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미숙의 연관 검색어는 박지원일까, 고전일까, 연구 공간 수유+너머일까? 아무튼 그를 키운 8할은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을 것이다. 여러 직함을 붙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를 ‘고전평론가’로 지목한 고미숙은 자신의 글 행간에 ‘느낌표!’를 아낌없이 던지며, 유쾌 발랄한 에너지로 호흡하는 지식인이다. 아마도 그의 이러한 기운이 ‘고전으로 먹고사는 지식인’이라는 역사적 탄생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등 그는 현실에 바탕을 둔, 고전 해독의 달인이다. 고전이면 고전, 돈이면 돈, 연애면 연애 모르는 게 없는 그에게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을 텍스트 삼아,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는지’ 물어봤다. 역시, 고미숙이다. 인터뷰/김윤경 사진/안지섭
* 며칠 전 <휴식>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는데, 과연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논다’라는 것은 느리게 산다, 휴식을 한다, 레저를 즐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바쁘고, 힘들고, 분주한 것은 자본의 회로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수들조차 사실 한가하지 않다. 게으른 사람도 머리가 꽉 차 있다. 자본의 가치로부터 벗어나야 정신도 쉴 수 있다. 다른 가치에 눈이 뜰 때, 그러면 새로운 생명력이 새싹처럼 자라는 걸 느낄 수 있다.
* 책을 쓰는 것도 노동 아닌가? 나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살고 있다. 물론 바쁘긴 하다. 어제도 동의보감 리라이팅을 하는데 머리가 터지더라. 근데, 나는 휴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왜냐하면 현재 나의 삶은 휴가와 돈과 놀이와 그리고 사람 만나는 게 하나로 돼 있기 때문이다. 도시인들이 왜 그렇게 죽어라 휴가에 목을 맬까. 평소에는 물질적인 것 이외에는 충족이 안 되는 바보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즐겁다. 더 이상이 필요하지 않다. 돈을 벌면서 정신을 만족시키는 게 당연한 거다.
* 명상, 요가, 스파 등 치유산업이 횡행하는데, 이를 어떻게 보나. 치유산업이 요사이 자본의 공약처가 되었다. 그동안 물질만 팔았고, 그것에 사람들이 껌벅 죽었는데 이젠 질렸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것을 상품화해야 한다. 그렇게 잘 먹고 잘 사는 얘들이 자기존중감도 없고, 결핍이 많고, 마음은 상처투성이니까 그 쪽으로 산업이 이동을 하는 거다. 종교와 산업이 원래 만나야하긴 하는데, 이상하게 만나고 있다. 그렇게 되다 보니 마음도 살 수 있고, 치유도 살 수 있고, 미래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정신 따로, 몸 따로 분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좋아하는 사자성어로 단도직입, 거두절미, 절차탁마, 종횡무진를 꼽았는데, 청춘들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을 사자성어로 들려 달라. 자업자득?(웃음).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라는 거다.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고, 정치가 때문이고, 구조적 문제이고 그런 말 대신, 그 조건에서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춘들의 압도적 지지로 이 정권이 되지 않았나? 왜 그거에 대한 책임은 안 지나. 그런 질문이 없다. 안 뽑은 사람도 공동의 책임이 있다. 자기 안에 있는 생명력을 하나도 쓰지 않는 게 너무 답답하다.
* 요즘 20대들이 다른 세대보다 힘든 부분이 있지 않나. 역사 인류학적으로 길게 보면 석기 시대 이후로 청춘들에게 넉넉한 시대가 있었던가. 아마존 원시 부족들을 봐라. 그곳은 청춘들이 어른이 되려면 성기 절단 등 잔혹한 통과의례를 해야 했다. 대학 나왔으니, 직장 마련해줄게, 그런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 천년이 지나도 그런 시대는 안 온다. 분노를 할 때 정직하게 해야 하는데, 비겁하게 하면 화병이 된다. 정확하게 표적을 못 찾고, 변죽만 올리면 육체적 무력증, 정신적 우울증이 된다. 일단 지금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힘든 부분은 30%는 자신들의 책임이다.
* <임꺽정>의 ‘노는 남자들’ 그 청춘들을 어떻게 보나. 그들은 불가촉천민이었다. 집도 절도 없고, 문자를 배운 적도 없다. 지금 젊은 세대들보다 훨씬 더 조건이 나쁜 사람도 이 정도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물질의 과잉 속에서 청춘의 에너지를 모조리 뺏긴 그 지점을 봐야 한다.
* ‘자업자득’을 위해서는 뭐부터 해야 할까? 자기 입으로 한 끼 먹고 사는 것부터 해야 한다. 여기 십대, 이십대한테 그런다. 도시 안에서 유목을 하고, 자본과 싸워서 산다는 건 시위 나가고, 정권 비판하는 게 아니라 부모한테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먹고 살수 있나를 되돌아보는 거라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라. 그 모든 조건은 나의 배경일 뿐이다. 거기서 내 힘으로 연 거, 내 힘으로 당당하게 추구한 가치 그 만큼이 내 몸에 운명의 지도로 새겨진다. 그래서 그 힘으로 사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유통기한이 지나면 사라진다. 다시 껍데기처럼 느껴진다. 얼마나 무서운 인과응보인가. 그래서 이 우주에서는 공짜 정신이 없다는 게 지금까지 내가 공부한 최고의 진리다. ‘공짜 밝히지 말아라!’
* 자립을 위해서 갖춰야 할 태도가 있다면? 자립하려면 수평적 네트워크를 취해야 한다. 친구를 만들려는 능력을 키우면 되는데, 부모도 학교도 안 가르쳐준다. ‘넌, 이겨야해’ 이것만 가르친다. 공동체를 익혀야 한다. 그게 학교를 다니는 이유다. 지금은 학교를 다니는 게 더 분리되는 방식으로 된다. 이런 분리 안에서는 소외밖에는 안 된다. 일하고, 휴식을 분리하고,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이게 자본이 갖고 있는 교환의 원리다. 관계를 만들어놓으면 자본이 개입을 못한다. 인류학자들은 다 알고 있다. 자본은 관계를 단절시키고, 화폐는 관계를 끊고, 증여는 관계를 연결한다.
* <돈의 달인>에서 화폐의 블랙홀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건 무언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끊기는 거다. 그래서 자업자득이다. 자연을 무자비하게 착취해서 문명을 이루고, 그래서 자랑스럽다 그러는데 그 대가로 분열, 소외, 왕따, 죽고 싶어지는 것이 돌아왔다. 한 끼 거를 때는 악착같이 살고 싶어지는데, 그게 자연이 주는 또 하나의 보답이기도 하다. 미국 가면 250kg의 거구가 많다. 그건 신인류다. 자연과 동물을 착취한 대가로 발생한 패스트푸드의 돌연변이다. 그 사람들이 문명의 짐을 짊고 있는 거다. 그리고 왜 성공했는데 자살하는가. 카이스트 학생들은 왜 죽는 건가. 연예인이 죽는다는 건 무엇인가. 만약의 그 가치를 받아들인다면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성공과 인기, 예쁜 몸이 됐는데 왜 죽는가. 안 맞는 거 아닌가.
* 사실 회사에서는 실재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는데, 왜 학생들이 스펙에 목숨을 건다고 보나. 뭔가 단단히 속고 있다. 영어 잘한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깐 중간에 어디선가 속는 거다. 학교하고 기업하고 코드가 안 맞는다. 기업은 ‘기초, 기본을 쌓아라’라고 하면서 학교에다 다시 교육시키라고 한다. 학생들 입장에선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데 안전 빵 아니면 못하겠어, 그러고 있는 거다. 감수하는 게 있어야 한다. 학벌을 버리겠어, 학벌과 무관하게 길을 열겠다, 이런 문화가 생기면 희망이 있으려나. 내가 아는 출판사도 학벌과 상관없이 인재라면 뽑는다. 근데 불안하기도 하고, 자신의 자율성을 못 믿어서 스펙에 목매는 거다. 부모도 자식에게 ‘그냥 평균이라도 살아라. 네가 그 길을 살 수 있겠니. 절대 모험하지 마. 요만큼이라도 얻는 걸 택해’라고 말하고. 그래서 자업자득이다.
* 어떤 청춘을 보면 “너, 참 행복하게 사는 구나”라고 느끼나. 여기도 자기 경쟁이 있다. 하지만 자본이 개입하지 않은 경쟁은 자기를 활성화시킨다. 경쟁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자기가 강해지고자 하는 것, 뭔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고자 하는 게 없으면 이상한 거다. 근데 척도가 하나일 때 문제다. 자본은 모든 척도의 다양성을 깨기 때문에 문제다. 척도를 깨면 다양한 방식의 자기가 구성이 된다.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17살에 나와서 2년 동안 인문학을 하고, 작년에 <다른 십대의 탄생-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라는 책을 쓴 친구가 있다. 여기서 공산당 선언, 헤겔 등 굉장히 어려운 걸 읽으면서 그만큼을 섰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 그냥 고등학교를 다녔으면 명문대를 너끈히 가고도 남았을 텐데, 스스로 대학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다.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을 글쓰기로 표현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 친구가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나는 걔한테 청소년 학교를 맡길 거다.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길을 열어주는 거다.
* <임꺽정>을 보면 사주명리학적으로 공부복과 학벌은 전혀 다른 범주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학벌은 돈이다. 공부에 별 뜻이 없는 얘들의 학벌이 너무 높아지고 있다. 왜냐면 그게 수단이 되니까. 나는 대학을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지는 박사까지 하고, 왜 가지 말라고 그러는데, 내가 대학을 갔던 시절은 돈 하나도 안 아까웠다.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가야 한다. 근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까. 청춘을 다 버리고, 친구 하나 못 사귀고, 취직도 안 되고, 자괴감만 들고. 대안이 없으니까 인문학적인 열정을 가진 얘들도 전부다 스펙 경쟁을 하게 된다.
* 현재 대학교육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대학 가도 글쓰기 능력을 못 배운다. 책 한권을 쓸 수 있나? 대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뭔가. 지적 주체가 되는 거 아닌가. 평생 책 한 권 못 쓰는 게 대학원이고, 대학교수는 아니지 않나. 책을 쓴다는 것은 대중과 소통하는 거다. 나는 대학을 다닐 때 너무나 좋은 글쓰기를 받았다. 지금 직장도 없는데 먹고 산다. 책을 팔면 길거리 강의가 생기는데, 대학보다 많이 한다. 여기 연구실은 철저히 글쓰기를 통해 생업을 하는 게 목표다.
* 책이란 게 누구나 쓸 수 있는 건가? 지난주에 <고전톡톡>이 나왔다. 이곳에는 아직 저자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학벌은 고졸, 대졸, 대학원졸, 박사 등 다양하다. 이 사람들을 대중과 소통하는 글쓰기를 해주는 게 목표다. 멘토링 글쓰기라고 1:1 사교육을 했다. 1년 동안 일요신문에 연재를 했다. 그것을 업그레이드해서 묶은 책이다. 일단 서울신문에 연재를 하려면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20번씩 고쳤다. 그렇게 하니까 대학교 1학년생도 쓰더라. 이름을 지우면 얘가 대학원에서 고전문학 전공했나, 라고 느낄 정도다. 우리도 놀랬다. 이게 진짜 되는구나, 하면서. 이젠 핑계를 못 된다. 학벌이 모자라서, 배운 게 없어서, 쟤는 맞춤법도 몰랐어, 그 이야기는 끝났다. 내년에는 인물 시리즈인 ‘평전 콘서트’를 연재한다. 3년 안에 책을 낼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러면 신인인데 데뷔하는 거다. 음반 내는 거랑 똑같다. 대학원이 원래 이런 일을 하는 거다.
* 어느 책의 메인 카피가 “문제는 당신이 너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다. 일중독에 빠진 직장인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삶을 통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중독에 빠지는 것은 ‘지금만’ 본다는 거다. 사람은 매순간 전체를 살아야 한다. 그럼 이 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가 불안해 그러면서 딱 하나의 욕망만 보고 산다. ‘이것만 모면하면 돼’ 하고 살면 불안과 충동, 이 두 가지로 살게 된다. 그런데 미래를 통으로 보고 자신이 80년 산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럴 필요가 없다. 여유가 생길 거다. 돈, 연애, 하나만 꽂히는 게 아니라, 친구도 중요하고, 연애도 중요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이게 하나로 섞이게 된다. 지금 내가 행복해야, 80세에도 행복하다. 행복을 훈련을 안 받았는데, 어떻게 80세에 행복하겠나. 잘라서 생각하지 말아라. 그러면 내가 지금 백수고 가진 게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할 만한 것들이 있다. 어떤 조건에 있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자기가 쓸 수 있는 다양한 카드가 있다. 그거를 잘 배치해서 일단 지금 행복할 수 있는 훈련을 하자.
* 막상 경쟁 시스템에 들어가면 벗어나기 힘든 것 아닌가. 그래서 자기 몸에 대해서 가장 폭력적인 관계가 된다. 식사 제멋대로 하게 되고, 자기 몸을 쓰레기 취급하게 된다. 그 트랙 안에서는 행복한 ‘척’ 행복한 ‘이미지’만 뿌린다. 그 트랙을 벗어나야 한다. 연예인들이 그 대행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어떤 하층계급도 연예인보다 힘들게 살지 않았다. 노동력 자체가 상상력 초월이다. 스님들도 그 정도 하면 도 닦을 거고, 해병대도 그런 식으로 훈련 안 받을 거다. 그렇게 홀로 남으면 정확하게 자본이 원하는 타깃이 된다. 이 게임을 하지 말라는 거다. 나는 단 한 번의 우주적 사건이다. 자기가 자기를 배려해야 한다.
* <가난뱅이의 역습>을 쓴 저자의 삶은 어떻게 보나? 재밌는 삶이다. 그 책 읽고 <돈의 달인>에도 인용했는데, 일본에서 그런 캐릭터가 나온 거다. 왜 집을 그렇게 사야 해, 왜 빚을 그렇게 져야 해, 세상에 있는 것을 내가 이용하면 되잖아, 하는 태도는 한번쯤 귀 기울여 볼만 하다. 가난뱅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딜 가도 활용하는 게 많다는 지점이 중요하다. 사람을 사귀면 활용할 수 있는 게 많다. 공간뿐 아니라 의식주 전부가 해결된다. 사람과의 연결을 할 줄 모르면 ‘내 거, 내 돈 아니면 다 아무것도 없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와 친해지면 그 사람 집에서 잘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다. 임꺽정의 칠두령이 그렇게 살았다. 일 좀 해주고 의식주 다 해결하고,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았나.
* ‘임꺽정과 친구들’처럼 잘 놀려면 인간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사이버 공간에서는 전 세계가 연결됐다. 그런데 신체는 옆에 있는 동료도 쳐다보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몸은 소외가 된다. 존재는 통으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이미지로만 살 수가 없다. 몸으로 하는 접속이 다음 리더십이나 상상력의 원천이 될 거다. 대중문화도 그 코드로 읽힌다. 야생체험을 많이 하는 게 그 증후다. <1박 2일>, <런닝맨> 모두 몸으로 뛰는 거다. 왜 오디션을 많이 할까. 모두 몸으로 하는 것들이다.
* 몸을 너무 안 쓰다 보니, ‘사서 고생하는’ 캠핑 100만 시대가 열린 걸까. 몸의 기운을 쓰지 않으면 인간은 우울해지거나 중독된다. 그러니까 인터넷에 빠진 사람들은 그거에 안 빠지면 우울하다. 몸이라는 게 늘 운동을 해야 한다. 뇌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우울증이다. 절박한 문제다. 어디를 좀 고치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정체가 돼 있다. 그러면 그게 죽음 아닌가. 그래서 몸을 공부하게 됐다. 감정이 오장육부를 바로 바로 움직인다. 일상 안에서 즐거울 수 있는 게 최고의 의학이다. 현대인들이 거기에 무지하다. 그리고 어디 가서 배려 받을 생각만 한다. 돈 들고 가서, 누구한테 상담 받고 대화하는 방도 있다고 하던데, 세상에, 자기 동료랑 가족들은 왜 말을 안 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 수없이 많은 고전 인물들을 접했는데, 그 중 멘토를 소개해준다면? 일단 연암 박지원이 나한테는 가장 큰 스승이다. 내가 인물 평전을 중시하는 게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라는 거다. 일단 고전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면 배울 게 많다. 안데르센이 그 동화책을 쓸 때까지 어떻게 살았는가.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걸 버릴 수 있었는가를 보는 거다. 박지원은 천재이고, 집안도 빵빵한데 과거를 안 봤다. 그게 쉬운 일인가? 삼시를 패스할 수 있는 데 관직을 포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열하일기> 같은 세계 최고의 걸작이 나올 수 있었다.
* 박지원을 좋아하는 이유가 유머 때문이라고 했는데, 유머의 힘은 무언가? 유머는 고정관념과 기성의 철학을 깰 수 있는 균열지점에서 나온다. 상식을 이탈할 때 웃기지 않나. 연암에게 유머는 기존의 철학적 배치를 바꾸고, 전복할 수 있는 철학적 무기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유머와 서사만 있으면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다 필요 없다. 연암은 지식인이라고 치고, 임꺽정은 무식한 얘들이다. 근데 얘들도 길거리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이유가 어디가든 이야기를 잘해서다. 자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유머를 가지고 있다. 그게 바로 접속의 최고 지점이다.
* 소통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성형을 하고, 보톡스를 맞으면 표정을 잘 못 읽는다고 한다. 참 예쁘게 생겼는데, ‘안 통한다’ 그럼 무슨 소용이 있나. 그리고 예쁜 거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인류학자들이 어떻게 남녀가 짝짓기를 하는가 연구했더니, ‘중지의 길이, 귓불, 눈과 눈 사이’ 이게 결정적인 선택의 지점이란다. 누가 중지 길이 보고 연애를 하나. 무의식 속에 있는 거다. 그리고 페르몬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종들의 기본 핵심은 냄새다. 자본은 냄새를 팔 수 없기 때문에, 시각을 특권화해서 나머지 감각을 죽인다. 그래야 상품이 되니까. 여기에 놀아나고 있다. 그건 애인도 안 되지만 친구도 못 사귀는 꼴이 된다. 소통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니 연애를 해도 해도 공허하고, 금방 싫증나고, 금방 버림받는다. 예쁜 여자들이 빨리 버림받는 이유가 있다. 자기가 예쁘다는 것 때문에 소통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상처 받았다’ 그러는데 대가가 있는 거다. 공짜가 없다.
*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 책 한 권 추천해 달라. <멘토를 찾아가는 글쓰기-고전톡톡>을 권한다. 이 중에서 딱 꽂히는 고전을 택해서 그 고전과 3년 이상 몸을 섞는 거다. 그리고 그 저자하고 사랑을 해봐라. 그러면 진짜로 다른 인생이 열린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평전을 쓰든 글을 하나 완성하면 글이 좋으면 출판사에서 다 내준다. 학벌 이런 거 전혀 안 따진다. 이런 데 도전을 해보면 자기 멘토도 생기고, 평생 백그라운드도 생긴다. 내가 <열하일기>로 10년째 먹고 살고 있지 않나. 그리고 큰소리치는 거다. 연암이라는 스승 백이 있으니까. 이런 게 대박 아닌가.
* 어떻게 노는 것이 잘 노는 것일까?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고민하다가) ‘행복은 순환과 소통이다’. 몸으로 한 만큼, 그게 바로 자신의 행복이니까. 아니, 이렇게 바꾸는 게 낫겠다. ‘삶의 모든 것을 순환하라’. 그게 더 구체적인 설명이 될 것 같다.
* 마지막으로 고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전은 일용할 양식이다.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일용할 양식이 없다. 그리고 고전은 실용적이다. 웬 만 한 밥이 돼준다. 다른 어떤 것보다 나를 빨리 먹고 살게 해주고, 그리고 존재 자체 통째로 살게 한다. 시야가 넓어지면서 시대와 교감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방법 아닌가?
<하퍼스 바자>, 7월호. 15주년 기념호.
후기. 지난 6월부터 7월 사이, <하퍼스 바자>에서 인문학자 특집 코너를 진행했다. 근 10년 간 많은 인터뷰를 해왔지만, 정말 짜릿하고 행복하고 두 눈과 심장이 번쩍 뜨이는 순간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뷰를 빙자한 ‘저자 직강(것도 1:1)’이라는 엄청난 소원을 이뤘다. 고미숙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어찌나 행복했던지, 그 날 하루종일 콧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이 인터뷰를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나 ‘퇴교’를 꿈꾸는 젊은이들. 그리고 일 중독에 시달리는 직장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글. 김윤경. 독립 지향 잡담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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