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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임상수 감독
2007.01.03 / 이상용(영화평론가)

황석영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래된 정원>은 17년간 감옥에 있던 사회주의자 오현우가 출소한 후 과거를 더듬어가는 치유의 영화다. <그때 그사람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임상수 감독은 지난 시대의 한을 풀어주거나 미화하는 대신 새로운 시대의 풍경을 써내려간다. 임상수 감독을 만났다.

원작이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영화에선 축소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원작보다 늘어난 장면이나 변화된 장면들이 있더라. 80년 광주에 대한 묘사 같은 게 그런 부분이다.
소설보다 조금 더 대립적으로 각색됐다. 하지만 대사들은 원작의 것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이 영화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읽힐 텐데, 가장 쉽게 읽는 방법은 신념을 지닌 남자가 20년 가까이 감옥에서 살고 나왔더니 시대가 바뀌어 신념 자체가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 남자가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러한 전제로써 광주 장면이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임상수식 영화 만들기의 재미로도 볼 수 있는데, 광주 장면의 대사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분위기에서 조금 시니컬하면서도 재미있게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꽤 아프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분들에게는 악동스러운 감독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웃음)

현우의 어머니인 윤여정의 캐릭터는 원작에선 누님으로 돼 있는데, 영화에선 바뀌었다.
원작의 어머니와 누님의 이미지를 복합한 셈이다. 원작을 보면 어머니는 서민층의 한옥에 사는 여자로 설정돼 있는데 영화에선 과거는 빠져 있다. 중요한 것은 감옥에서 나오니 어머니가 아들에게 비싼 옷을 사주는 인물로 변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현우를 더욱 난처하게 만든다. 자칭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오현우는 어머니가 사주는 천만 원짜리 옷을 입게 된다. 역시 악동스러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광주의 장면과 더불어 걷잡을 수 없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버렸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우리의 현실이 이런 상황을 겪고 있지 않은가. 그걸 짧고 극명하게, 유머 있게, 악동스럽게 보여주는 셈이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어머니의 입장도 생각했다.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남편도 없는데다 큰 아들 현우는 감옥에 갔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것이 아닐까.(웃음)

원작과는 달리 후배 ‘영작’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집어넣었다. 특히 윤희 역 염정아가 뒤를 돌아보며 영작이 나중에 인권변호사가 되었다고 진술하는 내레이션은 지금 한 말처럼 악동스럽게 읽힌다.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 영작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하고.(웃음)
그 장면을 찍을 때 황석영 선생님이 촬영장에 오셨다. 그날은 해지기 전에 촬영을 마치고 술 한 잔을 함께했다. 시나리오를 미리 읽으신 것 같은데 농담식으로 ‘인권변호사’라는 대사를 지적하시더라. 왜 꼭 그걸 집어넣어 이쪽저쪽 건드리느냐고 말이다. 영작의 설정은 내 영화에 대한 오마주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원작의 송영태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들었던 이유도 있다. 송영태를 바꾸는 과정에서 80년대 대학을 다닌 나와 비슷한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 영작이 변호사로 돼 있지만 그 영화는 내 이야기였던 것 같다. 영화 속에 등장하진 않지만 <바람난 가족>의 황정민, 문소리 부부는 과연 어떤 연애를 했을까라고 질문한다면 두 영화의 관련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 부부가 운동권이라는 것은 <바람난 가족>을 만들던 당시 염두에 뒀던 설정이다. <오래된 정원>은 영작의 과거가 될 터인데, 두 영화가 연결되면서 전체적으로 이들 영화를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로 생각해볼 수 있다.

원작을 읽은 이들 또한 현우와 사랑을 나눴던 한윤희의 비중이 더 커졌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원작을 읽으면서 한윤희가 훨씬 더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영화에 없는 장면들이 현우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의 단계, 현우가 감옥에서 겪는 생활 등이다. 그것 때문에 윤희에게 더 집중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황석영 선생님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 되겠지만 여성 캐릭터는 내가 좀 낫다.(웃음)

영화에서는 윤희와 현우의 첫 정사가 대단히 빠르게 시작된다. 소설을 보면 현우가 여관에서 머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서서히 진행된다.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너무 파격적인 것 아닌가 싶다.
영화적 비약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섹스 장면이 만난 지 얼마 뒤라는 것은 영화를 자세히 보면 알 수가 있다. 의상이 달라지는 등 변화가 있지만 몇 개의 장면으로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80년대나 지금이나 백 년 전이나 섹스는 원초적인 언어라고 생각하고, 빠른 것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본다.

현우와 윤희의 딸 은결이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도 여성 묘사에 대한 태도가 잘 보인다. 원작에서도 은결은 교복을 입고 등장한다. 아마 모범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시쳇말로 잘 나가는 십대의 복장을 하고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 정도면 감독의 여성 판타지 아닌가.(웃음)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이 확실히 과감하다.
소설에는 문근영류의 모범생 이미지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모범생 이미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결의 경우 캐스팅, 의상, 메이크업, 헤어까지 다 관여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나오는 여자 아이인데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을까. 좀 더 얌전을 빼고 싶은 마음이랄까.
십대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하셔야 될 것 같다.(웃음) 이 장면에 대해 현장에서도 논란이 가장 많았다. 영화가 막판에 망가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감옥에 있고, 어머니가 저렇게 사니까 딸이 저렇게 망가지는 거 아닌가라는 오해를 살 거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가장 강력한 펀치 중 하나다. 관객의 기대감을 슬쩍 무너뜨리는 장면을 보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미있었다.

현우와 딸이 조우하는 장면은 <클로저>의 유명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우리끼리도 <클로저> 샷이라고 부르면서 찍었다. 개인적으로 <클로저>를 대단히 좋아한다.

나 역시 좋아하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클로저>를 볼 줄은 몰랐다.(웃음)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언급했지만 화실을 운영하는 윤희가 영작을 보듬어주는 장면을 보면 특별함을 꽤나 강조하는 것 같다. 심지어 윤희가 자신의 가슴에 영작을 파묻는 장면을 보면 여성에 대한 예찬론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된 정원>을 가지고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 갔을 때 서양 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이 작품을 혁명이나 전쟁을 배경으로 한 러브스토리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 지바고>와 같은 영화로 평가를 한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기본적으로 <오래된 정원>은 운동권, 즉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이지만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저항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윤희의 캐릭터는 단순히 저항하는 시대가 배경이 아니라 저항하는 시대의 사람들이 너무 저항에만 몰두하다 잃어버린 무엇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윤희의 행동은 영작의 억압된 마음을 해방시켜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20년을 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내, 저항만 하던 사내인 오현우가 감옥에서 출소한 후 윤희와 함께 살았던 갈뫼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 그가 저항을 통해 찾으려 한 것은 바로 윤희의 삶 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말은 시대와 시대가 화해하고 서로 포용하는 게 여성성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영화 속에서 화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시대와 타인과의 화해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현우 자신과의 화해라 할 수 있다. 타인과의 화해라는 것은 위선이다.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화해할 수는 없다.

한윤희를 통해 시대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통하고, 한편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그에 반해 현우는 윤희의 삶을 보여주는 화자의 역할을 하기는 하는데, 그 성격이 손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한윤희의 경우 등장 분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면 한윤희가 중심에 보인다.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현우는 자폐아 수준의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청춘과 신념을 바쳐 20년간 감옥에서 보낸 것이 출소해서 보니 말짱 헛것이 돼버렸다. 비록 딸이라는 놀라운 선물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한 오현우가 일주일간 갈뫼에서 윤희의 노트를 보고 그녀의 삶을 돌이키면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 전체의 흐름이다.

상상이나 판타지 장면이 많다. 전작들에선 거의 쓰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전 영화들엔 전혀 없었다. 이번 영화는 일종의 귀신영화라고 연출부에게 말하곤 했다. 이 남자가 환자이기 때문에 귀신과 대화를 하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현우는 헛것과 조우하면서 일주일간 갈뫼에서 지내는 남자다. 현재의 늙은 현우가 과거의 젊은 윤희와 만나게 되고, 다시 장면이 바뀌면 젊은 현우가 등장한다. 그런 반복을 통해 후반엔 뻔뻔하게 염정아 귀신이 걸어 다니는 장면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도 가만히 판타지에 몰입하게 두진 않는다. 현우의 대사를 통해 “헛것이 다 보이네”라면서 비틀기를 시도한다.(웃음) 그 대사를 듣는 순간, 그럼 귀신과의 조우로 영화를 보지 말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웃음)
그 역시 논란이 많았던 대사다.(웃음) 그런데 그 대사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웃고 나눌 만한 이야깃거리가 없어지지 않나. 영화를 보고 나서 비평가와 감독의 대화거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대사가 아닌가.

또 하나의 논란이 될 법한 장면은 현우가 전화를 거는 장면이다. 그가 공중부양되는 장면인데 대부분의 유령 장면이 한윤희라는 캐릭터에 속해 있는데 반해, 현우의 반응 장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헛것이 보이네’라는 대사와 공중부양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전에는 안 쓰던 스타일 아닌가?
이전에는 써보지 않은, 현실성을 배제한 카메라 워크 장면이다. 그 장면은 전적으로 김우형 촬영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내가 김우형 촬영감독에게 주문한 것은 현우가 전화를 받으면서 왔다갔다한다, 이 장면은 한 컷으로 간다, 김우형 촬영감독이 계속 그 남자를 따라간다, 프레임 내에서 앞뒤로 움직여도 좋다, 단 현우를 계속 하나의 컷으로 따라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공중부양으로 촬영된 것을 알게 됐고, 거의 패닉에 빠졌다.(웃음) 이런 카메라 워크는 구상해본 적도 없고, 상상도 못 해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봤다. 그런데 편집실에서 보니까 정말 좋았다. 심지어 김우형 촬영감독이 나보다 시나리오를 더 잘 이해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음악까지 들어가니까 더욱 환상적인 장면이 됐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는 전작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다. 황석영의 소설은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삼고 있고, 임상수의 전작들은 직설적인 장면이나 정면 돌파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면 임상수의 영화 팬들은 좀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단순히 기교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주인공들은 서로가 너무나 그리운 사람들이다. 만나야 되고, 같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서로 시제가 맞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현우는 감옥을 가야만 했고, 현우가 감옥에서 나와 보니 윤희는 죽어 있다. 그런 운명의 두 사람을 만나게 해야 하는 영화고,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가족 세 사람이 모두 만나게 해주자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에서 과연 현실은 무엇이고, 판타지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오현우의 머리에서는 모두 만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이 뻔뻔스럽게 귀신영화를 찍은 이유다.

이들이 만나는 후반 장면 이전에도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가족들의 모습을 봉합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은 크레딧에 황석영 원작, 조덕현 그림이라고 나오는데 조덕현의 그림을 통해 보는 것이다. 그는 상당히 유명한 화가다. 그의 연작 중에 ‘20세기 추억’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연작 그림은 영화 속에도 등장한다. 윤희가 그린 어린아이의 그림도 그중 하나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은 20세기를 산 어떤 화가의 일생이다. 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불화하는 시대를 안으려 했던 화가의 일생을 그린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시제가 다른 아버지의 젊은 얼굴과 어머니의 현재 얼굴, 그리고 다 커버린 딸의 얼굴을 한 프레임 안에 그려 넣을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일생을 생각하면서 찍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초반 회상 장면에선 현우의 현재 장면에서 돌출적으로 과거가 들어온다. 무척 흥미롭다. 그런데 중반 이후에는 편하게 과거로 교차된다. 일종의 전략이었나?
그건 아니다. 내부적으로는 영화를 1부, 2부로 나누었다. 갈뫼에 있을 때까지가 1부, 윤희가 서울에서 화실을 여는 장면부터는 2부가 된다. 윤희의 서울 장면부터는 1부의 회상구조가 어려웠다. 현재의 현우와 윤희의 과거가 같은 장소에 놓여 있어야 1부와 같은 스타일의 회상구조가 가능해지는데, 2부에서는 장소가 달라지니까 과거의 윤희로 직접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2부는 논란이 많았다.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없으니까 그려내기 힘들었는데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은 것 같다.

<그때 그사람들>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한석규가 텅 빈 광화문을 질주하는 것을 익스트림 롱 샷으로 잡는 대목이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익스트림 롱 샷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인물에 밀착되는 장면이 많은 것 같다. 물론 갈뫼에서 현우가 홀로 밭을 갈고, 수영하는 장면에서 한석규의 장면과 비슷한 정서를 느끼기는 했다.
익스트림 롱 샷에 관해서는, <그때 그사람들>처럼 대단히 이펙트가 강한 정서를 주는 경우를 만들어내기가 앞으로도 좀 어려울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김우형 촬영감독과 익스트림 롱 샷을 많이 써보자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요즘 한국영화에선 잘 쓰이지 않는 편이다. 또 한편으로 인물들에게 다가가는 클로즈업도 많이 써보자고 했다. 이번 영화는 클로즈업이 전작들보다 훨씬 많이 쓰인 경우다.

아무래도 한윤희의 클로즈업이 인상에 남는다.
사전에 어떤 아이디어가 있었다 해도 영화는 찍어 놓고 붙여봐야 알 수 있는데, 원작보다 한윤희의 캐릭터가 멋있게 그려진 건 사실이다. 사실 염정아 씨가 불안해하기도 했다.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이미지를 선택한 것인데, 정아 씨의 입장에서도 완성된 영화를 보고나니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겨서 좋았다고 했다.

그것이야말로 임상수 감독의 장기 아닌가. 주로 여배우에게 국한되기는 하지만,(웃음) 배우들의 다른 면모를 끄집어내는 건 임상수의 장기 아닌가.
염정아 씨가 자기가 찍은 영화들 중 육안으로 가장 예쁘게 나온 영화라는 표현을 했다. 개인적인 능력만은 아니고 역시 김우형 촬영감독과 고낙선 조명감독이 발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갈뫼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갈뫼에 대한 공간 묘사의 원칙은 어땠나?
개인적으로 스토리텔러나 캐릭터메이커라고 생각하지 공간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다. 대략 이 정도면 배경으로 괜찮다는 식의 관여만 한다. 많은 부분은 촬영감독에게 업혀서 간다.

스토리텔러라면 갈뫼 장면에서 살리고 싶은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영화에서 갈뫼는 무릉도원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지서 주임이 찾아와 두 사람을 검문하는 장면이 있다. 주임의 등장은 갈뫼조차 안전하지 못하다는 경고처럼 읽힌다. 그런데 영화는 떠나는 때까지 시종일관 갈뫼를 낙원으로만 묘사한다.
지서 주임의 등장은 각색과정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대목이다. 결국 빼긴 했는데, 오현우가 떠나는 감정은 죄책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지만 혼자 피하면 나쁜 놈이 될 것 같은 죄책감이고, 그런 심리에 충실하려 했던 것 같다.

갈뫼의 세계는 두 사람만이 있는 충만한 시간이다. 그 외에는 계속 현실의 침입을 받거나 두 사람이 만날 수 없는 러브스토리로 전개된다. “나만 생각해줄 수 없겠니”라는 윤희의 말처럼 갈뫼라는 공간은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시간 아닌가?
이야기하다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갈뫼에선 다른 사람이 개입하는 장면이 없다. 실제로 교장선생님 부인 역을 맡은 박혜옥 씨의 촬영 분량이 있기는 했는데 최종 편집에서 제외시켰다. 무의식적으로 지금까지 이야기한 갈뫼의 묘사와 맥락아 닿아 있는 것 같다.

황석영 선생은 영화를 봤나. 두 사람의 시대의식은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파리에 가셔서 보지는 못했다. 예전에 선생님이 이 얘기는 네 얘기라고 한 적이 있다. 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내 세대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원작과 다른 점도 있다. 조직에서 영작에게 시위를 한 후에 감옥에 가라고 종용하는 장면이 있다. 원작의 윤희는 너희들 괜찮은 애들이구나라며 경탄을 보낸다. 하지만 영화의 윤희는 영작을 뜯어말린다. 기분 나쁠 수도 있는 각색이지만 원작을 꼼꼼히 읽어보면 시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저항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숨어 있다. 이 점을 내가 적극적으로 끌어낸 셈이다.

소설에는 없는 것 같은데 그 장면에서 윤희가 쓰는 ‘인민재판’이라는 말이 강하기는 하다.(웃음)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나는 영화가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다. 그 영화의 ‘우리들’이라고 설정된 부분이 <오래된 정원>과 비슷한 맥락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꽃잎>은 장선우 감독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영화는 많은 오해를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장선우 감독이 광주의 한을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광주의 한을 풀어줄 영화나 소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광주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죄책감’이 아닐까 싶은데, 그걸 가장 적확하게 묘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에 해당하는 부분은 죄책감이 아닐까 싶다. <오래된 정원> 역시 오현우뿐 아니라 영작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물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