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나 한번 해볼까, 그 무시무시한 도시괴담"
[서평] 골목사장 분투기 "말이 좋아 사장이지 인생 망치는 지름길이야"
홍대 앞,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그럴 듯한 커피숍. 탤런트 한예슬이 모델인 카페베네 체인점이다. 3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이곳의 임대료는 월 2500만~3500만원 수준. 이 정도면 권리금만 3억~4억원, 인테리어 등 초기 투자 비용만 10억원에 이른다는 게 업계 상식이다. 이자를 연 5%로 잡으면 기회비용만 월 450만원인 셈이다. 대출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기회비용은 더 불어난다.
넉넉히 잡아 주말에 600명 정도, 평일에는 200명 정도 손님을 받는다고 치면 월 5200만원 정도 매출이 나온다. 임대료를 최소 2500만원으로 잡고 아르바이트생 5명 시급 5000원씩에 매니저 한 명 인건비를 더하면 1100만원. 여기에 재료비가 780만원, 수도와 전기 등 제반 비용이 200만원, 시설 및 건물 유지비용을 50만원으로 잡으면 4630만원. 그럼 겨우 600만원이 남는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10억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450만원을 벌 수 있는데 한 달 내내 일해서 150만원을 더 버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계산조차도 매우 낙관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데 있다. 주말에 600명씩 찾는 커피숍이라면 대박을 넘어 초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홍대 앞에 그런 가게는 거의 없다. 지금이라도 가게를 정리하면 권리금을 포함 7억~8억원 정도를 건질 수 있다는 게 부동산 중개업자의 설명이지만 그건 사실 미친 짓에 가깝다.
‘골목사장 분투기’는 경영 컨설턴트 출신으로 커피숍을 창업했다가 홀딱 말아먹은 강도현씨가 쓴 책이다. 강씨의 커피숍은 좀 더 규모가 작았다. 홍대 인근의 35평 2층 공간. 같은 크기로 1층에 얻으려면 임대료가 800만~1200만원에 이르지만 2층은 300만원 밖에 안 됐다. 그런데 여기에 보증금 이자와 관리비와 부가가치세를 더하면 400만원 가까이 된다. 처음 창업할 때는 몰랐지만 커피를 팔아 400만원을 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씨의 가게는 아메리카노 한 잔에 3500원, 객당 평균 매출은 4000원 정도였다. 100잔을 팔아야 40만원을 번다는 이야기인데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2시간 영업하는 카페가 세 번은 꽉 차야 그 정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가게를 열고 보니 금요일이나 토요일 정도에만 그것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겨우 30만원을 넘었다. 하루 평균 20만원도 쉽지 않은데 한 달이면 잘해봐야 600만~700만원 수준이다.
매출 700만원이면 임대료 400만원을 내고 아르바이트생 인건비가 150만원, 수도와 전기 등 공간 운영에 50만원, 원두와 음료 재료비가 150만원, 모두 더하면 비용이 680만원이 된다. 여기에는 물론 주인의 인건비는 포함돼 있지 않다. 한 달 내내 일해서 가져가는 돈이 한 푼도 없는 셈이다. 손님을 끌기 쉬운 1층에 가게를 낸다면 매출을 1000만원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홍대 정문 앞 300m 안에만 커피숍이 17개나 된다.
강씨의 충고와 조언은 냉정하다. “높은 임대료를 버티려면 규모의 경제를 이뤄서 상권을 독점 또는 과점해야 한다. 그러려면 초기에 대규모 자본이 소요된다. 독점의 필수 조건인 좋은 입지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권리금을 엄청나게 지불해야 한다. 고작 퇴직금 2억~3억원을 들고 들어올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홍대에 작은 커피숍이 있을 자리는 없다. 홍대 뿐만 아니라 메인 상권으로 불리는 곳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몇 억 말아먹는 건 순식간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단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28.8%가 자영업자다. 소상공인의 57% 이상이 평균 순이익 100만원 이하고, 창업 후 2년 안에 50%가 폐업한다. 자영업자 중 80% 이상이 주말 없이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한다. 결국 이들은 업종을 바꾸게 되고 그때마다 빚을 내고 심지어 사채까지 쓰고 난 후,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이게 현실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피자 가게를 했던 라아무개 사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방 6평에 매장 6평인 공간이 월세가 180만원이나 했다. 2인용 테이블을 6개 꽉꽉 채워 장사를 했지만 공간이 좁다 보니 매출에 한계가 있었다. 주인과 쉐프, 아르바이트생 포함해서 3명의 직원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계속 일을 했는데 결국 쉐프가 먼저 지쳐 떨어졌다. 월급을 올려준다고 해도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라 사장의 경우는 오히려 장사가 잘 돼서 망한 경우였다. 처음 6개월 동안 적자를 봤지만 이후 월 매출이 1000만원이 넘고 최고 1700만원까지 찍을 때도 있었다. 순이익이 500만~600만 정도 됐지만 오픈 발이 다하자 1000만원 수준으로 내려왔다. 초기 투자비용이 5000만원이었는데 그보다 넓은 곳으로 옮기려면 1억원 이상을 더 투자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투자비용이 늘어날수록 당연히 리스크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라 사장의 피자 가게는 객당 단가가 8000원 정도였다. 원가 비율이 30%니까 350명까지는 임대료를 지불하는 데 나간다. 테이블이 6개니까 한 번 채우면 임대료, 한 번 더 채우면 인건비, 기타 제반 비용까지 생각하면 하루 네 번 회전을 해야 고정 비용을 뽑게 된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일해도 남는 게 없는 시스템이다. 손님이 늘 가득 차고 가끔 줄 서서 기다리기도 했지만 결국 공간의 한계가 매출의 한계였던 셈이다.
골목마다 들어선 편의점들은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신촌에서 구두가게를 하다가 편의점으로 전업한 한 ‘사장님’의 사례를 보자. 편의점 컨설턴트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최소 수익금 500만원을 맞춰 줄 테니 편의점으로 바꾸라고 제안했다. 전체 수익의 35%를 본사가 갖고 65%를 점주가 갖는 시스템이었다. 2003년 편의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본사에서 가져가고 남는 수익금이 월 100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운영을 해보니까 임대료야 원래 내던 것이니 감안하고 있었는데 인건비도 임대료만큼 나가는 거야. 내가 잘 모르다 보니까 아르바이트를 3명 썼어. 24시간이니까 3교대로 10명 정도 쓴 거야. 전기세, 수도세, 이런 거 합쳐서 150만원 이상 나가고 각종 공과금과 세금, 시설 운영 등 돈 나가는 데 가 한두 군데가 아니잖아. 1000만원 수익을 올려도 이런 저런 비용으로 다 나가고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정말 한 푼도 안 남아.”
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편의점 사업을 접으려고 했을 때 벌어졌다. 본사에서 위약금과 시설비, 인테리어비 등등 해서 1억50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계약서에 다 들어있었다는 거지. 너무 황당하잖아. 3년 동안 죽어라고 고생했는데 나한테 오히려 1억원을 물어내라니까. 그동안 35%씩 다 가져가놓고 말이야.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본사에 연락해서 사정했지 뭐. 그래서 본사에 현금으로 7000만원을 갖다 바쳤지. 그때 내 심정이 어땠겠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프랜차이즈를 접고 구멍가게로 바꾸고 나자 바로 근처에 본사 직영점이 들어왔다. 본사 차원에서도 손해를 볼 게 뻔했지만 본보기를 삼으려는 비열한 보복이었다. 손해를 보면서 버티기를 2년, 본사 직원이 찾아와서 “사장님, 간판을 달아주시면 당장 철수하겠습니다” 그러더란다. 다시 프랜차이즈로 들어가봐야 상황이 달라질 건 아니고 결국 버텼더니 본사 직영점은 철수했고 지금은 그냥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련의 사례들에서 발견되는 자영업의 몰락, 두 번째 이유는 높은 임대료다. “뼈 빠지게 일해서 임대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푸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자영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니 장사가 안 되는데도 임대료가 떨어지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권리금을 덤터기 씌워 이익을 챙기는 성공사례도 없지는 않지만 이런 시스템이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든다. 극단적인 사례가 용산 참사다.
일산의 핵심 상권에 자리잡은 10평짜리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다. 목이 좋은 곳인만큼 권리금이 1억2000만원이나 됐지만 버거킹과 맥도날드 인근이라 장사가 잘 안 됐다. 임대료가 월 180만원, 인건비 150만원, 기타 등등 비용을 더하면 연 매출 1억원이 돼야 월 150만원을 집에 가져갈 수 있다. 1년에 2만개의 샌드위치를 파는 게 가능할까. 10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좁은 가게에서 날마다 55개를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이 가게는 1년 뒤 문을 닫았고 커피숍이 들어섰다. 권리금은 1억원으로 깎였다. 샌드위치 가게 주인이 큰 손실을 봤을 것으로 보인다. 2년 동안 2억원 정도 손해를 봤을 거라는 게 주변 사람들 이야기다. 안타깝지만 그 자리에 들어선 커피숍 역시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이 매물로 나올 리 없고 안 되는 곳에 들어가 성공하기가 쉬울 리 없다. 절망을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15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창업이었다. 성공 신화를 꿈꾸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뒤늦게 깨닫는 건 어마어마한 임대료와 턱없이 낮은 서비스 요금, 최소한의 생존 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열악한 수익구조다. 자영업 창업은 도시괴담이 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1이 자영업자인 이런 나라는 세상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
강씨는 이 책에서 자영업자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자영업의 위기는 사람의 위기다. 강씨는 “시장이라는 다소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접근해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영업 대책은 복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개념까지 나가지는 않지만 자영업자를 기업이나 자본가가 아니라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접근 방식과 문제의식이 새롭다.
물론 대박을 터뜨리는 자영업자들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이 커피숍이나 24시간 편의점, 소규모 요식업에 한정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초보 자영업자들이 그나마 안정성을 고려해서 선택하는 게 이들 업종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엄청난 빚더미와 함게 문을 닫는 게 현실이다. 먹는 장사가 남는 장사라는 옛말이 먹히지 않게 된 게 오래 전 일이지만 단 돈 몇 천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은 게 또 현실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안병은 수원시 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의 조언도 의미 심장하다. “문제는 수익이 적다는 게 아니라 안정성이 없다는 거에요. 수익이 적으면 최소한의 안정성은 있어야 되는 게 투자의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기대수익은 작으면서 위험 또한 크단 말이죠. 자영업자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느낄까요. 경쟁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쉬운 말로 억울한 거에요. 결국 피해의식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거든요. 일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이 돼야 하는데 계속 불안한 상태로 있는 거죠.
일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것들을 하게 돼요. 투잡, 쓰리잡, 그럼 또 사업은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정말 큰 문제는 이런 악순환이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건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죽도록 힘든 상황까지는 가지 않도록 해야 해요. 자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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