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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王家衛

아/ㅗ 2001. 11. 14. 21:18 Posted by 로드365

 1958년 7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태어났다. 1963년 문화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영화광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많은 영화를 보았으며, 아버지가 사들인 중국문학책들을 읽거나, 상해에 남아 있던 형과 누나가 편지에 적어보내곤 했던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고전 문학들을 읽으며 자랐다. 이공대학에서 그래픽 아트를 공부하면서 방송국에서 실시하는 연수과정에 참가했다. 대학 시절은 그가 이탈리아 영화들과 고다르, 브레송 등의 유럽영화와 일본 거장들의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프리랜서로 스승인 왕핑양과 함께 50여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그중에서 영화화된 10편정도의 작품 중에서 왕가위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담가명 감독의 <최후의 승리>이다. 담가명은 후에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의 편집을 도와주었다. 촬영장을 오가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그는 60년대의 인기 배우이자 제작자인 등광영으로부터 기회를 제공받아 88년에 데뷔작을 만들게 된다. 처음에는 담가명의 <최후의 승리>를 세 번째 작품으로 하는 3부작 중 두 번째 영화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열혈남아>에서의 로버트 드니로의 캐릭터를 반영하였다. 이 데뷔작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호의적인 평을 받았고 금상장 9개 부문에 올랐다.

1960년에서61sus까지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아비정전>은 정지한 1분의 시간 속에서 세명의 남자와 두명의 여자가, 그리고 또 한명의 남자가 교류하는 엇갈린 사랑을 그리고 있다. 스토리를 짜는 데만도 2년이 걸린 <아비정전>은 빠른 몽타쥬 기법과 클로즈업, 많은 음악을 사용했던 <열혈남아>와는 달리 왕가위의 '60년대 생각과 일치하는 '색감과 느린 템포를 가진 영화이다. 왕가위는 'B급 영화에서 가져온 기술적으로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을 롱 테이크 촬영과 결합하여' 사용했으며, '스토리 구성면에서는 마르께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열혈남아>에서 촬영을 맡았던 유위강은 이 작품에서는 제2촬영팀과 함께 했고 (그는<동사서독>에서도 제2촬영팀을 맡았으며, <중경삼림>의 조명작업을 했다). 크리스토퍼 도일은 처음으로 왕가위와 호흡을 맞추며 메인 촬영을 맡았다. 최고의 스타들을 기용한 이 영화는 액션영화를 기다렸던 관객들이 기대를 저버리는 바람에 흥행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1년간 완전히 침묵한 이후 왕가위는 세 번째 영화<동사서독>을 홍콩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중국 중부 사막에서 작업하였다. 김용의 『사조영웅문』을 토대로 한 이 작품에서 왕가위는 주인공들의 나이를 60댈로 설정하고 그들의 과거에 얽힌 기억으로서의 영화를 만들었다. 왕가위의 표현에 의하면 '어쩔 수 없는 숙명'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 <동사서독>은 중국 본토에서, 전반적으로 망원렌즈로 촬영하였고, 특히 무협이 인물들의 정서를 더욱 잘 설명해내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해 각 인물마다 다른 원칙에 따라 무협장면들을 연출하였다. 무술 감독으로는 홍금보가 참여했다. 이 영화는 <아비정전>이 공개된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나서 완성되었다. 늘어나는 제작비와 일정 때문에 배우들의 스케쥴이 뒤엉켜버려서 배역 중의 일부가 교체되는 바람에 영화의 상당부분을 제촬영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촬영 기간 중에 녹음 장비의 문제로 두달의 시간이 비게 되었을 때 왕가위는 그 틈을 이용해 작은 예산과 적은 스텝들로 마치 게릴라전을 치르듯이 홍콩의 한복판에서 <중경삼림>을 촬영했다.

<중경삼림>의 두 에피소드를 각각 이끌고 있는 두 남자 주인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이며, 그들을 포함해 이 영화의 주요캐릭터들은 의안화된 홍콩이자 현대의 홍콩이라는 도시에 대해 왕가위가 갖는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기도 하다.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밝고 경쾌해진 이 영화는 홍콩에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동사서독>이 베니스영화제에서 기술공헌상을 수상한데 이어 <중경삼림>이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공개되어 왕가위는 세계적인 주목을 모으게 된다. <동사서독>때부터 자신이 공동 대표인 택동영화사에서 영화를 만들어 온 왕가위는 첫 영화부터 함께 한 미술감독 장숙평과 두 번째 영화부터 합류한 크리스토퍼 도일을 포함한 자신의 시스템을 갖추고 보다 안정된 여건에서 다섯 번째 영화<타락천사>를 작업했다. 이 영화는 <중경삼림>의 세 번째 에피소드이자 <중경삼림>과 반대편에서 짝을 이루는 영화이다. 주인공들은 성별이 바뀐채, 혹은 조금씩 변형되어 대입되었고, 멀리 있던 카메라는 바짝 다가갔다. 영화 전체를 초광각 렌즈를 사용한 와이드 앵글로 밤 시간만으로 채운 이 영화는 왕가위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영화'이다.

포스트 MTV 시대의 시네아스트 왕가위는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영화의 시간과 속도에 대해 사유하며, 사랑의 가능과 불가능성을 반복해서 물으면서, 중국 본토를 떠나 온 마음으로, 그리고 홍콩을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으로 상실과 그리움을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홍콩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간 왕가위는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먼곳에서 홍콩을 그리워하는' 영화 <해피투게더>로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0년, 꽃의 자태와 같은 화려한 나날들,화양연화를 완성했으며 이미 절반의 촬영을 끝낸 <2046>의 나머지 분량을 부산에서 촬영할 예정이다.



Intellectual Trio (1985) [Writer]
Final Victory 최후승리 (1987) [Writer]
Haunted Cop Shop (1987) [Writer]  
Haunted Cop Shop II (1988) [Actor]  
As Tears Go By 열혈남아 (1988) [Dir] [Writer]
Days of Being Wild 아비정전 (1990) [Dir] [Writer]
Chung King Express 중경삼림 (7/1994) [Dir] [Writer]
Ashes of Time 동사서독 (9/1994) [Dir] [Writer]  
Fallen Angels 타락천사 (9/1995) [Dir] [Writer]  
Happy Together 해피투게더 (5/1997) [Prod] [Dir] [Writer]  
First Love : The Litter on the Breeze 첫사랑 (12/1997) [Prod] [Writer]  
In the Mood for love 화양연화(2000)[Dir]


 

"1962년으로 잠기는 왈츠풍 노스탤지어,
2046년으로 빠져든 로봇들의 오페라"
(한국 개봉을 앞둔 화양연화에 관한 인터뷰)
기자 이연호

 두 여자와 동시에 사랑에 빠진 왕가위. 아니 한 여자의 두 가지 얼굴을 사랑한 왕가위. 이것은 99년 <화양연화>와 <2046>을 동시에 관장했던 왕가위 자신의 표현이다. 분명한 것은 97년 6월 홍콩반환 직전의 북경에서 새로운 영화를 시작했던 왕가위 감독이 도중하차한 ‘북경지하’의 꿈을 두 편의 전혀 다른 영화 속에 분산시키며 또 다시 우리들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장만옥과 양조위의 생애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화양연화>, 아시아의 정체성과 비전을 전대미문의 상상력으로 보여줄 <2046>, 그리고 한국에서 시작하는 인터넷 단편영화 배급에 관하여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왕가위로부터 듣는다. 기자회견을 통한 ‘공식’ 견해와 사적인 만남을 통한 ‘비공식’ 진술의 엮음.


2년 만의 재회. 언제나 ‘새로움’이 무엇인지를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왕가위 감독은 <화양연화>의 짧은 트레일러(예고편과 달리 영화 중의 몇 장면을 추려서 만든 파일럿 필름)만으로도 지난 2년 동안의 부재를 메워주었다. 소문난 변덕쟁이답게 그동안 알려진 스토리(또는 장만옥과 양조위의 1인 2역이라는 소문, 또는 60년대와 90년대로 나누어지는 두 개의 삽화)와는 무관하게 60년대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숨막히게 아름다운 감각의 총화, 가로등 불빛 아래 미끄러지는 자동차, 흔들리는 장만옥의 귀걸이, 창문에 비치는 여자의 실루엣, 전화기를 잡는 여자의 손, 전화기를 내려놓는 양조위의 수심 어린 표정, 계단을 스쳐가는 장만옥과 양조위, 부여잡는 두 손의 클로즈업, 화면을 덮는 시계, 호텔과 음식과 진한 키스, 흔들리는 빨간 스커트, 비오는 창가, 여자가 잡는 손을 뿌리치는 남자의 손, 또각거리며 긴 복도를 걷는 하이힐, 두 남녀가 함께 가는 뒷모습에서 따로 걸어가는 각자의 뒷모습으로 끝나는 이 짧은 몽타쥬들은 정말 유혹 그 자체이다. <아비정전>으로부터 막 빠져나온 듯한, 그와 동시에 <아비정전>으로부터 훌쩍 넘어선 듯한 느낌. 그래서 오히려 <현기증>의 킴 노박을 떠올리게 하는 장만옥은 생의 절정처럼 우아하고, 젤로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양조위는 빛의 그림자처럼 그윽하다. 이른바 꽃의 자태와 같은 화려한 나날들, 花樣年華. 이제 우리는 서로 이웃해 살면서 아내와 남편을 빼앗긴 양조위와 장만옥의 겹치는 불륜(그들의 배우자가 먼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은 뒤늦게 사랑을 발견한다. 언제나 후회보다 늦게 찾아오는 왕가위식 사랑!)과 복수, 그리고 피할 수 없는 회한과 열정에 기꺼이 몸을 맡길 것이다. 아마도 <화양연화>는 5월의 깐느에 이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아직 깐느는 경쟁부문 리스트를 발표하지 않았다). 영어 제목은 < in the mood for love >.


더욱 반가운 것은 이미 절반의 촬영을 끝낸 <2046>의 나머지 분량이 한국의 부산에서 촬영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세 개의 오페라(『La Wally』, 『나비부인』, 『카르멘』)를 모티브로 한 아시아적 비전의 SF 영화. 제작비 8백만 달러(약 88억 6천만 원)와 양조위, 유가령, 왕정문, 기무라 다쿠야, 그리고 한국의 심혜진을 캐스팅한 이 영화는 홍콩, 일본, 방콕의 로케이션을 거쳐 8월부터 이곳에서 상상의 둥지를 틀 계획이다.

2046년의 홍콩. 중국이 약속했던 홍콩의 자치기간이 끝나는 그 순간은 과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중 어떤 길로 들어설 것인가? 철저한 보안 아래 진행되고 있는 기상천외한 메카닉과 캐릭터들(유력한 소문 중에는 양조위가 사랑을 느끼는 로보캅이라는 것, 모든 의상이 종이로 만들어진다는 것, 기무라 다쿠야가 다스베이더 같은 아버지와 맞서는 비극적인 ‘외디푸스’ 스카이워커라는 것 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여전히 ‘시간’이다. 시작부터 1997년 홍콩반환이라는 유예된 시간의 잿가루들을 부여잡았던 왕가위는 여기서 불현듯 자신의 시간을 연장시킨다(<해피 투게더>로 서로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는 3중국을 은유했던 왕가위가 <2046>을 선택한 것은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그는 진정 홍콩의 유령과도 같은 시네아스트이다). 이미 2001년 베를린영화제를 예약해놓은 <2046>은 올해 연말쯤 완성될 계획이다.
 
<화양연화>와 <2046>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의 동시작업이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동사서독>의 기나긴 촬영에 너무 지쳐 가벼운 마음으로 <중경삼림>을 촬영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저희 생각으로는 대작인 <2046>이 당연히 <동사서독>과 같은 작업일 것 같은데요.<화양연화>와 <2046>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의 동시작업이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동사서독>의 기나긴 촬영에 너무 지쳐 가벼운 마음으로 <중경삼림>을 촬영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저희 생각으로는 대작인 <2046>이 당연히 <동사서독>과 같은 작업일 것 같은데요.

정확히 그 반대다(웃음). 나도 처음에는 <화양연화>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야기도 간단했고 컨셉트도 간단했다. 단지 장만옥과 양조위, 두 배우와의 가족 같은 시스템으로 60년대의 홍콩과 90년대의 홍콩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러브 스토리를 찍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중경삼림>처럼 출발한 <화양연화>는 북경에서 촬영을 시작한 90년대 부분을 찍자마자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고 제목조차 바뀌게 되었다(그러니까 ‘북경지하’로 시작했던 프로젝트를 말한다). 그리고 60년대 부분을 촬영하면서부터는 그 시대적 배경과 환경이 나를 너무 사로잡아서 점점 어려운 작업이 되었다. 처음엔 <화양연화>의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내 이야기 방식이 거꾸로 나를 함정에 몰아넣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화양연화>는 내 영화 중 가장 힘든 작업이었고 난 너무 기진맥진한 나머지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면 오히려 <2046>을 즐거운 마음으로 찍었다. 하지만 어쩌면 <2046>의 세 번째 에피소드가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중경삼림>의 왕가위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화양연화>는 나의 두번째 데뷔작이다.

<화양연화>의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들었습니까? 예고편을 보면 60년대 홍콩의 분위기가 <아비정전>을 연상시키면서도 그보다 더 섬세하고 매우 탐미적이며 감각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바로 그 점이 <화양연화>를 찍으면 찍을수록 촬영이 점점 길어지게 만든 점이다. 아직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1962년부터 1972년까지 10년 동안 홍콩의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이웃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 시기는 나 자신도 가장 젊었을 때이며(아주 어릴 때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갖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되었다. 예고편을 본 많은 사람들이 혹시 <화양연화>가 <아비정전>의 속편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등장이 겹치기는 하지만 두 영화의 이야기에서 연결되는 부분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전체적인 감정의 구조 면에서 보자면 <화양연화>는 오히려 <아비정전 3>라고 말할 수 있다. <아비정전 2>를 건너 뛴 <아비정전 3>의 그 어떤 감정들은 이 영화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 어느 때보다 <화양연화>에서는 두 배우 장만옥과 양조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은 정말 고생이 많았다. 양조위의 경우는 <아비정전>에서 마지막 단 한 장면에만 나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굉장히 많이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해야 된다고 이야기해서 촬영 분량이 많았고, 장만옥에게는 이번에는 두 사람만이 출연하고 다른 인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촬영 분량이 많다고 이야기했다(웃음). 또한 장만옥의 의상이나 분장에 특별히 신경을 썼기 때문에 늘 촬영하기 전에 화장하고 머리를 만지는 데만 여섯 시간 정도 걸렸다. 6시간 동안 분장해서 8시간 정도 촬영하면 또 4시간 동안 화장을 고쳐야 하고, 양조위의 머리도 젤을 많이 발랐는데 촬영하다 보면 젤이 떨어지는 등 두 배우의 고생이 굉장했다. 어떤 때는 밤새 촬영하고 아침에 끝났는데 그날 저녁에 다시 촬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일찌감치 현장에 가보면 장만옥은 그냥 집에도 가지 않고 그대로 현장에 있기도 했다. 다시 분장을 시작하려면 6시간 정도를 소모해야 되니까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두 배우의 고생과 노력이 많이 담긴 영화이기 때문에 <화양연화>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두 사람의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양연화>란 제목은 <해피 투게더>의 중국 제목인 ‘춘광사설’과 대구를 이룰 만큼 시적이며 서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아비정전>이 니콜라스 레이 영화(<이유 없는 반항>)의 홍콩 제목, <춘광사설>이 안토니오니 영화(<욕망>)의 홍콩 제목이었는데, 이번에도 어떤 영화에 대한 ‘인용’이 있습니까?
영화는 아니고 영화 만들기에서 가져왔다. <해피 투게더>의 마지막 장면을 대만의 타이페이에서 촬영할 때 후 샤오시엔 감독의 프로듀서로 계신 분이 제작을 도와주셨다. 지금 50세가 넘은 굉장히 남자다운 분인데 30년 동안 영화작업에만 전념해오셨다. 그 분이 자신의 경력과 수많은 경험을 담은 자서전적인 책을 출간했는데 그 책이 『화양연화』이다. 이때의 ‘화양연화’라는 뜻은 한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가리킨다. 이것은 곧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가르키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제목과 책의 내용이 무척 맘에 들었다. 또 다른 이유는 배우들 때문이기도 하다. <화양연화>는 두 주인공 장만옥과 양조위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아주 불행하고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결국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순간은 그 둘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표현한 영화이다. 영화 속 인물로서나, 영화 바깥의 배우로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은 1인 2역을 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60년대와 90년대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을 때의 이야기인데 최종 편집본에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선 장만옥과 양조위는 1인 2역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역할을 맡았다. 처음에는 90년대의 사랑과 60년대의 사랑을 나누어서 보여주려고 했었기 때문에 1인 2역이 될 뻔했다(웃음). 그런데 60년대의 사랑을 찍다 보니 그 부분에 너무 도취되어서 촬영분량이 점점 늘어났고 결국은 90년대의 부분을 포기하게 되었다.그래서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양조위는 서로 이웃이지만 장만옥의 남편과 양조위의 부인이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는 내 영화에 이야기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드라마가 있어서 괜찮지 않는가?(웃음) 사실 <화양연화>의 작업은 힘들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작업이라서 무척 행복한 경험이었다. 누가 감독을 맡고 누가 연기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우리는 진짜 가족 같았다. 장만옥과 양조위는 배우로서 뿐만아니라 친구로서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배우들이 스타로서의 단계에 있을 때는 약간의 허영심이 있기 마련인데 그 두 사람은 이미 그런 단계를 넘어섰다. 이제는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영화를 근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화양연화>에는 60년대의 음악들이 주로 쓰입니까? 코니 프란시스의 노래가 들어간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번의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순환되는 것이라서 왈츠를 주로 사용했다. 두 사람이 껴안고 춤을 출 수 있는 감미로운 음악들이다.

<해피 투게더>의 탱고에 이어서 <화양연화>에서는 왈츠, 그리고 <2046>에서는 세곡의 오페라 『La Wally』, 『나비부인』, 『카르멘』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영화 만들기는 고정 멤버들과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음을 조율하는 프리 재즈를 닮았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아우라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제 배우들과 스탭들은 당신의 즉흥연주에 완전하게 익숙해졌습니까?

음악의 종류는 각각의 영화에 맞는 것을 선택하지만 제작과정에서는 재즈의 원칙을 따른다. 나의 경우 거의 모든 일을 촬영 순간에 결정한다. 시나리오 과정도 완결된 것을 지향하기보다는 여러 정보와 생각들의 조각조각을 모으는 단계이다. 이러한 작업은 감독에게 의존도가 높아질 것 같지만 거꾸로 관계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현장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에 스탭들과 배우들은 즉흥적인 창안을 내놓을 수 있고 나는 리더로서 그것을 유도하고 관찰하여 모은다. 이러한 과정들은 음악 작업과도 같기 때문에 현장에서 이미 내 머릿속에는 어떤 선율들이 흐르는 편이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과 미술감독 장숙평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그들 자신도 훌륭한 연주자들이다. 장만옥이나 양조위도 워낙 일을 같이 오래 해서 대본 없이 촬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화양연화>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46>의 기무라 다쿠야는 처음엔 굉장히 싫어했다. 시나리오가 없으니까 늘 양조위에게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양조위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처음이니까 분명히 이상할 거다. 하다 보면 점점 익숙해지니 기다려보라”. <2046>에 출연하게 될 심혜진도 아마 그렇게 양조위에게 물어볼 것이고 그러면 양조위는 다시 또 같은 대답을 반복할 것이다(웃음).

<2046>에 한국배우 심혜진 씨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녀가 이전에 출연한 한국영화들을 보았습니까?

배우를 캐스팅하면 사람들이 그 이유를 항상 물어오는데 언제나 구체적인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금성무 같은 경우도 캐스팅하기 전에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캐스팅을 한 이유는 금성무가 출연한 다른 몇몇 장면을 보면서 굉장한 특별한 친구라고 느꼈고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스타 기무라 타쿠야도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여장을 하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이 친구 참 특별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처럼 느낌에 의존해서 캐스팅을 한다. 심혜진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히 작품을 본 적은 없는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느낌, 그래서 알고 싶다는 느낌을 주었고, <2046>에 분명히 참여시키고 싶다는 자극을 주었다. 이처럼 난 주로 느낌이나 직관에 의해서 배우를 캐스팅하는 편이다.

이제 분명히 심혜진이 맡은 역할이 무엇이냐고 물어올 텐데 그건 비밀이다(웃음). 보통 배우들은 감독이 역할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고 그런 것에 익숙해지면 긴장이 풀린다.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반면 모르면 모를수록 스트레스가 쌓이고 부담감이 쌓인다. 심혜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분명히 <2046>에 무슨 역할로 출연하고 어떤 영화냐고 물어올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무엇을 연기해야 되는지 모르고 현장에 올 것이다. 난 오히려 그런 상황이 평소에 심혜진에게서 볼 수 없었던 부분을 연출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배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미리 알고 준비해 오면 그대로 연기하겠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대신 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나 부담감을 안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와서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내가 원하는 연기일 확률이 높다. 나의 연출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배우에게 무엇을 연기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배우에게서 그만의 특징을 찾아낸 뒤 그것을 인물로 발전시킨다. 그래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그 안정적이지 못한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제1회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인 메이킹 다큐멘터리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의 감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 이유는 무엇이며, 관본량이란 연출자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알다시피 <해피 투게더>의 촬영 분량은 굉장히 많았다. 그 중에서도 관숙의 부분은 촬영을 해놓고도 너무 영화가 길어서 결국은 한 장면도 쓰지 않았다. 그 점은 특히 나에게 다른 버전을 편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었지만 게으른 성격이라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내 사무실 옆에 편집실이 있는데 그 한 구석에 그 필름들이 쌓여 있었고 하루는 관본량이라는 친구가 놀러 왔다가 그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젊은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촬영기사로 매우 실력 있는 사람이다. 그는 왜 저 필름들을 가만히 놔두느냐고 물으면서 두번째로 편집할 내용에 대해 궁금해했다. 난 대충 이런 이야기다라고 말해주었는데 그때 이것을 굳이 내가 편집할 게 아니라 이 친구에게 맡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는 내 작품이 아니라 내가 찍어놓은 것을 가지고 관본량이라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다시 편집해서 만든 작품이다. <해피 투게더>와는 전혀 색다른 작품이다.


<2046>의 촬영 일정은 어떻게 잡혀 있으며, 한국에서의 촬영 분량은 어떤 배경으로 들어가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속 배경은 2046년 홍콩으로 되어 있는데 한국으로 나오는지, 아니면 홍콩의 일부로 나오는지요?

<2046>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미 두 부분은 촬영을 마쳤다. 이제 한 부분만 남겨져 있는데 이것이 가장 길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원래는 일본의 한 섬에서 촬영을 하려고 했었다. 그 섬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인데 대부분의 집들이 192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보험회사에서 너무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해서 일단 포기했다. 지금 한국의 부산과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소 헌팅을 하고 있는데 결정이 나는 대로 오랜 시간 동안 세트를 만들 예정이다. 그 세번째 부분은 지금 상황으로는 8월쯤 촬영을 시작할 것 같고 희망사항으로는 올 연말까지 촬영을 마쳐서 개봉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산에서 촬영하는 부분은 한국으로 설정되지는 않는다. <2046>은 미래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세트도 굉장히 허구적인 것이 될 것이고 그곳은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될 것이다.

지금도 태국의 방콕에서 촬영하고 있지만 그곳도 방콕이 아니라 이름 모를 도시로 나온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미래로 설정된 하나의 가상도시로 나올 예정이다. (방콕 장면의 촬영에는 지아 장커의 <소무>를 촬영하고 <천상인간>을 연출한 유릭 와이가 가세하고 있다. 이것은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하여 알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방콕 장면을 크리스토퍼 도일과 함께 촬영한 것인지, 아니면 유릭 와이에게 맡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2046>은 범아시아적인 프로젝트로 보이는데요. 어떤 점에서 미래형 SF 컨셉트와 아시아적인 정서가 만난다는 것은 매우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차피 가상도시는 세트로 만들어질 것인데 여러 나라를 로케이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혹시 아시아 영화산업의 연대에 뜻이 있는 것입니까?

그런 측면에 대해서는 따로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
<2046>에서 특별히 한국의 부산을 택한 이유는 부산만의 환경이 맘에 들었고, 사실 이 영화에는 아시아의 각 나라 사람들이 등장하고 또 그들이 사는 모습은 지금으로서는 볼 수 없는 상상의 것이다. 그 도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지금 영화 속에 태국, 일본, 한국, 중국, 홍콩, 대만의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고, 촬영지로 선택된 곳도 태국, 일본, 한국, 중국, 홍콩의 어떤 장소이다. 그렇게 여러 도시를 합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하나의 도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한국도 들어간 것이다.



<해피 투게더>까지의 당신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1997년 7월 홍콩반환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화양연화>와 <2046>은 홍콩반환 이후에 만들어지는 영화입니다. 홍콩반환의 이전과 이후라는 경계는 당신의 개인적 삶이나 세계관에 변화를 가져왔을 것 같은데 그것이 이 영화들 속에서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합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변화했는지 안 했는지 자기 자신은 모른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보고 살쪘다거나 빠진 것 같다, 얼굴이 까매졌다거나 하애졌다고 말해주고 또 오랜간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그 변화를 확실히 이야기해준다. 나의 경우도 시간이 흐른 후 주위 사람들이나 영화를 본 관객들이 내가 어떻게 변했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사실 <화양연화>는 <해피 투게더> 만들고 나서 홍콩반환 전에 중국에서 다른 제목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단이 되었고 나중에 제목을 바꾸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원래는 98년에 촬영을 마치려고 계획했는데 워낙 작업 속도가 느리다 보니 <2046>까지 겹치게 된 것이다. 그 1년 동안의 기간, 두 편을 동시에 만들게 된 기간은 굉장히 잊기 어려운 경험을 얻게 되었고 무척 힘들었다. 그것은 한 순간에 두 여자를 한꺼번에 사랑하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이 영화, 내일은 저 영화, 왔다갔다하는 것은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난 한군데 집중하면 거기에 빠져들어 몰입하는 타입이다. 금방 한 곳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에 몰입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1년이란 그 시간을 거치고 나서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지난 1년 동안 사랑했던 대상은 두 여인이 아니라 한 여인의 두 가지 모습 또는 두 얼굴로 변장한 한 여인이었다는 점이다. 1962년의 <화양연화>와 2046년의 <2046>은 시기적으로는 90년 이상의 오랜 시간 차이가 있지만 그런 시간을 두고 내가 사랑했던 한 여인의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이 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말할 수 없다. 영화를 보면 분명히 그 안에서 당신이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46>을 보면 홍콩을 주인공으로 해온 당신의 영화가 또다시 반환 후 50년, 즉 중국 정부가 홍콩의 자치를 보장한 유효시간을 화두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중경삼림>의 유머, ‘통조림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독백을 떠올리게 하면서 당신은 결국 시간의 시네아스트라는 점을 명백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렇다면 당신에게 2046년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영화 <2046>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웃음) 홍콩에서 산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삶이다. 우리는 1997년 이전에 근심이 많았고 모두들 마음 속에 이 순간을 지속시키거나 정지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그와 동시에 변화한 게 없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붕괴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사람들은 중국 정부가 약속한 50년, 홍콩이 50년 동안 자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겠다고 한 그 약속에 매달린다. 이것은 불안이 50년 동안 유예된 것이지만 과연 2046년까지 이 시간을 연장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50년이란 변치 않는 약속’을 주목한다. 그래서 50년 후의 2046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인데 이 영화 속에서는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과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관념, 신념 그런 것이 변하지 않을 것인가? 애정이든 신앙이든 가치관이든 그것이 영원할 수 있겠는가?

또한 당신의 영화에서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그것의 일방적인 단절과 소외였는데 <2046>에서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과는 어떤 식으로 작업할 계획입니까? 혹시 의사소통의 문제에 우려되는 점은 없습니까?

심혜진 씨도 그렇고 많은 관계자들이 아시아권의 의사소통 문제를 우려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태국의 배우들이나 일본의 기무라 다쿠야, 홍콩의 스탭들이 작업을 했지만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말이 안 통해도 보디 랭귀지나 표정 등을 동원해서 아주 쉽게 의사소통을 하고 금방 현장에 적응해서 자기 나름대로 그 안에서의 언어를 창조해낸다. 잘 아다시피 찰리 채플린은 말없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는가? 언어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번에 한국에 오신 목적 중에는 인터넷 방송 진출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창조적인 영화작가로서 인터넷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요? 그리고 사업 구상의 동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나의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내 영화가 MTV식 영화다, 인터넷 시대의 영화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사실 내 자신은 컴퓨터도 잘 못하고 인터넷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인터넷 시대의 영화라고 하는 것일까? 그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인터넷이라는 것은 그 안에 영화가 있든 그 무엇이 있든 우리 시대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이것은 뭐랄까, 인터넷에 등장한 것이 무엇이든간에 영화나 TV나 라디오나 다른 매체를 통하여 접하는 것과는 또 다른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할 수 있고 그렇게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구상한 것이 인터넷을 통하여 단편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엔 내가 직접 만들면서 시작할 것이다. 한국 배우들을 데리고 직접 찍을 수도 있고, 한국 스탭들과 작업할 수도 있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작품들, 무엇이든 좋은데 그것이 인터넷을 통하여 보여줄 수 있게끔 50명이 될 수도 있고, 100명이 될 수도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고, 특히 영화라는 매체를 새롭게 만들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함께 참여해서 공동으로 만든 작품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누어주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현재로서는 그것을 하기에 인터넷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홍콩보다 먼저 한국의 인터넷 방송에 진출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몇 년 전에 한국의 단편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었는데 그때 매우 놀랐다. 영화를 막 시작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능력이 굉장히 우수했기 때문이다(제4회 서울단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왔었고, 그해 최우수작품상은 송일곤의 <간과 감자>와 정윤철의 <기념사진>이었다. 그때 왕가위의 ‘선택’은 조은령의 <스케이트>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그 이듬해 깐느영화제 단편영화 경쟁부문에 초대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도 있었고 한국에서 공부한 친구도 있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상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렇게 한국의 젊은이들을 비롯해서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좋은 역량을 가지고 있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매체가 인터넷이라고 보았다.
이것을 발판으로 해서 앞으로 엔터테인먼트가 무엇인가의 포맷을 정해서 더 확장시켜나갈 생각이다. 먼저 한국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렇다. 난 굉장히 피동적인 사람이다. 인터넷 사업을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는데 한국의 한 친구가 적극적으로 격려도 해주고 밀어붙여서 추진하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인터넷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온라인 엔터테인먼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크다. 4월경에 오픈할 예정인데 처음엔 3, 4편의 단편들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한국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할 것이다. 내가 직접 만들 작품은 그때 가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씨네21.1997.7.29~8.5(113호)>

"본능이 나침반, 더 이상은 일급비밀"
(10가지 주제, 왕가위 감독이 씨네21 독자에게 말하는 '왕가위 스타일'
7월 23일 오후 4시 라마다르네상스호텔 로비)

기자 김영진 황혜림

 
 1. 연애,'버림받기 전에 먼저 버리기'와 '별함으로써 새로 출발하기'.

내 영화는 줄곧 사랑하기와 사랑받기,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과 사랑 받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의 주인공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사랑받지 못했거나 사랑하지 못해서 불행했다. 그들은 그 불행을 이기기 위해 상대를 먼저 버렸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어도 혼자서도 견딜 수 있다는 것.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러나 <해피 투게더>는 좀 다르다. 이별함으로써 새로 출발하는 사람의 얘기다. 아휘(양조위)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새로 태어난다.
<해피 투게더>에서 아휘는 실연한 뒤 이구아즈폭포 앞에서 새로 태어나는 전기를 맞는다. 이구아즈폭포는 당신이 말한 대로 아휘의 정신적인 안식처, 종착지가 맞다. 폭포는 거대한 자연이다. 인간은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진다. 그런 자연 앞에서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해 겸허해 질 수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 폭포를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니다. 그냥 폭포가 굉장하고 멋있으니까 택했을 뿐이다.
아휘는 거듭나는데 보영(장국영)은 어떨까. 아휘가 보영을 떠나간 뒤 보영이 뉘우쳤을까. 글쎄. 아휘는 공항 같고 보영은 비행기 같은 인물이다. 필요하면 공항에 내렸다가 또다시 떠나곤 하는 인물이다. 착륙과 이륙을 되풀이할 뿐이다. 비행기가 없으면 공항도 의미가 없다. 공항없는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어느날 아휘는 더 이상 받아주기만 하는 공항 구실을 아기가 싫어졌고 그래서 떠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영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진 않다. 그저 어느 날 아휘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떠난 뒤에는 그를 그리워하겠지. 하지만 또다시 행복하게 지낼 거다. 행복하게? 금방 잊어버리고 예전처럼 살 테니까.
<해피 투게더>는 아휘의 목소리와 시점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내가 보영을 싫어해서 그런건 아니다. 아휘는 관객의 이해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정서저으로 공감하기 쉬운 사람이다. 그래서 아휘의 내레이션을 많이 썼다. 그러나 보영은 불완전한 캐릭터이다. 관객은 그에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영의 목소리나 관점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보영이란 캐릭터의 특징이다. 그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사실 그걸 의도했다. 왜냐고? 나도 보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사랑이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을 존재하게 하는 뭔가란 얘기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당신의 존재를 입증해준다. 사랑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 사랑이 꼭 이성을 뜻하는 건 아니다. 당신은 시계나 옷하고도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2. 고향과 영화

아휘는 장의 고향인 대만에 간다. 그는 행복해 보인다. 고향에 도착했기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다. 진짜로 고향에 도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향에 이제 돌아간다는 생각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 내가 태어난 곳은 상하이고 자란 곳은 홍콩이다. 홍콩에 있을 때는 상하이가, 홍콩을 벗어난 곳에 있을때는 홍콩이 내 고향 같다. 30년 이상 살았던 곳이니까. 그렇게 오랜 세월을 홍콩에서 살다보니 홍콩의 일상에 아주 익숙하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은 내게 늘 상하이가 고향임을 상기시키곤 했다. 다른 감독들이 상하이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을 때 굉장히 번잡하고 화려한 대도시로 묘사하고 난징거리와 같은 번화가를 중심에 잡는다. 내 기억 속의 상하이는 그렇게 부산한 곳이 아니었다. 언젠가 고향 상하이를 영화에 담는다면 나는 좀더 후미진 뒷골목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

3. 영화에서의 시간

내영화는 시간을 다루지 않는다. '기억'을 다룬다. 시간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내게 중요한건 '기억' 또는 '추억'이다. 난 기억에 관심이 많다. 기억이 가끔 시간에 관련돼 있을 때 시간이 중요해지기도 한다. 당신도 기억에 관심이 있지 않은가? 기억은 '당신이 은행에 저금한 돈'과 같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돌아보게 한다.
난 가브리엘 마르케스(<백년동안의 고독>)나 마누엘 푸이크(<거미여인의 키스>)등의 소설에서 기억을 이야기로 마드는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시간과 공간을 나누고 간단한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관점과 기억을 서로 나누어 서술하면 같은 얘기도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다른 영화감독의 영향? 그런 것 없다. 의식적으로는 아니다.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4. 영화의 스타일

이 영화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느냐고? 누가 그런 얘길 했나.(한국의 한 영화감독이 그랬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너무 자세히. 열심히 봤나 보다(웃음). 그냥 보통 카메라다. 디지털 카메라로 하려면 너무 비싸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은 야생마다. 촬영을 일사천리로 한다. 도일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 더 이상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없다. 아주 오래 같이 일했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통하고 이의가 별로 없다. 나는 그냥 다리를 찍자. 거리를 찍자고 말한다. 이것저것 어떻게 찍어오라고 세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럼 그는 그걸 카메라에 담아온다.
<해피 투게더>의 화면입자가 거친 것은 내가 그걸 원했기 때문이다. 도일은 더 밝은 입자를 원했을 거라고? 도일이 뭘 원하든 난 신경쓰지 않는다(웃음). 치통이 있는 건 사실이고 아직도 아프다(이를 드러내면서 익살맞은 표정). 하지만 그 때문에 삐뚤게 본다든가 촬영에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잘 쓰는 건'비어 있는 화면'이다. '컷 어웨이'라고도 부른다. 인물을 화면에 잡지 않고, 문, 도시, 창문 같은 걸 잡은 화면을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끼워넣는 것이다. 때론 그게 화면을 비우면서 훨씬 많은 표현을 담아낸다. 물론 상황설정화면하고도 다르다.
글쎄, 이번 영화 <헤피 투게더>에서 내가 스타일의 변화를 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른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다. 본질적으로 변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5. 즉흥 연출

내가 즉흥연출을 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내 영화가 즉흥연출의 산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짜임새를 계산한 것이다. 그럴 때 쌓아놓은 경험에 따라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이 감독의몫이다. 즉흥연출에 대한 내 철학? 영화는 많이 기다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하지만 정말로 원하는게 있다면 참을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게 있다가도 쉽게 그만두거나 포기해 버린다. 책임감이 필요한 이유는 자신을 100%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낭비하지 말고 뭘 찾고 있는지, 뭘 바라고 있는지만 분명하다면 책임을 갖고 신뢰해야 한다. 가끔 학생들이 나처럼 되고 싶다고, 그런 스타일이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순한 '스타일'이상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걸 화면에 담아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책임감 있게'


6. 편집의 원칙

영화를 편집할 때 특별한 기준같은 건 없다. 그냥 내 본능과 직관에 따른다. 단지 '원초적 본능'일 뿐이냐고?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다. 일급비밀이다. 이렇게 일급비밀을 감추고 있는게 사는 재미니까
촬영할 때는 여자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찍고 나니까 상영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잘랐다. 처음에는 그럼 여자가 나오는 장면을 왜 찍었냐고? 그때는 영화가 너무 짧아질 것 같아서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찍었다(웃음). 남자 동성애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 여자가 등장하면 상업적인 면에서나 심의면에서 유리하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동성애란 소재가 어느 정도 희석되는 것처럼 생각하나 보다. 그것도 싫었다. 그래서 <해피 투게더>는 처음부터 아휘와 보영 두 사람의 동성애 장면으로 시작한다.

7. 홍콩의 배우들

<해피 투게더>에서 장국영과 양조위를 커플로 택한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여러번 같이 작업했던 배우들이고 무엇보다 두 사람 다 여배우와의 러브신을 잘 연기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이야기를 섬세하게 연기할 줄 안다.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래서 사랑 연기를 잘 하는 두 배우를 골랐다. 동성애 연기를 꺼리지는 않았다. 신경이 예민해 있긴 하지만.
가만, 내가 지금까지 그 밖에 어떤 배우들과 작업했는지 생각중이다. 장만옥과 사이가 좋다. <동사서독>을 찍을 때 장만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었느냐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난 장만옥과 연기하는 인물을 한 정면 정도 놓고 싶었고 장만옥에게도 그렇게 얘기했다. 장만옥은 벼로 개의치 않고 하겠다고 해주었고, 다른 배우들에 대해서는.... 지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말해주겠다(웃음).

8. 홍콩과 중국, 대만

내가 영화에서 꼭 홍콩, 중국, 대만에 대한 비유를 집어 넣었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 난 그렇게 비유를 만들어내는 감독이 아니다. 아휘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청년 장을 대만사람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그 배우를 매우 좋아하는데 그가 대만인이기 때문이다. 장은 아휘와 보영의 어린시절일 수 있다.
아휘와 보영은 장의 미래 모습일 수 있고, 장이 더 희망적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그는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떠나는 인물이다. 그가 이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더 젊기 때문이다. 굳이 장을 더 존경하고 아휘와 보영에 화낼 이유는 없다. 인생에서 당신 역시 그런 모습을 공유하게 될가 말이다.
중국에 관한 영화? 물론 찍을 계획이 있다. 언젠가는.

9. 영화와 음악

내 영화에서 음악은 사운드의 일부이다. 물 떨어지는 소리, 컵 내려놓는 소리, 소음 등과 같은. 그러니까 음악에 특별한 의미를 두려고 할 필요없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 수시로, 영화에 따라 다르다. 난 음악을 위한 영상을 만드는게 아니라 영화에 음악을 집어넣을 뿐이다. 다른 음향들처럼 말이다. MTV식으로 하려던 것 아니다.

10.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에서 영화를 찍으려고 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다. 하지만 그 나라나 도시에 대해 별로 아는 바도 없었고, 밤거리는 홍콩이나 거기나 비슷하다. 결국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보카거리를 홍콩처럼 담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장면을 방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질 게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방에다 홍콩을 만들었다. 실제 공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낯선 공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홍콩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보카 지역을 택한 이유가 알고 싶은가. 누군가가 그곳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위험한 거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난 위험한 곳을 좋아한다. 그건....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씨네21.1995.9.05~9.19(20호)>

"대본은 늘 내 머릿속에 있다"
(90년대 홍콩 최고의 시네아스트 왕가위 감독 현지인터뷰)

기자 류재훈

 
  58년 상하이 출생, 5살 때 홍콩 이주, 홍콩이공대학 미술설계과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사진에도 관심. 80년 졸업 뒤 TV-B의 드라마제작교육코스를 수료하면서 드라마 제작에 참여. 82년 그만둔 뒤 87년까지 13편의 시나리오 씀.
88년 <열혈남아>로 감독 데뷔하면서 주목받는 신인감독으로 부상. 90년 <아비정전>,94년<동사서독>,랙동영화사(Jet Tone Production)을 설립해 <중경삼림>으로 14회 홍콩금장상 감독상과 작품상 수상. 명실공히 90년대 홍콩 뉴웨이브의 최고 작가감독. 그의 다섯 번째 영화 <타락천사>를 3월에 크랭크인해 6월초 촬영을 마쳤다(대부분의 촬영은 5월에 끝냈으나 배우들의 일정 때문에 길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인터뷰 바로 전날인 8월 26일 <타락천사>의 편집을 마쳐 무척 즐거운 표정이었다.
8월 29일 <타락천사>의 대만 시사회를 위해 타이베이로 출국한 뒤, 9월 12일부터는 토론토영화제에 참가하고, 도쿄와오사카에서 상영중인 <중경삼림>의 6개도시 확대 개봉과 관련해 일본을 2주 동안 홍보차 방문할 예정이다. 한국은 <타락천사>의 한국배급업자와 협의를 커쳐 10월 초에나 방문할 것 같다는 얘기다.

   

<중경삼림>의 한국 시사회 반응은 아주 좋다. 당신은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으로 한국에서 흥행의 수모와 컬트적인 숭배를 동시에 받았다. <중경삼림>이 한국에서 어떤 반응을 얻길 기대하고 있나

한국관객들의 취향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다연히 아주 좋아해주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당신은 극히 개인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고집스러움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 직접 택동이란 영화사를 설립한 이유가 이런 어려움에서였었나.

나는 그동안 도박사처럼 위험부담을 안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홍콩영화의 주류와는 다른 영화들이었다. 처음에 무척 힘들었다. 구미가 다른 기성관객들도 첫영화<열혈남아>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이 영화와 같은 영화를 원하게 됐다. 관객들의 입맛만을 위해 항상 똑같은 작품을 만들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서 영화사를 차린 것이다. 현재 동남아 유럽의 관객들은 왕가위식의 영화를 알고 있고,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낫다.

신작 <타락천사>와 <중경삼림>은 연결되는 에피소드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중경삼림>을 만들 때 3개의 에피소드를 준비했다. 3개의 스토리를 다 담기엔 길어서 마지막 세 번째 것은 남겨두었다. <중경삼림>이후 이 세번째 스토리를 발전시킨 게 <타락천사>이다. 그러나 <타락천사>가 결코 <중경삼림.2>는 아니다. 단지 거기에 담긴 정신이 같을 뿐이며 학생영화처럼 간단한 내용이다. <중경삼림>에는 제작비용이 많이 들었다. 출연배우들의 일정이 매우 복잡하다. 제작자에겐 비용과 배우들의 일정조정 등에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같은 경우는 감독과 제작을 같이 하는데 보통의 감독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감독의 직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매우 단순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그렇게 만들었다.

<열혈남아>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타락천사>의 개봉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 기대는 옳은 것인가. <열혈남아>를 만들 때와 비교해 당신의 영화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열혈남아>의 관객은 지난 7년 동안 그만큼 성숙했을 것이고 많은 것들이 변했을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방향이 나의 변화방향과 같았으면 한다. <타락천사>가 <열혈남아>와 같은 액션영화만은 아니지만 이런 변화 때문에 관객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은 즐거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7년 동안 나 자신의 변화라면 캐릭터보다는 스토리에 더욱 중점을 두게 됐다는 점이다.

<타락천사>에 등장하는 기억상실증은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이것을 다룬 영화 중 좋아하는 작품은.

기억상실증 영화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기억상실증을 다룬 영화는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다른 일을 하려고 하고 그 해석도 각각이다. 물론 기억상실증환자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기억상실증환자를 다룬 영화에 특별한 흥미가 없고 그래서 기억나는 영화도 없다.

이번에도 당신이 좋아하는 팝송이 삽입될 예정인가

나에게 영화음악은 단순한 음악만은 아니다. 음악은 음향효과이고, 다른 영화는 다른 분위기와 컬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락천사>에서 나는 홍콩의 다른 문화를 다루었고 여기에 맞는 음악을 골랐다. 셜리 관의 홍콩팝송 '망기타'. 대마의 '사모적인' 그리고 로리 앤더슨의 음악, 영국의 'Massive Attack'등을 삽입했다.

<타락천사>와 함께 베니스영화제에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지난해 <중경삼림>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한 적이 있다. 개막일에 맞춰 영화를 끝마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겨우 폐막영화로 올려졌다. 이렇게 작업하는 것이 영화에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해에 똑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베니스에는 가지 않는다. 영화를 끝마친 뒤 어떤 영화제에 참여할지를 결정하고 싶었다. 지금 계획으론 9월 중순에 열리는 토론토영화제에서 특별 상영작으로 잡혀 9월14일 상영될 예정이다.

<타락천사>이후 다음 영화 계획은

오는 겨울 베이징에서 <중경삼림>의 양조위 등을 캐스팅해 <베이징의 여름>(Summer in Beijing)이란 뮤지컬영화를 찍을 생각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와의 공동작업 등 미국시장에서의 작업계획은.

얘기한 적은 있지만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재 타란티노와의 관계는 내 영화의 미국 내 배급업자로서다.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그리고 그의 시나리오로 만든 <올리버 스톤의 킬러> 등의 액션영화를 본 감상은.

그는 대단히 훌륭한 시나리오작가이다. 그의 시나리오는 영화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액션영화감독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애견은 단지 한 부분일 뿐이다. 타란티노의 영화를 본 사람이면 모두 다 그가 영화에 미친 감독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영화제작 과정 또는 시나리오를 비밀에 부치는 특별한 이유는.

촬영에 앞서 나는 기록된 형태의 대본을 갖고 있지 않다. 항상 머리 속에 들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촬영장소에 갈 때 이미 90%는 확정된 상태이고 상황에 따라 10%만이 가변적이다. 촬영세트에 들어갈 때 배우들에게 통고한다.

촬영을 맡은 크리스토퍼 도일에 대해 소개해 달라.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지만 나에겐 중국인이다. 그는 나보다 베이징어를 더 잘한다. 원래 선원이었지만 20대에 대만에서 카메라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와는 두 번째 영화 <아비 정전>때부터 인연을 맺었고, 그는 현재 중국권에서 가장 유명한 카메라 감독이다.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한국팬들에게 당신과 관금붕은 늘 붙어 다니는 이름이다. 관 감독과 그의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대감을 느끼는 중국권 감독은.

개인적으로 서로 잘 알고 있다. 그의 영화 가운데 <완령옥>만을 보았다. 관금붕은 모든 시간을 영화 만드는 데 바칠 정도로 아주 열성적인 감독이다. 하지만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취향을 갖고 있다. 그는 영화를 너무 조심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유대감을 느끼는 중국권 감독이 있다면.

나는 매일매일 모든 홍콩의 영화감독들과 연관을 맺고 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텔레비젼을 통해 방영된 광둥어 영화를 보고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다. 중국과 대만 그리고 홍콩영화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어떤 중국권 감독들보다도 홍콩영화들과 더 연관을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경삼림>의 한국개봉이 어려웠던 점과 관련해 한국 내 홍콩영화 수입업자에 대한 생각은. 그리고 한국관객에 대한 생각은.

런던 개봉이 9월 15일이고 미국 개봉이 내년 1월인 것을 보면 한국 개봉이 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 한국시장은 홍콩영화에게 큰 시장이다. 내 영화는 모두 한국의 각기 다른 배급업자들에게 넘겨졌다. <중경삼림>이 한국에 팔린 것은 1년도 더 됐다. 한국의 배급업자들은 항상 액션영화를 요구할 정도로 보수적이라는 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97년 7월 이후 홍콩에서 남아 계속 작업을 할 것인가. 홍콩반환과 관련해 홍콩영화의 장래에 대한 당신의 전망은.

올해만 해도 이 질문은 1백번 이상 들어왔다. 계속해서 홍콩에서 일할 것이고 무언가 흥분할 만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환 이후 10년 정도가 되면 홍콩영화는 중국영화에 합쳐질 것으로 본다. 모두 함께 일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중국영화와 홍콩영화는 그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97년은 매우 특별한 일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긴다면.

내 영화를 놓치지 말고 즐겨주길 바란다.

   

 



 


왕가위,
홍콩의 천사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게이들에게로
('해피투게더' 대만개봉 직후 가진 타락천사/해피투게더 인터뷰)

대만평론가 장 징페이

 
 "현재의 많은 영화들에 대해 사람들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즉시 말한다. 이 영화는 왕가위 영화 같다고. 홍콩이나 대만,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너무 불공평하다. 누구나 시작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나도 물론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의 영화가 다 비슷한 것을 싫어한다. 단지 멀리 바라보고 대안적인 영화를 만들기를 바란다."이상은 '왕가위 신드롬'에 대한 왕가위의 회고이다.
   

<타락천사>는<중경삼림>과 마찬가지로 현대 도시인의 고독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와 <중경삼림>의 관계는 어떤 건가요?

타락천사>는 <중경삼림>은 두 영화가 합쳐져야 하나의 영화가 된다. 찍기 시작했을 때 원래 세 개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나중에 두 번째 에피소드를 너무 길게 찍어 두 개로 나누었다. 남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성한 것이 <타락천사>이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은 모두 서로 바꿔도 된다. 임청하와 여명, 왕정문과 금성무 같은 경우에는 의상조차 바꿔 입어도 되어 전체가 통일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역할들이 모두 호환될 수 있다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때 그들은 특정 인물, 반드시 필요한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일종의 상징적 코드가 되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그렇다. 이 두 영화에서 주인공은 배우가 아니라 바로 도시 홍콩이다. 홍콩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똑같은 생활 공간 안에서 오고가며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내일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홍콩은 묵묵히 그곳에 있으며 이런 저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바라본다.

당신은 냉정하게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입장입니까?

<중경삼림>은 멀리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타락천사>는 가깝게 바라보는 것이다. 어딘가에 놓여 있는 폐쇄회로TV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 공간에서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당신의 영화는 형식이 바로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의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냐고 묻는다. 사실 이건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타락천사>에서 와이드 앵글을 많이 쓴 이유는 촬영장이 너무 좁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된 방법이다. 그렇게 많은 부분, 스타일을 위한 스타일이 아니라 영화를 촬영하는 상황의 조건 때문에 부득이 이렇게 찍는 경우이며 이것들이 차츰 스스로 생명력을 키워 하나의 스타일을 이루는 것이다.

촬영장의 제한 때문에 이렇게 찍기 시작한 것이 결국에 당신의 스타일이 되었다는 건가요?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차츰차츰 만들어졌다.

<중경삼림>에성 임청하가 쓰고 있는 금발의 가발은 중국의 것과 서구의 것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홍콩의 특수성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임청하의 캐릭터는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막문위의 금발과 금성무가 물들이는 금발은 어떤 의미인가요?

막문위는 그 당시에 금발로 염색을 한 상태였다. 금성무의 경우는, 영화를 절반쯤 촬영했을 때 금성무가 자신의 새 앨범을 내면서 금발로 염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딱히 그것을 말릴 필요는 못 느꼈다. 영화를 찍을 때는 설명할 길이 없는 별의별 일들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영화를 만들 때 배우들을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도 뜻밖의 문제에 부딪힐 수 있으며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어느날 한 배우가 앨범을 내야한다는 이유로 오늘의 검은 머리를 내일 금발로 염색할 것이라는 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때 방법은 두가지이다. 이 배우를 그만두게 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받아들이냐, 나중에 스스로 그의 변신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의 인물들은 모두 사랑을 찾아다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정한 사랑에 이르지 못합니다. 단지 양조위와 왕정문의 '시작'이 있을 뿐이지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상상 속의 연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 인물들이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라고는 말하지 말라. 그들은 모두 계속 찾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최소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나를 싫어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상대방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기를 원하다.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연애의 감정은..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스스로와 연애에 빠지는 것과 같다. 그 순간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드냐의 문제이다.

<타락천사>에서 이가흔과 여명의 관계는 흥미로웠습니다.

이 두사람은 꽤 확실한 남녀관계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보호하기 나름이다. 만약 그들이 성관계를 맺었다 해도 별 차이는 없다. 이가흔의 의상은 마치 거대한 콘돔과 같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 좋아하면서도 만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귀찮은 일이 일어나는 걸 애써 피한다고 할까.

금성무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는 당신의 이전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금성무의 아버지 역을 한 사람은 원래 충칭 빌딩의 야근 책임자로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아버지 역을 맡겼고, 시나리오에는 없던 둘 사이의 장면을 추가시켰다.

<춘광사설>은 어떻게 찍을 생각을 한 건가요?

시기적으로 아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나는 그때 홍콩을 벗어나 바깥으로 떠나보고 싶었다. <중경삼림>과<타락천사>를 찍고 나니까, 이제 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원칙은 하나였다. 그 속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기를 바랐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홍콩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영화가 유행처럼 계속 되었는데, 나는 그 어떤 영화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대부분 코미디였던 그 영화들은 극단적이고 모든 것을 미리 정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이 일반적인 시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남자와 남자든, 남자와 여자든, 또는 여자와 여자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춘광사설>은 동성애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두사람'의 러브스토리이다. 어떤 사람은 나보고 이게 러브스토리라고 하는데 왜 하필이면 두남자의 사랑 이야기냐고. 술수를 쓰는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 내가 이전에 만들었던 러브스토리는 반드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여야 하는가? 어차피 모든건 똑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 사회에서 이성애, 동성애를 구분하는건 더 이상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 사이의 감정인 것이다.

당신은 어떤 영화보다<춘광사설>은 매우 섬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건 배우들 덕택이다. 장국영과 양조위의 러브씬을 찍던 첫날은 일종의 한계점이었는데, 그들은 이 장면을 잘 해냈고 그 감정을 유지하며 계속 영화를 촬영할 수 있었다. 몇 장면은 단지 배우들에게 요점만을 설명해주고 나머지는 배우들에게 맡겨버리는 식으로 촬영하였다.

배우들이 심리적 장애를 일으킨 적은 없습니까? 당신은 촬영을 하기 전에 배우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리허설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내가 조절한가기 보다 그 부분은 배우들 자신의 몫이다. 처음에 그들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른다. 나는 가장 멀리 떨어져 그들이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나서 배우들에게 알려준다. 내 영화의 배우들은 극중의 캐릭터와 거의 유사하다. 그들은 역할을 연기한다기보다는 그들 자신을 연기한다.

당신은 예전에 <춘광사설>을 단도직입적인 방법으로 촬영했으며 일부러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만, 그것은 당신의 이전 영화들과 차이가 나는 지점입니다. 왜 이렇게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까?

이전의 영화는 모두 다각적인 관점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제재는 많은 이야기들에서 매우 애매하게 처리되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간단하고 단도직입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촬영하는 도중 나는 완성될 영화가 어떤 모습인지를 잘 모르겠다. 대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지금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나는 이 영화가 애매해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 불필요한 것 아닌가? 이 두 남자의 관계는 바로 이렇게 단순하다.

감정이 가장 고조되는 장면에서 거꾸로 당신은 흑백의 차가운 톤을 선호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남자가 어떻게 '우리 다시 시작하자'를 말하는가이다. 앞부분은 모두 그들의 과거이고, 흑백 화면이 시작될 때 장국영은 양조위에게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한다. 영화속의 '현재'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흑백과 컬러가 구별되는 점이다. 영화가 시작되는 계절은 여름이다. 그러나 나는 '그 여름은 추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우 주관적인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랬다. 그들은 타국에서 여름을 맞이하고 있으며 별로 행복하지 않다. 나는 차가운 느낌을 주고 싶엇다. 흑백은 이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가 여름일 때 홍콩은 겨울이다.

홍콩을 떠나서 간 곳이 왜 하필 아르헨티나인가요? 왜 홍콩으로 다시 돌아올 때, 양조위는 타이페이를 거치게 됩니까? 게다가 이 두 지역은 당신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기도 한데요

아르헨티나를 선택한 것은 내가 남미의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번도 그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라는 소설을 일고, 그곳에 가서 영화를 찍기로 결정했다. 지구본을 보면 아르헨티나는 홍콩의 정반대에 위치해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타이페이가 등장하는 이유는 그곳이 장진의 고향이고, 양조위는 그를 찾으러 가기 때문이다. 아주 먼 곳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에 비해서 타이페이는 홍콩과 아주 가까워 거의 문 앞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가까운 고향이란 더욱 두려운 것이다. 내가 상상했던 이 영화는 결코 홍콩에서 끝을 맺어서는 안되었다. 이것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끝맺어져야 했다. 나는 대만에서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지만, 대만에 갈때마다 찍을 만한 곳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찍을지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대만에서 대만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찍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타이페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큼 이 도시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 난 단지 외지에서 온 사람의 시각으로 이 도시를 찍을 수 있을 뿐이다. <춘광사설>은 원래 대만의 한 시골에서 찍을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만의 감독만큼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다. 대신 타이페이의 고가와 지하철을 썼는데, 그것은 고가와 지하철의 풍경이란 대만이든, 상해든, 홍콩이든 어느 대도시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당신은 어디를 가든지, 비록 아르헨티나에서 영화를 만들어도 홍콩을 떠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나는 홍콩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어디를 가든 이미 뼛속 깊이 홍콩이라는 공간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물을 보거나 일을 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홍콩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창작하는 자로서 당신에게 홍콩은 근거지이자 또한 한계가 되는 것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요?

한계는 상대적인 것이다. 여기 어떤 전제가 있다고 치자. 어떻게 보면 그것은 분명 한계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계속해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홍콩이 나에게 한계가 되지는 않는다.

양조위는 텔레비젼 뉴스에서 등소평의 사망 소식을 듣습니다. 왜 그 화면을 집어넣은 건가요?

등소평의 사망 뉴스를 넣은 화면은 주로 시간을 알려주는 참고 좌표이다. 다시 말해서 등소평의 죽음 또한 홍콩 사회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줄곧 타향에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시간을 잊고 마치 아주 긴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대부분의 중국인에게 있어서 등소평의 죽음은 빅 뉴스이자 시간의 지표를 의미한다. 그 뉴스를 접한 순간 양조위는 비로소 세상으로 돌아온듯한 느낌을 가지며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 장면을 집어넣은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촬영을 끝내고 홍콩으로 돌아갔을때가 12월쯤이였는데 회사에서 계속 편집을 하다가 우연히 밤새 방송하는 뉴스에서 그것을 보았다. 나는 그 순간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의 코드로 영화안에 집어 넣기로 결정했다.

이 코드는 당신이 만들었던 영화 중에서 <춘광사설>을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로 만듭니다.

나에게는 결코 그것이 정치적인 요소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 될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단계를 지칭하는 것이다.

당신은 배우들과 어떤 식으로 작업합니까?

난 배우들 자신에게서 어떤 특징을 찾아내 그것을 발휘하도록 한다. 결코 어떤 역할을 연기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나는 그 순간 이미 그역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나와 작업하는 대부분의 배우들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던 친구들이다. 하지만 한동안 만나지 않으면 그들에 대한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다.이러한 변화는 그 사람한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매번 같이 작업할 때마다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까를 탐색한다. <춘광사설>의 양조위는 <아비정전>,<동사서독>,<중경삼림>을 같이 작업했을때와 또 다른 경우이다. <중경삼림>을 찍은 후에 나는 양조위가 또 해낼 수 있는 역할이 뭔가를 계속 고민했는데, 그결과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양조위가 만약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는 어떻게 할까와 그가 악역을 맡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둘다 양조위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럼 당신은 배우의 특징을 어떻게 찾아냅니까? 예를 들어 관숙이 같은 경우에는.....

그건 일종의 직감으로 첫인상에 대해 잘 생각해보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관숙이의 노래를 좋아한다. 예전에 관숙이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봤는데 그녀는 카메라에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화면 전체를 압도하며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배우로 쓰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배우들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는 부분을 어떻게 이끌어냅니까?

갖은 수단을 다 쓴다

무슨 수단이요?

속이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십시오. 가령 당신 영화에 처음 출연한 장진 같은 경우는........

장진은 영화를 찍어본 경험이 별로 없다. 예전에 에드워드 양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그 작업 방식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는 에드워드 양과 오랫동안 같이 있었기 때문에 친하기도 하고, 역할 분담이 매우 분명하다. 그러나 나한테 왔을 때 장진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처음 그를 봤을 때, 아주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말하는 것도 걷는 것도 모두 느렸다. 내 상상 속의 장진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그에게 영화에 권투를 하는 씬이 있다며 미국으로 보내 하루에 7시간씩 권투를 배우게 했다. 그가 권투하는 장면은 사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조금밖에 찍지 못했지만, 어쨌든 하루에 7시간씩 2주일동안 훈련을 받은 장진의 행동과 말하는 제스처 등은 우리가 상상했던 모습으로 갈수록 비슷해져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신은 영화에서 자주 내레이션을 쓰는데요. 대신 대화를 비교적 적게 사용합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화는 영원히'현재'를 의미하지만 내레이션은 과거일 수도 미래일 수도 있다. 그것은 다른 관점을 나타낼 수 있고 시간의 제약을 덜 받아 대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당신의 영화에서 '집'의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늘 추구되지만, 등장인물 그 누구도 영원히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지 않는 곳으로 설정됩니다. <아비정전>의 장국영은 어머니를 보고 싶어하지만 결국 볼 수 없습니다. <춘광사설>에서도 양조위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으나 집에 도착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인 주제는 똑같다. 양조위와 장국영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집'은 매우 안정된 곳으로 귀속을 의미하나 영원히 돌아 갈 수가 없다. 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가? 일종의 맛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마치 음식을 먹을 때 배불리 먹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너무 배가 부르면 그 즐거움은 사라진다. 딱 적당한 것이 좋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인가요?


그렇게 커다란 주제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단순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당신의 영화를 보고 그런 것을 느낍니다.
나도 그들의 일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주인공은 모두 집에 돌아갈 수 없지만 당신은 행복한 집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다. 그러나 영화를 찍는 것은 자서전을 찍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일과 생활을 구분짓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웃음).....사실 내가 그렇게 좋은 상황도 아니지 않는가?



 
   

 


왕가위,
또는 정복되지 않는 시네아스트  
Julien Carbon(POSITIF)

 

왕가의 스페셜 = 왕가위의 두편의 '꿈의 걸작' <중경삼림>과 <동사서독>을 만난다. 홍콩의 밤거리를 유령처럼 스쳐 지나가는 두명의 남자와 두명의 여자에 관한 멜로 드라마와 느와르를 포스트 모던하게 그려낸 <중경삼림>이 왕가위와 고다르의 기묘한 만남이라면, 사막 한복판에 세워진 무림의 여인숙에서 세명의 무사들이 그려내는 절망적인 혈겁의 이미지 <동사서독>은 왕가위와 브레송의 황홀한 겹침이다. 홍콩에서 모더니즘을 꿈꾸는 왕가위를 다시 생각한다.

왕가위 작품의 모든 가치를 이해하려면, 홍콩영화에 작가주의를 복직시켜야만 한다. 초창기부터, 코미디에서 쿵푸에 이르는 모든 장르를 체계적으로 이용하여 그 기능을 유지해 온 홍콩영화 산업은 주기적으로 활기를 띠었으며, 대중의 전반적인 불쾌감까지도 사용해왔다. 이러한 홍콩영화 시스템의 독단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서로 받아들여 작가영화의 개념을 부여하려고 시도한 왕가위는 홍콩의 대중들에게 신비로운 감독으로 남아 있다. 그는 남성들만의 이야기로 복귀하고, 그의 재능은 네 편의 장편영화로 고전적인 북경어영화의 전통을 뒤흔들어 놓았다.

왕가위가 29세에, 첫 장편영화인 <열혈남아>(88)를 만들었을 때, 이미 10년전에 홍콩 뉴 웨이브 영화인들이 시작한 운동은 조용하게 소멸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에 서극과 허안화가 이끌었던 그 반란은 점차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홍콩의 중국반환이 선언된 80년대의 5년동안 활발하게 싸워왔던 홍콩의 상업영화정책에 복종하고 있었다. 대부분 해외 유학파였던 뉴 웨이브 영화인들의 개혁은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1977-80년에는 지배적인 장르가 없었다는 점이, 한 세대가 자유롭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왕가위는 아주 비판적으로 이 운동을 추종했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물결에 아주 이질적인 영화인인 담가명(홍콩의 데이빗 린치로 소개되는 기발한 감독)을 옆에 두고 자신들의 동맹을 형성하였고, 그 자신은 특별히 데뷔하기가 까다로왔던 상황속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홍콩영화의 흥행은 전적으로 오우삼의 느와르 영화 스타일에 지배되고 있었고 그의 아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감독들이 무의미하고 신경질적인 총격전에 생기없이 모방한 오우삼식의 주인공들을 화면 위에 쏟아놓고 있었다. 뉴웨이브 영화에도, 오우삼식의 영웅에도 가담하지 않은, 왕가위는 출발부터 고립되기 시작했다. 선의에 저당잡혀 몇 편의 경찰코미디영화, 특히 그 시기에 성공이 보장되었던 냉혹무비한 하드보일드 이야기의 시나리오작업에 참여했던 왕가위는 쉽게 신뢰할만한 영화인이 되었고, 당시에 가장 대중적인 팝스타인 유덕화를 출연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열혈남아>라는 소규모의 필름 느와르를 연출하게 되었다.자시의 선배들에게 등을 돌린 그는 이 첫 영화를 시작으로 개혁적인 작품의 첫 번째 토대를 마련하면서, 아주 은밀하게 상업적인 영화로부터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강요된 규칙(도시적인 느와르영화와 피할 수 없는 호화찬란한 시퀀스)에 순응하면서, 왕가위는 오우삼이 내놓은 다층적인 영웅과는 정반대의 영웅을 뛰어나게 제시하면서, 이 첫 번째 장편으로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오우삼의 영화에서, 필름 느와르는 무엇보다도 무협영화(특히 장철의 영화들)가 60년대 말에 중국의 신화 속에 임명해 놓았던 고전적인 중국영웅을 다시 재현하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문학적인 전통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한 몹시 지친 무사들은 단지 사나이들의 우정, 고매한 정신으로 뭉친 형제들과 벌이는 혈투, 그리고 마조히즘의 극단까지 희생하도록 강요하는 명예의 규범에 복종하는 모습으로만 묘사된다. 홍콩 고전영화의 전통을 잘 알고 있는 왕가위는 <열혈남아>로, 그리고 그러한 역학관계의 내러티브적 규범에 절대적으로 부합하는 외형 속에서 갱영화의 영웅적인 행동을 노골적이면서, 또한 통렬하게 비난한다. 오랫동안 오우삼의 영향 속에 있었던 마피아적인 스타일은 왕가위의 영화에서는 부드러운 티셔츠를 입은 난폭하고 성적인 건달로 뒤바뀌고, 당치않은 사랑, 그것 때문에 경찰서의 마당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고, 두 악당의 리더격인 대형은 얌전하고 아름다운 젊은 여자에 대한 열정보다는 죽음으로 그의 친구를 뒤쫓는 쪽을 택한다.

단호하게 홍콩의 영웅적인 영화전통에 등을 돌린, 강렬하고 기품있는 이러한 노력과 시나리오는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의 영향을, 스타일은 사부 담가명의 빈정대는 반어법에 동등하게 영향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괴한 짜집기 스타일의 연출에는 극성스러운 자연주의에서 나타나는 순간순간의 활기와 여전히 인기를 떨치고 있는 가라오케 비디오의 달콤하고 센티멘탈하면서 감상적인 미학이 뒤섞여 있다. 그러한 효과는 실패로 끝날 살랑, 불가능한 사랑, 혹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애인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기본적인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절도있는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순간들은 영화에 대한 열렬한 매혹을 충분히 보여준다.

왕가위의 영화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스펙터클한 쇼트에서도 신경질적인 리듬을 보여주는 홍콩의 상업영화와 같은 지평에 서기를 거부하고 있고, 그의 영화가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묘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의 영화 역시 진지한 영화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와같이 엄격하게 내러티브의 규범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서, 그리고 고전적인 중국영웅을 체계적으로 해체하면서, <열혈남아>는 과감하게 그러나 아주 조심스럽고 과장되지 않은 애정으로, 여성을 전통적인 중국여인의 이상적인 화신으로, 아름답고 연약한 존재로 그려내는 시인의 영화다. 중국의 고전적인 이분법적인 사고에 따라, 오우삼이 영화에서 양의 이상을 구현한다면, 왕가위 자신은 항상 그리고 단호하게 음의 이상을 구현한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비평가들에게 휼륭한 평가를 받은 <아비정전>은 왕가위 자신이 홍콩의 가장 중요한 영화인 중의 하나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타이틀은 현대 중국의 저주받은 걸작으로 남아있었던 한작품의 반란과 기상천외함을 예감하게 해준다.

왕가의를 '분더 킨트(놀라운 아이)'로 바라보며 흥행의 기적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있던 <열혈남아>의 제작자들은 1989년에, 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아주 대중적인 필름 느와르를 만들기 위해서, 홍콩의 여섯명의 대스타가 출연하며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사치스러운 기획을 왕가위에게 의뢰했다.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왕가위는 이 영화를 불완전한 것으로 인식했고 동일한 배우로, 첫 번째 영화의 여세를 몰아서 2부작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홍콩과 필리핀을 넘나들며 순식간에 예산이 초과되고, 촬영이 혼란스러워 그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왕가위가 영화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홍콩영화계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 기획은 북경어판 <천국의 문>의 유령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였고, 영화가 상영되자, 서양관객들은 또 다른 중국판 <퐁네프의 연인들>이라고 이야기 하는 정도였다(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과 레오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은 막대한 제작비를 투여했으나 흥행에는 참패한 영화들이다)

결국 두 번째 영화의 촬영은 완성판의 3분의 1에서 중단되었지만, <아비정전>은 1990년 10월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물론 흥행에 참패했다. 파졸리니식의 부랑자에 애정을 품고 있었던 왕가위는 남성스타를 변형시켰고, 특히 60년대의 환상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서구적인 배우들처럼 묘사되고 있다. 대중이 완전히 용인하지 못한 이 영화는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형식적인 면에서, 북경어 영화의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와는 매우 거리가 잇는 작품이었고,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는 홍콩의 뛰어난 영화인들에게도 종종 잊혀져 왔었던 질적 수준으로 끌러올리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을 홍콩의 금기시되는 주제를 공격하면서, 왕가위는 서구적인 영향(젊은 고다르와 파졸리니)아래, 다양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광들의 마을에서 영화광들의 이상적인 영화를 그려내는, 함축적인 의미의 작가주의적 방법(특히 화면 밖의 목소리)으로, 비주류 영화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단지 환상적인 토대에 근거를 두고 있는 홍콩을 그리면서, 왕가위는 여전히 무협영화 속에서 중국의 개념을 꿈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도달할 수 없는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있는 대중에게 폐부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들의 고유한 과거에 대한 이러한 환상적인 비전을 부정하면서, 관객들은 영화를 끈적끈적한 악몽 속에서 보게 되고, 반대로 거의 매 쇼트에서 곧 중국의 품에 귀속되는 식민지 홍콩의 가혹한 운명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게 된다.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든 과거에 대한 이러한 질문은, 또한 대중이 거의 이해하기 힘든 배우들의 모습으로 더욱 증폭된다. 헐리우드 황금기의 스타시스템과 비교될 수 있는 스타 시스템이 존재하는 홍콩영화 산업 속에서 배우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왕가위는, 가면을 씌우거나, 혹은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속에서 보여졌던 생각을 우스꽝스럽게 바꾸어버린다(<열혈남아>에서 장만옥은 마스크를 쓰고 있고, <아비정전>에서 유덕화는 경찰모자의 챙으로 얼굴이 가리워져 있으며, <중경삼림>에서 임청하는 금발가발과 썬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알아보기가 어렵다). 홍콩의 관객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도전들이다.

이렇게 왕가위는 중국의 영웅들을 공격하고, 동시에 스타들과 대중들에게 습관화되어 있는 리듬과 기억들을 부수는 강력한 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이 영화는 걸작이다. 아마도 최근 10년동안의 홍콩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는 결국 대만의 금마장과 홍콩의 금상장을 수상한 이후에 컬트작품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왕가위는 이 영화로 거의 3년동안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다. 동료들에게 건방진 말썽꾼으로 인식되었던 왕가위는 그때부터 저주받은 영화인이 되었고, 허풍선이라는 이미지로 낙인 찍혔던 이 영화인은, 이러한 비난으로 좌절하여 사라지기 보다는 중국영화사에 결정적인 작품인 방랑무사의 영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왕가위는 여전히 유럽 영화와 자기영화의 전통 속에 남아 있다. 이러한 용기있는 방식이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에서 계속해서 터져나오고 있다.

견고한 캐스팅으로 이루어진 홍콩영화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를 사용했다고 이야기 되는 그의 무협영화 <동사서독>은 극한적이고 기괴하게 비통한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또 다른 기억, 그러나 이번에는 아주 분명한 영화적인 기억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가혹하고 무의미한 실제를 그려내고 있다.

중국 무협영화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완전히 독특한 스타일로 연출한 왕가위는 모든 스펙터클한 측면들은 거부하고(촬영장소의 여건 때문에?)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존재의 이유 때문이다. 호금전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속에서 그려진 전형적인 인물들(우롱하는 반람자, 각성한 영웅과 기다리는 여인)은 본질적으로 난해한 문제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데, 호금전의 영화에서 배경이 되었던 광대한 무대는 이 영화에서는 여백에 대한 찬사로 그려지고 있고, 무림의 혁명가들이 펼치는 대결은 뛰어난 서스펜스를 보여주고 있다. 장르영화의 특징들 속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체계적인 거부는, 실제적으로 아마추어에게는 견디기 힘든 서사적인 시퀸스에서 여전히 더 잘 그려지고 있다.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무사들의 모든 대결을 다양한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B급 사무라이 영화의 미학에서 허명화의 공중을 나는 비상과 장철의 피투성이가 되는 쿵푸까지 그려내고 있는, 이영화는 정소동의 역사적이고 호전적인 인물로 마감되고 있는데, 이는 70년대 홍콩의 대중적인 영화에서 매우 강한 영감을 받고 있다.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제작방식의 사용은, 전투적인 연출을 피하고 잇지만 견고함을 보여주고 있다(그 점은 식민지 홍콩의 뛰어난 무협영화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인 홍금보가 이 영화의 동작지도를 맡고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움직임을 동결시키면서, 그리고 더 이상 인물들을 허무하게 사막에서 싸우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면서, 왕가위는 냉혹하게 잊혀진 후 샤오시엔에 대한 모든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냉혹하게 얼어붙은 도시에서 영화적인 기억은 거의 매일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으며 영화를 보존하는 것이 이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분명하게 이야기에 몰입해 있는 <동사서독>의 광적이고 용기있는 연출은 왕가위에게 정반대의 영화인 <중경삼림>을 만들게 하였다. <동사서독>의 거대한 기획으로 뒤처진 왕가위는, 여세를 몰아서 축소된 제작진과 소규모의 예산으로, 아무도 그들 앞에 그것에 대해서 보여줄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홍콩이라는 도시를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는 애정을 듬뿍 담고, 스스로가 평화로운 영화인의 영화, 청명한 영화를 보여주면서, 유럽적인 영향을 소화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왕가위는 본질적으로 예술가이며, 자기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는 홍콩영화 산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에서 왕가위의 영화는 이미 태연자약하고 응시적이며 연약한 것이다. 아주 참신한 개념의 홍콩영화.



 
   

 


왕가위,
새로운 이미지의 전염병  
홍콩영화제프로그래머,영화평론가 황 아이링

 

왕가위는 90년대 중반을 전후로 홍콩영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작품성은 높이 평가되나 흥행에는 실패한 <아비정전>(90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99년 대만 영화평론가들이 '투표'한 세 개의 중국영화 베스트10중에서 1위를 하였다. 그러니까 후 샤오시엔, 첸카이거, 장이모우, 차이 밍량의 영화들조차 뛰어넘은 셈이다), 수많은 논란이 된 <동사서독>(94)에서부터 기세등등한<해피투게더>(97)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이미 상업성과 예술성이 가장 교묘하게 결합한 작품으로 공인되고 있으며, 아마도<중경삼림>(94)은 왕가위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선 그 전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영화에서 자유롭게 펼쳐져 있는 서사구조, 장난스럽고 황당한 플롯, 자폐적인 인물과 독특한 화면은 느낌을 중시하고 정해진 규칙이 없는 영상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 MTV에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왕가위 영화의 스타일이 결코 낯설지 않다.

<중경삼림>과 비교할 때, <타락천사>(95)는 더욱 풍부한 서사적 디테일과 이상하고 보기 드문 플롯을 갖고 있다. 등장인물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으며, 그 화면은 더욱 세밀하고 사려 깊다. <타락천사>의 작은 플롯들은 모두 그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독립된 MTV와 같아, 서로 비슷한 도시적 감각을 가진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지역의 젊은이들에겐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가 없게 한다. 금성무가 죽은 돼지에게 안마를 해대거나 이웃 사람의 머리를 강제로 감겨주는 장면은 무의식중에 최근에 제작된 일본의 독립영화 속의 기괴함을 연상하게 하며, 이가흔이 어슴푸레한 조명과 사람하나 없는 지하철에서 빠른걸음으로 가는 장면은 마치 뤽 베송의 <서브웨이>를 보는 듯하였고, 왕가위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르에 대한 전복은 쿠엔틴타란티노나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 세대에는 일종의 공통된 문화적 기인과 생활 형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왕가위 영화는 바로 슈퍼 모던한 스타일로 90년대 영화예술의 대화에 참여한 것이다.

홍콩에서 왕가위는 새로운 영화인들의 문화적 좌표가 되어서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많은 홍콩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린 하이펑의 영화<천공소설>(95)과 <폐화소설>(96)이 비교적 두드러진 예이다. 린 하이펑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그가 만든 30분짜리 단편영화는 모두 상업 라디오 방송국의 보조금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결코 상업적으로 배급되지 않았으며 단지 시사회 형식으로 상영되고 그 관객은 대부분 15-20세의 청소년들이다. 감독이 상업적인 배급을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고해서 결코 제작비가 적은 것도 아니었으며(<천공소설>의 제작비는 100만 홍콩달러에 달한다), 이들은 더욱 자유로운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그들만의 영화적 실험을 하였다.

<천공소설>은 세명의 젊은이에 관한 소설형식의 스토리로 당대 홍콩 젊은이들의 상가 문화를 묘사한다. 그들은 상가에서 빈둥거리면서 일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들 앞을 지나지만 어떠한 친밀한 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각기 개인의 작은 세계안에 갇혀 혼잣말을 해대곤 한다. 전화로 연인과 유일한 관계를 남겨놓으며 복사기로 자신의 과거를 복제한다. 양덕창의 <공포분자>를 연상시킨다)영상 스타일, 편집 리듬에서부터 내레이션 위주로 된 흩어지는 구조에서 극단적인 자폐 상태에 빠졌으나 자기 만족적인 인물까지 모두 왕가위 영화의 느낌을 띠고 있다. 영화에서 청소년들이 작은 비디오 가게에서 TV스크린에 비춰진 <아비정전>의 주인공을 따라 혼잣말을 하는 장면은 왕가위 영화에 대한 함축적인 존경의 표시라고 볼 수 있다.

<폐화소설>의 실험적인 영화 언어는 <천공소설>보다 야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대사가 전혀 없으며 순전히 음향과 영상으로 14개의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치 MTV와 광고가 나열된 것처럼 린 하이펑, 간구오레앙과 갈미휘가 공동 작업한 영화<사면하와>(96)는 이런 영화의 형식적 실험을 상업영화에 응용한 케이스이다(갈민휘는 이 영화로 왕가위에게 '픽업'되어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과 장숙평의 미술의 협력 아래 <첫사랑>을 만들었다). 이 영화의 단편소설 같은 구조는 이미 왕가위 영화의 구조와 거리가 있다. 그러나 영상, 음악, 미술, 심지어 어떤 모티브의 운용(시계의클로즈업)은 모두 매우 '왕가위'적이다. <백금모>의 오군여는 <중경삼림>의 임청하와 <타락천사>의 막문위의 이미지를 완전히 모방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세 편의 영화에는 왕가위의 스탭들(미술감독인 장숙평과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이 참여하였는데, 그 의도가 물론 왕가위 스타일을 만들어내려는 데 있었다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도일은 특히 개성이 매우 강하여 컨트롤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촬영감독으로 단지 왕가위만이 그의 개성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이용하여 오히려 자신의 영화스타일의 구성요소로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감독이 만약 이런 경우를 잘 다스릴 수 없으면 오히려 촬영기사에 휘둘리는 난처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예가 <사면하와>이다. <킬러 삼분반>(지앙 지아쥠,96)과<둘 중에 하나만이 살 수있다>(유달지,96)는 모두 왕가위의 킬러 영화를 의도적으로 모방한 영화로, <킬러 삼분반>은 핸드헬드 카메라와 매우 문예적인 내레이션을 지나치게 사용하여 왕가위 영화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상대적으로 <둘중에 하나만이 살 수 있다>는 비교적 성공적인 작품으로, 지저분하며 히스테리적인 한 싸의 킬러 금성무와 이약동은 <타락천사>에 나오는 몇 명의 킬러들의 융합이자 변주이다. 그러나 일군의 뉴 웨이브 영화들이 왕가위의 영향을 받는 반면에 홀로 독특한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웨이 지아후이감독의<큰형님의 탄생>(1997)이 그 영화이다. 영화는 4를 가리키는 작은 바늘과 11을 가리키는 긴 바늘을 가진 손목시계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시계 앞에 잠시 머물다가 토실토실한 손을 향해 움직인다. 이 시간의 명시와 클로즈업의 사용은 쉽게<아비정전>을 연상케 한다. 반가운 것은 그의 영화가 왕가위 스타일과 또 다른맛이 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악목으로 이루어진 구조는<왕각사>의 이단식 환상 구조와 매우 비슷하다. 극단적인 블랙 유머의 황당함 그리고 장르영화의 일반적인 카메라 무빙의 형식들을 완전히 무시한 사방으로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한 '역전시키는 유희'는 정말 예상 못한 흥미로움을 가득 전해주며 오히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 가까울 뻔했던 요소가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 나오는 세기말적인 심리는 게리 플레더의 <덴버>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이 몇가지 예들은 홍콩영화가 이미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 세계영화와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런 표현이 편파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가 말하는 세계영화란 보통 미국영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왕가위 영화에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홀로 망연하게 가는 듯한 고독감이 있다. 사람들이 우연히 만났으나 그냥 지나쳐 좋은 기회를 잃고 만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이 형식과 스타일에 있어서 왕가위의 그림자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왕가위와 공명을 일으키고 끊이지 않는 대화를 만들어내는 작품은 유진위 감독의 <동서유기>(홍콩에서는 <서유기월광보합>,<서유기선리기연>으로 나뉘어 상영된 바가 있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진위의 영화는 늘 풍자적인 스타일을 유지하여 매 작품이 유희 중에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동서유기>는 월광보합으로 시공을 초월하나 역사를 바꿀 수 없으며 인간의 애정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지존보(주성치)는 뜻밖의 죽음을 당한 후에 비로소 진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과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나 이미 태어나면 슬프고, 죽으며 고통스러운 경지에 이르게 된다. 선계의 손오공이 된 그는 세속의 인연을 맺을 수 없다. "만약 이 사랑에 시간을 정하라면 나는 1만년으로 하겠소" 주성치가 처음으로 왕가위 식의 독백을 말할 때 우리는 그의 해학과 무정함을 비웃을 뿐이다(주성치가 두 번째 되풀이하여 말할 때 우리는 이 사랑이 영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유진위는 먼 서안의 대사막까지 가서 손오공의 전생을 촬영했는데 이 영화는 왕가위의 <동사서독>의 친밀한 속삭임에 비해 애절하고 슬픈 사랑이야기를 희희낙락거리며 말하고 있다. 아마도 홍콩에서만 이런 맛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데뷔작 <열혈남아>
   

1987년 왕가위 감독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행운의 기회를 얻게된다. 당시 그는 홍콩 영화계의 대부이자 홍콩 흑사회를 소재로 한 영화를 '홍콩 느와르'라는 한 장르로 정착시킨 등광영 밑에서 여러 시나리오 작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제작자로 나선 등광영이 주로 기획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던 것인데, 마침 그 당시는 홍콩 느와르가 인기 절정을 누리던 시기였다. 그리고 한 편의 히트작에 많은 아류작들이 대량으로 양산되던 시기여서 영화 감독과 스태프가 없어서 못쓰는 판국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는데, 왕가위 감독에게도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바로 그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한 발 앞서 감독으로 데뷔한 유진위 감독이 등광영에게 그를 강력히 추천했던 것. 더군다나 운좋게도 첫 데뷔작부터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등 호화 캐스트를 기용할 수 있었고, 등광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에 이른다.

<열혈남아>의 촬영은 순탄했다. 매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뜻밖에도 너무나 쉽게 그 문제가 해결되곤 했다. 그 한가지 예를 들면 촬영의 마지막 씬인 경찰서 씬을 찍을 때 일이었다. 장학우가 총을 들고 경찰서 안을 휘젓고 다니는 장면이었는데, 촬영에 협조하기로 했던 경찰들이 깜짝 놀라 촬영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개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날이 지나면 배우들과 스케줄을 맞추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왕가위 감독은 감옥에 갇힐 결심을 하고 유덕화와 장학우에게 경찰서를 습격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단 한 번의 NG도 없이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물론 촬영 후 경찰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지만 하루가 지나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잠잠해졌고, 영화 개봉에도 전혀 차질이 없었다. 그런데 홍콩, 대만,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그에게 최초의 명성을 가져다 준 <열혈남아>에 대해 왕가위 감독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한다. <아비정전>부터 왕가위 감독과 함께 일하게 된 두가풍 촬영감독도 그의 데뷔작을 보면서 촬영상의 새로운 시도나 탄탄한 스토리 전개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지 왕가위 감독과 처음 자릴 함께 할 때 맨 먼저 그 궁금증을 물었다. "도대체 그런 수작을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왕가위 감독은 "내 자유로운 발상과 새로운 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억누르는 제3의 인물 때문" 이라고 답했다.

왕가위 감독이 <열혈남아>의 첫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 등광영을 찾아 갔을 때 일이다. 등광영은 그의 시나리오를 보고는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배우들과의 스케줄, 촬영장소 섭외 등이 이미 다 끝난 상태였고, 몇 개월이 걸리는 시나리오를 다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첫 시나리오는 완전히 무시되었고, 당일 촬영분의 시나리오를 전날에 완성해서 등광영에게 허락받고 촬영에 임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감독으로서 자신이 추구하던 방향이나 새로운 시도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 결국 <열혈남아>는 제작자의 극심한 간섭아래서 촬영이 완료되었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작 왕가위 감독 자신에게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작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튼 <열혈남아>가 대성공을 거두자 그와 영화를 함께 하고 싶어하는 스태프들이 줄을 섰고,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홍콩 매스컴은 새로운 스타 감독의 출현을 놓고 연일 지면을 할애하면서 그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열혈남아>로 그는 제8회 홍콩 금상장 시상식에서 최우수 감독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하지만 단지 상업적인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감독상을 받지 못한다.

 

 
   
 

 
 
   
 장르에 예속되지 않는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에 나오는 로버트 드니로의 캐릭터를 모방해 구축된 <열혈남아>는 젊은 시절 거의 3, 4년간을 마시고, 싸우고, 달리면서 보냈던 왕가위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왕가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스텝 프린팅 기법이 이때부터 사용되고 있으며, 구룡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끝없는 잔인함과 타락에 지친 젊음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의 영화 중 가장 평이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과 작업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라는 것도 작용하긴 하겠지만, 이 첫 영화에서 그는 장르영화의 정석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모색했다. 그 결과 산업 시스템의 법칙과 작가 정신의 표현,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어정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관객들도 약간의 변형이 이루어진 이 새로운 작가의 느와르 영화에 환호할 수 있었다.

그가 데뷔작으로 (줄거리상) 갱스터 영화의 외양을 갖춘 영화를 구상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의 주류 홍콩영화였던 상업적인 갱스터 영화들이 만연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이에 자신의 영화가 마지막 갱스터 영화가 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열혈남아>는 그런 맥락에서 갱스터의 겉옷을 입고 있지만, 그건 단지 겉옷에 불과하다는 사실로 인해 홍콩느와르는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이 영화를 통해 홍콩의 실제 거리를 무대로 설정하게 되면서, 왕가위가 관심을 보인 부분은 음침하고 좁은 뒷골목과 현란한 네온사인이었다. 홍콩의 현실을 그 두가지 모습에서 발견한 왕가위는 그곳에서 방황하는 두 청년의 삶을 그려냄으로 인해, 지금의 홍콩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거역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삶을 어둡게 담아낸다. 비극이란 수십 년의 역사를 거쳐오며 비대해진 홍콩이지만 그 비대함은 곧 나약하게 무너질 미래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 예감은 어두운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힘없는 사람들의 짧은 인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분히 현실적인 전제를 이면에 포진시키고 있으면서도 영화의 줄거리와 형식은 사실감의 충실도를 넘어 상당히 양식화된다. 별로 길지 않은 상영시간 동안 화면에 나타난 인물들의 삶은 사랑, 의리, 폭력, 죽음등이 그 개념에 따라 명료하게 조작된 시퀀스들의 흐름을 따라 펼쳐진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현재 홍콩의 뒷골목에선 많은 사람들이 폭력조직과의 연계 속에 비극적인 삷을 살아간다는 개연적인 메시지와 그를 통한 현실인식의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홍콩인들이 겪고 있는 현재적 삶은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생활이면에 얼마나 다양하고 대립적인 동기와 현상을 포함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열혈남아>의 주인공들은 밤이면 등장하는 갱조직의 청년들이 아니라 대낮의 거리를 활보하는 직장인, 집안청소를 하는 주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되는 것이다. 현실적인 소재를 그 현실감으로부터 분리시켜 의도적으로 조작 및 배열한 것에 걸맞게 영화는 전반적으로 표현주의적 색채가 진하다.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어두움과 밝음, 그리고 형광색조를 기반으로 한 색채의 대비다. 홍콩의 밤거리를 비롯 대단히 많은 부분이 암울한 색조로 도색되어 있음은 이 작품의 전반적인 경향이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소화의 집과 소화가 은신처로 삼고 있는 레드립스바인데, 소화의 안식처가 어두움으로 묘사되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그의 불안한 삶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스스로 하여금 가장 편안한 곳 조차도 그다지 밝지 않은 곳임을 암암리에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암담한 현실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시간을 지속해야 하는 주인공들에게 유일하게 각인되어 있는 지향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소화에겐 아화와의 기억이었고, 창파에겐 고향이었다. 소화에게 있어 사랑 자체가 안식이 될 순 없었고 또 계속 머무를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남은 것은, 그리고 오히려 더 편안한 것은 그 기억이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 소화가 떠올린 것은 전화박스에서의 입맞춤이었다. 창파 또한 고향이 있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왜? 성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에게 고향은 언젠가는 돌아가야할 영원한 기억일 뿐이다. 정리하면 주인공들에게 있어 안식처는 그들이 떠나 온 근원으로서의 과거가 되는 셈이고, 현재는 그 과거의 시간으로의 귀환을 끊임없이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비참한 상황이 된다. 아마도 이러한 현재의 부정은 1997년 홍콩 반환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화가 죽지 않은 채 정신분열상태에 놓인 것은 다소 기이한 결말인데, 이는 오히려 감독의 의도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소화가 총을 맞고 죽었더라면 그의 과거지향은 비록 비극적이지만 종결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살아있음으로 해서 그의 회귀 갈망, 그리고 그 불가능성의 암울함은 현재진행형이 되어 여전히 그를 사로잡을 테고, 여기에 아화 또한 소화와의 과거를 끊임없이 환기함으로 인해 소화의 지향성에 편승한다. 지금의 홍콩인들을 염두에 둘 때 아직 끝나지 않은 불안한 현재 속에서 지속적으로 과거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감독의 결말은 그러므로 충분히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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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 등광영
감독 : 왕가위
각본 : 왕가위
촬영 : 유위강
미술 : 장숙평
출연 :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배급 : 골든 네트워크/ 모인그룹

-SYNOPSIS
이야기는 소화(유덕화 분)의 집으로 이모친구의 딸 아화(장만옥 분)가 병원진료차 찾아옴으로써 시작된다. (이와 같은 출발은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en Paradise>에서도 볼 수 있다.) 암흑가의 중간 보스인 소화는 어쩔 수 없이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에 갈등을 느끼면서도 스스로는 정당하고 떳떳하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그가 데리고 있는 동생 창파(장학우 분)의 계속된 사고로 자꾸만 조직간의 싸움에 말려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화는 아화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창파로 인해 그녀를 떠난다.

-TECHNIQUE
이 영화에 최초로 사용된 스텝 프린팅 기법과 슬로 모션은 다소 튀는 듯 사용되고 있다. 주로 폭력장면에서 등장하는데 이것은 폭력에 대한 왜곡이자 착시이다. 이 새로운 기법의 사용으로 왕가위는 구룡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끝없는 잔인함과 타락에 지친 젊음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소화와 아화가 부두에서 만나 전화박스에서 입맞추는 장면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이 영화에 포인트가 되는 밝은 부분으로 감독의 절제된 감정표현을 잘 나타내 준다. 어둡고 침침한 부두에서 아화의 손을 잡은 소화는 그녀를 데리고 전화박스로 뛰어간다. (뛰어가는 도중, 즉 동일한 샷에서 속도는 느려져 슬로우모션이 되는데, 이와 같은 화면은 <아비정전>에서 생모의 집을 떠나는 아비에게서도 볼 수 있다) 전화박스엔 밝은 빛이 켜져 있고 두 사람은 격렬한 입맞춤을 한다. 명암은 부두의 어두움에서 전화박스의 밝음으로 이동했다. 왕가위는 더 나아가 이 샷을 명전(bright-out)으로 처리했다. 전화박스의 밝음이 아예 화면전체로 확산되어 버린 것이다. 암울한 시공속에서 소화에겐 유일한 안식이 되는 아화와의 사랑이기에 밝음이 차용되었을 것이고, 그 사랑이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기에 어쩐지 불안한 밝음의 전면확산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끝부분의 경찰서 앞 저격장면 또한 밝음이 쓰인 부분인데, 소화와 창파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공간이 그토록 밝음은(게다가 이 장면은 일체의 소리를 죽인채 장막의 펄럭이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 총소리만으로 구성된다. 이 영화를 풀어 가는 동안 감독은 전반적인 미장센의 통일-색채대비/형광색조의 공간 등-에 덧붙여 세심한 부분에 있어 형식상의 정교함을 꾀한다. 소화와 아화의 어색한 시간 동안은 그들 사이에 일정한 장애물-테이블, 기둥, 음식-을 가로놓아 두는 구도라든지, 아화를 떠나는 소화의 버스가 로터리를 돌게 함으로 인해 소화의 시점샷이 자연스럽게 아화를 트랙킹하고, 이 장면은 부두에서 아화를 기다리는 소화의 트래킹샷과 접목되어 그들간의 정서의 통일을 구도화한 것과 같은 부분이 예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왕가위의 데뷔작으로서 이어 언급될 두 편의 영화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
   

<열혈남아>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왕가위 감독은 1989년부터 새 영화 <아비정전>의 촬영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제작자 등광영의 간섭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나름대로 자유롭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열혈남아>와 달리 촬영 및 제작상의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첫 시나리오는 1960년대 홍콩의 정치적 혼란기를 배경으로 당시 시위에 가담했던 두 어쨌든 당시 저주받은 영화라는 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었고, <아비정전>촬영 당시 허름하기 그지없던 황후(Queen's) 레스토랑은 몇 년 후 <아비정전>을 기리는 최고의 명소가 되어 지금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또한 <아비정전>오리지널 포스터는 현재 한화 약 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아비정전2>를 위해 미리 촬영해 놓았던 양조위 부분은 70%정도가 이미 그 당시에 완성되어 있다. 그러나 <아비정전>을 끝으로 왕가위 감독은 등광영과의 관계를 끊고 (지금까지도 등광영은 <아비정전2>를 만들기 위해 왕가위 감독을 만나려고 하지만, 왕가위 감독이 의도적으로 계속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파트너인 채송림과 손을 잡게 된다. 채송림은 대만의 유명한 제작자로 얼마전까지 유덕화의 영화사로 알려져 있는 천막전영유한공사의 대주주이고, 유덕화가 출연했던 <열화전차>,<천장지구3>등의 제작자이기도 하다.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완전히 뒤바뀌어 한 집에 사는 남자와 그를 둘러싼 여자들의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바로 우리가 보았던 <아비정전>이다. 영화의 스케일도 많이 좁아져 아비의 집과 필리핀 두 장소로 줄어들었다. 당초 구상과 실제 상황이 늘 어긋났고, 영화의 스토리는 물론이고 스케일도 점점 줄어들어 변질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의도했던 바에 못 미쳤고, 일은 자꾸 꼬이기만 했다. 필리핀에서의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고, 감독 자신이 담아내고자 한 것은 너무 많았다. 그는 약 1주일의 한정된 촬영 기간동안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매일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야했고,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결국 하루 3교대로 24시간 촬영이라는 강행군이 이루어졌다. 촬영 7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푸른 필리핀의 숲이 그에게는 아련하게만 보였다. 마치 꿈속에 있는 그런 느낌, 그는 심한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아비정전>의 개봉일자가 이미 확정되어 있어, 그가 원하는 대로 촬영을 연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거기에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예정된 첫 프리미어쇼에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을 보려고 몰려든 영화계 인사들, 매스컴 관계자, 배우들이 시사회장에 장사진을 이뤘다. 이때 이 영화의 제작자인 등광영은 후반작업이 늦어져 현재 현상 중이니 중간에 끊기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인사말을 하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들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비정전>은 초기 기획부터 이미 1,2부로 나뉘어진 영화였다. <아비정전>은 결국 예정대로 홍콩과 대만에서 개봉되었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서 흥분한 관객이 유리문을 깼다는 등의 상황이 홍콩과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졌던 것이다. 한편, 홍콩에서 <아비정전>이 흥행 참패를 겪게되자, 제작자 등광영은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왕가위를 죽이려고 살수를 보냈다는 신빙성있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다행히 이때 왕가위 감독은 대만 개봉을 위해 6명의 배우들과 함께 대만에 가 있어 죽음을 모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미완의 프로잭트 <아비정전>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아비정전에 붙는 수식어는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말이다. 당시 관객들에게 보여진 <아비정전>은 낯설음 그 자체였고, 무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담고 있었기때문이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화는 우리에게 최고의 걸작으로 재평가되면서 조금씩 그 베일을 벗게된다.

매우 섬세하고, 느린 듯 하면서도 빠른 움직임을 지닌 <아비정전>은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려 결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시간이 주는 순간들 간의 급격함을 지니고 있다. 왕가위 영화에는 그토록 가깝거나 혹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를, 지금 현재의 관객과 교묘하게 일치시켜 주는 일시적인 사이클이 있다. 이것은 왕가위가 순간적으로 압축된 무언의 효과 속에서처럼 마치 60년대가 은밀하며, 상상 가능한 시대였던 것처럼 복구가 거의 전적으로 부재한 순간에 밀착되어 있거나 동시에 만남들과 내적인 순간들, 혼란의 순간들, 그리고 매우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동시대의 정신을 포착하는데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4월인데도 몸을 조금 움직이면 벌써 피부에 땀이 번들거리고, 밤중에 스콜과 같은 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곳. 그런 열대에 가까운 풍토를 배경으로 침침하게 가라앉은 나른함의 쾌락을 충분히 맛보게 해주는 '홍콩'무드를, 그 자체로 잡아낸 영화가 <아비정전>이다.

<유가령이 있는 방>

이 영화에서 왕가위는 스토리 전개의 흥미를 넘어 '방'이라는 한정적인 곳에 그 번들거리는 시공을 잘라서 열어 보였다. 그곳에서 홍콩 영화계의 스타들이 모여 비 내리는 기나긴 밤의 나태한 무드를 전해준다. 그 생생함은, 장만옥과 유덕화에 비해서 유가령에게 섬세한 심리표현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반대로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전편을 통해 유가령만이 계속 쓰이는 나레이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장만옥과 유덕화, 그리고 장국영은 모두 나레이션을 통해서 이야기에 개입하고, 자신의 속 마음, 자신의 시점을 분명하게 한다. 그러나 유가령은 결코 독백을 하지 않는다. 장국영을 대신하려고 해도 대신할 수 없는 남자를 연기하고 있는 장학우처럼, 그녀 역시 장만옥에 비해 훨씬 직선적인, 말하자면 독백이 필요없는 등장인물로서 설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가령에게는, 오로지 장국영의 방을 채우는 '신체'가 된다고 하는 영광이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장만옥의 후진(지나갈때의 먼지)을 밀어 젖히며 등장함으로써 <아비정전>을 지탱하는 모티브를 분명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즉 단적으로 말해 <아비정전>에서는 모두가 계속 장국영의 방에 온다. 유가령이 허리를 흔드는 곳의 창에서 장학우가 엿보고 있다. 혹은 다시 장만옥이 경찰 유덕화에게 이끌려 온다. 모두가 차례로 장국영의 방에 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장국영의 방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를 바탕으로 조립되어 있다. 유가령이 있는 동안 장학우는 계단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또 거기에 위치하는 것이 버려진 여자 장만옥이며, 유덕화는 장만옥에게 반한다. 장만옥은 미련을 남기고 밤중에 아파트 주변을 걸을 수 밖에 없고, 유덕화는 그러한 그녀를 언덕 밑에서 올려다 볼 뿐이다. 물론 그러한 체계는 한동안에 지나지 않고, 영화가 전개되면서 유가령의 영광도 실은 덧없이 상실된다. 장국영이 떠난 후 그의 양모가 사는 집과 장만옥이 일하는 곳을 헛되이 찾아다니며 그를 그리워하며, 장만옥에게 "나는 이미 그를 잊었다. 이제 네가 괴로울 차례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므로. 결국 그녀는 가장 비참한 전락을 체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유가령이 전락할 때, 장국영 역시 전락한다. 장국영이 그녀를 방에서 쫒아버리는 것은 그도 방을 나갈 각오를 감추고 있는 것이고, 방을 나오면 결국 그는 파멸로 향해서 돌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때 뇌리를 스치는 것은 장국영의 방을 둘러싼 드라마의 중심부를 지탱하고 있던 유가령의 생기 넘치는 존재와 그 육체이다. 허리를 한 번 흔들어서 방 공기를 한 번 바꾸게 하는 그녀의 리듬은 우울한 장국영에게도 감염되어, 그저 일어나는 것이 전부였던 그가 라디오에서 흐르는 탱고에 맞춰서 허리를 흔들고 춤을 추며 나가는 장면을 만들어 나간다. 혹은 화면 가득히 잡힌, 침대에 엎드려 누운 유가령의 모습, 침울하게 미련을 안은 장만옥이 짐을 가지러 왔다고 하는 구실로 장국영의 방에 돌아왔을 때 그들 사이에는 슬리퍼를 둘러 싸고 말다툼이 생기고, 유가령은 소리를 질러버린다. "이런 것은 싫다."말로는 떠나겠다고 하지만 완고하게 장국영의 방을 더 나아가 침대를 비워주지 않고 장만옥을 내쫒아버리는 그녀의 아내 흉내는 아주 인상적다. 그리고 이것은 왕가위의 영화 그 자체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장면은 "만약 나였다면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라고 말하는 유가령을 감독이 설득하여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왕가위는 유가령이 연기하는 인물을 자신의 매력을 믿고 남자를 확실히 잡아서 놓치지 않는 여자로서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인물의 설정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즉 영화 속의 유가령은 남자의 방에 눌러 앉는 것, 방을 점거하는 것이 여자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알고 있으며, 사실 그 점에서 그녀는 <아비정전>이후의 왕가위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남자의 방에 들어가는 여자들'의 모티브를 한순간에 확립하는 존재인 것이다. <중경삼림>의 왕정문도, <타락천사>의 이가흔도, 그리고 좀 다른 듯 하지만 사랑이 떠난 후 그의 방을 차지하는 <춘광사설>의 장국영까지도 실은 유가령의 동생들이다. 남자의 방을 청소하는 이 가련한 여자들에 앞서서, 유가령은 마지못해서 이기는 하지만 바닥을 닦고 청소를 해보이고 한다. <아비정전>은 유가령의 매력을 훌륭히 끌어내면서, 그것과 동시에 감독 자신의 주제를 명확하게 제기한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장국영, 버림받은 아들 아비는 영화의 중요한 출발점이며 왕가위의 시대의식과 역사성이 함축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생모를 찾아 헤매고,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괴롭히고 부정한다.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는 어머니에 대한 보복심리 때문에 한 여자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여자들 사이를 배회한다. 일정한 직업없이 이상한 모자관계에 놓여 여자들로부터 부양 받게 되는 그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 듯 시계이미지와 소리에 휘감겨 있고 평생 죽을 때 단 한번 땅에 내려온다는 발 없는 새의 비운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피해의식을 갖고있다. 그는 날지 못하는 새이다. 무력한 아비는 이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시기가 오자 홍콩을 떠나고, 생모를 찾아야 한다는 열망이 생모의 외면 속에 시들해지가 필리핀의 숲을 가로 지른는 기차안에서 뜻하지 않는 최후를 맞는다. 유가령은 아비가 죽어 사라진 필리핀에 도착하고, 장만옥은 선원이 되어 떠나버린 유덕화의 순찰지역 공주전화 박스에 전화를 건다. 이런 엇갈리는 사랑에 대한 쇼트의 연결은 쓸쓸한 정서를 갖게 한다. "기억할 것은 잊지 않는다" 는 아비는 버림받은 것도,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를 버렸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지막 양조위의 쇼트는 군더더기가 아니다. 이것은 또 다른 아비에대한 묘사다. 홍콩이라는 동일공간에 살아가는 수많은 아비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화가 죽지 않은 채 정신분열상태에 놓인 것은 다소 기이한 결말인데, 이는 오히려 감독의 의도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소화가 총을 맞고 죽었더라면 그의 과거지향은 비록 비극적이지만 종결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살아있음으로 해서 그의 회귀 갈망, 그리고 그 불가능성의 암울함은 현재진행형이 되어 여전히 그를 사로잡을 테고, 여기에 아화 또한 소화와의 과거를 끊임없이 환기함으로 인해 소화의 지향성에 편승한다. 지금의 홍콩인들을 염두에 둘 때 아직 끝나지 않은 불안한 현재 속에서 지속적으로 과거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감독의 결말은 그러므로 충분히 비극적이다.

 

 
   
 

 
 
   
   

제작 : 등광영
각본 : 왕가위
촬영 : 크리스토퍼 도일
미술 : 장숙평
편집 : 해결위
음악 : 진훈기
출연 : 장국영, 장만옥, 유가령, 유덕화, 장학우, 양조위
배급 : 골든네트워크 /모인그룹

-SYNOPSIS

1960년대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는 것이 먼 악몽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젊고 매력적인 남자 Yuddy(장국영 분)는 수줍은 여자 Sue(장만옥 분)를 "우연히" 1분에서 3분에 걸쳐 두 번 만난다. 이 시간이 그가 말하는 "그들의 시간"이 된다. Sue에게는 그들의 만남이 로맨틱하고 형이상학적인 헌신이자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나 Yuddy는 Sue가 결혼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의 날개를 펴고 날아갈 준비를 한다. 계속해서 날아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죽을때에만 착륙할 수 있는 발없는 새처럼.... 그러던 중, Sue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선원이 되길 꿈꾸는 경찰관 Tida(유덕화 분)의 구애를 받는다. Yuddy는 새로운 사랑을 찾는데, 그의 새 애인인 Mini lulu(유가령 분)에게는 그녀를 헌신적으로 쫓아 다니는 남자(장학우 분)가 있다. Yuddy는 진짜 친가족이 필리핀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날개를 다시 접으며, 이번에야말로 착륙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Yuddy는 생모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지만 만나보지도 못한 채 빈털털이가 된다.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Yuddy는 한때 경찰이었고 Sue의 상처를 달래줬던 유덕화의 도움을 받지만 끝내 필리핀 암흑 조직에 의해 총격을 당한다.

-TECHNIQUE

<아비정전>의 이야기는 매우 개인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방향을 바꾸며 흘러가듯 읊조리는 나레이션에 의지하여 줄거리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이야기의 무게 중심은 사랑스럽고 냉혹하며 스스럼 없는 행동을 하는 매혹적인 한 남자(장국영)에 실려있으나 영화는 매우 공평하게 다른 등장인물들을 향해 계속적으로 이동하고 두 여자(장만옥과 유가령)중에서 이쪽 혹은 저쪽으로 혹은 그의 친구(장학우)나 곧 퇴장해 버릴 경찰관(유덕화)에게로 방향을 바꾼다. 이 영화가 196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것은 그 시기의 정서가 1990년대의 대립지점이면서도 그때가 지금의 시대를 위로해 줄만한 추억의 시간이기 때문으로, <아비정전>은 전작인 <열혈남아>에서의 절제된 양식화를 뛰어넘어 대단히 탐미적인 영상으로 가득 채워진다. 왕가위의 연출은 인습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자신의 의도가 최대한 살아날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다. 중단없이 지속되는 모노톤의 화면과 인내의 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나긴 롱테이크, 폐쇄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대화와 미장센, 그리고 줄거리의 경계를 넘어 오만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의 연속은 그의 극약처방의 토대가 되며, 그렇다면 이 작품은 대단히 거친 유미주의적 성향의 영화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두가지만 예로 들어보면, 우선은 아비가 남자에게 맞아 쓰러져 누운 계모를 찾아간 장면. 침대에 누운 계모의 쇼트는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바로 다음 쇼트는 물을 들고 들어오는 가정부의 장면인데, 여기서 역시 거울 속의 가정부로 출발점이 설정된다. 다음 쇼트는 계모를 때린 남자를 찾아간 다른 씬인데, 공간은 화장실이고 여기선 아예 양면이 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거울 쇼트는 예술적인 미장센에 많이 쓰이지만 그것은 항상 절제의 미를 내포해야만 한다. 하지만 왕가위는 절제의 한계를 무시한 채 다만 새로운 형식의 미학에만 몰두할 뿐이다. 또 하나의 예는 홍콩을 떠나 선원이 되었다는 유덕화의 나레이션이 흐르는 전화박스 장면인데(<열혈남아>에서도 유덕화와 장만옥에게 중요한 기점으로 작용했던 전화박스가 여기서도 동일 인물에게 적용되고 있다면, 우리는 여기서 작품간의 관계를 고려한 감독의 미장센과 아울러 작품의 분리를 넘어 배우간의 관계와 이미지를 연속시키는 구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장면은 모노톤의 색조와 유덕화의 나레이션, 그리고 텅 빈 거리의 공간감과 서정적인 음악이 혼합되어 유덕화의 장만옥에 대한 그리움과 떠남의 상황 속에 관객의 정서를 극단적으로 접목시키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감독의 실험적인 미학탐구가 담뿍 배어있다고 하겠다.

 

 
 














 

 
 
   
 시간에 관한 무협영화
   

왕가위 감독의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한 새로운 제작자 채송림은, 등광영과 달리 그에게 최대한의 자유와 재량권을 주겠다면서 그를 섭외했다. 그리고 제작자 채송림의 지원아래 영화 <동사서독>의 기획은 시작되었다. 장국영을 비롯해 양조위, 양가휘, 장학우, 임청아, 장만옥, 왕조현까지 홍콩의 최고의 톱스타 7명이 그의 대작 영화 <동사서독>에 캐스팅 된다.

1992년 그 당시 홍콩 영화계는 <천녀유혼>시리즈, <황비호>시리즈, <동방불패>시리즈 등 홍콩무협영화가 최고 절정기를 맞이했던 시기였다. 왕가위 감독은 채송림의 요구대로 당시 가장 비싼 값을 받을수 있었던 무협이라는 장르에 최고의 톱스타들을 기용해 제작가가 마음껏 해외 판매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채송림과 손잡고 <동사서독> 촬영에 들어가면서 왕가위 감독은 <열혈남아>와 <아비정전> 촬영 당시 여러가지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시도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시도해 본다.

영화<동사서독>은 이제 나이가 들어버린 '동사'라는 한 무사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영화가 시점도 거꾸로 진행된다. 현재의 '동사'를 시작으로 해서 영화의 마지막은 아주 먼 옛날 자신이 사랑했던 평생 잊지 못하는 여인이 존해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관객들이 <동사서독>을 보면서 줄거리를 이해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일반적인 영화들과 달리 <동사서독>은 영화의 줄거리, 즉 시간의 흐름이 현재에서 과거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어렸을 적 라디오에서 즐겨듣던 무협드라마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를 재현했다. 화면이나 글로 보는 무협이야기가 아니라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느끼고 상상할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은 다시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사서독>은 화면도 화면이지만 내레이션만으로도 하나의 스토리가 구성될수 있다. 세계 최초로 '내레이션'을 듣는 것 만으로도 즐길수 있는 무협 '영화'가 된 것이다.

촬영은 중국의 한 외진 사막에서 진행되었다. 이곳의 기후는 무척 특이했다. 자연환경 자체가 너무나 멋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외진 곳이었고,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생활하거나 오곡가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황량한 곳이었다. 또한 7명의 톱스타들의 모두 자신들의 스케쥴로 너무 바빴고, 따라서 그들을 언제까지 그곳에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그만큼 촬영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고, <동사서독>은 2년 간이라는 긴 제작기간 동안 무려 30만자라는 경이로운 수치의 필름을 써가며 촬영을 강행했지만 왕가위 감독 자신도 이 영화를 완전히 끝낼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 였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할수록 좌절감도 커져만 갔다.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을 촬영하면서 감독 생활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안목
   

<아비정전> 이후 <중경삼림>바로 전에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는 기존의 왕가위 영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전통영화, 즉 무협영화에 속한다. <동사서독>에는 여전히 왕가위가 자신의 이전 영화들에서 집착했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지만 이번에는 장르와의 접합 등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는 매우 놀랍게 나타났다. 그러나 일반적인 무협영화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메시지면에서 본다면 <동사서독>은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여러가지 면에서 더욱 심화되어 있다. 60년대라는 시간 속으로 되돌아갔던 <아비정전>으로부터 이 작품은 아예 어느 시대의 어느 공간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개념자체의 '과거'속으로 몰입한다. 그리고 그 과거 속에도 뒤엉켜진 시간의 혼란함 속에서 영겁의 과거조차 또 다른 과거를 지향한다는 극단적인 결론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과거의 형상은 고향이며, 그 고향은 복사꽃으로 상징화된다. 그러나 양조위와 양가휘 모두에게서 볼 수 있듯 복사꽃은 고향에 있는 아내, 매년 찾아가는 여인과 같은 그리움의 대상과 동격이 됨으로 인해 그간의 작품들에서 근원(고향, 생모)과 사랑하는 여인으로 이분화 되었던 과거의 기억을 하나로 통합, 정리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아비정전>에서 보여진 인물들간의 일방적인 애정의 관계가 여기서도 줄거리의 골자를 이루는 역할을 하고있지만 이제 그것은 지친 혼란의 외양을 벗어던지고 끝없는 기다림으로서의 '지향성'그 자체에 몰입하게 되어 차라리 안정적이다. 아마도 왕가위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은 개념적 '과거'속에서 단지 그리움만으로 일관하는 순간만이 지금의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비정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어가는 아비가 유덕화에게 한, "그녀를 만나면 난 다 잊었다고 전해줘"라는 대사를 상기해 보자. 취생몽사라는 술은 과거를 잊는 술이다. 구양봉이 떠나온 여인이 그 술을 황약사에게 준 것은 구양봉이 자신을 잊기를 바라며 구양봉에게 전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동일한 인물(장국영과 장만옥)임을 생각해 볼 때 취생몽사를 받아든 장국영의 대사는 이미 <아비정전>에서 나온 셈이 된다. 어쩐지 왕가위의 작품간에도 시간적 배열은 무의미한 것이며, 아울러 그저 잊고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그 속에 숨은 기억, 과거, 꿈, 근원에의 집착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배어 나오는 듯 하다.

 

   
 

 
 
   
 제작 : 채송림

각본 : 왕가위

원작 : 김용

촬영 : 크리스토퍼 도일

미술 : 장숙평

편집 : 담가명, 장숙평, 해걸위,광지량

음악 : 진훈기

출연 : 장국영, 양가휘, 장만옥, 유가령, 장학우, 양조위


-SYNOPSIS

과거의 어느 시점, 무사였던 구양봉(서독, 장국영 분)은 사랑하는 여인(장만옥 분)을 떠나 방황하다가 사막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주막을 운영하며 청부살인을 해줄 해결사를 주선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동쪽으로부터 찾아오는 친구 황약사(동사, 양가휘 분)가 있다. 어느날 그는 구양봉이 어떤 여인이 주었다며 과거를 잊는 술, 취생몽사를 가져와 마신다. 얼마 후 모룡연(임청하 분)이라는 사내가 구양봉을 찾아와 자신의 여동생(임청하 1인 2역)을 저버린 황약사를 살인해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한 몸에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던 모룡연은 황약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 채 검객이 되어 사라진다. 어느 날 한 무사(양조위 분)가 구양봉을 찾아와 해결사로 고용해 주길 바란다. 그의 눈은 멀고 있는데, 그는 눈이 멀기전 아내(유가령 분)가 있는 고향의 복사꽃을 보고 싶어했고, 그 노자를 마련키위해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아내가 다른 사내(황약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달걀을 대가로 지불할테니 동생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어떤 여인(양채니 분)이 머무르는 가운데 사내는 마적과의 결투 끝에 죽는다. 얼마 후 또 다른 사내 홍칠(장학우 분)이 나타나 마적과 싸우지만 단순한 그는 곧 아내와 함께 그곳을 떠난다. 구양봉은 떠나는 홍칠을 바라보며 떠나온 여인을 생각하는데, 실은 그 여인도 구양봉을 잊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녀를 사랑하는 황약사는 구양봉의 소식을 빌미로 매년 그녀를 찾았었다. 취생몽사는 그녀가 준 것이었으며, 얼마 뒤 그녀는 죽고, 그 소식을 들은 구양봉은 다시금 끝없는 떠남의 길로 들어선다.

-TECHNIQUE

메시지 면에 있어서 전작들과 큰 차이가 없는 작품이나, 형식에 있어 과감한 사각앵글과 시간의 배열을 뒤엎은 편집, 그리고 미리보기의 쇼트들과 과감한 이미지 커트들이 인상적인 영화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왕가위의 또 다른 실험정신이 발휘된 형식미학적 측면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는 그가 거침없이 새로운 시도들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은 편집이다.
먼저, 씬들간에 배열에 있어 왕가위는 줄거리의 시간적 순서를 해체, 그의 의도대로 재구성한다. 크게는 취생몽사를 들고 구양봉을 찾아오는 황약사의 모습을 처음에 두고 그의 여인과의 만남을 종결부분에 보여준 것에서부터 작게는 모룡연의 살인청부와 그와 황약사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전작에선 볼 수 없었던 편집상의 실험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속 '취생몽사'라는 술이 은유하듯 무의미한 시간개념을 뜻하고 있으며,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기억, 과거 그리움에의 집착이 여전함을 상기시켜준다.

또한 씬 내부의 편집에 있어서도 왕가위는 줄거리와 무관하게 이미지 샷(대부분 정적인 사막풍경의 롱샷과 기다림에 파묻힌 인물들의 샷)들을 배열한다거나 후반부에 나올 일 중 일부를 잠시 보여주는 미리 보여주기(<화이트>에서 문을 여는 줄리 델피의 샷과 같은)의 기법들을 사용한다. 이와같은 형식은 사막을 배경으로 한 인물들의 아득한 자기 정체와 합리적인 시간을 초월한 절대시간의 지배를 표현키위해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정서는 다분히 도전적이다.

그 외에 왕가위는 기울어진 프레임의 사각이나 거칠고 빛바랜 톤의 영상, 그리고 흡사 뮤직비디오의 한 부분을 보는 듯한 짤막한 씬의 삽입과 같은 다양한 시도를 행하고 있다.



 










   

 
 
   
 흥행성공작 <중경삼림>  
 

왕가위의 전작 두편이 모두 흥행면에서 참패를 거듭하자, 홍콩영화계는 '마'가 낀 영화, 저주받은 걸작만을 만들어 내는 그의 영화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기 시작했고, 돈을 벌고자하는 제작자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왕가위 감독 자신도 완전히 질려버린 영화 작업에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걸고 아무런 부담없이 단순히 재미로만 영화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중경삼림>이었다.

단 3개월의 촬영으로 완성된 <중경삼림>은 그동안 왕가위 감독이 대형 배우들만을 캐스팅하던 것과는 달리 완전 신인이라 할 수 있는 홍콩 신세대의 표상 왕정문과 금성무가 캐스팅되었다. 영화감독 출신의 라문이 모두들 외면하는 왕가위 감독의 새영화에 과감하게 투자했지만 넉넉지 못한 제작비가 신인 기용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신인을 기용한 것이 오히려 대단히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주로 밤촬영이 많았던 <중경삼림>은 홍콩에서 개봉되었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로서는 그래도 <아비정전>이나 <동사서독>만큼 흥행 참패를 겪지는 않았다. 한국에선 삼성 나이세스가 이 영화를 15만불이라는 아주 싼 금액을 주고 수입하였다. 그리고 흥행에 별 기대를 걸지 않았던 삼성측은 최소한의 홍보 경비를 들여 조심스럽게 이를 개봉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밖의 엄청난 대성공이었다. 개봉 첫날부터 메인극장이었던 코아아트홀에는 극장을 몇바퀴 둘러싼 긴 줄이 형성될 정도로 <중경삼림>의 열풍은 점차 확대되어 나갔다. 결국 <중경삼림>은 서울에서만 20만명이라는 관객이 동원되었고,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왕가위 붐'이 조성되었다.



 
   
   

 
 
   
 
 각본 : 왕가위

제작 : 유진위

촬영 : 크리스토퍼 도일

미술 : 장숙평

편집 : 장서평, 계걸위, 곽지량

음악 : 진훈기

출연 : 금성무, 양조위 , 임청하, 왕정문

-SYNOPSIS
<중경삼림>은 두가지 이야기의 옴니버스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으로 그동안 왕가위가 고수해오던 비극적 내용에서 탈피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영화의 첫 번째 이야기는 실연당한 경찰223(금성무)으로부터 시작된다. 223은 애인과 이미 헤어졌지만, 그런 사실이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223은 스스로에게 애인을 정리할 시간을 주게 되는데, 바로 애인과 헤어진 4월 1일부터 자기 생일인 5월 1일까지로, 그동안 그는 5월 1일로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은다. 애인이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며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떨쳐버리지 못하지만, 점차 실연의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가고, 마침내 5월 1일이 되자, 그는 새로운 시작을 할 결심을 한다. 그의 생일인 5월 1일이 되는 밤, 그는 술집에 처음 들어온 여자를 사랑하겠다는 엉뚱한 마음을 먹는다. 그 순간 술집에 들어서는 여자, 임청하.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둘은 만취되도록 술을 마신다. 새벽이 되어 지친 그녀는 쉬고 싶다는 말만 한 채 잠이 들고, 223은 그녀가 자는 동안 그녀를 지켜보다가 더러워진 그녀의 신발을 벗겨 깨끗이 닦아놓고 떠난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지 26년이 되는 시간에, 그는 그녀로부터 "Happy Birthday!"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두 번째 이야기에는 양조위와 왕정문이 등장한다. 왕정문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는데, 항상 '캘리포니아 드림'이라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언젠가는 캘리포니아로 떠날거라는 꿈을 꾼다. 양조위는 애인을 위해 늘 이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샐러드를 사가는 경찰관인데, 왕정문은 그런 그를 첫눈에 사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왕정문은 양조위의 옛 애인이 가게에 맡기고 간 이별의 편지를 보게되고, 우연히 그의 집 열쇠를 얻는다. 그 후 왕정문은 양조위가 외출할 때마다 그의 집에 찾아가 옛 애인의 흔적을 지워간다. 어느날 양조위는 자신의 집에서 왕정문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양조위와 첫 데이트가 있던 날, 왕정문은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가게 주인은 왕정문이 남기고 간 편지를 전해준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스튜어디스가 되어 캘리포니아에 다녀온 왕정문은 옛날의 가게로 돌아와 양조위를 만난다.

-TECHNIQUE
이 작품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좀더 발전된 형태의 스텝프린팅을 발견할 수 있다. 한프레임한에 속도가 다른 두 피사체를 구분하고, 여기에 스텝프린팅 광학효과를 덧입힌 것이다. 이 장면은 왕정문이 스낵바에서 커피를 마시는 양조위와 그의 뒷배경으로 빠르게 흐르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은 쇼트에서 드러난다. 이는 촬영단계에서 정상 속도보다 느리게 커피잔을 드는 양조위와, 정상속도보다 빠르게 걷는 배경의 인물들을 저속촬영(초당 10프레임 정도의 패스트 모션으로)한 후 여기에 스텝프린팅 효과를 덧입혀 뒤의 움직임은 흐르는 잔상효과가 가시화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양조위는 정상속도에 가까운, 느린 움직임으로 보이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 <타락천사>  
 

흥행면에서 좌절을 거듭하던 왕가위는 뜻하지 않은 한국에서의 <중경삼림>의 선전에 고무되어, 전작보다 비교적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제작환경을 얻게된다. 그는 <중경삼림>의 세 번째 에피소드로 영화화하려했던 이야기를 독립시켜, 그 연장선상에 <타락천사>를 배치시킨다. 따라서 왕가위 감독은 두 영화 사이에 수 많은 공통점과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계속 전화를 거는 <중경삼림>의 금성무, 역시 계속 전화를 걸며 잃어버린 애인을 찾아 다니는 <타락천사>의 양채니. 그리고 주인공 간의 커뮤니케이션 단절 및 거부도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홍콩 영화계에서 한국 시장의 영향력은 크게 작용하게 시작했고, 왕가위 감독은 <중경삼림>의 여세를 몰아, <타락천사>의 성공까지 보장받기 이르렀다. 한국에서 왕가위 붐이 조성되자, 그가 기획중인 새 영화들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는 한번에 세 편을 동시에 기획하는, 감독에서 제작자로까지 변신하게 된다. 다작이 보편화된 홍콩에서도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일로, 그의 새 영화들에 대한 한국업자들간의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결국 이 세 편은 모두 이전의 왕가위영화를 주로 배급해왔던 모인그룹에게 배급권이 돌아갔고, 현재 왕가위는 모인그룹을 한국의 공식 매니지먼트사로 인정하고 있으며, 모인그룹의 대표이사인 정태진은 왕가위영화의 공동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무튼 이 세 편의 영화는 <북경지하>, <부에노스 아이레스 해피투게더>, <첫사랑>으로, 이 중 두편의 영화는 이미 개봉된 바 있다.

언제나 흥행면에서는 저조했던 그는 이제 이 영화로 유럽, 미국, 일본 등지의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찬사를 받게 되고, 동시에 명작을 만드는 동양의 시네아티스트로 평가받게 된다. 특히, [펄프픽션]으로 유명한 미국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왕가위 감독의 작품성을 인정하여 그의 작품의 미국배급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왕가위의 시선, 응시에서 왜곡으로 <타락천사>
   

특정한 줄거리보다는 분위기와 주제로 연결된 이야기 <타락천사>는 비주얼 스타일 리스트로서의 왕가위 감독의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케해주는 작품이다. 감독은 인물과 공간의 시점 전개에 있어서 매우 독특한 시네아스트중의 한사람이다. 그이 컷 전개 양상은 한 인물을 묘사하는 평범한 씬에서도 그것들을 둘러싼 공간과의 연계성을 모호한 방법으로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중경삼림]에 이어 [타락천사]에서도 인물을 둘러싼 배경은 작품의 정신(Spirit)을 설명하는 중요한 메타포(은유)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와이드 앵글 렌즈를 사용해 사실보다 거리감을 증폭시킴으로써 홍콩거리를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줌과 함께 세계로부터 소외된 개개의 자아, 혹은 그들의 진공상태로만 존재하는 미래를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촬영시 절재된 조명과 이동 가능한 보조 조명을 사용함으로써 인물의 고독함과 광적인 비탄으로 치솟는 우울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두쌍의 커플은 모두 절름발이 사랑을 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한계가 지워져 있다는 전제로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일상은 미미하고 데데하다. 세계와의 대화의 통로가 굴절되어 버린 인물들은 도시 속에서 살아 내기 위한 힘겨운 몸부림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극단을 향하고 있다 해서 그들의 삶이 비극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자신과 세계를 긍정하려는 인물들의 마음속 한구석의 미약한 따스함이 불모의 도시에 희망을 예고하고 있다. 왕가위의 다섯번째 영화[타락천사]에서 변화한 그의 영상 미학을 읽는다.

극중 인물 분석

No.1 여명

타락천사 no.1의 미래는 진공상태이다. 그는 청부살인에 필요한 살인할 사람, 장소, 시간이외에는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타락천사 no.2는 세계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그는 세계와 총으로 대화한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살인행위에 회의를 느끼고 타락천사 no.2의 곁을 떠난다. 그는 세계와 다른 식으로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의 주위로는 질기고 질긴 어둠이 휩싸여들고......

No.2 이가흔

타락천사 no.2는 세계속에 스스로 자신을 소외 시켜 버린다. 그녀의 이성은 철저히 자신 이외의 모든 세계를 부정한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은 세계 전부가 아니더라도, 단 한사람 만이라도 긍정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타락천사 no.1의 침대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닫친 의식에 조그마한 출구를 제공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슴속에 움트는 그지없는 외로움을 달래줄 수 없다

No.3 금성무

5세 때 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난 후 말을 잃어 버린 타락천사 no.3. 그는 밤마다 주인 없는 상점을 침입하는 행위로 자신의 언어를 대신한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타락천사 no.4에게 버림 받은 후 그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인해 치유 받을 수 있는 것. 그의 상처에 뽀얀 생살이 되어 줄지도 모르는 타락천사 no.2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어두운 밤길을 질주한다.

No.4 양채니

어느 날 타락천사 no.4는 그녀의 애인을 다른이에게 빼앗긴다. 그녀가 빼앗긴 것은 그녀의 애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었다. 결국 그녀가 타락천사 no.3과 힘께 찾아나선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어느날 스튜디어스가 되어 나타난 그녀는 타락천사 no.3를 끝내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정리한다.

No.5 막문위

타락천사 no.5는 누군가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두렵다. 자신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금발로 염색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극대로 과장하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 어느 비오는 밤 타락천사 no.1을 만나게 되고 그와 짧은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타락천사 no.1은 그녀에게 있어 단지 과정의 한 부분이었을 뿐 그녀에게 머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녀의 무엇인가를 잃어 버렸다는 상실감은 그녀를 다시 거리로 내몰 것이다.



 
   
 

 
 
   
 
 감독 : 왕가위

각본 : 왕가위

촬영 : 크리스토퍼 도일

미술 : 장숙평

편집 : 장숙평

음악 : 진훈기

출연 : 금성무, 이가흔 , 양채니, 막문위, 여명



-SYNOPSIS
금속성의 고독을 지니고 있는 황지명(여명扮)은 청부살인 업자이다. 그는 그에게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과장(이가흔扮)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동업자로서 철저히 개인 감정을 배제하는 과장은 황지명을 향한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나 스스로 세계 속에 자신을 소외시켜 버리는 오래된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어느 날 살인 행위에 회의를 느낀 황지명은 헤어지자는 메시지의 노래를 남긴 후 과장의 곁을 떠난다. 사실을 알고 난 과장은 또다른 청부살인 업자에게 황지명의 살인을 부탁하고.......

5세 때 유통 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은 후 말을 잃어버린 하지무(금성무扮)는 자신의 언어를 밤마다 주인 없는 상점에 침입하는 행위로 표현한다. 어느 날 하지무는 찰리(양채니扮)라는 여인을 만난다. 찰리는 하지무와 함께 자신의 애인을 빼앗은 '링'을 찾아 나서게 되고 그런 중 하지무는 찰리에게 자신의 결락감을 채워줄수 있을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찰리는 떠나 버린 애인을 잊지못하고 .... 하지무와의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천성적인 낙천성을 타고난 하지무는 버림받은 자신을 스스로 위로 하지만 실연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고 .....

같은 아파트(장소?)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로 깊이 알지 못했던 하지무와 과장은 서로의 모습 속에서 치유하길 없는 상처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낸다. 늦가을 저녁 ......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달리는 둘은 도시의 스산함이 아닌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인물소개>


타락천사 No.1 여명

타락천사 No.1은 킬러이다. 그는 타락천사 No.2를 통해 일거리를 얻는다. 그는 No.2를 사업상으로는 좋은 파트너라 생각하지만 연인으로는 끝내 관계할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No.2에게 동전 하나와 암호명 1818(쥬크박스 노래번호)을 남긴 후 그녀의 곁을 떠난다. 노래의 제목은 망기타(그를 잊는다는 것) 그후 그는 옛사랑 타락천사 No.5를 만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단지 하루 밤을 보낼 여자가 필요 했을 뿐.....

타락천사 No.2 이가흔

사업상 철저히 이성적이길 원하는 타락천사 No.2. 하지만 그녀가 앞머리칼을 헝클어뜨릴 때 감성적인 한 여인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타락천사 No.1이 집을 비우는 사이 그의 방을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그의 침대에서 자위행위를 한다. 그러한 혼자만의 행위로 자신의 빈가슴을 채운다. No.1이 떠난 후 슬픔에 젖지만 그들은 끝내 사업상의 파트너로만 존재한다. No.1의 살인을 다른이에게 부탁한 후 어느날 타락천사 No.3를 만나 다시 앞머리칼을 헝클어 뜨리는데......

타락천사 No.3 금성무

5세 때 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난 후 말을 잃어버린 타락천사 No.3. 그는 밤마다 주인 없는 상점을 침입해 장사를 한다. 어느날 타락천사 No.4를 만나 때늦은 사랑을 경헙하지만... 그녀에게 쉽게 잊혀지고만다. 뒤이어 아버지가 죽고난 후 그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한다. 그는 다시 상점에 침입한다. 상처 받지 않을듯한 크고 튼튼한 상점을......

타락천사 No.4 양채니

어느날 타락천사 No.4는 그녀의 애인의 결혼소식을 듣게된다. 타락천사 No.3와 함께 애인을 빼앗은 사람을 찾아 나서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린 듯 공허해 한다. 어느날 스튜어디스가 되어 나타난 그녀는 No.3를 일부러 알아 보지 못한척함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정리한다.

타락천사 No.5 막문위

타락천사 No.5는 No.1에게 잊혀진 여인이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금발로 염색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극대로 과장하는 등의 기이한 행동을 한다. 어느날 No.1과 재회 하지만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다시 자신의 곁을 떠나는 No.1에게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 부탁하다. 그러나 No.1은 그녀에게 있어 과정에 지나지 않는 사람일 뿐......

-TECHNIQUE
술집에 멍청히 앉아있는 양채니의 장면에서 쓰인 스텝프린팅은 <열혈남아>에서보다는 복잡하고 <중경삼림>에서보다는 간단한 방법이다. 이 장면에서 역시 뒷배경의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앉아 있는 양채니는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 정지된 듯한 효과를 얻고 있다. 이는 보통의 패스트모션으로 촬영한 효과와 달리 뒷배경의 인물들이 흐르는 듯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프레임 앞에 앉아 있는 양채니의 모습에선 정지화면의 분절된 효과가 가시화된다.

이같은 스텝프린팅 효과는 시간의 개념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왕가위 감독의 의도와 맞물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으며, 이외에도 <타락천사> 등에서 빈번히 사용되었던 광각렌즈의 굴절효과나 <동사서독>, <부에노스 아이레스 해피투게더>에서 사용된 사각앵글 등은 이제 '왕가위 스타일'을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다. 사물과 세상을 뒤틀리게 바라보고, 정상적인 시간의 속도감을 연장시키는 효과, 그리고 아이레벨의 일반적 가시 영역을 확장시키는 왕가위 영화의 몇가지 효과들을 나타내고 있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행려자들의 추억을 담은 영화
 

세계 초유의 아트디렉터로서 전세계 영화인 및 그의 매니아들의 주목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그의 차기작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제 50회 깐느 영화제에 『해피투게더』라는 제명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전통적인 장르영화의 속성인 기승전결의 완결된 형식을 파괴해 온 왕가위는 열려 있는 플롯과 실험적인 카메라 앵글로 늘 새로운 영화적 구성과 화면을 창조해 각광받아왔다. 그는 그의 여섯 번째 작품 『해피투게더』에서 세계 최첨단의 디지틀 카메라가 연출한 총천연의 화면을 사용, 흑백과 칼라를 넘나드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다양한 기호를 파생시키고 있다. 탱고, 폭포, 키스, 결별, 언어, 흑백화면, 조명탑, 패스포트, 손지도 등 작품 내의 수많은 기호들의 상징에 대해 감독은 관객들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남미의 파리로 불려지는 화려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뒷골목 빈민가의 작은 바에도, 밤이 되자 손님들이 모여들고 흥겨운 탱고판이 벌어진다. 그 곳의 샌드위치맨 일을 하는 양조위와 바에 오는 손님들의 춤상대를 하는 장국영은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음지에서 생활하는 떠돌이 이방인이다. 빈민가 낡은 호텔의 침실에서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게이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다. 『해피투게더』의 사랑은 가장 인간스런 그래서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보편적이고 순수한 사랑이다. 감독은 이러한 사랑의 감성을 인습이나 이데올로기로 거르지 않은 채 본연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 시간과 공간, 성별과 같은 모든 종류의 선택된 편견들을 초월한 것임과 사랑을 느끼는 두사람의 감정은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진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독은 양조위와 장국영의 탱고씬은 영화 내에서 홍콩에서 온 두 남자가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방인인 두 남자의 우수짙은 사랑과 들큰하고 칙칙한 남미의 초여름, 웅장한 폭포와 황량하게 뻗은 고속도로는 애절한 선율속에 정열적인 몸놀림의 탱고와 리드미컬하게 섞여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등장하는 장국영과 양조위는 그들의 뿌리를 떠나 부유하는 이방인이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홍콩의 정반대 위치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떠나간다. 이 남미의 황량한 오지야말로 철새처럼 구름처럼 부유하는 행려자·이방인들에게 있어 시한부의 아늑하지만 불안정한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언제 떠나고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 이별도 만남도 모두 이 안에 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생기는 아픔조차 감독은 시한부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해피투게더』를 영화의 제목이자 배경으로 사용한 감독의 의도도 이들의 방황과 분리가 반드시 아픔이나 슬픔만이 아닌 행복한 내일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은 아닐까



   
   

 
 
   
   
 해피 투게더--- 제작노트  
 

스토리
남미의 쌀쌀한 초여름, 지구상 홍콩의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에는 네온 간판의 화려한 빛이 새벽까지 흘러나온다. 그 환한 빛 아래 애절한 선율에 맞춘 탱고 무용수의 정열적인 몸놀림과 아르헨티나의 음지에서 하류층이 겪는 모든 생활을 섭렵하며 살아가는 두 이민자의 사랑이 있다. 한 사람은 기약 없이 훌쩍 떠났다가 바람처럼 나타나 그만을 기다리던 연인과 잠시 동안의 사랑을 나누고 떠나가고,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이런 연인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언젠가 그가 떠날까 하는 두려움에 하루하루 절망과 기대가 교차하는 감정의 격변을 지닌 채 살아가는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할 수밖에 없는 연인을 붙잡을 수도, 떠나 보낼 수도 없는 그는 결국, 홀로 서고, 짧은 이별을 뒤로 한 채 내일로 향한 도로에 서는데...

40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깐느 출품작
프랑스, 한국, 일본이 공동 출자한 이 영화가 4월, 후반작업을 끝내고 오는 5월 제 50회 깐느 영화제 경쟁부문 본선에 진출하기까지, 왕가위 감독 특유의 비밀스러운 연출방식과 끊임없는 시나리오 수정으로 호기심을 유발했던 『해피투게더』의 제작과정은 이 영화가 세계 언론의 발이 미치지 못하는 남미의 현장의 촬영과 동성연애 소재라는 점에서 세계 언론의 기대를 부채질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장로케
이 이국의 분위기는 감독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자극해 그는 그의 영화 사상초유의 40만 자라는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사용하였다.

왕가위는 항상 그의 영화에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인간관계 내에서의 의사 소통의 단면을 그려내 왔다. 그는 온갖 종류의 엇갈리고 비껴 가는 감정의 층을 예리하게 들여다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제시한다. 그러기에 퇴폐적이고 충격적인 동성의 사랑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실망할 것이다. 물론 감독은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관객 각자에게 맡긴다. 그러나 애초에 감독은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낭만'과 '당사자들 외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죽음의 과정'을 그리고 싶어했고, 당연히 이러한 사랑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이 아니고 동성들 사이에서도 모두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결국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그 곳에 머물러 있다

1962년 홍콩, 상하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두 가구가 동시에 이사를 온다. 무역회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리첸(장만옥)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지역 신문의 데스크로 일하는 차우(양조위)와 그의 아내가 그들이다. 리첸의 남편은 사업상 일본 출장이 잦다. 차우의 아내 또한 호텔에서 일하는 관계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차우와 리첸은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거리에서, 아파트에서, 음식을 사러 나가면서 자주 부딪치게 되고, 더욱 가까워진다. 차우는 리첸이 아내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으며 리첸은 차우가 남편과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배우자가 자신들 몰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리첸은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지도 못한 채 슬픔에 흐느낀다. 차우는 그런 리첸을 위로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일생을 다 바쳐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 화양연화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의미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절제된 대사와 연기로 처음부터 예정된, 이루어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을 표현해냈다. 그 사랑의 순간들은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다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내 곁의 사랑이 절대적인 사랑일까'라는 절실한 물음에 감독은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비밀을 조심스레 건네며 그 답을 대신한다.

장만옥, 양조위, 씨네아스트 왕가위 그들이 다시 만났다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화양연화>에 이 두 배우 외에 다른 얼굴들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비정전> 이후 다시 호흡을 맞추는 왕가위 감독과 양조위, 장만옥. <화양연화>는 이 세사람을 위한 영화인 것이다. <첨밀밀> 이후 3년 동안의 휴식을 끝낸 베를린 여우주연상의 장만옥은 화면 가득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고통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차우'의 역의 양조위는 침묵과 사랑을 가슴에 묻어두는 안타까운 감정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해냈고 깐느는 그에게 동양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이런 이들이 서로 바라보고만 있는 눈빛, 잠시 스쳐가는 손만으로도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왕가위 영상 미학의 절정

<화양연화>는 느린 영화이다.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등 이전에 그가 보여주었던 고속 촬영과 현란한 카메라 워크, 숨막히게 이어 붙이던 편집 방식으로 "빠름"이라는 왕가위식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그러나 <화양연화>는 그와는 정 반대선상에 놓여 있는 듯하다. 슬로우 모션과 스톱 모션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1960년대 홍콩의 "느림"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클로즈업 샷을 통해 장만옥의 부서질 듯한 섬세한 아름다움, 양조위의 침묵을 세세하게 잡아낸다. 카메라가 영화 속 시공간을 느릿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파고들수록 관객들은 양조위와 장만옥의 내면에 닿게 되고 그들과 함께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야기가 아닌 감정을 풀어내는 왕가위식 스타일의 절정이 아닐까?

비밀을 간직한 곳,앙코르와트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사랑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길 원치 않았어요.
비밀로 간직하길 원했던거죠. 두 사람은 산으로 갔답니다.
비밀을 묻기 위한 나무를 찾기 위해 나무를 발견해내고는 구멍을 팠죠.
두 사람은 그 구멍에 비밀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구멍을 진흙으로 메웠구요."
화양연화의 마지막 촬영지는 앙코르와트였다. 크메르왕국의 비밀로 남은 앙코르와트.....
양조위는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앙코르와트로 떠났다.
그리고 그 곳에 사랑을 묻고 왔다.


▶ 제작일지

1996년 겨울 대만 해피투게더 촬영 현장, <북경지하> 첫 구상과 촬영
1998년 여름 베이징 천안문 광장 촬영 1998년 여름 중국 정부의 검열로 촬영 중단
1998년 홍콩으로 촬영 장소 이동, <북경지하>에서 <화양연화>로의 스토리 변동
1999년 촬영 종료
2000년 4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보충 촬영, 깐느영화제 본선 경쟁작 진출 확정
2000년 5월 10일 깐느영화제 개막 5월 19일 오후 4시 왕가위 감독 파리에서 화양연화
------ 편집 및 자막 작업 5월 20일 오전 8시 30분 깐느 상영

▶ 감독의 변

아비정전 그 이후 화양연화를 촬영하면서 내내 많은 사람들이 <아비정전>의 속편은 언제 촬영할 것인지 나에게 질문해왔다. 그리고 화양연화가 <아비정전>의 속편인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아마도 시간적인 배경과 장만옥의 극중 이름이 같아서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굳이 답을 구한다면 <화양연화>는 감정적인 면에서 <아비정전>의 3편이라고 볼 수 있다. 2편을 건너뛴 3편의 감정들이 <화양연화>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출처-화양연화공식홈페이지>
   



화양연화

사랑하면서....너무나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못내...그 사랑에 대한 향기를 잊지못하면서.....그들은 떠나간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영상, 빨간색, 빗소리, 국수통, 넥타이, 가로등, 좁은골목, 타자기, 검은우산......

숨이 멈춰질것 같은 정적감, 발자국 소리...그들은 도대체 왜 사랑했을까?

바람난 유부남,유부녀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격조있는 행동, 옷차림,
말투.....
자신들의 남편, 아내와는 다르다라는 의식에...자신들의 감정을 억제하는..... 아니 억누름을 강요당하는....그들은......차우는....첸부인은....

느리면서도 빠른 워킹....
그들은 외롭다. 쓸쓸하다. 왕가위가 언제나 그렇듯이....그들은 가정이 있어도 고독하다. 매일 저녁 국수통을 들고.....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져 저버리지 않으려는 도도한 복장의 그녀는...어두운....고독의 골목을 걸어간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사랑해 버리고 만....그는....끝내....상처를 안고 고백하지만...이미 늦어버린...그래서 떠날수 밖에 없었던....그는...
허한 가슴을 이끌고...2046호에서 아파하고 고뇌하며 글을 쓴다.

이별연습.
이별에 연습이 있단 말인가.....어짜피 해야한다며....첸부인의 눈물.... 억제할수없는....사랑하기에 떠남이라는 생각만으로 자신을 주체할수없는...
그러면서도 보낼수밖에 없는.....택시안에서의 미세한 손의 포갬이.... 사랑의 절정이라고 믿는다면 우수은 일일까?

60녀대의 홍콩에서....그들은 그렇게 설레임과 죄책감으로 사랑을 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남아 있는걸까?

장만옥의 그 애련하고 화려한 의상은....사랑의 슬픔을
더 깊게 만들어준다. 사랑을 억누르는 몸짓의 아름다움.
어떤 영화보다도 깊은 우수의 미를 보여준 그녀.....국수통을 들고 골목길을 거닐때의......비오는 처마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마치 누군가 절절히 간절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사람처럼.....
그녀의 뒷모습을 쓸쓸하다.

고깃고깃한 와이셔츠에.....넥타이. 사무적이고 수동적인 양조위.
그가 거머쥔 칸의 트로피는 철저하게 사랑하면서 드러내지 않는
표정과 내면연기의 힘이었으리라.
마음껏 울고싶고 소리치고 싶었지만....그럴수없이 묵묵히 돌아서야만 했던...사랑한다고 열정적으로 모든걸 고백하고 싶지만.....그저....
하염없이 떠나야만 했던...그 묵인에 대한 경의의 트로피.

냇킹콜....
그리고 모든장면에 깔렸던.....음악들.
가슴속을 마구 파헤치는.....아픔으로 달려드는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이란 이렇게 절절하게 영상과 매치되어 사람을 아프게 할수있음을... 호흡하며....

진정 사랑한다면......상대방의 숨결과 손짓, 뒷모습까지 사랑한다면....제발 떠나지 말아다오. 모든걸 버리고 곁에 남아다오.
사랑하면서 마음이 쓸쓸해지는 일은 더이상 없도록.....
제발.....사랑이 남아있다면....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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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사랑은 항상 뒤돌아서 있다.
마주서서 보지 못하고 항상 서로를 쫓아가며 잃어버린다.
갖고싶어도...잡고싶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같은....
언제나 잡으려고 하지만....한발짝 떨어져있는 사랑.

그래서 그의 사랑은 저리다. 아프다. 시리다.


 
  왕가위감독(38)은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너무나 다르다. 고독하고 불안정하고 사랑에 버림받은 현대 도시의 젊은이 들을 많이 그려왔지만 자신은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며 선글라 스 뒤에 가려진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외롭지만 그는 "나는 외로운 사람은 아니며 단지 재미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한다. 19살때 만나 오랫동안 연애한 여자와 7년전 결혼, 아들 하나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인생에서 외로웠을 때가 두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첫 외로움의 경험은 5살때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겪은 낯선 도 시의 삶이었다. 상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자신만을 데리고 홍 콩으로 온후 문화혁명때문에 국경이 막혀 형과 누나와 헤어져 살 았다. 광동어를 모르던 그는 낯선 홍콩에서 외로움을 느꼈으며 당 시 BBC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시그널뮤직을 벗삼아 외로움 을 달랠 수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다음 외로웠다고 느낀 적은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촬 영할 때. 아내가 아이 때문에 미국에 가있어 혼자 호텔생활을 했 다. "중경삼림"에 나오는 호텔방이 바로 자신이 묵었던 호텔방과 똑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왕가위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매니어였고 독서광이었으며 음악애호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있었 다. 그리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들이 실제로 그의생활과 연관된 곳이 많다는 것도 느낄 있었다. 그는 많은 선배예술가들의 작품을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했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 면서부터는 그 물을 자신의 독특한 감수성으로 채색해
시각화하고 영상화해왔다.

왕가위는 "홍콩에 이주한 아버지는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하셨다. 이 나이트클럽은 "중경삼림"에 나오는 중경빌딩 지하에 있었 다. 어머니는 영화광이어서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두세편씩 영화를 보았다 .아버지는 또 문학책들을 열심히 사모았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읽을 수있었다"면서 "젊었을 때는 한때 방 탕한 생활을 하기도 해 영화속에 등장하는 뒷골목의 술집들을 많이
다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첫작품 "열혈남아"는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 "비열한 거리"를 떠올리게 하고 두번째 작품 "아비정전"을 본 사람들 중엔 마누엘 피그의 "하트브레이크탱고"란 소설을 얘기하기도 한다. "중경삼림"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우리나라 번역제목은 "상실의 시대")와 비슷한 정서를 보여주며"동사서독"은 무협작가 김용의 소설주인공들을 그린 것이다.하지만 왕가위는 자신이 체득한 양분들은 독특한 감수성과 영상미로 끌어내는 재주가 있다.그 자신도 "영화는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영화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운 추억들을 영상으로 끌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화들이 외로움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 해 서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자신은 외로움을 딛 고 선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번 첫방한의 목적이기도 한 신작 "타락천사"(23일)를 예 로 들면서 그는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두 남녀가 따스함을 느끼고 그 따스함을찾아가는 이야기다"고 말한다.그는 그래도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외로움,허무주의등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상황과연결시켜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외로움과 방황,허무주의는 젊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서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이나 내 작품은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을이야기 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는 대도시에 사는 젊은이 이야기다. 세계는 점점 좁아져서 모든 도시가 비슷해지고 있다.어딜 가나 맥도널드 햄버거가게가 있고 편의점이 있다. 그렇기때문에 홍콩이야기라도 서울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수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그는 좋아하는 감독이나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가 누구인지에대해서는 "내겐 영화 그 자체가 스승이다.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내 영화속에는 부분부분 많은 선배들의 영향이담겨있기 때문에 딱히 누구를 집으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대답한 다. 그는 자신의 두번째 작품 "아비정전"을 이야기하면서"열혈남아"가 좋은 평을 얻어 많은 제작자들이 제작을 의뢰했는 데 "아비정전"의 흥행실패로 제의가 일제히 없어졌다"고 웃으면서 ""아비정전"은 어렸을 적의 외로웠던 기억들을 되살리기위해 60년대를 설정해 만들었다"며 "속편을 만드는 것은 나의꿈이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어렵다.배우들의 개런티가 너무 높아졌고 또 홍콩이 많이 변화하기 때문에 당시 촬영했던 장소들이 지금은 없어져 세트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돈도 만만찮다"고 덧붙였다. "동사서독"에 대해서는 "나는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동사와 서독이란 인물만 따왔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두 인물이 과연 젊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에 매우 호기심이 일었고그래서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보았다"고 설명했다.그는 한국의 "왕가위현상"에 대해 무척 놀라면서 "내영화가왜 한국젊은이들을 사로잡는지 알아보려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본 "양귀비"란 영화가 한국영화에 대한 유일한 경험이라고 털어놓는다. 독특한 영상미로 젊은 감각을 보여주는 그는 "나는 촬영할 때 완벽한 시나리오로 출발하지 않는다. 촬영도 그때그때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는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왕가위. 그는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한다. 그 는 "어렸을 때는 30세가 넘으면 이미 늙은이라고 생각했는데지금 40이 가까워오는데도 나는 여전히 젊다고 느낀다. 항상 젊 음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요즘의 진짜 젊은 세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기성세대가 되기를 거부하는 영원한 "철부지" 왕가위. 그가 영원히 젊은이의 문제를 그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공포영화와 SF(공상0墟?영 화를 하고 싶다"고 선뜻 대답했다. 왕가위와 왕가위영화가 어떻게 나이를먹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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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한국, 일본, 홍콩, 프랑스 4개국이 공동제작하는
왕가위 감독의 또다른 신작 <2046>에 무성한 소문과
관심이 집중되고있다.

 양조위, 왕정문, 유가령, 기무라 다쿠야, 심혜진 출연하는
것으로 현재 알려져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배우인 심혜진의
출연 결정이 주목된다. 올해 세계 60여개국에서 동시 개봉할
예정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촬영이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
 
<2046>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지 50년이 지난 2046년이라는
뜻으로 그 시대를 살아갈 젊은 남녀들의 사랑을 담은 SF대작이다.
<카르멘> <마담 버터플라이>
세개의 오페라로부터 시작하는 세개의 에피소드에는 각각
아버지와 애인 사이에서 괴로움에 빠지는 유가령, 홍콩의
담배파는 아가씨 왕정문과 야쿠자 남자 타쿠야 기무라
그리고 경찰로 되돌아온 양조위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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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가위의 2046에 거는 개인적인 기대는 크다.
       그는 항상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예상을 깨면서 새로운
           시도와 창작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위의 대강의
      줄거리만으로는 절대로 2046에 대한 판단을 할수는 없다.
      왕가위의 한국방문때 심혜진의 신비로운 매력에 빠졌다고
       했는데 왕가위 영화에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출연하게 된
                     심혜진의 역할이 기대된다.

     2046년 과연 우린들은 또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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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Wang Kar Wai, 1958 ~ , 중국)
 
 
  Inner Link
 
 사랑을 잃은 홍콩에 대한 송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홍콩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송가는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 春光乍洩>(1996)였다. 이 작품은 홍콩을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홍콩을 잊지 못하는 홍콩인들의 미묘한 심리를 애절하게 담고 있다. 이 작품은 97년이 다가오면서 수없이 받았던 홍콩반환에 대한 소감에 대한 답처럼 시작되었다. 왕가위는 만약 자신이 홍콩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를 상정하였고 그래서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러나 막연하게 동경하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서 작품을 찍기로 하였다. 두 남자의 만남과 헤어짐을 다룬 이 작품의 배경은 분명 부에노스아이레스였지만, 왕가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또 다른 홍콩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비좁은 방과 부엌, 어두운 골목길 등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여전히 홍콩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또다른 영문 타이틀은 '재회에 관한 이야기(A Story about Reunion)'이다. 그것은 아마도 홍콩과 중국의 재회이기도 할 것이다. 끊임없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두 남자의 만남에서 왕가위는 홍콩과 중국의 애증의 관계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아비정전>이란 제목보다는 Days of Being Wild라는 영문 제목이 이 영화의 성격을 훨씬 더 잘 드러내는 것 같다. <막 살아 버린 날들>이란 영문 제목. 젊은 날은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무언가 핑계거리를 찾는 아비의 삶은 그래서 우리들을 비수처럼 날카롭게 찌른다.


 
 
  왕가위, 그는 1958년 중국 상하이 출생...5세때 홍콩으로 이주. 홍콩 Poly Technic Univ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였다. 대학졸업후 TVB방송국의 드라마 제작 교육 코스를 수료, 연출 보조를 맡으며 대본을 쓰기 시작하였다. 1982년 방송국을 떠나 다른 작가들과 공동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1987년이 되어서야 담가명 감독의 '최후승리'와 '강호용호투' 등 많은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1988년 '몽콕하문'로 감독 데뷔한 그는 이 한편의 영화로 홍콩의 뉴웨이브 신예 감독으로 부상 시작했다. 국내에서 '열혈남아'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작품은 홍콩의 영화제 비평가 영화 주간부 비평가 부문에 선정되었고, 이후 베를린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 영화 평론가들에게 주목받게 된다.(- 고교 졸업 앨범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인상이다.)

  1990년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양조위등 호화 캐스팅으로 <아비정전>을 제작, 현대인의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관객들에게 생명의 귀중함이나 사랑의 존재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악평과 찬사 속에서 재충전의 기간을 가진 그는 1994년 2년에 걸친 작업끝에 기존의 무협영화와는 다른 실험정신을 구현한 무협물 <동사서독>을 완성하였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향 아래에 있는 작품이라고 본인이 말하는 이 작품은 그의 영화중 가장 스케일이 웅장한 영화로 기록된다.

  직접 택동(澤東)이라는 영화사를 설립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CF적 감각을 이용한 영화 <중경삼림>을 통해 [제 14회 금상장]"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주연배우 '양조위'에게 "최우수 남우"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1995년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는 고독한 현대인의 군상을 파편적으로 그려낸 <타락천사>로 또 한번의 충격을 던져준다. 이 영화에서 말을 잃은 천진한 청년으로 분한 금성무는 사랑과 아버지를 잃고 작은 무비카메라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보여주는 내면연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15회 홍콩 금상장 시상식에서 10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여우조연상(막문위) 촬영상(두가풍 감독), 미술상및 의상상(장숙평 미술감독),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왕가위 감독은 <열혈남아>, <아비정전>으로 저주받은 걸작, 팬들에게 외면받는 걸작을 만드는 감독에서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와 같은 작품성은 물론 감각적이고 획기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한국에 왕가위 열풍을 만드는 등 홍콩 영화에 대한 일반 관객의 인식에 새로운 붐을 조성했다. 왕가위감독은 홍콩의 슈퍼스타 장국영, 양조위와 함께 동성애를 주제로한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제작하여 먼이역에서 홍콩의 천일야화를 지속시키고 있다.

*밑의 글은 <키노> 인용입니다.

왕가위 자신의 삶

   왕가위 자신의 말을 빌자면 그는 자신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는 다르다고 단언한다. 고독하고 불안정하고 사랑에 버림받은 현대 도시의 젊은이들을 많이 그려왔지만 자신은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며 선글라스 뒤에 가려진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외롭지만 그는 "나는 외로운 사람은 아니며 단지 재미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한다. 19살때 만나 오랫동안 연애한 여자와 7년전 결혼, 아들 하나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인생에서 외로웠을 때가 두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첫 외로움의 경험은 5살때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겪은 낯선 도 시의 삶이었다. 상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자신만을 데리고 홍콩으로 온 후 문화혁명 때문에 국경이 막혀 형과 누나와 헤어져 살았다. 광동어를 모르던 그는 낯선 홍콩에서 외로움을 느꼈으며 당시 BBC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시그널뮤직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랠 수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다음 외로웠다고 느낀 적은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촬영할 때. 아내가 아이 때문에 미국에 가있어 혼자 호텔생활을 했다.

  <중경삼림>에 나오는 호텔방이 바로 자신이 묵었던 호텔방과 똑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왕가위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매니어였고 독서광이었으며 음악애호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들이 실제로 그의 생활과 연관된 곳이 많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그는 많은 선배예술가들의 작품을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했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 면서부터는 그 물을 자신의 독특한 감수성으로 채색해 시각화하고 영상화해왔다.

  왕가위는 "홍콩에 이주한 아버지는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하셨다. 이 나이트클럽은 <중경삼림>에 나오는 중경빌딩 지하에 있었다. 어머니는 영화광이어서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두세편씩 영화를 보았다. 아버지는 또 문학책들을 열심히 사모았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면서 "젊었을 때는 한때 방 탕한 생활을 하기도 해 영화속에 등장하는 뒷골목의 술집들을 많이 다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첫작품 <열혈남아>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비열한 거리>를 떠올리게 하고 두번째 작품 <아비정전>을 본 사 람들 중엔 마누엘 피그의 『하트브레이크탱고』란 소설을 얘기하기도 한다.

  <중경삼림>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우리나라 번역제목은 『상실의 시대』)와 비슷한 정서를 보여주며 <동사서독>은 무협작가 김용의 소설 주인공들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왕가위는 자신이 체득한 양분들은 독특한 감수성과 영상미로 끌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 자신도 "영화는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영화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운 추억들을 영상으로 끌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화들이 외로움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자신은 외로움을 딛고선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번 첫 방한의 목적이기도 한 신작 <타락천사>(23일)를 예 로 들면서 그는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두 남녀가 따스함을 느끼고 그 따스함을 찾아가는 이야기다"고 말한다. 그는 그래도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외로움, 허무주의등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외로움과 방황,허무주의는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서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 이나 내 작품은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는 대도시에 사는 젊은이 이야기다. 세계는 점점 좁아져서 모든 도시가 비슷해지고 있다. 어딜 가나 맥도널드 햄버거가게가 있고 편의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이야기라도 서울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 수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그는 좋아하는 감독이나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내겐 영화 그 자체가 스승이다.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내 영화속에는 부분부분 많은 선배들의 영향이 담겨있기 때문에 딱히 누구를 짚으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대답 한다.

   그는 자신의 두번째 작품 <아비정전>을 이야기하면서 <열혈남아>가 좋은 평을 얻어 많은 제작자들이 제작을 의뢰했 는 데 <아비정전>의 흥행실패로 제의가 일제히 없어졌다"고 웃으면서 <아비정전>은 어렸을 적의 외로웠던 기억들을 되살리기 위해 60년대를 설정해 만들었다"며 "속편을 만드는 것은 나의 꿈이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어렵다.

  배우들의 개런티가 너무 높아졌고 또 홍콩이 많이 변화하기 때문에 당시 촬영했던 장소들이 지금은 없어져 세트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돈도 만만찮다"고 덧붙였다. <동사서독>에 대해서는 "나는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동사 와 서독이란 인물만 따왔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두 인물 이 과연 젊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에 매우 호기심이 일었고 그래서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왕가위 현상"에 대해 무척 놀라면서 "내 영화가 왜 한국젊은이들을 사로잡는지 알아보려 왔다" 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본 <양귀비>란 영화가 한국영화에 대한 유일한 경험이라고 털어 놓는다. 독특한 영상미로 젊은 감각을 보여주는 그는 "나는 촬 영할 때 완벽한 시나리오로 출발하지 않는다. 촬영도 그때그때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찍는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왕가위. 그는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렸을 때는 30세가 넘으면 이미 늙은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40이 가까워오는데도 나는 여전히 젊다고 느낀다. 항상 젊음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요즘의 진짜 젊은 세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기성세대가 되기를 거부하는 영원한 "철부지" 왕가위. 그가 영원히 젊은이의 문제를 그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공포영화와 SF(공상과학)영화를 하고 싶다"고 선뜻 대답했다. 왕가위와 왕가위영화가 어떻게 나이를 먹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왕가위 감독의 필모그라피

열혈남아(1988년) - 칸느영화제 비평가 주간부문 선정작
아비정전(1990년) - 1991년 홍콩 금상장 영화제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장국영)수상
동사서독(1994년) - 베를린 영화제 출품작, 제14회 홍콩 금상장 영화제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수상
중경삼림(1994년) - 제14회 홍콩 금상장 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편집상수상 1994년 대만 금마장 영화제 남우주연상수상, 1994년 스톡홀롬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타락천사(1995년) - 1996년 홍콩 금상장 영화제 촬영상, 여우조연상, 영화음악상 수상, 제 1회 홍콩 금자상 영화제 촬영상 여우 조연상 수상, 95 캐나다 토론토 영화제 특별상영작
해피투게더(1996년) -
화양연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