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김부선. 가장 시크했던 3대 애마부인

가/ㅣ 2011. 6. 11. 18:45 Posted by 로드365


[그 배우의 섹시그래피] ‘가장 시크했던 애마’ 김부선
안소영 오수비 김부선 유혜리 이화란 진주희 소비아 강승미…. '애마'라는 이름을 가졌던 수많은 '부인'들이 있지만 가장 강렬하면서도 매혹적인 그녀를 꼽으라면 조심스레 김부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양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마스크, 모델 특유의 시크한 느낌, 깊은 눈망울의 여배우. 아마도 오수미와 함께 1980년대의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 배우가 아닐까 싶다. 

1980년대에 '애마의 시대'가 열렸을 때 애마라는 역할은 당대 최고의 섹시한 육체에 허락되던 영예였다. 안소영과 오수비에 이어 '3대 애마' 자리에 등극한 김부선은, 그런데 조금은 달랐다. 169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35-23-35라는 완벽한 몸매의 여배우는 남편의 외도를 참으며 외로운 몸부림으로 욕망을 다스리기보다는 훨훨 날아갈 것 같은 날렵한 이미지였다. 

1963년에 제주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부선(본명 김근희)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모델 생활을 시작한다. 이때 그녀를 이끌어 준 사람은 고향 선배이자 당대 최고의 모델이었던 윤영실. 여배우 오수미(본명 윤영희)의 동생이었으며 이후 의문의 사건으로 실종되었고 아직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1982년부터 시작된 모델 생활은 승승장구했고 패션 디자이너 하용수는 단번에 그녀를 메인 무대에 올렸다. 첫 영화는 <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 > (1983). < 여자는 안개처럼 속삭인다 > (1982)의 윤영실에 이어 두 번째 모델 출신 배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여자는 남자를 쏘았다 > (1983)는 이어 세 번째 영화인 < 애마부인 3 > (1985)는 '염해리'로 이름까지 바꿔가며 도전했던 영화로 그녀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렸으며 TV로 씨름 중계를 보면서 묘하게 몸을 뒤틀며 마스터베이션을 하던 장면은 애마 시리즈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 시기 그녀는 연극 < 에쿠우스 > 에서 최재성과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오수미와 함께한 < 토요일은 밤이 없다 > (1986)에서 매끈한 몸매로 율동미를 과시하며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세간의 입에 올랐고 싱글맘의 힘든 생활도 시작된다. 1980년대의 유망주였던 그녀의 1990년대 필모그래피는 빈약해졌고 역할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그 성격도 훨씬 더 협소해졌다. 이른바 '마담 이미지'는 어느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 < 게임의 법칙 > (1994) < 너에게 나를 보낸다 > (1994) < 리허설 > (1995) < 비트 > (1997)에서 그녀에게 허락된 공간은 술집 카운터뿐이었다. 

혹은 그녀는 부정한 여인이었다. < 삼인조 > (1997)에선 남편 몰래 다른 남자를 불러들였고 < h > (2002)에선 얽혀 있는 사연 속에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관록의 여배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 말죽거리 잔혹사 > (2004)는 한 여배우가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가지게 된 임팩트가 강하게 어필했던 작품. 자신의 청춘을 사로잡았던 여배우로 심혜진과 김부선을 꼽던 유하 감독은 분식집의 인심 좋은 글래머 주인아줌마 역을 김부선에게 맡겼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발정기 고등학생들의 싱싱한 육체를 탐하는 농익은 여인으로 등장해, 현수(권상우 분)가 떡볶이를 먹고 있을 때 옆에서 맥주 한 잔 걸치며 말을 던진다. "한 잔… 할래?"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무슨 고민 있어? 여자친구랑 잘 안 돼?" 마지막 멘트가 이어진다. "또래 여자애들은 남자를 잘 몰라서 그래" 그리고, 몸을 밀착시킨다. 

이후 김부선은 짧은 봄날을 즐긴다. < 인어공주 > (2004)에선 일상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었고, 드라마 < 불새 > (2004)에선 서문수(박근형)의 아내 역을 맡아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2004) < 친절한 금자씨 > (2005) < 너는 내 운명 > (2005)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2006) 등 흥행작에 연달아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외적으로는 대마초 합법화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어느덧 40대 후반이 된 김부선. 사연 많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한참 연기력에 물이 올랐던 30대엔 고정된 이미지로 소모되었고 충무로가 그녀에게 요구한 건 오로지 퇴폐미였다. 그녀에게 존재했던 왠지 모를 해방감과 감수성 풍부한 표정은 그렇게 묻혀갔으며, 시크한 느낌도 그 색이 바래졌다. 요즘은 활동이 뜸한 그녀. 하지만 언제 갑자기 카리스마 강한 목소리로 들이닥칠지 모른다. 딸인 이미소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일요신문 | 2010.08.19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