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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빗슈 유, 어떤 불공평한 야구선수

다/ㅏ 2012. 9. 1. 18:34 Posted by 로드365


어떤 야구선수.

고딩 시절에 이미 골초 수준으로 담배를 피워댔지만 그럼에도 발군의 체력과 근력을 자랑했고 여자들

에게는 언제나 인기만점, 야구부 연습도 매일 게으름 피우며 파칭코에만 미쳐 살았지만 전국대회에서 

대활약, 매스컴에 대해 싸가지 없는 발언을 계속해도 오히려 더욱 영웅 취급받은데다, 고교 야구계의 

영웅인 탓에 학교에 흡연사실을 걸려도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았으며 엄청난 계약금을 받고 프로야구 

데뷔, 루키 주제에 베테랑 선수들을 모두들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프로에서도 좋은성적을 거둔 덕분에 

몇 년 후 올림픽 대표팀 선발투수가 될 정도로 성장, 게다가 유명한 여배우와 마음껏 섹스하고 속도위반

결혼까지. 키도 196cm에 잘생기고 근육질에 미남인 놈도 있으니 현실은 불공평해.  출처


다르빗슈 유


이름 ダルビッシュ 有

Yu Darvish 


생년월일 1986년 8월 16일

국적 일본

출신지 오사카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4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5~2011) 

텍사스 레인저스 (2012~)


Contents


1 개요

2 일본프로야구 시절

2.1 2011 시즌

2.2 메이저리그 포스팅

3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4 이모저모

5 연도별 주요 성적

5.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1 개요 ¶

2007년 각성 이후부터 일본의 에이스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그 후 5시즌동안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라고 칭송받는 퍼포먼스[2]를 보여주며 일본프로야구 내에서 공공연히 군림자, 절대자라는 칭호로 불렸던 슈퍼에이스.

2012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했다.

한국 한정, '달빛'이라는 별명이 있다.텍사스의 달빛



2 일본프로야구 시절 ¶

아버지는 전직 축구선수였으나 다르빗슈가 3살이 됐을 때 축구공과 야구공 중 야구공을 먼저 집은 것을 계기로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아버지는 이란인, 

어머니는 일본인인 혼혈. 그 때문인지 동아시아 선수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196cm의 장신, 거기에 2011시즌을 앞두고 몸무게를 100kg까지 끌어올려 투수로써는 이상적인 피지컬을 지닌것으로 평가받는다. 메이저리그 대입해봐도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신장인 192cm를 초과하는 훌륭한 피지컬. 다만 장신의 신장에 비해 팔이 짧은 것이 흠.

그리고 보다시피 외모도 뒷받침되는 탓에 일본 스포츠계에선 엄친아로 손꼽힌다.

주무기는 일본프로야구를 씹어먹던 초창기시절(2006-2007)에는 빠른 구속을 바탕으로 한 직구와 슬라이더였으나, 혹사의 여파인지 차츰 패스트볼의 구속과 위력이 떨어지면서 많은 변화구를 장착하며 점차 위력이 떨어지는 패스트볼의 비중을 줄이고 변화구로 커버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아시아에서 보기 힘들었던 와일드한 맛이 사라지는 모습이었지만, 작정하고 나온 2009 WBC에서는 폭발적인 구위를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다만 그 시점에서도 "위력적인 패스트볼이 있음에도 변화구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라며 떨어진 패스트볼 구사 비율이 약점으로 지적당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에는 토호쿠 고등학교 출신으로 4차례의 코시엔 진출을 이끌고 3학년때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하는등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떨쳤으나, 당시부터 말이 많았던 사생활이나 자기 관리 때문에 성적이나 잠재력에 비해 데뷔 당시 기대치는 높지 않았다. 데뷔 첫 해인 2005년엔 5승 5패에 3.53의 방어율로 신인치고는 괜찮은 성적을 남긴 선수에 불과했으나 약점이던 사생활과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엄청난 연습을 병행하며 2006년 후반기부터 에이스로 각성했으며 그 후 5년연속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일본프로야구의 절대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참고로 각성후 첫풀타임시즌인 2007년엔 사와무라상,골든 글러브,퍼시픽리그 MVP를 싹쓸이했다..


그러면서 당시 일본의 에이스였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비교하며 누가 우위인가로 비교되기 시작했으나 지금에와서는 마쓰자카와 비교하는게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평균 8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마쓰자카의 최대 강점이라는 이닝 이터의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으며[3], 마쓰자카가 한번도 기록하지 못했던 1점대 방어율을 5년 연속으로 기록하고 커리어 조정 평균자책점이 마쓰자카의 커리어하이 조정 평균자책점보다 좋아지는등 비교하는게 다르빗슈에게 비교하는게 실례인 수준이다.[4] 


이런 엄청난 활약속에 두 번째 MVP를 차지한 09년 시즌 종료후 계약 갱신에서 프로 6년차에 3억 3천만엔의 연봉으로 연봉 3억엔을 돌파하며 최연소 연봉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는 스즈키 이치로보다도 빠른 페이스. 그리고 2010년에도 여전한 활약속에 2011시즌 연봉은 5억엔을 받으며 일본프로야구 연봉 최고액을 받았다. 이것도 이치로를 넘어선 최단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