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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Marc Chagall, 1887.7.7~1985.3.28] 
 

러시아의 비테프스크 출생.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에콜드파리 최대의 화가이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미술학교에 다닌 후, 1910년 파리로 나와 A.모딜리아니와 F.레제 등을 배출한 아틀리에 '라 뤼슈'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큐비즘기법을 익혔다. 1911년 앙데팡당전(展)에 첫 출품, 괴이하고 환상적이며 특이한 화풍으로 전위파화가와 시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1911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성공한 후 그해 결혼을 위해 일시 귀국하였으나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잇달아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모국에 머물면서 미술단체의 요직을 맡았다. 고향에 미술학교를 열고, 1919년 모스크바의 국립유대극장의 벽화장식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맞지 않아 1922년 베를린, 1923년에는 파리로 돌아왔다.
이때부터는 유화 외에도 화상(畵商) 폴라즈의 의뢰에 따라 많은 판화를 제작하여 에콜 드 파리의 유력한 작가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리고 환상적인 작풍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가 점차 격화되자 1941년 도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에서 지냈다. 1947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1950년부터는 남프랑스의 방스에 영주의 터전을 잡았다.
194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전(展)에서 판화상을 받았으며, 유화·판화·벽화(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벽화, 파리오페라극장의 천장화 등)·스테인드 글라스·조각·도기(陶器) 제작을 비롯하여 무대 장식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초기 작풍은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슬라브의 환상감과 유대인 특유의 신비성을 융합시킨 독자적인 개성을 강하게 풍겼다.
소박한 동화의 세계나 고향의 생활, 하늘을 나는 연인들이란 주제를 즐겨 다루었고, 자유로운 공상과 풍부한 색채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풀어주는 매력이 있다. 작품으로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 《바이올린 연주자》 《기도하고 있는 유대인》 《에펠탑 앞의 신랑과 신부》 《서커스》 등과, 자서전에 《나의 인생 Ma Vie》(196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