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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가려는 친구에게, 친구는 오히려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남이라면 쉽게 건넬 부탁이 친구 사이엔 오히려 어색해지고, 쿨하게 오갈 수 있는 충고도 혹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흔한 것이 친구이고 우정이라지만 <버스, 정류장>을 통해 프로듀서와 감독이라는 제2의 관계를 맺어야 했던 친구, 심재명 대표와 이미연 감독의 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하고 또 궁금하다. 동덕여대 국어국문과 첫 미팅에서 인연을 맺은 뒤 20년 동안 침식과 퇴적 혹은 융기를 거친 우정의 단면은 그대로 촘촘히 균일한 것이었으나, 한편의 영화를 기획하고 찍고 개봉을 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이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미팅으로 만나 고고장에서 굳은 우정

심재명(이하 심): 우리 어떻게 만났는지가 궁금하시다는데?

이미연(이하 이): 우리요? 대학동기인데요. 뭐 그렇다고 우아하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만난 건 아니고.

심: 사실은 1학년 들어가고 첫 미팅 나가서 만났어요. 아,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친한 애들은 다 그때 그 멤버구나.

이: 재명이 처음 봤을때 귀엽더라고요. 나는 키만 크지 뻘쭘한 스타일이었지만 이 친구는 아담한 게 남자들이 보면 정말 귀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뭐 둘 다 미팅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어요. 사실 짝짓기도 잘되고 쭉 그 길로 나갔으면 이렇게 안 친해졌을지도 몰라.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죠.

심: 매일 미팅 끝나면 모여서, 이번엔 택시를 타고 갔기 때문에 성공을 못한 거다, 다음에는 꼭 버스를 타자,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징크스를 끼워맞추기도 했었죠. (웃음) 하지만 무엇보다 우정을 꽃피웠던 장소는 지금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고고장’이었어요. ‘고팅’(고고장+미팅)은 정말 밥먹듯이 했거든요. 1년365일 중 300일은 출근도장 찍었을 정도니까.

이: 300일은 너무하고 일주일에 많이 갈 때는 3, 4일 정도는 갔을 거야. 그게 그건가? (웃음) 그때 입장료가 1500, 2천원 할 땐데 일단 점심 때 만나서 밥먹고 종로2가 고고장이 문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3시쯤 들어가서 8, 9시쯤까지 1분도 안 쉬고 춤추다 나왔어요. 학생입장에서 놀다가 택시타고 집에 들어간다는 개념이 그때까진 없었고 우리에게 고고장은 워낙 일상의 일부가 되었기 늦게까지 놀거나 그렇지 않았어요. 술도 한 모금 안 마시고 콜라마시면서 죽어라고 흔들다 나오는 거죠.

심: 진짜, 우리 대학생활 가만히 생각하면 무슨 중학생 같지 않아?

이: 고고장 가는 중학생? (웃음)

심: 요즘 대학생들하고는 정말 많이 달랐어요. 불란서문화원 가서 영화보고, 매일 편지쓰고, 판 사서 몇번 노래를 들어봐, 너무 좋지 않니? 뭐 이랬으니까. 정말로 사춘기야 사춘기. 1학년 중간고사 때였나. 강당 매트리스에 둘이 누워서 보던 하늘이 생각나요. 그때 하늘이 유난히 파랬는데 그때 그렇게 누워서 미연이와 처음으로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우와, 이거 정말 <여고괴담…>이다.

이: 그때는 뭐가 그렇게 알고 싶고 궁금한 게 많았는지, 저 사람이 내 친구였으면 하는 욕구가 너무 강했나봐요. 매일 만나고도 하루에 서너장씩 편지써도 다음날이면 또 쓸 말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우체국가서 우표붙여서 보내고 그랬었는데…. 지금도 집에 가면 편지가 박스에 한 가득이에요.

심: 우린 버스를 자주 탔는데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미연이한테 음악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가요나 알았지 팝송 이런 거 잘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얘는 너무 유식한 거야. 당시 그룹 ‘퀸’ 소속사에 팬레터 보내고 그럴 정도였으니까.

이: 아유, 쪽팔리는 기억들 다 끄집어낸다. (웃음) 2학년 되고 내가 연극반 시작하면서 고고장 출입은 끊었죠. 하지만 재명이는 연극반이 아니었는데도 공연있으면 포스터 다 붙여주고 연극반 준회원 수준으로 ‘깍두기’ 노릇하며 계속 붙어다녔어요.

심: 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더라고요. 별로 멋있어보이진 않았어. 물론 그땐 연극표 공짜로 주니까 좋아서 그랬지.

이: 그렇게 서로 편지쓰는 습관은 심 대표가 졸업하고 영화사 들어가고 내가 파리에서 공부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 된 것 같아요. 연애한단 이야기는 재명이가 파리로 보낸 편지에 이은 감독 이름이 조금씩 묻어나와 그렇구나 한 정도예요. 그러다 귀국할 땐 공항에 둘이 꽃다발 들고 나와 있더라구요.

심: 꽃다발은 안 들고 있었어. (웃음)

이: 안 들었나? 어쨌든 그 이후 우리가 아주 다른 일을 했다면 서로의 생활을 이야기해주느라 말도 많이 하고 편지도 계속 썼을 텐데…. 오히려 비슷한 일을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가 뜸해진 게 사실이에요.

심: 정말 그러네….





"재명아, 저 감독 잘할까, 의심하지 않았니?"
>>이미연이 친구 심재명에게<<
Q: 재명아, 내가 기억하는 한 너는 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아.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졸업하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했잖아. 돈도 수억 벌었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집은 부자도 아닌데 나는 한번도 아르바이트한 적이 없었잖아. 쟤는 별로 못사는 집 딸 같아보이지도 않는데 왜 저러나, 늘 궁금했어. 몇시에는 아르바이트 몇시에는 영화보고…. 너의 그 빈틈없이 짱짱한 일과, 숨 안 막혔냐? 그리고 그 급한 성격. 네 성격이 얼마나 급한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하는 말이지만, 대학교 때 분식집에 가면 너는 비빔밥이나 짜장면 절대로 끝까지 다 안 비벼서 먹었잖아. 한두번 휘휘 젓고 후닥닥 먹고나서 “가자 미연아” 하면 나는 그때까지 짜장면 비비고 있고…. (웃음)

초반에는 아, 내가 너무 늦게 먹는 거구나 맞췄는데 나중엔 포기했어. 극동스크린 다닐 때 했던 말도 기억나냐? 아침에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어도,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생각하고 있으면 정작 볼일도 제대로 못 본다고 했던 말. 넌 늘 그랬던 것 같아. 정치적인 멘트가 아니라, 그런 지독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이 가능했다고 보지만, 늘 너무 궁금하긴 했어. 단순히 저 사람의 캐릭터라고만 하기에는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었거든.

A: 음…. 용돈을 부모에게 ‘갈취’해서 쓰는 걸 죄악시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지. 대학갈 정도까지 키워줬으면 아르바이트 하던 뭘 하던 자기밥값 정도는 벌어야겠다는 생각. 장점이라면 그렇게 지독하게 살아왔다는 거고 단점이라면 재충전, 자기점검의 시간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거야. 학교 때도 니 말대로 그랬는데 취업하고도 단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맘편하게 쉬어본 게 너 보러 파리갔다가 같이 1달 동안 유럽여행다녔던 때야. 지금도 보면 주중에는 뭘 하고 주말에는 아이하고 뭘 해야 하고… 하는걸 쫙 계획을 잡아놔야 직성이 풀리니까. 하루라도 멍하게 쉰 적이 없었던 것 같아. 할 수 없어, 너는 그게 캐릭터라고 하긴 뭐하다고 했지만, 그게 내 캐릭터인 것 같아.

Q: 이건 근본적으로 데뷔를 하는 나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지만, 제작자로서 신인감독에게 하는 의심이 들지 않았는지 하는 거야. 친구로서 잘했으면 좋겠다는 건 다른 마음이고 과연 저 감독이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들었던 순간은 없었니?

A: 매번 그래. 모든 신인감독에게 품는 의문이 있다고. 저 사람이 저걸 잘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항상 하지. 너 같은 경우엔 프로듀서나 연출부를 했지만 단편영화를 안 해봐서 실제적인 콘티 감각이라든지 영화적 메커니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기가 직접 쓰지 않은 시나리오가 아니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 그래도 안심이 됐던 건 잘 아는 사람니까 서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진 않겠구나. 이 시나리오와 감성이 닿는 사람이다, 그리고 <조용한 가족> 프로듀서를 할 때 지켜본 결과 사고가 유연하고 균형감각이 있다는 확신을 했지.

Q: 이 질문을 영화 다 찍고 난 다음에 묻는다는 게 우습지만 <버스, 정류장>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묻고 싶었어. 사실 이 시나리오가 장르영화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애매한 부분이 많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명필름에서 <버스, 정류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아.

A: 글쎄, 계속 뇌리에 남았어. 이미도씨가 해외영화제용 영어번역을 마치고 팩스로 소감을 보내왔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어. “마지막 장면, 버스가 그렇게 멀리 사라져간 뒤에도 한참 여운이 남았다. 마치 어렸을 적 동화책을 다 읽고 어떤 장면이 너무 인상에 남아서 책을 덮고도 한참을 책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넣고 있는 느낌이었다”라고. 화두는 결국 그 손가락인 것 같아.

솔직히 처음 심보경 이사가 시나리오 보여줬을 때 처음부터 재미있고 좋고 그런 건 아니었거든. 그런데 가만히 손가락을 끼우고 싶은, 계속 여운이 남는 그런 시나리오였어. 어린아이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 어찌보면 정말 재수없고 한심하고 불쌍한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서로를 알아보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더라고. 쉬운 이야기는 아닌데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이 머리에 남아 있었어.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고 난 이후로 이렇게 머리 쥐어뜯고 사는 거야. 순간의 판단 때문에 고통의 터널로 걸어들어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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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아, 왜 졸업도 안 하고 연극판으로 갔니?”
>>심재명이 친구 이미연에게<<

Q: 미연아, 너 4학년 말에 극단에 들어간다고 졸업장 없어도 된다고 학교를 떠났을 때 난 정말 궁금했어. 제일 친한 친구가 떠나고 혼자 남겨져서 섭섭한 마음 한켠에, 쟤는 졸업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가 급하다고 저렇게 사회로 뛰쳐나간 걸까? 하는 의문. 그때 일기에 “나는 괜히 그런 마음에 입을 꼭 다물고 다녔다…”고 썼던 기억도 나.

A: 내 성격 그렇잖아. 너도 알다시피 스스로가 좋게 표현하자면 유유자적하면서 중용적인 거고 남들 눈에는 우유부단하단 이야기를 많이 듣긴했지. 이것도 맞을 수 있고 저것도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 지나고보니 넌 늘 그런 맥락에서의 내 게으름에 대한 지적을 많이 했던 기억이나. 너 지금 싫으니까 안 하겠다는 거 아니야? 졸업도 마찬가지야. 게으름의 소치라는 거지. 모르겠어. 너에 견주어서 이야기하면 그렇겠지만, 어허 이러다 싸우겠다. (웃음) 그렇게 우리는 많이 다른 사람들인가봐. 하지만 그 다름이 우리를 친하게 만든 게 아닐까?

Q: 물론 <버스, 정류장>이란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미연이 너와 맞을 거란 생각을 막연히 했고 너도 시나리오 보고 의욕을 보였지만 남이 쓴 시나리오를 들고 작업한다는 게 만만치는 않았을 거 아냐. 작가, 감독, 프로듀서가 각 시나리오를 바라보는 오차를 극복해나가는 어려움은 없었는지. 이게 정말 만만한 듯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들기 어려운 이야기잖아.

A: 전적으로 동의해. 장점도 단점도 분명한 시나리오였으니까. 하지만 시나리오 수정부터 캐스팅하는 순간까지는 이건 어떤 이야기다라고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어떤 정서다 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공유했기 때문에 일의 진행이 편했는데 지금, 개봉을 앞두고는 솔직히 딜레마가 있어. 크게 보면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지만 마케팅에서 당연히 멜로드라마의 범주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처음부터 위험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막상 닥치니 혼란스럽긴 하다.

타협 아닌 타협을 한 지점이 있는 건 아닌지, 예를 들어 내가 볼 때는 이 부분 음악을 안 넣어도 될 것 같은데 생짜로 놔둬도 되는데 보는 사람들은 부담스러워 해서 음악을 넣은 부분도 조금 있잖아. 물론 명필름이란 회사가 거짓말하는 마케팅은 안 할 거라는 100% 확신이 있고, 그런 마케팅이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 사이의 딜레마가 아직도 있지. 어느 제작자나 감독이 가지는 평행선 같은 게 있는 거니까. 물론 그 간극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야.



“친구라서 꼴통짓 못하겠더라고요”
>>감독 이미연이 제작자 심재명에게<<
심재명 대표님. <버스, 정류장> 찍으면서 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 이건 거꾸로 똑같이 당하는 거다, 라고. 전에 <조용한 가족> <반칙왕> 프로듀서를 하면서 김지운 감독과 겪었던 마음고생이 그대로 오더라고.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해결될 수 없는 미묘한 관계. 프로듀서와 감독이라는 입장을 떠나 김 감독이랑 나랑은 정말 친한 친구잖아. 그래서 그땐 영화는 둘째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우정만은 깨지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 아닌 다짐이 있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김지운 감독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직접적으로 할말도 돌려서 하고 필터를 거쳐서 나오고 그랬지. 그러니까 싸움이 날 만한 일도 싸움이 안 되는 거지.

심 대표도 그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가 또 그런 말 대놓고 하는 성격들도 아니니까. 특히 명필름과 그간 감독들의 관계형성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나름대로 자기검열이 있었던 것 같아. 사고도 치고, 잠수도 타고, 꼬장도 한번 부리고 그랬어야 하는 건데(웃음) 워낙 오래된 친구니까 오히려 더 꼴통짓을 못하겠더라고. 좋게 말하면 배려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접고 들어가고 하는 그런 것. 그게 어려운 점, 아니 미묘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

사실 <버스, 정류장>이라는 시나리오를 처음받고 연출을 결심한 뒤 프리프로덕션 때는 정말 스피드하게 모든 일이 진행되고 시나리오를 보는 방향이나 지점 등이 서로 같았고 명료했어. 그런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현장에 있으니 나만 혼자 전쟁터에 떨어져 있는 기분이 안 들 수 없더라고. 그때서야 김지운 감독의 마음을 이해하겠더라. 그 기분이 설명하자면 참 복잡한 건데. 촬영장에 거의 매일 심 대표가 오니까 이럴 때 친구라는 비빌 언덕이 있다는 안도와 동시에 부담스러움이 있고 또 한편 프로듀서가 어떤 부분은 좀 참견해줬으면 하는 기대 같은 게 있었나봐. 그런 게 가장 극대화됐던 시점이 엔딩장면 찍을 때인데, 기억하겠지만, 나 그때 정말 우울했잖아. 엔딩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앞의 이야기가 모호함으로 남느냐 아니면 그나마 설명되느냐가 결정되는 거였는데, 그 순간 막막하더라고.

한참 망설이다 밤늦게 전화를 해서 심 대표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했잖아. 그러고나니 진작 왜 이러지 않았을까? 막말로 데뷔감독이 당연히 자신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건데 왜 엔드지점까지 오게 됐나 하는 후회가 들었어. 그런데 나에게 그게 쉽지가 않았던 거예요. 가끔 심 대표 보며 오늘 술이라도 먹자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스스로 검열이 드는 거야. 이 사람 아무리 새벽이라도 일 때문에 만든 자리를 피하는 법이 없는데 나까지 술먹자고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루종일 일하다가 딸얼굴 볼 수 있는 시간이 불과 몇 시간 안 되는데 내가 그 시간을 뺏는다는 걱정 말이야. 일하는 여자들이 아이에게 갖는 또다른 희생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걸 아는데 나까지 그러면 되나. 그런 걱정까지도 섞여 있었어. 이런, 감독이 영화에 신경쓸 머리도 모자라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나 정말 문제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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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악역을 맡았어야 하는데”
>>제작자 심재명이 감독 이미연에게<<

이미연 감독님. 사실 영화사 대표가 아무리 프로듀서라지만 거의 매일 현장에 나가 있는 건 스탭에게나 감독에게 부담 아닌 부담이라는 것도 알아. 현장이 즐거워서 나간 건 솔직히 아니고, 뭐 재밌는 사람이 있는 것도 절대 아니었고(웃음) 잘돼야 될 텐데 하는 책임 반 우려 반 그런 걱정이 컸던 것 같아. 그래서 딴 영화들보다 <버스, 정류장>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던 것, 나 인정해. 하지만 정말 친구 영화라서 괴로운 부분도 많았어. 혹시 내 친구가 찍는 영화라서 내가 판단이 흐려지진 않을까 중심을 잃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자책.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뭔가 쿨하게 뱉어야 하는데, 말을 이런 식으로 해도 되나 저래도 되나 망설이는 통에 그냥 타이밍 놓친 것도 많았고. 오죽하면 빨리 촬영이 끝났으면, 빨리 개봉했으면, 빨리 예전의 친구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을까.

며칠 전에 이은 감독이 그간 <버스, 정류장>에 대한 일종의 작업평가같은 걸 명쾌하게 내려줬는데, 우리 부부는 명쾌함에 목숨거는 사람들이니까 이해하세요, 그 말 듣고 그렇구나 했어. 이미연 감독은 명필름이라는 제작사에서 거기다 친구가 프로듀서니 뭔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심 대표도 역시 친구란 이름의 감독에 대해 구체적이진 않지만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는. 물론 큰 문제가 생긴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순간순간 그런 기대 때문인지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어. 명료하게 깨놓고, 솔직하게 뭘 원하는지,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다가서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 가장 커. 작품 들어간 감독이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내가 아는데, 게다가 이 감독이 나처럼 전전긍긍하는 스타일이 아닌 걸 아는데, 나라도 두 사람 중에 악역을 맡았어야 했다는 생각, 더 치열했어야 된다는 생각이 지금 와서 가장 큰 후회로 남아.

연극하던 이 감독이 갑자기 연출을 공부하겠다고 훌쩍 파리로 떠날 때에도, 충무로 들어가 연출부 한다고 했을 때도 우리 같은 길 가게 돼서 너무 잘됐다거나, 쟤 왜 저러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거든. 그런데 그거 알아? 아기낳고 영화관에 앉아 <초록물고기> 스크롤에 ‘스크립터 이미연’이라고 뜨는 글자를 보는데 벅차오른달까, 감격스럽달까, 여하튼 그 묘했던 기분은 지금도 잘 설명이 안 돼.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그냥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미연_ 스스로에게 이제는 직업적 감독으로뿐 아니라 영화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더 치열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전의 삶이 그걸 하기위해 설렁설렁 살았다면, 방식적으로 다르게 접근했다면, 이제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거든요. 그리고 영화찍기 전까진 한번도 그런 생각한 적 없는데 어차피 소수집단에 속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여성감독으로 이상한 책임감도 들고 이왕이면 흥행도 잘되는 여성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면 본인의 가열찬 삶에 대해 폄하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심 대표는 지금까지 너무 가열차게 살아온 것 같아. 학교 다닐 때부터 영화하는 이 순간까지 매일 머리 쥐어뜯고 살았잖아. 친구입장에서 좀더 여유있게 즐기면서 영화하면 어떨까 하는 소망이 있죠. 물론 내가 볼 때나 남들이 볼 때도 지금까지 심 대표가 해놓은 일들이 만만한 게 아니에요. 게다가 본인은 더 잘해야 된다는 욕심도 있겠지만 이젠 게으름도 피우고 좀더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감상적인 이야기로 들릴는진 모르겠지만 여성영화인 간담회에서 설문한 결과를 백서로 냈는데 그 책에서 재명이가 재충전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공공지면에 쓴 걸 보고 솔직히 놀랐어요. 또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진짜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버스, 정류장>을 생각하면 아직 ‘가열찰’ 일만 남았지만. (웃음)

심재명_ 너무 뻔한 말 같지만 가장 중요한 말이기도 한데 이미연 감독에게 바라는 건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내는 감독이 됐으면 한다는 거예요. 물론 <버스, 정류장>이 그런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건 우리 회사의 소망이기도 하고, 미묘함이란 화두 속에서 내 친구의 데뷔작이 정말 결과가 좋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죠. 저는 감독은 작품을 하면서 커나간다고, 많이 만들면 많이 만들수록 실력이나 능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동안 나도 제작을 많이 했지만 시작 전에는 뻔할 것 같다고요. 하지만 매번 만나는 감독이 다르고 스탭들이 다르니까 변수가 생겨요. 그렇게 작품마다 부딪치고 깨지고 나면 뭔가 새로운 노하우가 생긴다는 거죠.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올해 명필름 라인업도 많은데 재충전과 일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까 하는 거예요. 그것도 계획을 좀 잡아야 될 것 같은데…. 요즘엔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 내가 너무 지친 것을 포함해 그렇게 달려오는 동안 내가 상처주었을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반성, 그런 것들이 올해의 숙제로 남지 않을까요.

씨네21     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