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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박동희씨의 글은 남다르다.




수억 년전 주라기 시대를 '티라노사우루스'란 공룡이 지배했다면, 2012년 프로야구 퓨처스리그(기존 2군리그)는 'NC 다이노스' 란 공룡이 지배했다. 제 9구단 NC는 9월 11일 경북 경산 볼파크에서 열린 삼성 퓨처스팀과의 경기에서 7대 1로 이겼다. 이로써 NC는 남부리그에서 56승 5무 33패를 기록하며 2위 넥센 퓨처스팀과의 승차를 11경기로 벌리고, 남은 6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했다.


짧은 창단 기간과 신인선수, 각 구단에서 퇴단한 선수들로 팀이 구성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NC의 우승은 기대 이상이었다. 비록 퓨처스리그지만, 이들이 상대한 팀들은 NC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들로 채워져 있었다. NC가 우승하지 못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는 뜻이다.


NC는 퓨처스리그 우승 분위기를 내년 시즌 1군 리그 진입 때까지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그러려면 넘어야할 산이 많다. 지금 전력으론 승률 3할도 어렵다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그래서일까. 정작 NC는 퓨처스리그 우승 기쁨에 빠지기보다 남은 기간동안 팀 전력 강화를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NC 다이노스 이태일(46) 대표가 있다.


지난해 5월 신생구단 NC의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 대표는 야구계에선 잘 알려진 이다. 1990년부터 야구전문지 ‘주간야구’ 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해 중앙일보 체육부 기자를 역임하고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스포츠 실장으로 일하며 20년 동안 야구와 스포츠 분야에 종사했다. 그가 중앙일보 기자 시절 ‘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란 꼭지명으로 쓴 야구칼럼은 지금도 야구팬 사이에 회자하는 명전이다.


야구계에서 “9개 구단 사장 가운데 프로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야구산업을 가장 잘 아는 이”로 불리는 이 대표로부터 NC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었다. 덧붙여 한국 프로야구와 관련한 진지한 담론을 경청했다. 


이 인터뷰를 통해 NC가 지향하는 ‘그들만의 야구’가 무엇이고, 어째서 야구계가 ‘NC가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몰고 오리라’ 예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프로야구 신생팀이 어떻게 단련되는가'와 관련해서도 긍정적인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우승을 확정한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승리 세리모니를 나누고 있다(사진=NC)


먼저 NC의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우승을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웃음). 선수단 모두가 고생한 결과라고 봐요. 사실 올 시즌은 내년 정규리그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어요. 모두의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 무척 기쁩니다. NC 다이노스를 응원해주신 팬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부리그는 NC를 비롯해 삼성, 롯데, KIA, 넥센, 한화 등 강팀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올 시즌 처음으로 리그에 참여한 NC가 56승5무33패로 1위를 확정 지은 건 대단히 주목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선 “내년 시즌 1군리그에서 뛰어야할 팀이 퓨처스리그에서 1위에 오르는 건 당연하다”고 합니다만, 올 시즌 NC 선수들을 보면 대개 신인이거나 다른 팀에서도 주로 퓨처스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다른 퓨처스 팀에 비해 전력이 나을 게 없었다는 뜻인데요. 그럼에도 전체 퓨처스리그에서 최고의 승률(6할2푼6리)를 기록했다는 건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닐 듯합니다.


돌아보면 지난해 8월 31일 초대 사령탑으로 김경문 감독을 선임하면서 NC 다이노스의 뼈대가 갖춰졌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 코칭스태프가 구성되고, 신인지명회의에서 우리가 지명했던 선수들이 팀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서 전남 강진에서 첫 팀 훈련을 시작해 제주도를 거쳐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까지 120일 정도를 합숙하며 프로야구팀의 초석을 다졌어요. 4월 12일 창원구장에서 퓨처스리그 홈경기를 시작하면서는 홈팬들과 호흡을 맞춰 나갔고요. 결국 올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남부리그 우승까지 차지하게 됐는데. 내년 정규리그에 참여할 팀으로서 어느 정도 골격을 갖췄다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어요.


성과만큼이나 숙제도 만만치 않을 듯싶은데요.


그렇죠. 올 시즌은 코칭스태프와 선수 그리고 프런트가 경기력 향상과 홈팬들과의 소통을 ‘준비’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해였어요. 다행히 차질없이 우리가 계획하고, 바랐던 내용을 조금씩 이뤘습니다. 아마 내년 시즌이 시작해야 야구팬들께서 우리의 존재를 실감하실 것 같은데요. 올 시즌 우리가 준비한 것들과 새롭게 충원될 선수들의 능력을 얼마나 잘 합쳐 내년 시즌을 준비하느냐가 우리에게 주어진 제일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해요.


NC는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 이후 KBO(한국야구위원회)리그에서 22년 만에 등장한 신생 창단구단입니다. 기존 구단을 인수해 재창단한 구단과는 여러모로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SK 와이번스, 넥센 히어로즈 등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 팀들은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좋은 팀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가진 팀들이었어요. 하지만, NC는 그 팀들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생팀이었습니다. 다른 팀들은 승부를 통해 결과를 보여주면 되지만, 우리는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달랐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NC가 갖는 별스러움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초보 공룡의 위대한 전진



NC 다이노스 이태일 대표의 창원구장 사무실 탁자에 놓인 '로버트' 공룡. 이 대표 아들이 쓰던 장난감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NC는 지난해 3월 창원을 연고로 한 프로구단으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창단 승인을 받았습니다. 역사적인 9구단 체재가 출범하는 순간이었는데요. 당시 NC 말고 2개 기업이 창단을 희망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프로구단 유치희망지 역시 창원 말고 다른 지자체도 있었는데요. 어째서 NC와 창원이 9구단 주체가 됐는지 궁금합니다.


NC 말고 어떤 기업이 창단 신청서를 냈는지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우리의 창단 의지가 다른 기업보다 강했다는 겁니다. 그걸 KBO가 분명하게 알아줬던 것 같고요. 맞아요. 사실 창원을 비롯해 복수의 후보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통합 창원시와 인연을 맺었죠. 이유가 무엇이었느냐? 서로 공통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공통점이요?


통합 창원시는 창원, 마산, 진해가 뭉쳐 새롭게 출범한 도시입니다. 행정적으로 통합시 1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무엇인가 새롭게 출발한다는 점에서 ‘NC’라는 신생구단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여기다 기존 마산의 뜨거운 야구열기와 폭넓은 야구저변 그리고 오랜 야구역사도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네.


우리나라를 보면 전반적으로 모든 일이 수도권 위주로 진행되잖아요. 수도권 사람들이 더 많은 문화를 누리고, 그런 의미에서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사회와 국가에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구단이야 야구 인프라와 이동거리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라도 수도권에서 탈피해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야구에 장기적으로 이로운 일이라 생각했어요. 여기다 창원시에서도 기존 마산야구장 리모델링과 신축구장 건설 등 여러가지 전향적인 조건을 제시했고요. 그래서 기분 좋게 통합창원시와 파트너가 된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KBO가 중매를 서고, NC와 창원시가 결혼했다고 보시면 될듯해요(웃음).


복수의 후보지가 어디였을지 궁금한데요.


지금 10구단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땐 그 지자체가 덜 적극적인 게 아니었나 싶어요.


서두에서 ‘김경문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팀의 뼈대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신생구단에 무척 중요한 게 바로 ‘누구에게 첫 지휘봉을 맡기느냐’인데요. 그도 그럴 게 처음 시작하는 팀이니만큼 초대 감독의 색깔이 그 구단의 이미지가 될 수 있습니다. 초대 감독의 능력에 따라 연착륙 여부도 좌우될 수 있는데요. NC가 고민한 초대 감독의 조건은 무엇이었습니까.


두 가지 조건이 있었어요. 팬과 소통할 수 있는 감독, 젊은 선수들을 좋은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감독, 이 두 가지였습니다.


감독 후보군이 여러 명 있었지요?


당시 시즌 중이라, 후보군은 많지 않았어요. 김 감독님도 두산에 있었고요. 그러다 시즌 중 두산에서 나오시면서 잠시 쉬고 계신 상태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영입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김 감독이 다른 후보보다 후한 점수를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물론 능력이죠. 김 감독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을 금메달로 이끈 분이고, 두산을 8년간 맡으면서 성적을 냈던 분입니다. 두산 감독 재직 시, 많은 유망주를 스타로 성장시키기도 했죠. 특히나 팬과의 소통, 상대를 존중하려는 마음 등 전체적으로 NC가 지향하려는 야구와 색깔이 잘 맞아떨어졌어요. 그래, 김 감독께 영입의사를 밝혔습니다.


김 감독이 구단의 영입의사를 흔쾌히 수락하던가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웃음). 전(前) 소속팀에 대한 예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셨어요.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도 우리팀보다 두산 먼저 찾아가 인사하신 분입니다(웃음).


어떻게 설득하셨습니까.


“기존 팀을 끌고 정상에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신생팀을 하나하나 만드는 것도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다. 야구인으로서 좋은 경험이 될 게 분명하다"는 논리로 설득했던 것 같아요.


결국 설득이 됐군요.


세 번째 찾아갔을 때 그제야 우리 손을 잡아주시더군요(웃음). 원래 김 감독님은 구단에 요구를 많이 하는 분이 아니에요. 대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시죠. 그때도 대의를 따라 결정했다고 봅니다.



NC 김경문 감독(사진 좌로부터)과 구본능 KBO 총재 그리고 이태일 대표(사진=NC)



NC의 코칭스태프 선임 방식이 무척 생경했습니다. 이유가 있었는데요. 한국 프로야구를 보면 구단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생각해 모든 코치를 능력과는 별개로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려는 감독이 있습니다. 반대로 구단이 감독의 분신인 수석코치까지 선임하며 감독의 손발을 묶는 경우도 있는데요. 감독은 ‘당장의 성적’을, 구단은 ‘미래 비전’이 중요하다고 칠 때, 양측의 이해가 절묘하게 절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과 프런트의 목소리가 적절히 안배된 NC의 초대 코칭스태프 구성은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는 생각입니다.


보통 15명에서 20명 사이의 코칭스태프가 필요한데요. 우리 구단을 보면 감독께서 편하게 일하실 수 있는 코치가 3분의 1, 구단이 장기적 안목을 보고 선택한 코치가 3분의 1, 양측이 상의해 결정한 코치가 정확히 3분의 1입니다. 어느 정도 구성비율이 잘 됐다고 보는데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감독이 하는 야구와 구단이 하는 야구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왜냐? 구단이 감독을 선택하고, 감독이 구단과 함께 하기로 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우리’라는 관점에서 한쪽을 바라봐야하기 때문입니다. 초대 코칭스태프 구성 때도 감독과 구단이 함께 세팅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머릴 맞댄 결과 좋은 분들을 모실 수 있었어요.


NC는 구단의 비전에 맞는 최적의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신인선수 선발 역시 구단의 비전에 따라 선택했을 것 같은데요. 지난해 8월 ‘2012 신인지명회의’에서 신인선수들을 지명할 당시 어느 부분에 주안점을 뒀을지 궁금합니다.


지난해는 창단 첫해였기에 퓨처스 경기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포지션 안배가 필요했어요. 아무래도 야구는 투수의 비중이 높으니까 유망주 투수를 모으는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그리고서 야구의 중심선, 즉 포수, 유격수, 2루수, 중견수를 누구로 선택할지 고민했어요. 그다음에 여러 기능을 갖춘 선수들을 선택했죠.


지난해 특별지명에서 지명했던 두 명의 투수, 노성호와 이민호는 성공한 지명이라고 보십니까.


그럼요. 노성호는 매우 만족스러워요. 잘 던진 적도 있고, 못 던진 적도 있지만, 자기 공을 던지며 프로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이민호는 발목수술을 한 번 했고, 재활을 거쳐 몇 경기에 등판했는데요. 아직 완전히 마음 놓고 운동하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나 두 선수의 태도나 성격, 가능성은 전체적으로 매우 좋다고 봅니다.


올해 신인지명회의에서도 주안점은 같았나요?


아무래도 그랬죠. 올해 신인지명회의는 시작하기 전부터 ‘예년에 비해 유망주가 적다’라는 말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우수한 투수를 많이 뽑으려 노력했습니다. 윤형배처럼 좋은 투수를 영입할 수 있었던 건 팀으로선 무척 좋은 일이었어요.


야구나 사회나 '두 번째 기회'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