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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시즈

마/ㅏ 2007. 2. 8. 18:27 Posted by 로드365



마틴 스코시즈를 만나다 (시네21) -이현승 감독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한국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올드보이>와 <나쁜 남자>를 스탭들과 함께 보며 영화 스타일에 관해 의논하고, <질투는 나의 힘>을 좋아하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자막 번역이 잘된 35mm 필름으로 꼭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지지 서한을 한국영화감독조합으로 보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현승 감독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지지 서한을 보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신작 <디파티드>의 편집에 한창인 스코시즈 감독을 찾았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진오 감독의 통역 속에 이루어진 만남은 스코시즈 감독은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들에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냈고,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인 <디파티드>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월13일, 이현승 감독이 뉴욕 맨해튼에 자리한 미국감독협회(DGA: Directors Guild of America) 건물 안의 한층을 사용 중인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한국영화감독조합의 대표 자격으로 마틴 스코시즈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지지 서한을 한국영화감독조합으로 보낸 것에 대한 답방이었다. 마틴 스코시즈는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인 <디파티드>(The Departed)의 편집작업에 한창이었다. 이현승 감독이 마틴 스코시즈를 위해 준비한 많은 한국영화 DVD와 선물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대화는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의 힘은 다양성”

이현승: 스크린쿼터 문제에 관해 한국 영화계를 지지해주신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감독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감독님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아, 별 말씀을요, 감사합니다.

이현승: 감독님 말씀처럼 저도 문화교류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께서 보내주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지지 글이 실린 한국의 영화잡지(<씨네21>)를 가져왔습니다. (잡지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기사를 읽어주다가 마지막 구절을 말해주며) 이 구절을 보면 (웃음) “어쩌면 한국의 대통령보다 미국의 감독, 마틴 스코시즈가 한국 영화계와 영화를 더욱 사랑하고 지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틴 스코시즈: (크게 웃음)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한국영화가 아주 독창적이고 힘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제게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새로움과 독특함을 느낍니다. 저는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는데, 한국영화에서 접하는 새로운 문화, 종교,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양식, 관계 등을 통해 제 정체성에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갱영화인 <디파티드>를 만들고 있는데,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를 보게 되었는데 제게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너무나 독창적인 영화였죠. 상당히 거칠고 위험하기까지 한 영화죠. (웃음) 날것의 느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의 위험성. 제 영화 스탭들에게 <나쁜 남자>를 보여줬어요. <올드보이>도 스탭들에게 보여줬는데, <나쁜 남자>와 <올드보이>는 굉장히 다른 영화들이지요. <올드보이>가 거대한 오페라 같다면 <나쁜 남자>는 아주 기이한 세계를 보여주는, 묘하고 이상하기까지 한 영화입니다. 그것이 <나쁜 남자>의 힘입니다. 어떤 영화가 더 좋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영화의 힘은 바로 다양성에 있다는 겁니다. 영화의 스타일과 내용이 저마다 확연히 다르고 독특하게 구별된다는 점이 강점이지요. 저는 제법 오랜 세월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영화를 보고 쉽게 감동받거나 흥분하지 않지요. (크게 웃음) 좋은 영화를 보면, “또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영감을 받기 때문이죠. 그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말에 김기덕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수취인불명>을 보았습니다. (진지한 표정을 잠시 짓다가 장난기 있게 한숨을 내쉬며 웃는다) 정말, 거칠고 묘한 영화였어요, 역시. (웃음)

한 가지 중요한 얘기를 할게요. 저도 어느새 63살입니다. 더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지요. 저를 흥분시키지 않거나 영감을 주지 않는 영화들을 보며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20분 정도 보다가 아무런 영감을 받지 못하면 더이상 보지 않습니다. 한국영화를 보면 “나도 어서 빨리 영화를 만들어야지” 하는 자극과 영감을 받아요. 이제는 만드는 작품마다 힘있는 좋은 작품이거나 독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객으로서도 약간은 이기적이 되는 겁니다. 뭔가 제게 도움을 주는 영화만 볼 가치가 있다는 의미에서의 이기심이 작동합니다.

“젊은 영화인이여, 영화에 더 애정을!”

많은 DVD들 중 한편을 유심히 보는 스코시즈. 그 DVD 케이스 위에 붙여진 짧은 메모를 진지하게 읽고 있다.

마틴 스코시즈: (장윤철 감독이 말아톤 DVD에 써놓은 메모를 읽던 중 웃음을 띠며 한 구절을 소리내어 읽는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웃으며) 좋지요, 근데 나도 한번도 못 받았어요. (자리에 앉으며) 저는 매주 일요일 집에서 큰 스크린으로 DVD를 봅니다. 한국영화도 많이 보게 되었죠. 이곳 감독협회 건물 안 사무실에서보다 집중해서 볼 수 있죠. (테이블 위에 놓인 풍성한 한국영화 DVD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아, 이 작품(<장화, 홍련>) 봤어요.

이현승: 동료 감독들이 직접 사인한 DVD들도 있고, 또 바빠서 못 만난 감독들의 작품들은 제가 직접 사왔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아, 그래요, 정말 고마워요. (계속해서 DVD들을 살펴보며) 이 작품, 정말 좋아요, 정말 좋아요. (<바람난 가족>을 지목하며), 임상수 감독 맞지요? (생각하며) 대통령 저격하는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던가, <그때 그사람들> 맞지요?

이현승: 예. <그때 그사람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마틴 스코시즈: <바람난 가족>과 <그때 그사람들>은 각각 두번씩 봤어요. 아주 좋았어요. <그때 그사람들>은 제 아내에게도 보여줬어요. 또 제 편집자에게 보여주며 편집 스타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요. 개인적으로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을 가장 좋아해요. 아름다운 영화라 두세번 보았죠. 아주 힘이 있는 영화예요. <질투는 나의 힘>이 박찬옥 감독의 데뷔작인가요?

이현승: 예.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보셨나요?

마틴 스코시즈: 아주 힘있는 영화들이에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도 모두 봤어요. 그런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불행히 미국에 수입된 DVD의 영문자막 번역이 잘된 것 같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번역 때문에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안타깝더군요. 소위 쉬운 영화가 아닌데,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자막으로 보니 영화에 빠져들지 못하고 어느 순간 자막을 이해하려고 애쓰게 되더군요. (웃음) 그래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기회가 닿으면 꼭 35mm 프린트로 보고 싶어요.

테이블 위에 놓인 DVD들을 계속 살펴보는 마틴 스코시즈. 이윽고, 그의 손길이 한 DVD 위에 닿자, 이현승 감독이 말을 건넨다.

이현승: (웃음) 그 작품, <너는 내 운명>의 감독은 통역하고 있는 박진오 감독과 형제관계입니다.

마틴 스코시즈: 형제? 오, 좋아요. (크게 웃으며 <너는 내 운명>의 DVD 위에 ‘Brother’라고 적는 마틴 스코시즈)

이현승: (테이블 위 많은 DVD들 중 <용서받지 못한 자>를 지목하며) 그 작품은 제 (중앙대) 제자가 만든 저예산영화로, 한국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그래요?

이현승: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죠.

마틴 스코시즈: 훌륭해요. (진지하게)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미국 관객은 다른 문화, 다양한 다른 스타일의 영화들을 즐기는 것 같아요. 아시아권 영화들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접하죠. 한국영화는 미국과 매우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통로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현재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에 관한 한국 영화계와 정부의 마찰이 걱정됩니다. 한국의 영화와 문화에 대한 보호는 물론이고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해 더 많은 미국영화들만 상영되는 상황이 닥치면 어쩌나 하는 겁니다. 다양한 나라들의 다양한 영화들도 아닌 미국의 영화들만이 상영된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이지요. 전 미국인이고 미국에서 영화를 만듭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학교를 다닐 때(그땐 뉴욕대의 티시 예술 단과대가 아니라 아주 작은 규모의 워싱턴 스퀘어 단과대학으로 불렸죠) 제게 가장 중요했던 건, 다른 문화권의 영화들을 다양하게 접하는 거였어요. 다양한 문화적 경험은 제게 중요했을 뿐 아니라 미국에 필요한 겁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지요.

사람으로서, 영화인으로서, 예술인으로서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을 항상 반추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국 고유의 문화를 끊임없이 재창조할 수 있지요. 아시아영화들은 미국의 독립영화권과 거대한 할리우드 상업영화권이라는 상반되는 양쪽에 영감을 주었어요. 예를 들어, 최근 한국영화들이 미국 영화계에 주는 창조적 영감 혹은 영향을 할리우드 상업영화권에서 살펴볼까요? 바로 리메이크의 유행입니다. (웃음) 거대한 자본으로 할리우드는 아시아, 한국영화들을 다시 만듭니다. 독립영화권은 어떨까요. 바로 뉴욕, 샌프란시스코, LA 등지의 젊은 영화인들이 아시아영화에서 창조적 에너지를 공급받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문화권의 다양한 영화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배우고, 영감을 얻는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경험들에서 자신들을 돌아보고, 자신들의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아시아권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더 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접한 외국영화들은 서유럽과 동유럽 위주였죠. 아시아영화를 접하기는 매우 힘들었어요.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정도가 고작이었어요. 이후 일본영화의 상징적 감독들인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아시아영화는 드물었어요. 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중국영화들이 조금씩 알려졌지요. 박찬욱 감독을 만났을 때, 한국의 많은 고전영화들이 유실되었다는 안타까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현승: 고전영화의 유실은 한국 영화계에서도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마틴 스코시즈: 중국영화들도 마찬가지라 들었는데, 저는 젊은 영화인들이 영화에 더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영화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만 해도, 영화사라고 하면 약간의 독일영화, 1920년대 러시아영화 정도였습니다. 미국 무성영화의 경우 전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1960년대에는 무성영화를 영사하는 온전한 기술이 없었으니까요. 대부분의 무성영화들이 유실되어버린 게 현실이었고. 결국 당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은 영화의 역사를 배울 때 약간의 미국영화, 약간의 영국영화, 약간의 이탈리아영화… 그렇게 1930년에서 1960년 사이의 영화 역사를 공부한 셈이죠. 그러면서 조금씩 일본영화를 기점으로 아시아영화를 접했어요. 그런데 지금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100년 가까운 영화사를 접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영화를 좀더 쉽게 접함은 물론이고 많은 옛 무성영화들이 복원되었고, 복원된 작품들이 영사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약 90%의 무성영화들이 사라졌습니다만. 지금의 영화과 학생들은 복원된 무성영화들과 아시아와 남미영화들, 70년대의 독일영화들, 남아프리카권 영화 등을 애정을 갖고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는 극장만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였지만(웃음), 지금은 DVD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접할 수 있지요. 제가 다양한 문화권의 영화들에 대한 애정, 영화 역사에 대한 근본적 애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의 아시아영화들, 특히 한국영화의 힘을 얘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한국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의 자국 문화 보호는 물론, 진정한 문화다양성, 더 나아가 최근 한국영화들이 보여주는 독톡한 힘과 에너지, 또 그것이 다른 나라의 젊은 영화인들에게 끼치는 긍정적 영향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한국 정부가 바람직한 판단을 내리기를 희망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중요하다”

이현승: 어떤 구체적인 계기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마틴 스코시즈: (고개를 숙여 아주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곧 고개를 들고 다소 힘차게) 일단, 제목. (의미심장하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정말 독특합니다. (크게 웃음) 그리고 언젠가 선댄스 채널에서 본 영화인데 음식이 나오고….

이현승: <301·302>.

마틴 스코시즈: 예, <301·302>. 정말 놀라운 영화였어요.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인물들의 독특한 행동, 관계 그리고 편집 등 매우 생소하면서도 독특한 영화였어요. <301·302> 속 인물 묘사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제겐 너무나 새로웠고, 독특한 체험이었어요. 한번도 보지 못한 세상을 보게 했다고 할까요. 특히 <질투는 나의 힘>이 갖고 있는 독특한 힘과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진실로 독창적이고 집중을 요한다는 것. 이런 영화들은 감정적, 심리적으로 관객의 정서를 크게 자극합니다.

이현승: 감독님의 경우 뉴요커인 동시에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갖고 계신데, 지역적 의미에서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마틴 스코시즈: 의심할 여지없이 저는 이탈리아영화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TV에서 방영하는 이탈리아영화들을 5살 때부터 보기 시작했지요. 1945년경부터 금요일마다 이탈리아영화들을 방영해주는 채널이 있었는데,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들이나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방영해주었어요. 당시 뉴욕에는 지역적으로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육체적 의미로서 제 정체성의 뿌리는 아주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자라면서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지요. 저는 미국인이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제가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무조건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했고, 현재 이탈리아의 문화·정치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기 때문이지요. 또한,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물론 지금은 심히 의심스럽지만, 불행히도. (일동 크게 웃음) 어쨌든 이탈리아의 문화적인 면은 영화를 통해 많이 배우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밀감이 생긴 거죠. 영화를 통해. 하지만 결론적으로 저는 미국인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뉴요커입니다. 맨해튼을 중심으로 한 뉴욕은 굉장히 상징적인 곳입니다. 미국 안에 있지만, 미국 안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구별되는 곳이지요. 수많은 다양한 인종과 이민족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 다양한 이민족들이 항상 긍정적으로 어울려 사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다양성이 강점이 되는 곳. 미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도시입니다. 개인이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고 다른 이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자유의 도시.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 이탈리아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표현보다 휴머니즘, 그러니까 인본주의라는 표현이 좋아요. 사람을 위한, 사람 자체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애정.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박진오 감독: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무척 젊어 보이십니다. (일동, 특히 스코시즈 크게 웃음)

마틴 스코시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제가 만들 수는 없지만, 어린 나이부터 무의식, 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휴머니즘적인 사고가 제 의식에 살아 있기를 희망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영화들을 통해 인간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표출해내는 것이 제 희망이고, 계속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상류층 가정에서 자랐다면, 만일 내가 자랄 때 집에 책이 많았다면, 내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교육을 많이 받으신 분들이었다면, 1960년대 대학 재학 시절에 보았던 프랑스의 지적인 영화들을,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와 같은 감독들을 더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보다는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더 선호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서민층 출신이셨고, 교육도 많이 못 받으셨고 또 책보다는 TV와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이었죠. 저도 그 영향으로 TV와 영화를 많이 접했던 거죠. 프랑스영화에서 스타일과 지성을 배웠지만, 제 마음은 지상에 가까운,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시카의 이탈리아 영화감독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요.

“디지털영화의 부상에 주목한다”

이현승: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과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의 긍정적 반응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 그리고 세계영화의 흐름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한말씀 해주시지요.

마틴 스코시즈: 저는 영화라는 매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입니다. 젊은 세대의 영화에 대한 도전은 제게 일종의 설렘마저 줍니다. 테크놀로지의 혁명이랄 수 있는 디지털의 발견과 발전이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반기든 그렇지 않든, 젊은 세대들은 손에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만듭니다. 젊은 세대에게 정열이 있다면, 자본의 압력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자본을 비롯한 여러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최악의 경우, 디지털로 간다”라는 신념으로 영화를 만드는 거죠. 자본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유를 품고 말이지요. 디지털로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은 이야기가 중요하고, 동시에 영상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본질은 동일한 것이니까요. 특정 나라나 문화권에서 정치·경제적 압력이 있더라도, 디지털이라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좀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 점이 세계영화의 흐름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음을 저는 느낍니다.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올 칸영화제나 그 몇 개월 뒤에 발표할 국제영화재단(International Film Foundation)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군요. 이 재단은 제3세계권의 영화들, 알려지지 못하고 상실된 제3세계권 영화들을 재발굴하고 복원시키고자 합니다. 첫 작품은 에티오피아의 1970년 영화 <하베스트>(Harvest)입니다. 흑백 16mm리 작품이지요. 미국과 영국에서는 오래된 영화들의 복원에 관심이 일고 있고, 프랑스도 관여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문화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상호교류입니다. 또 중요한 점은 이 세상에서 특정 문화권이 ‘제3세계’라 불리는 이 이상하고도 비극적인 현실이 없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왜 제3세계입니까?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크게 웃음) 왜 숫자로 문화를 규정하냐는 말이지요. 사람들이 다른 다양한 세계의 영화들을 보고 다른 문화를 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는 모든 이들의 공유물이니까요. 한국영화의 경우, 오래된 옛 한국영화들의 복원이 중요합니다. 전 오래된 예전의 한국영화들도 보고 싶습니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디파티드>는 ‘스코시즈 버전’의 <무간도>”

이현승: 현재 제작 중인 <디파티드>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지요.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 작품이지요?

마틴 스코시즈: (웃음) 그래요. 우선 <디파티드>는 갱영화입니다. 일단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상반된 두 인물을 축으로 한 이야기. 물론, 제가 만드는 영화는 홍콩영화 스타일과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빠르고 스타일리시한 원작과는 다를 것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우선, 영화 속 인물들에 좀더 깊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미국 갱을 다룹니다. 제가 바라보는, 저만의 버전이 될 것이기 때문에, 원작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왕가위 감독을 위시한 홍콩영화들과는 아주 다른 영화가 나올 것 같아요. 제 전작들처럼 이 영화 역시 철저히 인물 중심입니다. 그리고 <디파티드>는 본질적으로 ‘거짓(말)’에 관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 인물들이 서로 속고 속입니다. 거짓된 관계 때문에 모두 비극적 결말, 죽음을 맞게 됩니다. 신뢰와 배신에 관한 이야기죠. 전 이 점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에 관련된 인종 차별주의 대목도 있지요. <무간도>에서 아이디어만 얻어오고 더 스케일이 큰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크게 웃음) 물론 <무간도>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지요.

이현승: 저도 사실 <강호>라는 홍콩 갱영화의 한국 버전을 만들 계획인데, 많이 고민 중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주로 여성적이고 섬세한 멜로드라마적인 영화들을 세편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스타일적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어 어떻게 제 스타일로 녹여낼지, 동시에 한국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등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감독님의 경우도 역시 표면적으로는 갱영화지만, 내부적으로는 인물 중심의, 사람과 관계에 대한 영화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를 포함한 한국의 대다수 젊은 감독들이 감독님의 영화, 특히 <택시 드라이버> <비열한 거리> <분노의 주먹>을 보며 공부했고, 또 그러한 감독님의 작품들을 접하며 미국에도 상업적인 할리우드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마틴 스코시즈: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이번 제 작품의 경우, 저도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인물 위주의 영화이다보니 바로 그 점이 이야기를 방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겁니다. 단적으로 말해 캐릭터들의 묘사가 플롯을 거스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저는 갱영화를 많이 만들어왔는데, 전작 <갱스 오브 뉴욕>도 마찬가지였지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중요했으니까요. 그때도 제 고민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내는가였는데 그것이 이야기를 방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갈등했어요. 결론적으로 저는 플롯 중심의 영화를 만드는 것 같지는 않아요. (크게 웃음) 그런데 어떤 홍콩영화를 리메이크합니까?

이현승: <강호>라는 영화인데,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영화가 좋아서 고려하게 되었지요.

마틴 스코시즈: 지금 이 감독님의 작품 <시월애>가 <일 마레(Lake Hous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어 6월 개봉을 앞두고 있지요. 제 생각에 이 감독님은 멜로드라마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아직 젊으니까, 남아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아무튼 제 생각에는 이 감독님이 그 홍콩 갱영화를 만드실때, 이 감독님이 갖고 있는 자신의 고유한 개성, 그러니까 멜로적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갱영화의 요소와 멜로적 요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가 아주 흥미로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감독님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멜로적 갱스터 또는 스릴러영화 말입니다.

“문화 교류가 해답이다”

이현승: 말씀 감사합니다. 리메이크 작업도 잘 이루어진다면 서로 다른 문화권끼리의 교류와 소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오늘 감독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느꼈습니다. 저 또한, 감독님이 말씀하셨듯이 특정 나라나 문화권의 영화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경우는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린쿼터 문제도 우리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지키자는 점도 있지만 다양한 문화, 영화를 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오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환기하게 됩니다. 혹시 앞으로 문화 교류적 측면에서 감독님께서 가까운 미래에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디파티드>
<디파티드>

마틴 스코시즈: 물론이죠. (웃음) 저도 문화 교류라는 면에 동의해요. 비록 홍콩영화에 기초하고 있지만, 제 영화는 많이 다를 겁니다. 그들의 장점을 받아들여 우리만의 새로운 언어를 재창조해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죠. 참고로, <디파티드>는 매우 스케일이 크고, 걱정도 많이 됩니다. 언제까지 할리우드에서 이렇게 대자본을 들이면서 인물 묘사 중심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이번 영화에는 스타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러다보니 자본이 너무 많이 들어갔습니다. 위험하지요. 과연 제 모험과 도전이 이 비싼 영화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만들 이야기와 주제를 택하는 것도 더욱 조심스러워지지요. 어쨌든 한국영화들을 제가 좋아하고, 또 제게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에 리메이크를 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단순히 ‘리메이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리메이크’가 아니라, 사실, ‘누구 누구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표현하고 인식하고 싶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의 경우가 좋은 예이지요. 많은 다른 버전의 영화들이 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나올 수도 있고, 그 작품 또한 다른 문화권에서 창조적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작품은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고 그 감독의 고유한 버전인 셈이죠(참고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은 에드 맥베인이 쓴 스릴러 소설 <King’s Ransom>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현승: 저도 공감합니다. 그리고 제가 LA의 미국감독협회(DGA)를 방문했을 때, 문화 교류의 차원에서 한국 감독들의 영화를 초청 상영하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혹시 한국 감독들이 감독님을 한국으로 초청하면 와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군요.

마틴 스코시즈: 아, 물론이죠. 언젠가 꼭 그럴 수 있으리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여행 다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아내와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지요. 하지만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계획하는 사이에 저는 여행이나 개인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아시아권에서 제 작품을 홍보할 기회가 생기면 한국을 방문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비행기 타는 것을 그리 안 좋아합니다. (일동, 특히 스코시즈, 크게 웃음) 어쨌든 감사드리고, 또 더 많은 한국영화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이현승: 지난해 한국에서도 영화감독 조합을 결성했는데, 앞으로 혹시 감독님이 한국에 오시고 싶으면, 제게 꼭 연락을 주십시오. 저희 감독들이 직접 돈을 모아서 (일동 웃음) 감독님을 초대하겠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마틴 스코시즈: 감사합니다. 앞으로 1년에서 2년 사이에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편집을 상당히 오래 하는 편이에요. 지금도 저는 꼼짝없이 편집에 매달려 있는데, <에비에이터>나 <갱스 오브 뉴욕> 때는 편집기간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었습니다. <디파티드>의 편집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데 정말 오래 걸리네요. 제작사와 배급사에서는 빨리 끝내라고 독촉이고. 사실, 오늘도 조금 있다가 제작사에서 보러 옵니다. (웃음) 무얼 어떻게 잘라내야 할지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이현승 감독을 바라보며) 이 감독님이 와서 편집해줄래요? (일동, 특히 스코시즈 크게 웃음)

이현승: 다시 한번,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좋은 시간 내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틴 스코시즈: 감사합니다. 참, 여기 자료실에 영화들이 많은데 뭐 갖고 싶으신 작품들 있으면 얘기해요, 뭐든지. 꽤 많거든요.

이현승: (잠시 생각에 잠기며) <택시 드라이버>에 직접 사인을 해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크게 웃음) 물론이죠. 그 영화는 폴 슈레이더의 각본이 정말 훌륭했죠. 드 니로(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도 훌륭했고요. 그리고 제 변호사에게 들은 건데, 얼마 전 어떤 설문조사에서 지난 3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화로 <택시 드라이버>가 뽑혔다더군요.

이현승: 한국의 다른 많은 감독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택시 드라이버>를 보면서 영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웃으며) 감사합니다.

이현승 감독이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게 한국에서 갖고 온 영화와 선물들을 전했고,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직접 사인한 <택시 드라이버> DVD를 이현승 감독에게 전해주며 약 2시간에 걸친 뜻깊은 대화를 마감했다. 사진 촬영을 한 뒤, 두 사람은 편집실에 들렀고, 스코시즈 감독은 자신의 지난 작품들의 검열에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다. 편집실에 걸려 있는 많은 사진들(많은 배우들 및 감독들, 특히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감독들 중 한 사람인 존 카사베츠 감독과의 사진)을 일일이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그의 얼굴에는 지난 세월을 잠시, 아주 잠시 회상하는 설렘이 가득했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정열과 지식에 대한 목마름은 그에게 있어 분명, 여전히 진행형인 듯하다.




마틴 스코시즈의 작품세계

2006.11.28

마틴 스코시즈의 새 영화 <디파티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에비에이터>를 통해 미국의 이카루스, 하워드 휴스의 흥망성쇠를 고풍스럽게 그려냈던 그가 거짓과 세속이 판치는 거리로 다시 나선 것이다. 제작 발표부터 홍콩영화 <무간도>를 스코시즈가 어떻게 리메이크할 것인지 말들이 많았다. 드디어 실체를 확인해볼 때가 온 셈이다. 우리는 <디파티드>가 영화의 화신 스코시즈가 건너는 어떤 징검다리라고 생각한다. <디파티드>를 계기로 그의 영화를 이리저리 이야기해보고, <무간도>와는 또 어떤 차이를 갖는지 짐작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덧붙여, <디파티드>에 관한 마틴 스코시즈, 잭 니콜슨의 인터뷰를 실었고, 그가 영화사의 어디쯤에서 영감과 참조를 얻는지 흔적도 살핀다. 스코시즈가 불같은 열정으로 영화를 만드는 한, 그와 그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네버 엔딩 마틴 스코시즈 스토리를 지금 시작하려고 한다.

1942년 이후 미국은 신부(a priest) 하나를 잃은 대신 영화감독 하나를 얻었다. 그가 독실한 성직자가 됐을 거라고 장담하긴 힘들어도 대단한 창작자가 됐다고 말하는 건 실언이 아니다. 그가 마틴 스코시즈다. 스코시즈가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았던 선배감독 마이클 파웰은 1988년 스코시즈를 위한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가 거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누가 거장이 되리라는 것은 알 수 있다”고 예언처럼 썼다. 이미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같은 걸작이 나온 뒤의 찬사지만, 그 뒤로도 거기에 견줄 만한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가 나왔으니 그건 동시에 예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과장할 생각이 없다. 스코시즈의 신작 <디파티드>가 파웰의 찬사를 입증하는 또 한편의 작품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디파티드>는 그의 다른 걸작들과 비교할 때 다소 격차가 있다. 하지만 스코시즈가 다시 현대의 거리로 나가 나락에 빠진 갱들의 세계에 천착했고, 그것이 홍콩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라는 명목 아래 크게 탈바꿈해 탄생한 것이란 사실만으로도 이야기의 실마리는 충분히 흥미로울 것 같다. 자, 여기까지가 오프닝이다. 스코시즈가 영화 속에서 그의 인물을 기술할 때 자주 그러하듯 우리도 뒤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보자.

스코시즈 바이블 제1장 제1절 "내 전 생애는 영화고, 종교다"

스코시즈는 영화학교 1세대에 속한다. 약간의 나이차가 있지만,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폴 슈레이더,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스코시즈의 영화 친구들이었고, 그 세대는 함께 ‘영화 악동들’(Movie Brats)이라고 불렸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감독 일은 싫어하는 조지 루카스(스코시즈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시리즈로 돌아오기 전까지 연출 일선에서 오랫동안 물러나 있었다. <드라큐라>를 마지막으로 코폴라는 15년 넘게 변변치 못한 작품 몇편을 만들어내며 지금도 침묵 중이다. 취향은 같지만 연출 능력으로 치면 스코시즈보다는 한수 아래인 폴 슈레이더는 감독보다 각본가로 더 명망을 쌓아갔다. 그리고 친하기는 해도 만날 때마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번번이 확인하게 되는 스필버그(역시 스코시즈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대가가 되어갔다. 그동안 스코시즈는 브라이언 드 팔마와 함께 엎치락뒤치락 꾸준하게 유사한 길을 계속 걸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 브라이언 드 팔마가 나의 영화는 히치콕에게서 영향받았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백발이 다 된 지금도 히치콕의 흉내쟁이 소리를 듣고 있는 마당에, 그래서 히치콕의 영향 어쩌고 하는 질문만 나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드 팔마의 경우에 비해 자기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누구누구에 대한 오마주 또는 누구누구의 영향이라며 족히 영화감독 수십명의 이름은 댔을 만한 스코시즈는 드 팔마와 같은 굴레를 얻기는커녕 그런 게 바로 스코시즈의 영화가 아니겠느냐고 사람들이 인정하게 만들어버렸다.

영화에 대한 광대한 지식과 넘치는 열정, 그것 말고도 아카데미 무관의 전설이 그를 이상한 유명세에 올려놓았다.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라 다시 말하는 게 싱겁긴 하지만, 스코시즈와 일한 스탭과 배우들이 하나둘씩 오스카상을 챙겨가는 동안 스코시즈가 다섯번의 감독상 후보에 올라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건 유명하다.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장. 한때 스코시즈가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만들면서 종교계의 집단 뭇매를 맞고 있을 때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강력하게 그를 옹호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감독상을 수상한 뒤 멋스러운 말 일색으로 오스카를 쥐고 흔들 때, 스코시즈는 객석에 앉아 이스트우드의 리액션 화면이 되어야만 했다. 그때 방송사의 카메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틴 스코시즈 사이를 마치 아직 보스턴 레드삭스가 우승하기 전,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 시리즈를 중계하듯 신이 나서 다루었다. 당연히 스코시즈가 후자였다.

그러니 이건 오히려 역설의 일화로 기억할 만하다. 스코시즈는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상에서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미국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그가 오스카를 수상하건 그렇지 않건 그의 영화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스코시즈는 영화 엔터테인먼트의 표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의미로서 영화가 지닌 이름 즉 ‘시네마’의 역사 안에 현존하는 미국영화의 한 페이지다. 스코시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가 1975년에 한 말, “나는 영화를 사랑합니다. 그것이 내 삶의 전부이며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는 <예수의 마지막 유혹>에 대해 했던 같은 말, “나는 기도자, 예배자로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내 전 생애는 영화였고, 종교였습니다.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건 스코시즈 바이블의 유명한 제1장 제1절이며, 영화와 그의 관계에 대한 일설 중 가장 확고히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일찍이 평론가 폴린 카엘은 “영화의 성자가 되려 한” 감독이라 칭했는데, 이 말은 물론 그가 다루는 영화 화두의 일부인 종교성을 지적하는 표현이지만, 종교에 귀의하듯 영화에 귀의했다는 의미도 반쯤은 담겨 있는 표현이다.

운명적 조건안에서 실패, 보류, 절멸로 귀결되는 인물들

스코시즈가 줄기차게 관심을 갖는 것은 인물의 삶과 그 삶에 주어진 운명적 조건이다. 그 조건은 대체로 실패하거나, 보류되거나, 절멸을 맞는 귀결로 인물을 이끈다. 단, 이 말은 스코시즈의 극영화 작업에 집중할 때 성립된다. 그가 만든, 어쩌면 극영화 작업보다 더 값어치 있을지 모르는 몇몇 다큐멘터리들은 감식안 높은 문화 평전가로서 혹은 예민한 역사가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것, 예컨대 자신이 속한 이탈리안-아메리칸 문화와 그 속에서 형성된 나의 가족과 그가 영화 다음으로 사랑하는 음악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영화에 관한 관심사로 대다수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스코시즈의 다큐멘터리에는 그를 설명할 때 자주 따라붙는 폭력의 인장이 없다. 폭력이 출몰하는 것은 그의 극영화다. 그러나 그를 화려하게 수식하고 있을 뿐, 폭력 역시 그의 극영화를 말하는 데 주어가 되지 못한다. <분노의 주먹>의 격투신, <좋은 친구들>의 살인신, <갱스 오브 뉴욕>의 첫 전투신 등이 떠오르지만 거기에서 방점은 폭력의 재현이 아니다. <갱스 오브 뉴욕>의 첫 전투신에서 숨을 벅차게 하는 순간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게 찍힌 전투신이 아니라 사도가 문을 박차자 카메라가 문 밖을 향해, 거리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나가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 카메라는 “존 포드는 웨스턴을 만들었어. 나는 거리영화(Street Movie)를 만드는 거야”라고 언젠가 스코시즈가 조 페치에게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또는 <좋은 친구들>의 소년 헨리가 거리의 마피아들을 부러움 섞인 눈빛으로 바라볼 때 그의 시선을 대신해 창을 넘어 거리로 나아가던 카메라의 방향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구원은 교회가 아니라 거리에서 얻어진다”고 <비열한 거리>의 찰리(하비 카이틀)는 읊조린 바 있다.

<갱스 오브 뉴욕>에서 후반부 같은 장소 같은 상황으로 돌아와 인물들은 싸우지만, 그들이 갑자기 하얀 포화의 재를 뒤집어쓰고 당황해하는 그 순간 우리에게 전해지는 사실은 그들의 싸움판이 얼마나 시대의 조건에 어긋날 만큼 착오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이를테면 총과 포가 난무하는 거대한 싸움의 시기에 철재 무기를 들고 부모의 원수를 갚아 한 구역을 차지하겠다는 이 시대착오적인 복수담 내지는 실패담이 이 영화의 아이러니한 대미이자, 착란적 주인공을 향해 스코시즈가 던지는 비정한 시선이다). 혹은 <분노의 주먹>의 제이크 라모타가 링 위에서 더 많이 맞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티는 그때 분수 같은 붉은 선혈과 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충격을 주긴 하지만, 문드러지는 제이크 라모타의 얼굴을 통해 관객이 읽도록 스코시즈가 요구하는 것은 자기 파멸의 대가를 받아들기 위해 피학적 안간힘을 쓰고 또 쓰는 어처구니없는 이 순교의 자세다. 반면에, <좋은 친구들>의 지미(조 페치)나 <카지노>의 니키(역시 조 페치)가 별안간 총에 맞아 죽거나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아 생매장당할 때 그는 보스가 지령한 삶의 신분을 어겼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것이다.

그들은 시대이건, 신이건, 보스이건,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 안에서 착각을 일으키거나, 반동적으로 순응하거나, 도주하려다 실패하는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그 행동을 추동시키는 것의 이름은 무엇인가. 스코시즈는 강박과 망상으로 뒤엉킨 자들에 애착을 갖는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와 끝을 향하는 자의 강박과 망상

강박과 망상에 대한 스코시즈적 수행은 크게 두 갈래다. 첫 째는 헤매면서 구원을 얻으려다 결국 실패하는 자다. <비열한 거리>에서 찰리는 자신이 성자인 양 행동하지만 마피아 삼촌의 잡일이나 거들며 술집에서 젊음을 낭비하며 사는 청년이 종교적 책임감에 싸여 교회의 촛불에 손을 지지는 고행을 거듭한다는 건 이상하거나 놀라운 일이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트래비스는 더 이상하거나 위험한 자다. 불면증으로 뉴욕의 밤거리를 해매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정의로운 사도라 생각하며 순결한 어린 창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를 구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러운 범죄의 왕국에서 아이리스를 구제하는 혹은 악덕 포주(하비 카이틀이 이 역할을 맡았다)를 처단하는 신의 의용군이라고 스스로를 여긴다. 수십년 뒤 등장한 <비상근무>의 프랭크(니콜라스 케이지)는 트래비스를 닮은 좀더 합법적인 구제자지만, 그 역시 책임감으로 고통스러운 환각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강박의 세계에 빠진 인물을 정신분석학자가 흥미로워할 만한 연구 대상으로 몰고 갈 때, 스코시즈는 수호자 내지는 성자로서 고민을 하며 거리를 헤매는 그들의 병적 (초)인간애에 흥미를 갖는다. 물론 거기에는 스코시즈 개인의 진실한 종교적 신심이 반영된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끊임없이 도시의 거리를 떠돈다. 거리는 교회 바깥에 있고, 그들은 거리에 있다. 그들은 망상으로 기도를 하고, 착각으로 결심을 다지며, 환각으로 거리를 해매며, 착오로 싸움을 건다. 거리는 지옥인데, 지옥에서 그들은 구원을 읊조린다. 스코시즈는 그들을 지옥으로 들어가 영영 돌아올 길을 못 찾은 자의 형상으로 그려낸다.

여기에 한 가지 유형의 수행을 덧붙인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두 번째 유형은 끝까지 더 끝까지 가보고 싶은 자들이다. 가령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과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것, 그것은 스코시즈의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나누어 갖는 중요한 강박이자 망상 덩어리다. 욕망이라기보다는 강박의 실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병적 집념. <택시 드라이버>에서 트래비스는 신의 대리인이 되고 싶다. <코미디의 왕>에서 루퍼트(로버트 드 니로)는 무명의 이름을 버리고 코미디의 제왕이 되고 싶다. 하워드 휴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가장 성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고, 가장 큰 비행기를 만드는 역사를 이루고 싶다. 그들은 무엇인가 되고 싶고, 이루고 싶다.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스코시즈가 전기영화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여기 덧붙여야만 할 것이다. 최근으로 올수록 스코시즈는 전기영화에 좀더 깊은 관심을 갖는데, 사실상 전기영화가 스코시즈의 방점이라기보다 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자의 병적 집착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넉넉하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전기영화이기 때문에 스코시즈는 그걸 선택한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전기영화의 형식을 취할 때 무언가 되고자 하는 인물들의 열망은 더 부각되는데, 그때 그 ‘무엇’은 말 그대로 빈칸이지만, 종종 둘 중 하나의 중요한 선택지를 갖는다. ‘갱과 초인’이다. <좋은 친구들>에서 무엇은 갱이다. 소년은 갱이 되고 싶다. 혹은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스처럼 무엇은 초인이다. 하워드 휴스는 초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스코시즈는 그 인물들을 전기적으로 다루되 출생에서 사망까지를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되고 싶어하고, 그 가까이 간다. 때때로 크게 실패한다. 그뿐이다. 그 나머지를 말하는 건 자기의 관심과 일이 아니라고 스코시즈는 생각한다.

거대 폭력 조직의 꼭두각시 혹은 초인을 자처하는 실패자

갱이 되고자 함은 스코시즈가 보기에 허접한 끝을 이미 담지하는 인생이다. <좋은 친구들>이라는 역설적인 제목 아래 갱이 되고 싶어 끝내 꿈을 이뤘던 헨리 힐(레이 리오타)의 마지막 삶은 법정에서 증인이 되어 보스들을 배신하고 증인보호프로그램에 갇혀 평생을 숨어사는 것이다. <카지노>에서 라스베이거스 환락의 성공 끝까지 갔던 지미 콘웨이(로버트 드 니로)는 다시 곤두박질쳐 겨우 죽음만 면한 채 그냥 제자리로 돌아온다. 갱을 다룰 때 스코시즈는 코폴라처럼 다루지 않는다. 비극이되 신화적 위용으로 휩싸인 인물들로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

초인이 되고자 함은 일찍이 “구약성서적 인물”인 트래비스가 모더니즘적 상징인 자동차를 타고 지옥 같은 뉴욕의 밤거리를 돌아다닐 때 배태되어 있던 것이다. 그를 대신할 만한 아주 극명한 한 가지 현실 속 일화가 있다. 레이건을 총으로 쏴 암살을 시도했던 존 힌클리 주니어라는 남자가 말하기를 <택시 드라이버>를 열다섯번이나 보고 나서, 영화 속 아이리스 역할을 맡은 조디 포스터에게 매혹당해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 짓이라고 털어놨다. 사실이건 헛소리이건 간에 그는 (아마도 트래비스처럼 비극적) 초인이 되고 싶었을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에 가장 강한 상징적 인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일 테고, 그게 레이건이어야 한다고 그 정신(?)에도 생각한 것이다. 이건 스코시즈 인물들이 미국사회에 역반영한 명백한 현실의 우화다.

스코시즈적인 의미에서 갱과 초인이 하나로 만나는 영화가 있는데, 그건 <예수의 마지막 유혹>이다. 초인 이야기 중 가장 뿌리 깊은 것이 독생자 예수의 희생사인데, 스코시즈는 그걸 <비열한 거리>의 갱인 찰리가 종교에 대해 숭고한 고뇌를 하듯, 같은 수위로 예수가 인간적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물러나는 이야기로 뒤바꿔버렸다. 영화에서 예수는 사탄에 속아 십자가형 직전에 내려와 늙을 때까지 산다. 물론 다시 돌아가 “다 이루었도다”라고 말하면서 원래의 몫을 해낸다. 종교계는 숭고한 결단 대신 인간적 번민의 장을 부각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원작(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금서였다)과 그걸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 분노했다. 하지만 스코시즈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를 만들 때의 내 감정은 만일 성당이 없다면, 그래서 하느님과 직접 대면한다면 하는 것이었다”고. 거리는 교회 바깥에 있고, 그들은 거리에서 구원을 찾는다. 그게 스코시즈식 신앙심이다.

스코시즈 인물들의 삶은 신적인 힘 혹은 그에 맞먹는 외압의 장력 아래 꾸준하게 놓여 있다. <예수의 마지막 유혹>처럼 그 인물의 삶이 지극히 전형적 종교성일 때 그것은 구원과 타락과 심판에 대한 해석의 모델이 되기 때문에 논란이 일어난다. 그러나 한편으론 종교와 상관없는 자들의 삶의 조건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스코시즈의 인물들은 종교만큼이나 거대한 외압 내지는 외상의 우산 아래 산다. 예컨대 마피아 보스 아래 있는 중간 하수인(<카지노> <좋은 친구들> <비열한 거리>)은 거대한 폭력조직의 외압에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이고, 말 그대로 외상 안에 놓여 있는 초인적 꿈의 배태자들(“검역”이라는 언어의 외상에 갇힌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스, “나는 신의 외로운 인간”이라고 믿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은 초인을 자처하는 보류자 혹은 실패자들이다.

종교적이건 그렇지 않건 스코시즈가 생각하는 인물과 그들의 삶의 조건은 대체로 실패하거나, 보류되거나, 절멸을 맞는다. <디파티드>도 그런 점에서 보면 명백히 스코시즈적 영화의 한축에 있다.

리메이크, 스코시즈식 삶의 조건과 인물관계로의 변형작업

자, 이제 현재로 돌아오자. 그리고 리메이크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오래전, 프랑스 영화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가 당신이라면 줄스 다신의 필름누아르 <밤과 도시>를 리메이크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부추겼을 때 스코시즈는 리메이크에는 흥미가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다른 자리에서도 자신은 리메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디파티드>는 스코시즈의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 리메이크 작품이다. 첫 번째는 <케이프 피어>다. 스코시즈와 미국의 언론들조차 이걸 말하는 데 소홀한 건 의아한 일이다. 어쨌거나 스코시즈가 <케이프 피어>를 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결국 스필버그가 완성하게 된 <쉰들러 리스트>를 애초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스코시즈였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의 연출 의사를 밝히면서 그는 자신이 할 예정이었던 <케이프 피어> 프로젝트를 스코시즈에게 미뤘고, 로버트 드 니로가 그걸 같이 하자고 나서자, 스코시즈는 과거 자신이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만들면서 심적, 재정적 부담을 안겼던 제작사 유니버설에 대한 미안함이 생각나 그냥 수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다음에 스코시즈가 리메이크에 전혀 관심을 쏟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카지노>를 끝낸 직후 그의 머릿속에 있던 몇몇 프로젝트 중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 리메이크 작업이 있었고, 얼마 전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주인공으로 역시 구로사와 아키라의 <주정뱅이 천사>를 리메이크 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스코시즈의 91년작 <케이프 피어>가 J. 리 톰슨의 62년작 <케이프 피어>와 가장 다른 건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는 점이다. 선과 악이 결투를 벌여 선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악과 악이 싸워 더 질기게 살아남는 악이 주인이 된다는 것으로 스코시즈는 바꾸었다. <케이프 피어>도 그랬지만 서로 얽혀 있는 두 남자의 폐쇄회로 같은 관계, 즉 <무간도>의 주인공들의 삶의 조건이 스코시즈에게는 충분히 관심거리였을 것이다. 게다가 한발 더 나아가 서로의 동료이자 걸림돌인 두 사내라는 이자적 구도는 <비열한 거리>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스코시즈 인물 관계의 핵심 모형이다.

<무간도>의 의리를 치환한 <디파티드>의 운명의 조건

<디파티드>는 <무간도> 세편의 시리즈 중 거의 1편만을 참조한 듯하고, 장소를 홍콩에서 보스턴 남부(각본가 윌리엄 모나한이 이곳 출신이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로 옮겼을 뿐 갱단이 키운 하수인이 경찰 간부가 되고, 정부가 투입한 잠입경찰이 갱이 되어 서로 정보를 캐낸다는 설정의 큰 틀은 유사하다. 양조위가 했던 진영인 역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하고, 유덕화가 했던 유 반장 역을 맷 데이먼이 한다. 디카프리오의 극중 이름은 빌리이고, 맷 데이먼의 이름은 콜린이다. 그리고 증지위가 했던 한침 역에 해당하는 코스텔로 역을 잭 니콜슨이 한다. 그렇지만 잭 니콜슨이 맡은 역할은 <무간도>의 한침보다 훨씬 악독할 뿐 아니라 관계에서도 더 큰 방점이다. 빌리도 콜린도 모두 그와 중요한 관계가 있다.

스코시즈는 윌리엄 모나한이 쓴 각본을 본 뒤에 이것이 원작과는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디파티드>를 만들면서 원작과의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는 그의 말처럼 중요한 차이들이 꽤 있다. 그 차이들을 생각해보는 게 <디파티드>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표지판이 될 듯싶다.

<무간도>는 무엇보다 갱들의 에픽이다. 갱들의 에픽 중 가장 저명한 것은 <대부> 시리즈다. 심지어 마피아가 <대부> 시리즈를 보고 자기들 생활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더 할 말이 없다. <대부>는 일종의 신화이고, <무간도>는 본격적으로 그 신화성을 참조했다. 여기에 비해 <디파티드>는 신화적 요소를 말끔히 제거한다. <무간도>가 무간 지옥에 관한 웅장한 설명으로 시작하는 대신, <디파티드>는 길거리 싸움과 갈등을 담은 다큐멘터리 화면, 그리고 코스텔로 역을 맡고 있는 잭 니콜슨의 보이스 오버로 날렵하게 오프닝을 연다. 스코시즈는 자신의 영화와 코폴라의 영화를 비교한 적이 있는데, <대부>보다 <대부2>를 더 좋아한다면서 “<대부2>는 마치 <아더 왕의 죽음> 같은 것에 비견할 만한 서사시다. 내 영화는 이에 비하면 일종의 길거리 다큐멘터리와 비슷하다”고 <좋은 친구들>을 설명했다. 그건 정확하게 <무간도>와 <디파티드>의 차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코스텔로는 “나는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한다”고 (스코시즈 영화의 많은 인물들이 그렇듯 착각 속에) 말한다. 그는 쉼없이 교회와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며 거리의 제왕인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강조한다. 코스텔로는 기껏해야 거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갱이면서도, 자신을 신적인 존재 혹은 초인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그런 그의 모습을 그의 보이스 오버를 통해 한껏 부각한다.

그런데 코스텔로의 그 건방과 거드름이 <무간도>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지점을 푸는 열쇠가 된다. 그러니까 <무간도>를 보는 내내 이해하기 힘든 점이 한 가지 있다. 왜 유 반장은 한침과 다른 길을 갈 만한 힘을 지녔는데도 저토록 오래 끌려다니는가 하는 것이다. 유 반장이 한침을 제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무간도>는 그 궁금증을 초반부 한침이 수하들을 모아놓고 하는 말에 따라 ‘영웅의식과 의리’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코시즈는 그것이 영웅의식이 아닌 삶의 비열한 절대조건에 따른 것이라고 바꿔 설정한다. 그 조건이란 양육에 대한 지원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관계다.

<디파티드>, 기독교적 심판의 누아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코스텔로는 소년 콜린 설리반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며 먹을 것을 사주고 돈을 쥐어주고 코믹북도 하나 얹어준다. 그러면서 돈을 벌고 싶으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한다. 그 순간 가난한 소년의 눈에는 코스텔로가 분명 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갱의 길을 걸은 스코시즈의 다른 영화 속 소년을 생각해보면) 그 뒤로도 코스텔로의 지원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소년은 갱이 ‘되기로’ 굳게 결심했을 것이다. 아니, 피할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린 콜린 설리반이 코스텔로에게 동전 몇개를 받아드는 순간이 바로 그의 삶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장면이 없지만 빌리도 사실 같은 조건에 놓여 있다. 가령 빌리가 경찰 신분을 속이고 보스턴 남부 거리로 들어갔을 때 하나같이 그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네 삼촌이 누구인지 알고, 네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면 영화가 흥미로워진다. 그건, 빌리가 잠복 경찰이 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무간도>에서 진영인이 잠복 경찰이 된 것은 그가 누구보다 뛰어나고 공직에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경찰직에서 가장 훌륭한 요원이 할 수 있는 일을 그가 한다. 그러나 빌리의 상황은 다르다. 빌리는 경찰학교에서 싸움을 일으켜 퇴학당하는 인물이다. 필기시험 능력이 좋은 것이 근거가 되어 다시 경찰학교로 불려오지만, 빌리에게 임무를 맡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빌리의 ‘출신 성분’이 더 큰 요인이다. 빌리는 어쩔 수 없이 보스턴 남부 거리 출신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곳에 간다. “네가 경찰이 되고 싶으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명령에 떠밀려가는 것이다. 빌리도 콜린처럼 이 거리에서 자랐지만 콜린이 코스텔로의 힘을 빌려 경찰 행세를 하게 되는 동안, 경찰이 되려던 그는 결국 갱의 행세를 하게 된다. 콜린이 아니라 빌리가 코스텔로를 만났으면 입장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경찰이 되고 싶은 콜린도 코스텔로의 협박에 못 이겨 끝내 되지 못한다. 빌리와 콜린은 그러므로 크게 다르지 않다. <무간도>도 사실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만, <디파티드>는 두 주인공 모두 코스텔로라는 하나의 유사 아버지를 갖게 함으로써 그 관계를 더 명확하게 만든다. 빌리는 코스텔로의 수하로 들어가고, 코스텔로의 수하인 콜린은 경찰 요직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그들이 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다만 갱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스코시즈는 경찰을 그의 주인공으로 다룬 적이 없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디파티드>도 그 예에 속한다. 말하자면, <무간도>가 영웅의식과 의리를 겸비한 갱들의 신화라면, <디파티드>는 경찰이 되고 싶은 갱들이 그냥 갱으로 남는 이야기다. <디파티드>의 주인공들을 둘러싼 모든 것은 그저 비열하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코스텔로는 그 끝을 보여주면서 이 영화의 성격을 <무간도>에서 멀리 떼어낸다. 영화는 <무간도>가 취했던 사각의 구조(유 반장에게는 한침, 진영인에게는 황 국장)를 끊어버리고 둘 모두 코스텔로라는 외압의 우산 아래 있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지막이 당연히 궁금해질 텐데, 당연히 <디파티드>는 다른 결말을 가져온다. 그 방식이 좀 심드렁하긴 하지만 어쨌든 스코시즈는 자기 식대로 끝낸다.

누아르, 이런 말이 <디파티드>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무간도>가 표방한 것이니 따르자면, <무간도>는 불교적 윤회의 누아르이고 <디파티드>는 기독교적 심판의 누아르다. 스코시즈는 일전에 예수뿐만 아니라 달라이 라마에 대한 전기영화 <쿤둔>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 스코시즈의 태도는 외부자가 할 수 있는 어떤 존경이었다. 그는 불교를 육체와 영혼의 투쟁의 장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의 가톨릭적 종교 안으로 들어오면 그 화두는 곧장 치열한 길거리에서의 고뇌가 된다. 스코시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누아르영화 중 하나인 에이브러햄 폴란스키의 <악의 힘>에 관련되어 나온 책 서문에 “이 영화는 정치적일 뿐 아니라 실존적인 비전이다”라고 썼는데, 이 말을 바꿔 우리는 스코시즈의 <디파티드>에 관해 “이 영화는 종교적일 뿐 아니라 세속적인 비전이다”라고 맺는 것이 가능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영화의 길

그러고 나서 스코시즈의 고백을 듣는다. “사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당신은 위대한 감독입니다’라고 말할 때는 정말 난감합니다… 중략… 우리는(브라이언 드 팔마와 스코시즈) 다만 살아남으려 애를 쓸 뿐입니다. 수위가 높아지면 물에 빠지기도 하고 다시 수위가 내려가면 한숨 돌리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스코시즈는 언젠가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근래에 <디파티드>를 끝내고는 “(할리우드에) 더이상 나를 위한 자리가 있는지,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 말이 스코시즈의 이야기에 대한 마지막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스코시즈는 최근 몇년간 뚜렷한 수작을 만들어낸 경우가 없다. 95년작 <카지노> 이후 그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에비에이터>와 <갱스 오브 뉴욕>은 대작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의 것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하고, 그의 야심에 비한다면 모자란 부분이 많다. 더러는 그 영화 속에 담긴 생각에 동의 못할 부분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의 안팎을 들락거리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번갈아가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다시 말해도 그가 미국영화의 살아 있는 한 페이지인 것만은 사실이다. 올해 그가 아카데미 단상에 오를지는 모를 일이다. 사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나. 아카데미가 감독상을 주거나 말거나 스코시즈는 종교와 바꾼 영화의 교당에서 영원히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스코시즈는 지금도 그렇게 끝나지 않을 영화의 길을 가고 있다. 끝없이 헤매거나, 곤두박질치면서. 그의 이야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2006년 현재 발표된 마틴 스코시즈의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 2편, 극영화 2편이다. 그중 다큐멘터리는 롤링 스톤스에 대한 것과 <에어버스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는 성당 건립 및 제트 여객기 제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편의 극영화 중 하나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 청년 루스벨트에 대한 것이고, 그 나머지 하나는 스코시즈가 <갱스 오브 뉴욕>만큼이나 오랫동안 “나의 다음 차기작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던 엔도 수사쿠의 소설 <사일런스>, 17세기 일본으로 들어간 포르투갈 선교사에 관한 이야기다. 몇 십년간 묵혔던 소재를 거듭 다시 파내는 걸 보면 스코시즈의 강박도 그가 다루는 인물들의 그것에 못지않다.

스코시즈 감독의 두 페르소나, 드 니로 vs 디카프리오

자기 파멸적 인간형과 야누스적 인간형

마틴 스코시즈가 처음 자기의 페르소나로 점찍었던 건 로버트 드 니로가 아니라 하비 카이틀이었다. 첫 번째 장편 <내 문을 두드리는 자는 누구인가?>의 주인공이 그였다. 로버트 드 니로를 처음 발굴한 건 <그리팅스>와 <하이 맘>의 브라이언 드 팔마였다. 마틴 스코시즈와 로버트 드 니로가 1970년 크리스마스에 처음 만난 것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소개 덕이었다. 하지만 이후 로버트 드 니로는 말 그대로 스코시즈 영화의 얼굴로 자리잡았다. <비열한 거리>에서 자니 보이로 등장한 이후,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 <분노의 주먹> <코미디의 왕>까지 내리 4편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상연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끝점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90년에 다시 돌아와서는 <좋은 친구들> <케이프 피어> 그리고 <카지노>까지 출연하면서 그가 스코시즈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작품은 총 8편이나 되었다. 그는 스코시즈가 영화를 구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배우였다. 그래서 그를 두고 스코시즈는 “나와 같은 세계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며 지대한 동질감을 과시한다. 로버트 드 니로의 연출작 <더 굿 셰퍼드>의 일정이 아니었다면, <디파티드>에서 잭 니콜슨이 맡은 코스텔로 역은 드 니로가 했을 것이라고 한다.

스코시즈에게 제2의 로버트 드 니로가 된 것은 놀랍게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디스 보이스 라이프>에서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출연하면서 드 니로의 출연작을 섭렵했던 디카프리오가 스코시즈의 영화를 보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게 해서 스코시즈의 영화에 존경을 품게 된 소년은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까지 연이어 세 작품째 같이하고 있다. 그는 명실상부한 스코시즈의 신세기 페르소나다. 젊은 시절의 드 니로가 자기 파멸적 인간형의 대가였다면, 디카프리오는 야성과 유약함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야누스적 인간형이다. 그래서 스코시즈는 디카프리오의 얼굴을 두고 “도덕적 투쟁의 싸움터”라고 부르면서, “그의 눈을 통해 나오는 그 고통. 그는 꼭 몽고메리 클리프트나 폴 뉴먼 같다”고 찬사를 보낸다. 디카프리오는 스코시즈의 차기작 중 하나인 <더 라이즈 오브 테오도르 루스벨트>에서도 청년 루스벨트 역을 맡아 네 번째 출연을 약속했다. 오래전 <비열한 거리>의 각본가 마딕 마틴은 하비 카이틀과 로버트 드 니로를 두고 “스코시즈의 양면”이라고 했는데, 지금에 이르고 보니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 말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마틴 스코시즈 작품에서 발견되는 차용·참조·오마주
2006.11.28


<수색자>의 인물부터 <시민 케인>의 플롯까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프로젝트에 대해 아직까지 파라마운트가 관심을 갖고 있을 시절,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와 마이클 아이즈너가 마틴 스코시즈를 찾아와 나눴다는 대화의 한 토막. 지지부진한 상황에 낙담해 있는 스코시즈에게 두 사람은 몇개의 대본 중 하나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베벌리힐스 캅>, 이걸 해볼 생각은 없어요?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을 맡기로 한 영화인데….” 그러자 스코시즈가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고, 그들은 ‘물 떠난 물고기의 이야기’라며 “왜 있잖아요. 촌 동네 경찰이 뉴욕에 와서 맹활약한다는 이야기 말이에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스코시즈의 (퉁명스러웠을) 대답. “그건 돈 시겔의 <쿠간의 협박>이잖아요.” 그러자 그들의 (당황스러워했을) 답변. “아니라니까요, <베벌리힐스 캅>이라니까요.” 그 대화의 깊은 속뜻이야 어찌 됐건, 물 떠난 물고기의 이야기라는 그 말에 스코시즈는 적어도 68년까지 올라가 돈 시겔의 <쿠간의 협박>을 기억해내고야 만다.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
마틴 스코시즈의 <에비에이터>

스코시즈는 어떤 식으로건 자기 영화를 영화사의 명맥 안에 위치지으려고 한다. 이건 어떤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저건 어떤 영화의 부분을 참조한 것이며 등등 수많은 예를 든다. <분노의 주먹>의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를 설명할 때는 “(<워터 프론트>의 주인공) 테리 말론을 연기하는 말론 브랜도를 제이크 라모타가 연기하고, 다시 이를 드 니로가 연기한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일단 관객을 잡아채놓고 종종 무심히 사라져버리는 보이스 오버와 거기에 맞춰 사용되는 정지 화면(예컨대 <좋은 친구들>의 오프닝)은 트뤼포 영화 <쥴 앤 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때때로 화면 구성이 아니라 플롯 자체를 참조한 경우도 있다. <에비에이터>가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과 포개어져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등 위험이 예고되는 장면마다 그의 영화에 끈질기게 등장하는 붉은 색조의 화면들은 어린 시절 본 마이클 파웰의 영화 색감에 영향을 받아 평생을 갖고 가는 것 중 하나다. 스코시즈가 차용한 것 중에서 인물에 관련되어 가장 유명한 것은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가 사실은 존 포드가 만든 웨스턴 <수색자>의 주인공 이산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택시 드라이버>의 방황하는 고독자 트래비스는 조카를 찾아 황야를 헤매는 이산의 그 허망한 표정에 기대어 생각하게 된다.

이번 작품도 그렇다. <디파티드>의 촬영감독, 프로덕션디자이너 등 스탭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스코시즈는 하워드 혹스의 영화 <스카페이스>(스코시즈의 전작 <에비에이터>의 주인공 하워드 휴스가 1932년에 제작한 갱스터영화)에 존경을 바친다는 뜻으로 영화 여기저기에 X(문자라기보다는)무늬를 그어놓았다고 한다. 촬영감독 마이클 볼하우스에 따르면 “그건 죽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스코시즈가 원했다”는 것이다. <스카페이스>는 유명한 갱 알카포네의 별명이자 그의 얼굴에 난 십자 상처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하지만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콜린(맷 데이먼), 두 남자의 관계를 놓고 생각할 때 <스카페이스>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참조 영화가 한편 있다. 스코시즈의 말대로 <디파티드>가 한편으로 “믿음이 없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빌리가 마약 중독자를 찾아가 예수가 그려진 액자로 그를 내리칠 때 텔레비전에서는 영화 한편이 잠깐 흘러나오는데, 그건 존 포드의 1935년작 <밀고자>다. 친구를 밀고하여 팔아먹은 주인공 기포가 교회에 들어와 십자가에 걸린 예수상을 향해 양손을 뻗치고 “프랭키! 프랭키! 네 어머니가 날 용서하셨어”라고 슬프게 부르짖으며 죽어가는 라스트신이다. 아마도 빌리와 콜린이 나누어 가진 ‘밀고’라는 모티브에 대해 스코시즈는 그런 식으로라도 또 한번 부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게다가 존 포드는 아일랜드 혈통의 대표적 감독이 아니던가. 사실은 그 밖에도 심증이 가는 표식들이 몇개 더 있긴 하다. 국장 이름이나 편지봉투에 쓰이는 시티즌이라는 글자는 확실히 오슨 웰스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오슨 웰스에 대한 스코시즈의 경외어린 말들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오마주나 참조가 실상 영화의 질을 좌우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사의 영향 아래 놓여 살아가는 스코시즈는 그걸 그만둘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 인터뷰
2006.11.28

“<디파티드>는 <무간도>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놓여 있다”

-홍콩영화 팬인가? 어떤 점에 흥미를 느껴 <무간도>의 리메이크를 하게 된 것인가.
=알다시피 <디파티드>는 전혀 리메이크라고 할 수 없다. 처음 각본을 받았을 때 나는 이것이 홍콩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각본가 윌리엄 모나한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고, 거기에 끌렸을 뿐이다. 윌리엄 모나한이 쓴 <디파티드> 각본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은 완전히 폐쇄된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 태도, 그리고 문화적 시선이었다. 나는 각본을 받고 꽤 오랫동안 읽어야 했는데, 이미 그 인물과 이야기의 특질을 즐기면서 비주얼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각본이 묘사하고 있는 인물들과 그 세상에 대한 흥미가 나를 시작하게 만든 것 같다.

-<무간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그건 성공적인 나머지 두편의 시리즈를 더 낳은 영화이고, 비평적으로도 환호를 받았다. <무간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위강의 <무간도>는 플롯, 아이디어, 두 밀고자라는 컨셉까지 모두 훌륭한 영화다. 그 영화가 내게 호소한 면은 믿음과 배신이라는 기본적인 스토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영화 속에 그 요소들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디파티드>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놓여 있다. <디파티드>는 동시대 남부 보스턴, 아일랜드계 하층민들이 사는 비열한 거리 위에 있다. 흥미로운 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이 내게 (<비열한 거리>의) 로버트 드 니로와 하비 카이틀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일랜드인에게 느끼는 매력은 어떤 것인가. <갱스 오브 뉴욕>이 첫 번째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나는 아일랜드인들을 항상 친근하게 느껴왔다. 대부분의 아일랜드인들은 내가 자란 동네의 이웃이었다. 그리고 아일랜드 문학, 특히 시는 내게 매우 중요하다. 또한, 아일랜드식 가톨릭은 이탈리아식 가톨릭과 비교되는 것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영화 오프닝이 딱 <좋은 친구들>이다. 잭 니콜슨의 불길한 보이스 오버에 롤링 스톤스의 노래 <김미 셸터>까지. 당장에 마틴 스코시즈 랜드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윌리엄 모나한의 각본에 있던 방식이다. 잭이 하는 오프닝 내레이션은 우리를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물론 나는 이런 종류의 것을 그전에도 써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건 보이스 오버가 초입부 이후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보이스 오버는 관객을 영화 속 세계에 몰아넣은 다음 거기에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 <김미 셸터>의 사용은? 당신은 그 음악을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에서도 썼었다. 그 노래는 당신에게 무엇인가.
=아무래도 내가 나 자신을 베끼고 있나보다. (웃음) <김미 셸터>의 초입부 리프는 매우 위태롭다. 당신은 뭔가 일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영화에는 어디에도 피난처가 없고, 누구도 그걸 갖고 있지 못하다. 이 영화의 음악에 대해 생각하던 중에 나는 교통 체증으로 꽉 막힌 57번가 차 안에 있었다. 그때 아주 후진 차를 탄 긴 머리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쿵쾅거리며 <김미 셸터>를 따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다.

-잭 니콜슨과 같이 작업하기까지에는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건가.
=내가 그와 알고 지낸 건 벌써 40년이다! 내가 <라스트 왈츠>를 촬영할 때 그가 세트를 찾아와 처음 만났다. “당신들 정말 끝까지 한번 밀어붙여봤더구먼” 하며, <택시 드라이버>에 대해 내게 해준 칭찬을 기억한다. 나는 그를 유럽과 할리우드에서 이따금 만났지만, 동석은 못하고 눈인사만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같이 작업하자고 말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거절했었다고 하던데.
=그렇다. 하지만 잭은 좀 특별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데, 그는 역 맡기를 사양하면서도 그 캐릭터를 갖고 어떤 식의 연기를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계속 건네왔다. 그러니까 그의 태도를 읽어내야만 하는 거다. 우리는 잭에게 밀어붙였고, 그는 “좋아, 흥미가 생기는걸” 하며 수락했다.

-피터 오툴이 2003년에 오스카 공헌상을 받으면서 했던 말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경쟁부문에서 상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섯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도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기분이 궁금하다.
=거기에 대한 글이 너무 많이 쓰여진 것 같다. 그건 타이밍의 문제다. 내가 만들었던 많은 작품들은 험하고 거칠다. 일부 사람이 그것에 반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은 감독들은 대다수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을 놔두고 다른 작품으로 상을 탄다. 아카데미는 (언제나) 뒤늦게 쫓아간다. 하지만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택시 드라이버>나 <분노의 주먹>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상 인터뷰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서 발췌 및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마틴 스코시즈, 신작 <갱스 오브 뉴욕>을 말하다
2002.06.14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인은 누구인가를 묻고 싶었다"

“내 나이 여덟살 때 <선셋대로>를 처음 봤는데, 그땐 그냥 웃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호러영화라고 결론짓게 됐다. <선셋대로>는 할리우드를 가장 정직하게 묘사한 영화고, 할리우드는 그 자체로 충분히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나로 하여금 카메라 뒤의 삶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위대한 호러영화는 관객이 영화 속 괴물 캐릭터에 공감하고 연민하게 만드는데, 이 영화 역시 글로리아 스완슨과 나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칸영화제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감독 마틴 스코시즈의 첫 마디에 많은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들 대부분은 웃은 것을 금세 후회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3천명이 운집한 뤼미에르 대극장의 폭소가 삽시간에 수그러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틴 스코시즈와의 만남은 그처럼 거장의 긴 한숨을 엿들은 불경, 그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됐다. 알려지지 않은 뉴욕의 과거를 찾아서 마틴 스코시즈는 올해 칸을 찾은 게스트 중에서 가장 바쁜 일정에 쫓겼다. 영화학교 학생들의 단편경쟁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의 심사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이 그중 하나. 그리고 빌리 와일더 특별전을 기념해, 빌리 와일더와 그의 작품을 기리는 특별행사의 호스트로서의 역할도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무려 7주 동안의 사전 준비를 필요로 했던 <갱스 오브 뉴욕>의 20분 버전 시사 이벤트였다. 2000년 봄 크랭크인해 여전히 보충 촬영중인, 개봉일자가 세번이나 번복된, 그래서 온갖 루머와 억측을 불러일으킨 그의 신작을 공식적으로, 그것도 20분짜리 버전으로 선보인다는 사실은, 완벽주의자인 그에게 적잖은 부담이 됐을 것이다. “완성하지도 않은 작품을 대중 앞에 공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더라. 솔직히 나이를 먹을수록 작품을 완성하는 데 더 많은 집중력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아마도 칸 이후에 많이 고전할 것 같다.”

<갱스 오브 뉴욕>의 시사를 전후로, 현지에서의 가장 큰 이슈는 제작사인 미라맥스의 수장 하비 와인스타인과 스코시즈의 불화, 그 소문과 진상에 관한 것이었다. 스코시즈는 <갱스 오브 뉴욕>을 오래 품고 있었다. 허버트 에스베리의 동명 소설을 읽은 것이 32년 전이고, 영화로 기획을 시작한 것이 25년 전이고, 촬영을 시작한 것이 2년 전의 일이다. 제작비와 제작기간과 러닝타임이 늘어나면서, 스코시즈와 와인스타인의 불화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이에 대한 스코시즈의 답변은 명쾌하다. “하비는 개성이 강한 사람이고, 나도 다혈질적인 사람이다. 한때 충돌했지만, 지금은 화해했다.” 그리고는 <갱스 오브 뉴욕>의 촬영과정만 다사다난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갈등과 충돌은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제작비는 정해져 있는데, 영화를 찍다보면 더 하고 싶은 게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 현실을 일깨워주는 게 제작자의 일이다. 제작자와 감독은 서로 주고받는 관계다. 잡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다. 예를 들어 <비열한 거리>의 경우는 24일 동안 다 찍었지만, 촬영 내내 전투를 치러야 했다.” 마틴 스코시즈에게 <갱스 오브 뉴욕>은 ‘오래 고전한 작품’이라거나 ‘1억달러가 넘는 대작’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필생의 작품’이라는 의미로서 더욱 각별하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자손으로서, 그리고 뉴요커로서, 그는 알려지지 않은 뉴욕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맨해튼에서 자란 나는 뉴욕의 옛 시절에 관한 전설을 줄곧 가슴에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 뉴욕이라는 도시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1860년대 초반의 뉴욕은 이민자들로 들끓었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고 있었다.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려는 시도 속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시행착오가 거듭됐다. 종교와 국적과 신념과 지식 수준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기까지, 기이하고 비범한 실험이 이어졌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인은 누구인가.” 9·11보다 이민문제에 초점
옛 뉴욕을 배경으로, 미국의 뿌리와 정체성을 파헤치려 했다는 이야기는 ‘마틴 스코시즈니까’ 미덥게 들린다. 그는 뉴욕이란 도시의 본질과 미국 현대사의 굴곡을 꿰고 있는 아주 드문 감독이다. 따라서 그가 뉴욕을 이야기할 때 뉴욕은 단순히 이야기에 둘러쳐진 배경그림에 머물지 않는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베트남전쟁의 상흔을 들춰냈고, <특근>에선 소호 밤거리 여피족의 수난을 따라갔으며, <비상근무>에서는 범죄의 천국에 던져진 구급대의 고뇌를 다뤘다. 이번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뉴욕’까지. “좋은 영화는 많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는 드물다. 그런데 마티(스코시즈의 애칭)의 영화는 그렇다. 그의 영화는 리얼 라이프 다큐멘터리 그 이상의 리얼리티와 재미가 있다. 실제로 겪어보니, 마티는 영화를 사랑하고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더라. 그와 식사를 할 때마다 1시간 넘게 영화와 역사에 대한 아주 특별하고도 재미난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특별 기자회견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촬영하는 동안 스코시즈의 영화와 역사에 대한 식견에 연일 감탄했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스코시즈의 뉴욕 사랑은 더욱 공고해졌다. 촬영 도중 맞닥뜨린 9·11 사건의 충격은 그에게 물리적인 손익 차원에서 논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 비극은, 그 충격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내 영화가 뉴욕이라는 도시와 그 역사를 깊이 껴안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9·11에 대해 난 감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국 만세’를 외치며 9·11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봉사할 것 같진 않다. 스코시즈는 그런 이유로 영화가 흥행하는 것을 기대하거나 상상해본 일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자유와 독립을 향한 투쟁, 오히려 개인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영화가 시의적절할 수 있다면, 그것은 9·11 때문이 아니라, 미국뿐 아니라 유럽지역에서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이민문제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경호원인 듯한 덩치들과 스튜디오 관계자들에 둘러싸인 마틴 스코시즈가 1m 가까이로 다가왔다 사라져 갔다. 동석한 주연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카메론 디아즈의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작은 키, 숱 많은 검은 눈썹을 유난히 돋보이게 하는 백발의 스코시즈는 어느새 기자들의 시야를 벗어나고 있었다. 피로와 슬픔을 접고, 현대 미국영화의 대부라 불리는 사나이의 위풍당당한 행진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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