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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MacGuffin & 카메오Cameo

마/ㅏ 2015. 1. 18. 23:18 Posted by 로드365



맥거핀이란 무엇인가요?


맥거핀(MacGuffin), 또는 매거핀의 뜻에 대해서는 몇 달 전 '플롯(plot)'에 관한 답변에서 단 몇 줄로 요약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 테마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지나가는 말로 언급하고 말 개념은 또 아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관객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극적인 장치입니다. 더 간단히 정의하면 바람잡이, 혹은 낚시용 떡밥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군요. 이 맥거핀은 주로 미스터리나 스릴러 형식의 이야기에서 많이 활용되는데요. 극 초반에 사건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인 것처럼 잔뜩 분위기를 잡고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반이나 끝부분에서 그 실마리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걸로 밝혀지지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술, 즉 플롯 기교 중 하나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이러한 수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심지어 '맥거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 장본인은 바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입니다. 히치콕 감독은 이 용어를 스코틀랜드의 농담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요. 그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에게 밝혔던 농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코틀랜드 행 기차에 앉은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다른 사람에게 묻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선생님 머리 위에 화물용 선반에 있는 이상한 꾸러미는 뭔가요?' 다른 사람이 대답합니다. '아하, 그건 맥거핀입니다.' 먼저 사람이 묻습니다. '그런데 맥거핀이 뭡니까?' 다른 사람이 대답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산악지방에서 사자를 잡는 장치입니다.' 먼저 사람이 묻죠. '그렇지만, 스코틀랜드 산악지방에는 사자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이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저건 맥거핀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맥거핀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 <히치콕 : 현대예술의 거장> 패트릭 맥길리건 저, 을유문화사 발췌.

 

스스로 맥거핀이라는 용어를 창안한 만큼 히치콕 감독은 [오명],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39계단],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사이코] 등 다수의 작품에서 이러한 떡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의 리스트는 세계 최대의 게임 사이트 아이지엔닷컴 영화팀에서 선정한 '영화사상 최고의 맥거핀 베스트 텐'인데요. 비교적 다양한 구색의 예시들을 다루고 있어서 인용합니다.

 

10위 [미션 임파서블 3]의 토끼발

9위 [스타 트렉]의 제네시스 행성

8위 [말타의 매]의 '말타의 매' 조각상

7위 [오명]의 우라늄

6위 [펄프 픽션] 중 두목의 금가방

5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몬티 파이튼] 시리즈,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성배

4위 [스타워즈]의 '죽음의 별' 계획

3위 [레이더스]의 성궤

2위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

1위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

 

이 리스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도 계실 듯합니다. 저게 왜 맥거핀이냐고 말이죠. 보시다시피 그 자체로는 아무런 쓸모나 의미가 없는 물건도 있습니다만, 절대반지처럼 나름 극중에서 중요한 상징이나 의미를 가지는 것들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리스트는 다소 논쟁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맥거핀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관객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어떤 부분에 무게를 두는가에 따라 말이죠. [반지의 제왕]을 보고 나서 '고작 저 조그만 반지 하나 때문에 그렇게 거대한 희생들을 치러야 했다니.'라고 생각했다면 그 반지는 맥거핀이라 부를 수도 있겠죠.

 

반면에 맥거핀이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상종가를 치던 시절, 미실이 가진 힘의 원천 '사다함의 매화'라는 떡밥이 시청자들의 의문을 증폭시켰던 적이 있었지요. 나중에 이 '사다함의 매화'는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책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요. 이때도 몇몇 보도에서는 이것을 맥거핀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는 암호풀이에 가까운 것이지 의미 없는 상징물이라 하기는 좀 곤란하지요.

 

또한 영화 외의 분야에서도 오늘날 이 맥거핀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 뉴스의 헤드카피들인데요. 제목에 적힌 선정적인 문구 때문에 메일 확인하려다 말고 클릭했다가 '낚였다!'고 분개하게 되는 경우들이지요. 그리고 그 선정적인 문구들은 기사 내용의 핵심도 아니고 단지 클릭을 유도하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인기가수 모씨 결혼!"이라고 해서 화들짝 놀라 들어가 봤더니, '음악과 결혼했다'며 김을 빼는 식이겠지요.




히치콕 감독이 만든 영화 용어에는 또 뭐가 있나요? 


맥거핀과 함께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대표하는 단어는 '카메오(cameo)'지요. 연출가인 자신이 직접 단역으로 작품에 출연하는 것을 즐겼던 히치콕 감독은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 만든 30편의 영화 모두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대부분은 대사도 없고, '행인1' 수준으로 스쳐 지나가는 역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히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히치콕 감독의 출연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 멀리서 길거리를 지나간다든가([로프]), 뒷모습만 보여 줄 때도 있었고([하숙인]), 그림자 실루엣만 나온 적도 있었죠([나는 고백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구명보트]에서는 극중 인물이 읽고 있던 신문의 다이어트 광고 모델로 간신히 출연하기도 했었습니다.

 

 연출 기법에 있어서도 히치콕 감독은 혁신적인 시도들을 선보였습니다. 간혹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극적인 상황에서 인물이 배경으로부터 미끄러지듯이 분리되어 나오는 듯한 효과들을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카메라를 뒤로 빼면서 줌을 당길 때 얻을 수 있는 기법입니다. 줌인 트랙아웃(zoom in track out)이라고 불리는 이 기교도 히치콕 감독이 [현기증]에서 최초로 사용했습니다. [현기증]에서 그가 썼던 방식은 줌아웃 트랙인이라는 반대의 기술이었습니다만,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고층 빌딩에서 지면을 내려다 볼때 갑자기 땅이 쑥 꺼지는 듯한 효과를 이 기법으로 소름끼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 외에 방구석에 둔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 반대편 건물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긴장감 넘치게 잡아낸 [이창]의 표현력이라든가, 인물과 사건을 좁디좁은 공간에 밀어 넣고 찍은 [구명보트]의 설정, 그리고 영화 전체를 단 한 컷으로 찍고 끝내버린 [로프]의 실험적인 시도들도 히치콕 감독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들입니다. 짧은 컷 하나 찍는데도 숱하게 NG가 나는 곳이 영화 현장인데 영화 전체를 한 컷으로 완성했다고 하니, 준비나 리허설을 얼마나 꼼꼼하게 했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이 결국 '히치콕 터치'라 불리는 그만의 스릴러 스타일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 어느 특정한 기법이나 장치보다는 히치콕 감독의 이 스타일이야말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조민준. 한겨레신문 ESC팀 객원기자. SBS <접속! 무비월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