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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베니스영화제 시상식장에 나타난 김기덕 감독의 구겨진 신발 사진. ‘집념의 야인’ 같은 그의 이미지에 맞아떨어진다. [베니스 로이터=뉴시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박수소리가 잦아든 무대에 조용히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지난 8일 저녁(현지시간)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세계 3대 영화제(칸·베니스·베를린)에서 한국 작품이 최고상을 받은 것은 김 감독이 처음이다. 김 감독은 무대에서 ‘아리랑’ 1절을 부르는 것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주연배우 조민수씨가 그 모습을 감격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김 감독은 수상 후 e메일 인터뷰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수상소감 대신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하며 “영화 <아리랑>으로 지난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영화 <아리랑>은 지난 4년간의 나에 대한 질문의 대답이자, 씻김굿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1996년 <악어>로 데뷔한 김 감독은 충무로의 아웃사이더이자 늘 논란의 중심에 섰던 문제적 감독이었다. 그의 18번째 작품인 <피에타>는 다수 언론의 호평과 함께 베니스영화제 소식지 ‘베네치아 뉴스’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일찌감치 황금사자상 수상 후보 1순위로 꼽혔다. 폐막식 직전까지도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더 마스터>와 경합을 벌였던 <피에타>가 최종적으로 황금사자상의 주인이 된 데는 2000년 <섬>으로 김 감독을 발굴하고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온 신임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의 입김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은 “범세계적 주제인 자본주의와 이로 인해 발생된 어긋난 도덕성에 모든 관객 및 심사위원들이 통감했다고 본다”며 “특히 심사위원들의 평대로, 물론 영화의 시작은 폭력성과 잔인함으로 시작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인간 내면의 용서와 구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피에타>는 황금사자상 이외에도 비공식상인 젊은 비평가상, 골든 마우스상, 나자레노 타데이상을 받으면서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총 4개의 상을 휩쓸었다.


은사자상(감독상)은 <더 마스터>의 앤더슨 감독이, 남우주연상은 <더 마스터>의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공동수상했다. 여우주연상은 <필 더 보이드>의 하다스 야론 등이 수상했다.



사춘기 시절 지독한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청계천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그리고 그 청계천에서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침내 세계영화계의 정상에 올랐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5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52) 감독 얘기다.


김 감독은 지난 7월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내가 15살 때부터 7년간 일한 공장이 청계천에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청계천은 큰 변화를 겪었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청계천의 변화를 통해 비유해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고단했던 ‘청계천 키즈’ 시절이 되레 그를 세계적 감독으로 올려놓는 디딤돌이 된 셈이다.


김 감독은 충무로의 아웃사이더다. 중졸 학력에 독학파 연출가다. 스스로 밑바닥 인생을 살았고, 그것을 작품에 담아냈다. 청계천·구로공단 등에서 일했고, 해병대 자원입대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길거리 화가로 살기도 했다.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8일 오후 시상식장에서 트로피를 머리 위에 들어 보이고 있다. [베니스 AFP=연합뉴스]



그는 32살에야 처음 영화란 걸 보고 감독을 꿈꿨다. 극한상황과 폭력적인 이미지 때문에 한때는 대표적인 반여성주의 감독으로 몰리기도 했다. 해외 영화제 선전과 수상에도 충무로와는 오랫동안 쌓인 앙금을 풀지 못했다. "열등감을 먹고 사는 괴물이었다"고 자평할 만큼 상처투성이의 삶을 살았다.

8일(현지시간) 오후 베니스영화제 시상식. 수상결과가 발표되자 무대에 오른 김 감독은 '아리랑'을 불렀다. 마음에 쌓인 한을 풀어내는 것 같았다. 이로써 그는 베니스·칸·베를린,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 합쳐 한국감독 처음으로 최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2004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같은 해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상도 수상, 한국감독으로 최초로 3대 영화제 수상이란 진기록도 세운 그다.


그는 이날 시상식 무대에서도 특이했다. 동여맨 꽁지머리 모습에 발뒤꿈치가 드러나게 접어 신은 낡은 신발을 신고 나왔다. 김 감독이 신은 신발은 스페인 브랜드 캠퍼 제품으로 가격은 32만원대이라고 캠퍼 관계자가 밝혔다. 신발 위쪽은 소가죽이고, 바닥은 고무로 만들었다. 튼튼하면서 패셔너블한 것이 특징이다. 캠퍼는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와 콜레보레이션으로 제품을 내놓는 등 예술적 취향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신발 끈에 빨강색 등 원색을 많이 쓰는 것도 스페인의 미적 취향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이날 입은 전통 한복을 개량한 듯한 검은색 옷도 턱시도 차림의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2000년대까지 해외 영화제 시상식에서 청바지에 점퍼, 야구모자 차림이었던 그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았을 때부터 꽁지머리에 한복 디자인의 옷을 입기 시작해 이후 공식 석상에서 계속 비슷한 스타일의 패션을 보여줬다.


베니스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순간 김 감독이 시상식에서 선보인 의상은 천연 옷감에 감물을 들여 만든 갈옷이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옷은 서울 인사동에 있는 옷가게 '니히(NIHEE)'에서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김 감독은 시상식을 앞둔 2주 전 께 이 옷가게에 들러 재킷 형태의 검은색 상의와 역시 어두운 색의 하의를 사갔다.이 옷가게의 사장이자 디자이너이기도 한 김모 씨는 "베니스영화제에 간다고 하시면서 아래·위 옷을 골라가셨다"고 밝혔다.이어 "원래 여성용으로 만든 옷이라 단추가 (남자 옷과) 반대로 달려있고 소매 길이와 바지 길이도 짧은 편인데 품이 커서 남자들이 입기도 한다"며 "보통 남자들은 단추가 반대로 달려 있으면 안 입는데 예술하는 사람들은 신경 안 쓰고 입기도 한다. 그분도 바지를 입어보지도 않고 그냥 가져가셨다"고 전했다.김기덕 감독이 사간 옷은 윗옷이 140만 원대, 바지가 60만 원대로 도합 가격이 200만 원 정도다.


생감을 따서 즙을 낸 '감물'로 천연 면이나 마를 물들이는 제작 방식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그 정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옷가게 사장은 설명했다.이 사장은 "감물을 들인 뒤 먹물을 한 번 더 들인 옷이라 잘 입으면 굉장히 품위가 있는 옷"이라며 "뉴욕이나 유럽에 가면 서양인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옷"이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한국 언론들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현지 반응이 좋아 솔직히 수상은 기대했다. 이번 상은 내가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 주는 상"이라고 말했다. 또 "범세계적인 주제인 자본주의와 이로 인해 발생한 어긋난 도덕성의 문제가 관객과 심사위원들의 공감을 산 것 같다. 폭력성과 잔인함으로 시작하지만 끝부분에 용서와 구원으로 정화하는 게 마음을 움직인 듯 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돈이면 다 된다는 무지한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진실한 삶의 가치를 깨닫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시상식에서 '아리랑'을 부른 것에 대해서는 "세계인에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수상 소감 대신 전하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피에타'는 폭력성과 야만, 구원이라는 주제를 담은 전형적인 김기덕표 영화다. 김 감독은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목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다 중단했다. '피에타'는 '사마리아''아멘'과 함께 어린 시절 목사를 꿈꿨던 나의 열망이 육화된 3부작 중 하나다. 3년 만에 내놓은 장편 극영화로, 나에게 새로운 출발"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집념·불굴의 연출가다. 2004년 베니스·베를린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잡았으나 국내 영화계와의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흥행이 부진하고 극장조차 잡기 힘든 예술영화 감독의 비애를 성토해왔다. 지난 3년 넘게 제자였던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과의 갈등 등으로 농촌의 오두막에 칩거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에게 씻김굿 같은 '아리랑'으로 돌아왔고, 올해 '피에타'로 한국 영화계에 값진 선물을 안겼다.  양성희·서정민 기자, 온라인 중앙일보 




‘피에타’가 묻는다, 제2·제3의 김기덕 나올 수 있을까. 2012.9.10

1억5천만원 쓴 ‘피에타’의 메시지 
작은 영화도 생존 가능하려면 투자와 상영관 문제 해결돼야
전문가들 “국가가 고민할 시점”

국내 영화인들은 올해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받은 ‘황금사자상’이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인 동시에 ‘엄중한 과제’도 던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의석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10일 “국내에선 한국 영화가 크게 흥행하고 있고, 박찬욱·김지운 감독이 미국에 진출하는 등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강해지는 시점에 황금사자상까지 받으면서 한국 영화의 대외적 위상이 한단계 더 올라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1987년 배우 강수연씨가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만 해도 ‘이게 뭔 일인가’ 싶었지만, 이후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지속적으로 주목받아왔고 이런 긍정적 징후들이 쌓여 이런 경사가 났다”며 “이번 수상으로 외국 영화제나 (영화를 사고파는) 필름마켓에서 한국 영화의 인지도와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불과 3주 동안 촬영해 만든 저예산 영화 <피에타>의 성취를 계기로 하여, 상업영화와 작은 영화들이 공존하는 ‘영화 시장의 다양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기덕필름’의 전윤찬 프로듀서는 “관객 20만~40만명만 들어도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작은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보통 극장에서 상영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니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피에타>는 김기덕필름이 만들어 지난해 개봉한 <풍산개>의 수익금을 종잣돈 삼아 순제작비 1억5000만원을 충당했다. 당연히 배우와 스태프에게 합당한 출연료와 임금도 줄 수 없었다. 주연배우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수익 지분율을 차등 할당해, 수익이 날 경우 지분율에 맞춰 주기로 했다.
영화 <26년>을 제작중인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 등 일부 작품을 빼면 외국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대부분이 상업자본의 투자를 받지 못한 작품들”이라며 “저예산으로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국내 영화인들의 에너지와 역량을 느낄 수도 있지만, 거기에 투자자들이 힘을 보태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투자·배급하는 영화에 자본과 극장이 몰리고, 작은 영화들은 상영관이 없어 쩔쩔매는 불공정한 상황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황금사자상까지 받은 <피에타>마저 상영관이 적어서 관객들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거나, 주요 시간대에 상영되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몇몇 블록버스터 영화가 스크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나, 극장과 투자·배급을 같이 하는 대기업의 영화들에 상영관이 휩쓸리는 상황들을 국가가 해결해 공정한 기회의 영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평론가는 “미국은 이미 1948년 연방대법원에서 극장을 가진 대기업이 투자·배급까지 하는 수직계열화가 불공정하고 위법이라고 판단한 상태”라며 “영화산업의 부익부 빈익빈을 해소하고 제2, 제3의 김기덕을 키우기 위해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김의석 영진위 위원장은 “<피에타>의 마케팅 비용 7억원 중 4억원을 영진위의 다양성펀드에서 투자 형식으로 지원했다”며 “다양성펀드가 100억원 남짓 조성돼 있는데, 제작비 10억~20억 미만의 저예산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피에타> 수상을 통해 관객들도 예술영화, 작가주의 영화를 좀더 대중적으로 수용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