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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김동원 인터뷰

가/김기덕 2004. 2. 27. 06:20 Posted by 로드365


[독립영화를 말한다]‘관객 1천만시대’의 독립영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대작영화들이 일으킨 태풍의 부정적 후폭풍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투자가 오락성 높은 대작에 몰리고 그런 영화들이 배급망을 장악하면, 한국영화가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2004선댄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송환’으로 ‘표현의 자유상’을 받은 김동원 감독과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감독이 전세계 독립영화제를 대표하는 선댄스에서 상을 받고, 3대 국제영화제의 하나인 베를린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감독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내 찻집과 인근 음식점에서 약 5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편당 1천만 관객시대에 작은 영화들의 활로는?’에서 벗어난 이야기도 많았지만, 두 감독은 독립·예술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본령을 다하는 데 치열해져야 하며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면서 지원책도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치열하게 찾으면 길은 열린다”-


‘송환’은 1992년부터 촬영, 무려 12년에 걸쳐 완성했다. 장기수들의 송환 이후를 찍기 위해 여러차례 방북을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마리아’는 4억8천만원을 들여 15일 동안 11회 촬영을 통해 완성했다.


우직하게 한 길을 달려온 두 감독에게 왜 돈도 안되고, 힘은 더 드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저예산영화 작가영화를 고집하느냐고 물었다. 김동원 감독은 “간섭받지 않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며 “카메라가 돈 버는 데에만 쓰이는 건 삭막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김기덕 감독은 “저예산영화는 자본환수에 대한 부담이 상업영화보다 덜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저예산영화 역시 그 나름대로 본전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뒤따른다”고 밝혔다.


‘사마리아’는 그 일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김감독이 독립 프로덕션을 차리고 만든 첫 작품이다. 자신감을 갖고 독자적으로 투자유치에 나섰던 김감독은 감독으로선 몰라도 제작자로서는 못믿겠다는 투자자들의 선입견 때문에 백지상태로 제자리 걸음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올드보이’ 등을 선보인 투자·배급사 쇼이스트의 김동주 대표가 나서면서 해결됐다. 그 돈도 김대표가 김감독의 영화 해외 판매수입이 30만~40만달러가 된다는 점을 여러 사람에게 역설, 그들로부터 분산 투자를 받았다. 게다가 그 돈마저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아 김감독은 예산을 짜고 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감독은 프로덕션 플랜을 면밀하게 다시 짜 영화를 완성했다. 스태프를 크랭크인 10일 전에 구성해 보름 동안 집중적으로 촬영했으며, 편집도 직접 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때 편집을 배웠고 편집기도 구입해 놓아 가능했다.


그가 자신의 독립 프로덕션을 차린 이유도 저예산영화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그는 “영화를 만들다가 자금이 마르고 흥행 부진으로 사무실(창고)이 극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를 해소하고 충격을 완화하는 자구책의 하나로 1인 시스템으로 가동하는 김기덕필름을 차렸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앞으로 카메라와 렌즈 등도 구입하고 후반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시설을 이용해 현금 1억원 미만으로 영화를 완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영화는 돈으로 찍는 게 아니라는 걸 반드시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김동원 감독은 ‘송환’을 찍으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다큐멘터리 집단 ‘푸른영상’의 수익사업을 비롯해 ‘행당동 사람들’ ‘명성, 그 6일의 기록’ ‘미디어 숲속의 사람들’ ‘한 사람’ 등을 완성했다. 김감독은 “독립 다큐는 돈이 안들고 운동 개념이 강하다”며 “정신으로 찍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송환’은 2000년 북한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일상을 통해 분단의 상처와 우리 사회의 벽, 인간이 지닌 양심의 순수함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촬영한 테이프가 무려 500개로 800시간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거쳐간 스태프도 10명이 넘고, 카메라 기종도 방송용 유메틱부터 VHS·베타·6㎜ 등 열댓 가지나 된다.


김기덕 감독은 이에 대해 “저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겠네요”라며 김동원 감독의 항구여일(恒久如一)에 존경심을 표했다.


김동원 감독은 “소재에 끌려 접근했으면 포기했을 것”이라며 “그들이 전향을 거부했던 것은 신념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그것이 매일 또다른 ‘전향’ 유혹에 시달렸던 나를 추스르게 했다”고 밝혔다.


-“콘텐츠 적고 스크린도 봉쇄돼”-


독립·작가영화는 왜 제작·상영되어야 하는가. 두 감독은 앞선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상업영화는 대부분 대중에 영합하지만 독립·작가영화는 대중과의 대화를, 주제에 대한 교감을 원한다”며 “그것이 존재의 이유”라고 역설했다. “단 작가들이 본령에 충실한지, 진정성을 치열하게 추구하고 있는지는 제각각 자문해야 할 것”이라며 “비교적 그렇다고 인정받는 작품조차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게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환’은 다음달 19일 서울 동숭동의 하이퍼텍 나다, 광화문의 시네큐브 등 5개관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송환’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의 첫 번째 배급영화다.


그러나 상황은 힘들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은 키네코 작업(디지털을 필름으로 전환)에 다 들어갔고 돈이 없어 프린트를 3벌밖에 뜰 수 없는 처지다.


김감독은 “아트플러스를 만들어놓고 서울에서만 하느냐고 지방에서 불만을 토로해 12개 관에서 모두 상영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3벌만 떠서 지방으로 보내고 서울에선 디지털로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마리아’는 그래도 베를린 수상에 힘입어 다음달 5일 70개 안팎의 스크린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김감독은 “배급사측에 스크린을 줄여가자는, 반응을 보고 확대하자는 요청을 하고 있다”면서 “프린트 복사·폐기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와이드 릴리즈가 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동원 감독은 “신문·잡지광고 등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다. ‘사마리아’도 정도의 차는 있지만 그리 다르지 않다. 김감독은 “초 저예산영화인 만큼 광고비와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쓸 수 없어 신문·잡지의 리뷰 외에 관객들에게 영화 개봉을 알릴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두 감독은 독립·예술영화는 “콘텐츠가 적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스크린도 봉쇄돼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김동원 감독은 “예술영화는 아트플러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독립영화는 그나마도 없다”면서 “만들어도 걸 데가 없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강변했다. 김기덕 감독은 “저예산영화도 마찬가지”라며 “일단 거는 게 힘들고, 걸려도 소리소문 없이 간판을 내리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범영화인과 관객 관심 중요”-


두 감독은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문화산업적 차원에서 불러올 긍정적인 면을 높이 평가했다. 이와 함께 메이저 투자·배급·제작사와 멀티플렉스 등 극장주, 범영화인 차원에서 펼쳐지는 저예산영화·예술영화·독립영화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요망했다.


김동원 감독은 이에 대한 일례로 할리우드의 IFP(Indipendent Film Project) 시스템을 들었다. “할리우드의 경우 메인 스트림에서 십시일반으로 시줏돈을 마련해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면서 “제작·배급형태만 할리우드식을 추구하지 말고 IFP도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김기덕 감독은 “충무로는 대기업과 영세상인만 있는 셈”이라며 “이들과 중소기업이나 수공업체 성격의 독립 프로덕션이 공생공존할 수 있는 길이 영화인 모두의 참여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감독은 또 영진위에 대해 “지원금의 공평 분배방식을 지양하고 ‘마일리지 디렉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독립영화 정신으로 작가주의 영화를 하는 게 영화를 하는 참재미지만 국제적으로 능력을 검증받은 감독은 제작비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고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이 보강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두 감독은 또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의 경우 멀티플렉스에서 한 영화를 2개관 이상 상영하지 않는다”며 “영화의 다양성이 증진되고 관객들의 영화편식증이 해소되려면 우선 멀티플렉스측이 개관취지에 맞게 여러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원 감독은 “선댄스영화제가 열리는 미국의 파크시티가 겨울철 유명 휴양지이긴 하지만 그 산골에 사람들이, 중장년 관객들이 적잖게 관람하는 게 무척 부러웠다”면서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영화인들은 물론 관객들의 참여 또한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고 밝혔다.


김기덕 감독은 “1천만명이 본 영화 2편이 제작된 것보다 1백만명이 감상한 영화 20편이 선보이는 게 영화계 발전에 유익하다고 본다”면서 “대작영화로 벌어들인 이익금이 영화계에 재투자·분배돼 그 일환으로 창의성이 뛰어난 독립·예술영화들이 속속 제작되고 상영되는 토양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원 감독


1955년생. 1986년 다큐멘터리에 입문, 88년에 ‘상계동 올림픽’을 내놓았다. ‘벼랑에 선 도시빈민’ ‘미디어 숲속의 사람들’ ‘명성 그 6일의 기록’ ‘행당동 사람들’ ‘한 사람’ 등을 통해 저항정신과 휴머니즘을 담아내는 다큐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다큐집단 ‘푸른영상’ 대표로서 독립영화계의 대부로 손꼽힌다. 87년 6월 항쟁에 관한 다큐멘터리 ‘명성…’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영포럼 부문에 초청받았고, ‘송환’으로 2004선댄스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


1959년생. 1996년 ‘악어’로 데뷔, 최근작 ‘사마리아’까지 10편을 내놓았다. 다작에다 대부분의 작품을 10억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완성했다. 대표작으로 ‘파란대문’ ‘섬’ ‘수취인불명’ ‘나쁜남자’ ‘해안선’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등이 있다. 국내에선 극단적인 주제의식과 영상미학으로 호부(好否)가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지만 베니스·베를린·선댄스 등 유명 국제영화제를 통해 해외에선 작가주의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사마리아’로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글 배장수 전문위원 cameo@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