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더 지켜보자구요. 우기자
'동지' 386 대신 오세훈에게 표를 던진다
[우석훈 칼럼] 서울시 매입 임대주택은 유쾌한 변화의 서곡
우석훈(wasang) 기자
'서울시는 복마전'이라는 말은 고건이 했던 말이다. 그러나 지방 관공서의 세계를 보고 나면 서울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지방에서는 지자체장이 과도하게 인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공무원 혼자 잘 해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앙부처가 깨끗하고 그 다음이 서울시고 지방으로 가면 손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보통의 평가이다.
중앙정부는 법률을 통해서 지방정부를 규제하고, 지방정부는 어떻게든 정부 규제를 뚫고 뭔가 벌이려고 한다는 약간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법률과 조례 사이의 위임관계, 그리고 각 지자체와 중앙정부 사이의 갈등을 보면 90% 이상은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학교급식의 경우처럼 지자체에서 자신들의 예산으로 직접 학생들의 급식에 보조금을 주겠다는 학교급식조례의 경우처럼 행자부가 나서서 "그건 안 돼"라고 말하면서 재판을 걸어버린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시와 중앙정부 사이의 관계만을 놓고 보면, 고건 시절의 서울시는 중앙부처인 건설교통부보다는 얌전했고, 이명박의 서울시는 초기에는 건교부보다 한 술 더 떴다. 환경부가 약간 말려보려고 했지만, 불도저처럼 이명박은 질주했다.
그가 계획한 25개 뉴타운 중은 많은 경우 말도 안 되는 사업이었다. 기획예산처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피하기 위해서 거의 편법에 가깝게 예산을 배정하고 사업계획을 세우다 보니 기형적 사업구조가 되었다.
그러나 후기가 되면서 대선을 의식한 것인지 이명박의 서울시도 조금 얌전해졌다. 송파구, 강남구 그리고 성남시는 서울공항을 어떻게든 내보내고 아파트촌을 설치하고 싶어하는데, 이걸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공항 내보내고 개발하자'고 생난리 부르스를 쳤지만, 이명박이 반대의견을 명확히 하면서 조금 잠잠해졌다.
올림픽 패밀리 아파트와 송파구청이 가락시장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싶어하지만, 이것도 이명박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송파구 입장으로 보면 어정쩡한 신도시보다 훨씬 이문이 남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국가 물류시스템과 지역생태라는 관점에서 꼭 개발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런 어정쩡한 상태에서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를 맡게 되었다. 녹색시장을 내세운 입과는 달리 뉴타운 2배를 공약으로 내건 오세훈은 선거 당시 상당한 개발주의 공약들을 내세웠다. 후기 '온건해진 이명박'보다는 초기 '무섭던 이명박'을 계승했다.
똑같이 '개혁'을 내걸었던 노무현과 오세훈을 비교해보면, '리더십'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끄럽고 요란했다. 그리고 오세훈은 조용했다.
큰 소문 없이 몇 달이 지났다. 6개월이 지났는데, 과연 지금의 서울시가 이명박 시절의 그 기세등등하던 서울시가 맞는지 어리둥절할 정도이다. 이건 리더십의 차이라는 말 외에는 잘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저 오세훈이 내가 알던 오세훈 맞나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 뒤 서울시가 "관할 사업에 대해 원가공개를 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싶었다. 서울시가 "힘닿는 범위 내에서 후분양제를 실시한다"고 했을 때에도 상당히 정치적 제스츄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쁘게 해석하면 '포퓰리즘'으로 볼 만한 일이었다. 자신이 주워담을 수 있을 수 있는 수준에서 정책 기조를 하나씩 바꾸어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이명박 전 시장처럼 "무조건 내 임기 중에"라는 것이 반복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가구주택에 대한 매입 임대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 서울시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서울시가 맞는가' '저 오세훈이 내가 과거에 알던 오세훈이 맞는가'라고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세훈 시장은 날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꽤 오래 전부터 지척거리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가 국회의원였던 시절 산업자원위에 정부 답변서를 만들고, 위원실에 자료를 들고 설명하러 가거나 예산과 같은 일들을 위해서 부탁하러 가야하는 것이 내가 하던 업무였다.
정책의 눈으로 본다면 '매입 임대주택'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다가구주택을 사들여 저가로 임대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예산을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오 시장이 처음 하는 제도도 아니다. 수년 전부터 서울시에서는 이런 실험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고 말은 그렇게 붙이지는 않았어도, 시범사업 규모 정도를 가지고 있던 일이었다.
이번 경우에도 앞으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발표된 계획이 없기 때문에 성공 여부가 아직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주택정책과 공간정책이 만약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후대에 한국의 주택정책사가 집필된다면 분명히 주택정책사 한 페이지 이상은 자세하게 기록될 만한 큰 사건이다.
중산층에게도 극빈층에도 도움 안 되는 노무현표 국민임대주택
가장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거주권을 위해서 꼭 집을 지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라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것이 '공공임대주택' 개념이다.
집을 마련하는 데는 지어진 것을 사들이는 방법과 새로 짓는 방법이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집이란 당연히 짓는 것'이라는 철학 하에 전면적인 건설경기 진작의 일환으로 '국민임대주택' 개념을 정리하고 그에 맞춰 법규를 정비했다.
그러나 너무 비싼 현재의 국민임대주택은 실제 주거권의 보장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걸 노 대통령은 중산층 정책으로 이해했는데, 현실적으로는 중산층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서민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주거권 보장이 필요한 극빈자층에게는 정말 아무 도움 안 되는 이상한 정책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정부가 보조해준다고 해도 건설사에게도 잘 이윤이 나지 않으니 건설사도 싫어하고, 이런 건설사가 국민임대주택을 지을 수 있게 해준다고 분양가를 올리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혜택들을 주다보니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고급주택이 비버리힐스처럼 마치 '그들만의 리그'가 되든 아니면 매일 선물시장 가격이 신문에 실리는 유가증권처럼 취급되든, 사실 일반 국민들은 큰 상관할 바 없다. 현재의 골프장 회원권이 유가증권처럼 거래되고 있어도 이게 국민들과 이해관계가 별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국민임대주택이라는 매개가 중간에 끼면서 토공과 주공이 집장사하는 것을 오히려 정부가 주도하면서 현재의 주택정책이 온통 난리가 나게 되었다. 이 와중에도 국민주거권과는 아무 상관없는 세금이 물흐르듯 세고 있던 셈이다.
이런 노무현의 주택정책과 오세훈의 매입임대주택은 정반대에 서 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는 첫번째 '터닝 포인트'를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금 제시한 것이다.
건설에서 자유로운 첫번째 정치인
공공주택 정책과 같이 꼭 집을 짓거나 소유하지 않더라도 주거권 문제를 풀 수 있는 일련의 패키지들이 영국이나 독일과 같은 곳에서는 실제로 작동하고, 우리만큼이나 땅도 좁은 유럽 국가들이 소위 '1차 주거권' 문제들을 나름대로 해결하였다.
물론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공개적으로 이렇게 새로운 방향에 대해서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변화이자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주거권에 대한 적절한 보장없이 아파트만 기계적으로 지어대서는 주택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수요를 훨씬 넘어서는 과잉공급이 진행된다면 잠깐 가능하겠지만, 현재의 분양제도 하에서는 미분양이 속출할 것이다. 이런 경우 정책자금 지원과 다가구주택자 세제혜택 같은 걸 통해서 다시 미봉책을 쓸 수밖에 없고, 빈민들은 물론 중산층에게도 골치아픈 폭등과 하락이 주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다가구주택 2000~3000개를 매입한다고 해서 천만이 넘게 사는 서울시에서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린벨트를 헐면서 새로 비싼 공공임대를 짓고 있는 것보다는 나은, 새로운 유형의 주택정책 흐름을 만들 수는 있다. 그래서 이 흐름은 소중하다.
그러나 진짜로 오세훈 시장의 이러한 선택이 유쾌한 이유는 따로 있다. 노태우 대통령 이후로 건설업체와 늘 환상의 호흡을 맞추던 건설관료로부터 자유로워진 첫번째 정치임인을 선언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도 스스로 건설자본의 손을 잡고 국책공사의 시대를 활짝 열어 제꼈다. 그가 그럴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다.
건설정책과 국토정책은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과도하게 정부가 토목공사를 만들어내고 이를 동력으로 경기를 진작하려는 경향이 있다. 호황이면 돈이 남는다고 지어대고 불황이면 경기 살린다고 지어대면서 20년을 버텨왔다. 사회적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적정 수준'의 공사 규모라는 것은 교과서에만 존재하지 현실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젊은 386 정치인들도 국회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지역구에 사업 따준다고 하면서 불과 1년 만에 '건설정치인'이 되어버렸고, 혹시라도 지역에 걸친 국책사업에 반대하면 표 떨어진다고 난리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오세훈이 '좌파' 정책 펼칠 때까지, '자칭 좌파'들은 뭐했나
내가 노무현과 국회의 386정치인들을 미워할까? 그렇지 않다. 남은 감정도 없고, 이제는 미움도 사라진지 오래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국회의원들 속마음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겉으로 외친 단어는 '민주주의'였고, 그들이 내세운 많은 단어들을 합치면 '부국강병'으로 대부분 설명됐다. 그러나 국회와 지역구에서는 '건설공화국' '토목공화국'의 건설정치인으로, 차마 입으로 말하기 어려운 온갖 추접스러운 일들을 하고 다녔다.
그들에게는 '도로 놓아주면 표 생기고, 중앙정부 돈 끌어오면 표 생기고, 개발사업 지지하면 표 생긴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다. 정치경륜은 60대에 달했겠지만,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은 20대에 멈추어져 있고, 경제에 대한 생각은 '건설주의' 하나에 묶여 있다.
박정희 때 형성되고 노태우 대통령 때 절정에 달했던 건설주의의 화려한 꽃은, 한 때는 '민주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 386의원들이 보여주었다.
그렇지 않은 첫번째 대중 정치인이 현재로서는 바로 오세훈이다. 물론 마음으로야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도 있겠지만, 그들이 정책으로 혹은 담론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건 대단히 유쾌한 일이다.
나는 오세훈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본인이 들으면 미안한 말이겠지만, 개인적인 삶과 인생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서울시장이 되어서 한 행동들에 대해서 지지하고, 그의 정책적 전환을 위한 실험을 열렬히 지지한다.
아마 '오세훈표 국민임대주택'에 대한 온갖 폄하와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그가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노무현과 그의 국회의원들의 건설 사랑 앞에서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노무현이 하려던 '뉴딜', 지금 오세훈이 하고 있다
'건전한 보수'라고 말한다면 지금의 오세훈은 건전한 보수이다. 만약 나와 한 때는 동료처럼 혹은 동지처럼 지냈던 386 의원과 오세훈 사이에서 지금 표를 던져야 한다면 누구에게 던질까? 난 당연히 오세훈에게 던진다. 그는 낡은 건설정치인 사이에서 등장한 첫번째 희망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팔아먹으며 표 계산 외에는 할 줄 모르는 '자칭 좌파'들은 좌파의 배신자들이다. 전세계 좌파들이 다 지지하는 '공공주택임대'라는 틀을 보수정치인인 오세훈의 손에서 나올 때까지 표 계산만 하고 있는 그들은 배신자들이었다.
바라건대 더 많은 오세훈과 같은 보수정치인이 등장하고, 그런 흐름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나라에도 희망이 생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 유쾌한 사건 앞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그는 '부국강병'이 아닌 '안빈낙도'의 정신을 제시한 첫 번째 정치인이고, 이제 보수든 극우든 좌파든 극좌파든, 새로운 시대의 정치와 새로운 정신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오 시장은 좌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는 절대로 그냥 뒤로 가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손잡은 노무현 일파 대신 신자유주의의 손을 놓은 '건전한 보수'가 등장한 이 마당에 역사가 뒤로 가겠는가? '민중의 힘' 즉 'people power'는 노무현에게 적대적이고, 시대정신은 오세훈 편에 있다. 노무현이 미워서가 아니다. 그가 한국의 구조적 악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다가구주택 매입, 그것은 규모는 작아도 새로운 흐름과 새로운 방향에 대한 첫번째 신호탄이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과의 새로운 거래',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소망했던 '뉴딜'의 원래 이름이다. 지금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눈으로는 노무현과 오세훈은 정반대의 지점에 서로 서 있다.
2007-01-08 01:5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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