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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쇼쇼쇼

아/ㅜ 2003. 1. 5. 18:18 Posted by 로드365


영화의 여백에서 만난 우디 앨런

36년 간 33작품을 감독하고 39작품에 출연한 시네아스트를 꼽으라면 언뜻 몇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각색-연출-주연을 도맡았을 뿐 아니라 그의 필모그래피가 여전히 진행형이고, 게다가 '위트와 패러독스가 포석처럼 깔린' 코미디의 대가라면, (내가 아는 한) 답은 하나밖에 없다. 문화적 맥락에 크게 의존하는 그의 신경증적인 수다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디 앨런을 빼고 쓴 영화사는 왠지 공허한 불균형감을 줄 것만 같다. 미국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이렇게 말할 법도 하다. 뉴욕을 줄 테니 우디 앨런은 놔둬다오!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의 오만함에 비해 자기 영토를 내기에 거는 게 더 겸손한 거 아닐까? 미국이 진정 문화를 사랑한다면 말이다.

우디 앨런 홈페이지는 '여긴 왜 왔수?'라고 물어보는 듯한 앨런 특유의 생뚱맞은 표정으로 문을 여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만큼 많은 걸 보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여러 관련 아티클과 인터뷰는 양이 적지 않거니와, 영화에서와 같은 듯도 하고 다른 듯도 한 앨런의 목소리를 영화의 여백에서 직접 들려준다. "난 사람을 끔찍한 사람과 비참한 사람으로 나눕니다. 여전히 아주 비관적인 삶을 살고있지요. 알다시피 삶은 괴물스러운, 괴물 같은 거지요." 그가 염세주의자라는 건 염세주의의 치유책이 폭소 가득한 영화라는 고백에서 간신히 이해될 수 있을 듯싶다. 그는 베르히만을 흠모하고 고전 유럽영화의 진지함을 사랑하는 심각한 취향의 소유자이며, "영화를 만들 때마다 훨씬 더 무거운 작품을 쓰고싶어 하지만, 불행히도 생긴 대로 놀 수밖에 없"기 때문에 코미디만 쏟아낸다.

세계관과 기질의 생래적 간격은 많이 배울수록 불행하다는 경험론적 인식으로 강화되는 듯하다. 주류 와스프, 특히 여성의 단순한 행복을 부러워하면서 조롱하는 유태계 지식인 남자의 편력기는 "무식을 경멸하는 데서부터 단순함에 대한 찬양을 거쳐 모든 나쁜 '부작용'과 더불어 지식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갔다." 생각이 많으면 세상은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엉켜있는 실타래처럼 보인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괴로워한다. 게다가 지적인 취향은 대중에 대한 우월감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바로 그것이 직접 느끼고 반응하는 단순성을 방해하는 덜미로 작용한다. 그 덜미의 비극은 역으로 지식에 대한 모순적 태도, 지식인에 대한 존경과 풍자로 발전한다. 그럼에도 지식인은 지식의 딜레마를 긍정하며 껴안을 수밖에 없다. "생긴 대로 놀 수밖에 없"으니까. 지식(인)에 대한 이런 주변적 접근은 심취가 아닌 거리두기를 통해, 행복한 척하는 것의 거짓 행복, 심각한 척하는 것의 웃김을 폭로하는 코미디가 제격이다. 앨런의 코미디는 미국 내 비주류 지식인이 취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이중성이자, 미국 지식계가 유럽 지식계에 느끼는 양가감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런 딜레마의 줄타기는 어느 것도 답도 아닌, 살아가면서 겪는 그때 그때의 깨달음으로 이루어진다. "앨런에게 영화 만들기는 그 순간 그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편으론 쉽게 만든다. 리허설 없이 때로 뭘 찍는지도 모르고 촬영장에 나서는 앨런은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가 탐닉한 재즈 스타일의 즉흥적 신선함 속에 주저 없이 자기 생각을 찍어내는 일은 마냥 쉽다기보다 오히려 엄청난 자기 갱신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하루종일 음식을 만든 요리사가 정작 그걸 먹고싶어하지는 않듯, 앨런은 자기 영화를 다시 보려하지 않는다. "내가 한 모든 끔찍한 것들, 오류들, 타협들, 실수들을 본다는 건 끔찍한 경험일 겁니다. 그래서 난 그걸 밀쳐놓고 다음 것을 향해 갑니다. 되도록 빨리 과거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영화는 이내 거기서 부끄러움을 느낄, 그럼으로써 자신의 변화를 체감할 자기 표현의 도구이자 흔적이다.

스탠리 큐브릭 같은 영화 건축가가 '집짓기'를 추구했다면 앨런은 명백히 '길가기' 스타일에 속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불멸의 마스터피스가 아니라 끝없는 여정의 기록이다. 걸작도 졸작도 없이, 모순으로 가득 찬 자신과 세상의 우스꽝스러움을 매순간의 영감과 재치로 찍어내는 자체에 그의 천재성이 있을 것이다. 앨런은 고다르를 "실패할 때도 천재"라 부르는데, 같은 찬사를 받을만한 앨런은 미국의 고다르 아닐까. 무엇을 다루는가보다,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자기 생각을 찍어야할지 고민하는지를 찍는다는 바로 그 점에서. 또한 그 찍기는 전체적 궤적 자체로 누구도 넘보기 힘든 다른 의미의 걸작이라는 점에서. "내 성욕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이다."(우디 앨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쓰레기 같은 세상], 황금가지, 2000) 앨런이 자주 들먹이는 프로이트를 들먹이자면, '승화'된 성욕으로서의 그의 창작욕 역시 기네스북 감이다. 성욕이 과하다 싶은 이들은 앨런을 귀감으로 삼아보는 것도 좋겠다.  정승훈 reptile27@hanmail.net 




우디 앨런 가쉽Gossip 모음  



숀 펜 + 우디 앨런  2002-11-11
숀 펜과 우디 앨런이 신인 감독 스티브 빙의 코미디 <왜 남자들은 결혼해선 안 되나>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왜 남자들은 결혼해선 안 되나>는 고통스런 이혼 뒤 결혼반대주의자가 된 한 남자와 잦은 이혼에도 불구하고 결혼의 성공을 믿고 현재 결혼 상태인 다른 남자가 등장하는 이야기. 스티브 빙은 9년 전에 <에브리 브레쓰>라는 영화를 한편 연출한 적 있는 생소한 감독으로 최근에는 <캥거루 잭>이라는 코미디를 찍기도 했다. <왜 남자들은 결혼해선 안 되나>에서 숀 펜은 결혼반대주의자 캐릭터를, 우디 앨런은 결혼의 성공을 믿는 남자를 연기할 예정. 숀 펜과 우디 앨런은 앨런의 <스윗 앤 로다운>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만난 바 있다. 이 영화는 내년 8월 크랭크인한다.


우디 앨런, 법정 공방 승소  2002-06-17
우디 앨런이 오랜 친구이자 파트너인 진 도매니언과의 법정 공방에서 승소했다. 도매니언은 앨런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 <브로드웨이를 쏴라> 등을 제작한 프로듀서. 뉴욕 맨해튼 법정은 “도매니언과 5200만달러에 영화 세편의 연출 계약을 맺었지만 지금까지 여덟편을 만들었다”면서 1200만달러를 더 지급해야 한다는 앨런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선고했다.


우디 앨런, 전 동업자 상대 소송에 합의   2002-06-14
수익금 착복 혐의로 두명의 전(前) 제작자를 제소했던 영화감 독 우디 앨런이 재판 시작 9일만인 11일 소송 취하에 합의했다.
앨런의 변호사 마이클 츠바이크는 이날 공동 성명서를 통해 '양측이 분쟁에 대한 사업적인 합의를 도출해 소송이 종결됐다'고 밝혔다.
양측 변호인단은 그러나 합의 조건에 대해 밝히길 거부했고, 이들의 요청에 따라 뉴욕주 최고법원측도 비밀을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우디 앨런은 제작자 진 두마니언과 동업자 자키 사프라가 <불릿츠 오버 브로드웨이>, <마이티 아프로디테>,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등 지난 93년 이후 만든 8편의 영화에서 자신의 몫으로 돌아올 1천300만달러(160억원 상당)을 착복했다며 제소했었다. (뉴욕 =연합뉴스)


우디앨런,스페인 최고 예술상 수상 2002-06-07
미국의 우디 앨런(66) 감독이 스페인 최고의 예술상인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예술상'을 수상했다.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재단은 4일 "앨런 감독이 32편의 영화에서 보여준 창조적인 재능과 작가, 시나리오 작가, 배우, 감독 등 다양한 활약을 보여준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수상이유를 밝혔다.

재단은 성명에서 18개국 43명의 후보 가운데 앨런 감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면서 "그의 전형적인 독립성과 날카로운 비판감각은 그를 뉴욕에 거주하는 세계 시민으로 만들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앨런은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면서"왕족을 결코 만난 적은 없지만 매우 기대된다"고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소프라노 바버라 헨드릭스에 이어 미국인으로는 두번째 수상자인 앨런 감독은 오는 10월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거행되는 시상식에서 펠리페 왕세자로부터 4만7천80달러의 상금과 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앨런은 할리우드의 주류 상업영화에 대항해온 지성파 감독으로 각본과 주연까지도맡는 것으로 유명하며, 영화 <애니 홀>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본상을 받은 데 이어 <한나와 자매들>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펠리페 왕세자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은 매년 문학, 예술,사회과학, 과학.기술연구, 통신, 국제협력, 스포츠, 평화 등 8개 부문에 상을 수여한다. (오비에도<스페인> AP.AFP/연합뉴스)


우디 앨런 신작, 칸영화제 개막작에   2002-04-08
쇠락한 노감독 그린 코미디, <할리우드 엔딩> 들고 앨런 본인도 참석 예정

우디 앨런의 신작 <할리우드 엔딩>이 제55회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칸영화제 조직위원장 질 자콥은 4월4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공식발표했으며 아카데미, 칸, 베니스 등 각종 영화제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우디 앨런은 올해 칸에는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할리우드 엔딩>은 영화제 개막일인 5월15일에 상영될 예정. 미국에서 5월 초 개봉할 <할리우드 엔딩>은 테아 레오니, 티파니 앰버 티에슨, 조지 해밀턴 등이 출연하는 영화. 우디 앨런이 70∼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하다 몰락해 CF감독을 하는 발 왁스먼으로 나온다. 사건은 쇠락한 노감독 왁스먼이 메이저 스튜디오로부터 연출제의를 받으면서 벌어진다. 왁스먼은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편집증 때문에 순간순간 시력을 잃는 일이 벌어진다. 왁스먼과 그의 친구들은 이런 사실을 제작자가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맨해튼> <카이로의 붉은 장미> <한나와 그의 자매들> 등 그간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우디 앨런의 영화는 적지 않지만 정작 그는 한번도 칸 해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아카데미상을 준다고 해도 뉴욕의 재즈클럽에서 클라리넷 연주를 했던 인물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 우디 앨런은 “프랑스인들은 언제나 나를 격려해줬고 지지해줬으며 여러 차례 나를 초청했다. 이번엔 뭔가 보답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로 올해 칸영화제 개막식에 참석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우디 앨런은 최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뉴욕에 대한 영화들에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단의 전화를 받고 당황했다. 내 오스카를 돌려받으려고 전화했나보다 했는데 그걸 맡긴 전당포도 망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는 농담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웃음폭탄을 던진 코미디의 대가 우디 앨런, 그가 오프닝을 장식하는 칸영화제라면 또 다른 재미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웬일로 협조적이지?  해가 서쪽에 떴나...  2001-07-10
해가 서쪽에 떴나. 자기 영화 홍보에 비협조적인 걸로 이름난 우디 앨런이 그의 밴드를 대동하고 영화홍보를 위한 순회공연을 떠난다고 한다. 8월10일 전미개봉할 신작 <제이드 스콜피온의 저주>의 시사회가 열리는 3개 도시가 그의 여정.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는 영화시사장에 온 사람들 앞에서 연주실력을 뽐내게 된다. 열혈 재즈광인 앨런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매주 월요일이면 맨해튼의 칼라일호텔에서 재즈 공연을 해왔다. ‘에디 데이비스와 그의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가 그가 소속된 밴드. 앨런은 클라리넷 주자다. 앨런은 지난 96년, 다큐멘터리 <와일드 맨 블루스>의 쇼케이스에 맞춰 유럽투어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 서부에서 그가 라이브 연주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월1일 시작해 6일에 끝날 그의 이번 ‘시사회공연’의 수익금은, 전액 해당지역의 비영리 음악단체에 기증될 예정이다.


자기 영화를 질투하다니!  2001-06-07
“내가 죽은 뒤 내 필름들이 변기 속에 처박혀도 상관없다.” 우디 앨런이 자기가 만든 영화를 ‘질투’하는 발언을 했다. 자기 자신보다 자기가 만든 영화의 명성이 오래 갈까봐 걱정된다고. “나는 내 작품을 통해 불멸성을 얻고 싶지 않다. 나는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의 인간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싶지 않다. 대신 내 아파트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그가 ‘오래살기’ 경쟁을 해야 하는 영화는 자그마치 34편이다.



따질 건 따져야지, 2001.05.23.
<브로드웨이를 향해 쏴라> <마이티 아프로디테>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그리고 또다른 우디 앨런의 최근작 5편. 우디 앨런이 제몫을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영화들이다. 1993년 이후 함께 만든 여덟 작품의 수익을 속였다면서, 우디 앨런은 그의 영화의 제작자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진 두마니언을 고소했다. 앨런에 의하면, 두마니언과 그녀의 영화사 스위트랜드 필름스는 앨런에게 그의 영화로 벌어들인 돈에 대한 정보를 “매우 불충분한” 정도밖에는 전하지 않았다고. 계약 역시 첫 세편만 문서상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 다섯편은 구두로 체결됐으며, 그나마 앞선 세편의 영화제작시 맺었던 계약을 기준으로 삼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앨런은 밝혔다. 두마니언과 앨런은 앨런이 스탠딩코미디를 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절친한 친구” 사이. 40년 가까이 친구이자 사업의 동반자로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다 법적 공방 속에 마주하게 됐다. “오랜 친구가 이런 방법을 택했다니 슬픕니다. 하지만 앨런의 진술은 틀렸어요.” 두마니언의 말이다.


우디, 펠리니 재단 명예회장 2001.03.20.
우디 앨런이 펠리니 재단의 명예회장으로 선정됐다. 펠리니 재단은 1993년 세상을 뜬 ‘영화계의 마에스트로’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과 영화세계를 연구하기 위해 동생인 마달레나 펠리니가 이탈리아 리미니에 설립한 곳. 이 재단은 감독이 생전에 직접 쓴 시나리오와 그의 그림들, 콘티 등의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그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앨런은 이번 직책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그동안 기자회견 등을 통해 펠리니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왔으며 그의 작품에 펠리니의 영화를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한편 이 재단의 부회장은 펠리니의 친구이기도 한 에토레 스콜라 감독이 맡게 됐다.




우디 앨런 인터뷰 모음  

<할리우드 엔딩> 감독 우디 앨런 인터뷰

"돈 번 졸작이 돈 못 번 걸작보다 높이 평가되는 게 현실"

<할리우드 엔딩>이라는 영화 제목은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어울릴 법하지 않지만, 그것이 프랑스가 사랑하는 감독 우디 앨런의 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돈을 갖고 튀어라> <바나나 공화국> 등 ‘괴상하다’ 싶은 우디 앨런의 초기작을 눈여겨본 것도, 끊임없이 지지하고 사랑해준 것도, 미국이 아닌 프랑스였다. 고소공포증에 광장공포증이 있다는 이 예민한 감독은 칸의 구애를 번번이 뿌리친 것이 맘에 걸렸던 듯, 프랑스 관객과 칸영화제에 대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 <할리우드 엔딩>을 들고 와, 드디어 레드 카펫을 밟았다.

한물간 영화감독 발(우디 앨런)에게 6천만달러짜리 스튜디오영화 <뉴욕은 잠들지 않는다>의 연출 제의가 들어온다. 문제는 그 영화의 프로듀서가 전 부인(테아 레오니)이고, 영화사 대표가 그녀를 빼앗아간 할리우드의 실력자라는 사실. 상황은 꼬여만 간다. 신경안정제 중독인 그의 예민하고 불안정한 내면은, 자신을 연출자로 추천했다는 전 부인에 대한 미련, 연적한테 고용당한다는 치욕스러움, 동거중인 배우지망생의 좌충우돌로 통제 불가능한 카오스 상태에 이른다. 크랭크인을 앞두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다. 포기하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상황.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속인 채 영화를 찍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21세기 뉴욕판 베토벤의 비밀이 드러나고, 영화는 폐기처분되기 일보 직전이다. 그때 프랑스 관객이 그의 영화를, 그리고 그를 구원한다.

우디 앨런은 한결 따뜻하고 밝아져 있다.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 영화는, 예술을 사칭한 자위에 불과하다”는 대사로 그런 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작품에 프랑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묻어난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뛰어난 감식안을 갖고 있다. 미국영화, 재즈음악은 물론이고, 윌리엄 포크너나 에드거 앨런 포 같은 미국 작가들까지 본고장에서보다 먼저 알아보고 인정해줬다. 그래서 늘 고맙고 정이 갔다.

아카데미에 이어 칸에도 나타났다. 무슨 신상의 변화라도 있었나.
-올 아카데미는 9·11 사건에 대한 추도의 뜻을 담았다. 뉴욕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칸은 조금 다르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영화를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 봐줬고 좋아하고 지지해줬다. 칸영화제에도 여러 번 불러줬는데, 단 한번도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내 감사의 뜻을 전하는 어떤 제스처를 보여줘야 할 것 같더라. 그래서 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최근 연이어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우연이다. 내가 개종을 했거나 은둔자 생활을 청산한 줄로 아는데, 아니다. 몇 시간 뒤에 집으로 들어가 콕 틀어박힐 참이니까.

생애 최초로 레드 카펫을 오르게 된다. 소감이 어떤가.
-글쎄, 미소를 지어보일 수 있어야 할 텐데, 많이 걱정된다. 지금 완전히 패닉상태다. 나 자신에게 ‘릴랙스’하라고 타이르는 중이다. 여기에 오기로 맘먹고 기분은 좋았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레드 카펫 주위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 거라는 얘길 듣고, 너무 긴장되고 겁나기 시작했다. 후회해봤자다. 이미 턱시도도 빌려놨는걸. (장내 폭소)

할리우드영화는 감독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눈 먼 감독’이라는 설정은 그런 현실을 풍자한 것인지.
-할리우드영화는 계산이 많이 돼 있는데, 그게 대개 돈 버는 문제다. 영화가 좋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식이다. 돈을 많이 번 후진 영화가 돈을 못 번 걸작보다 높이 평가되는 게 현실이다. 할리우드의 황금기라는 30, 40년대부터 그랬다. 감독들은 스튜디오와 싸워 이겨서, 걸출한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지만, 전체로 보면 아주 적은 편수에 불과했다. 내 자신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속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배우 캐스팅은 어떤 기준으로 하는가.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찾을 뿐이다. 난 훌륭한 배우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배우들의 연기는 칭찬하곤 한다. 사실 난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시하진 않는다. 말을 거의 안 하니까.(장내 폭소) 그런데 배우들이 알아서 잘해준다. 놀라울 정도로. 내가 하는 일이라곤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들을 고르는 것뿐, 그 이상은 아니다.

영화 속에 평론가 집단을 쓰레기로 매도하는 대사가 나온다. 당신 생각의 반영인가.
-난 개의치 않는 편이다. 어떤 평이나 기사도 읽지 않으니까. 일일이 평을 읽다보면, 그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읽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인생이 심플해진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평단이 내게 친절하고 관대해진 걸 느낀다. 잘못한 건 눈감아주고, 잘한 건 과장하는 거다. 관객이 외면할 때도 평단은 지지해줬고, 그게 많은 힘이 됐다. 영화 속에 그런 대사가 있었던 건, 문화에 딴죽걸기 좋아하는 캐릭터의 성격상 필요한 설정일 뿐이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당신도 당신 영화를 보며 웃곤 하는가.
-그렇다. 영화는 특히 코미디는 무의식에서 나온다. 각본을 쓸 때도 뭘 쓸지 모르는데, 그냥 뭔가가 튀어나온다. 생전 처음 구사하는 유머 같은 것들.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서 많이 웃고 즐기는 편이다.

영화 포스터가 당신의 캐리커처다. 채플린처럼 당신도 하나의 코미디 캐릭터가 된 것 같은데.
-코미디는 다른 진지한 영화들보다 훨씬 일반적이고 대중적이다. 그런 면에서 자크 타티나 버스터 키튼이나 찰리 채플린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무성영화 속에서 코믹 아이디어를, 그것도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해냈으니까. 코미디가 소리를 얻었다는 것은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는 것 같다.




우디 앨런, 웃길 줄 아는 사람  

지난 밤 이비에스에서 '맨하탄'을 봤다.
뒷골 땡겨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처음 봤을 때는 앨런 특유의 수다와 대중 문화에 대한 비꼬기에 맘이 쏠리더니
이번에는 관계들에 홀려 버렸다.
마지막 트레이시가 아이삭에게 충고하는 장면에서는
뜨끔하여 그만 눈물을 나려고 하더라.. 쯧쯧..

그러고보니 최근에 앨런의 영화를 많이 접한다.
'셀러브리티'는 그토록 보고 싶어 안달을하고 찾아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거부하더니
지난 밤, 유선방송을 타고 홀연이 내게 다가 왔다.
그역시 몹시 우디 알랜 스러운 내용이다.

한 때 소설가를 지망했던(실지로 NYT서평에서 혹평을 당한 소설을 한편 발표한 소설가인) 주인공은
나이 사십줄에 들어 인생의 회의를 느낀다.
동창회에서 쭈그렁이 되가는 동기들에 놀라고
밥벌이인 스포츠기자질과
명성을 위해 이리저리 시나리오를 팔러 다니는
자신이 삶에 그만 넌더리가 났던 것.
그래 어린 시절 결혼했던 아내와 이혼하고
이 여자 저 여자를 섭렵하며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꿈꾼다.
그러나 어찌된 팔자인지 자신에게 이혼당한 여성은 잘난 남자 만나
토크쇼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고
자신은 여자들에게 돌림빵으로 당하고
자신의 처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코믹 드라마되겠다.
주인공이 시사회 장에서 망연히 스크린의 '헬프 미'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숨이 막힌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앨런의 영화중에
'한나와 그의 자매들'이 제일 맘에 든다.
그건 정말이지 완숙하고 아름답고 우습고 씁쓸한 영화다.
벤야민의 말투를 흉내내면,
난 그 보다 더욱 앨런적인 영화를 알지 못한다.

뭐.. 오늘은 '맨하탄'을 본 기념으로
앨런의 콩트를 하나 알라딘에서 퍼 왔다.
앨런을 모른다면 조금이라도 그 맛을 보시라고..
원문의 출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쓰레기같은 세상/우디 앨런/황금가지>다.


사족:

1.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는 냉중에,
그러니까 글이 다음 목록으로 넘어갈 때 즈음 끝을 봐야 겠다는 생각이다.
이어질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다.
물론 이어질 내용을 궁금해할 사람도 없겠지만
삭제하기도 뭐하고 계속 공사중으로 남기기도 이상한 까닭이다.

2. (갑자기 존댓말) 오늘 종로에서 만남 재미있기를 빌께요.
예전에 그 쪽에 나가면 성곡 미술관이랑 시립 미술관에 들르곤 했는데..
시립 미술관은 아마 이전했지요?

3. 안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쓰레기같은 세상>

그래, 고백하겠다.

나, 빌라드 포그레빈이란 인간은 미국 대통령한테 총을 한 방 쏘긴 했지만 한때는 유순하고 잘 나가는 놈이었다. 관계자들에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겠지만, 구경꾼 중에 한 명이 내 손의 총을 툭 치는 바람에 그만 총알은 대통령을 빗나가 맥도날드 간판을 스쳐 힘멜슈타인 소시지 가게의 소시지에 박히고 말았다. 한바탕 우왕좌왕 드잡이가 있은 후, FBI 수사관 몇 명이 내 멱살을 잡아 오랏줄로 묶고 어디론가 싣고가 버렸다.

자, 그럼 어떻게 해서 내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느냐, 그게 궁금하시겠지. 나는 사실 아무런 정치적 확신도 없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 꿈이라고는 세계의 유명한 도시를 돌아다니며 첼로로 멘델스존을 연주하고 댄스를 즐기는 것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2년 전에 시작되었다. 나는 그 당시 군대에서 막 의가사 제대를 했는데, 그것은 나도 모르게 행해진 어떤 과학 실험 때문이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 군인들에게 LSD를 가득 넣은 구운 닭고기를 먹였는데,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 양의 LSD를 먹으면 무역센터 빌딩에서 날아오르려고 시도하게 되는가를 측정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국방성은 비밀 무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의가사 제대를 하기 전 주에는 어떤 화학 주사를 맞았는데, 그러자 나는 살바도르 달리와 똑같이 생겨먹고 똑같이 지껄이게 되었다. 부작용으로 마침내 삶은 달걀과 내 동생 모리스의 차이도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된 것이다.

치료 도중에 전기선이 행동 심리학 실험실의 전기선과 합선이 되어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군인 병원에서 받은 전기 충격 요법은 제법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 나는 침팬지 몇 마리와 함께 완벽한 영어로 <벚나무원 The Cherry Orchard>(러시아 작가 체홉의 작품)을 공연할 수 있었다. 빈털터리가 되어 제대한 나는 히치하이킹으로 서부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두 명의 캘리포니아 사람이 타고 있는 차를 얻어 탔다.

그 중 한 사람은 라스푸친(러시아의 초능력자)처럼 턱수염을 기른 카리스마가 있는 젊은 남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스벤갈리(이상한 힘을 발휘하여 다른 사람이 나쁘게 행동하도록 조종하는 사람)처럼 턱수염을 기른 젊은 여자였다. 그들에 의하면 나는 자신들이 찾아헤매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카발라(유대교의 신비 철학)를 양피지에 옮겨 적는 작업 중인데, 잉크로 쓰던 피가 다 떨어져서 사람을 구하러 나섰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직한 직업을 갖기 위해 할리우드로 가는 도중이라고 이야기하려 했지만, 최면에 걸린 그들의 눈과 뗏목을 젓는 노만한 크기의 칼을 보고는 그들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 외딴 목초지로 끌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최면에 걸린 몇 명의 여자들이 나에게 강제로 유기 건강 식품을 먹이고, 내 이마에 납땜 인두로 오각형의 별을 새겨넣으려고 했다. 그 순간 흑인 한 떼가 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그 중에서 두건을 슨 젊은 조수놈들은 라틴어로 주문을 외어댔다. 그들은 나에게 또 페리오티(마취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선인장의 일종), 코카인, 끓인 선인장에서 나온 흰 액체를 먹였다. 그것을 먹자 내 머리는 레이더 접시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 밖에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것들이 분명 내 머리에 이상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로부터 두 달 후 굴과 결혼하려다가 비버리 힐스에서 체포된 것이다.

구치소에서 풀려나자마자 나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내 정신을 그나마 보존하기 위해서 어떤 내적인 평화를 갈구했다. 길거리에서 전도사 한 명이 초우 복 딩이라는 종교 지도자와 함께 구원을 모색하라고 끈질기게 졸라댔다. 초우 복 딩은 둥근 얼굴의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그의 가르침은 노자의 가르침과 로버트 베스코(1970년대 초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 정치 스캔들의 핵심 인물)의 지혜를 결합한 것이었다. 찰스 포스터 케인(오손 웰스의 영화「시민 케인」의 주인공)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두 포기하기로 했다는 이 은자, 딩은 자신이 추구하는 <수수한> 목표 두 가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기도, 단식, 형제애의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토 연합군에 대항하여 종교전쟁을 벌이는 것이었다.

몇 번에 걸친 연설을 듣고 나니, 딩이 로봇 같은 충성심과 허울뿐인 신성으로 먹고 사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딩이 사기치는 과대망상가이며 그 추종자들은 그를 따르는 정신나간 좀비들로 변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후 그들은 나의 아랫입술을 붙잡고 경건한 신전으로 끌고 갔다. 그 곳에서 스모 선수같이 생긴 딩의 앞잡이 하나가 나에게, 이곳에서 물이나 밥 같은 것도 먹지 말고 몇 주 동안 지내면서 내 입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태도가 맘에 안 든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그들은 내 잇몸에 무수한 주먹 세례를 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내가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내 특유의 주문인 <요잇>을 거듭 외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테러에 굴복하여 환각 증세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때 본 환각 중의 하나는 스키를 신은 프랑켄슈타인이 햄버거를 들고 커번트 가든(런던의 유명한 청과물 시장, 혹은 그 근방의 오페라 극장)을 어슬렁거리는 것이었다.

몇 주가 지난 뒤 나는 약간의 타박상과 내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을 제외하고는 별 이상이 없는 채로 깨어났다. 나는 딩이 열다섯 살 먹은 마하리시(힌두교 정신적 지도자의 칭호)에게 고소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가 된 것은 둘 중에 누가 진정한 신이냐는 것이었다. 진정한 신만이 극장에 공짜로 들어갈 자격이 있으므로 이 문제는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 문제는 결국 사기 전담 경찰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이들은 멕시코의 니르바나라는 마을로 몰래 도망가려다 체포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 나는 육체적으로는 총각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칼리굴라(전제 정치를 지향한 변덕스런 폭군으로 알려져 있는 로마의 황제)만한 정서적 안정에 이르러 있었다. 나는 다시금 내 부서진 정신을 재건하고 싶은 마음에서 PET라고 불리는 <퍼레머터 자아 치료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그 명칭은 이 프로그렘의 카리스마적 창시자인 구르타브 퍼레머터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퍼레머터는 원래 밥 색소폰 연주자였는데, 나중에 심리 치료의 길로 접어든 사람이었다. 그의 치료법은 상당히 많은 유명 영화 배우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영화 배우들은 그 방법이 <코스모폴리탄>에 실린 점성술 칼럼보다 훨씬 빠르고 심층적으로 자신들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미 전통적인 치료법에 두손을 든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일단 쾌적한 시골 온천으로 옮겨졌다. 그때 가시 철망이나 도베르만을 보고 뭔가를 의심했어야 했다. 그러나 퍼레머터의 똘마니가 지금 들리는 비명 소리는 프라이멀(Primal scream therapy, 유아기의 외상 체험을 다시 체험시켜 신경증을 치료하는 정신 요법)일 뿐이라고 말하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72시간 동안 내내 딱딱한 의자에 강제로 앉아 있다 보니 우리의 인내력도 한계를 느꼈다. 그러자 퍼레머터는 우리에게 히틀러의 <나의 투쟁 Mein Kampf>에 나오는 몇 구절을 읽어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퍼레머터야말로 정신병자이며 그의 치료법이란 가끔 <기운 내게!>라고 말해 주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환멸을 느낀 몇 명이 그곳을 떠나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방의 담장에는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퍼레머터는 자신이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라고 주장했지만 나는 그가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해방군 의장 아라파트와 통화하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 순간에 사이먼 비젠탈(나치 전범들을 추적하는 나치 사냥꾼)의 요원들이 기습하지 않았다면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긴장하고 냉소적이 된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살 곳을 마련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버클리 대학의 데모에 참가하고 FBI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일이었다. 나는 몇달 동안 연방 정부 요원에게 약간의 정보를 팔고 또 팔아먹었는데, 그 내용은 주로 급수용 저장소에 청산가리를 떨어뜨렸을 때 뉴욕 시의 주민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CIA의 계획에 대한 것이었다. 이 일 외에, 스너프 포르노 영화에서 영화배우들의 대사 코치를 하며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쓰레기를 내다버리기 위해 현관문을 열자 괴한 두 명이 어둠 속에서 달려들어 가구용 패드로 내 목을 감아 차 트렁크에 밀어넣었다. 누군가 내 몸에 주사기를 찔렀고 나는 곧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때 아련히 이런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패티(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상속녀, 1974년 좌익 급진주의자들에게 납치되어 강요에 의해 도둑질과 약탈 행각을 벌인 인물)보다는 무겁고 호파(미국의 노동 운동 지도자, 오랫동안 암흑 세계와 결탁했다)보다는 가볍군.> 깨어나 보니 어느 어두운 벽장 안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모든 감각 기관의 사용을 박탈당한 채 3주 동안이나 갇혀 있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시키는 것은 뭐든지 다 하겠다고 항복할 때까지 전문 간지럼꾼을 시켜 내게 간지럼을 태웠고, 두 놈이 컨트리 뮤직과 웨스턴 뮤직을 끊임없이 불러대는 고문을 가했다.

모든 것이 세뇌에 의해 기억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 기억이 맞다고 보증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어느 방으로 끌려들어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악수하고는, 늘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가끔씩 저격을 해줄 수 없겠냐고 요청했다. 물론 총알이 빗나가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래야 자신이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곤경에 처해 있는 문제들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워낙 허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고 동의했다. 그러고 나서 이틀 후에 처음에 말했던 힘멜슈타인 소시지 가게 앞의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다음카페,  껌팔이 소녀


우디 앨런 감독의 <맨하탄>
도시를 끌어안다

Manhattan
1979년,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우디 앨런
EBS 10월26일(토) 밤 10시

“영화란 건 멋진 장면 몇개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워드 혹스 감독의 이야기다. 그의 말을 곱씹으면서 <맨하탄>을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이름들이 있다. 찰리 채플린, 페데리코 펠리니, 잉마르 베리만 등이다. 우디 앨런은 코미디언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유럽영화의 자양분을 자신의 영화로 끌어들였다. 브레히트식 연출기법을 영민하게 소화하고 희비극을 자유롭게 다룸으로써 영화세계를 넓힌 것이다. <맨하탄>은 분류하자면, <애니 홀> 이후 우디 앨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영화로 논할 수 있다.

<맨하탄>엔 아이삭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혼경력이 있는 방송작가 아이삭은 직업에 회의를 느낀다. 전처는 과거의 결혼생활에 대해 쓴 소설을 발표해 아이삭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리고 아이삭은 10대 소녀 트레이시와 데이트를 시작하는데 조숙한 고등학생인 드레이시와의 관계에서 차츰 아이삭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 경멸을 감추지 않던 메어리와 사랑하게 된다.

“그는 이 거리를 사랑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현대 문화의 황폐함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맨하탄>은 우디 앨런의 일인칭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애니 홀>에서 그랬듯, 우디 앨런은 이제 뉴욕이라는 도시의 열렬한 예찬자가 되었다. 고든 윌리스가 촬영한 영화 속 풍경이 수려하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도시의 조형미를 가장 빼어나게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밤에 질주하는 자동차,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 그리고 실내에서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은 채 춤추는 남녀의 실루엣까지. 흑백영화인 <맨하탄>은 질서정연하며 이상화된 뉴욕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영화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시를 포용하듯 울려퍼지는 거쉰의 음악은 <맨하탄>을 현대 도시에 관한 영화이자 재즈영화로 묶을 수 있도록 하는 키워드가 된다.

<맨하탄>에서 우디 앨런 감독은 변함없는 고민을 투영한다.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혼란과 방황을 거듭하는 남성을 직접 연기하고 있다. 영화 결말에서 우디 앨런이 연기한 아이삭은 10대 소녀에게 오히려 충고를 듣는 경험을 한다. <애니 홀>에서처럼 여성은 영화 속 우디 앨런에게서 벗어나고 사랑은 과거시제로 환원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물들 관계가 좀더 복잡해진 것 정도라고 할까 코미디와 로맨스의 융합, 대중문화에 대한 은근한 비꼬기의 시선도 여전하다. <맨하탄>은 영화 구조면에서도 흥미로운데 인물의 대화, 그리고 휴지기의 반복적인 구조는 영화의 감미로운 리듬감을 배가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



우디 앨런을 해독하는 다섯가지 키워드  

K씨는 우디 앨런이라는 뉴욕 출신의 미국 감독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 물론 앨런이 웃기는 감독이자 배우란 건 잘 알았다.  아주 오래 전에 K 씨는 앨런의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를 보고 그만 실소를 금치 못했다 . 그 영화에서 앨런은 사상 최고로 멍청한 도둑으로 나온다. 그 영화의 한 대목에서 앨런은 여자와 데이트 약속이 있는 날 정성스레 차려입고 방 을 나섰던 것인데, 잠시 후 울상을 지은 채 다시 돌아온다. 그는 바지를 입는 걸 깜빡 했던 것이다. "세상에 뭐, 저런 멍청한 착상으로 웃기려는 배우가 다 있담. 지금이 채플린이 활약하던 시대인 줄 아는가 봐. 그런 후안무치함과 뻔뻔스러움이 정말 웃기는군. 그리고 저 배우는 정말이지 웃기게 생겼네." K씨는 그토록 명성이 자자했던 앨런이 대단히 훌륭한 감독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여기지 않았다. 그저 앨런은 약간 특이하게 웃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당신이 섹스에 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이란 영화에서 앨런은 올챙이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의상을 입고 남성의 몸에서 생성되는 정충 한 마리로 나온다. 그 불쌍한 정충 한 마리는 자기의 주인님인 남자가 데이트중인 여자와 은밀한 작업(?)에 착수하자 불안과 초조에 떤다. 이 남자의 몸 내부 각 기관에선 난리가 나고 "정충들은 대 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정충들은 마치 낙하를 기다리는 공수부대원들처럼 일렬로 서고 그 대열에서 앨런은 정충 한 마리의 차림새를 하고 서 주인님이 언제 발사를 할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또다른 정충에게 대충 이런 식의 말을 한다. "나 떨고 있니?" 앨런은 그렇게 기발하고 비현실적인 유머감각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 코미디를 보며 실컷 다 웃어 놓고 "역시 코미디는저질이야" 라고 일갈하는 위선적인 시청자처럼 K씨는 앨런의 영화를 보고 웃음을 금 치 못하면서도 "앨런에게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고전 코미디 영화만한 페이소스와 아이러니가 없어"라고 거만을 떨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잘난 체하던 K씨는 앨런의 최고 작품 <애니 홀>을 보고 난 후 그만 두손 들고 항복하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우디 앨런은 그 영화에서 뉴욕에 사는 유대인 코미디언 앨비 싱어로 나와 첫 장면에 카메라를 쳐다 보며 재담을 한다.  "산 속에 두 노파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 이곳 음식은 정말로 형편없어'라고 말하자 다른 한 사람이 받았습니다. '맞아. 그리고 양도 너무 적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제가 인생에 대 해 느끼는 태도도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디 앨런은 K씨의 생각과 는 달리 인생의 비애와 웃음은 동전의 양면임을 정확하게 볼 줄 아는 진 정한 희극인이었던 것이었다.

그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볼 때마다 K씨는 자기의 콤플렉스를, 곧 미국의 유대계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심리를, 뉴욕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자 의식과 죄의식을, 자기 내부에 은밀히 꿈틀거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도시인의 소심증을 재담으로 풀어내는 우디 앨런의 솔직함과 재능을 보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앨런은 무성영화 시대의 슬랩스틱 개그에서부터 유 럽 예술영화의 실험적인 스타일까지 모두 통달하고 자기 고민을 좀더 보 편적인 틀에서 볼 줄 아는 코미디언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앨런은 죽음과 인생의
관계와 같은 제법 심각한 철학적 주제를 코미디에 끌어들 여 폼잡지 않고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K씨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하는 앨런이 동서고금의 영화를 통해 그런 교양과 화술을 습득했다는 사 실에 찬탄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앨런의 영화는 미래의 고전을 떠올리 게 할 만큼 형식에 깊이를 더해갔다. K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앨런은 광대이고 지식인이고 철학자이고 무엇보다도 진짜 영화감독이었던 거야."  그런데 우디 앨런의 영화는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앨런의 영 화는 너무 지적인가, 아니 너무 미국적이겠지, 아니 너무 뉴요커 티가 나 는 거겠지. 그런데 나는 왜 앨런의 영화가 그다지도 재미있는 것일까. 그 것이 알고 싶다."

그래서 K씨는 앨런의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키 워드를 찾아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동료들은 앨런의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요소를 10개로 추리고 다시 비슷한 성질의 요소를 모아 5개로 축약했다.
'우디 앨런 제5원소'. 그 키워드들은 이러했다.  

'유대인 뉴요 커', '신경증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여성과 가정과 섹스',  '음악과 코미디', '찰리 채플린에서 잉그마르 베리만에 이르는 영화적 족보'.

K씨는 이것이 우디 앨런을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었다. 김영진 기자  1997년09월30일




우디 앨런, 스몰 타임 크룩스, 2003  

다시 또 스크린에서 우디 앨런의 소심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모습은 즐거움을 준다. 또,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코미디는 여운을 남긴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코미디의 정수를 담아온 우디 앨런 영화의 비결은 무엇일까. 영화평론가 김영진이 거기에 대해 허심탄회한 소감을 털어놓는다.

내가 처음 본 우디 앨런의 영화는 <돈을 갖고 튀어라>였다. AFKN을 통해 본 우드 앨런의 그 감독 데뷔작은, 우스꽝스러운 외모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빈약한 체구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배우 앨런의 멍청한 절도 행각을 다룬 슬랩스틱 코미디였다. 거기서 앨런은 한껏 치장을 하고 휘파람을 불며 나갔다가 울상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멍청한 남자로 나온다. 그는 바지를 입지 않고 외출했던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 이미 명성이 자자한 앨런의 영화는 그러므로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그의 영화는 웃기지만 얼을 빼놓는 수준은 아니었다.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 그러나 두려워서 묻지 못했던 것>에서 정충 한 마리로 나와 곧 사정을 앞두고 있는 주인님의 몸 상태를 알고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는 앨런의 연기를 보며 박장대소한 적은 있지만 그때도 감독 앨런이 아니라 배우 앨런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맛없는 음식 같은 인생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까지 앨런이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는 대체로 그랬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시퀀스를 모방한 장면이 나오는 <바나나 공화국 Banana>도 유쾌하긴 했지만 영화감독 앨런의 저력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의 양식과 뉴 할리우드 시대의 해체적인 양식의 기묘한 혼합물이었다. 그러나 펠리니의 <8 1/2>를 의식한 도입부 장면이 나오는 1982년 작 <스타더스트 메모리스>를 보고 나는 두 명의 영화감독 앨런이 있는 줄 착각하게 됐다. 앨런의 형식미는 정교해졌으며 유럽영화의 자의식 강한 스타일을 대담하게 차용했다. 곧 나는 1976년에 만들어진 앨런의 대표작이자 출세작 <애니 홀>을 계기로 그의 영화 세계에 굉장한 인식론적 전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애니 홀>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앨비 싱거로 분한 앨런은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을 건다. "음, 뭐랄까요. 내가 인생에 대해 느끼는 방식은 이런 겁니다. 어느 요양원에서 두 할머니가 밥을 먹는데 한 할머니가 불평을 합니다. '이곳 음식은 너무 형편없어.' 그러자 다른 할머니가 되받습니다. '맞아, 게다가 양도 작아'라고 말이죠." 음식이 맛없으면 양이 적은 게 오히려 다행이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양이 적다고 불평한다. 맛없지만 양이 많았으면 하는 것, 그게 또 우리 인생이다. 앨비 싱거의 말은 이어진다. "또 이런 것도 있죠. 그루초 막스가 '나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그런 멍청한 클럽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요...."

거두절미하고 인생과 사랑에 대해 말하는 이 영화에서 앨런은 더이상 자빠지거나 구르지 않는다. 주인공 앨비 싱거가 과거를 회상할 때 브루클린 주변의 초등학교로 돌아간 어른 앨비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친구들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선생이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묻자 아이들이 말한다. "난 지금 대기업의 회장이에요." "난 의사예요." "난 마약 중독자예요." 현실과 과거를 간단하게 한 장면에 공존시키는 이 방식은 잉마르 베리만의 유명한 영화 <산딸기>에서 빌어온 방식이다. 앨런의 영화는 점점 베리만의 형이상학과 루이스 브뉘엘의 부조리한 유머 감각을 닮아갔다. 그리고는 거기에 대도시의 신경질적인 히스테리를 우겨 넣었다.

우디 앨런의 중기 대표작인 <한나와 그 자매들>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녀는 너무 예뻐. 젠장, 정신 차려라. 그녀는 네 처제야...." 앨런의 영화에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사랑은 대상을 정하지 못한다. 남녀는 만나고 헤어지며 고전 영화에서의 행복한 결합을 자신들은 실감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저마다 고독하고 외롭고 불쌍하다고 아우성이다. <한나와 그 자매들>에 소심한 방송국 PD로 나오는 앨런은 감기 증상을 불치병으로 착각하고 키르케고르와 니체를 들먹이며 죽음과 인간관계를 생각한다. <산딸기>의 주인공 노 교수는 과거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성찰했지만 <한나와 그 자매들>을 비롯한 앨런의 대다수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감기와 실연, 성욕을 통해 인생의 가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코미디 감독 앨런은 자신을 비웃음으로써 코미디의 거대한 봉우리에 가 닿은 감독이다. <스타더스트 메모리스>에서 영화감독 샌디로 분한 앨런은 "난 이제 더이상 웃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들이 날 강제로 그렇게 하게 만들 순 없죠. 난 우스운 기분이 안 나요. 세상을 둘러보면 보이는 건 인간의 고통뿐이에요" 라고 말한다. 그가 사는 커다란 아파트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군 장교가 베트콩 용의자를 즉결 처분하는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고 나중에 그것은 무성영화 시대의 희극 영화인 그루초 막스의 사진으로 바뀐다. 샌디의 심리 상태를 비유하는 그 아파트의 사진은 곧 영화감독 샌디/앨런이 세상의 비극을 보는 방식의 변화를 가리킨다. 그는 진지하게 응시하는 대신 고통스럽게 중얼거리고 불평하고 불안에 떨면서 자신의 실존적 불안을 영화에 드러낸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가짜 목걸이가 주는 행복

1990년대 중반 이후 만든 우디 앨런의 후기작 취향은 또 다르다. 2000년 작인 <스몰 타임 크룩스>는 우디 앨런의 영화적 취향이 다시 또다른 전환점을 탔음을 일러준다. <맨하탄 미스테리>를 끝으로 앨런은 이제 더이상 시각적으로 멋 부린 기교로 세상을 담지 않는다. 그의 영화 스타일은 단순해졌고 담기는 메시지도 명쾌해졌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는 물론이고 <셀러브리티>, 지난해 칸영화제 개막작인 <할리우드 엔딩> 등의 영화는 고전 영화 시대의 낙관적인 세계관에 점점 다가서 있다. <할리우드 엔딩>의 주인공 영화감독으로 나온 앨런은 눈이 멀어가는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신작을 만들고 눈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수준으로 나온 그 영화는 미국 내에서 엄청난 혹평에 시달리는 데도 불구하고 바다 건너 유럽 프랑스에서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다는 낭보를 얻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영화감독이 예술적인 명성을 얻기도 한다는 이 세련된 자기 풍자물의 결말에서 앨런은 말한다. "역시 프랑스인들은 보는 눈이 있어."

앨런의 후기작은 좋은 의미에서 통속성의 즐거움을 담아낸다. 앨런은 이제 미국 내에서도 예전만한 인기를 누리는 감독은 아니다. 1980년대 내내 같은 스탭들과 제작사에서 정기적으로 일했던 앨런이지만 드림웍스로 제작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영화 산업 내에서 확고한 권위를 누리지 못하는 그의 위치는 뉴요커의 삶을 늘 소재로 삼은 그의 한정된 영화 세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영화는 뉴욕과 유럽에서만 인기 있다. 그와 더불어 그의 영화 세계에 익숙한 사람들도 점점 늙어간다.

앨런의 후기작은 더 범속해지고 가벼워진다. <스몰 타임 크룩스>는 멍청한 도둑과 그의 아내의 이야기며 프랭크 카프라와 에른스트 루비치와 프레스톤 스터지스가 활약했던 고전기 할리우드 코미디영화의 경쾌한 톤을 떠올리게 한다. 비통한 세계를 도회적인 경쾌한 낙관주의로 덮는, 부드러운 재즈의 선율처럼 부담 없이 삶을 낙관했던 시대의 유쾌함이 들어 있다. 이 영화에서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레이는 아내 프렌치를 설득해 친구들과 함께 뉴욕의 한 피자 가게를 인수한다. 레이의 꿍꿍이는 피자 가게 옆의 은행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 금고를 터는 것이다. 레이의 멍청한 지휘 아래 엉뚱한 곳을 향해 땅굴이 파헤쳐지는 동안 레이의 아내 프렌치가 만든 과자는 뉴욕의 명물로 떠오르는 인기를 누린다. 은행을 터는 데는 실패했지만 아내의 과자 덕에 부자가 된 레이는 그때부터 심심해진다. 아내는 상류 사회의 교양을 익히느라 열심이고 레이는 그런 아내의 성화를 달래느라 열심이다.

두번째 반전이 터질 때까지 <스몰 타임 크룩스>는 인생을 통제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속물적인 우스꽝스러움을 끌어낸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인생이 진짜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상한 대화와 세련된 패션, 첨단의 예술 조류에 익숙한 상류 사회 사람들과 아는 것이라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영화와 중국집 음식뿐인 레이와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레이가 플로리다로 가기 위해 어느 유한 부인의 금고에 들어 있는 목걸이를 훔칠 때 레이는 잠깐 한눈판 사이에 준비해간 가짜 목걸이와 진짜 목걸이 사이에서 어느 것을 집어야 할지 헷갈리는 진퇴양난에 처한다. 결론은 까짓 것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신 차리고 봐야 알며 목에 걸어봐야 실감이 난다. 아는 사람에게만 식별되는 그 진짜와 가짜의 기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무의미하다. 레이가 끝내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모르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목걸이를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것이다. 돈도 명예도, 행복도 마찬가지다. 보여지기 위한 행복은 소용이 없다. 돈과 명예가 요구되는 그 보여지기 위한 행복은 가짜 인생의 부속물이다. 진짜 행복은 부부가 함께 잡담을 나누면서 피자를 먹는 것이다.

믿어라.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스몰 타임 크룩스>는 이런 얘기를 거창하게 하지 않는다. 앨런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수다스럽게 바보 같은 행동과 말을 쏟아놓을 뿐이다. 앨런의 영화는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따뜻한 인간 신뢰 쪽으로 기울고 있다. <애니 홀>과 함께 앨런의 또다른 중기 대표작인 <맨해튼>이 떠오른다. 40대의 중년 남자와 10대의 여자가 사랑하는 이야기인 그 영화에서 앨런이 연기하는 아이작은 자신을 사랑하는 소녀 트레이시에게 끊임없이 훈계를 늘어놓으면서 그들의 사랑이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의 불안을 감춘다. 아이작과 달리 트레이시는 사람을 믿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상대를 근사하게 여길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맨해튼>의 결말에서 마음이 바뀐 아이작이 영국 유학을 떠나려는 트레이시를 붙잡을 때 트레이시는 유학을 갔다 와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고 반문하는 아이작에게 트레이시는 충고한다. "믿음을 가지세요." 까마득한 인생 후배이자 연인에게 이 말을 듣는 아이작은 기쁨과 무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멍청하게 웃는다. 그 얘기다. <스몰 타임 크룩스>가 힘을 빼고 전해주는 이야기는. 인생의 행복은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들과 우리가 허물없이 나누는 수다에서 나온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칸영화제 개막식장에서 지켜본 우디 앨런은 수줍게 말을 아끼며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신사였다. 객석의 기립 박수에도 그는 그저 미소로 응대했다. 그의 소감은 정중했으며 과시적이지 않았다. 기립 박수가 이어지자 아주 잠깐 그는 깡충 뛰는 시늉을 하면서 장난스런 미소를 보냈다. 객석에는 폭소가 일었다. 우디 앨런 영화의 매력은 그것이다. 우리 자신과 세상이 별것 아니라고 마음껏 비웃으면서 문득 드러내는 애정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앨런은 비판 정신과 유머를 잃지 않는 위대한 예술가의 말년 행보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003.01.27 / 김영진 필름2.0 편집위원  



우디앨런, 비취 전갈의 저주, 2001  

우디 앨런이 뉴욕이 아닌 곳에서 클라리넷 연주를 했다면 그건 `사건'이다. 영화 속에서나 실제 삶에서나 뉴욕을 떠난 그를 떠올리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선 `사건'이 벌어졌다. 우디 앨런의 라이브 재즈공연이 펼쳐진 것이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그의 최초의 미서부 순회공연은 최신영화 <비취 전갈의 저주>(원제 The Curse of the Jade Scorpio)를 홍보하기 위한 것. 편집을 끝내면 곧바로 다음 영화 촬영에 들어가 완성된 영화는 다시 보지도 않고, 생각도 안 한다는 그가 자신의 영화 홍보에 나선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기자회견을 가졌는가 하면, 런던에서는 극장에서 관객들과 대화도 할 생각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올해 만 65세) 좀 너그러워진 것일까.

우디 앨런의 이번 영화는 드림웍스가 공동제작, 배급을 맡은 첫 스튜디오 작품. 우디 앨런까지 홍보활동에 나서게 만드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파워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구석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신작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비록 양딸이긴 했지만 근친상간이 남긴 도덕성 훼손은 여전히 우디 앨런에게 큰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에 기고한 한 평론가는 “<비취 전갈의 저주>를 보는 관객들은 심기가 불편해짐을 느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스캔들 이후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는 맘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우디 앨런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의 우디 앨런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 우디 앨런의 어디에 그런 비도덕성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신작이 이 평론가의 심기를 특히 건드린 부분은 우디 앨런이 영화 속에서 30살 연하의 헬렌 헌트와 사랑에 빠진다는 점이다. 우디 앨런은 자전적인 영화로 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는데 바로 그 트레이드 마크가 이번엔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 평론가가 지적한 영화 외적인 비판을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비취 전갈의 저주>는 우디 앨런의 골수팬들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특유의 시니컬하고 지적인 유머가 넘치는 대사가 던지는 맛이 예전같지 못하다. 미로처럼 꼬이고 꼬이는 플롯의 묘미도 떨어진다. 다만 <카이로의 장미> <브로드웨이를 쏴라> <라디오 데이즈> 등 우디 앨런이 좋아하는 1940년대로 돌아가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살린 점은 돋보인다.

1940년 뉴욕을 무대로 한 <비취 전갈의 저주>는 최면술에 관한 영화. 우디 앨런은 보험회사의 사건 탐정이다. 본능에 의존하는 명탐정인 그는 회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임무를 맡은 전문가 헬렌 헌트가 입사하면서 인생 최대의 적을 만난다. 서로를 참지 못하는 두 사람은 그러나 한 나이트클럽에서 비취 전갈을 지닌 최면술사에게 최면상태를 경험한 후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사랑은 최면이라는 걸….
로스앤젤레스/이남(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