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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 무릎과 무릎사이 보러갔다가 걸려서 쫒겨난 기억.



[그 배우의 섹시그래피] 80년대 은막스타 이보희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리스트에서 이보희만큼 복합적인 필모그래피를 가진 여배우는 드물다. 에로티시즘이라는 당대의 트렌드를 이끌었으면서도 한편으론 순정 멜로의 헤로인이었고, 연기파 여배우로도 이름을 날렸다. 어느덧 50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고운 느낌을 간직한 채 브라운관에서 활동 중인 이보희. 그녀는 재평가 받아야 할, 뭔가 특별한 것을 지닌 배우였다. 

1959년에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조영숙. 의외로 많은 여배우들이 그렇듯 그녀도 '우연한' 기회로 배우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원에 다니던 그녀는 탤런트 응시 원서를 내는 친구를 따라 정동 MBC에 도착한다. 이때 원서 접수처인 경비실 수위의 눈썰미가 없었다면 그녀는 배우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 "너도 한 번 응시해보라"는 수위의 말에 별 생각 없이 원서를 낸 그녀는 MBC 공채 탤런트에 덜컥 합격하고 만다. 1979년의 일이었다. 

동그란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의 여배우들이 득세하던 시절 가냘프면서도 쓸쓸해 보이는 서구적 이미지의 그녀는 주목받기 힘들었다. 

조진원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4년은 떠올리기 싫은 무명 시절. 이때 기회가 왔다. 이장호 감독이 < 어우동 > 을 준비하면서 대대적인 오디션을 벌인 것. 그녀는 '어우동' 역에 낙점되었지만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좀 더 기다려야 했다. 대신 이장호 감독은 < 일송정 푸른 솔은 > (1983)에 그녀를 캐스팅했고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한다. 

데뷔 시절 이보희의 이미지는 절대로 에로티시즘이 아니었다. 이장호 감독과의 두 번째 작품인 < 바보 선언 > (1984)은 대사 없이 즉흥적인 상황에서 연기를 펼쳐야 하는 실험적 작품이었다. < 과부춤 > (1984)에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기구한 운명을 사는 여성 역할을 맡았고, < 아가다 > (1985)에선 사제를 사랑하는 여성으로 등장했다. < 추억의 빛 > (1985)은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청춘 멜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 무릎과 무릎 사이 > (1984)와 < 어우동 > (1985)으로 그녀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노출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감도 표정 연기는 '이보희=에로 배우'라는 공식을 만들어냈고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묻혀 버렸다. 어린 시절의 성적 경험과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고통 받는 < 무릎과 무릎 사이 > 의 착란적인 연기나 < 어우동 > 의 요염하면서도 강단 있는 모습은 이보희만이 표현할 수 있는 복합적이면서도 이중적인 이미지였음에도 말이다. 

이후 이보희는 < 이장호의 외인구단 > (1986)과 < 접시꽃 당신 > (1988)에선 순애보의 여인이 되었고 < 달빛 사냥꾼 > (1987) < 아메리카 아메리카 > (1988)에선 리얼리즘 연기를 선보였다.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1987)의 1인 3역은 1980년대를 통틀어 손에 꼽힐 만한 명연기였다. 결혼과 이혼을 겪은 후 출연한 < 49일의 남자 > (1994)와 < 장미의 나날 > (1994)은 스릴러였고 여기서 그녀는 좀 더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 < 어우동 > 의 이보희'였다. 어쩌면 이보희는 여배우에게 에로틱한 이미지를 낙인찍었던 1980년대 잔인한 충무로의 가장 큰 피해자였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막강한 흥행력을 발휘했으며 당대 최고의 감독이었던 이장호와 8편의 영화에서 파트너십을 발휘했던 이보희는 1990년대에 스크린을 떠나 브라운관의 사극으로 옮겨 가야 했다. 어쩌면 이것도 < 어우동 >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 < 서궁 > (1995) < 용의 눈물 > (1996) < 여인천하 > (2002) < 장희빈 > (2003) 등의 사극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 이보희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다. < 달려라 울엄마 > (2003) 같은 코믹 드라마에 출연했고 다작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섭렵한다. 그리고 올해 < 식객: 김치 전쟁 > (2010)으로 16년 만에 스크린으로 귀환하기도 했다. 

외유내강의 외모와 풍부한 느낌의 눈빛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이보희. 만약 그녀가 10년만 늦게 태어나서 여배우에게 혹독했던 1980년대가 아닌 한국영화가 세련되어지기 시작했던 1990년대에 데뷔했다면, 아마도 그 연기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 일요신문 webmaster@ilyo.co.kr |  2010.10.29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