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첫 생산된 바비인형.
여자 아이들은 바비 인형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핑크색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바비 인형의 옷을 갈아 입혀주고 머리도 빗겨준다. 인형과 둘만의 대화도 나누기도 한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아이들은 바비 인형과 함께 핑크빛 성장기를 만들어 간다. 처음 등장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새롭게 출시되고 있는 바비 인형. 그에 모자라 바비 화장대와 바비 화장품, 바비 동화책, 스티커, 비디오게임 등 바비 인형의 핑크빛 세계관을 구성하는 관련 장난감들. 장난감 인형의 한계를 넘어 이제는 전 세계의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바비인형에 대해 알아보자.
‘미녀’ 인형, 어떻게 탄생했나?
바비 인형은 1950년대 루스와 앨리엇 핸들러(Ruth & Elliot Handler) 부부가 창업한 마텔사에서 만든 인형이다. ‘바비(Barbie)’라는 이름은 부부의 어린 딸 이름 ‘바바라(Barbara)’에서 딴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바비 인형의 아이디어는 어느날 루스 핸들러가 바바라가 종이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유심히 관찰한 순간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관심 있게 지켜본 부분은, 바바라가 어린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놀이 안에서 어른이 행동하는 양식을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장난감은 아이들이 그저 '가지고 노는 것'이라는 일차원적인 인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아이들이 장난감을 통해 어른의 생활을 흉내내고,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당시의 그러한 인식을 뛰어 넘는 차별화된 장난감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바비 인형 탄생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사건은 좀더 후에 있었다. 1956년 루스 핸들러는 가족과 유럽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길에서 독일의 성인용 피규어 인형, 빌드 릴리(Bild Lilli)와 운명적인 조우를 한다. 빌드 릴리는 유명 신문 만화에 등장하는 동명의 주인공을 장난감으로 제작한 것이었는데, 만화 캐릭터는 화려한 금발의 직장 여성으로, 남자들에게 기죽지 않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여성이었다. 빌드 릴리의 선풍적인 인기를 목격하고 이에 영감을 받은 그녀는, 귀국 후 자신 만의 성인 인형을 만든다. 그리고 1959년 3월 뉴욕에서 열린 국제 토이 페어에 “바비”라는 이름으로 출시한다.
금발과 흑갈색 머리의 이 인형은 얼룩말 무늬의 수영복을 입고 수줍은 표정으로 아래쪽을 힐끔 쳐다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바비 인형의 표정은 더 밝아지고 시선은 정면을 보는 것으로 변화된다.) 당시 이런 바비 인형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전의 장난감에는 볼 수 없었던 여성 신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와 화려한 의상, 현대적인 머리 모양 등이 그 당시로서는 다소 과감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뉴욕의 한 언론매체에서는 ‘장난감 세계의 실수’ 라고 까지 보도하며 반감을 보였을 만큼 획기적인 인형이었다. 사람들의 충격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바비 인형은 발매 첫 해 약 35만개를 판매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한다.
스스로 욕망하는 인형
1960년대 초반 바비 인형은 특이하게도 스스로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바로 바비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출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바라 밀리센트 로버츠(Barbara Millicent Roberts)란 이름으로 가상의 마을 윌로우(Willows)에 사는 것으로 설정된 그녀는 윌로우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녀다. 그녀의 주변에는 아빠 조지 로버츠와 엄마 마가렛 로버츠 그리고 남자친구인 캔(Ken)이 있다. 캔과는 애정 관계를 이루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녀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개와 고양이, 말, 새끼 사자 등 40 종 이상의 동물을 키우기도 하고 핑크색의 코르벳 자동차와 트레일러, 지프도 가지고 있다. 남자 친구 캔과 함께 요리를 하고, 소파에 앉아 TV도 보는 핑크색 집도 생긴다.
이렇게 다듬은 세계관은 직접적인 상품 출시로 연결되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소설의 네러티브에 편승해 마텔사는 6,70년대 다양한 돌하우스와 침대, 가구세트를 출시했고 이 소품들의 매출은 인형 판매액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끈다. 또한, 1961년 처음 등장한 바비의 남자 친구 캔 인형도 점차 인기를 구가하며, 다양한 캐릭터의 캔 인형과 그만의 소품, 아이템들도 늘어난다.
이어 1980년대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 상품이 봇물을 이룬다. 마텔사는 당시 10대 소녀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해 그들의 생활을 축소하는 데 중점을 둔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바비, 테니스선수 바비, 에어로빅 바비 등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당시 소녀들의 시대상을 반영한 제품들이 출시된다. 미국 보수성향의 신문들은 바비 인형이 소녀들의 과소비를 조장한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해체함으로써 가정의 규율을 흔든다 등의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내기도 했지만,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바비 인형의 인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성인 바비는 다양한 직업도 갖게 된다. 대표적으로 60년대 인기 직업이었던 항공기 승무원을 시작으로 우주비행사 바비(65년), 닥터 바비(88년), 카레이서 바비(98년) 등이 등장한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공주나 백작부인 같은 바비 인형도 있었고, 반대로 의사, 간호사, 치어리더, 학교선생님 등 다양한 여성 직업군을 묘사하며 현대 여성의 표상을 보여주는 커리어우먼 바비인형도 있었다. 바비인형이 더 이상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20세기 변화된 여성상을 보여주는 시대의 상징으로 변화한 것이다.
바비, 논쟁의 중심에 서다
1958년 탄생부터 항상 바비 인형은 많은 논쟁거리를 불러 일으켰다. 대부분은 바비 인형의 외모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바비 인형은 인체를 축소한 1/6 비율의 11.5인치 크기로, 175cm키의 성인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50kg의 몸무게, 36-18-33(가슴-허리-엉덩이)이라는 비현실적인 외모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과장된 모습은 어린 아이들에게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심어준다는 것이 바비 인형 비판의 주된 논점이었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수반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아이들이 바비인형을 외모의 롤 모델로 삼고 모방하려 하며, 비현실적인 젊은 여성의 외모를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게 되면서 훗날 거식증 환자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논란이 무색하게도, 1963년 마텔사는 여성들의 다이어트를 권장하는 제목의 책 모형과 함께 바비인형을 판매해 소비자 단체와 학계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또한, 부모들은 인형의 뚜렷한 가슴라인 등에서 나타나는 선정성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바비인형의 외모는 소비자들의 의견에 따라 조금씩 수정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부분이다.
마텔사는 여성들의 다이어트를 권장하는 제목의 책 모형과 함께 바비인형을 판매하며 소비자들과 학계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흑인 바비인형(1986년). 흑인 바비 인형은 백인 인형의 얼굴에 검은 피부색만 입힌 것으로, 흑인 고유의 특성이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도마에 올랐으나, 이러한 제작 방식은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992년 7월 출시된 말하는 바비 인형도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인형의 대사 일부가 미 대학 여성 협의회에 의해 제재 조치를 받은 사건이었다.문제의 문구는 “난 쇼핑을 사랑해”, “수학 수업은 어려워” 등이었다. 마텔사는 곧 이 문구가 들어간 인형을 판매 중지하고 기존에 판매된 인형은 교환해 주었다. 이는 장난감 회사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은 대표적인 일화로 기록되었다.
바비 인형은 인종 차별 문제로도 종종 도마에 올랐다. 1967년 흑인 바비 인형이 처음 생산됐는데 흑인 고유의 특성이 배제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이는 기존 백인 바비인형의 금형에 얼굴을 만들어 검은 피부색만 입힌 것으로 이러한 제작 방식은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백인우월주의라는 비판 속에서도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던 마텔은 2009년 9월이 되서야 사실적으로 묘사된 흑인 바비인형을 출시한다.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도 있다. 백인 여인의 외모를 한 바비인형은 아직도 일부 중동 지역에서 정식 수입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바비인형의 선정적인 포즈와 노출이 심한 의상, 화려한 악세서리 등을 백인 여인의 모습을 한 서구사회 타락의 상징으로 여겼다. 중동의 일부 국가들은 바비인형의 대안으로 풀라(Fulla)라는 이름의 중동판 바비인형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바비, 어른들의 마음을 훔치다
최근 마텔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판타지와 문화의 다양성이다. 그들에게 판타지는, 소녀들에게 동화 속 공주와 백마 탄 왕자는 영원한 로망이기에, 언제나 되풀이해 발전시켜 나갈 주제다. 마텔사는 디즈니사와 제휴하여 [인어공주]나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디즈니사의 고전들을 바비 인형으로 제작했다. 또한, 세계 공주인형 시리즈와 대륙과 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민속 인형 시리즈 생산은 판타지와 현지화에 집중하고 있는 마텔사의 전략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오늘날 바비 인형의 전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기나긴 바비 인형의 역사 속에 소녀였던 소비자들이 구매력이 있는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마텔사는 놓치지 않았다. 콜렉터 바비 시리즈의 출시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콜렉터들을 양산했고 이것은 마텔사의 대표적인 성공 전략 중 하나였다. 현재 바비 인형 콜렉터는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90%는 40대가 넘는 여성으로 매년 20개 이상의 바비 인형을 수집하며 이들 중 45%는 매년 1000달러 이상을 지출한다. 1959년 오리지널 박스 바비인형(Mint Box Barbie)의 경우 당시 판매가는 3달러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4년 이베이(Ebay)에서 무려 3552.50달러(약 400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바비 인형 경매가 최고액은 2006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9000파운드(약 1,600만원)다.
고가의 빈티지 바비 인형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바비 인형은 다양한 콜렉션 아이템들이 존재한다. 빈티지리프로(Vintage Reproductions), 도자기 시리즈(Porcelain), 핑크 박스와 구별되는 콜렉터 레벨인 실버, 골드, 플래티넘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루이비통, 샤넬 등 디자이너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한 바비 인형, 영화와 TV시리즈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양한 콜렉션 바비들은 수집가들의 다양한 욕망을 끊임없이 채워주고 있다.
바비, 문화의 중심에 서다
바비 인형은 이제 단순한 장난감이라고 보기 어렵다. 바비 인형은 대중 문화의 중심에서, 세계의 문화 현상을 흡수해 재생산해내는 문화적 포식자로 성장한 것이다.아이들, 어른들은 바비 인형이 만들어내는 핑크빛 세계관을 소비하고 있다. 지금도 바비 인형은 전세계 150개국에서 매초 3개씩 팔리고 있다.
장난감박물관 [토이키노]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의 장난감 약 5만 점을 수집한 국내 손꼽히는 장난감 콜렉터. 장난감, 만화, 영화의 문화 콘텐츠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완벽한 공간 전시 기획을 꿈꾼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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