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맨유를 제압하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한 바르셀로나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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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승자가 된다는 것, 그것도 상대가 경기 후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확실하고도 압도적인 승리로 그 자격을 얻는다는 건 세상에서 누리기 가장 힘든 가치일 테다. FC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이 그 가치를 누리고 있는 현존 최고의 팀임을 29일 새벽(한국 시간) 축구의 성지 웸블리에서 열린 2010/2011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증명해 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1-3 패배라는 결과에 대해 억울하거나 인정할 수 없다는 항변조차 할 수 없는 확연한 차이. 바르셀로나가 보여준 것은 축구의 진수이자 강력함의 매혹이었다. 스페인에서 날아온 바르셀로나 팬들이 경기 전 들어 보였던 ‘We love football’이라는 피켓에는 결과는 기본이오, 과정조차 완벽한 자신들의 축구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맨유가 90분 동안 보여준 것은 축구의 투지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었다. 객관적 전력 차가 무조건 결과의 우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축구와 스포츠의 진리를 믿으며 저항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에서 당한 2년 전보다 더 확실한 격차의 패배를 경험했다.
예상대로 전개된 경기였고, 결과도 대부분이 관측한 데서 벗어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결승전에서 올 시즌 가장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반면 올 시즌 결승전에 올라오기까지 챔피언스리그 12경기에서 단 4골만 허용했던 맨유는 이날 90분 동안에만 3골을 내줬다. 결승전에서, 올 시즌 가장 단단한 조직력을 보여준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맨유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빅이어를 들어올린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이 역대 최고의 팀이라는 역사와 경쟁에 돌입했음을 선포했다.
퍼거슨 감독은 예상 외의 對바르셀로나전 정공법을 택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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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지 못한 퍼거슨의 선택
맨유는 바르셀로나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플랜B를 꺼내 들지 않았다. 최근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베스트 조합을 꺼내 들었다. 대부분의 전문가와 언론들이 예상했던 라인업이었다. 이상한 것은 대응 전략조차 특별한 게 없었다는 사실이다. 메시에 대한 적극적인 체킹과 협력 수비를 통한 봉쇄, 최전방 공격수인 루니마저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대(對)바르셀로나전의 정공법을 택했다. 박지성을 비롯한 맨유의 모든 필드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상대를 제어하는 데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는 전반에 7대3의 점유율과 슈팅 수 11대 3의 압도적 차이를 보여줬다.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이 늘 그렇듯 맨유 역시 메시를 막으려다 다른 데서 구멍이 났다. 전반 27분 맨유 수비진의 시선이 메시와 비야에 머무는 사이 챠비의 완벽한 오른발 아웃사이드 침투 패스가 공간으로 파고 든 페드로에게 향했다. 침착한 볼 터치에 이은 페드로의 오른발 슛은 사력을 다해 몸을 날린 비디치의 긴 다리를 피해 맨유의 골망을 흔들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완승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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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이 없어 이상했던 맨유와 달리 오히려 대응책이 빛난 것은 바르셀로나 쪽이었다. 공격에서 실패하자마자 보여준 즉각적인 프레싱 작업은 맨유의 장기인 빠른 스피드의 역습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 공의 소유권을 뺏은 바르셀로나는 그대로 반격해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날 맨유 선수들은 공격 작업에서 세, 네 차례 이상 패스가 연결되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가장 많은 패스를 시도했고 성공한 선수가 수비수 퍼디난드라는 사실이 이 상황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맨유는 긱스의 왼발 킥과 비디치, 퍼디난드의 제공력을 살릴 수 있는 세트피스 전술에 기대를 걸었지만 단 하나의 코너킥도 얻지 못했다. 바르셀로나가 공수 모두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했다는 증거다.
맨유는 한번의 찬스에서 강팀다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한껏 가드를 올리고 바르셀로나의 난타를 막던 맨유는 전반 34분 루니를 앞세워 카운터 한방을 먹였다. 이날 맨유의 공격 작업 중 가장 깔끔했고 위협적이었던 유일한 유효슈팅이었다. 엄밀히 말해서는 루니 혼자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골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도전적이거나 창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보수적이고 전형적인 선택을 했고 루니 덕분에 전반엔 1-1이라는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반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맨유가 후반을 버텨낼 수 있을 지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바르셀로나의 맹공을 견디기엔 맨유의 내구성엔 한계가 있었다.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인 메시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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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 없는 메시와 바르사의 특별함
후반 시작 후 맨유가 이 상황을 버티는 것은 불과 9분에 불과했다. 후반의 패턴은 전반과 다를 바 없었고 바르셀로나는 보다 날카롭고 완벽한 공격 작업으로 맨유를 철저히 무너트렸다. 후반 9분 나온 메시의 결승골 장면을 음미해보자. 이니에스타와 챠비가 주고 받던 패스를 건네 받은 메시는 두려워하지 않고 아크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 재빠른 왼발 슛을 날렸다. 마치 농구에서 가드가 주고 받던 패스를 넘겨 받은 선수가 상대 수비 안으로 드리블로 파고 들어 골을 터트리는 아이솔레이션 플레이를 보는 듯 했다. 당시 메시에겐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는 에브라, 비디치, 퍼디난드가 만든 삼각형 존에 2미터 정도의 공간과 2초 정도의 자유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 번의 터치에 이은 왼발 중거리 슛으로 그것을 깨트렸다.
메시는 50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의 봉쇄를 뚫어 낸 데 대한 카타르시스를 격렬한 환호와 세레머니로 표현했다. 맨유는 레알 마드리드와 주제 무리뉴가 택했던 것처럼 거칠게 메시를 제어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됐다. 바르셀로나의 세 번째 골 장면에서도 맨유 수비를 무너트리는 메시의 움직임은 환상적이었다. 측면으로 이동해 나니와 에브라를 놀라운 가속력의 드리블로 제쳐낸 뒤 퍼디난드를 피해 패스를 줬다. 결과적으로는 나니의 수비 집중력 상실로 벌어진 상황에서 비야가 사각을 노리는 완벽한 오른발 감아차기로 골을 만들었지만 메시의 드리블에 이미 맨유 수비는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져 있었다.
찰나의 순간, 2미터의 간격만 있으면 골을 터트릴 수 있는 메시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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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초의 시간적 여유면 얼마든지 상대를 무너트릴 수 있는 게 올 시즌 바르사가 보여준 일관된 경기력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코파델레이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전반에 바르셀로나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간과 공간을 완벽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비야의 골이 터진 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 있던 것은 여전히 열정이 남아도는 과르디올라 감독 뿐이었다. 백전노장 퍼거슨 감독은 이미 다가 올 결과와 운명에 순응한 모습이었다. 바르셀로나는 후반 막판 긴 시간 팀을 지켜 온 케이타와 푸욜을 교체 투입하며 우승 확정 순간의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해줬다. 빅이어를 들어올리는 최초의 순간을 푸욜이 아닌, 간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돌아온 아비달에게 준 것은 그들이 90분에 집중하며서도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 심적 여유가 있음을 보여줬다.
세계 축구가 바르셀로나의 시대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결승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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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의 압박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승리할 수 있다는 데서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특별함을 느낀다. 맨유가 철저한 조연에 머무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시대다. 그리고 메시의 시대기도 하다. 챠비와 이니에스타라는 역대 최고에 뽑혀도 손색 없을 선수들을 자신의 그림자 아래에 둘 수 있는 재능. 우승 메달을 전달받은 뒤 빅이어를 독점하며 그라운드로 내려가는 그를 누구도 저지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모습. 저 특별한 팀에서도 메시는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유럽축구는 대한민국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슬픔도 모두 이해한 새벽이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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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대한민국의 일상을 지배하다
어쩌면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은 경기와 결과는 특별할 게 없다. 이 경기를 지켜 본 우리에게 의미 있었던 것은 그 시간이었다. 유럽 축구는 수년 전만 해도 철저한 음지의 마니아 문화였다. 그런 유럽축구가 대한민국의 주말 새벽을 점령하고 대화의 화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은 축구의 문화적, 산업적 변화를 얘기한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그리고 대형 포털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어렵지 않게 이 경기에 접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수의 즐길거리였던 유럽축구가 평범하고 대중적인 즐길거리가 됐다는 변화의 가장 큰 증거다.
메시가 왜 월드컵을 정복하지 못했음에도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지, 바르셀로나가 왜 고작 공놀이에 불과한 축구에 아름답다는 표현을 당당히 붙이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 당당하고 거침이 없던 퍼거슨 감독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짓고 있는 허탈한 표정을, 사력을 다하며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에 임한 골키퍼 판 데르 사르를 우리는 지켜보았다. 맨유를 응원했다면 허무할 것이고, 바르셀로나를 응원했다면 흥분했을, 그 누구를 응원하지 않았다 해도 만족스러웠을 90분의 경기가 끝났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챔피언스리그도 올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시즌에 벌어질 새로운 은하영웅전설을 기다린다. 빅이어를 당당히 들기 위한 박지성의 3전 4기를, 이제는 펠레,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와 경쟁할 메시의 더 대단할 플레이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