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4.11 / 윤혜정 기자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인간을 변혁시킬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가능성은 테크놀로지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녀는 그러한 의미에서 테크놀로지가 탄생시킨 새로운 인간이며 새로운 시대의 이브다. 다만 그 소녀가 신의 모습일지 악마의 모습일지는 내가 단정 지을 수 없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저패니메이션의 교주'라 불리는 오시이 마모루의 95년작 <공각기동대>가 드디어 한국 관객을 찾는다. 7년의 세월 동안 국내 극장에 한번 내걸리지 못한 채 복사판 신세로 대학가를 전전하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이 시대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파멸을 뜻하는 것인가. "우리는 핸드폰 등 일상적으로 기계를 사용한다. 기계와 인간을 따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의외로 간단명료하게 해명하던 오시이 마모루, 그러나 한편에서는 "인간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미래를 믿지 않는다"는 폭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약간의 힌트가 될까. 헤맬 필요 없다. 조금 늦었지만 오시이 마모루가 FILM2.0에 친필 싸인과 함께 긴 의견을 보내왔다. 오시이 마모루가 생각하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그리고 부조리한 세상과 영화에 대한 단상.
작품은 대부분 열린 결말로 끝나고 난해하다는 평이 많다. 스크린을 통해 본 <공각기동대> 역시 그랬다.
늘 듣는 소리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나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내 영화가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그 답을 찾기 위해 작품을 만든다. 나의 경우 아무리 봐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오히려 세상에 대한 비전을 보여준다. 인간과 인생, 세상에 대해. 이러한 하고 싶은 얘기들은 상황에 따라 생겼다 없어지곤 한다. 그리고 내 영화는 보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끼면 한결 보기 쉬워질 것이다.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에 어떤 매력을 느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됐나.
<블랙매직> <애플시드> <드미니온> 등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 중 <공각기동대>는 가장 이해하기 쉽고 오락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실제 내가 이 작품의 연출을 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공각기동대>는 제작사가 연출을 요청한 작품이었고,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일본 사회에 대한 고찰이 나타나는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손을 거친 <인랑>이나 지난해 개봉했던 <아바론>이 나의 세계관과 더욱 가까운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은 원작보다 쿠사나기의 존재가 더욱 우울하게 두드러진다는 의견이 많다. 원작과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
모두 <공각기동대>가 어렵다고 하는데 난 사실 원작 중 관객들이 가장 즐겁고 흥미롭게 느낄 요소들을 특히 부각시켰다. 원작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는 얘기다. 원작의 난해함을 덜어내고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처음부터 작정했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인간과 기계에 대한 주제를 부각시키고 싶었다. 특히 질문처럼 쿠사나기의 자아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에 주제를 담아냈다. 원작에 등장하는 후치코마 등 중요한 캐릭터의 잔가지를 쳐내고 쿠사나기에만 집중한 것도 관객들의 공감과 이해를 돕기 위함이었다.
인형사의 존재도 특이하다.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났지만 생명체가 되고 싶어하는 인형사는 진화의 위기에 놓인 인간의 모습과 인간 이후의 대안적인 생명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당신은 쿠사나기의 모습을 한 소녀가 인간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사람은 무엇에 의해 변화한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고차원적인 존재로 진화하는지 그 반대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동구권과 구소련의 붕괴는 이데올로기의 장대한 실험이 결국 실패로 끝났음을 증명했다. 또한 냉전 종결 후 세계는 또다시 종교와 민족주의의 망령으로 의해 지배되고 있다. 종교, 미신, 이데올로기, 정치, 철학 중 과연 무엇이 인간을 변하게 하고 구원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인간을 변혁시킬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가능성은 테크놀로지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녀는 그러한 의미에서 테크놀로지가 탄생시킨 새로운 인간이며 새로운 시대의 이브다. 다만 그 소녀가 신의 모습일지 악마의 모습일지는 내가 단정 지을 수 없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공각기동대>를 비롯한 당신의 작품에는 늘 기계중심사회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와 맞먹는 기계 시대에 대한 전망을 풀어 놓았다. 당신은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공각기동대>는 곧 ‘기계와 인간의 조화’에 대한 얘기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인간과 기계는 서로 어떤 점이 다른가'가 아닌 '인간과 기계는 어디까지 같은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많은 것을 탄생시켰지만 그렇게 생겨난 모든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일 뿐이다. 계속해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양산해 가며 더욱 정밀해지기 위해 경쟁해 온 것이다. 기계도 예외일 수 없다. 기계라는 것은 하나의 인간이고, 인간도 또한 기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기계야 말로 정확하게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다. 일본에는 “자신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데 거울을 떨어 뜨려 무엇하리”라는 속담이 있다. 이미 우리는 다양한 기술에 의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여러분도 나도 기계의 일부이고 사이보그이다. 여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계와 같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피를 통하게 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천사의 알> <공각기동대> 등 당신의 작품에는 신화의 모티브가 보인다. 쿠사나기가 마지막 전투를 치르는 박물관 벽에는 ‘세계수’라는 나무가 새겨져 있다. 또한 쿠사나기의 모습은 일본의 창세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닮아 있다.
마지막 결전의 장소에 신화의 모티브를 선택한 이유는 인터넷이 갖는 구조가 신화의 범신론적인 세계관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주인공 쿠사나기라는 이름 역시 이런 의미이다. <패트레이버 1>에서 방주를 탄 주인공의 이름이 노아였던 것과 마찬가지다. 신화의 개념은 혼돈스러운 세계관과 비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런 연상과 조합은 나의 작품활동에 있어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작업이다.
전작들에서 도쿄를 배경으로 일본 사회를 그렸는데, <공각기동대>는 무대를 옮긴 것 같다.
도쿄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어렸을 때 봤던 풍경은 다 사라졌다. 같이 살던 개도 죽었기 때문에 도쿄에서 살 이유도 없어졌다. 그리고 그 삭막한 곳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이유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홍콩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처음부터 특정한 곳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그 곳은 정체 불명의 가상도시였다.
<공각기동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라든지 메시지는 없다. 다만 내가 보는 세계와 인간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 역시 주입하고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내가 바라보는 현실이 그대로 머리에, 마음에 각인되길 바란다. 영화 감독이란 세계를 영화처럼 바라보는 사람이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도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인랑> 등 당신의 작품 대부분은 일본을 향한 비판의식이 강하다.
일본은 평온하고 전쟁도 없는 곳이라고 배웠지만 실상은 달랐다. 비판의식이라기 보다는 전후의 가식적인 일본, 특히 상징적으로는 도쿄를 향한 증오 그 자체였다.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야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문제는 비판도 아닌 증오에서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는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대안을 찾지는 못했다. 특히 <패트레이버 2>는 증오에서 정지된 작품이다. 이는 곧 나 자신에게는 심각한 전환기가 필요하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 답을 찾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다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는가.
없다. 지난 10년간 할리우드 영화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 어떤 영화든 다 똑같다.
<아바론> 이전에도 꾸준히 실사 영화 작업도 함께 해 오고 있다. 이렇게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오가며 병행하는 이유는?
내가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연출부로 영화 인생을 시작한 것도 한가지 이유가 된다. 예전에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으면 애니메이션이 불편하고 일반 실사영화를 하면 또 그게 귀찮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내가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라, 실사영화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하고 있다고들 한다. 반은 틀렸고 반은 맞는 말이다. 사실 실사와 애니메이션 두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모두 내가 납득할만한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과도기의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내가 생각하고 있는 영화와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형식일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다른 수단이 없으므로 그때 그때의 기획에 맞춰 장르를 오가고 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이는 곧 (정말 유감스럽지만) 나 조차도 어느쪽에서도 어중간한 이방인이라는 얘기다.
당신으로 하여금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를 만들도록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은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큰 이유겠지. 또한 아직까지는 영화일 이상으로 재미있는 일을 만나지 못했다. 한 때 영화가 세상과의 싸움을 할 수 있는 긴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그 정도의 에너지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공각기동대>도 젊을 때의 치열한 작업과 고민에 비하면 아주 쉽고 간단한 작업이었다. 현장 스탭들이 많이 도와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7년 전 만들어졌던 <공각기동대>를 보면서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당신의 예견이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당신이 작업 중인
<공각기동대>는 95년부터 한국의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해 왔다. 한국의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난 한국의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영화 전면 개방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개방이 된다면 한국 정부가 우려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모든 것이 질풍처럼 밀어닥칠 것이다. 일본에도 보기에 민망한 수준 낮은 작품들이 많으니까. 그렇지만 소수 잘 만들어진 작품들은 대부분의 평작이나 그 이하의 작품에 힘을 받고 있다. 넓은 광야없이 산이 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않는가. 현재 한국 관객들은 몇몇 선택 받은 수작만을 만나고 있다. 형편없는 일본 영화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스스로 수작을 골라내는 즐거움도 관객들의 몫이다. 빛 보지 못한채 알려지지 않은 수작도 많고. 나 자신도 그런 형편 없는 작품들을 즐겨 본다. 그것도 재미있으니까.
요즘 당신의 일상 중 가장 즐거운 일과 괴로운 일은 무엇인가.
난 강아지와 함께 잘 때가 가장 행복하다. 다른 행복은 없다. 영화 때문에 집을 떠나 도쿄에 머물고 있는 지금은 정말 괴로운 시간이다. 가능한 한 빨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요즘은 그 날만 기다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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