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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 트로이카 시대

자/ㅓ 2011. 6. 6. 00:01 Posted by 로드365

사슴같은 눈망울에 앵두같은 입술하면. 
딱 정윤희를 떠올르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트로이카.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한국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미인.
 




★ 2010.11.25

[그 배우의 섹시그래피] 관능미의 여신 정윤희

한국영화에 '여배우 트로이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던 건 1960년대부터. '문희-윤정희-남정희' 트리오는 1970년대 초반까지 10년 동안 한국영화계를 주름잡았다. 이어 등장한 트로이카는 '정윤희-유지인-장미희'. 1970년대 중반에 등장한 그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 10년 가까이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들 중에서 대표적인 배우라면 정윤희. 그녀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칭송받았고, 당대에 러브신을 가장 잘하는 여배우였다. 


'트로이카'라는 이름과 그 미모에 가려 있긴 하지만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에로티시즘이 만개하기 전 정윤희는 가장 관능적인 여배우 중 한 명이었다. 1970년대 후반 이른바 '호스티스 멜로'의 헤로인이었으며 1980년대 초 토속 멜로인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1981)와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1981)에서 그녀가 보여준 야생의 섹슈얼리티는 지금 40대 중반 이후의 남성들에겐 잊지 못할 이미지일 것이다. 


1954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난 정윤희는 부산 혜화여고를 졸업한 후 서울로 상경, 연기자를 꿈꾸다가 1975년 이경태 감독의 < 욕망 > 으로 데뷔한다. 이때 그녀에게 다가온 행운은 < 청춘극장 > (1975)에 캐스팅된 것. 일제시대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린 김래성의 소설은 1959년에 처음 영화화되어 김지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1967년에 두 번째 영화에선 윤정희를 데뷔시켰다. 그리고 1975년에 세 번째 영화화되었는데, 사실 원래 여주인공은 정윤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 이른바 '6·10 스캔들'이 터졌다. 재벌 2세의 외화 밀반출 사건이 빌미가 된 이 사건은 여러 여배우들이 그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드러났고 그들 중엔 공개 오디션을 통해 < 청춘극장 > 의 여주인공으로 선발된 여배우도 있었다. 그녀는 하차해야 했고 정윤희는 대신 주연을 맡아 스타덤에 다가섰다. 


정윤희는 연기파 배우는 아니었다. 데뷔 초기엔 발랄한 청춘과 CF 이미지였던 그녀는 장미희와 함께 TV 드라마 < 청실홍실 > 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르는데 1978년엔 호스티스 영화인 < 나는 77번 아가씨 > 로 스크린에서도 흥행을 기록한다. 이후 TV와 은막을 종횡무진하다 은퇴 전까지 연예인 소득 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으며, 1982년엔 스타 파워를 앞세워 방송사의 탤런트 전속 제도를 폐지시키는 데 선두 주자가 된다(그녀는 KBS에서 MBC로 이적한다). 


글래머도 아니고 육감적인 느낌을 지니지도 않았지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큰 눈과 아담하지만 탄력 있는 몸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흐르는 백치미는 정윤희를 성적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운명에 휩싸여 희생되거나 기구한 삶을 사는 여인이었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불행한 결혼을 한 < 나는 77번 아가씨 > 의 호스티스, 다방 레지가 된 < 꽃순이를 아시나요 > (1979)의 산골 처녀,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와 소아마비 동생을 둔 < 죽음보다 깊은 잠 > (1979)의 가난한 처녀 등등. 


리스트는 계속 이어진다.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괴로워하는 < 도시의 사냥꾼 > (1979)의 목사 딸, 재혼한 남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 강변부인 > (1981)의 가정 주부, 기지촌 양공주의 딸로 나온 < 사랑하는 사람아 > (1981), 부자의 정부로 살아가는 < 춘희 > (1982)의 창녀, 불우한 환경 때문에 호스티스가 된 < 진아의 벌레 먹은 장미 > (1982),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사생아를 낳고 불치의 병으로 죽는 < 여자의 함정 > (1982), 애인의 친구에게 강간당하는 < 여자와 비 > (1982) 등등. 아마도 그녀처럼 스크린에서 기구한 삶을 살았던 배우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와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에선 근친상간 관계 속에서 고통받고 주변 남자들로부터 강간 위협을 받으며 결국을 죽고 마는 순박한 시골 처녀로 등장했다. 특히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의 계곡 폭포 장면은 당시로선 아찔했던 장면으로, 정윤희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의 극치였다. 


하지만 1984년에 간통 사건에 휘말리고 그해 12월에 결혼하면서 그녀는 서른 살의 나이에 은퇴의 길을 걷는다. 단 10년여의 활동만으로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고, 최고의 위치에서 보수적인 법 제도에 의해 배우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배우 정윤희.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구가했던 유지인과 장미희가 아직도 건재한 것을 보면 그녀의 이른 은퇴가 더욱 아쉬워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일요신문 | 2010.11.25  출처







충무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부산에서 초등학교시절을 보내고 혜화여중,고를 졸업.
7-80년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 이렇게 세명이 휘어잡던..
이른바 70년대 트로이카중 정윤희가 미모와 대중적인 인기가 가장 많았다고,
드라마 CF활동이 활발하였고 또한 많은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았으나
찍은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하였습니다.

연기력도 인정받았는데 워낙 미모가 뛰어나 연기력이 묻힌 케이스였다고..하하하;;;
84년 결혼과 함께 전격 은퇴를 하여 지금까지 연예계 행사에는
한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결혼까지 순탄치 않고 스캔들이 심했다죠;;
하지만 지금은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계속해 오고 있으며
아이들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kkunni8557/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