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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영화 <아마겟돈>은 미국인 영웅들이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의 빤한 블록버스터였지만,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안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책을 읽는 장면만은 꽤 인상적이었다. “입 언저리가 일그러질 때, 이슬비 내리는 11월처럼 내 영혼이 을씨년스러워질 때… 그럴 때면 나는 되도록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바로 <모비 딕>의 첫 부분이었다. 심원하고 광대한 미지의 영역을 추구하며 위험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21세기의 우주비행사와 19세기의 포경선 선원은 묘하게 닮았다. 

오랜만에 나는 편집자로서 <모비 딕>을 다시 만났다. 축약도 생략도 하지 않고 원문을 고스란히 옮긴 <모비 딕>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프랑스 아셰트 출판사에서 치밀한 고증을 거쳐 구현한 포경 항해에 대한 일러스트도 한몫 거들었다. 우리는 감히 ‘국내 유일 완역 일러스트판’이라는 카피를 붙였다.

사실 이 책 출간에 대한 공로는 전적으로 번역자 김석희 선생의 몫이므로 이 책에 대한 편집 후기는 특별할 것이 없다. 너무나 아마추어 같은 고백이지만, 이 책을 편집하는 동안 나는 순수하게 한 사람의 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장 사이사이에서 심원한 대양이 펼쳐지고, 뱃사람들의 노래가 들려오고, 외경을 불러일으키는 고래가 헤엄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고래학(學)’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백과사전적 정보까지 완벽한 한국어 문장으로 표현되었다. 말로만 듣던 ‘아우라’가 무엇인지를 느끼며 겸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820쪽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다 올 컬러 제작비용을 감당하느라 높게 책정된 가격 때문인지, 아쉽게도 알 만한 사람들만 찾아 읽는 책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일러스트를 빼고 가격을 낮춘 개정판도 새롭게 펴냈다! 입맛대로 고를 수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안강휘 (작가정신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