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의 비트 무브먼트의 상징이 된 소설로 미국 문학에서는 클래식으로 꼽힌다지만, 난 책 이름도 지은이도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게 없다. 친구의 열렬한 권유에 등떠밀려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영어책을 집어드는 만용을 부렸다. Jack Kerouac 글, Ann Charters 해설, Penguin US.
우선 이름만 들어본 비트 무브먼트가 뭔지부터 찾아보았다. 운좋게 아주 괜찮은 글을 만났다.
http://www.cultizen.co.kr/content/?cid=83
"1946년. 뉴욕. 매혹적인 용모의 한 청년이 서 있다. 얼굴만 보면 덴버 우범 지대의 싸구려 호텔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친부와 함께 살면서 철이 들기도 전에 자동차 도둑으로 인생 경력을 시작, 소년원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갔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이 청년이, 친구를 만나러 온 뉴욕에서 두 명의 컬럼비아 대학생을 만난 것에 비하면 그렇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절망을 문학과 약물 속에서 해소하던 두 대학생은 일탈적 자유가 체화된 그 청년에게 완전히 매료당하고 만다. 마침내 시인을 꿈꾸던 컬럼비아 법학대생과 사랑에 빠진 청년은 섹스와 마약, 재즈와 문학, 그리고 여행과 죄악의 세계에 그들과 동참하게 되고 둘은 영감과 자유로 가득 찬 허니문을 떠난다. 가식과 허위가 끼어들 틈이 없는 생을 살아온 청년의 광기와 환의에 찬 어투는 시인 지망생의 문체적 딜레마에 혜안을 던져 주고, 이는 몇 년 후 모든 정신적 유보와 틀에 박힌 문체에서 해방된 완전히 새로운 언어 구조로 이루어진 여행담 '노상에서(On the road)'로 재탄생하게 된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역시 제목.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길, 그 위에 선 사람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아득하고 황량하고 두려운 마음이 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매혹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길의 매혹을 쫓아 끝까지 가기란, 아니,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도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그래서 인물이 필요하다. 선을 넘어서는, 아니 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사정없이 치달아가는 인물이. 내가 아는 이런 유형의 인물은 개츠비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의 동생 폴 정도인데... 이 딘 모리알티라는 인물은 어디까지 갈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초반을 넘기도록 딘에 대한 이야기는 지나치는 바람처럼 풍문으로만 들려올 뿐이고, 그 사이 화자 '샐 파라다이스'는 미국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혼자 횡단한다. 길 위에서 무수한 만나고 헤어지는 풍경과 인생들... 소설이 '딘'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닌 걸 알 수 있다.
딘 모리알티-셜록 홈즈의 소설에 나오는 악역의 이름에서 따왔단다-는 물론 화자의 절대적 호감과 애정이 덧씌워졌기 때문이지만, 심하게 반사회적이거나 범죄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모든 일인칭화자들이 그렇듯 내성적이고 소심한 샐의 눈을 통해, 태생적인 길 위의 인간이며 열정과 욕망의 순수한 구현체인 딘은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의 유일한 동기는 언제나 억누를 수 없는 열정, 삶에 대한 뜨거운 욕구다. 그는 미친듯이 일하고, 미친 듯이 사랑하고, 미친듯 음악에 빠지고, 미친 듯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을 향해서.
몇 쪽이나 마침표 없이 쉼표만 찍어대며 재즈-비밥-무대를 묘사하는, 정확히는 음악에 열광하는 땀범벅의 딘을 그린 장면을 쫓아가노라면, 연주자들이 도달한 '그것'과 딘이 쫓아간 '그것'. 그리고 작가가 그리려 했던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된다. 태반이 모르는 단어였지만 사전을 찾을 새도 없이 책장을 넘기는 내 손에도 땀이 배었다. 이게 바로 작가가 딘에게서 발견한 문체적 혜안이었을까?
아무튼 삶의 매순간을 뜨겁게 집어삼키고 죄책감없이 잊는 이 젊은이에게, 보통 사람들은 이렇다. 내 모습... 가슴이 철렁한다.
"Now you just dig them in front. They have worries, they're counting the miles. they're thinking about where to sleep tonight, how much money for gas, the weather, how they'll get there-and all the time they'll get there anyway, you see. But they need to worry and betray time with urgencies false and otherwise, purely anxious and whiny, their souls really won't be at peace unless they can latch on to an established and proven worry and having once found it they assume facial expressions to fit and go with it, which is, you see, unhappiness, and all the time it all flies by them and they know it and that too worries them no end."
그는 내 안에 있는 극단에 대한 혐오 또는 두려움과 열망을 동시에 끌어낸다. 자유와 순간의 환희를 향한 질주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 끝은 어디인가? 종국에는 행려로 사라지는 것 아닌가? 이 물음에 그는 놀랍게도 'why not?'이라고 되묻는다.... 깊은 충격.
"You mean we'll end up old bums?"
"Why not, man? Of course we will if we want to, and all that. There's no harm ending that way. You spend a whole life of noninterference with the wishes of others, including politicians and the rich, and nobody bothers you and you cut along and make it your own way,"
딘에 대한, 아니면 삶에 대한 샐의 사랑과 연민을 읽는 것은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샐이 딘을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아득한 길 저편으로 스며드는 중이었다.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편지-그의 전부인이 떠도는 그에게 쓴-의 한 줄은 마음에 어른어른 물기가 맺히게 한다.
"my heart broke when I saw you go across the tracks with your bag. I pray and pray you get back safe.... I do want Sal and his friend to come and live on the same street..."
뒤표지의 The novel that defined a generation이라는 카피가 말해 주듯,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에서 이 소설이 표방하는 새로운 가치는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가와 작품에 얽힌 뒷얘기도 많고 그래서 해설도 재미있다. 지난 주인가 미국의 경매에서 이 작품의 원고본이 엄청난 가격에 팔렸단 기사를 읽었는데. 해설에 보니, 작가는 종이를 갈아끼우는 사이에 즉흥적인 흐름이 끊기는 걸 피하기 위해 종이를 36미터나 이어 붙여 타이핑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3개월만에 완성된 이 작품을 어떤 평론가는 writing이 아니라 typing이라고 폄하했고, 이 또한 유명한 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은 자전적이어서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도 모두 실재한 이들인데, 여기에 가면 모든 인물의 실명과 행적을 간단히나마 알 수 있다.