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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로이드가 '폴라로이드'를 버렸다

파/ㅗ 2008. 2. 16. 17:51 Posted by 로드365
美 폴라로이드社 "즉석카메라용 필름 올해말 생산 중단"

인터넷 동호회 20만명 "참 아쉽고 화가 난다" 일부 필름값은 폭등
허영한 사진부기자 younghan@chosun.com


현재 국내에는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한 즉석카메라 사용자만 20만 명에 달하고, 일본은 우리보다 5배 이상 많을 것이라 한다. 소문 안 내고 즉석카메라를 즐겨 쓰는 사용자는 계산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폴라로이드가 즉석사진 사업을 포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 감소로 인한 사업구조 변화의 필요성 때문이다. 2년 전 이미 즉석카메라 생산을 중단한 폴라로이드는 대신 휴대전화 카메라 및 디지털 사진 프린터, LCD TV, DVD 플레이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빛의 산란을 줄여주는 편광기술을 개발한 에드윈 랜드(Edwin Land)와 물리학자 조지 휠라이트(George Wheelwright)가 1937년 공동 설립한 폴라로이드는 편광유리 제조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44년 창업자 랜드의 3살짜리 딸이 휴가 중에 "왜 사진은 찍은 뒤 바로 볼 수 없어요?"라고 물은 것이 계기가 돼 즉석카메라 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랜드는 바로 그날 산책길에서 즉석카메라의 구조에 대한 구상을 끝냈다. 편광장치를 뜻하는 회사 이름이 즉석사진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1948년 11월 최초의 즉석카메라인 '폴라로이드 랜드카메라 모델 95'를 89달러 50센트라는 '고가(高價)'에 내놓은 폴라로이드는 이듬해 단숨에 500만 달러의 매상을 올렸다. 이후 미국 베이비 붐 세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끈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는 지난 60년간 200여 가지 모델이 출시되며 전 세계에 수천만 대가 팔려나갔다. 1970년대에는 직원 수가 2만 명이 넘었고, 1994년에는 매출 23억 달러에 달하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로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에 밀리며 급격히 사세가 기울었고, 2001년에는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폴라로이드는 2005년 미국 내 피터스 그룹(Petters Group Worldwide)에 매각되었다.

즉석카메라 필름은 인화지의 역할을 함께 한다. 촬영한 필름은 배출될 때 롤러의 압력으로 속에 있는 약품 봉지가 터져 약품이 전면에 퍼지게 된다. 약품이 빛에 접촉한 필름 면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상(像)을 맺히게 하는 원리다.

카메라를 빠져나온 흰 바탕의 종이 사이로 약품이 퍼지게 되고,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한 형체는 점점 색이 입혀지고 선명해진다. 처음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경험은 설렘으로 기억 속에 각인된다. 그러나 '찍은 사진을 바로 본다'는 장점의 프리미엄을 디지털 카메라에 뺏기며 폴라로이드는 점점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됐다. 비싼 필름 가격도 한몫 했다.
▲ 마니아들이 후지 인스탁스 필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해 쓰는 모델 중 하나인 랜드 360./장희엽 사진작가
▲ 1980년대 말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던 쿨캠(Coolcam)600(왼쪽)과 다양한 디자인으로 출시된 시리즈 카메라들.
하지만 폴라로이드만의 느낌에 매료된 마니아층의 사랑은 여전하다. 거기엔 영화와 드라마 등 미디어의 역할도 컸다. 단 한 장뿐인 사진, 감성적 느낌과 독특한 색감 등 사용자들이 폴라로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마니아들은 오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 수집을 위해 밤새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 팔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간단한 구조와 견고한 디자인으로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1950~1960년대에 생산된 제품이 아직도 이베이(ebay)와 같은 인터넷 중고 장터에선 100~2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고, 오래 전 단종된 필름은 다른 종류의 필름으로 대체해서 쓰는 요령도 계속 '개발'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초기 모델을 200달러 내외로 구입해서 필름 홀더를 부착하고 개조한 뒤 500~600달러 가격으로 되파는 디자인 회사들도 생겨났다. '랜드 오토매틱' 시리즈 중 일부 기종에 한정되지만, 구조적으로 다른 후지필름 제품까지 카메라의 개조를 통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폴라로이드 필름의 생산이 중단되고 재고가 모두 팔리고 나면 애호가들의 탄식을 뒤로하고 폴라로이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70여 대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소장하고 있고 폴라로이드 사진 작업을 주로 하는 사진작가 장현웅(34)씨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아날로그의 향수와 현대적 취향을 이어주는 감성을 담은 대표적 기종인데, 참으로 아쉽고 화가 난다"고 했다.

폴라로이드가 필름 생산을 중단하면 이 분야 사업체는 일본의 후지필름이 유일하게 남는다. 1998년부터 인스탁스 즉석카메라를 판매하기 시작한 후지필름은 앞으로도 이 사업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후지필름 관계자는 "전체 사업 중 즉석카메라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폴라로이드에 비해 크지 않아 부담이 적고, 카메라의 크기를 줄이고 패션화해서 젊은 여성들과 학생층을 타깃으로 제품을 만든 것이 효과를 본 덕에 매출은 꾸준히 늘어간다"고 했다. 업계에서 '디지로그'라 불리는 이 틈새시장은 당분간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폴라로이드 측은 2011년까지 폴라로이드 사용자들이 소비할 만큼의 필름 재고를 생산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장 필름 대란은 찾아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1970년대까지 판매된 원스텝 카메라 'SX-70' 등 기종에 쓸 수 있는 '타임제로(Time Zero)' 필름의 경우, 2006년 생산 중단된 이후로 10장짜리 1팩에 2만원 이내에서 거래되다 폴라로이드 필름 생산 중단 소식이 전해진 뒤 5만원 선까지 가격이 급등했다.

속단은 이르지만, 폴라로이드가 시장에 내놓은 필름 제조권을 누군가 사들여 틈새 감성(感性) 시장의 명맥을 이어갈 것이라는 것이 사용자들의 조심스런 기대이자 희망이다.

입력 : 2008.02.16 00:16 / 수정 : 2008.02.16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