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원순씨!
박원순, ‘이명박·오세훈’ 질문에 “이미 공사 다 끝나…잘 마무리해야” 2012.8.25
글·지승호 인터뷰 전문작가 sibidori@paran.com 사진·김정근 기자 jeongk87@hanmail.net
·“공무원들에게 정책 펼 때 전문가와 시민사회 얘기를 들으라 강조”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고 했던가. 가슴에서 다리까지 가는 길은 또 얼마나 멀고 험한가? 박원순은 자기가 머리로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것을 발로 뛰며 실천하는 우리 시대의 혁명가이자 행동가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운동가 시절에 나는 <희망을 심다>라는 책에서 그를 위와 같이 평가한 적이 있다. 그는 정치·행정의 길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그런 느낌을 준다. 영원한 청년처럼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가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 조금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걸러내고 차악을 뽑는 선거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원순을 보면서 “투표를 통해 삶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투표한 보람이 있다”는 평을 하는 사람이 많다.
박원순 시장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행정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며 서울시 행정의 변화를 지켜봐줄 것을 당부했다. 인터뷰는 8월 11일 저녁 6시에 이루어졌다. 지난해 보궐선거 당시의 희망캠프 하승창 기획단장과 대변인이었던 민주통합당 송호창 의원이 함께 자리했다.
지승호(이하 지) 박원순 시장 당선과 안철수 현상을 정당정치의 패배, 정당정치의 위기, 젊은이들의 정치 불신과 냉소에 기인한 탓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박원순(이하 박) 맞죠. 정당 내지는 정당정치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당의 개혁과 체제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요구가 그만큼 크다고 보거든요.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어쨌든 내부가 아주 공고하잖아요. 야당인 민주당은 굉장히 많이 나눠져 있거든요. 그런데다가 저나 안철수씨 같이 새로운 정당정치를 만들어내야 된다고 하는 세력은 새누리당 쪽이 아니란 말이에요. 겉으로는 분열적 양상이죠. 희망은 오히려 여기에 있다고 봐요. 이 과정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시민들의 정서에 와 닿는 정치를 만들어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세 가지 얘기를 했는데요. 첫째는 정치인들만의 정치가 아니고, 생활인들과 일반 시민들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 특히 전문가들, 안철수씨도 사실은 전문직 사람이잖아요. 저도 변호사이기도 하고 시민운동가이기도 했구요. 이런 사람들이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정당이 되어야 하구요. 두 번째는 청년들이나 젊은 세대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 정당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세 번째는 거창한 정책이 따로 없다, 시민들의 삶을 녹여내는 생활정책, 생활정치가 되어야 된다, 이 세 가지를 민주당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 시민단체를 이끌어갈 때나 서울시장을 하는 것이 비슷한 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 우리 사회가 관료적 시스템은 안정되어 있다고 봐요. 부시장 두 분이 행정의 달인들이거든요. 서울시에 평생을 바친 분이니까, 그 두 분이 알아서 챙길 것은 잘 챙겨왔다고 봐요. 제가 하는 일은 시민사회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죠. 민생 부분이라든지, 또는 일의 절차에 있어서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거버넌스나 시민사회, 또는 기업과 협력관계를 만들어내는 거라든지,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이 가져온 경제적·사회적 파탄들을 새롭게 조정하는 일이라든지, 과거의 하드웨어 중심의 이런 사회로부터 소프트웨어로 바꿔내는 이런 일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죠. 그런 흐름들을 감지해서 관철하고,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제 일이니까 거기에 몰두하는 거구요. 안정과 변화라고 하는 이 두 가지가 굉장히 균형 있게 조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 지금 서울시 공무원들 중에서는 불만을 가질 분도 있을 수 있는데, 그분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을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웃음)
박. 결국 일은 공무원들이랑 같이 하는 건데요. 그분들의 마음을 사지 않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체크해서 공무원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거나, 이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체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외연수를 보내는 것도 가능하면 많이 가라, 갈 때 그냥 가지 말고, 전문가들도 함께 데려가라, 그렇게 4박5일, 일주일 갔다 오면 사람이 바뀌어요. 지난번에 지하철 기관사가 공황장애로 자살했잖아요. 그래서 최적근무환경연구소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모든 공무원이 일할 때 조명과 의자 같은 것을 자기 조건에 딱 맞춰서 해줘요. 그걸 전문적으로 연구해서 양 지하철 공사에 만들어줬구요. 도시 안전 이런 쪽에 일하는 사람들, 교량 검사하는 사람들도 옷이라든지 이런 것도 전부 새롭게 디자인하고, 더 안전하게, 스트레스 덜 받는 쪽으로 바꾸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번 얘기해서 안 되더라구요. 시장 공관에 제일 먼저 초청한 사람들이 총무과에서 고생하던 사람들이에요. 만날 와서 일만 했던 사람들이잖아요.
송호창. 사실 나쁜 얘기들도 있잖아요. ‘시민운동을 하다가 들어오신 분이기 때문에 공무원 세계를 잘 모른다, 공무원들이 문제도 많기는 하지만,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인들은 생각하는데, 시장님이 공무원의 얘기를 듣기보다는 외부 전문가들의 말을 더 신뢰하고, 먼저 듣는다는 건데요.
박. 공무원들에게 주문하는 것은 ‘각 분야의 전문가나 시민사회나 이런 쪽에 가서 일단 얘기를 들어라, 그래서 다 정리를 해라, 그리고 또 가서 들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한 번 들어서는 오해도 하고 그럴 수 있잖아요. 보통 우리가 정책을 하나 만들면 수십번에 걸쳐서 수백명의 얘기를 듣습니다. 그 분야의 사람들은 대체로 누구나 다 동의를 하죠. 왜냐하면 자기 아이디어니까. 그러면 실천이 담보되는 거예요. 물론 공무원들이 생각할 때는 일단 그 과정이 피곤하고, 과거에는 그냥 하면 되는 일을 일일이 검토해야 되니까 힘들고, 시간도 좀 더 걸리고,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공무원들이 ‘이렇게 하니까 더 좋네’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공무원들이 칭찬을 받은 적이 별로 없잖아요. 칭찬받는 공무원이 되어가는 것이 큰 변화가 아닐까 싶구요. 그 정책이 실효성이 있기 때문에 집행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구요.
하승창. 분명한 것은 선거과정도 그렇고, 시정하는 것도 그렇고, 이전의 정치와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좋고 나쁜 것은 시간이 지나서 평가될 측면도 있겠지만, 이전하고 다르게 진행된다는 것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끄는 것 같아요.
박. 예를 들어서 이런 게 있어요. 시장에게 보고할 때 팀장까지도 들어와라, 심지어는 담당 주무관도 들어오라고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선 효율적인 측면에서 지금까지는 국장이나 본부장만 들어왔단 말이에요. 시장이 하는 얘기를 이 양반이 듣고 가서 과장한테 얘기하고, 또 과장이 팀장에게 얘기하고, 팀장이 주무관한테 얘기하고,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말이 되나요? 저는 이메일로 바로 팀장하고도 얘기를 해요. 국장의 존재가 위협받으니까 문제일 수도 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가끔은 그렇게 한다는 건데요. 그것도 형식적 파괴잖아요. 같이 들어오면 이해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구요. 이 팀장들이 미래의 과장이고, 과장들이 미래의 국장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전체 상황을 잘 알 필요가 있어요. 공약을 집대성하는 희망정책자문회의가 있었는데, 그때도 각 부서에서 한 명씩 차출해서, 몇십 명 정도를 이 과정에 참여시켜요. 서울시정 전체를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요. 이 사람들한테 얼마나 큰 비전을 주겠어요.
지. 어떤 인터뷰에서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했고, 오세훈 시장은 광화문 광장을 했는데, 나는 그런 것을 안 한 시장으로 기록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박. 일부 언론들은 전임 시장 흔적 지우기라고 하는데요. 저는 전임 시장이 한 것을 잘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그것도 5000억원 들인 거잖아요. 저 같으면 안 했겠지만, 이미 공사 다 끝나가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걸 잘 좀 꾸며서 정말 활용을 잘하고, 그 공간뿐만 아니라 일대의 동대문과 봉제공장 많은 창신동, 그 다음에 성북동까지 봉제공장이 있어요. 그쪽하고 광장 원단시장, 이렇게 해서 패션의 도시로 만드는 전체적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요.
지.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나 에너지 생산도시 건설의 밑그림을 그리고 계신다던데요. 지금 서울에서는 당인리발전소 외에는 발전시설이 없고, 전력을 생산할 수 없는데요.
박. 에너지 소비도시죠. 에너지 자립도가 2점 몇 %라고 하던데요. 독일 같은 데는 가보니까 에너지의 분권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자기 지역에서 소비하는 전기는 그 지역에서 생산하는, 그러면 송전할 필요도 없잖아요. 서울도 그렇게 안 된다는 법이 없죠. 2014년까지 원전 하나 분량을 줄이겠다는 건데요.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 민주통합당 경선에 나온 후보들도 그렇고, 안철수 원장도 그렇고, 다 친분이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도와달라는 요청은 없나요?
박. 다 그러죠. 그래서 누굴 노골적으로 도와드리기가 힘든 상황이구요. 나중에 한 사람이 되면 당연히 도와야 되는데요. 시장이 돕는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유세를 따라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서울시장을 잘해서 저 사람 뽑으니까 정말 도움이 되더라, 그게 최고로 돕는 거예요. 내가 누구 떨어뜨릴 욕심이 있으면 ‘개판’치면 됩니다.(웃음)
지. 영화 <두개의 문>을 관람하신 후 “내가 당시 서울시장이었다면 강제철거를 못하게 경찰 물러나라고 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철거는 없도록 하겠다”고 하셨는데요. 시장 혼자서 하기에는 여러 저항들도 있잖아요.
박. 그렇죠. 국회에서 철학을 가지고 재개발·재건축에 관한 종합적 법령의 시스템을 바꿔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국가나 지방정부가 공공적인 잣대에 의해서 하기보다는 기업의 탐욕이나 투기, 이런 것에 오히려 국가권력이 끌려가는 형태로 되어 있어요. 수용권이 심지어 기업한테도 있잖아요. 헌법에 정해진 권리는 둘째 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도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시장이 가지고 있는 여러 형태의 권위가 있으니까, 적어도 제가 시장으로 있는 한 강제철거는 없다, 물론 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결의의 표현이었던 거죠. 합의 없는 개발은 없다, 충분히 협의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것들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나요?
박.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요. 그게 다 쉽지 않은 거더라구요. 공약을 발표할 때도 그랬어요. 제일 뒤에 ‘투 비 컨티뉴드’, 그렇게 썼었어요.(웃음) 이 공약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얘기를 했구요. 1년 지나서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보려고 해요. 정말 도저히 못지키겠다는 것이 있으면 시민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하려고 하구요.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임대주택 8만호 짓는 것과 부채 7조원 감축이에요. 그런데 공약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건 진짜 중요하다, 그래서 새롭게 한 것이 많아요.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록하겠다든지, 이런 것도 몇백억원 들어가는 거잖아요. 관광도시로서의 서울을 만들겠다든지,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저는 시민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거나 리포트하고 보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을 실천하신 것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의견수렴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박. 반값 등록금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구요. 저는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어떤 경우는 우리 생각에 명백하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전광석화같이 해버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다른 데로 확산되지 않는 것이 좀 아쉬운 거죠. 반값 등록금은 서울시립대학교 개혁의 시작이에요. 입시제도를 개혁함으로써 고등학교의 교육을 바꾸겠다고 하는 공감대가 많이 이루어져서요. 구체적인 입시요강이나 정책을 9월이나 10월이면 발표할 겁니다. 4년 동안 제대로 교육시켜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서울대학교 같은 그런 개념이 되면 좋겠어요.
지. “100층이 아니라 1000층을 지은들 그게 랜드마크가 될 수는 없다. 서울의 자연, 서울 600년 역사, 서울시민의 창조성 이 세 가지가 서울의 ‘브랜드’이고 ‘랜드마크’”라고 ‘폴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씀하셨잖아요.
박. 외국 도시를 다녀봐도 한강이나 북한산 같은 것은 없어요. 그런 자연과 역사, 우리가 다 버려놨잖아요. 농담으로 100년 전에 서울에 사람이 살았냐고 하잖아요. “서울에 사람이 살았어요?” 하면 뭘로 증명할 건가, 남대문도 태워먹고. 서울이 폼페이거든요. 어디나 파면 뭔가 나옵니다. 풍납토성을 말하자면 한 왕국이 지금 지하에 잠자고 있는 것이 거든요. 그걸 아무튼 발굴을 해야 되는데, 서울시가 돈이 많으면 하겠는데 중앙정부가 역할을 좀 해야죠. 말하자면 이런 역사들이 서울 곳곳에 있는 거예요. 청계천도 진짜 긴 세월을 두고 복원을 했어야 하거든요. 조선시대의 토목기술이 응집되어 있는 곳이잖아요. 그대로 복원을 했으면 유적으로 등록할 판인데, 지금 저것은 다시 복원이 불가능하죠.
지. 단일화 과정에서 이렇게 하면 잘될 것 같다는 조언 같은 것 한 말씀 해주세요.
박. 경선이라는 것이 참 두렵고 결과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하고 싶은 일이긴 하지만, 어차피 출사표를 던지고 그런 마당에는 용감하게 버린다는 생각으로 해야 된다고 보거든요. 누가 마지막 후보가 되든, 그런 과정에서 즐거이 응해야 된다고 보구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훨씬 더 커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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