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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린 먼로 Marilyn Monroe, 1926.6.1~1962.8.5


192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노마 진 모턴슨(Norma Jeane Mortenson)이다. 어린시절을 불우한 환경에서 보냈다. 아버지 마틴 에드워드 모턴슨과 어머니 글레디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녀의 어린시절은 불행하기 그지 없어서 아버지 마틴은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 글레디스는 우울증 환자였다. (그녀의 출생 당시 미국에는 호적이 없었기때문에 출생 후 의사가 쓴 출생증명서가 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수용되면서 양부모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지만, 여전히 보육원과 고아원을 전전해야하는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메릴린은 16세에 양부모에 의해 짐 도허티와 결혼했으며, 4년후인 1946년 이혼했다. 1944년방위산업체에서 낙하산에 분무기로 위장도색 페인트칠을 하던 일을 하던 그녀는 그해 사진모델로 발탁되어 일하게 되었다. 사진모델로 일하던 도중 그녀는 20세기 폭스와 콜럼비아 영화사에서의 단역배우를 시작으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의 1949년작 《러브 해피》에 출연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후 메릴린은 1950년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인 《아스팔트 정글》과 《이브의 모든 것》을 비롯한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는등 배우로서는 인정받았지만, 결혼생활은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등 행복하지 않았다.

사진모델 시절 찍은 누드사진을 계기로 1948년 영화 《Scudda-Hoo! Scudda-Hay!》에 첫 출연하였으며, 《아스팔트 정글 The Asphalt Jungle》(1950)에서 인정을 받았고, 《나이아가라 Niagara》(1953)에서 주연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아름다운 금발과 푸른 눈, 전신에서 발산하는 독특한 성적 매력은 그녀를 순식간에 세계적인 섹시 심벌로 올려 놓았다. 

FBI의 감시
메릴린은 문란 사생활로도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이 무렵 메릴린은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과도 교제했다. 또한 현재 또는 그 당시, 그리고 그 이전 과거의 미국 공산당의 당원들이 그의 지인 중 상당수 있었으며 그 자신도 FBI에 의해 친소련 인사 내지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멕시코 여행당시 행동들이 보고서에 기록,당시 FBI국장이었던 에드거 후버에게 제출될만큼 정치적으로 자유롭지도 못했다.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끌려 약물중독이 되었고, 마침내 자살로 보이는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주연작품으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1953) 《돌아오지 않는 강》(1954) 《7년 만의 외출》(1955) 《왕자와 무희》(1957) 《버스 정류장》(1956) 《뜨거운 것이 좋아》(1959) 《황마(荒馬)와 여인》(1960) 등이 있다.

1962년 8월 5일 향년 37세로 별세했으며, 사인이 수면제 과다로 발표되었다.(일설에 의하면 독극물 섭취에 의한 사망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당시 메릴린 먼로는 이미 한 번 이혼했던 야구계의 전설 조 디마지오와 재결합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한편, 사후에 그녀의 묏자리(유골함)의 윗자리가 70대 여성에 의해 경매 매물로 놓였다. 8월 18일 현재 경매가로 메릴린 먼로의 위에 묻히는 값은 450만 달러(한화 약 56억 20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