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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북, 원 시카고 책읽기 운동

아/ㅜ 2007. 1. 1. 14:32 Posted by 로드365
  • 공식도서 선정… 시민 모두 ‘같은 책’ 읽는다
  • 市·도서관·대학 주도로 年 2회 ‘독서장려’ 행사
    시민들 앞다퉈 토론 참여 대학선 ‘책읽기’ 교양필수
    “같은 책 읽는 사람 보면 동질감마저 느낄 정도”
  • 시카고=신용관기자 qq@chosun.com
    입력 : 2007.01.01 02:10 / 수정 : 2007.01.01 02:13
    • 세계 선진도시는 지금 책 읽기 운동이 한창이다. 2001년 도시민 전체가 한 달간 같은 책을 함께 읽는 시카고의 ‘원 북, 원 시카고’ 독서캠페인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일본에 책읽기 바람이 일고 있다. 선진국은 독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문화 인프라로 받아들인다. 21세기에 번성할 수 있는 지식국가를 만들려면 책읽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강국을 향한 첫 걸음, 선진 도시의 책읽기 운동을 소개한다.

      수은주가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2006년 12월 5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 드폴(DePaul) 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4명이 한 연구실에 모여 앉았다. 설립 100년이 넘은 이 학교는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로마가톨릭 대학이다. 방학 기간임에도 이들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은 멀리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원 북, 원 시카고’(One Book, One Chicago)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땐 무척 당혹스러웠다. 아무 준비도 돼있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학생들과 10주 과정을 진행하면서 함께 독서하는 행위가 무척 즐거운(enjoyable) 것임을 알 수 있었다.”(에일린 세이퍼트 교수·2004년 가을학기 ‘나비의 시간·In the Time of the Butterflies’ 담당)

      지난 2001년 8월 시카고 시와 시카고 공공도서관은 온 시카고 시민이 9월 한 달 동안 하퍼 리의 문제작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10월 중 ‘시카고 도서주간’에 참여하여 토론하도록 주관했다. ‘원 북, 원 시카고’의 시작이었다. 시카고 공공도서관은 이에 따라 영어·스페인어·폴란드어(시카고는 폴란드 이주민의 비중이 높다) 등으로 된 ‘앵무새 죽이기’ 2000부를 구입, 산하 79개 도서관에 배포하며 독서를 장려했다.

      이 캠페인이 의외의 호응을 얻자 시는 1년에 2차례씩 2006년 가을까지 모두 10권의 책을 선정해오고 있다. 캠페인 출범 당시부터 드폴대학은 아예 ‘원 북, 원 시카고’ 강좌를 교양 필수 과목으로 설치, 운영해 오고 있다. 작품을 놓고 토론회도 갖고 학생들이 꾸민 연극을 무대에 올렸으며 저자를 초청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1400여명이 각종 토론회에 참가했다.

      6년째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메어리 미리텔로 인문학부 부학장은 “원래는 일반인과 타대학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게 오픈 강좌(3학점·1600달러)로 열려 했으나 신청자가 단 1명도 없어서(웃음) 교양 필수 교과로 넣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국 시카고 시내 해롤드 워싱턴 도서관 특별전시관에서 시민들이‘원 북, 매니 인터프리테이션스’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사진 앞쪽에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앵무새 죽이기’자료들이 진열돼 있다/시카고=신용관기자
    • 다음 날 같은 장소에는 강의에 참여했던 드폴 대학 재학생 6명이 모였다. 강의에 적극적이었던 학생들 중심으로 모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모두들 수업이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했었는지를 설명하느라 1시간30분 내내 좁은 방 안이 열기로 가득했다.

      의사가 꿈인 인도계 여학생 사푸라 칸(생물학 전공 3학년)은 2006년 가을의 책이었던 ‘질병의 해석자’(Interpreter of Maladies)에 대해 “아빠, 엄마, 할아버지 등 모든 가족이 돌려가며 읽었다. 인도계 미국 이주민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도 담겨 있었지만 다들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강의를 들은 그리스계 안드레스 사파카스(영문학 전공 대학원 1년)는 “두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부모와 화해할 수 있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unforgettable)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그래도 책보다 영화가 재미있지 않냐”고 묻자 “영화는 그 감동이 길어야 1주일이다. 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철에서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시민을 목격했을 때 일종의 동질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사라 페를리니·컴퓨터공학 전공 3학년)고 대답했다.

      한 도시의 주민들에게 특정 책 한 권을 읽힌다는 발상은 1998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당시 시애틀 공공도서관 사서였던 낸시 펄(Nancy Pearl)의 제안으로 시는 ‘시애틀 전 시민이 책 한 권을 같이 읽는다면’(If All Seattle Read the Same Book)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원 북, 원 시카고’는 리처드 데일리(Richard Daley) 시장의 강력한 의지로 첫 회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도서관이 보유한 ‘앵무새 죽이기’ 3600여부는 7주 동안 6500여회 대출됐다. 평소 같은 기간 140회 가량 대출되던 책이었다. 시내 서점에서 이 책은 베스트셀러 10위에 들었고, 아마존닷컴에서는 이 책 페이퍼백이 한때 1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시카고는 이 독서 운동을 시 차원의 최우선 사업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현재 시카고 시내 스테이트 스트리트에 있는 해롤드 워싱턴 도서관 9층 특별전시관에서는 그 동안 시카고 시민들이 읽은 책들의 다양한 장정과 번역본을 모아 ‘원 북, 매니 인터프리테이션스’(One Book, Many Interpretations)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회계사 스티븐 파커(41)는 “대학 졸업 후 경제경영서나 미래 예측서 외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2003년에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그들이 벌인 일’(The Things They Carried)’을 읽고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그 후 소설들을 찾아 읽으며 내 삶은 바뀌었다”고 말했다. 뉴욕,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미국 제3의 도시 시카고는 책 읽기와 더불어 소리 소문도 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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