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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취중토크

아/ㅣ 2011. 6. 11. 13:50 Posted by 로드365


[취중토크] 이미연 “직진만 계속하는 삶이 좋아” 2007.10.11

지난 달 생일을 맞은 이미연(36)은 "케이크의 초가 하나 더 늘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1년에 한 살씩 먹는 게 어디냐. 두 살씩 먹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하하." 세월을 역주행하는 것 같은 여전한 외모라고 말을 걸자 "에이, 거짓말인 줄 알지만 듣기는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취중토크 인터뷰는 꼭 5년 만이라는 이미연은 "그때는 소주를 마셨는데 오늘은 장소가 청담동인 만큼 화이트 와인이나 맥주로 하자"며 분위기를 돋궜다. 점심 때 먹은 라면으로 하루 종일 버텼다는 그는 호박수프와 샐러드, 벨기에 맥주 서너 병, 그리고 사이다를 주문했다. 

●미스 롯데는 훈장 또는 혹 같은 타이틀

1987년 세화여고 재학시절 미스 롯데에 당선되며 연예계에 데뷔한 이미연. 제과업계 쌍두마차인 롯데와 해태는 당시 자사 전속모델을 선발하며 미스코리아와 함께 연예인 등용문으로서의 구실을 했다.

이후 이미연은 가나초컬릿 CF로 386세대 남성들의 단골 책받침 모델로 부각됐고, '사랑이 꽃피는 나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 숱한 하이틴 스토리의 여주인공으로 도약했다.

그런 그가 스크린 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건 1998년작 '여고괴담'에 교사로 나서면서부터다. 이후 '주노명 베이커리' '물고기자리' '인디안썸머' '중독'에 출연했고, 작년 '태풍'에서는 장동건의 탈북자 누나로 등장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송능한 감독의 '넘버3'도 빼면 섭섭할 것 같은데 어떤가.

"당연하다. 건달 한석규씨의 아내였는데 시인 랭보를 흠모하는, 귀여우면서도 약간 철없는 캐릭터였지. 필모그래피 중 거의 유일한 코믹 연기였다."

-MBC TV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도 출연했는데 예능프로 출연은 정말 오랜만 아닌가.

"데뷔 후 가장 악전고투다. TV에 인쇄매체, 인터넷까지…. 정말 요즘은 배우로 살려면 체력장 테스트라도 거쳐야 할 것 같다."

-대신 일반인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지 않나.

"부인하지 않겠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 지친다는 말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치스럽게 들릴 수도 있어서.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다작을 하는 연기자는 아니다. 1년에 평균 한 편 정도? 겹치기 출연도 안 해봤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 전세 산다. 하하."


-만약 미스 롯데 뽑힐 때로 돌아간다면 뭘 가장 먼저 하고 싶은가.

"글쎄. 그런 생각 한번도 안 해봤는데 그냥 그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살 것 같다. 그냥 직진만 계속하는 삶이 좋다. 지름길을 찾느라 허둥대고, 수시로 차선 바꾸면서 스트레스 받느니 내 차선 지키면서 그냥 쭉 갈 것 같다."

-'열심히'는 산업화 시대의 미덕 아닌가.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한다는 건 미래를 위해 준비한다는 건데 그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정보화 시대에도 '열심히'는 여전히 유효하다."

-빨리 성공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나 보다.

"미스 롯데에 뽑힌 것 자체가 내겐 행운이었고 고속 승진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 타이틀이 나를 종종 괴롭힐 때도 있었지만."

-괴롭혔다니?

"세인들의 시선을 받는 건 즐거우면서도 때론 매우 고통스런 경험이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때부터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어야 했으니까."


●"정완에게 섹스는 영양제 섭취 같은 것" 

맥주에 사이다를 섞어 마신 이미연은 사실 소주 팬. 그러나 요즘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몸 생각을 하게 된다"며 웃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인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부산을 못 찾게 됐다며 아쉬워하는 눈치다.

-'어깨너머의 연인' 얘기를 좀 하자. 이태란과 공동 주연이지만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아무래도 언니가 더 짊어질 것 같다.

"요즘 극장에 사람이 없다는데 그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올 정도로 긴장된다. 그 많던 관객들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영화에서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는 사진작가 정완으로 나온다.

"남자를 쇼핑하듯 골라 연애하고, 진지해질 때쯤 정리하는 캐릭터다. '태풍'에서 너무 묵직한 배역을 맡아 다음 작품은 무조건 경쾌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하자고 마음 먹었다.

20~40대 여성이라면 속으로 맞아 맞아, 맞장구치면서 공감할 거라고 본다. 사랑과 일에 지친 현대 여성들에게 괜찮아질 거라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영화다."


-영화가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다고 믿나.

"그럼. 좋은 영화 한 편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고 하지 않나. 극장 실내가 소등되는 순간, 이미 여행이 시작되는 거지. 고단한 현실을 잊고 떠나는 판타지 여행."

-그동안 주로 센 역할을 맡았는데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나.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모두 나와 만날 인연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난 인연을 참 소중히 여긴다. 사람 뿐 아니라 영화도 인연이 닿아야만 만날 수 있는 거다. 감독과 투자사, 상대 배우 모두를 충족시켜야 하니까."

-사형수('인디안썸머')와 금지된 사랑('중독'), 탈북자의 외로움('태풍') 등 비극적인 인물을 자주 연기하는 까닭은.

"드라마틱한 게 좋고 나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실컷 좌절하고 굴절을 겪고, 처참함을 맛보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자유로움 같은 것. 물론 현실에선 언제나 순정만화나 행복한 멜로 영화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러브 액추얼리'. 볼수록 흐뭇해진다."

-좋은 사람을 만나야 멜로 영화를 찍을 것 아닌가. 계획은?

"생각만 굴뚝같다. 막상 누가 남자 소개해준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게 된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가끔 열애설 때문에 기자들을 바쁘게 한다.

"아, 그 얘기라면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즐겁게 만난 자리인데 이해해주면 좋겠다."


●"남자? 열심히 일하면 하느님이 선물해주겠지"

이미연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 하나. 그는 자신의 전 매니저들을 꾸준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5년 전 밴을 운전한 매니저의 생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전화해 "누나가 이날 이날 스케줄 비니까 빨리 날 잡으라"며 독촉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각종 고민을 들어준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더라도 내 고민을 누군가 정성껏 귀담아 들어줄 때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은 든든한 동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흐뭇함이다.

-결혼식과 장례식이 겹쳤다. 어디를 갈 건가.

"궂은 일 우선이다. 아무리 호상이라도 부모님상은 꼭 가려고 한다. 결혼식은 내가 안 가도 별로 티가 안 나지만 장례식은 한 사람 한 사람 조문객이 정말 큰 힘이 된다."

-영화는 주로 어디에서 보는 편인가.

"신사동 씨네씨티를 자주 간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고, 밴을 주차하기에도 가장 편하다. 요즘엔 어디나 주차 불편하면 장사하기 어렵다."

-뜬금없는 질문 하나. 영화 속 배역인 정완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자신을 아끼라는 말. 정완은 워낙 똑똑한 친구라 이미 정답을 알고 있을 거다. 결혼을 부정하지만 실은 겁내는 거지. 영화 후반부 내레이션으로 다짐하듯 말하지 않나."

-사랑 앞에 '첫'이나 '마지막' 같은 형용사가 붙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결국 고귀하고 완벽한 결정체이지, 감히 거기에 수사를 붙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왜 사랑하는 게 더 어려워질까.

"나이 들수록 눈이 혼탁해지기 때문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치는 높아지고, 이를 만족시켜줄 사람은 드물고. 그런 점에서 사랑은 설득력 같다. 내가 누군가를 설득시킬 자신감이 있을 때 당당해지고, 리드하게 되지 않나."

-뜬금없는 질문 두 번째. 만약 영화 제작자가 된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을까.

"글쎄, 제작은 머리 좋은 분들이 하는 거 아닌가. 굳이 해본다면 여자 액션 영화는 어떨까. 이혜영·전도연이 주연한 '피도 눈물도 없이' 보다 몇 배는 더 강도가 센 액션물. 주인공은 물론 이미연을 써야겠지. 하하."

-시나리오를 받으면 의상과 소품까지 직접 챙긴다는데 분업을 용납하지 않는 편인가.

"그건 아니다. 모두 전문 분야가 있고 그들을 신뢰하지만 상호 보완하자는 차원이다. 그렇게 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피곤하게 하진 않는다. 마당 쓸려고 빗자루 들고 있는데 누가 청소하라고 시키면 짜증나잖아."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아쉽거나 후회스러운 일은.

"많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수 배우게 된다.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만들면 안 되겠다,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된다, 같은 거. 그런 점에서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문제는 같은 실수나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이지 실수 그 자체가 아니다."

-만능 지우개가 있다면 지우고 싶은 과거는.

"자꾸 이렇게 유도 질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금 전 했던 질문을 지우고 싶다."


●새벽 2시 전화 걸 동료 연예인? 없다

-'어깨너머의 연인'의 작가가 정완의 캐릭터를 정확하게 묘사했다며 치켜세웠다.

"반가운 말이다. 촬영 전 두세 번 만나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사고가 퍽 유연하고 당찬 분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서로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으면 좋을 것 같나.

"재미있다는 말이겠지. 영화 고를 때 배우와 감독, 줄거리를 알아보다가 결국은 재미 있어, 없어로 귀결되지 않나. 상업 영화는 관객의 이런 수요에 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번 영화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경험은.

"'인디안썸머'할 때는 내 분신 이신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질문을 한번도 못 받았는데, 이번엔 여러 사람들이 정완이 어떻게 살 것 같냐고 물어봐 준다. 그만큼 영화의 여운과 잔상이 남는다는 얘기겠지. 배우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경험은 없다."

-이태란을 직접 추천했다고 들었다. 

"친분이 없는 상태에서 드라마를 보다가 저 친구다 하며 무릎을 쳤다. 희수는 여성스러우면서도 도발적인 면모가 돋보여야 했는데 딱이었다."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한핏줄 영화라는 평도 있다.

"여성의 자아, 특히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했다는 점에선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은 180도 다르다. 두 영화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여성 독립의 장애물로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 영화는 결혼도 여성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담겨있다."

-평소 흉허물 터놓을 수 있는 동료는 누구인가.

"거의 없다. 황신혜씨는 전 소속사 선후배이고 같은 동네에 살아 한때 친했지만 요즘은 안부전화도 못했다. 중학교 동창들과 자주 어울려 수다를 떠는 편이다."

-케이블 영화 채널을 보는데 자신의 출연작이 나온다면 보는 편인가 채널을 돌리는 편인가.

"볼 때도 있고 안 볼 때도 있다. 아무래도 시간이 흘러서 보면 민망할 때가 많지. "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질문 3탄. 홈런 타자 앞에서 주자는 만루 상황. 직구를 던질 건가. 변화구를 던질 건가.

"직구다. 가장 정직하면서도 빠르니까. 물론 홈런을 얻어맞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마운드에 선 이상 야구 배트를 부러뜨리겠다는 심정으로 직구를 뿌리겠다." 김범석 기자 [kbs@joongang.co.kr]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