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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L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파/ㅣ 2008. 1. 3. 15:15 Posted by 로드365
영화 속 PPL
2007.12.31 / 김도형 기자

최근 <싸움> <용의주도 미스신> 등 개봉한 한국영화 속 PPL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광고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조금 더 세련된 해결책은 없는 걸까?

최근 개봉한 영화 <싸움>과 <용의주도 미스신>을 두고 말들이 많다. 괴성을 지르며 망가져도, 양다리는커녕 네다리를 걸어도 김태희와 한예슬이 너무 예쁘기 때문에? 아니다. 그들의 미모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과도한 PPL이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두 영화의 PPL 성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제품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싸움>의 경우, CF의 여왕 김태희와 관련된 각종 제품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남편 설경구와 전화를 주고받는 휴대전화는 김태희의 대명사가 돼버린 LG 싸이언이며, 남편과 만나는 장소는 현대 아이파크몰 백화점이다. 그것도 바로 로고 앞. 이게 다가 아니다. CGV 극장이나 와인, 자동차, 라이터 등 다양한 PPL 제품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심지어 축산학과 교수이자 설경구의 친구로 등장하는 조연 서태화는 서울우유 CF를 찍고 싶다고 노래를 하더니 결국 찍고야 만다. 완성된 우유 CF는 기자시사 후 이 부분에 대한 지적 때문에 재편집을 통해 한층 완화된 상태로 극장에 걸렸지만, 영화에 드리운 PPL의 과도한 분위기에 대한 지적은 여전하다.

의도적으로 CF를 위한 영화는 찍지 않겠지만 CF 모델로 익숙한 배우가 나온다면 특별히 제품을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광고 이미지와 연결되는 탓에 제품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LG 싸이언 휴대전화의 경우는 상당히 일상적인 소품으로 큰 의미가 없는 장면에서도 김태희와 연결돼 더 각인됐다. 관객들은 “거슬렸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LG텔레콤 마케팅 담당자는 “충분한 광고효과가 있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A사의 광고모델로 활약하는 배우가 어떤 영화에 출연한다면 특정 장면에 쓰이는 소품이 그 배우가 광고하는 A사의 제품이어야 한다. 광고모델은 계약기간 동안 그 제품과 함께 노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악순환은 그래서 반복된다. PPL을 의식해 장면을 뺄 수도 없고, 그냥 쓰자니 너무 노골적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용의주도 미스신>의 PPL은 이보다 더 원론적이다. 캐릭터 자체를 광고기획사 AE와 브랜드 홍보직원으로 설정해 자연스러운 PPL을 시도하고 있다. 극중에서 KTF의 SHOW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제작사 싸이더스FNH의 관계자는 "모회사인 KT와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적합한 계약조건 때문에 SHOW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엔 파라다이스 호텔에서의 싸움이나 할리스 커피숍과 해태음료, 위즈위드 등의 브랜드가 한예슬과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기존의 영화들처럼 단순히 화면에 제품을 보여주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용의주도 미스신>의 최선중 PD는 “애초부터 PPL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며 PPL과 영화제작비의 상관관계를 긍정한다.

<싸움>과 <용의주도 미스신> 이전에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주연배우 전지현이 광고모델인 제품들의 과도한 PPL로 비판받은 경우가 있다. 하지만 최근의 PPL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읽힌다. 한국영화의 총체적 위기의 개선책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제작비 절감인데, 영화 한 편이 통째로 CF처럼 보인다면 안 되겠지만 PPL을 통해 업체와 제작자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은 제작비 절감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 ‘과유불급’이라는 네 글자를 가슴에 새긴 채로. 최선종 PD는 “최근 한국영화는 부가판권시장의 붕괴와 스크린쿼터 축소, 이에 따른 제작비 절감 등의 문제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PPL처럼 가능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되는 것 아니겠나”라며 PPL에 대해 맹목적인 비난의 시선을 보내는 사회적인 풍토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과하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리 거슬리지 않는데도 눈에 보이는 것마다 족족 잡아내는 건 지나치다는 얘기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과 세트는 대개 어떤 ‘제품’일 수밖에 없다. 배우들이 입는 옷, 신발, 가방, 휴대전화부터 자동차, 가구, 집, 특정 장소 등 모든 것이 기존의 제품이나 상표로 대표되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작정하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과 소품을 PPL로 구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무턱대고 광고만 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런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진짜 90분이 넘는 CF를 보는 셈이 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제품의 경우, 소품팀이 임의로 설정해 별 의미 없이 등장시킬 수도 있지만, 특정 장면에서 상표의 노출을 원하는 광고주가 있다면 일종의 광고비라 할 PPL 금액을 지불(혹은 현물 지원)하고 제품을 노출시키는 경우가 빈번하다. PPL 비용은 영화 속 비중에 따라 다르지만 최근엔 3억 원을 넘어서는 등 영화의 거대한 수익창구로 잡아가고 있다. 규모 면에서 제작비의 부담을 꽤 덜어주니 이런 효자도 없다. PPL이 영화의 본질을 침해한다는 의견과 필요악이라면 이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는 요즘, 그렇다면 이 문제를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덜 거슬리고 더 세련된' PPL을 사용할 수 있을까?

할리우드의 PPL은 1945년 <밀드레드 피어스>에서 존 크로포드가 ‘버번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됐다. <E.T>에 등장했던 M&M 초콜릿이 <E.T> 개봉 3개월 만에 66%의 매출을 올려 PPL의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고, 이후 거의 모든 할리우드영화는 PPL의 타깃이 됐다. <맨 인 블랙>의 레이밴 선글라스, <포레스트 검프>의 애플, <나쁜 녀석들>의 포르쉐, <007> 시리즈의 BMW 등 그 규모도 점차 커졌다. 심지어 <스파이더맨 2>의 경우는 개봉되는 나라마다 다른 제품의 상표를 CG로 입히기도 했다. 주인공 파커가 일하는 피자 가게에서 한국의 경우는 닥터페퍼의 로고가 나오지만, 해외에는 펩시의 로고가 나오는 식이다. 또한 PPL 계약을 하지 않은 회사의 로고가 우연히 등장하는 것을 막으려다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날아가는 스파이더맨의 뒤로 보이는 삼성 간판을 그래픽을 이용해 소니로 바꾸려다 마찰을 빚은 것이다.

과거 한국 기업들도 영화 속 PPL에 적극적이었다. 영화의 PPL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매니지먼트가 있었을 정도. 하지만 촬영된 제품 장면이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간다거나 안 좋은 이미지로 그려지는 등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둘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국영화의 연이은 흥행실패와 수출부진은 국내 기업들의 PPL에 대한 의지를 꺾었다. 또한 국내에서 공격을 받는 PPL도 할리우드영화에 노출되면 환영받는 현상을 인식하고 나서는 막대한 광고비를 들이더라도 해외 영화에 제품을 노출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오션스 13>에서 알 파치노가 끊임없이 찾던 삼성 휴대전화 같은 경우, 무시할 수 없는 예다.

현대영화의 현실로 보건대, 미디어의 PPL은 적극적으로 체계를 도입해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 PPL이 항상 거슬렸던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 엠 샘>의 스타벅스, <백 투 더 퓨쳐>의 나이키와 켈빈 클라인, <캐스트 어웨이>의 페덱스 등은 단순히 상표를 노출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영화 속에 녹아들어 중요한 배경, 하나의 캐릭터가 됐다. 각각의 제품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브랜드의 상징성도 절묘하게 녹아 있다. 한국영화의 경우 <공동경비구역 JSA>와 <말아톤>에 등장한 초코파이가 애초부터 작정한 PPL은 아니었지만, 영화 안에서 소화되면서 제품의 매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젠 PPL 자체도 영화제작의 한 요소로 인정하고 철저하게 계획, 기획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영화의 경우 국내 기업들과 영화제작사, 홍보사와 감독, 관객들과 언론의 PPL에 대한 인식이 각기 다른 것이 문제다. 효과적인 PPL 시스템을 확립하고 합리적인 광고효과와 합당한 제작비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적지 않은 PPL 비용 때문에 광고주에 휘둘리는 제작사나, 단지 어떤 제품이 화면 속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PPL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시선 모두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름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