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의 풍자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
커트 보네거트.
미국 최고의 풍자가, 휴머니스트, 소설가, 에세이스트 그리고 지성인…
블랙 유머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너무나 많다.
2007년 4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이 애석해하고 추앙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보네거트를 읽으면서, 나는 유머를 배웠다.
키득거리며, 땅을 치며, 떨어지는 배꼽을 부여잡으며,
(너무 웃겨서 터지는) 눈물을 훔쳐가며 커트 보네거트를 읽었다.
웃으면서 입술을 앙다물었다.
세상에 무릎 꿇지 않고, 세상을 비웃어주어야만
내가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 김중혁 (소설가)
그가 어떤 작가이기에 그럴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 그를 소개해보려 한다.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가족에서 성장한 커트 보네거트,
공부에 몰두하던 보네거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징집된 것이다.
그는 전선에서 낙오해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 갇힌다.
그러던 중에 연합군이 사흘 밤낮으로 소이탄을 퍼부어
십삼만 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했던 학살극을 본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난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 소방수, 영어교사, 자동차 영원사업 등을 전전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던 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1952년 첫 장편소설 <자동 피아노>를 출간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풍자’와 ‘전쟁’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풍자가 진하게 담긴 책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미국에서 손꼽히는 재벌 로즈워터 가문,
지금 후계자는 엘리엇 로즈워터.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골로 내려가 사람들의 말벗이 되어준다.
그러자 세상은 그를 미쳤다, 고 하고
악덕 변호사는 그의 돈을 뺏기 위해 사악한 음모를 꾸민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엇은 주정뱅이 백만장자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데…
돈에 관한 최고의 풍자소설, 그리고 익살스러움의 극치!
돈이 최고라고 불리던 시절, 인간이 하찮아지던 시절,
인간의 고귀함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모험담은,
곧 카타르시스였다.
전쟁의 아픔이 담긴 소설 <제5도살장>과 <마더 나이트>.
TIME이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에 뽑힌 <제5도살장>은
독일군 포로가 된 빌리의 이야기인데
사실상 보네거트의 삶이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드레스덴 폭격 사건을 목격했던 빌리는 전쟁이 끝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우주인들에게 납치된다.
우주인들은 왜 빌리는 납치했을까. 어떤 세계관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 세계관은 무엇일까?
전쟁이 지배하는 세계를 향한,
‘똥침’과 같은 세계관이다.
군수업자들이나 지배욕 강한 일당을 향한
시원스럽고도 날카로운 어퍼컷이기도 했다.
<마더 나이트>의 주인공 하워드 W. 캠벨 2세는 미국의 첩보원이다.
그는 첩보원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나치의 '선전'을 맡아 최선을 다하는데, 그의 공은 엄청났다.
그의 선전에 나치들은 맹렬하게 유대인을 공격하고 유색인을 죽여 나갔다.
그 유명한 악행에,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전범으로 체포된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첩보원이었기에 석방되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든다.
그는 어찌해야 할까. 그는 자신이 한 일들을 진심으로 반성하는데,
그를 둘러싼 사람들, 즉 스파이, 인종차별주의자 등이
다들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면서 하워드 W. 캠벨 2세를 이용하려 한다.
그 모습을 담은 <마더 나이트>는 세상을 비웃는 소설이다.
전쟁이 빚어낸 그 모든 인간의 위선과 야만성,
그리고 광기에 빠진 어떤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시원하게, 통쾌하게 비웃어준다.
그는 1997년 <타임 퀘이크>를 발표하면서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놔두지 않았다.
세계는 전쟁을 부르짖었고,
특히 미국은 ‘정의’를 앞세워 중동을 넘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2005년에 커트 보네거트가 돌아온다.
회고록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는 <나라 없는 사람>으로,
커트 보네거트는,
전쟁과 돈에 미친 세상을, 그리고 권력자들을 조롱한다.
“내 생각에,
지구의 면역 체계는 에이즈 그리고 신종 독감과 결핵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 <나라 없는 사람> 中에서
품격 있는 유머, 날선 재치…
<나라 없는 사람>은 커트 보네거트가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극점이었다.
이 책으로 얼마나 많은 위선자들이 ‘뜨금’ 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통쾌하다.
2007년 커트 보네거트가 떠난다.
그가 떠났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던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냥 울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커트 보네거트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정의와 평화, 사랑과 인간애다.
울고만 있기에는 그것들이 너무나 희미해져가고 있으니,
사람들은 눈물을 닦고 행동하게 된다.
커트 보네거트의 힘이었다.
<삼국지>에 보면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는 말이 나온다.
죽은 커트 보네거트도 그랬다.
그는 죽었지만,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위선자들을 쫓아냈다.
그의 소설과 에세이는 매순간 인용되며 그들을 경계하게 만들고 조롱했으며
그래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착하게 만들려고 했다.
커트 보네거트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앞으로는 어떨까?
그건 ‘신의 축복’이었다.
과장 같지만 과장이 아니다.
사실이다.
해외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커트 보네거트가 마니아적인 작가로 알려진 것 같아 아쉽다.
언제라도, 그 작가의 진면목이 알려지기를,
그래서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대한다. 출처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백 투 스쿨(Back to school)]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한 나이든 아버지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하여 때늦은 학창 생활을 누리며 겪게 되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데, 그렇게 대단한 걸작도 못되고 큰 인기를 모았던 화제작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런 대로 재미있고 웃기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특별히 뇌리에 남은 이유는 좀 다른 데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을 읽고 이에 대한 감상문을 써 오라는 리포트를 받는다. 이 아저씨는 돈 많은 부자일지는 몰라도 문학에 대해서는 꽝이었기 때문에, 꾀를 내어 작가 커트 보네거트에게 직접 리포트를 써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커트 보네거트가 까메오로 직접 출연하는데, 혹시 그가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궁금하다면 이 대목을 눈여겨보면 된다.) 그리하여 작가 자신이 직접 쓴 자기 작품에 대한 감상문이 완성되고, 주인공 아저씨는 이 리포트를 자신만만하게 제출하지만……. 이 리포트를 읽은 여교수 왈 "정말이지 형편없기 짝이 없는 감상문이다. 이 것을 쓴 사람은 커트 보네거트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함에 틀림없다." - 물론 웃자고 만든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커트 보네거트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단 그에 대해 자세히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영문학을 전공한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두 번 그의 작품을 읽고 평하는 기회를 갖게 되고, 어지간한 SF 독자들은 자신이 커트 보네거트의 열성적인 팬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는 듯 하다. 게다가 커트 보네거트는 이름 없는 SF 작가로 시작하여 미국 주류 문단의 리더로 인정받았다는 동화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일반적으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있는 SF 작가들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가 주류 문단의 인정을 받는 일이며, SF 잡지가 아닌 다른 고급 잡지에 당당히 작품을 싣는 것이라고 [골드]에서 피력한 바 있다.)
어두운 세상을 비웃는 블랙 유머로 컬트의 우두머리라는 별호를 얻었지만, 언제나 인간의 선량함과 따뜻함을 믿고 있는 커트 보네거트. 보수적인 미국 남부 도서관에서는 퇴출당할 정도로 신(神)을 비웃으면서도, 자신의 작품 속에 되도록 악인 등장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그런 작가 - 커트 보네거트는 이제 "현존하는 미국 작가 중 최고"라는 평을 듣는 위치에 올랐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이 작가의 책을 읽은 사람의 수는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말 번역본도 80년대부터 부지런히 나왔지만, 그 어떤 책도 재판 들어간 역사가 없으니…….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들이 갖는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다.
- SF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그 과학적인 근거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오직 작품 소재로 사용할 뿐이다. 작가는 자신의 과학 지식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과학소설을 쓸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SF 작가로 불리는 것 자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 매우 짤막짤막한 단문을 사용하면서도, 그 속에 배배 꼬아 놓은 풍자가 숨어 있어 쓴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커트 보네거트는 본질적으로 유머 작가이며, 실지로 마크 트웨인 이후 최고로 웃긴 소설을 쓰고 있다는 극찬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가 단문을 사용하는 이유는 "소설은 잘 읽혀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라는데, 너무 짧은 구절 속에 심층적이고 다양한 메시지를 숨겨 놓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아이러니를 가져오기도 한다.
- 그의 작품들에는 항상 본격 공포 소설도 따르지 못할 만큼 잔혹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이를 교묘하게 풍자하고 일상사와 다름없이 지나가는 말처럼 넘겨 버리기 때문에, 읽는 이가 이런 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작가가 진정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일상사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잔혹함'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 그의 작품 속에는 작가의 대변인이 직접 출연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전통적인 소설 문법을 무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같은 인물이 여러 작품들 속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도 연속성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주로 시리즈가 많은 SF에서는 일반적인 일이기도 하다.)
[제 5 도살장 (Slaughterhouse-Five)]
커트 보네거트가 평생을 두고 쓰고 싶어한 작품이자, 그의 명성을 확립한 걸작이 바로 [제 5 도살장]이다.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훌륭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의 작품들이 갖는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그것들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이 최상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는 셈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처음 소설가가 될 때부터 이 책을 쓰고 싶어했지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작가로서 완숙기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의 생각대로 [제 5 도살장]은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그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네거트 문학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천지를 제시함으로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그는 [제 5 도살장] 이후 이 작품을 능가하는 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인생과 작가로서의 운명을 결정한 '드리스덴 폭격'과 이로 인한 민간인 대학살을 다룬다. 전쟁과는 무관한 채로 2차 대전이 거의 끝날 무렵까지 아름답게 남아 있던 드리스덴은 연합군의 잘못된 작전 계획에 의하여 맹렬한 공중폭격을 당해야 했고,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의 두 배에 달하는 15만 5천명의 민간인이 생강과자 마냥 구워져 죽었으며 도시는 달 세계로 변화하였다. 당시 미군으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드리스덴의 도살장 지하 창고에 수감되어 있던 커트 보네거트는 이 무자비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직접 경험하였고, 때문에 그의 모든 작품 세계는 직간접적으로 '드리스덴 폭격'의 알레고리 안에 존재하게 된다.
커트 보네거트는 빌리 필그램이라는 사람을 대변인으로 삼아, 드리스덴 폭격의 충격으로 인해 제정신을 잃어버린 그의 인생을 여러 시간대를 넘나들며 묘사해 나간다. 많은 독자들이나 비평가들은 빌리 필그램이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그가 미쳐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실제로 그가 자신의 옛 추억과 경험을 현실과 혼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제 5 도살장]은 이런 식으로 빌리 필그램의 주장을 무시한 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로 읽어 버리면 매우 재미없는 책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 5 도살장]은 이미 SF가 아니다.) 시간의 속박을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그의 주장을 모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읽는 편이 훨씬 재미있고, 그가 트라팔마도어라는 외계의 행성으로 끌려가 동물원에 전시되어 있었다는 대목 또한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게 된다.
20세기엔 이론 물리학계에 혁명적인 개념이 잇달아 만들어 졌고, 순수 물리학을 위해 태어난 이론들은 처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철학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제 5 도살장]이 다층적으로 읽히면서 시사하는 이 같은 예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커트 보네거트는 시간의 연속성에 의해 존재가 결정된다는 것을 부정함으로서 '상대성 이론'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여 문학에 도입하고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엄청난 오독일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의 운명과 삶은 언제나 불확실한 상태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독자는 '불확실성의 원리'와 마주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인간이란 그 근원부터 모순에 찬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작가의 세계관은 괴델의 '불완정성의 원리'와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고, 작가는 세상의 모든 비극들이 이런 불완전한 인간의 손에 의해 벌어지긴 하지만 정작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박한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
[타이탄의 요정들 (The Sirens of Titan)]
일부 작가들, 특히 한 줄을 한 줄에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글을 쓰는 작가일수록, 소위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과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시되는 작품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후기의 5대 대작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지만, 정작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key)로 평가되는 것은 소품이라 할 수 있는 중편 [지하 생활자의 수기]이다. 제임스 조이스도 [율리시즈] 하나로 불멸의 작가가 되었지만,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먼저 집고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제 5 도살장]이 그의 대표작으로 지목되곤 하지만, 첫 장편 소설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봐 : 타이탄의 요정들]이 이러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타이탄의 요정들]은 지독하게 거칠고, 어지럽고, 단정치 못하고, 난삽한 아이디어가 끓어 넘치고 있는 작품이다. 풋내기 작가로 막 입문한 커트 보네거트의 미숙함이 곳곳에 난무하고 있고, 처음으로 도전한 장편 소설에 자신의 입담과 유머를 몰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한 흔적이 역력하다. 당연한 결과라 하겠지만, 덕택에 작품 주인공은 필요 이상의 고난을 감수해야 하고, 작위적인 결말에 의거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작품은 [제 5 도살장]보다는 더글라스 아담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더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이후 커트 보네거트의 문학적 특징을 결정짓는 모든 요소가 드러나 있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블랙 유머로 치장되어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현대인이 자신의 삶의 목표이자 가치관의 척도로 삼고 있는 것들 - 돈, 종교, 애정 등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려 한다.
주인공 맬러카이 칸스턴트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은, 자신이 아무런 노력 없이 손에 넣은 만큼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예수 대신 칸스턴트를 희생양으로 삼아 대중을 현혹시키려 하는 "전적으로 무관심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역시 대중의 천박하고 잔혹한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존재를 유지하려는 종교의 속성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작품 표제가 된 타이탄의 요정들 - 칸스턴트를 현혹시킨 아름다운 세 요정 아가씨들이 외계인 세일로가 취미 삼아 만들었던 진흙 인물상에 불과하다는 대목 역시 현대인의 비뚤어진 애정관을 단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커트 보네거트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가치라도 과연 인간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재고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타이탄의 요정들] 속에 묘사된 화성 이주민들의 삶은, 사람을 통제하고 그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나가려 하는 사회 조직이 개개인에게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책 속에 악인이라고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독자도 있지만, 자신의 헛된 즐거움을 위하여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럼푸우드는 분명히 악역이 아닐까? 지나치게 철저한 순수함만을 추구하던 비이, 지나친 물질적 풍요에 파묻혀 방종하고 타락된 삶을 살았던 칸스턴트, 시간 깔때기 곡선을 타고 여행을 다니며 인간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마음대로 주무르려 한 럼푸우드 -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불행 속에 몰아 넣었고, 때문에 이들은 비극의 주인공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커트 보네거트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고 있는 한,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을 비극으로 장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의 밤 (Mother Night)]
커트 보네거트가 [타이탄의 요정들]로 장편 창작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진 뒤 발표한 작품이 [태초의 밤]이다. 이 소설은 SF와 아무 상관없으며 작가의 유머도 되도록 자제되어 있는 깔끔한 작품이어서, 마치 다른 사람의 작품인 듯한 느낌도 준다. 그렇지만 이 작품 역시 커트 보네거트가 끊임없이 탐구하는 '인간의 삶에 내재한 부조리'가 기본 축을 이루고 있다.
[태초의 밤]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고독이다. "Mother Night"라는 표제는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 의해 사용된 것이라고 하는데, 작품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이 제목의 의미는 자세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파우스트]에 의하면…… 태초에는 모든 것이 아주 캄캄한 밤이었으며 그 어둠 속에서 빛이 창조되면서 세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밤은 모든 것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나온 빛이 도리어 어둠을 상대로 싸우려 하는데, 이는 근원적으로 부조리한 일이다. 때문에 메피스토펠레스는 언젠가는 결국 세상이 멸망하고 어둠의 세계가 도래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파우스트를 유혹한다. 커트 보네거트는 인간의 고독을 절절하게 그려 나가면서, 그 고독은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차 있는 어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하워드 W. 캠벨을 비롯하여 다수의 스파이들이 등장하고, 소위 '스파이 소설'이라 불릴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이 스파이들의 박진감 넘치는 활약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뚤어진 세계관과 병든 마음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벌어진 잔혹한 대학살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탐구해 나감으로써, 이러한 비극을 낳는 근본 원인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한 어둠 때문임을 추적해 가고 있다. 또한 백인 우월주의 집단이나 반 유태 조직 멤버들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어둠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으며, 이 때문에 대학살은 얼마든지 다시 되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태초의 밤]은 여러 면에서 [제 5 도살장]의 서곡이라 할 만 하다. 실제로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이 책의 서문에서 '드리스덴 폭격'을 언급하고 있고, 이 것은 [제 5 도살장]으로 다시 자세하게 다루어지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의 주인공 하워드 W. 캠벨은 [제 5도살장]에서 포로로 잡힌 미군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미국 출신의 나치로 등장하기도 한다. 캠벨은 미국이 독일군의 내부에 심어 놓은 스파이였지만, 전쟁 끝나자 나치로 몰려 도망 다니며 숨어 지내는 신세가 된다. 그는 열성적으로 나치를 도우며 미국의 스파이 노릇을 했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절대 고독이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뿐이다. [태초의 밤]과 [제 5도살장]은 모두 인간사에 만연한 비극의 뿌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작품이고, 그래서 읽고 받아들이는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실뜨기 놀이 (Cat's cradle)]
일반적으로 커트 보네거트의 과학 소설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히는 작품이 [실뜨기 놀이]이다. 이 책은 '아이스-나인'이라는 한 과학자의 발명품과 '보코노니즘'이라는 산 로렌조의 새로운 종교가 양대 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아이스-나인'을 둘러싼 이야기는 과학기술 문명의 맹목성과 인간의 미련함,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보코노니즘은 작가가 문명 세계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풍자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도구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저널리스트 조나(Jonah)가 호닉커 박사를 취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괴짜 과학자 호닉커는 해병대 장성의 의뢰로 세상의 모든 진흙을 없앨 수 있는 '아이스-나인'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지만, 이를 제대로 발표하기 전에 급사하고 만다. 다분히 비정상적인 호닉커의 세 자녀는 멋대로 '아이스-나인'을 나누어 가져가지만, 결국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지구는 꽁꽁 얼어붙고 인류는 멸망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우매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고, 때문에 파멸을 막지 못한 채 일이 흘러가는 대로 방치할 뿐이다. 과연 [실뜨기 놀이]를 단순히 핵무기 개발 경쟁을 다룬 우화라고 보아야 할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유사한 구석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끝에 가서 지구가 멸망해 버리는 것도 똑같긴 하다. 또한 세계 열강들이 '아이스-나인'을 전쟁 무기로 보유하기 위해 호닉커의 덜떨어진 세 자녀에게 스파이를 보낸다는 대목은 어리석고 이기적인 인간들의 속내를 풍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그렇지만 작품을 조금 더 뜯어보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쟁'이라는 것이 한층 복잡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 세계를 관점을 조금 달리해 생각해 보면, 그는 자신의 여러 작품 속에서 전쟁이 갖는 다각적인 의미를 계속 다른 형태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부조리한 인간 세계의 표상으로 전쟁을 생각해 왔고, 언제나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전쟁의 인과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소설이라는 방법론을 택했다 하여도 무방하다. [실뜨기 놀이]는 인간의 우매함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를 즉각 멸망시킬 수 있는 물질이 개발될 정도로 과학기술이 기형적으로 발달해 버린 현대 사회가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위태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보코노니즘을 통해 한층 더 심도 깊은 풍자를 시도한다. 많은 사람들이 커트 보네거트가 창조한 인물 중 가장 매력적이라고 평하는 보코논은 "엉터리를 지향하는 종교" 보코노니즘을 창시한다. 보코노니즘은 처음부터 모든 종교가 거짓에 기초하고 있음을 선포하면서, 종교의 실용성은 그 것이 모두 거짓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다분히 역설적인 대목이다. 근본적으로 문명이라는 것이 모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거짓과 탐욕에 매몰될 수 밖에 없으며, 세상 만사가 거짓임은 물론 심지어 인간의 양심을 신(神)에 의지해 치유하고자 하는 종교마저도 거짓된 것이라는 얘기가 되므로…….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이 대개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소설적 구성에는 별로 손이 가지 않은 작품이지만, 세상의 보편적 가치관에 메스를 들이대는 날카로움이 다른 허물을 모두 덥고도 남음이 있는 그런 책이다.
[갈라파고스 (Galapagos)]
커트 보네거트는 전쟁이 갖는 부조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부터 현대 사회가 직면한 인구 과밀 사태와 환경 오염 문제, 그리고 이러한 모든 말썽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생식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왔다. 단편 [빅 스페이스 퍽 (Big space fuck)], [멍키 하우스에 오세요 (Welcome to the Monkey House)]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으며, [갈라파고스]는 이 같은 계열의 모든 작품들을 집대성하고자 하는 의욕이 엿보이는 장편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다루어 온 테마를 보다 심도 있게 파헤치고 있는 만큼, 더욱 예리하고 가차없는 풍자가 빛을 발하고 있다.
환경 오염과 끊임없는 항생제의 진보 덕택에 인류의 난자를 갉아먹는 새로운 미생물이 나타난다. (사실 이 부분은 [빅 스페이스 퍽]에서 공해로 인해 더 이상 물 속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된 장어들이 육지로 올라와 인간을 마구 잡아먹기 시작한다는 내용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지구상의 모든 여성들은 불임이 되어 버리고, 이로 인하여 더 이상의 생식이 불가능해 진 인류는 자연히 멸망해 버리지만, 때마침 갈라파고스 제도에 표류한 생존자들이 선조가 되어 새로운 인류가 출현하게 된다. 갈라파고스 군도는 외부 세계와는 완벽하게 고립된 채로 동물들의 진화가 진행되는 곳이므로, 이 곳에 유람 여행을 떠났다가 표류한 사람들만이 전 세계를 휩쓴 미증유의 재앙을 비켜 갈 수 있었다는 전개이다.
이 작품은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이 관점에 따라 얼마나 시시한 것일 수 있는지 통렬하게 폭로하고 있다. 100만년 후의 보다 진화된 인류와 비교해 볼 때, 현대인은 지나치게 큰 뇌를 지니고 있고, 그 '커다란 뇌'가 쓸 데 없는 고민 거리를 안겨줄 따름이라는 얘기는 처음엔 웃어넘길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렇지만 '커다란 뇌'를 지닌 잘난 인류가 부지런히 자연을 파괴함과 동시에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으면서도, 이로 인해 벌어질 파국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라는 대목에 이르면 웃음 속에 뼈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하면 100만년 후의 인류는 모든 문명과 지혜를 잃었지만, 오직 생존에 관련된 본능을 제외하고는 모든 악한 인성이 사라진 채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바람직하게(?) 진화된 인류의 모습은, 손과 발이 퇴화되어 물살을 가르는 지느러미와 물갈퀴가 되어 버렸고, 두뇌가 대단히 작아졌으며 이를 담은 두개골 역시 유선형으로 변한 털복숭이이다.
과연 현대 문명은 인간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되묻고 있는 커트 보네거트 - 인간 세상의 딜레마를 다루는 블랙 유머가 그의 장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이 작품은,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외 단편들]
커트 보네거트는 잡지에 단편을 파는 것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던 사람인 만큼, 상당수의 단편 소설을 써 왔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무시한 채로 그의 문학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책은 단편집 [자동 피아노]였고, 단편집 [멍키 하우스로 오세요]가 미국 대학가에서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명성이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것만 보아도 단편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다.
그의 단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해리슨 버거론]에서는 인간의 두뇌에 모종의 장치를 달아서 바보같이 사고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고, 전 인류의 하향 평준화를 이룬 디스토피아가 그려지고 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이나 우수한 두뇌를 소유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결코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든 이유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이 결국은 세상의 불평등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완벽한 평등을 실현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바보처럼 TV만 지켜보며 살아가고, 그나마 TV에 나오는 장면 역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 심지어는 자기 자식의 죽음마저도. 이 대목은 앤소니 버제스의 [1985년]에서 백치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딸이 오직 TV만 보면서 세월을 보내고, 자기 어머니의 죽음보다 TV 만화 영화가 더 중요하다며 떼를 쓰는 장면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커트 보네거트는 이 작품을 통해 '평등'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묻고 있고, 사회가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뛰어난 두뇌와 육체의 소유자 해리슨 버거론이 "나는 황제다"라고 큰소리 치다가 총 한방에 죽어 나자빠지는 것은 너무 성의 없는 결말이 아닌가 싶다.
획일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강요하는 세상 이야기는 [멍키 하우스에 오세요]에서 더욱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인구 폭발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늙지도 않은 채로 장수를 누릴 수 있게 되고, 인구가 계속 증가하여 지구가 포화 상태를 넘겨 버리자 소위 '도덕'을 잣대로 이를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성욕을 마비시키는 약이 개발되고, 이를 이용하여 완벽한 도덕 사회가 이룩되기에 이른다. 이 사회의 사람들은 모든 생산이 자동화되어 집에서 TV만 보며 태평스럽게 살다가, 결국 무료함을 느끼면 안락사를 관장하는 자살 센터로 찾아가 고통 없는 죽음을 청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이다.
무기력이 지배하는 이러한 사회에 반기를 든 '헐레헐레 인간' 빌리가 자살 센터 도우미들을 강간하고 다니는 것은 그가 악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납치되어 강간당한 여성들은 비로소 삶의 의미를 재고하게 되고, 모두가 '헐레헐레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제 아무리 도덕율이 중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기력을 강요하는 이상 그 사회 자체가 악(惡)이기 때문이다.
인구 폭발과 더불어 공해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를 문제시한 [빅 스페이스 퍽] 역시 그냥 넘어가기엔 여운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성기 모양을 한 우주선 속에 인류의 씨앗을 태워 우주로 보내려는 시도가 다루어진다. 인간들은 더 이상의 공간이라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지경으로 번성하여 지구 전체를 실컷 오염시켜 놓고도, 이에 만족하지 못한 채 우주까지 넘보려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우주선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기도 전에, 공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장어들이 육지로 올라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과연 이 작품의 결말을 인간들이 장어에게 먹혀 전멸해 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작가는 공해로 인해 지구가 생명이 제대로 살 수 없는 행성으로 변해 가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으면서, 당장 목숨이 달려 있는 환경 문제는 예산 타령이나 하면서 무시하고, 그 대신 우주 개발 등에 거액을 쏟아 부으며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SF는 아니지만, 그의 단편 소설 중에서 전쟁과 군대의 본질을 파헤친 작품으로는 [모두 왕의 말들]이 유명하다. 이 작품은 포로로 잡힌 고급 장교와 그의 가족, 그리고 부하들이 체스의 말이 되어 생사를 건 게임을 벌이는 시니컬한 아이디어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식까지 게임의 승리를 위한 미끼로 써먹는 이 체스 게임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군대 논리의 허구성, 그리고 병사들을 오직 "승리를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전쟁의 잔혹무도한 속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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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보네거트의 장편소설 "실뜨기 요람(Cat's Cradle)"은 국내에는 "고양이 요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습니다. Cat's Cradle을 직역하면 고양이 요람이 되지만 이 말은 손가락으로 실을 꼬아 여러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실뜨기 요람'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다 하겠습니다.
Mother Night은 '태초의 밤'과 '내 영혼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번역되었습니다.
- 김태영(tai0@chollian.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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