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저예산영화 흥행하는 계기 되었으면"
[귀국인터뷰]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김기덕 감독
원조교제를 하는 두 소녀와 형사인 아버지의 복수과정을 그린 영화 <사마리아>로 제5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은곰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16일 오전 8시 5분 에어프랑스 264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오후 5시 서울 코리아나 호텔 7층 연회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사마리아>는 원조 교제하던 친구 재영(서민정)의 죽음 이후 몸을 팔게 된 여고생 여진(곽지민)과 아버지(이 얼)가 나누는 화해와 용서를 그리고 있는데, 원죄와 구원의식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낸 영화로,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수상한 후 한국영화로는 두번째 수상 작품이다.
<사마리아>는 5억원의 초저예산으로 보름간 11회 촬영한 작품으로 1장 ' 바수밀라' 2장 '사마리아' 3장 '소나타' 이렇게 세 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국내에서는 3월 12일 개봉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개봉될 때마다 충격적인 소재와 표현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켜, <수취인불명>이나 <나쁜남자> <실제상황>은 영화의 폭력성으로 비판을 받았으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계기로 감독의 영화의 경향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도 환호와 악평은 공존했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에 앞서 "상이라는 것은 번개처럼 번쩍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앞으로 변함없이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라고 하며 "5억 제작비에 배우는 신인이니 어떻게 영화 홍보를 해야 할까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베를린 영화제 수상 덕택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됐고, 영화에 담은 주제를 보여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은 기자회견 내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는데 할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매 질문에 긴 답변을 했다.
다음은 김기덕 감독과 기자들의 일문일답.
- 유럽 언론들의 반응은 어땠나.
"평론가 별점으로 볼 때 23편 중 7위 정도였던 것 같다. <슈피겔>을 비롯해 4개 매체가 쓴 리뷰를 읽어봤는데 호평이든 혹평이든 상관없이 문장이 길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영화의 주제나 이미지, 장면의 연계성 등을 선명하게 해석해 내고 있었다.
한국의 비평은 감독의 태도가 작품에 은근히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신공격성 비평인 경우가 많아 상처받는 감독도 많고 비평가도 많다."
- 심사위원들에게서 어떤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보나.
"유럽에서는 김기덕이라는 감독이 자기 노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는 듯하다. <사마리아>뿐 아니라 이전 작품들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보고 상을 준 것 같다. 심사위원들 중 사미라 마흐말바프나 가브리엘레 살바토레, 댄 탤보트(뉴요커 필름즈 대표) 등이 내게 지지를 보냈다고 들었다. 그분들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해서 이런 독립프로덕션의 영화에 애정이 많았던 것 같다."
- 지난 11일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서 '18세 이상 관람가'가 나왔는데.
"요즘 심의는 예전보다 성숙해 진 것 같다. 관념적인 심의를 한다. <사마리아>의 경우 예전 같으면 목욕하는 짧은 노출 장면 정도밖에 문제될 게 없었겠지만 이번 심의에서는 여고생이 죽은 친구 대신 매춘을 하면서 돈을 돌려준다는 설정이 문제가 된 것 같다.
<사마리아>는 '사회와 우리 아이와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영등위' 가 심의를 재고했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18세 이상 등급으로 상영된다고 미성년자 매춘이 줄고 청소년들이 보호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18세 이상 관람가'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만 재고를 부탁하는 것이다."
- 영화에 성(性)에 대한 표현이 많은 것 같다. 감독의 '성애론'은
"내 영화에 다 포함되어 있다. 다양하게 해석하길 바란다. 어떤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신문은 스포츠 신문의 수준 아닌가 가끔 생각한다. 내재된 생각을 표현하면 반드시 불리하게 된다. 입체적으로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도 평면적으로 보면 범죄가 된다. 만약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면 최근 불거졌던, 신문 전면의 도배 기사들도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 감독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내 영화를 보고 꾸준히 제기받고 있다. 이창동 감독이 만들면 사회를 보는 시선이고 김기덕이 만들면 자신의 얘기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지 않나."
- 이 영화가 하는 작업,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나라에 60만 명의 창녀가 있는데 아버지 처지에서 바라보려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엄마와 아들 관계도 묘하지만 아버지와 딸의 관계도 묘하다는 시각에서 출발, 공범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사회 모두가 공범이다. 이 영화가 논란을 야기하리라고 보는데,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가 이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1부는 친구의 매춘 부분이고 2부는 스스로의 매춘, 3부는 아버지가 매춘을 보는 관점을 다루었다. 즉 1부는 사회, 2부는 자신, 3부는 객관의 눈으로 영화를 표현하였다. 영화가 재미있다거나 재미없다는 표현은 의미 없다.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 왜 성이 등장하는가? 그리고 단기 촬영으로 유명한데 이유는.
"성적인 장면은 90분 중 2-3분도 안된다. 우리 삶 자체가 의, 식, 주, 성이라고 본다. 그래서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내 영화에서 성은 관계의 역할을 한다. 지배 피지배자로 나뉘는데, 이 관계는 이 사회의 에너지이다. 베를린영화제에서 몸의 언어가 있느냐고 질문을 받았는데, 섹스는 바디 랭귀지이다."
- 성적인 표현에 대해 여성 단체의 반발이 예상되는 데 대처방법은.
"비평가들이나 이런 단체들의 조언이 있어서 <봄여름…>이나 <사마리아>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상 받은 영화라고 행여나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의 평론이 조심스러워지면 어떨까 하는 걱정도 있다. 영화제 심사위원 7명이 영화의 가치를 대표할 수 없다. 한국에서 가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로 인한 논쟁은 내 논쟁이 아니다. 옹호하는 사람들과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일 뿐이다. 나는 이미 새 영화 <유리>에 빠져 있다."
- 김기덕 필름의 처음 작품인데 프로덕션을 만들어 작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독립프로덕션 차린 것은 늦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다가 자금이 마를 수도, 흥행이 안될 수도 있고 영화관이 창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효과적 제작이 가능한 1인 시스템을 위해 프로덕션을 만들었다. 1억 미만의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다. 편집기를 구축하고 카메라, 렌즈를 하나씩 구비하려고 한다. 제작비에 비례되는 제작물이라는 편견을 벗어나야 한다. 영화는 돈으로 찍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 같다. 시상식에도 모자를 쓴 모습이 다른 수상자들에 비해 이색적이었다. 이유는.
"시상대에서의 모습이 꼭 슈퍼마켓 가는 복장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모르겠다. 그냥 버릇이 돼서 그런 것 같다. 계속 모자를 쓰고 있으니 이제는 눈 밑의 그늘이 없으면 허전하고 모자를 벗으면 발가벗은 느낌이 든다. 혼자 있을 때는 벗는다."
-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는지.
"<수취인불명> <섬> <나쁜남자> <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이후 상 받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느낌이 온다. 기승전결 구조보다 마지막 화해를 이끌어 낸 것이 상을 주고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 새 영화 <유리>는 어떤 영화인가.
"유럽사회에서 절망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유럽의 수많은 입양아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 유럽 언론에서 논쟁 가능한 영화가 될 것 같다. 꼭 이 영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 자본은 쓰지 않겠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은.
"<사마리아>에서 1장 '바수밀다'와 2장 '사마리아' 에서는 끔찍함을 맛보고, 3장 '소나타'는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한국의 많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가 보았으면 좋겠다. 한국사회의 증상에 관한 영화다. 마음의 양보와 이해가 필요함을 담고 있다. 흥행이 안될 것이라고 믿지만 마음 전할 기회 준 것 고맙다. 운명적으로 한국의 저예산영화가 흥행하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2004/02/17 오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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