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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의 중심축으로, 빛나는 활약을 펼치는 이병규(37)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새삼 LG 팬들의 이병규 사랑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팬들은 이병규를 향해 '이병규 선수'라고도 부르지 못했다. 어떻게,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있느냐며 '이병규 선수' 대신 '그 분'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단순히 선수를 좋아하는 관심을 뛰어 넘어 LG팬들은 이병규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대단한 아우라가 아닐 수 없다.

'이병규 선수'를 넘어 '그 분'으로 추앙되는 이병규. '제 2의 전성기'라고까지 불리는 이병규는 올해 LG의 놀라운 돌풍, 그 중심에 서있다.

2011 시즌의 최대 이슈, LG 그리고 이병규

5월 한 달 동안 프로야구에서 가장 이슈가 된 선수가 이병규였다. 5월에만 103차례 타석에 들어서 4할(95타수 38안타)을 기록하며 타격 1위를 내달렸다. 6월 8일 현재, 이병규는 3할7푼4리에 64안타를 쏘아 올리며 타격과 최다안타 공동 1위, 홈런(10개) 5위, 타점(35개) 공동 9위, 출루율(.415)5위, 장타율(.599) 2위 등 득점과 도루를 제외한 공격 6개 부문에서 모두 상위권에 올라 있다.
 
지난 8년동안 만년 하위권에 맴돌던 LG가 KIA와 함께 공동 2위로 껑충 뛰어 오른 배경에는 이병규의 활약과 존재감 때문이라는 의견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이병규도, 또 LG도 달라졌다.

6월 2일, 잠실야구장 LG트윈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병규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시즌 중에 프로야구 선수를 인터뷰하려면 많게는 30분, 적게는 10분 정도의 시간동안 인터뷰하는 게 고작이다. 더 이상의 시간을 내려고 해도 훈련과 미팅 시간, 경기 시작 전까지의 상황들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병규와의 인터뷰는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가 인터뷰를 위해 '일찍' 출근한 덕분이다. 그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고, 그 또한 할 말이 많았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LG팬들, 아니, 야구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은 ‘지난해와 달리 올시즌 왜, 무엇 때문에 이병규가 달라졌느냐’하는 내용이다. 인터뷰할 때마다 이병규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고 한다.

"8년동안 그만큼 수모를 당했으면, 더 이상은 안 되는 거잖아요. 더 내려갈 곳도 없고, 더 추락할 수도 없다는 공감대가 선수들 사이에서 형성된 것 같아요. 저 혼자서 잘한다고 되겠어요?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모였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들이죠. 사람들이 저한테 회춘했다고 하는데, 회춘보다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지난해 일본에서 복귀한 뒤 기자분들한테 '이병규 개인 대신 팀을 위해서만 야구하겠다'라고 약속했었어요. 팀을 위해 희생하고 싶었고, LG가 가을에도 야구하길 간절히 소원했기 때문에 그런 약속이 가능했던 거예요. 그런데 막상 시즌을 마치고 보니, 우리 팀도, 저도 빈손이더라고요. 개인 성적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한 게 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지난 겨울부터 생각을 바꿨어요."

팀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 성적이 살아나야 팀도 산다는 걸 다시 알게 된 것이다. 가급적이면 안타를 많이 치고 출루하고 득점하고, 그래서 타점을 내려고 노력했던 부분들이 좋은 결과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겨울부터 혹독한 훈련을 했어요. 전지훈련 동안에 팀 훈련 외에 개인 훈련을 자청했죠. 밥 먹고 나면 할 일 없잖아요. 그냥 방에서 뒹구느니 훈련이나 하자는 생각에 야간훈련을 시행했는데, 처음에는 혼자했던 훈련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거의 모든 선수들이 개인 훈련을 하게 된 거예요. 절대로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이 알아서 나오게 된 거예요. 자율 훈련이다보니 훈련하면서 농담도 하고, 선배에게 타격폼에 대한 조언도 듣고, 폼도 수정해 보고, 정말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우리 팀의 팀워크로 승화된 것 같아요."

데뷔 15년차 베테랑, 아직도 OOO 공은 치기 힘들다?

2006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했던 이병규는 3년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몇몇 사람들은 이병규의 일본 생활에 대해 '실패'란 단어로 정리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배움의 시간들'이었다고 표현한다.

"전 절대로 일본에서 보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아요. 1군이든, 2군이든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 경험들을 통해 제 야구 인생이 훨씬 더 성숙할 수 있었다고 믿어요. 만약 일본에 가지 않았더라면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당장 그 경험들을 야구장에서 풀어내지 못한다고 해도 나중에 지도자가 된 후엔 선수들에게 큰 선물로 전달이 될 거예요."

일본에서의 3년, 남들은 '실패'라고 단정지을지 몰라도 그에겐 시련인 동시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진출한 시기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다. 조금만 더 빨리 갔더라면 기대한 것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었을 거란 미련 때문이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만 갔더라도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을 거예요. 나이가 주는 부담과 무게감이 있었고, 그로 인해 적잖은 고통을 겪었어요. 물론 일본 진출할 무렵 걱정이 되긴 했었어요.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 외국 생활을 한다는 게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고민도 됐었고요. 하지만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실패든, 성공이든, 아니면 제자리에 머물든,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지난 해 한국으로 복귀한 이병규는 한참동안 한국 야구가 낯설음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처음 보는 투수들, 기량이 뛰어난 젊은 선수들, 힘도 좋고, 변화구도 좋고, 그들이 어떤 공을 던지고, 변화구의 각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타석에 서는 게 쉽지 않았다. 올시즌에는 모든 선수들이 파악됐고, 자신감도 생겼으며, 이전보다 공 1~2개 정도 히팅포인트를 앞으로 당긴 부분 등이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는 중심축으로 연결됐다.

"스프링캠프 동안 엄청난 훈련을 소화했고, 나름 기대를 갖고 시즌을 맞이했는데, 시즌 초반 대타로 기용되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정말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에 타석에 서고 싶은 간절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후반에 대타로 나섰다가 다음 경기 때는 아예 벤치만 달구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속상했었죠. 기회가 오길 기다렸고, 한 번 온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부분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오기와 간절함이 절 자극시키고 일깨우게 했던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병규는 "요즘 공 잘 던지는 나이 어린 선수가 너무 많다"면서 "그들과 상대하려면 실력 외에 더 중요한 게 있다"며 이런 설명을 곁들인다.

"어떻게 해서든 출루하려고 몸부림을 쳐요(웃음). 볼에도 방망이가 나가고, 실투는 절대 안 놓치려고 하고, 안타를 못 치면 포볼을 얻어서라도 출루를 해요. 좋은 투수가 많다고 해서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잖아요. 그들을 이기기 위해선 별 짓을 다 해야 하는 거죠. 그게 이전과 조금은 달라진 부분인 것 같아요. 나이도 먹고, 경험도 많아지니까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더 챙기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되네요."

그래도 이병규는 KIA타이거즈 윤석민과 지금은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가 있는 넥센 히어로즈 강윤구의 직구야말로 가장 치기 어려운 공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적토마' 이병규, 오늘도 나는 달린다

'무심타법'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병규한테도 기록에 대한 욕심은 살아 있었다. 그는 양준혁이 세운 2318개의 안타 기록을 깨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제 목표가 2500개 안타를 치는 거예요. 한화 장성호는 단순히 양준혁 선배의 최다 안타 기록을 깨보고 싶다고 했지만 전 분명한 숫자를 밝히고 싶어요. 2319개의 안타를 쳐서 기록을 깨는 것보단 또 다른 이병규만의 안타 기록을 세워보고 싶은 거죠. 설령 이뤄지지 못한다고 해도, 양준혁 선배의 기록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올시즌 목표도 세웠다. 바로 200안타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병규는 "타율 4할은 한 번 정도는 찍을 수 있겠지만 그 타율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200안타는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이병규는 올시즌 후배들 앞에서 '앞으로 안타를 못 칠 때까지 수염을 기르겠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즉 안타를 치지 못할 경우에는 수염을 깎겠다는 의미였다. 아직까진 계속 안타를 생산하는 중이라 수염을 자를 기회가 없었는데, 바람이라면 그 수염이 턱 밑으로까지 계속 내려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활짝 웃는다.

일본에서 LG로 복귀할 무렵, 일부 팬들은 '나이 먹은 선수를 굳이 비싼 돈 주고 다시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이병규의 합류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기도 했었다. 어떤 팬은 '이참에 은퇴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병규도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잘 하고 싶었다고 한다.

"언젠가 저도 은퇴를 할 날이 오겠죠. 하지만 은퇴하는 모습조차 아름다운 선수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 은퇴 시기는 구단이 아닌, 제 자신이 정할 겁니다. 구단도 절 ‘레전드’라고 생각해준다면 제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좋겠어요. 나이 먹었다고 해서 무조건 뒷방으로 내모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실력도 없는데,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에 생명 연장을 하고 싶진 않아요. 일부 팬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조금은 바꿔놓았듯이 은퇴 시기 또한 제가 하는 데 까지 해본 후 ‘스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두 손을 들겠습니다."

이병규는 지도자에 대한 꿈도 갖고 있었다. LG팬들의 기억 속에 자리한 '레전드'인 만큼 후배들을 위해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다른 부분들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은퇴하기 전에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고 WBC대회에 서고 싶어요. 뽑아만 주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고, 제가 그동안 받은 것들 이상의 수확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제 인생의 대부분이 야구로 채워졌고, 야구를 통해 얻은 게 많은 만큼 그걸 되갚을 시간도 있어야 되겠죠."

올해의 목표는 두말할 것 없이 'LG의 우승'이라는 이병규. 시즌 마지막 날 그의 말처럼 '만취된 채'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꾸게 될 지, LG팬들은 그의 방망이를 주목하고 있다. 

어느덧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질문할 내용들이 잔뜩 남아 있었지만 훈련을 위해선 이병규를 풀어줘야만 했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올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누웠을 때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아마도 만취된 상태로 아무 생각없이 곯아떨어졌을 것 같은데요?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주 마시고 제대로 취했을 테니까요. 하하"



출처



 2011.6.9

이병규 “기본에 충실하고 있다”

8년간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LG 최고참으로서의 책임감, '야구선수 이병규'라는 자존심이 올시즌 '적토마의 질주' 원동력이었다.

LG 이병규(37)는 올시즌 LG 상승세의 중심이다.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후배 조인성(36) 박용택(32) 등과 함께 LG 타선을 이끌고 있다.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쓴소리하는 베테랑을 따라 후배들도 잔뜩 힘을 내고 있다. 타격부문 수위를 다투는 이병규의 활약에 타팀에서도 관심이 많다. 너나할 것없이 이병규의 활약 비결을 묻는다. 이병규는 질문을 꼼꼼히 살피며 차근차근 답을 내놨다.


▶한대화(한화 감독) = 1996년 LG를 떠나면서 97년 신인 이병규에게 등번호 9번 물려줌

-올해 선구안이 부쩍 좋아진 것같은데 작은 눈을 크게 뜬 비결이라도 있는겨.

"감독님, 제가 선구안이 좋아졌다고요? 그렇지 않은데요. 다만 조금은 참고 있어요. 좋은 공을 주지 않을 거고, 나쁜 공을 안 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원바운드성 공에 배트를 안 내미려고 노력하다보니 그렇게 비춰진 거같은데요.

특별히 선구안을 잘하자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크기는 예전하고 똑같아요. 제 눈이 작은 눈은 아닌데요.(웃음)"

▶배영수(삼성 투수) = 지난해 이병규 상대 7타수 무안타로 강했으나 올시즌 3타수 2안타(0.667)로 약해짐

-선구안이 상당히 좋아졌는데 비결이 뭔가요. 올해 제 공을 왜 이렇게 잘 치세요.

"그런가. 내가 너한테 잘치는 건가. 유인구를 많이 참으려고 하다보니 그런 모양이다. 나는 빨리 치니까. 유인구를 상대하기 적지. 보통 유인구는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많잖아. 그런데 나는 유인구를 보기 전에 타격을 하니까.

선구안이 좋아졌냐고들 하는 데 나도 정말 의문이네. 예전보다 낮은 공을 참으려고 노력은 많이 한다."

▶안경현(SBS ESPN 해설위원)=LG 서울 라이벌 두산 출신

-일본에 다녀온 뒤 기량이 더 좋아진 것 같다. 무엇이 얼만큼 좋아진 거니.

"기량이 특별히 좋아지거나 한 건없는데요. 일본야구에서 뛰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은 꾸준히 체계적으로 했어요. 시즌 끝나면 3∼4개월 정도 한국에 나와 있으면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때 전문트레이너와 함께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었죠.

휴식 기간이 보장돼 있으니 심적으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괜히 '파워'를 높이려고 특별히 신경쓰지도 않았죠. 그리고 일본에서는 따로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쳐주거나 하지 않아요. 용병이니까."

▶이범호(KIA 내야수)=이병규처럼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활약 중

-최근 타격자세를 보니 온몸 밸런스가 왼 다리에 있더라. 몸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자세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는가.

"너도 그런 스타일로 치던데? 예전 좋았을 때 비디오를 보고 참고해 뒤에서 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상체가 아닌 하체 밸런스로 타격하려고 하고 있다. 왼쪽에 힘을 남겨 두니까 몸이 빨리 쏠리는 것도 방지된다.

지난 겨울에 그 점을 중점적으로 훈련했다. 뒷다리에 힘을 두면 회전력이 많이 살아나. 지금은 내가 안 좋을 때 그 밸런스를 내가 바로 느낀다."

▶안치용(SK 외야수)=2000년대 LG서 선후배로 한솥밥

-일본에서 명성에 걸맞지 않는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최고 타자로 올라섰다. 대체 비결이 무엇인가. 그 공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

"진짜 특별한 거 없는데. 지금 잘하니까 좋아졌다고들 하는 거같다. 나는 지난해와 똑같이 하고 있는데 성적이 잘 나오니까. 특별한 비결은 없다. 지난 겨울에 타격 포인트를 2개 앞에 놓고 훈련한 게 도움이 된 것같다."

▶진갑용(삼성 포수)=97년 프로 입단 동기

-너답지 않다. 나이 먹었는데 이렇게 잘 하나.

"갑용이 너도 잘하고 있잖아.(웃음) 우리들이 잘해야 하지 않겠니. 선배가 잘해야 후배들도 우리를 보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먹고도 잘하는 선수들이 나와야 '나도 그 나이 때도 계속할 수 있다'는 꿈을 품고 열심히 할 거 아냐.

그러다 보면 늦게라도 전성기를 맞는 선수들이 나오는 거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는 게 중요한 거같다. 그런데 나답다는 게 뭐니?"

▶이대호(롯데 내야수)=베이징올림픽 예선 대표팀 당시 룸메이트

-옛날보다 타격(히팅)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지난해 안 좋았던 거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진짜 변하 거 없다니까. 지난해에는 생소한 투수들이 많았어. 적응기를 거쳤다고나 할까. 투수들이 어떤 공을 던지고, 공 궤적이 어떤가를 파악하니까 상대할 수 있게 된거고. 작년 시즌 후반기에는 잘했잖아.

좋았을 때는 기억 못하고 안 좋았던 모습만 기억하는 모양이다."

▶최준석(두산 내야수)

-원래 잘 치셨는데 올해 어떤 부분을 특히 개선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똑같은 질문이네. 성적 때문이다. 성적이 좋으니까 이렇게 질문도 받고, 인터뷰도 하는 거야. 지금은 내가 뭘 해도 '달라보인다'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제2의 전성기'라는 별소리도 듣고. 요새 2루 슬라이딩하는 거를 보고 '달라졌다'고 하는데 병살타가 나오지 않게 2루 슬라이딩하면서 '방해'하는 거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다 배우는 기본이잖아. 내야수들도 슬라이딩 피하면서 송구하는 훈련하잖아. 타격에서도 그런 '기본'에 충실하고 있다."

▶최진행(한화 내야수)

-타율 1위잖아요. 야구 선배로 저한테 타격 조언 한 마디만 해 주시면 안되나요.

"아! 진행이. 좋은 타자라 내가 특별히 조언해줄게 없는데. 너는 굉장히 좋은 타자야. 체격도 좋고 밸런스도 아주 좋더라. 완벽한 타격을 하잖아.

그런데 가끔 아주 어이없는 공에 타격을 할 때가 있더라. 원하지 않는 공은 타격하지 않아야 해. 조금만 참을 수 있는 인내를 키우면 더 좋은 타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장민제(한화 투수)
-요즘 방망이도 빵빵 터지는데, 치고 나서 세리머니 너무 격하신 것 아닌가요. ㅋ 힘 빠집니다. 세리머니는 연구를 따로 하시나요.

"어이쿠, 미안합니다. 원래 세리머니를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 미안하다. 내가 지금 고참이잖아. 팀이 처져 있거나 경기 중 반전이 있다거나 하면 선배로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좀 동작을 크게하는 경우가 있다. 한화전에 그런 일이 많았던 모양이야. 세리머니를 따로 연구하거나 미리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나는 세리머니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송지만(넥센 외야수)
-개인도 잘 하고, 팀도 잘 나가고. 부럽다. 요즘 야구장에 나오는 것이 즐겁니.

"항상요. 프로야구 선수로 살면서 야구장에 나오는 건 항상 즐거워요. 항상 좋은 기분으로, 즐겁게 나와야 경기도 잘되고요. 경기를 하다보면 나쁜일이 생기기도 하죠. 내가 실수해서 팀이 지기라도 하면 아주 죽을 맛이죠. 그런데 나쁜 일은 빨리 잊으려고 하죠.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즐겁게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야구장을 찾아요."

김정준(SK 코디네이션코치)=2000년대 초반, LG서 전력분석원-선수로 한솥밥
-수염을 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에는 순둥이였지만 지금은 수염 안 길러도 험악한 얼굴인데.
"기르는 건 절대 아니에요. 후배들하고 장난하다가 안타를 못 치는 날 수염을 깎겠다고 했는데 그게 길어졌죠. 어째 그 뒤로 안타를 계속 치네요.(인터뷰 당시 이병규는 12경기 연속 안타 중이었다) 지금도 가만 보면 순한 얼굴 아닌가요? 수염이 지저분하기는 한데 그래도 올시즌 내내 안 잘랐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험악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웃음)"

최동수(SK 내야수)=2000년대 LG서 선후배로 한솥밥
-'LG의 이병규'. 이 응원가는 LG 선수들이면 모두가 부러워한다. 책임감과 자부심 둘 다 있을텐데. '미스터 LG'로서의 고충, 그리고 장점이 있다면.

"팬들에게 감사할 뿐이죠. 그런 응원가를 만들어주셔서. 책임감은 무지 커요. 팀이 계속 하위권에 머무는 거 자체가 선배로 책임을 다 못한 거잖아요. 3년 동안 팀을 떠나 있었기도 하지만 후배들에게 미안하죠. 올해는 좋으니까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LG라는 팀에 있다는 자체로 자부심은 생기는 거같아요. 그리고 '미스터 LG'는 김상훈 선배죠. '미스터 LG'라고 들어본 적 없는 거같은데. 장점이라(잠시 고민 뒤) 서울팀이니까 팬 관심도 많고 그래서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죠."

정민철(한화 투수코치)
-나는 선수 생활 마감이 임박해오면서 잠이 잘 안왔어. 35살 때부터는 못 잔 것 같다. 걱정이 많았지. 팀에 해가 되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데 너는 요즘 잠 잘 자니?

"질문을 보니까 민철이 형이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항상 잘자요. 나이를 먹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나이를 떠나서 선수가 팀에 해가 되면 안되죠. 나 때문에 지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잘 못잘 때도 있죠. 지난일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잘못한 거는 되도록 빨리 잊으려고 해요. 오늘 어제 못한 거까지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1경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133경기를 하잖아요. 1경기에 연연해 다음 경기까지 망치면 안되잖아요. 내가 실수해서 졌으면 다음에 내가 잘해서 2∼3경기 이길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홍성흔(롯데 외야수)
-냉정히 보면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한 건데. 언어 문제가 큰 건가. 일본어는 좀 하나.


"지금은 잊었다. 썩 잘하지도 못했지만. 해외에 나갈 때 언어를 하고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통역을 끼고 대화하는 것과 직접 대화하는 거는 큰 차이가 있다. 한두마디라도 직접 대화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일본 진출 생각이 있으면 시간 날 때 단어 하나만이라도 외우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생각보다 현지에서 생활하며 일본어는 빨리 배울 수 있다. 힘들고 어려워도 언어를 30∼40% 정도 하고 가면 생활하면서 70∼80%까지 빨리 늘 수 있어. 그 정도되면 생활에 지장이 없다. 코치와 선수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게 적응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병규에 대한 질문 대다수는 '지난해보다 왜 이렇게 잘하나'였다. 하지만 이병규는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잘했는데…"라고 한다. 이병규는 "일본에서 활동한 3년 동안 한국야구 투수들이 세대교체가 되면서 낯선 투수가 많았다. 적응이 필요했고, 적응한 뒤는 괜찮았다"고 주장했다. 또 "승패가 결정난 9회 2사 뒤 대타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집중력이 생기지 않았다. 선발 출장경기만 보면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후반기 이병규, 선발 이병규

이병규의 말대로다. 지난해 후반기 이병규는 타율 3할2리를 찍으며 전반기(.286)보다 2푼 가량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후반기 장타율도 4할4푼8리로 전반기(.380)보다 9푼 가량이나 높았다. 상대 투수들에 적응했기에 후반기 활약에 힘입어 시즌 타율을 예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병규의 지난해 성적은 타율 2할9푼 117안타 9홈런 53타점 64득점이다.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 3할1푼을 기록한 타자였기에 '예전만 못해졌다'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이병규는 "선발 출장경기 성적으로만 보면 예전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이병규의 선발 출장경기 성적은 타율 2할9푼6리. 부상으로 44경기 출장에 그친 2003년을 제외하면 98년(.279) 2002년(.293)보다 높고, 일본 진출 전해인 2006년(.297)과 비슷하다. 이병규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병규의 절치부심

이병규가 놓친 부분은 있다. 이병규는 지난해를 돌아보며 "'야구를 계속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일본에서 복귀 뒤 한국야구 적응기를 거치는 동안 후배들과의 경쟁체제 아래서 힘든 시기가 있었다. 선발에서 제외된 뒤 대타로 출전해야 했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2군 생활 중 아들이 1군 경기를 TV에서 보곤 "왜 야구장에 안 가냐"고 물어 속이 상하기도 했다.

일련의 상황은 이병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병규는 실력으로 더이상 홀대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비시즌 누구보다 구슬땀을 흘리며 시즌을 준비했다. 시즌 초 대타로 출전하거나 좌완 선발 등판 시 선발 제외되는 등 상황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병규는 매타석 집중력을 발휘했고, 수위타자 질주를 이어가며 당당히 팀의 중심으로 우뚝섰다. 정리=허진우 기자 [zzzmaster@joongang.co.kr]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