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로 2003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성공으로 작가로 자리잡았다. 동 작품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1] 단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로 2004년 제 28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입상, 이후 29, 32, 33회차 우수상에 입상하고 2010년 단편 "아침의 문"으로 제 34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2007년 "누런 강 배 한 척" 으로 제8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 작품집으로 "카스테라"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지구영웅전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있다.
젊었을 적에는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했고 또 밴드를 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단편소설에 묻어나 있다. 한때 베스트셀러라는 잡지의 편집장을 하면서 잡지에 정신나간 느낌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또한 80년대의 문화적 코드를 작품 내에 활용하는 데 익숙하며(예컨대 단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의 소재인 너구리 게임이라던가...) 디씨 등에서 유행하는 문화적 코드를 가져오기도 하는 등(단편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에서는 "오 내 어깨야"가 등장하기도. 흠좀무...[2])으로 하여 20대 중후반 세대에게는 재기발랄하여 읽는 재미가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대체로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 안에 던져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비현실적인(혹은 초현실적인) 요소를 삽입하여 결말에서 여운을 주는 형태의 단편이 많다. 주로 단편집 "카스테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형.
허나 다른 면으로는 그가 쓰는 글이 과연 문학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작가이기도 하다. 등단을 하고 상은 줬지만, 이게 문학인가 싶어지는 글과 작가 특유의 기행 등이 합쳐진 결과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후론 강제개행을 꽤나 적극적으로 사용하는편.강제개행은 금지라니까! 게다가 문장단위로 강제개행 할 뿐 아니라 그냥 갑자기 문장 중간에 강제개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어디까지나 문장의 호흡을 위한점이긴 하지만 파격적이긴 한 셈. 게다가 최근 작에선 강제개행 뿐 아니라 글자크기를 다르게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점점 여러가지 시도를 하는 중
특히나 일반문학을 좋아하며 읽던 사람들이 박민규의 글을 보고 보이는 반응은, "이게 소설인가?"와 "오 이거 좋다!" 둘로 극명하게 나뉜다.[3] 요즈음에는 이런 식으로 소설적 문법 쓰기가 아닌 다양한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쓰는[4] 작가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대표적으로 한유주), 초기 등장했을 때만큼의 파급력은 약해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습작을 위하여 읽어볼 필요는 있지만 함부로 따라하면 안될 작가이기도 하다. 박민규체라고 할 만큼 문체가 독특하한데, "쓴다"라기 보다는 "말한다"라는 형식으로 이야기들을 나열하고는 한다. 가독성은 몹시 좋아졌지만 아직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이 완성되지 않은 습작생들이 휩쓸리게끔 손가락을 근질근질하게 만드는 단점 아닌 단점이(...)
참고로 그 특유의 기행적인 모습에 비해서 말재주는 없는 편이라고 한다.
말재주는 없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는 편이다. 모 대학 작가와의 대화에서 강당 안에서 담배를 태우고 싶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허락을 구하고서 피우고, 자신의 글을 쓰는 뮤즈로서 아내를 꼽는 등, 애처가적인 측면을 내보인다.
1.1 작품 목록 ¶
지구영웅전설 (2003)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
카스테라 (2005)
핑퐁 (2006)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09)
더블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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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소설을 읽은 영화 감독이 영감을 얻어 '슈퍼스타 감사용'이란 영화를 만들었지만 내용상 별 관련도 없고 판권을 사지 않았으므로 원작은 아니다.
[2] '오 내 어깨야'의 경우는 단순히 문화적코드를 가져온 것이 아닌 빌리 헤링턴의 팬(!)으로서 오마쥬형식으로 넣은 것이라고 한다.
[3] 박민규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출신이며, 학부 시절 시를 전공으로 배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시적 기법을 이용하여서 시를 쓴다.(사실상 시를 배웠지만 소설상으로 인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강이나 이응준의 소설을 보면 기존의 소설 형태이지, 박민규처럼 무규칙 이종격투기를 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대답은 계속 짧고 어리둥절했다. 그가 대답을 마칠 때마다 예정된 수순처럼 길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물안경 같은 예의 그 비행용 고글을 쓰고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나타난 그는, 종내, 어눌도 효과적인 화술 중 하나라는 걸 증명해보였다. “저를 포함해 다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안 될 것 같더라구요, 인류라는 게.” 팔을 긁적거리며 중얼거리듯 내뱉은 그의 ‘황당한’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면, 그 사람도 염세주의자인 걸까.
소설가 박민규(38)씨가 인류를 멸절시켰다. 데뷔작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소설집 ‘카스테라’에 이은 새 장편소설 ‘핑퐁’(창비ㆍ9,800원)에서다. “재앙을 다룬 이야기들이 많지만 대개는 희망을 갖잖아요. 위기를 극복해 결국은 살아남고. 하지만 정말로 다 죽이는 걸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전쟁도 할 만큼 많이 했고, 인종갈등, 종교문제 등 2000년 동안 해볼 건 다 해봤죠. 선진국도 많고, 잘 사는 민족이나 인간들도 많은데,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없어요.” 인류를 대상으로 ‘Delete’ 버튼을 눌러버린 ‘삭제의 변’이다.
소설은 처절하게 왕따를 당하는 두 남자 중학생이 인류의 사활을 걸고 탁구게임을 벌이게 되는 우주적 스케일의 문제적 사건을 그리며 세계의 폭력성을 풍자한다. 학교의 ‘치수 패거리’에게 늘 돈을 빼앗기고 구타에 시달리는 ‘못’과 ‘모아이’는 제발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핼리혜성이 지구와 부딪쳐 지구가 멸망하기를 염원하는 무력한 10대 소년들. 다수결의 운영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세계는 2%의 대표자들에 의해 움직이고, 나머지 98%는 세계로부터 배제된 이 어린 소년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외면할 뿐이다.
작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 외롭고 서러운 왕따 소년들이 광야에서 우연히 발견한 탁구대로 인해 탁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인류로부터 배제된 존재들을 대표해 지구에 안착한 커다란 탁구공으로 인류의 대표들과 탁구게임을 벌이게 되는 독특한 사건을 특유의 경쾌한 문체로 묘파한다. 작가는 그 과정을 통해 인류를 유지할 것인가, 지구를 새로이 포맷할 것인가의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탁구?
“축구나 야구 같은 건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하는, 기회가 균등하지 않은 경기죠. 하지만 탁구는 내가 한 번 치면 저쪽에서도 한 번 치잖아요. 여론이나 의견 같은 게 축구나 야구처럼 한 사람이 끌고가면 우르르 몰려가게 되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탁구는 일대일로 직면해야 하니까, 그게 독특해서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천연덕스레 황당한 사건들을 엮어나가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아무런 이물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은 작가의 탁월한 재주다. 인물들의 내면적 성량에 따라 활자의 크기를 달리 하거나, SF소설 3편을 액자형식으로 끼워넣고,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내러티브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등 새로운 형식도 다채로이 시도됐다.
“제가 무식해서 그래요. 저는 전지적 작가시점인가 그런 게 있다는 걸 ‘카스테라’를 발표하고 나서 처음 알았어요. 1인칭이 뭔지도 몰랐어요. 충격이었죠. 산문에서는 행갈이를 하면 안 된다는 것도 몰라서 그랬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제대로 못 배운 게 좋은 점도 있어요. 그냥 저 쓰고 싶은 대로 막 쓰면 되니까.”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죽어야 할 것 같다는 이 지독한 염세주의자는 그러나 시인의 작위를 흠모하며 남몰래 시를 습작하고, 20년후 결성할 록밴드를 위해 밤마다 고등학생들과 함께 기타 교습소를 들락거린다. 모순이지만, 건강한 모순이다. “그냥 열심히 사는 거죠. 누구나 다 그렇게 살지 않나요? 전 너무너무 잘 살고 싶어요. 희망 같은 건 별로 기대도 안 하지만.”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소설가 박민규씨 "'왕따' 통해 사회폭력성 고민해봤죠"
"20세기 들어 인류가 저지른 전쟁과 테러,민족·종교 간 싸움과 분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 양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요. 문득 우리 인류가 이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소설은 우리 인간들이 '왜 사는지',또 우리의 미래는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쓰게 됐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체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박민규씨(38)가 신작장편 '핑퐁'(창비)을 펴냈다.
소설의 주인공은 왕따 중학생 '못'과 '모아이'.존재 자체가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은 늘 돈을 빼앗기고 구타에 시달린다.
기성세대와 이 세계는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에 물들어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부조리를 방조하고 있다고 작가는 꼬집는다.
"'못'과 '모아이'는 어느 중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학생들이죠.제 개인적인 경험이나 아니면 역할모델이 주위에 있었느냐는 질문을 더러 받는데 그렇진 않아요. 그냥 제가 생각해 낸 인물들이죠."
자유로운 문체가 '박민규 스타일'이 아니냐고 묻자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워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카스테라'를 쓰고 1인칭 시점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대학(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를 전공했지만 솔직히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않아 체계적으로 배운 건 없습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은 게 글쓰기 공부의 전부나 마찬가지죠."
최근 김사인 시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고 새벽에 눈물까지 흘렸다는 박씨는 시인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같은 걸 갖고 있다고 털어놨다.
소설(小說)이 말그대로 '작은 이야기'인 반면 큰 이야기를 담는 것은 시(詩)라는 게 박씨의 지론이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문인들끼리의 모임에 참석할 때가 있어요. 제가 소설가들 사이에선 조금 방만하게 앉아 있다가도 시인들 앞에 가면 겸손하게 행동하는 편이에요. 앞으론 시도 써보고 싶습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
[김호영의 문화코드읽기] 핑퐁―박민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일보]2006-11-01 3564자
박민규가 돌아왔다
오랫동안 박민규의 신작을 기다려왔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다. 박민규의 단편소설집 <카스테라>가 발표된 게 작년 여름의 일이니까, 불과 1년여 만에 새로운 장편 소설이 세상에 나온 셈이다. 짧다면 짧고 적당하다면 적당한 공백기라 할 수 있는데도, 개인적으로는 무척 오랜 시간을 기다린 느낌이다.
박민규의 신작 <핑퐁>은 이런 애틋한 기다림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예상과는 사뭇 다른 내용과 형식이지만 그의 문학적 지평이 또 다른 차원으로 확대된 것 같아, 그리고 덕분에 우리의 문학적 지평이 또 한층 두터워진 것 같아 읽는 내내 행복함을 느꼈다.
하지만 박민규의 예의 그 화려한 ‘유머’를 기대했던 독자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작가 김영하가 빼앗아오고 싶다던 기이하고 유쾌한 문장, 여러 동료 작가들과 평론가들의 ‘항복’을 얻어냈던 탁월한 유머 감각은 이 소설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히, 박민규는 전작들에서보다 덜 웃긴다. 그만큼 그의 시름이 깊어진 탓이고, 그의 우울증이 심해진 탓일 게다. <지구영웅전설>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지가 이제 겨우 3년. 그 짧은 세월 동안 시대와 사회에 대한 한 젊은 작가의 절망이 이토록 눈에 띄게 깊어진 것은,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소외가 아니라 ‘배제’다
<핑퐁>의 주인공은 ‘못’과 ‘모아이’라는 별명의 두 중학생이다. 한명은 매일 친구에게 벽에 못 박히듯 맞는다 해서 못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다른 한명은 남태평양 어느 섬의 석상처럼 얼굴이 거대하다 해서 모아이라고 불렸다. 둘 다 학급 내 왕따이며, ‘치수’라는 깡패 패거리들에게 불려가 죽도록 맞는 게 중요한 하루 일과다. 특히 이 책의 화자이기도 한 ‘못’은 스스로를 인간 하위(下位)라고 여기면서 친구에게 맞을 때마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어느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하는, 책 속의 표현 그대로 “세상이 깜박한 인간들”이다.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폭력’이다. 크게 두 종류의 폭력인데, 하나는 월등한 힘과 능력으로 주변을 지배하는 ‘소수’의 가시적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의 폭력 앞에서 한결같이 침묵하는 ‘다수’의 비가시적 폭력이다. 주인공들은 처음엔 가시적 폭력을 증오하지만, 비가시적 폭력의 잔혹함에, 침묵하는 다수의 위악성에 점점 더 커다란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주변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배제’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배제된 두 친구의 우정은 함께 맞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그리고 몇 가지 특별한 사건들을 공유하면서 점점 더 깊어진다. 즉 이들은 이런저런 계기로 공사장 벌판의 탁구대를 발견하고, ‘핼리를 기다리는 모임’에 가입해 핼리와 지구의 충돌을 기다리고, 또 세끄라탱이라는 ‘탁구계’ 사람(외계인)을 만나 탁구의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들을 배제하는 것은 마흔한 명의 급우가 아니라 육십억 인류 전체라는 것을 깨닫고, 인류란 단지 “배제당하지 않으려고 다수인척 살아가는 인간들”의 집합임을 알게 된다. 그 인간들 하나하나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에 불과하지만 그 인간들이 “모여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를 ‘언인스톨’시키기
결국, 탁구계로부터 날아온 간섭자 세끄라탱은 못과 모아이에게 지구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준다. 두 중학생은 철저하게 훈련된 인류의 대표들과 탁구시합을 벌이는데, 길고 긴 랠리 끝에 상대를 과로사로 이끌어 시합에서 승리하게 된다. 승리의 대가로 이들은 인류의 운명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지만, 고민 끝에 “고등학생 정도로만 부패해도 이런 결정을 못 내릴 거라고” 판단하면서 인류의 유지가 아닌, 인류의 ‘언인스톨’을 선택한다. 요컨대 전세가 완전히 역전돼, 인류로부터 줄곧 배제되던 이들이 거꾸로 인류 전체를 배제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라도 인류 전체를 왕따시키는 것이 낫다는, 인류 전체를 언인스톨시키고 생태계를 무화시킨 후 새로운 생명체들에게 지구를 맡기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워낙 황당무계하게 연결되는 줄거리여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끔찍할 정도로 절망적인 묵시록이라 할 수 있다. 인간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낀 작가의 절망이 뼛속 깊이 전해져오는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만 해도 1할2푼5리의 승률로 살아가는 마이너들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던 작가가, <카스테라>에서만 해도 일상의 소소한 편린들을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작가가 이 책에서는 더 이상의 미련을 버리고 과감하게 등을 돌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깊은 절망으로, 인류 전체에 대한 환멸로 이끌었을까?
박민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여기가 박민규 문학의 끝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나갔지만, 그냥 여러 갈래 중 하나를 마음 가는대로 따라갔을 뿐이다. 사실, 그는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때까지만 해도 그저 개그적 글솜씨의 작가로만 치부하던 이들이, <카스테라> 이후 갑자기 그를 차세대 대표 작가로 추켜세웠기 때문이다. <카스테라>의 여러 단편들에서 보여준 사회 주변부에 대한 따뜻한 시선 덕분이었겠지만, 문단의 사람들은 어느새 ‘다수’가 되어 단숨에 그를 감각적 문장과 진지한 주제의식을 두루 갖춘, 균형 있는 모범적 작가로 만들어갔다. 요컨대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기를 유지하면서 문단의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라 할 수 있는, 모든 게 그를 위해 호의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엿을 날린다. <핑퐁>을 통해 강한 스매싱을 날리며, 그는 중얼거린다. ‘균형 좋아하네..., 당신들 나를 너무 띄엄띄엄 아는 거 아냐?’ 뭐, 균형 있는 작가가 나쁜 말이겠는가. 다만, 아직 실험할 것도, 생각할 것도 많은 한 자유로운 영혼을 너무 쉽게 틀 지우는 우리 문단의 조급증을 향해 가볍게 스매싱을 날린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맞아도 아프지 않는, 가벼운 탁구공으로 말이다.
이후로도, 박민규의 또 다른 소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핑퐁>은 그의 내면에 있는 하나의 절망과 하나의 분노가 표출된 작품일 뿐이다. 언제 다시 그가, 방송3사의 모든 개그프로를 다 합친 것보다 더 웃기는 문장으로, 마이너들의 일상에 대한 한없는 연민으로, 혹은 아예 지구 밖 은하계에 사는 우주인들의 로맨스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그가 노벨상 등에 목을 매는 대작가가 되건, 고도의 유머 감각을 갖춘 최고의 베스트셀러작가가 되건, 아니면 진지하고 착한 문단의 대표작가 되건, 나는 관심이 없다. (박민규의 표현대로)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한 건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으며 형식에서나 주제에서 끝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 한 작가가 이 시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지루한 일상에서 간간이 그의 자유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얻는다. 김호영 한양대 유럽언어문화학부 교수 zizou@hanyang.ac.kr
[한국일보 문학상 후보자 인터뷰] <5·끝> 박민규
박민규 '핑퐁'
"쓰고 싶은 대로… 읽고 싶은 대로…"
"저는 글 쓰는 일이 너무 좋습니다. 미치겠습니다. 많이 많이 많이 쓰고 싶습니다."
<핑퐁>은 흉내내기 힘든 개성적 글쓰기로 젊은 독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아온 박민규(38)씨의 세 번째 장편이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동시에 문예지와 일간지의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그는 소설집 <카스텔라>와 <핑퐁>을 연년생으로 세상에 내놓으며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생산력을 보여줬다.
가족여행 중인 작가의 요청으로 이메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특유의 단답형으로 소설쓰기의 행복을 얘기했다. 비블리오그래피에 장편의 비중이 높은데 어렵지 않았냐고 물어도 "힘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쓰고 쓰고 또 쓰면 됩니다"는 식의 답변이었다. 아마 '쓰고 싶은 대로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은 읽는 사람 마음'이라는 그의 철칙이 낳은 낙천주의 덕분일 것이다.
<핑퐁>은 지구의 사활을 걸고 외계인과 탁구게임을 펼치는 내용이다.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을 마치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일품이다. 소설이 꼭 개연성으로 충만한 시공간과 사건만을 다루란 법은 없지만, 반대의 경우 독자를 설득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 "개연성은 물론 소설의 중요한 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한 요소, 말 그대로 전부는 아니란 뜻입니다. 연(然)이라는 단어 앞에도 여러 가지 단어가 붙을 수 있습니다. 어떤 단어가 붙냐에 따라 연의 성격도 달라지겠지요.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있다면 그 단어를 찾는 것입니다. 그 어떤 단어, 하지만 결국 연을 이어지게 하는 방식을 뜻하겠죠."
진짜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농담을 던지자 "그럼 없다고 생각하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초강력 유머가 가득한 당신의 소설에서 유머의 효과가 뭐냐고 물으면 "유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카스텔라>에 묶인 그의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와 <몰라몰라, 개복치라니>의 제목 작법을 빌려 말하자면 이렇다. "그렇습니까? 박민규입니다", "몰라 몰라, 박민규라니".
◆ 심사평
80년대를 짊어진 21세기 작가
박민규는 아이러니한 작가다. 그의 글쓰기는 다양한 하위문화 장르들에 대해 지극히 너그럽다. 만화와 영화와 인터넷은 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자양분들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만큼 개연성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웃음보다도 더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가 항상 '현실'의 남루를 모른 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그의 '유머'는 우스운 만큼 비극적이고 숭고한 데가 있다. 어쩌면 그는 가장 21세기적인 작가이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80년대 문학의 마지막 적자인지도 모른다.
<핑퐁>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박민규적인 작품이다. 전혀 개연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를 장편 분량으로 밀고 나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이 놀랍다. 독자를 웃게 만들고, 웃다가는 금세 묘한 비애와 자조에 빠지게 만드는 그의 문장들의 마력도 놀랍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현재 존재하는 우리의 일상적 현실을 묘파하는 능력 또한 놀랍다. 우리는 박민규에게서 21세기의 첨단 문물들과 80년대의 진지한 현실 탐구가 행복하게 화해하는 희귀한 예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문학평론가 신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