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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스키야키

바/ㅏ 2012. 1. 6. 07:00 Posted by 로드365

좀체로 배수아의 제대로 된 사진을 구하지못해 애태우다가 그나마 마음에 든 사진 한 장.




배 수 아


     

ⅰ. 작가연보

 1965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얼마동안 놀다가 공무원 생활을 했으며, 1993년에『소설과 사상』겨울호에「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리고 2001년 직장을 휴직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후에 휴직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머물고 있다.


1995년  소설집『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

1996년  소설집『바람인형』, 장편소설『부주의한 사랑』

1997년  시집 『만일 당신이 사랑을 만나면』

1998년  소설집『심야통신』, 중편소설 『철수』

1999년  소설집『그 사람의 첫사랑』

2000년  중편소설『붉은 손 클럽』, 장편소설『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에세이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2002년  장편소설『이바나』, 장편소설『동물원 킨트』

2003년  장편소설『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장편소설『에세이스트의 책상』

2004년  장편소설『독학자』, 번역작『나의 첫 번째 티셔츠』(야콥 하인) ,

         번역작『바다를 보러 갈 거야』(넬레 모스트)      

2005년  장편소설『당나귀들』

* 작가 이메일 주소_ badmaria@chollian.net


【수상경력】『은둔하는 북(北)의 사람』으로 이상문학상 수상 (1999)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으로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2003)

         

ⅱ. 작가세계 & 작품분석

"소설가여서 소설에 억압받고 싶지 않아요. 전 작가일 뿐입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배수아는 소설을 발명이라고 말한다. 어딘가에 묻혀 있는 이야기를 발굴해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집요한 사색의 과정에 대한 진술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문학적 엄숙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그래서 그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전통 문학사적 배경과 이데올로기를 비껴나 있는 다소 몽환적인 이미지, 건조함과 냉소로 가득한 문체로 특징 지워진다. 배수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한결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늦된 아이들이며 주로 스무살 안팎의 주변적 존재이다. 이들은 사회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를 거부하는 인물이며 '스스로 선택한' 이상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신세대적 일상을 파고들며 신세대적 일상에 숨어 있는 존재의 어둠과 불안, 삶의 이중적 풍경에 대한 감각적 묘사로 일관하다. 체험과 사실성이 강조되던 우리 문학사에서 배수아는 은폐된 존재의 어둠을 탐사하며 독특한 개성을 갖춘 신세대 작가로 성장해왔고, 이제는 미적 성숙의 단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초기 경향에 대해서...

1.신세대

배수아의 초기 작품은 어른이 없는 성장의 기억을 가진 신세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랩소디 인블루>,<부주의한 사랑>등 초기작품은 성장소설의 논의로 모아졌지만, ‘성장’이 없는 성장 소설이라는 특이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바로 80년대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은 우리 사회에 대한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난 ‘신세대’가 배수아의 작품의 한 면을 예리하게 표현하는데 적절하게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배수아는 바로 이 ‘신세대’의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것이다. “켈빈 클라인 청바지 위에 하얀 필라 셔츠를 받쳐 입고 하이네켄을 마시는 아이들, 감수성의 뿌리를 헤이즐넛 커피, 피타, 다이어트 코크, 디즈니 만화 영화와 같은 도시적 문물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신세대들이다. 이들은 비싼 옷, 멋진 포즈, 이성친구등이 중요하고 심각한 세상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따를 어른이 없는 것이다. 어른이 되기를 갈망하지만 될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들이 바로 신세대들이다. 배수아의 초기 작품에는 바로 이런 신세대들, 소외된 비주류의 사람들을 소설의 중심으로 불러오고 있다.

2.환각(몽유), 죽음

배우아의 세계에서 사랑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환상이고 죽음과 만남으로서만 이루어진다. 그래서 일상에 지친이들을 유혹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이다. <건전한 부르주아의 도시>에서도 달을 만나기 위해 그는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프린세스 안나>에서는 현실속의 무기력한 사랑으로 이해되는 노아와 도시적인 죽음의 환상인 핑크가 나온다. “핑크는 밤이고 곧 다가올 전쟁이다. 노아가 꿈꾸고 있는 푸른 얼굴의 쿠바인이고........ 우울에서 해방시켜준다” 핑크는 바로 죽음의 유혹이다. 현실의 깊은 절망 속으로 들어선 배수아는 우리를 죽음과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이끈다.


3.이미지

배수아의 소설은 서사위주의 글쓰기가 아니라 이미지 중심의 글쓰기이다. 지속적이거나 논리적인 서사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미지들이 영화의 쇼트(short)나 만화의(cut)처럼 연결된다.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에 ‘벌어짐’은 있지만 ‘이어짐’은 없다. 이것은 기억을 통해서 과거의 사건을 역사화하지 않고자 한다. 그것의 수단이 바로 서사인데, 이것을 버리고 이미지로서의 역사를 시도하는 것이다.


4.허무주의

허무주의와 무의미성이 낭자하고 몽환적이며 생경한 꿈의 나라를 펼친다. 막연하게 일상성의 지겨움에서 탈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허무적인 제스처를 반복하고 있다.


새로운 전환기 - 이바나

줄거리 : 이바나는 이 작품에서 10년쯤 된 중고 자동차의 이름이기도 하고, '집시의 표정을 닮은' 몰락해가는 어느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주인공인 나와 K가 함께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와 K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지고 커피를 몇 리터씩 들이켜야만 일을 할 수 있게 되자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이바나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여행으로 찾아가는 목표, 그것은 '침묵'이다. 레드 제플린의 'Going to California'만을 수도 없이 되풀이 들으며 그들은 한밤의 산악지대, 개발계획이 취소돼 폐허처럼 된 해안가 마을, 황폐한 공장지대 등을 13개월 동안 2만5,000㎞를 여행한다. 더 이상 대도시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들은 우편으로 사직서를 보낸다. 돈이 떨어지자 ‘나’와 ‘K’는 다음 여행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책을 쓰기로 한다. 책 쓰기가 늦어지자 ‘K’는 결국 떠나지 못하게 될까봐 불안해하고, ‘나’는 책을 쓰는 동안 ‘이바나’가 점점 중요하게 다가오자 책을 다 완성하고 나서야 떠나길 원한다. 이 이야기의 한쪽에 또 다른 한 쌍의 주인공인 남자 간호조무사 B와 그의 연인 산나의 이야기가 있다.

▶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여행, 불면, 침묵 그리고 이바나이다. 그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일하기 싫다’이다. 의미화된 일상, 이름 붙여짐에서 비롯되는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K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K의 불면은 노동을 해야만 살 수 있다는 강박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동은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남자와 여자, 불리는 이름, 직책 등을 규정짓는다. 따라서 불면은 의미화되고 구조화된 대도시의 체계에 대한 육체적 저항의 산물인 것이다. 직업은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닌 안전을 보장받는 유일한 장치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서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었고, 강박증에서 벗어나 불면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침묵을 가질 수 있었지만, 혼란과 불안을 얻게 된다. 또, 여행은 화자의 글쓰기가 된다. 화자와 K는 여행을 계속 하기 위해서 ‘이바나’라는 글을 쓰게 된다. 글쓰기는 대도시의 체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다. 그들이 애초부터 여행을 떠난 이유가 ‘일’에서 벗어나기 위함이고 그 여행에는 이바나도 함께였다. 이바나가 없는 여행은 의미없는 일탈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것은 의미화를 거부하는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글쓰기를 편집자는 이해하지 못하고 “여행은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살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 머 그런게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즉, 욕망과 현실의 대화는 이런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글쓰기에 집착하는 ‘나’로 인해 여행을 떠날 날이 멀어지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낀 K가 이렇게 말한다. “너는 공명심의 덩어리야. 너의 공명심이 나를 죽일 거야. 너도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는 거야. 그렇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체계에 대한 저항이 결국엔 그것의 일환이 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

▶ ‘이바나’ 안에서는 이름과 성별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이니셜로 등장하는 것과 책의 중반까지 읽어도 인물들의 성별을 잘 파악할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특히, K는 자기라는 존재 자체, 자신의 성별과 이름과 목소리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성적 정체성을 철저하게 거부했다. “K는 또한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부정했다. K는 그녀, 라고 불리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했다. 그리하여 나는 글 내내 K를 그, 라고 부른다.” 즉, 이 작품은 이름 붙여진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붙여진 이름이 있다. 집에서는 아들, 딸로, 학교에서는 선배, 후배로. 많은 형태의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것은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면서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으며, 여기에는 의무와 책임도 뒤따른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정신병자나 또는 우울증 환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될 뿐이다. 만약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라도 이바나와 함께 하고자 해도, 노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바나와 함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회의‘ 뿐인 것이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가난’에 대한 보고서 -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빈곤’을 주제로 부암동 스키야키 식당 주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각 편의 사건전개가 뚜렷한 연관성없이 독립적이긴 하지만 ‘부암동’이라는 한 동네의 스키야키 식당 주변에 모여 살고 있는 인물들이 얼마나 ‘빈곤에 짓밟히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소설에서 가난은 가족관계의 파탄, 힘겹지만 임금은 박한 노동, 엄청난 식탐, 사회적 지위의 급락, 존엄성의 상실, 돈의 절대화, 인간적 가치에 대한 냉소 등 다채로운 양태로 나타난다. 그녀의 초기 경향과 달리 그 어떤 깨달음이나, 몽환적인 분위기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있다면 ‘위악적인’ 인간 군상뿐이다. ‘위악적’이라는 말은 ‘빈곤’과 맞닿아 있다. 경제적인 빈곤에서부터 정신적인 빈곤, 나아가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자기애의 치명적인 상처’(작가의 말)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인간관계에서 오직 ‘빈곤’만을 볼 뿐이다. 작가는 가난뱅이들의 더럽고 슬픈 삶을 파편적으로 그려 나가지만, 그들을 인터뷰하고 그 삶을 취재하는 ‘성도’라는 인물의 관찰자적 시선을 통해 그것들을 한 줄로 꿰고자 한다. 그의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는 「예비적 서문 - 슬픈 빈곤의 사회」라는 제목의 장에 따르면 “빈곤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며 동시에 모든 가능한 것들의 종말”이다. 그는 또 “이 ‘빈곤’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데, 그것은 곧바로 소설 구성의 특성과도 통하는 진술처럼 보인다. 가난의 현실은 줄기차게 진행될 뿐 결코 완미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도 특별한 시작과 끝이 없다. 그리고 가난은 계속된다.

▶그렇다고 여기에는 ‘가난한 자’만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지 않은 자인 지식인의 허상(백두연, 음명애, 우균, 김요환)을 꼬집어 내기도 한다. 그 밖의 인물들에 대해 말하자면, 돈이 신앙인 영혼(돈경숙, 표현정)과 소비만이 미덕인 신세대(세원, 털 모델)등이 등장한다. 이렇듯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각 인물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으면서, 공통의 주제인 ‘가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양하면서도 비슷비슷한 가난뱅이들 속에서도 ‘노용’이라는 인물은 특이하다. 방이 열두 개나 되는 대저택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훌륭한 집에서 살고 있는 그는 그러나 일을 하지 않는 대신 남들이 먹다 버린 최소한의 음식만으로 목숨을 유지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의 이복 누이가 지적한 대로 그는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극단적인 가난뱅이 역할을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일반적인 타고난 가난뱅이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는” ‘도스토예프스키적’ 인물이다.

▶결론적으로,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 갖고 있는 장점은 적어도 삶에서는 이 소설이 적실해 보인다는 점이다. 소설의 내용이 위악적일지언정, 또 너무나 적나라해서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지언정 ‘거짓 평화’나 ‘가짜 깨달음’ 따위를 내놓지는 않는다. 이 냉혹한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 편이 나아 보인다.


* 현재 ebook21에서 연재하고 있다.



【참고자료】『이바나』, 배수아, 이마고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문학과 지성사

            『미와 이데올로기』, 손정수, 문학동네

            『육체, 비평의 주사위』, 최성실, 문학과 지성사

            『비하의 상상력이 우리에게 묻는 것』, 권오룡, 문학과 사회, 2003년 여름호

            『심야통신』, 배수아, 해냄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배수아, ebook21.com

 
출처 : http://cafe.naver.com/w8w/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