이 두고 보자고 했다. 태풍이 오는 계절이라 크게 당할 것이라면서.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촬영이 있을 때면 태풍이 피해가더라. 영화사에서도 장마 기간을 피해 촬영하자고 했는데 한 달 동안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촬영에 번거로움은 있었다. 세트 주위에 철조망을 150m 쳤는데 이 철조망을 넘나들며 조명기 나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해변 촬영을 하면서는 바다가 조명을 먹어버려 어려움이 있었다. 또 여기는 밀물과 썰물의 폭이 커 수시로 해안 지형이 바뀐다. 커트가 튀지 않으려면 2, 3시간 안에 2, 3신을 찍어야 했다.
배우들이 섬 촬영이라 많이 갑갑해 했을 것 같다.
우리는 반 바캉스다. 나도 처음에는 혈기 왕성한 배우들이 잘 따라와 줄 것인가 걱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유가 생겼다. 낮에는 해수욕하고 밤에는 고기 잡고. 여기는 물 반, 고기 반이라 초보자도 잘 잡는다.
<나쁜 남자>가 거울의 이미지였다면 <해안선>에는 철조망의 이미지인 것 같다.
그렇다. 거울은 깨질 수 있는 거지만 철조망은 그렇지 않다. 족구장을 가르는 철책에 한반도를 그려 놓았는데 좀 유치하긴 하지만 이게 분단국가 한국의 모습이다. 한국의 모든 해안에는 철책이 드리워져 있고 그 철책이 상징하는 군대의 억압된 질서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군대는 인간을 살인병기로 길들이고 군대를 나온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질서와 마찰을 일으키면서도 그 이데올로기를 버리지 못한다.
해병대 출신 교관들을 불러다 지옥 훈련을 한 효과는 있었나?
안 했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그 덕분에 연기 연출이 한결 쉬워졌다. 누구는 괜한 ‘쇼’라고 했지만 지옥 훈련이야말로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지옥 훈련 퇴소식 날 배우들에게 봤던 그 눈빛을 기억할 것이다. 군대는 사람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사람이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명령을 기다리는 존재, 길들여진 존재가 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나는 제대한 지 20년이 지나서도 악몽을 꾼다. 간첩이 나에게 총을 겨누고 고참들의 주먹이 피멍 든 내 가슴을 친다. 이 영화는 보통의 다른 영화처럼 군인들이 간첩 잡고 활약하는 모험담이 아니다. 뼛속 깊이 스며든 광기를 비판하고 싶다.
당신의 영화는 영상미가 빼어나다. 영화의 주제는 군사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아름다운 해안과 세트, 젊은 군인들이 땀 방울 맺힌 육체가 영화에서는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다. 또 당신 스스로 지옥 훈련이 연출에 도움을 됐다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군사문화에 대한 태도가 모순적인 것 같다.
모순이지만 그 모순을 씻어 낼 수는 없다. 바꾸어 말해, 내가 <나쁜 영화>에서 가학을 즐겼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피학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현실은 그것이 섞여 있다. 감독이 어떤 문제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모순과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고 해서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2002.07.30 / 한승희 기자
김기덕, <해안선>의 장동건
미지의 감정을 찾아서
2002.11.20 / 최광희 기자 필름2.0
장동건이 김기덕 감독의 저예산 영화 <해안선>에 출연한 걸 두고 우리는 모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장동건은 도전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중심을 확고히 지키는 배우의 영역 확장이라고 말한다. 톱스타의 수식을 즐기면서도 껄끄러워 하는 그의 속내는 무엇일까. 그는 어떤 생각으로 <해안선>을 선택했을까. 배우 장동건의 진심 탐험.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이 이럴 때 쓰는 건가. 막연하고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해안선>을 매개로 만나고자 했던 장동건인데, 도대체 영화를 봐야 배우와 얘기를 나눌 것 아닌가. 몇 번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제작사 LJ필름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개막작의 특권이자 의무인 ‘월드 프리미어’라는 부산영화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니 무조건 영화제 개막 날까지 기다리란다. 원칙 앞에 할 말은 없지만 이래 가지고 어찌 주연 배우와 영화를 논한단 말인가. 앞이 캄캄해질 무렵 장동건이 불쑥 스튜디오로 뛰어 들어온다. 집에서 뒹굴다 막 나온 차림. 지난여름 <해안선> 촬영 때에 비해 제법 자란 머리칼을 쓱쓱 다듬는 그가 왠지 만만해 보여 자진 신고를 했다. “에그, 영화를 못 봐서, 오늘 인터뷰는…” “걱정 마세요, 저도 아직 못 봤어요.” 핫! 이게 웬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가. 그도 못 봤단다. 그렇다면 이 난감한 퍼즐 게임은 나만의 몫은 아니란 얘기. 자신감이 돋는다. 오늘 우리는 <해안선>이라는 영화와 장동건이라는 배우를 알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얼른 마음을 고쳐먹는다. 오늘 우리는 장동건이라는 배우를 ‘느끼기’ 위해 모였다. 그래, 느낌이다. 이제부터 진행될 글은 밀폐된 공간에서 세 시간 동안 진행된 배우 장동건에 대한 관찰기이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해안선>에 대한 언급은 제작사와 부산영화제의 바람대로 조금, 아주 조금밖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해안선>에 관한 한 아는 것도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모두 영화를 못 봤다.
한참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 즈음. 이재용 포토그래퍼의 리모컨이 그런지 록 풍의 파괴적인 리듬을 불러내 지하 스튜디오의 정적을 깨뜨린다. 탈의실에서 튀어나온 장동건은 뒷골목 건달, 아니 ‘날라리’ 같은 면모로 변신해 있었다. “이거, 나이 서른이 넘어가지고….”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동건이 머쓱하게 세트 위에 올라선다. 그리곤 털끝만큼도 주저하지 않고 세기말적인 퇴폐미가 물씬 풍기는 록 뮤직의 비트에 맞춰 다리를, 허리를, 얼굴 근육을 움직인다. 그에게 요구된 오늘의 컨셉은 ‘양아치’다. 포토그래퍼의 설명에 따르면 남의 자동차에다 불을 질러 놓고 ‘흠, 내가 안 그랬어’라고 눙치는 얼굴 두꺼운 양아치가 오늘의 그다. 왠지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일 것 같은 이제까지의 인상은 헛것이었다. 그는 포토그래퍼의 주문에 맞춰 시시 각각 다른 표정과 몸짓을 ‘연기’하고 있다. 저 배우, 보통이 아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촬영을 위해 동원된 여성 스탭들은 모두 넋이 나가 있다. 그와 몇 년간 동고동락했다는 매니저가 한마디 한다. “자다가 새벽에 깨어나서 동건이 얼굴 보면 막 화가 나기도 했어요.” 동감이다. “당신, 뭘 믿고 그리 잘생겼어?”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신경질과 위화감과 부러움과 열등감이 한데 겹쳐 몰려온다. 애써 직업정신을 곧추세운다. 이제 그를 해부할 차례다. 아니다. 느낄 차례다.
냉정과 열정 사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한 가지 화두를 붙들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톱스타인 장동건이 도대체, 뭣 때문에 흥행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농후한 김기덕 감독의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냐는 것이다. 일단 그 과정은 이렇다. 장동건은 올 초 코리아 픽쳐스의 김동주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LJ필름은 <봄 여름 가을 겨울>과 <해안선>의 시나리오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해안선>을 선택했다. 알려진 개런티는 5천만 원 정도. <친구>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 굵직한 흥행 영화에 출연해온 그에겐 턱없이 적은 액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장동건은 저예산 영화의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먼저 출연을 바란 건 장동건,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장동건은 <악어>부터 <나쁜 남자>까지 김기덕의 영화는 모두 챙겨 본 열혈 옹호론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저 역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공감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이해는 합니다. 김기덕 감독 특유의 밑바닥 정서와 일반적이지 않은 심리 묘사는 배우로선 새로운 감정을 찾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유난히 그를 부추긴 건 <나쁜 남자>였다. 시나리오도 미리 구해 읽었다. 조재현이 연기한 나쁜 남자 ‘한기’ 역에 욕심이 났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어요. 내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건 감탄사가 나올 만한 대목이다. 우리는 꽃미남과 톱스타라는 산업적 수식어 속에 그를 너무 오래 가둬놓았다. 그는 산업과 대중이 그를 바라보는 시각에 시달리면서도 그 자신이 이뤄야 할 영화 연기의 목표점을 철저히 자신에게 새기고 있었다. “미지의 감정,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들을 체득할 수 있느냐가 영화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해안선>의 출연은 그에게 ‘변신’이 아니라 연기 영역의 ‘확장’이었다.
천국과 지옥 사이
<해안선> 촬영에 들어간 건 지난 6월이었다. 서해 변산 반도의 위도였다. 먼저 해병대 출신 조교들로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장동건은 2박 3일의 특수 훈련이 영화 촬영을 위한 필수 코스라고 생각했지만 박쥐부대의 병사로 거듭날 동료 배우들과 지낸 그 사흘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툭하면 머리를 땅에 박았다. 천근만근의 고무보트를 들어 나르고 뻘을 기었다. 사흘 동안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두 시간 남짓이었다. 영화 출연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루는 하도 목이 말라 새벽에 일어나서 물을 마셨어요. 근데 아침에 보니까 그게 남들 빨레했던 물이었던 거예요.” 그러나 질병으로 군 면제를 받았던 그에게 훈련은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어느새 장동건은 간첩 잡는 데 혈안이 된 해안경비대 강상병이 돼 있었다.
위도의 하루는 길었다. 김기덕 감독의 해외 영화제 참가 기간을 빼곤 촬영 기간 내내 한번도 섬 밖에 나온 적이 없는 장동건과 그의 동료들은 이 한적한 오지에서 한 달 동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경험했다. “섬에 유흥거리라곤 허름한 노래방 하나였어요. 그것도 몇 번 가다가 시들해져서 다들 새로운 놀이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죠.” 핸드폰도 뚫리지 않는 이곳에서 그들은 ‘쿵쿵따’ 게임으로 소일했고, 틈만 나면 수영과 낚시, 족구를 즐겼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아날로그’ 유흥이 만들어준 동료들과의 유대감은 고스란히 영화의 재료가 됐다.
장동건은 속전속결로 영화를 찍는 김기덕 감독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단 모니터가 없었다. 자신이 연기한 신을 검토하고 감독과 상의하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다. 장동건은 그러나 “영화를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은 덕분에 그런대로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장동건은 점차 강상병의 광기를 몸에 흡수했다. 속도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순조롭던 촬영 과정에서 장동건의 유일한 베드 신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따라붙어 있었다. 김기덕 감독과 장동건은 “강상병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신이라면 찍지만 그렇지 않으면 뺀다”는 약속을 촬영 전에 했다. 베드 신 촬영 전날 장동건은 김기덕 감독을 찾아갔다.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고려하면 베드 신은 안 찍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기덕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그 신은 촬영에서 제외됐다. 장동건은 배우의 의견을 존중해준 김 감독의 결단을 고마워했다.
장동건이 연기한 강상병은 한국 사회의 거대한 폭력에 짓눌린 일그러진 얼굴이다. 오직 간첩을 잡겠다는 일념에 빠져 혼자 기습 침투 훈련을 자청하고, 졸병들과의 권투 시합을 즐기는 강상병은 한국 사회의 제도와 구조가 정당화한 폭력과 억압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야심한 시각, 술에 취해 해안선에서 정사를 즐기던 인근 마을의 젊은 남녀가 초병 근무중인 강상병의 적외선 망원경에 잡힌다. 강상병은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수류탄을 던진다. ‘수류탄 꽝, 크레모아 꽝, 다다다다다’ 군대 용어로 FM(Field Manual)대로 행동한 것이다. 애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강상병은 부대 표창을 받고 포상 휴가까지 받는다. ‘까래서 깐’ 대가로 엉뚱한 사람들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은 강상병은 점차 죄책감과 광기에 빠져들고, 결국 의가사 제대를 명받는다. 그러나 이미 제 정신을 잃은 강상병은 부대 근처를 떠나지 못한다. “강상병은 한마디로 미친놈이에요. 하지만 그냥 미친 건 아니죠. 정형화된 정신병자의 연기가 아닌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게 힘들었죠.” 장동건은 강상병을 소화하기가 힘에 부쳤다고 토로한다. 사실 시나리오를 받아 읽을 때부터 “난이도가 꽤 높다”고 생각한 터였다.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죠. <해안선>은 저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는 경험이 됐어요”라며 겸손해 하면서도 장동건은 모니터 없이 ‘감’으로 연기한 강상병이 어떤 색깔로 드러날지 궁금해 죽겠다는 눈치다. 그걸 그는 “두렵다”고 표현한다.
확신과 불안 사이
<해안선>은 장동건에겐 꽤나 충격적인 도전이었다. 사실 장동건의 도전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친구>,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 장동건은 최근 몇 년 동안 얼굴만 잘생긴 꽃미남의 이미지를 벗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왔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동건이라는 이름 앞에는 늘 대중적이며 상업성이 강한 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8번째 영화로 김기덕 감독의 8번째 영화 <해안선>을 선택한 장동건은 두려운 건 그게 아니라고 일축한다. “대중성 있는 배우가 꼭 훌륭하지 않은 배우라는 법은 없죠.” 그는 오히려, 조금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을 상업성이 강한 배우로 위치시키는 데 그리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의 잘 나가는 배우들 보면 상업영화 하면서도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걸 볼 수 있잖아요. 영화를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서 그건 배우에게 굉장히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장동건이라는 배우와 김기덕이라는 감독이 만난 것도 그런 면에서 한국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좋겠죠.” 물꼬를 튼 장동건의 배우론은 계속된다. “요즘은 톰 크루즈를 유심히 보고 있어요.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죠. 이른바 ‘꽃미남과’ 배우로 시작했고, 폴 뉴먼이나 잭 니콜슨, 더스틴 호프먼 같은 좋은 선배들과 함께 작업했다는 것, <매그놀리아> 같은 작품성 높은 영화에 곧잘 출연한다는 것 말이에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박중훈과 안성기, <친구>의 유오성이 그의 곁에 있었다. 포장된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길을 잠시 접고 과감히 <해안선> 출연을 감행했다. 그렇지만 장동건의 모습에선 그가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과 불안이 교차한다. <해안선>의 장동건, 그게 어떤 모습일지 그 자신도 두려워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지금 장동건이라는 배우의 존재는 한국영화의 행복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의 선택에 흔쾌히 기립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사진 이재용
스타일리스트 | 김효성, 박혜정(H.S GROUP)
의상 | ENER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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