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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BlackBerry

바/ㅡ 2007. 3. 30. 09:00 Posted by 로드365


삐삐->휴대폰… 이젠 '블랙베리'   해외 블랙베리 인기 대해부

지난해 개봉된 가족코미디 영화 ‘RV’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로빈 윌리엄스는 캠핑카를 끌고 로키산맥으로 가족여행을 가면서도 틈틈이 업무를 계속한다. 노트북PC를 잃어버린 그는 손바닥만한 조그만 단말기를 두드려가며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단말기를 들고 캠핑카 지붕과 바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닌 끝에 통신신호가 잡히는 장소를 간신히 발견해 보고서를 무선으로 전송하는 데 성공한다.

휴대폰 같기도 하고, PDA(개인휴대단말기) 같기도 한 이 단말기가 뭘까. 바로 ‘블랙베리’(BlackBerry)다. 미국·유럽의 비즈니스맨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한 순간도 몸에서 떼지 못하는 사무기기다.

블랙베리는 사무실에 있는 PC처럼 이동 중에도 인터넷·이메일·휴대폰·일정관리 등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스마트폰(smart phone)’의 일종이다. 문서작성·표계산 같은 프로그램도 사용할 수 있다.

지난 2003년 북미지역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전기와 유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컴퓨터는 모조리 먹통이 됐다. 기업 업무가 대부분 중단되면서 대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배터리와 무선인터넷을 이용하는 블랙베리는 별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블랙베리 이용자가 많은 기업은 정전으로 인한 업무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때부터 블랙베리의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에 앞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정부 주요부서 담당자에게 비상연락용으로 블랙베리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블랙베리는 현재 전세계 약 700만명의 비즈니스맨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분기마다 100만명씩 사용자가 늘어날 정도로 통신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에선 길거리 카페나 공항에서 블랙베리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블랙베리는 전세계적인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블랙베리가 구글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대박을 터뜨렸다”고 평가했다.

블랙베리는 캐나다의 중소기업 ‘리서치인모션(RIM)’이 1999년 처음 출시했다. 초기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2004년 판매대수 100만대를 돌파한 후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블랙베리의 성공 원인은 철저한 ‘타깃 마케팅’. 처음부터 판매 대상을 일반인이 아니라 ‘비즈니스맨’으로 잡고, 업무에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기존 스마트폰과 PDA는 무게를 줄이거나 배터리 시간을 늘리는 등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전략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블랙베리를 개발한 RIM은 처음부터 비즈니스맨의 24시간을 철저히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이메일로 주요 업무를 처리하는 직장인들이 외부에 나갔을 때에는 “어떤 이메일이 왔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심한 불안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이메일 자동수신’ 기능이다. PDA도 이메일 기능이 있었지만, 사용이 불편했다. 사용자가 일일이 전화를 걸어 회사의 이메일 계정에 접속해야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블랙베리는 사용자가 일부러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아도 이메일이 도착할 때마다 자동으로 알려준다. 메시지 내용과 함께 첨부파일까지 확인할 수 있다.

문서를 쉽게 작성해 곧바로 보낼 수 있는 기능도 블랙베리의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컴퓨터 키보드와 비슷한 구조의 자판을 내장, 사용자가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쉽게 문자를 입력할 수 있도록 했다.


RIM은 블랙베리가 편리한 기능으로 기업인들의 관심을 얻게 되자, 본격적인 판매확대 전략에 나섰다. 미국의 주요 기업체에 블랙베리를 대량으로 공급해 직원들의 업무효율을 대폭 높였다. 다양한 이동통신 시스템에서 쓸 수 있어 현재 세계 60여 국에서 블랙베리를 사용한다.

RIM은 또 2004년 말부터 소니·노키아·삼성전자 등 다른 휴대폰 제조회사에도 블랙베리와 비슷한 단말기를 만들 수 있도록 브랜드와 소프트웨어를 제공, 사용자 수를 크게 늘렸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북미지역에서 블랙베리를 포함한 스마트폰 시장이 2006년 500만대, 2007년 1100만대, 2008년 2800만대로 해마다 2배 이상 대폭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블랙베리를 추격하는 후발 경쟁자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 미국시장에 ‘블랙잭’이란 이름의 스마트폰을 출시, 블랙베리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 RIM은 삼성의 블랙잭이 자사의 블랙베리 상표를 모방했다며 상표권 소송을 제기, 초반 기세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올 4월엔 LG전자가 ‘올인원’이란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애플의 ‘아이폰’도 강력한 경쟁자다. 유럽에선 노키아의 ‘N 시리즈’와 소니에릭슨의 ‘W950’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블랙베리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으면서 이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하다. ‘블랙베리 엄지(BlackBerry thumb)’라는 신종 직업병이 대표적. 블랙베리 사용자가 이메일을 주고받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엄지뿐만 아니라 손바닥 전체에 심한 통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미국 물리치료협회는 ‘블랙베리 엄지’를 정식 직업병의 하나로 인정했다. 요즘 북미지역 호텔에서는 이 질환을 앓는 투숙객을 상대로 엄지손가락과 손목 근육을 풀어주는 신형 마사지서비스 ‘블랙베리 밤(Balm)’이 대유행이다.

블랙베리가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중독자도 늘고 있다. 블랙베리의 별명은 ‘크랙베리(CrackBerry)’다. 중독성이 강한 코카인을 뜻하는 ‘크랙’과 ‘블랙베리’를 합성한 말이다. 잠자리에서도 블랙베리를 놓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증가하면서 블랙베리는 가정불화의 새로운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블랙베리가 오히려 업무를 방해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수시로 블랙베리를 확인하는 바람에 회사에서 회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때문에 GE 등 미국의 주요 기업에선 요즘 회의시간에 블랙베리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스마트폰 판매가 저조한 상태다. KT파워텔이 작년 6월에 시작한 블랙베리 서비스는 현재 가입자가 1000여명에 불과하다. 휴대폰 업계도 몇 종의 스마트폰을 선보였으나 별로 팔리지 않았다. KT파워텔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이메일보다 문자메시지나 음성통화로 업무를 처리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수요가 아직 적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키워드… 블랙베리(BlackBerry)

휴대전화와 개인휴대단말기(PDA)의 장점을 합친 스마트폰의 일종. 캐나다의 RIM사가 개발했다. 음성통화 기능은 기본이고, 무선인터넷 접속, 이메일 확인, 문서작성·표계산 같은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통합했다. 미니 키보드가 달려 있어 문자 입력이 편리하다. 북미지역 직장인들의 필수품으로 통한다.

블랙베리란 이름은 유명한 작명(作名)회사 렉시콘브랜딩이 붙였다. 여러 개의 작은 버튼이 달린 것이 딸기 넝쿨과 유사해 스트로베리(strawberry)로 지으려 했으나, 어감이 느린(slow) 듯한 느낌을 준다고 판단해 블랙베리가 됐다. 블랙베리는 원래 장미과 딸기속에 속하는 식물로, 열매가 익으면 검은 빛이 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LG전자 등이 블랙베리와 비슷한 스마트폰을 생산하고 있다.


키워드… 리서치인모션(RIM)

블랙베리를 개발한 캐나다의 리서치인모션(RIM)은 1984년 마이크 라자리디스(Mike Lazaridis·45·아래 사진 오른쪽) 사장이 2명의 동료와 함께 설립했다. 그리스계인 라자리디스 사장은 1961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5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자랐다.

라자리디스는 독서광이다. 12살때 도서관에 있는 과학서적을 모조리 다 읽어 윈저공공도서관 상을 받았다. 워털루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84년 졸업을 2개월 앞둔 상태에서 학업을 중단, RIM을 설립했다.

부모가 빌려준 1만5000달러(약 1425만원)가 사업 밑천이었다. 초기엔 양방향 무선호출기(일명 ‘삐삐’)와 무선 이메일 사업을 벌였다. 기술과 자본을 축적한 RIM은 1999년 블랙베리를 개발, 출시했다.




라자리디스 사장과 함께 RIM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짐 발실리(Jim Balsillie·45·아래 사진 왼쪽)는 92년에 CEO가 됐다. 그는 회사의 전략·마케팅·영업·재무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발실리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받았다.

그는 경영인뿐만 아니라 스포츠맨으로도 유명하다. 대학시절 하키와 골프선수로 활약했고, 아들이 활동하는 축구팀과 야구팀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 철인3종 경기에도 참가하고 있다. 창업자 두 사람은 사재 1억달러를 기부해 이론물리학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김종호 기자 tell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