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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다거 (Henry Darger | Henry Joseph Darger Jr.) 작가

1892년 4월 12일 (미국) - 1973년 4월 13일


제복 입은 마초의 희생물… 갸냘픈 롤리타 ‘핏빛 神曲’

                   

롤리타들의 대살육(Le massacre des Lolitas)

 

헨리 다거(Henry Darger) 이야기는 그가 숨을 거둔 뒤부터 시작된다. 누추한 그의 방에서 폭력에 몸을 내맡기는 아름다운 자웅동체 소녀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1만5000페이지 분량의 책 15권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난 헨리 다거(1892~1973)에 대해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다거가 4살 때 다거 여동생을 낳다가 사망했다. 다거는 그 후 여동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7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죽어가면서 헨리 다거를 가톨릭학교에 맡겼는데 그의 행실이 문제가 된다. 그가 대중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던 것이다. 의사들은 다거에게 광기가 있다고 판단해 그를 발육이 늦은 아이들을 위한 장애아시설에 가두어 버린다. 다거는 거기서 특별히 잔인한 치료를 받는다. 다거는 도망갈 틈을 노리다가 16세 때 토네이도 때문에 도시가 완전히 파괴될 때 탈주에 성공한다. 7년간의 감금과 학대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는 시카고로 되돌아가 자신의 대모 집에 숨었다. 대모는 다거에게 한 가톨릭병원의 수위 자리를 찾아주었으며 다거는 평생 그 직업을 버리지 않았다.

 “다거는 일정한 시간표에 따라 자신의 생활을 조절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그는 하루에 무려 5번 미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인형, 종교적 성상, 성인들 그림, 노끈 뭉치, 잡지와 만화들을 수집했다. 또 기후상태와 기상학자들이 일기예보를 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들을 매일 일기에 기록했다.”(출처:위키피디아). 다거는 버림당하거나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 자선행사용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와 병행해 극도로 비밀을 유지하면서 다거는 도착적인 묵시록 형상의 작품 제작에 뛰어들었다. 로버트 비비안(Robert Vivian)의 일곱 딸들, 존 맨리(John Manley)라는 사디스트의 먹잇감이 되는 비현실 왕국의 일곱 공주를 다룬 작품이다.

 “글랜델리아 왕국의 두목인 존 맨리는 애비엔에 사는 모든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겠다고 위협한다. 일곱 딸들은 무자비한 반란의 선두에 서며, 싸울 준비가 되어있던 소녀부대가 그들을 돕는다. 용맹스럽고도 고혹적인 소녀들 중에는 나비 날개를 한 ‘블렌긴’이란 이름의 피조물들도 있다. 비늘이 그들 몸을 덮고 있는데, 꼬리 형태는 뾰족하다. 부대의 나머지 구성원은 사춘기 이전의 소녀들이다. 그들은 종종 옷을 벗고 있고 남자 성기를 달고 있다. 소녀들은 맨리의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자행하는 야만적 행위의 희생물이 된다. 그들은  종종 소녀의 내장을 들어내거나, 목을 조르거나, 교수형에 처한다. 모든 모험은 거대한 행성 위에서 전개되는데, 마치 달처럼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다.”

 그림을 그릴 줄 몰랐기에 헨리 다거는 ‘리틀 애니’를 비롯한 만화 주인공들을 베끼고, 가늘면서도 섬세한 실루엣을 복제한 후 옷을 벗기고 온갖 종류의 고문에 시달리게 한다. 소녀들은 불타오르는 숲속을 질주하고, 말을 탄 병사들이 뒤쫓아와 칼로 내리치거나 혹은 감옥에 가둔 후 어른들의 복수를 받게 한다. 경이의 왕국에서 소녀들은 천국에서처럼 꽃과 새 가운데서 살아가지만, 매일 불평등한 전투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피바다 속에서 끝난다. 마치 악마들을 물리치는 것이 헨리 다거에게는 불가능했던 것처럼. 그는 불교의 지옥도(地獄圖)처럼 길게 이어지는 긴 종이뭉치를 붓으로 채색해 나갔다. 포탄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풍경, 전쟁의 광기가 서린 풍경에 그는 동화적인 색깔을 가미했다. 어른들의 착란에 비해 너무나 연약하고, 너무나 부서지기 쉬우며, 너무나 덜 무장된 아이들은 패배를 맛보고 만다. 롤리타 버전으로 만든 단테의 ‘신곡’이다. 사도마조히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끝없는 대살육이기도 하다.


 1972년 11월 헨리 다거는 양로원으로 떠나면서 자신이 41세 때부터 거주하던 시카고의 웹스터 애비뉴 851W 주소의 방 2개짜리 스튜디오를 내놓았다. 다거가 숨을 거둔 1973년 4월 13일 집주인 나탄 레너는 그의 방에 들어갔다. 쓰레기 더미 비슷한 것을 옮기자 타자기로 작성한 1만5000페이지 분량의 15권의 책이 나왔다. 제목은 ‘비현실왕국의 비비안 걸스의 이야기 혹은 어린이 노예의 반란으로 인한 글랜디코와 안젤리안 사이의 폭력적인 전쟁 이야기’라고 달려있었다. 또 집 주인은 이 서사적인 이야기를 그린 파노라마 혹은 병풍 형태로 된 거대한 화집 3권을 찾아냈다. 벽과 천장에는 전투장면과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콜라주, 덧칠한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뉴욕 타임스’ 소속 사진가였던 나탄 레너는 발견품의 가치를 즉시 알아본 후 재단을 설립했다.

 프레스텔 출판사가 헨리 다거에 대한 새 저서를 최근 출간했는데, 책 속에는 미발표 작품들이 상당수 들어있다. 예술가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 중에서 골라낸 280점의 채색화, 타자를 친 64페이지 분량의 자서전, 그리고 세상의 종말을 다룬 독창적인 작품을 밝혀내는 자료들이 책 속에 들어있다. 다거를 사드에 비교할 수 있을까? 광기를 동반한 성적 환상 속에 칩거했던 두 사람은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짓밟히는 가차 없는 통과의례 전투를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벌였다. 하지만 그들은 “너의 선을 위해서란다”면서 자신의 입장을 항상 정당화시켰다. 달콤하고도 영웅적이며 고귀하게 변한 폭력, 필연적이고 유쾌하게 변한 폭력을 꽃과 나비의 화려한 색깔들이 뒤덮고 있다. 헨리 다거는 일리노이 주의 올 세인츠 묘지에 묻혔다. 묘비명에는 ‘아이들의 보호자’란 수사가 들어있다. 다거는 자신이 치른 공포를 아이들로 하여금 종이 위에서 겪게 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공포를 아름다움으로 바꾼 것이다.

 클라우스 비젠바슈(Klaus Biesenbach)의 저서 ‘헨리 다거’는 프레스텔(Prestel) 출판사가 펴냈다. 304쪽. 33.5×26㎝. 파리 제6구 지르쾨르 거리 10번지에 위치한 르가르 모데른(Regard Moderne)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