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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 예사롭지 않은 그의 옥중 편지

사/ㅣ 2011. 8. 19. 01:53 Posted by 로드365


박사님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책 정말 감사합니다. 외국 교정정책과 구금생활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정신적 부작용에 관한 자료를 구하고 있었는데 전문가가 없어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의 역서가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따뜻한 마음 보내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약 5년 동안 상담심리학 범죄심리학을 마음에 두고 밤잠을 줄여가며 매달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환경적인 문제와 법무부 윗선의 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꿈을 접었지만 그땐 저와 수용자들의 문제점을 찾고 바로서기를 하고 싶은 꿈으로 살았거든요. 탈옥 전과자인 저는 독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진로를 변경하여 담 안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데 온 힘을 다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규정 및 법률 그리고 형정행위에 대하여 법적 조치를 통하여 바로 잡으면 그만큼 수용자가 교정 교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해서 민사소송을 두 건 제기하여 모두 일부 승소를 이끌어 냈지만 민사소송은 백 번 승소를 해도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힘이 많이 빠집니다.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직접적인 방법과 더불어 논문 등으로 문제점을 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 신중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성적인 문제, 성격적인 문제, 그리고 사회성이 부족한 문제 때문에 수용자들이 재범을 반복하고 있어요. 범죄중독이란 게 이러한 문제가 복합되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지, 범죄를 하고 싶어 안달하는 현상은 범죄중독이라고 하지 않죠? 그런데 수용자가 교도소에 구금되어 격리된 생활을 할 경우 수용자의 문제가 치유되기 보다는 오히려 심화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많아 재범 이상의 수용자가 사회복귀를 제대로 하기 힘들지요.
 
구금된 환경은 사회성을 상실케 하고 인성적 문제는 물론 정신적인 문제까지 일으킬 위험이 큽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장기간 비좁은 거실에 격리수용될 경우 구금된 것만으로 문제가 발생하는데 문제적인 수용자들은 더욱 위험하죠. 구금 위주로 만들어진 시설적인 문제, 교도관들과의 사소한 마찰, 특별권력관계와 유사한 형태에서 일방적으로 받는 여러 상황, 그리고 장기형 및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등......
 
그러므로 수용자의 교정 교화와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구금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욱 격리하는 방향으로 처우가 진행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저는 22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이중 12년 3개월은 엄중격리된 생활을 했죠. 저는 엄중격리된 환경에서 악몽, 환상, 환청, 불안, 폐쇄공포증, 우울장애, 불면 등을 겪었고, 이중 환청과 환상을 제외한 나머지 질환은 현재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엄중격리된 상태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많은 수용자들을 보았고, 저 또한 수 십 회 정신적으로 위험한 고비를 겪으면서 수백 번 인내의 한계점을 경험하면서 엄중 격리한 환경이 만들어내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어 구금생활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행정소송 및 헌법소원을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구금환경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선 충분히 알고 있는데 저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합니다. 재판부와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선 입증자료가 꼭 필요하거든요.
 
미국 교정당국에서 과거 독거수용의 효능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강력범 10여 명을 독방에 엄중격리하고 기본적인 처우를 제한하였는데 수용자가 자살,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일으켜 몇 개월 못 가 실험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이 중단한 이 사례를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박사님, 따뜻한 마음 보내주었는데 염치없는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외국교정행정의 우수사례 및 구금환경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에 관한 논문 및 보고서 등의 자료를 구할 수 있을까요? 자료를 구하는 방법만 알려주셔도 제가 지인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저의 몸과 정신을 보호하고 수용자의 정상적인 사회복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거든요. 인간은 인내의 한계점을 넘어서면 어떤 형태로든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10년 3개월 동안 징벌 1회 받은 적이 없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도주를 기도한 적이 없는데 10년 5개월째 독방에 격리되어 있고, 2009. 11. 18. 청송교도소로 이송되어 손목에 수갑을 차고 다녀야 하며 TV 시청이 금지되는 등 기본적인 처우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수갑을 차고 다녀야 하며 TV 시청을 금지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중경비대상 수용자로 이곳에 수용되면 의무적으로 모두 이런 처우를 받아야 한답니다.
 
제가 위험한 행동을 보였다면 모를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는데 중경비 시설에 수용되었으니 같은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헌법과 법의 취지에 위반되는 것같아 이 문제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하려구요. 그러나 제가 지금의 환경을 이겨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박사님.
저는 철저하게 망가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도피생활 중 선악의 경계에서 정신적으로 힘겨운 상황에 장기간 처하기도 했었지요. 저의 경험과 저의 내면을 제대로 살필 수 있다면 범죄를 줄이고 사회적 피해를 줄이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교수님께서 원하시면 제가 연구대상이 되겠습니다. 교수님의 물음에 진실로 답할 것이며 여러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제가 배우고 싶은 것도 있구요.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등기로 편지를 주십시오. 반드시 등기우편이어야 하며 편지와 관련자료 매수도 적어서 보내주십시오. 접견을 신청하셔도 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꼭 서신을 주시라는 뜻에서 등기우표 10매를 동봉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 정말 인간적이고 자애로운 분을 안타깝게 떠나보내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젠 한명숙 전 총리께서 비슷한 일을 겪고 계시네요. 직접적인 증거 없이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유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은 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엔 무혐의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짓는 게 일반적인데 구속영장 청구를 해보지도 않고 불구속상태에서 기소를 하니 숨은 의도가 너무 확연히 보입니다. 판결까지 가면 무죄가 확실하겠지만 한명숙 전 총리께선 이미 희생양이 되어버렸거든요. 통합된 야당후보는 쉽지 않을 것 같고 이미 흠집이 나버렸기 때문이지요.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루크 훌스만 님의 철학에 더욱 더 공감을 갖게 됩니다.
 
제가 초면에 너무 장황한 글을 드렸네요. 고향이 비슷하고 인간적인 분 같아서 무례를 범했습니다. 도피생활 중 임피초등학교에서 축구 등 운동을 많이 했었거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교수님과 가족, 그리고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께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십시오.
 
2010년 1월 4일 신창원 드림
 
※ 허리가 불편하여 글이 엉망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참 어떻게 책을 보내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