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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파이기 Kevin Feige, 마블 홍반장

카/ㅓ 2016. 5. 22. 18:14 Posted by 로드365



1. 개요

2. 영화 제작자가 되기까지

3.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지휘자

4. 케빈 파이기의 공로와 과오

5. 마블의 수장을 넘어 디즈니의 핵심간부로


1. 개요[편집]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성공의 일등 공신


미국의 영화 제작자이자 마블 스튜디오 회장. 1973년 6월 2일생. 메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나고 뉴저지 주에서 성장했다.


'페이지'라고 쓰기도 하는데 '파이기'가 맞다. 독일계 성씨라 ei는 '아이'로 읽고 g도 'ㄱ'로 발음한다.

2. 영화 제작자가 되기까지[편집]


흔히 마블 광팬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스타 트렉이나 인디아나 존스, 백 투 더 퓨쳐, 로보캅 등 스필버그와 SF영화의 팬이었다. 영화 학교로 유명한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입학한 것도 조지 루커스가 이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걸 들었기 때문. 이 학교에 다니면서 로런 슐러 도너[1] 밑에서 일했고, 슐러의 도움으로 당시 마블 스튜디오 사장이었던 아비 아라드를 만나 엑스맨 실사영화 시리즈 제작에 참여했는데 이게 마블과의 인연의 시작. 이때 엑스맨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원작을 섭렵하며 마블 코믹스에 빠져들게 되었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영화가 대박을 치면서 마블의 주가도 올랐지만 모든 영화가 흥행한 것은 아니었고(대표적으로 엘렉트라), 그때마다 재정도 들쑥날쑥했다. 결국 파이기는 2005년 메릴린치에서 돈을 빌려 따로 마블만의 영화사를 차리기로 했다. 담보는 캡틴 아메리카와 닉 퓨리 등 캐릭터였다고 한다.


영화를 만들려면 외부에서 제작자를 데려오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파이기는 그것이 영화를 망치는 길이라 생각해 대신 원작 만화들의 작가와 편집자들[2]과 함께 제작위원회를 구성했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으나...

3.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지휘자[편집]


사실상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구상에는 이 사람의 힘이 지대했다고 보면 된다. 2005년부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2008년 아이언맨을 개봉하면서 본격적인 발동을 건다. 아이언맨이 흥행에 대성공하게 되면서 이후 본격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가장 성공한 팬보이 중 하나로 불리는 조스 웨던을 영입한 것은 신의 한수. 케빈 파이기와 조스 웨던은 여러 명의 히어로를 하나로 묶기 위한 복선과 연결고리를 곳곳에 배치하였고 이 노력 덕분에 페이즈 1의 마지막 작품인 어벤져스는 15억불이라는 슈퍼히어로물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탄력을 받은 그들은 페이즈 2에서는 여러 작품들을 다른 메타 장르와 융합시켜[3]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거머쥐며 승승장구.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기점으로 007 시리즈를 따돌리고 가장 성공한 영화 프렌차이즈로 기록되게 된다.[4] 비록 조스 웨던은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끝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하차할 뜻을 밝혔지만, 케빈 파이기와 위원회는 2019년 개봉예정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의 마지막 작품인 인휴먼스까지 계획을 세워두고 차근차근 진행중이다. 페이즈 3 이후의 계획도 구상중인 것으로 밝혀졌고, 2020년 3편의 영화가 추가로 개봉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제는 마블 CEO에게 보고하지 않고 직접 디즈니 스튜디오에 직속 보고하는 권한도 얻었다고 한다.

4. 케빈 파이기의 공로와 과오[편집]


영화사상 가장 거대하며 유래없는 대성공을 거둔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진행하는 핵심인물답게 그의 영화 제작 방식에는 많은 찬사와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칭찬받을 점은 물론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는 개성이 넘치는 슈퍼히어로들을 개연성 있게 서로의 작품에 녹여내는 탁월한 센스이다. 하지만 비판을 받은 부분도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독 히어로 영화의 제작에 너무 참견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언맨2의 경우 "어벤져스의 2시간짜리 예고편이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상영시간 내내 다른 슈퍼히어로들의 떡밥이 나온다. 이는 감독이자 조연이던 존 패브로가 감독으로는 하차한 것에 영향을 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특히 앤트맨의 경우에는 에드가 라이트가 각본까지 써가며 다년간 제작에 대해 논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작에서 빠지기도 했다. 물론 에드가 라이트 본인도 자신의 다른 작품 제작을 위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 스케줄을 깨뜨려버렸으니[5]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제작되던 초기에는 이러한 단독 작품에 대한 참견이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대성공을 거둔 지금은 각 슈퍼히어로들이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관객 역시도 그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시리즈물의 개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절차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특히 2015년 들어서는 아예 단독 작품을 맡을 감독들과 계약 단계에서 감독들에게 단독 영화가 시리즈물의 한 부분임을 이해시키고, 앞으로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에서 일어날 일들을 영화 내부에서 진행시킬 것을 전제로 두기 때문에 잡음이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때문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감독 심사는 길고 고통스럽기로 유명해졌다. 어지간한 감독은 몇 개월에 걸친 심사와 세계관 적용 작업에 질려 사퇴하기도 할 정도이다. 더욱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개봉된 2016년도를 기점으로 DC/워너의 삽질이 드러나면서 케빈 파이기의 역할이 신의 한 수였던 걸로 평가받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 팀 편을 들어서 중립을 지켜야지 뭐하냐며 까이고 있다.영원히 고통받는 루소 형제

5. 마블의 수장을 넘어 디즈니의 핵심간부로[편집]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대성공 이후로 마블 엔터테인먼트 산하의 영화 사업 부서였던 마블의 위치가 변경되었다. 마블 엔터테인먼트 산하가 아니라 디즈니가 거느린 여러 영화제작사와 마찬가지로 디즈니 스튜디오의 앨런 혼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 이전까지는 케빈 파이기(마블 스튜디오) -> 아이작 펄머터(마블 엔터테인먼트) -> 앨런 혼(디즈니 스튜디오)의 보고 순서에서 알 수 있듯이 마블 드라마, 애니메이션 안에 마블 영화사가 위치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디즈니 스튜디오 직속으로 픽사, 루카스필름과 동급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또한 기존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큰 밑그림을 그려오던 위원회를 해체[6]하고 루이스 데스포시토, 빅토리아 알론소와 함께 앞으로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보고 체계가 바뀐 이유는 마블 CEO인 펄머터의 꼰대+짠돌이 기질 때문이라고. 펄머터와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제작비 갈등으로 마블을 떠날 뻔했었던 적도 있었다고.


이는 파이기가 잇따른 성공으로 디즈니 내부에서의 핵심 간부로 자리잡았으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향방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쥐었다는 것을 뜻한다.


[1] 엑스맨 영화 시리즈의 제작자. 성에서 알 수 있듯 슈퍼맨 실사영화 시리즈를 만든 리처드 도너의 아내다.

[2] 현 부회장인 루이스 데스포지토, 마블 출판 부문 사장인 댄 버클리, CCO인 조 케사다, 마블 엔터테인먼트 회장 앨런 파인과 작가인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등등.

[3]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냉전시대 첩보물 + 정치 스릴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스페이스 오페라 + B급 영화, 앤트맨은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의 가족 영화 등.

[4] 27편의 007 시리즈를 12작품만에 뛰어넘었다.

[5] 울트론을 만들어야 할 행크 핌이 에이지 오브 울트론까지 등장하지도 못했다.

[6] 앨런 파인, 브라이언 마이클 밴디스, 댄 버클리, 조 케사다는 마블 영화에서의 발언권을 상실함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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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마블 대표 케빈 파이기,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다


영화 ‘엑스맨’, ‘헐크’, ‘엘렉트라’, ‘판타스틱 4’,  ‘아이언맨’ 시리즈, ‘토르’ 시리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마블 스튜디오 대표 케빈 파이기의 손을 거쳤다는 것. 그는 이 외에도 수많은 마블 영화를 제작했다. 올해로 마블에 입사한지 13년을 맞는 그는 지난 2007년 대표로 취임했다. 그 후 마블은 자금을 스스로 확보하며 만화 캐릭터의 판권을 모두 가졌다. 


케빈 파이기는 1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내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넘어 한국에서도 마블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수많은 마블 만화 작품 중 이야기와 캐릭터를 고른다는 건 어려운 작업이지만 마블 영화는 대부분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아이언맨3’는 한국에서 역대 외화 흥행 2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케빈 파이기 역시  “5000만 명 중 700만 명이 ‘어벤져스’를 보러 올 만큼 한국에는 영화 애호가들이 많다. 그래서 한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마블 스튜디오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화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길지 궁금했다. 


Q. 영화  ‘토르: 다크월드’가  오는 30일 한국에서 처음 개봉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케빈 파이기: 한국은 마블 영화가 사랑 받은 곳이기 때문에 중요한 시장이다. 내가 한국에 방문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미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이 미국 시장보다 커지고 있고, 그중 한국 시장의 규모는 크다. 


Q. 케빈 파이기 대표가 2007년 취임하고 마블 스튜디오가 변한 점이 있나. 

케빈 파이기: 2006~2007년이 돼서야 자금을 스스로 확보했고 우리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그 전에는 다른 영화사에 캐릭터의 판권을 팔아서 제작했었다. ‘아이언맨1’ 이후로 창작물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가지게 됐다.


Q. 마블 스튜디오 콘텐츠의 원천은 마블 만화책인데, 만화책에서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케빈 파이기: 마블 만화는 50~60년 동안 수많은 캐릭터, 이야기를 생산해 왔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가치 있는 캐릭터를 영화로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렇듯 마블 스튜디오는 계속해서 마블 만화와 긴밀하게 협력을 하고 있다. 마블 영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 마블 만화도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이야기나 줄거리보다는 캐릭터가 말하는 방식을 얻어 온다. 예를 들면, 현재 만화 속의 토니 스타크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말투와 아주 비슷해졌다.



Q. ‘토르’ 만화를 영화로 만들 때 무엇에 초점을 뒀나. 

케빈 파이기: ‘아이언맨’, ‘스파이더맨’은 지구로 배경이 설정됐던 반면 ‘토르:천둥의 신’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 형제 관계에 초점을 뒀다. 그 다음에 볼거리, CG, 판타지, 액션 등을 더했다. 


Q. 큰 인기를 끌었던 ‘어벤져스’의 흥행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나. 

케빈 파이기: ‘어벤져스’는 처음으로 개별적인 영화의 캐릭터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게 매력이다. 또 ‘어벤져스’의 캐릭터들은 다른 세계, 사회에서 왔고 서로 좋아하진 않지만 하나로 뭉쳐서 세계를 구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Q. 마블에서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케빈 파이기:  원작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잘 정리해서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또 톰 히들스턴처럼 좋은 배우를 캐스팅 하는 일이다. 종이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 넣는 배우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잘못 되는 것도 많다. 그런 것들은 후반 작업에서 수정할 수 있지만 캐스팅을 잘못 하면 처음부터 망하는 것이다. ‘토르’ 촬영 첫날부터 배우들의 활약을 보면서 만족스러웠고 안심할 수 있었다.   글. 이은아 domin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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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더-케빈 파이기] ①마블 제2전성기 이끈 ‘진정한 히어로’

기사입력 : 2015-06-11 10:45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영화 열정… 손대는 작품마다 초특급 흥행


올봄 전 세계 극장가는 액션·판타지 대작 ‘어벤져스2’ 열풍으로 뜨거웠다. 아이는 물론 나이를 잊은 어른들도 영화 속 영웅 캐릭터에 푹 빠졌고, 직장 내에서도 한동안 단골 주제는 ‘어벤져스2’였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만화 속 캐릭터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인물, 바로 마블스튜디오의 최고경영자(CEO) 케빈 파이기다. 올해 42세의 파이기 CEO는 진취적인 사고방식과 대담함으로 마블 역사에 길이 남을 큰 획을 긋고 있다. 


◇남달랐던 영화 열정…거장들이 거친 대학 택한 ‘괴짜’


197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파이기는 어릴 때부터 마블의 만화를 보면서 자랐다. 파이기는 이미 10대에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영화는 나의 판타지이자 나의 탈출구”라고 말할 정도였다. 미래를 미리 경험한다는 소재로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백 투더 퓨처’는 파이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 파이기는 영화뿐만 아니라 마블 코믹북 속 영웅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 같은 관심은 영화 제작자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파이기의 할아버지는 미국 최장수 드라마 ‘가이딩 라이트’ ‘애즈 더 월드 턴즈’를 제작한 인물이다.


영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파이기의 진로도 결정했다. 파이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영화학과를 다녔다. 파이기는 졸업 축사를 통해 자신이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영화감독의 거장인) 조지 루카스, 조지 하워드, 로버트 저메키스가 모두 다녔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이기는 다른 학과를 택하라는 가족과 친구들의 권유를 다섯 차례에 걸쳐 모두 거절했는데, 그 이유가 거장들이 다녔던 곳이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파이기는 재난 영화 ‘볼케이노(1997년)’ ‘유브 갓 메일(1998년)’ 제작에 참여하면서 마침내 영화판에 입문했다. 


어린 나이에 현장에 뛰어든 파이기는 훗날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학생들에게 “‘거절’은 평범하게 발생하는 일”이라며 “이 같은 것을 일찍 배운다면 인내심과 저항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파이기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은 것이다.


◇만화 원작에 대한 애착·팬심을 아는 ‘쇼맨십’ 제작자 


파이기가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00년. 울버린 신드롬으로 히어로 영화의 돌풍을 예고한 ‘엑스맨1’ ‘엑스맨2’를 제작했던 로렌 슐러 도너의 비서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엑스맨 캐릭터는 마블이 탄생시킨 캐릭터이지만 20세기폭스가 1994년 판권을 사들였다. 파이기는 이후 마블의 전성기를 열었던 아비 아라드 전 마블 회장 겸 CEO의 눈에 띄어 아라드와 일을 하게 된다. 마블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07년, 미래가 촉망됐던 대학생 파이기는 마블 스튜디오의 CEO 자리에 앉았다. 


파이기는 CEO가 된 후 영화 한 편을 준비하면서 과감한 캐스팅을 시도했다. 바로 2008년 개봉했던 ‘아이언맨1’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주인공으로 뽑은 것.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때까지만 해도 액션·판타지 장르보다 드라마나 로맨스로 필모그래피를 쌓았던 배우였다. 여기에 미국 드라마 ‘뱀파이어 해결사’ ‘엔젤’ 등 방송가에서 활약하고 있던 시나리오 작가 조스 웨던도 영입했다. 아이언맨은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쓸었고, 이 연장선으로 만든 영웅군단 영화 ‘어벤져스1’ 역시 전 세계적으로 16억 달러(약 1조8000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당시 어벤져스의 흥행 성적은 ‘아바타’ ‘타이타닉’에 이은 역대 박스오피스 3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었다.


전문가들은 마블이 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파이기의 ‘쇼맨십’을 꼽았다. 파이기는 일찌감치 영화 팬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어벤져스의 레드카펫 행사를 할리우드의 유서 깊은 극장인 엘카피탄으로 정한 것도 이 같은 철학이 반영된 것. 당시 경쟁사인 DC엔터테인먼트와 워너브라더스가 영화 팬보다 평론가들에게 영화를 먼저 공개한 것과는 전혀 상반된 마케팅 전략을 펼쳐 팬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파이기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앞에는 서지 않는다. 그는 “내가 제작자여서 좋은 점은 내 시간의 99%를 무대 뒤에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수줍움이 많은 성격이라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만화 원작을 충실히 영상 속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파이기의 스타일도 마블의 전성기를 이끈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 파이기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엑스맨’ 제작에 참여했을 당시 한 임원이 캐릭터와 장면을 더 발전시킬 수 없냐고 고함을 쳤던 기억이 난다”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만화책을 읽고 있었고, 속으로 ‘만화책에 있는 장면 그대로만 만든다면 엄청날 것”이라고 되뇌곤 했다”고 회상했다. 원작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원칙주의가 곧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어진 것이다. 웨던은 2011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이기는 나의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들어 줬다”고 했다. 


최근 파이기는 공개석상에서 “마블은 어두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영화와 마블을 아끼는 파이기의 열정에 마블의 앞날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